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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연습 - 서동욱의 현대철학 에세이
서동욱 지음 / 반비 / 2011년 4월
평점 :

네이버에서 만든 여러 컨텐츠 중에 가장 괜찮다 생각하는 것이 네이버캐스트이다. 매일 매일 한토막 한토막씩 철학, 음악, 문학, 경제 등 다양한 분야의 지식들을 섭취하는 즐거움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 중 '철학의 숲' 코너도 상당히 오랫동안 읽어온 캐스트인데 그것이 책으로 묶여 출간이 되었단다.
책을 손에 드니 표지가 눈 안에 들어온다. 밀밭을 배경으로 외발자전거를 탄 채 한없이 외롭게, 한없이 자유롭게 뒷모습을 보이며 나아가고 있는 소년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철학이란 것이 대부분의 사람에게 있어서는 결국 가치관, 삶의 지침과 다를 바 없다는 점을 떠올리게 하는 표지랄까...

책의 제목은 '철학' 연습이지만 철학 전분야를 다루고 있지는 않고 현대철학 부분을 집중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이 책의 1부는 현대철학의 터를 닦은 철학자들, 그리고 현상학과 실존주의에 족적을 남긴 철학자들을 소개하는데 할당된다. 상대적으로 익숙치 않은 이름들, 예컨데 레비나스나 메를로퐁티 등이 오히려 관심을 끈다.

이 책이 철학 '연습'이라는 제목이 붙은 것은 2부에 기인한 것이라고 해야겠다. 삶 속에서 우리를 망설이게 만드는 것들, 존재, 차이, 돈, 사랑 등의 심각하면서도 일상적인 관념들을 1부에서 소개된 철학적 사고방식을 통하여 고민해보는 것이다.

웹 상에 연재된 글들은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짧고 명쾌하다. 그러한 글을 모아 묶은 책이기 때문에 이 책 역시 읽어나가는데 버거운 편은 아니다. 물론 낯선 철학적 개념들과 마주쳐야 하는 부분에서 부담이 느껴지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최대한 대중의 눈높이에 맞추어 간소하고 명쾌하게 소개하고자 노력했다는 인상이 든다. 그런 명쾌함 속에서 혹여나 변질이나 왜곡이 생겨나지는 않을까 걱정되는 마음도 없지 않지만, 현대철학의 난해함에 첫발조차 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이 책의 저술 방식은 대상독자에게 잘 부합하고 있지 않나 생각해본다.

현대 철학자 중에서 근래 가장 큰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이 질 들뢰즈가 아닌가 한다. 긍정, 차이, 반복, 노마드 등 요새 신문 기사에서도 자주 보게되는 관념들이 질 들뢰즈의 그것이니 말이다. 현대철학의 어려운 점 중 하나는 체계를 파악하기 어렵다는 점이 아닐까 한다. 수평적이고 중심과 주변을 찾을 수 없는 것이 들뢰즈 철학의 핵심이 아닌가 생각하곤 했는데, 저자는 그런 철학의 핵심들을 최대한 간결하고 명쾌하게 요약해낸다. 물론 수다한 연구자들이 두툼한 책 수십권으로도 다 담아내지 못한 그의 철학을 6장이라는 한정된 분량 내에 다 담아낼 수는 없는 일이겠으나, 그의 철학에 관심을 가지게 만들기에는 충분하지 않은가 한다.

1부보다는 2부가 매력적이었다는 것이 개인적인 감상이다. 과거에, 혹은 동시대에 벌어진 이런저런 사건들을 끌어모아 철학적인 관념과 연결지어 서술해간다. 깊이보다 넓이가 중요해지는 현대 사회에서 일상적으로 직면할 수밖에 없는 가장 중요한 문제, '차이' 역시 빠지지 않는다. 철학 역시 시대의 요청에 의해 흥망성쇠하는 것이고보면 '차이'라는 주제가 중요한 화두가 되는 것은 오히려 당연한 일이리라.

글의 성격상 심각한 고찰은 지양하고 있지만 고민되어지고 있는 모든 문제점들은 최소한도로나마 언급되고 있다는 인상이다. 예컨대 발점을 고의로 왜곡하여 교묘하게 '차이'를 다시 '차별'로 끌어들이고자 하는 극우파의 움직임 역시 빠지지 않고 소개되고 있다. 삶을 결코 단순하게 만들지 않는 것이 철학의 '병'이자 철학이 희망인 이유 아닐지...

'돈', 빠지지 않는다. 수단이면서도 더 이상 수단일 수 없는 돈만큼 현대인을 고민하게 만드는 것이 또 있을까.. 쏟아져나오는 대부분의 자기개발서도 결국 돈 문제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는 점, 그러한 현실감각에 안도해야 할지, 아니면 속물성에 진저리쳐야할지.. 철학자는 돈에 초연했을 듯한 인상을 받곤 하지만 생에 있어서 이만큼 중요한 명제를 철학자들이 간과했을리 없다. 많은 분량은 아니지만 이 책에서 다룬 돈의 철학은 흥미롭다. 간단한 듯 보이는 것도 어렵게 만드는 것이 철학자의 특기라지만 그 와중에 드러나는 잊혀진 문제점들, 잊혀져서는 안될 문제점들을 보노라면 짜릿함을 느끼게 된다.

가장 웃음을 짓게 만들었던 부분은 바로 헤겔이 관상학자와 골상학자에게 던진 말이 인용된 부분이다. 그는 [정신현상학]에서 '사나이라면' 관상학자에게 따귀를 날리고, 골상학자는 골통을 바수어버리라는 과격한 말을 남긴다. 인간은 의지와 행위로 존재한다는 근대철학자다운 자부심과 열정이 오히려 상쾌하게 느껴지지 않는가..
깔끔하고 상쾌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니었나 한다. 읽고 나면 가뿐해지고 기분 좋아지는 현대철학 입문서라고 소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