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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전쟁
김이환 지음, 식스센스 기획 / 푸른여름 / 2011년 8월
평점 :
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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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우연히 [절망의 구]라는 책을 보게 되었습니다. 사실 큰 기대를 하고 본 책은 아니었던지라 가벼운 맘으로 읽어나갔는데 결국 책장을 덮기까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빠져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독특한 상황설정과 생동감있는 전개, 여운이 남는 결말 등 독자를 매혹할 요소가 가득한 책이었지요. 그리고 뒤늦게 확인해본 작가의 이름이 '김이환'이더군요. 이름을 기억해두자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동네전쟁]이라는 독특한 제목의 책을 내주었네요. 당연히 상당히 기대를 걸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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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이 책은 김이환 작가의 작품이라 할 수 없을 것 같군요. 식스센스라는 프로젝트 팀과 공동 기획하고 저술한 책이니까요. 식스센스는 영화 감독, 프로듀서 등이 영상 콘텐츠의 제작을 전제로 하여 시나리오를 만들어내는 팀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런 팀 방식 저술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장단이 명확하기 때문에 조금은 조심스레 지켜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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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한남동 일대가 갑작스러운 외국인의 침입으로 인해 고립되는 상황에서 출발합니다. 아비규환의 혼란 속에서 이야기는 진수, 민지, 디팍, 제인 등 평범한 인물들이 생존을 위해 때로는 싸우고 때로는 도망치는 과정을 따라갑니다. 그리고 그 와중에 독특한 조력자의 도움을 받아 외계인을 물리칠 방도를 찾아가게 되는 것이죠. 평범한 인물들이 대규모 재난에 휩싸이게 되면서 벌이는 생존기, 그리고 그들의 영웅적인 행동에 주목한다는 점에서 재난 소설의 전형을 따르고 있다고 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한국을 배경으로 하면서 색다른 느낌을 주는 요소들이 일단 눈을 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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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디팍은 외국인 노동자입니다만 한국인보다 더 한국말을 잘 하고 두뇌도 아주 비상한, '전형적이지 않은' 인물입니다. 가장 주인공이라 할 진수는 평범함의 극치를 달리는 인물입니다만 ,미묘하게 위기감이 없어 결정적인 순간에 헛웃음을 웃게 만듭니다. 제인은 외국인 트랜스젠더로 다른 의미에서 외계인스러운 사고방식을 보여주죠. 결정적으로 이들의 조력자는 말그대로 사람이 아니죠. 이런 식의 어중이떠중이 캐릭터 집단은 독자의 관심을 끄는데 충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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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 소설답게 사회풍자적 요소도 빠지지 않습니다. 혼란 속에서 이성을 잃고 방향성없는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런 인물들을 조종하여 이득을 보려는 사람들, '언제나 그렇듯' 다수의 이익을 위해서 소수를 희생시키는 정치가들 등 인간군상의 욕망을 다양하게 담아내고 있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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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결론적으로 이 책은 그다지 성공작이라 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독특한 상황설정이나 생동감있는 인물 묘사에도 불구하고 스토리가 유기적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어느 순간부터 붕 뜨더니 방황을 한다는 인상을 줍니다. 가장 중요한 요소일 평범한 인물들의 활약상이 소설 전개에서 완벽하게 소외되고 있는 점이 심각합니다. (이 책의 주인공은 개와 고양이라고밖에 할 수 없겠네요.) 풍자적 요소도 너무 상투적이라 소설이나 영화 좀 본 사람은 다들 무심히 지나갈 정도입니다. 마지막으로 뜬금없는 결말은 '떡밥성'이라기보다 '수습불가'라는 인상인데다 그나마 어떤 감동을 주는데도 실패하고 있습니다. 소위 말하는 '잡탕식 글'이 가지는 한계라 할텐데요, 블록버스터 영화가 망하는 것이 대부분 우왕좌왕하는 스토리 때문이라 평가받는 것을 생각하게 하네요. 물론 영상화하면 요소요소가 주는 재미는 있겠습니다만, 결국 중요한 것은 소재가 아니라 구성이라는 일반적 진리를 생각하게 됩니다.
객관적으로 재미가 없는 책은 아닙니다만 김이환 작가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던 독자의 입장에서 볼 때 이건 좀 아니지 않나 싶습니다... 새로운 시도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만, 개인적으로는 한번으로 끝내고 독자적인 길을 걸어갔으면 하네요. 기복은 있을 수 있습니다만 일단 작가의 이름을 걸고 낸 책이라면 기본적으로 전작보다 나은 작품이기를 바라는 것, 이상한 것은 아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