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짧고 욕망은 끝이 없다 민음사 모던 클래식 55
파트리크 라페르 지음, 이현희 옮김 / 민음사 / 2011년 12월
절판



민음사의 모던 클래식이 또 한권 출간되었습니다. 파트리크 라페르 라는 다소 낯선 이름의 작가가 쓴 '인생은 짧고 욕망은 끝이 없다'입니다. 솔직히 모던 클래식 시리즈는 대부분 작가진이 낯설군요. 초기 요시모토 바바나나 오르한 파묵 등 그래도 이름은 들어본 작가들이 나오던 때는 그래도 부담이 적은 편인데 요즘의 낯선 작가들은 확실히 선뜻 책을 드는 것을 망설이게 합니다. 그럼에도 꾸준히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은 지금까지 읽은 작품이 예상 외로 읽을만한 난이도에 낯설지 않은 감수성을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민음사에서 고심을 한 결과라고 생각해도 될까요?



이 작품의 경우, 확실히 읽으면서 느낌이 확 오는 책은 아니었습니다. 자극적인 제목에다 프랑스 작가가 쓴 책인지라 어찌됐든 강렬한 인상의 작품일 것이라 예측했는데요, 오히려 좌절과 허무의 향기가 강하여 당황스러웠던 것 같습니다. 페니마 상 수상작으로 소개되어 있는데-이 상은 페미니즘적인 작품에 수여되는 상인 듯 하더군요-페미니즘적인 느낌도 그다지 강하지 않고요. 일정한 방향성을 가지고 전개되는 책이라기보다 두 남자의 생각과 사고를 자유로운 시공간 안에서 스냅샷 찍듯 찍어낸 책이라는 인상입니다.



언급되었듯 이 책은 두 남자와 한 여자의 이야기입니다. 세 사람의 이야기가 번갈아가며 흘러갑니다. 한 남자는 평생 욕망을 억제하며 살아간 듯 보입니다만 여자에게 그 욕망을 모두 쏟아넣습니다. 반면 다른 남자는 여자에게 모든 것을 바치고자 합니다. 여자는 자신의 필요와 갈망에 따라 이들 사이를 오고 가지요. 두 남자는 그런 여자의 잔인함을 알면서도 여자를 버리지 못합니다. 이러한 삼각관계 속에서 그들의 욕망이 끊임없이 펼쳐지는 것이지요.



책은 여자보다 두 남자에게 무게를 실어 이야기를 전개해갑니다. 책 속에서 여자는 마치 하나의 표상처럼 다루어지고 두 남자의 욕망만이 진정한 것으로 그려집니다. 흥미롭게도 이 책에 그려지는 욕망은 뜨겁기만 한 것이 아닙니다. 뜨겁다가도 차갑고 날카롭다가도 투박하며 거짓인 듯 하다가 진실이 됩니다. 사라지지 않는 욕망, 사라져서는 안되는 욕망이 계속되고 그렇게 삶도 계속되지요. 이 책이 읽으며 느끼게 되는 서늘함은 제게 있어 그런 삶에 대한 수용일까요, 아니면 두려움일까요? 책장을 덮는 순간에도 욕망이라는 녀석은 아직도 형체없이 머릿속을 떠도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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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한비자 법法 술術로 세상을 논하다 만화로 재미있게 읽는 고전 지혜 시리즈 1
조득필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12년 5월
품절



시대가 시대라서일까요, 아니면 공맹의 논의가 포화에 달해서일까요? 근래 한비자나 묵자 등 상대적으로 열세(?)에 있었던 춘추전국시대의 이념들이 자주 논의되는 것 같습니다. 당연히 관련 도서도 많이 출간되고 있는데요, 어쩌다보니 한비자에 대한 책을 연이어 두 권 보게 되었네요. 한 권은 정식으로 한비자의 출생, 사망의 연혁부터 시작하여 그의 이론 체계를 분석해가는 책이었고요, 다른 한 권이 이 책 '한비자, 법 술로 세상을 논하다'입니다.



이 책은 만화를 활용한 책이네요. 만화만 해도 여유로운데 여백의 미도 있고 하여 읽어가기는 훨씬 편안한 편입니다. 사실 이 책을 먼저 읽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도 드는군요. 만화의 내용은 주로 한비자가 던지는 교훈의 실례들입니다. 예컨대 "장은 충의는 큰 충의의 적이다"라는 교훈 아래 부하가 충의로 내민 한잔의 술을 거절하지 못하여 그만 불명예와 죽음으로 전락하고 만 장수의 이야기가 나오는 식입니다.



독립성이 강한 명제를 하나씩 하나씩 던져간 끝에 어느 틈에 거대한 구조를 완성하는 식으로 전개되는 것 같고요. 그래서인지 서양식 체계에 익숙한 저는 동양의 철학서를 읽다보면 뭔가 미진한 듯한 인상을 받게 되는 것 같습니다. 아무튼 한비자의 이론은 흔히 마키아벨리의 그것과 비교되곤 하는데요, 확실히 유사한 부분이 많습니다. 다만 마키아벨리는 구직수단(?)으로 왕에게 어필하기 위해 책을 썼기 때문에 군주의 처신과 이념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논하면서 무적의 왕(!)이 될 것을 촉구하는데 비해, 한비자는 좀 더 넓은 의미에서 사회의 이치, 국가의 발전에 대해서 논한다는 인상을 받게 됩니다.



일단 한비자의 책의 구성이 이런 형태의 만화적 구성과 잘 어울린다는 인상입니다. 한꼭지 한꼭지 읽어가기가 아주 편하더군요. 과거였다면 혁신적인 내용의 책이었을 한비자가 현대에 와서는 전혀 자극적이지 않다는 것, 그만큼 시대가 변했다는 이야기인 것일까요? 한비자의 눈이 제대로 미래를 보았다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내용도 그렇고 형식도 그렇고 아이든, 어른이든 가뿐히 읽을 수 있는 책이라고 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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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면하는 벽
조정래 지음 / 해냄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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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조정래 님의 작품이 꾸준히 재출간되고 있습니다. 하나씩 하나씩 읽어왔는데요, 조정래 님의 긴 호흡에 어울리는 장편소설이 대부분이었죠. 그런데 이번에 출간된 [외면하는 벽]은 드물게도 단편집입니다. 게다가 상당히 초기의 작품으로 보이더군요. 여러모로 관심이 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실제로 읽어보니 이 책은 그간 만났던 작가님의 작품과 상당히 느낌이 다릅니다. 조정래 님의 작품은 보통 아주 질박하고 철저히 현실에 뿌리를 박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책에 실린 단편들 중에는 의외로 관념적인 것들이 있더군요. 문체 역시 보통 보던 토속적인 구어체 못지 않게 가다듬어진 문어체도 자주 볼 수 있었습니다. 이런 저런 시도를 할 수 있는 것이 단편의 특징이었던 때문일까요, 아니면 선생님이 보다 젊은 시절 다양한 길을 더듬던 시기였던 때문일까요? 작가의 새로운 면을 보게 된 것 같아 반갑게 느껴졌습니다. 더 재미있게 읽어 나갈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이고요.



형식적인 차이와 달리 주제의식은 크게 다르지 않게 다가옵니다. 현대문명에서의 인간소외, 도시문명의 가혹함, 거대권력에 의한 개인의 파멸 등 그간 다루어오던 주제들이 단편 곳곳에 배어있습니다. 시대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현재에도 역시 유효한 힘을 가지고 다가온다는 건 아직까지도 우리가 가야할 길이 멀다는 것이겠지요..

비슷하면서도 색다른 책을 보는 것은 익숙하지만 태만해지지는 않은 친구를 만난 기분이 듭니다. 수십년에 이르러 작품을 써왔지만 일관된 주제를 가지고 글을 써온 조정래 작가가 그 길을 더듬어 온 과정을 살피는 것은 흥미롭고도 재밌는 여정입니다. 신작 못지 않게 과거의 작품을 반추해보는 것도 즐거운 일임을 생각하게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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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 퇴화 보고서 - 진화를 멈춘 수컷의 비밀
피터 매캘리스터 지음, 이은정 옮김 / 21세기북스 / 2012년 4월
품절



남성으로서 보자마자 왠지 열받는 제목의 책 '남성 퇴화 보고서'입니다. 안그래도 작아지는 아버지, 위축되는 남성에 대한 논의가 많아지는 사회분위기인데요, 아주 대놓고 자극적은 제목을 사용했네요. 본래 선정적인 제목의 책은 왠만하면 피식 웃고 무시해버리는 편인데요, 이 책은 사회학 분야의 책이 아니라 자연과학 분야의 책인 듯 하여 왠지 관심이 가더라고요. 최근 X염색체에 비해서 Y염색체가 진화상의 열위에 있다는 내용의 글을 꽤 흥미롭게 읽은 뒤인지라 눈길이 갔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제목보다 더 독한 책의 첫글.. "당신은 못난 남자다. 이상"이라니... 화가 난다기 보다 걱정이 되더군요. 진화의 선형 위에서 뒷줄에 놓인 것이 앞줄에 놓인 것보다 뛰어나다는 식의 말은 과학자라면 절대 해서는 안될 무식한 이야기니까요. 이상하다 싶어 저자를 확인해보니 생물학자가 아닌 인류학자였습니다. 즉 이 책은 생물학 도서가 아닌 인류학 도서였던 것입니다! 이러면 이해가 되지요. 인류학에서는 분명 발전에 대해서 논하니까 말입니다. 퇴화라는 제목만 보고 생물학으로 착각한 저의 실수였군요.



당연히 책의 전개 역시 철저히 비교인류학적인 방식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힘, 허영심, 싸움, 운동능력, 미모, 육아(!), 성적능력(!!) 등과 같은 남성의 대표적인 속성들을 주제로 하여 과거 다양한 시대, 다양한 지역의 남성들과 현대의 남성들을 비교하고 있는 것이지요. 책의 컨셉이 그래서인지 예시로 제시되는 글도 상당히 자극적이네요. 어조 자체도 상당히 코믹한지라 술술 읽어나갈 수 있습니다. 다양한 예를 제시하는 방식이고 복잡한 이론이나 논리는 전개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부담없고 빠르게 읽어 나갈 수 있습니다.



상당히 페미니즘스러운 결론을 향할 거라는 예상을 하실 수도 있겠는데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사실 굳이 남성의 사례만을 들고 있는 것 뿐, 이 책의 논지는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적용될 수 있는 것이거든요. 또 가장 특수한 예만 찾아내어 현대에 비교하고 있기 때문에 일반화하는 것 자체가 무리인 부분도 적지 않고요. 실은 저자도 과거에서 현재로의 변화 추세를 잘남에서 못남의 변화로 이야기하고 싶어하는 것이 아닌 것 같더군요. 그저 이런 속성들을 남성이 가져야할 덕목으로 추구하는 현대 남성, 혹은 현대 사회를 부분적으로 비웃어주고 있고요, 간간히 도전과 자극이 사라짐으로써 열화되어가는 남성의 신체능력에 대해 학자적 아쉬움(?)을 보여주고 있을 뿐이죠. 책의 뒷부분에 이르러서는 후자가 훨씬 강하게 드러나서 당황스러울 정도입니다. 마초적 냄새가 살살 나거든요. 아무튼 우울한 척 하는 책입니다만 실상은 가볍게 읽어주면 되는 책입니다. 과거와 현재의 다양한 문화상을 즐기는 기분으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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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항 1 버지니아 울프 전집 17
버지니아 울프 지음, 진명희 옮김 / 솔출판사 / 2012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버지니아 울프는 제게 있어 소설가, 문학가라기보다 하나의 아이콘처럼 느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 이름이 신비화되어 곳곳에서 회자됩니다만 막상 그녀의 작품에 대한 이야기는 들을 일이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보통 소설가가 그의 대표작으로 논의되는데 비해 버지니아 울프가 작품이 아닌 여성운동가, 모더니스트로만 기억되는 것은 독특한 현상일 것입니다. 그가 살아있다면 한국에서의 자신의 이런 위치가 조금은 슬플 것 같기도 하네요.

 

 

 

아무튼 그렇게 잘 아는 듯, 전혀 모르던 그녀와 만나게 된 첫 소설이 '출항'입니다. 이 작품은 그녀의 처녀작이라고 하는데요, 27세에 집필을 시작하여 장장 6년에 걸쳐 완성된 소설이라고 합니다. 2권으로 분책되어 나오긴 했습니다만 판형도 작고 두껍지도 않아서 사실 그렇게 긴 소설이라 할 수는 없겠는데요, 그런 소설을 6년에 걸쳐 썼다는 것은 소설의 문을 처음 두드린 그녀의 조심스러움과 신중함, 고민을 느끼게 하기도 합니다.

 

 

 

이야기는 레이첼 빈스레스라는 스물 네살의 아가씨를 중심으로 펼쳐집니다. 남미여행을 떠나는 외삼촌과 외숙모와 함께 유프라지니 호를 타고 남미로 여행을 떠나게 되는 것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요. 그 와중에 개성강한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하고, 처음 사랑의 감정을 알려주는 테렌스 휴잇이라는 한 남자를 만나게 됩니다. 그러나 그 사랑은 결혼의 결실을 맺기 전에 파괴되고 말지요.

 

 

 

사실 스토리라인으로만 이야기하면 제인 오스틴 식의 전형적인 멜로드라마처럼 보이기도 합니다만 책을 읽어나가는 감상은 전혀 딴판입니다. 사실 술술 읽어나가기는 버거운 작품인데요, 가장 방해되는 것은 어찌보면 계속되는 작가의 방해입니다. 이 소설은 상당히 강력한 전지적 작가시점이라고 하겠는데요, 인물의 행동과 사고를 묘사하는데 있어서 끊임없이 작가가 개입하고 있는 것이죠. 이것은 소설이 레이첼의 성격과 사고를 지속적으로 묘사하면서 그것이 어떻게 변화해가는지 드러내는데 주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작가는 다른 등장인물들 역시 그 성격과 행동을 통해서 당대의 시대상과 사상의 변화를 드러내도록 조종됩니다. 당연히 하나의 흐름을 가지고 긴밀하게 연결되는 사건의 전개가 이 책에서는 그리 중요하지 않은 것이죠. 사고의 흐름이라는 악명높은(?) 표현기법이 그다지 드러나지 않는 작품임에도 확실하게 모더니즘의 정서가 느껴지는 것은 이러한 서술방식을 택했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군요.

 

 

 

작가를 등장인물과 동일시하는 것은 흔히 저지르는 실수입니다만 레이첼에게 현실과 미래를 고민하던 젊은 울프의 모습이 비쳐있다고 해도 놀라지 않을 듯 합니다. 가부장적 질서에 묶여 인형처럼 자라나 성격의 일부분만이 웃자랐던 레이첼이 일련의 개인적 경험을 거쳐 새롭게 눈을 뜨는 모습, 그러나 그러한 눈뜸이 무르익기도 전에 결국 운명적 파국에 의해 끝나버리고 마는 과정은 평생 정신질환을 앓으며 자기파괴를 거듭했던, 당대의 사회상에 숨막힘을 느끼고 반항을 꿈꾸었지만 결국 시대의 일부분이기도 했던 울프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니까요.

 

 

 

작품평과 주석을 보면야 이 작품의 문학사적 위치에 대해 깨닫게(!) 됩니다만 사실 강렬하게 기억될 작품은 아닌 듯 합니다. 파편화된 작품의 알맹이들을 제대로 소화하기 못했을 수도 있겟습니다만 작품이 쓰여진지 100년이 넘은 현대에 사는 우리에게 강하게 호소하는 부분은 그다지 눈에 띄지 않으니까요. 지나치게 자기세계에 빠져 쓴 작품이라는 평은 너무 건방진 것이겠지요? 울프의 작품세계를 따라가는 시발점 정도로 생각해두고 일단은 덮어둘까 합니다. 그녀의 다른 작품과 만난 뒤에 다시 펴볼 생각이 들 것이라 기대하면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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