미술시간에 영어 공부하기 - 명화를 감상하며 영어도 배운다
박우찬 지음 / 21세기북스 / 2011년 1월
평점 :
절판




변치않는 화두, 영어공부를 주제로 한 책이다. 크로스오버가 유행이라서일까, 영어 학습서 역시 영화나 고전소설과의 크로스오버는 구태의연할 정도이고, 이젠 세계사나 과학, 음악에 이르기까지 교차가 이루어지고 있는 듯하다. 이 책 ’미술시간에 영어 공부하기’ 역시 솔직한 제목 그대로 미술과 영어의 크로스오버를 시도한 책이다. 컨셉이 특별나지 않은 바에야-컨셉이 특별나다 해도겠지만-내용의 충실성이 가장 관건이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때문에 이 책을 손에 들고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이 2가지 있었다.

첫째, 영어와 미술이 얼마나 균형잡혀 등장할까? 이 책은 본격적으로 영어를 공부하려는 사람이 고를 컨셉의 책은 아닌 듯하다. 그런 사람이라면 토익책이나 텝스책을 우선 선택할테니 말이다. 그보다는 미술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덤하여 영어도 공부해보자고 생각했을 때 선택할만한 책이 아닐지.. 그렇다면 이 책에 실린 미술 관련 내용이 얼마나 성실할지 궁금해지는 일이다. 미술로 포장만 한 영어책이라면 아무래도 그런 독자의 입맛에는 부족할 테니까.

둘째, 미술이라는 소재가 영어 학습과 크로스오버 되기 좋은 소재인가 하는 점이다. 서사적 구성이 가능할테니 아마도 어원에 집중하리라는 예측을 해보았는데, 미술 용어의 어원은 상당히 전문적인 것이 아닐까 싶었던 것. 그렇다면 상당한 영어실력을 갖춘 사람에게만 호소력이 있는 책인 것은 아닐지 의심스러워진다.




첫째, 이 책은 서양 미술사 개론이라 해도 괜찮을만큼 충실하게 미술사를 잘 담아내고 있다. 심미안은 없지만 미술사 자체에는 관심이 있었던지라 그간 몇 권의 입문서를 보았었는데, 이 책은 그러한 전문서 못지않게 정확히 미술사의 포인트를 하나하나 짚어낸다. 물론 결국 영어에 무게중심을 두었다는 것은 사실이겠고 그러다보니 미술사의 일부분을 확대 축소하는 부분들도 없지는 않겠으나, 미술의 출현부터 컨템포러리 미술에 이르기까지 빠뜨린 항목은 하나도 없다. 난이도도 딱 미술입문자의 입맛을 돋울 정도이며, 실린 그림의 양이나 질도 상당하다. 저자가 서양미술을 전공하였고 이미 십수권의 미술교양서를 낸 인물임을 알고 있었다면 놀랄 일도 아니었을까?

둘째, 영단어 학습서로써도 상당히 훌륭하다고 본다. 영어 어원에 근거하여 영단어를 공부하도록 하는 대표적인 베스트셀러 하면 능률 Voca 가 떠오르는데, 그 책에서 나온 어원이 거의 다 이 책에도 나오고 있을 정도다. 덤으로 어원의 유래까지 설명되다보니 어원 자체의 암기도 더 쉬우리라 보인다. 미술사로부터 이 정도로 많은 영어 어원을 끌어내다니, 저자의 영어 실력에 감탄해야 할지, 스스로의 공부 부족을 깨달아야 할지.. 머릿말에 따르면 저자는 한때 영어에 미쳐 학교도 안가고 도서관에서 10시간 이상 영어책만 읽다 결국 영어를 통달하게 되었다고 한다. 역시 감탄도 하고 공부부족도 절감해야 할까 보다. 어원에서 도출되는 단어 예시 역시 간간히 난해한 것들도 있지만 대부분 고교 수준의 책에 나올법한 것들이다. 영어를 따로 공부하는 사람은 물론, 수험생에게도 충분히 도움이 되도록 기획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영어의 처음과 끝은 결국 영단어일터, 개인적으로 영단어를 익히는 데 가장 좋은 방법은 어원을 익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수십개의 어원을 조합함으로써 간단히 수백개의 단어를 연상시킬 수 있으니 말이다. 때문에 어원에 기반한 단어책도 엄청나게 나와있지만, 사실 공부한다는 생각으로 단어를 익히면 그것보다 재미없는 것이 또 있을까? 때문에 다양한 주제와 결합되어 파상공세를 펼치는 영어교양서들에 눈을 돌리게 되는 것이리라. Voca나 해커스에 질려버린, 그래서 미술관에 가서 머리나 식혀야겠다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반색할만큼 충실하게 잘 짜여진 책이라고 생각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백설공주에게 죽음을 스토리콜렉터 2
넬레 노이하우스 지음, 김진아 옮김 / 북로드 / 2011년 2월
평점 :
품절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지금도 추리소설을 간간히 즐기는 독자입니다. 본래 미스터리를 좋아하다 보니, 추리나 SF, 공포 등도 아울러 섭렵하게 되더군요. 다만 재미있다 하는 작품을 손에 잡히는대로 읽어가는 스타일이다 보니 체계도 없고 유행도 모른다는 게 사실입니다만.. 이 작품을 쓴 넬레 노이하우스라는 작가 역시 제게는 낯선 이름입니다. 설명에 따르면 이 책이 포함되는 타우누스 시리즈로 일약 베스트셀러 작가로 뛰어오른 독일 여성 작가라고 합니다. 미스터리 종주국인 독일의 아마존에서 32주간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고 하는데요. (그런데 저는 독일이 미스터리 종주국인줄 몰랐거든요. 미스터리 작가 중 유명한 독일 작가를 들어본 적은 없는 것 같은데.. 우리나라에 독일 작가가 많이 소개되지 않아서인 걸까요? 이런 저런 궁금증이 생기더군요.) 베스트셀러가 꼭 좋은 책이라 할 수는 없겠지만, 소설류가 베스트셀러로 평가받는다는 말은 재미를 보장한다는 말로는 읽힐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다행히(?) 예측대로 상당히 재미있는 소설이었습니다.

이 책은 냉철한 수사반장 보덴슈타인과 감성적인 형사 피아 콤비가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타우누스 시리즈] 중 4번째 작이라고 합니다. 그렇다곤 해도 이 책 [백설공주에게 죽음을]이 국내에 소개된 최초의 작품인 듯 하더군요. 아마도 전작들에 비해 훨씬 좋은 반응을 얻다 보니 앞선 시리즈보다 먼저 번역 출간되게 된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아무튼 전작들의 내용을 모르다보니 간간히 섞여 나오는 보텐슈타인과 피아의 개인사는 무슨 이야기인지 알기가 어렵더군요. 몰입을 방해하는 부분일 수 있는데, 다행스럽게도 본편의 이야기가 워낙 강렬하고 흥미롭다보니 아쉬움도 쉽게 잊혀지더군요.

소설 전반부의 간략한 줄거리는 소개에 나와있는 대로이고, 그 이상은 스포일러가 될 터이니 언급하지 않는 게 좋겠지요? 특징만을 말해보자면, 이 작품은 비주얼이 강한 작품이라 하겠습니다. 읽어가다보면 머리 속에 영화나 드라마처럼 그림이 떠오는 작품이라는 말씀입니다. 구성 역시 영화화하기 딱 좋은 형태인데요, 조만간 영화로 만들어지지 않을까 싶기도 하네요. 물론 미스터리에도 충실합니다. 작품 속에는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하는데요, 하나같이 수상한 구석이 있어 작품이 끝날 때까지 범인이 누구인지 고민을 하게 만들거든요.

하지만 개인적으로 더 눈이 가는 부분은 인물 묘사입니다. 여성작가여서일까요, 아니면 독일인 특유의 꼼꼼함 덕일까요? 숨막히게 이야기를 밀어붙이는 와중에도 인물 묘사는 섬세함을 잃지 않습니다. 중세 영지를 연상시키는 폐쇄적인 마을을 배경으로 전과자의 누명을 쓴 '토비아스'의 고민, 피폐해져 버린 그의 아버지, 전과자가 된 옛 동료에게 혐오를 감추지 않는 마을 사람들, 그리고 그 위에 군림하며 타인의 욕망을 굴절시켜 자신의 욕망을 충족하는데 여념이 없는 군주 '테를린덴', 그들과 반대로 소녀다운 순수함 혹은 무지로 토비아스를 돕는 '아멜리에' 등... 특히 토비아스의 운명에는 정말 동정을 금할 수 없는데요. 작가가 등장인물 한 명을 집중적으로 학대하는 것이 독자의 몰입도를 높이는 한 방법이라고 들었는데, 정말 그런가 봅니다. 작품의 축이면서도 진실에서는 동떨어져 있던 그가 사건의 중심을 향해 폭력적으로 끌려들어가는 과정을 보노라면 시간가는 줄 모르겠더군요. 물론 사건을 해결하는 보덴슈타인-피아 콤비 역시 빠질 수 없겠지요? 특출난 능력을 가진 것도 아니고 이런저런 개인사정으로 마음고생을 하고 있습니다만, 사건해결에 있어서만큼은 최선을 다하는 그들의 모습은 강한 설득력을 가집니다. 사실 현실세계에 홈즈나 포와로 같은 인물이 있으리라 기대하긴 어렵잖아요? 부족한 부분도 있고 때때로 실수도 하지만 소명의식을 잃지 않는 보-피 콤비가 친밀하게 느껴지는 것도 그래서겠지요.

책표지의
광고를 보아하니 조만간 시리즈 3권도 출간될 모양입니다. 아마도 본편 중간에 소개된 피아의 현재 남편이 주요인물로 등장하는 이야기인 듯 합니다. [백설공주에게 죽음을]이 상당히 잘된 미스터리 소설이었기 때문에 전편이 출간되면 구해서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요. 기왕 시리즈 1편부터 차례대로 출간해주면 좋을텐데 아쉽군요. 설마 3-2-1권 순으로 출간되는 건 아니겠지요? 아무튼 낯설었던 독일 미스터리 분야와 좋은 만남을 이루게 된 것 같아 기쁘군요. 독일 쪽에서는 어떤 작가의 어떤 책이 유명한지 좀 더 공부해보고 싶어집니다. 작으나마 목표를 세우니 나름 설레는데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명랑하라 고양이 - 가끔은 즐겁고, 언제나 아픈, 끝없는 고행 속에서도 안녕 고양이 시리즈 2
이용한 글.사진 / 북폴리오 / 2011년 1월
평점 :
품절


고양이를 좋아하세요? 

 

 여기 이용한 씨가 쓴 시골 고양이들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묘한 분이지요, 이용한 씨는... 
고양이만 보면 참지 못하고 가까워지려 하고 돌봐주려고 하거든요.
(그의 차에는 항상 고양이 사료가 한 푸대 이상 실려있는 모양입니다. 길고양이를 만났을 때 그가 빈손인 때가 없거든요.)
도시에서 고양이를 쫓아다니던 그가 이번에는 시골로 내려가서 고양이를 쫓아다녔나봅니다. 이 책은 그 2년간의 기록이 담겨있는 책이지요.
 



 
보통 길고양이 하면 도시의 밤을 누비는 고양이를 떠올리게 되기 마련입니다.
반면 이 책은 시골의 고양이를 대상으로 삼아서일까요?
밝은 낮에, 평화로운 전원풍경을 즐기고 다니는 낭만 고양이가 잔뜩 등장합니다.
전형적인 츤데레 고양이 바람이, 개울 하이 점핑이 특기인 봉달이, 궁극의 산책 고양이 달타냥 등등..
그들의 묘생을 작가는 글과 사진과 카툰과 심지어 시를 써가며 독자에게 생생하게 전달합니다.
애정이 없이는 포착해낼 수 없는 깨알같은 부분들을 귀신같이 잡아내는 작가 덕에 책을 보다보면 입가에 미소가 떠나질 않습니다.
그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넘겨보노라면 '그래, 묘생 별거 있나? 묘생이든, 인생이든 지금 이순간에 만족하고 살아가는거지'라는 생각이 나도 모르게 떠오르더군요.

 

그렇다고 시골 고양이들이 마냥 행복할거라 생각하면 안됩니다.
폐가에서 4마리의 새끼 고양이를 키우던 카뮈는 갑작스런 빈집 철거로 떠돌이 신세로 겨우내 떠돌다가 누군가의 해코지로 세상을 떠납니다. 축사를 영역으로 살아가던 대가족 축사고양이들은 축사가 철거된 후 뿔뿔이 흩어져 이산 고양이가 되어버렸고 그중 몇몇은 겨울 간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바람이는 병에 걸려 저자의 병수발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떠나고요.
힘없는 동물들에게 이유없는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있어왔죠. 그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는 없지만요..
저자는 그들을 직접적으로 비난하지 않습니다. 
대신 고양이의 눈으로, 고양이들에게 작은 사랑을 베푸는 인간들에 대한 감사를 표현합니다.




 
인간과 마찬가지로 고양이 역시 세상에 던져져서 주어진 시간을 살아가다가 때가 되면 세상을 뜹니다.
아니, 고양이 뿐만이 아니겠지요. 
세상 만물 왜 존재하는지, 언제 그 존재가 끝나게 되는지 알고 있는 이가 어디 있나요?
그런 의미에서 세상 모든 것들은 본질적으로 운명 공동체일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렇게 같은 운명을 타고 난 대상이라면 서로 사랑하고 아껴가며 어우러져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요?
삶이 아무리 바쁘고 각박해도 그 속에서 작은 의미나마 찾으려 노력해본다면 세상 살기는 한결 행복해질 것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모두모두 명랑하기를!

고양이도... 사람도... 세상 만물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너를 사랑한다는 건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은행나무 / 2011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몇해 전, 갑작스런 변덕으로 영어 공부 좀 해볼까 싶어진 나는 서점의 원서코너를 기웃거렸더랬다. 여러 책이 있었지만 저자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고 내용도 흥미로울 듯하며 두께도 적절했던 결과, 나에게 간택된 책이 [Essays in Love]였다. 알랭 보통이라는 작가는 이름만 들어본 것이었고 어떤 책을 쓰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던 상태였다. 단지 책등에 써진 '사랑에 대한 감각적 단상'이라던가 하는 광고가 특별히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 사랑에 대해 관심이 많았던 때니까.. 

후에 알게 된 것이지만 바로 이 책이 보통의 사랑 3부작이라 칭해지는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우리는 사랑일까], [너를 사랑한다는 건] 중 첫번째 편이었다. 결론적으로 이 책 한 권으로 인해 나는 보통에게 홀딱 반하고 말았다. 시원찮은 영어실력에도 불구하고 가슴을 직격해오는 작가의 감각적인 단상에 영어책이라는 것도 잊고 몇 번씩 되풀이해 읽었더랬다. 나를 더 놀라게 했던 것은 작가가 이 책을 쓴 때의 나이가 고작 23살이었다는 점.. 이 정도의 통찰력을 가진 사람이 당시의 나보다도 어렸다는 게 나를 일종의 열등감에 빠뜨렸다고 할까?

시리즈 세번째 편인 [너를 사랑한다는 건] 역시 작가의 그러한 특기가 여지없이 발휘된 책이다. 개인적 어조로 일상에서 접하는 다양한 가치들을 문학, 철학, 역사를 아울러가며 논하는 것을 보노라면 혀를 내두르게 될 따름이다. 이 책에서도 보통은 사랑에 대한 탐구를 계속해 나가는데, 이번에는 [전기]를 그 도구로 사용한다. 특별한 인물의 특별한 삶에 대한 이야기인 [전기] 말이다. 작가는 이와 같은 전기의 고전적인 의미를 재해석하여 극히 개인적이고 미시적인 전기를 써간다. 바로 그녀의 '여자친구'에 대한 전기를 말이다.

이처럼 언어구사와 감각성으로 승부하는 책을 요약하고 분석하는 것은 불가능하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무의미하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읽을 가치가 있다, 직접 읽으면 그 맛을 알 수 있다는 뻔한 말이 가장 적절한 소개가 아닐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개를 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작가의 특성이 잘 러난 부분을 직접 인용하여 보여주는 것 정도가 가능한 일이 아닐까 싶다. 


손톱 깎기는 그 아름답지 못한 면이 보는 사람의 관대함을 요구하기 때문에 사적이다. 몸단장을 하거나 화장을 하지 않고 아침을 먹으러 나타나려면 신뢰가 필요한 것과 마찬가지이다. 사생활은 친절한 마음 또는 동정심을 갖고 보아야 하는 면이 담겨 있다. 사생활은 우리의 노출된 순간의 기록이다.


...우리 자신이나 우리의 생각이 받아들여지는 것은 그 자체의 특질보다는 그것을 받아들이는 쪽의 마음 상태와 더 깊은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뭘 할 때는 늘 느긋하게 해라"라는 말은 마침 그런 말을 듣고 싶었을 때는 의미심장하게 들릴 수 있다. 반대로 약혼자와 행복하게 지내는 남자는 매혹적인 미소도 하찮게 여기는 것이다.


너무 많이 말하는 것이 문제가 될 수 있듯이, 너무 적게 말하는 것도 위험해질 수 있다. 정보 부족은 우리의 상상력을 수많은 꾸불꾸불한 길로 이끌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이사벨이 어떻게 운전을 하는지 일부러 말해주지 않았다면, 당신 또한 그녀의 짐 싸는 문제가 주차 문제까지 암시한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책을 읽어가다보면 이 책이 소설이 아니라 에세이가 아닌가 생각하게 되곤 한다. 화자가 정말 작가이고 이사벨이 그의 여자친구가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는 말이다. 특히나 책의 가운데에 실려있는 인물들의 사진을 보노라면 도대체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일까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그만큼 이 책은 작가가 독자에게 건네는 개인적인 고백처럼 들리는 것이다. 작가가 이런 말을 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오히려 당연한 형식일지로 모르겠지만...


"내 글은 모두 일종의 자서전이죠. 나는 늘 독자와 직접적이고 개인적인 관련을 맺는 것, 내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온 글을 쓰는 것을 목표로 삼습니다."


굳이 따져보자면 아쉬운 점 한 가지. 작가가 구사하는 언어의 방식과 번역이 가지는 한계로 인하여 읽어나가다보면 턱 걸리는 곳이 적지 않게 등장한다. 보통에게 익숙한 사람이라면 그러려니 하겠지만, 이런 류의 책은 시원시원하게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거슬리는 면일 수 있다. 다만 그러한 불편을 감수하고서라도 작가가 소근거림에 귀를 기울인다면 그만큼의 즐거움도 더해지리라는 것은 장담할 수 있다. 덧붙이자면 이 작품은 작가의 초기작에 속하기 때문에 후기작에 비해 미숙한 부분도 간간히 나타난다. 하지만 이런 언급은 이 책의 단점에 대한 지적이 아니라 후기작을 읽으면 더 큰 즐거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담보라고 말한다면, 개인적 애정이 지나친 것일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일곱 개의 고양이 눈 - 2011년 제44회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작
최제훈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퀴르발 남작의 성]으로 큰 사랑을 받으며 등단한 최제훈의 2번째 장편은 [일곱 개의 고양이 눈]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표지에서는 뫼비우스의 띠와 같은 형태의 안경을 쓴 우스꽝스러운 남자가 독자를 쳐다보고 있다. 호기심과 우스꽝스러움, 당황을 함께 유발시키는 첫인상이다. 다행스럽게도 제목 속의 미스터리는 책장을 넘기면 나타나는 짤막한 시가 해결해준다. 

집으로 돌아와 문을 열었을 때/어둠 속에서 일곱 개의 고양이 눈을 보았네/내가 키우는 새끼 고양이는 세 마리뿐인데/하얀 고양이, 까만 고양이, 얼룩 고양이/나는 차마 불을 켜지 못했네 

기분 나쁜 동요를 연상시키는 시가 독자로 하여금 마음의 준비를 하도록 만든다. 으시으시한 이야기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고, 조심하라고 말이다.. 

 

책은 [여섯번째 꿈]이라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이야기는 밀실 살인을 다루는 전형적인 추리소설처럼 흘러간다. 연쇄살인연구동호회의 남녀 7명이 시삽의 초대를 받아 외딴 산장에 모인다. 그러나 막상 그들을 초대한 시삽은 나타나지 않고, 폭설로 길이 막혀 산장에 고립되는 신세가 된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 한명씩 한명씩 사람이 죽기 시작하고, 그들은 서로를 의심한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범인은 사람이 아니라 그들 각각이 꾸는 살인의 꿈이었던 것으로 밝혀진다(혹은 그렇게 믿게 된다). 한사람의 꿈이 다른 사람을 죽이고 다음 사람의 꿈이 또 한사람을 죽이는 것.. 마지막으로 남은 2명은 그 사실에 패닉에 빠지고 그 중 한명은 다른 한명이 꿈을 꾸기 전에 그를 살해해버리고 만다. 그리고 두려움에 빠진다. 만약 자신이 이제 잠이 들어 6번째 꿈을 꾸면 그 꿈은 어떻게 될까? 이렇게 이 이야기는 미스터리 혹은 공포 소설처럼 마무리된다. 앞뒤없는 이 이야기는 무멋을 위하여 설정된 것일까? 이처럼 독자를 당혹스럽게 하고 이야기는 바로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버린다. 

그리고 두번째 이야기를 읽어가며 독자는 깨닫게 된다. 첫번째 이야기는 책의 첫 링크의 역할을 한다는 점을 말이다. 이 링크를 클릭하면 나타나는 두번째 이야기 [복수의 공식]은 첫번째 이야기 속 등장인물 7명의 이야기로 변주된다. 이 7명은 은원으로 얽히고 섥혀 한명이 다른 한명을 증오하고 다른 한명은 또 다른 한명을 음모에 빠뜨리며 그는 다시 다른 한명을 살해한다.. 그러나 삶의 모습이 그렇듯 뫼비우스의 띠처럼 얽혀가는 그들의 삶은 많은 부분 오해와 왜곡된 욕망으로 얼룩져 우연처럼, 운명처럼 잘못된 기폭장치를 누르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이에 대한 섬세한 묘사는 독자로 하여금 소통의 한계와 존재적인 한계를 곱씹어보게 만든다.  

재미있게도 저자는 글의 내용 뿐 아니라 이야기 전체를 뫼비우스의 띠 위에 이어붙인다. 이야기를 읽어가다보면 [복수의 공식]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여섯번째 꿈]에 등장하는 인물들 간에 어긋남이 있음을 알아가게 된다. 즉 얼핏 보면 양자가 같은 인물들로 보이지만 이야기를 읽어가다보면 양자 사이에 조금씩 간극이 있음을, 말하자면 두 이야기가 같은 세계가 아닌 평행세계에 존재함을 알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꼬아붙임은 짜릿함과 긴장감을 불러일으킴과 동시에 소설이 세계의 메타세계임을, 그리고 필자인 자신이 그 메타세계의 왕이자 노예임을 천명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은 어김없이 다음 이야기로 이어붙는다. 

세번째 이야기 [파이]는 작가에 대한, 작가의 욕망에 대한, 작가의 운명에 대한 이야기이다. 완벽한 이야기를 쓰기를 갈망하는 작가에게 우연처럼 신비로운 여인이 찾아든다. 여인은 종일 집에서 책을 읽고 작가를 위한 밥을 준비할 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오직 작가가 써낼 완벽한 이야기에 대한 갈망만을 엿보인다. 그 때문에 완벽에 대한 강박에 더욱 빠지게 된 작가는 쓰던 이야기를 접어버리고 어떤 일본 작가의 작품을 번역하는 일을 시작한다. (필연적으로 그가 번역해가는 이야기는 [복수의 공식]과 같은 스토리이다.) 번역하는 족족 번역된 부분을 읽어가는 여인, 여인은 그리고 밤이 되면 작가에게 자신이 들은 '완벽한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한다. 이 '완벽한 이야기'는 액자식으로 전개되어 가는데, 결말에 이르러서는 스스로를 부정함으로써 자신이 '픽션'임을 선언한다. 그리고 이 이야기를 듣던 작가는 어느샌가 번역해가던 글을 자신만의 완벽한 이야기로, 하나의 '픽션'으로 흡수해버린다. (이 순간 등장인물인 작가는 작가 '최제훈'으로 화하게 된다.) 셰헤라자드는 그 이야기를 먹어버리고 비로소 가면을 벗고 뮤즈가 되어 떠나간다.  

'완성되는 순간 사라지고 사라지는 순간 다시 시작되는 영원한 이야기. 무한대로 뻗어나가지만 결코 반복되지 않는 파이처럼..' 

작가가 꿈꾸는 완벽한 이야기란 이러한 것임을 작가 대신 읊조려주며 말이다. 

마지막 이야기는 [일곱 개의 고양이 눈]이다. 당연하게도 이 이야기는 세번째 이야기와 링크된다. 화자인 작가는 도서관에서 우연히 [일곱 개의 고양이 눈]이라는 책을 발견한다. 추천사도 가격 표시도 없이 오직 제목과 출판사만이 박혀있는 미스터리 소설.. 작가는 흥미를 느껴 그 이야기를 읽어나가지만 첫부분만 읽을 수 있었을 뿐, 나머지 부분은 읽을 기회를 놓쳐버리게 된다. 작가는 미지의 것이 된 이야기를 자신의 이야기로 꾸며나가기로 결심한다. 또 다른 작가가 주인공이 되어, 미스터리 소설 한권이 뮤즈가 되어, 작가가 창조한 세계가 액자식으로 서술되며 마지막 이야기는 세번째 이야기를 변주한다. 그리고 변주라기보다 반복에 가까운 서술에 고개를 갸우뚱할 때, 최제훈 작가는 독자의 말로 독자를 후려치며 세계를 열어젖힌다. 

자, 이야기를 계속해봐. 잠이 들지 않도록. 

 

무한대로 뻗어나가지만 결코 반복되지 않는 파이와 같은 이야기. 완성될 수 없는 완성...

 

뫼비우스로 열린 책은 파이로 다시 열린다. 

 

3겹의 이야기층은 각각 다른 주제를 달린다. 가장 안쪽의 에피소드들은 추리소설의 궤를 달리며 죽음과 욕망이라는 주제를 다룬다. 그것을 둘러싼 에피소드들은 보르헤스식 환상소설의 전통을 본받아 세계의 구조, 특히 중층성에 대하여 논한다. 가장 바깥에 작가가 앉아 창조자로써 세계의 창조를 고민한다. 각각의 주제들은 밀접하게 결합되어 복잡하면서도 깊은 풍미를 풍기며 독자에게 재미와 생각할거리를 동시에 안겨주는데 성공하고 있다. 한국문학에서 장르소설의 기법이 정통문학의 기법으로 유용하게 차용되는 좋은 예라는 점도 빠뜨리지 말아야할 것이다. 독자의 기대를 충분히 만족시킬 수 있는 좋은 소설로 권하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