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의 지도를 그리다
마크 세레나 지음, 변선희 옮김 / 북하우스 / 2012년 8월
절판



여행기를 자주 읽는 편은 아닙니다만 매번 만족스럽게 읽는 저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상에 파묻혀 하루하루 같은 공간을 왔다갔다 하며 사는지라, 그런 공간을 벗어나 새로운 곳을 탐험하는 이들에게 동경심을 품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요. 괴로운 것은 참아도 지루한 것은 못참는 것이 사람이라고 하잖아요? 여행은 사람을 변화시키고 성장시키기도 한다고 하고요. 하지만 여행기를 읽다보면 사실 어디에서든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일정한 그릇은 벗어나지 못한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흔들림과 뒤집힘은 있을지언정 그 그릇이 깨지지는 않는다고나 할까요? 그래서 대부분의 여행기는 바깥을 보는 듯 하지만 실제로는 자신에 대한 이야기만 한다는 느낌을 받게 되지요.



이런 시각이 편견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이런 면에서 볼 때 이 책의 장점이 잘 살아납니다. 저자는 정말 여러나라를 여행하면서 또래의 여러 사람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눕니다. 보통 이런 경우 이야기가 방향성을 잃고 단상 위주로 흘러가게 마련인데요, 이 책은 젊음이라는 기둥에 다양한 이야기를 꽁꽁 묶는데 성공하고 있는 것이죠. 이런 식으로 단단한 글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저자가 저널리스트라는 점에 힘입은 바가 커 보입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명확히 알고 있는 상태에서 자신의 말들을 추스리고 거기에서 벗어나는 것은 거침없이 툭툭 쳐낼 수 있었던 단호함이 보이거든요. 이 책도 역시 자신의 그릇에서 벗어나지 않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만, 애초 그 그릇이 작지 않았고 특히나 자신의 그릇이 어느 정도인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기에 좋은 책을 써낼 수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이렇게 평하고보니 이 책이 다소 경직되고 단호하리라는 인상을 줄 것 같은데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다양한 만남의 이야기를 유머러스한 말투로 짧게짧게 이야기해주고 있지요. 특히 대화를 나누는 부분은 소설과 같은 인상을 줄만큼 자연스럽게 묘사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편안하게 서술하면서도 중심을 잃지 않고 있다는 것이 이 책을 돋보이게 하는 것입니다.



25살 젊은이의 여행기라고는 믿기 힘든 책이었습니다. 특히 살짝 머리숱이 적은 사진 속 저자의 모습을 보고는 절대 25살이라 생각하기 어려울 겁니다^^; 희언은 접어두고, 이처럼 색다른 여행기이니 사람들의 사랑을 받은 것도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세계 각국의 불안하면서도 반짝이는 청춘의 모습을 한편으로는 같게, 다른 한편으로는 다르게 그려내는 이 책은 분명 읽어볼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었습니다. 저자가 나이를 먹어가면서 세계 곳곳에서 자기 나이 또래의 사람들과 만나고, 그것을 다시 책으로 내준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한번 여행을 시작한 사람은 여행을 멈출 수가 없다고 하더군요. 그러니 충분히 기대해도 되겠죠?


댓글(0) 먼댓글(1)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프로이트, 구스타프 말러를 만나다 - 정신분석적 심리치료를 만든 역사적 만남들 휴먼테라피 Human Therapy 34
이준석 지음 / 이담북스 / 2012년 8월
장바구니담기



표지만 보고 책을 판단해선 안된다는 서양속담이 있습니다만, 제목이 주는 인상이란 책을 선택하는데 있어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곤 하는 게 사실입니다. 저 역시 프로이트와 말러라는 이름이 함께 등장하는 제목을 보는 순간, 이 책은 읽어야겠다고 결정해버렸으니 말입니다. 세기말의 상징과 같은 말러입니다만 이런 현대적 감성 때문에 말러의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지요. 그것이 근대와 현대를 구분짓는 이정표인 프로이트의 이름과 나란히 놓이니 매력이 장난이 아닐밖에요. 사실 제목을 보자마자 떠오른 일화가 있습니다. 라흐마니노프가 야심차게 작곡한 교향곡 1번이 대중의 관심을 끄는데 실패한 이후 심각한 우울증에 빠져들게 되는데요, 당시 최신과학이던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에 영향을 받은 심리학 의사가 최면술로 그의 우울증을 치료해주지요. 그렇게 자신감을 회복한 라흐마니노프는 피아노 협주곡 2번을 통해 폭발정인 성공을 거두게 되고요. 상당히 유명한 이 이야기니만큼 클래식 애호가라면 이 책에 더욱 관심을 가지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목과는 다르게, 라고 할까요? 이 책이 다루고 있는 것은 프로이트만이 아니더군요. 다양한 유명인사와의 만남을 표식으로 삼아 3명의 인물의 삶이 차례대로 그려지고 있는 것이죠. 메스머, 프로이트, 코헛이 그들입니다. 이들은 각각 정신분석학의 기반을 닦고, 정립하였으며, 전환점을 만든 사람입니다. 저자는 이들의 인생을 살펴봄으로써 정신분석학의 역사를 담아내고 있는 것이죠. 프로이트야 워낙 유명하고 메스머도 최면을 뜻하는 영단어 mesmerize의 어원이 된 사람으로 알려져 있습니다만 코헛이라는 이름은 처음 들어보았습니다. 자기 심리학이라는 다소 생소한 분야를 만들어낸 사람이라고 하는데요, 관심이 가더군요.



메스머는 정신질환을 귀신들림의 증상으로 생각하던 시대에 그것을 분석하여 과학적인 원인을 찾아내려 한 사람이었습니다. 모차르트의 첫 오페라인 '바스티앙과 바스티엔느'를 초연하는데 경제적인 지원하기도 했던 그는 '자기요법'이라는 이름의 치료법으로 여러 사람을 치료했는데요, 물론 정신질환의 원인에 대해서는 잘못 파악했던 것입니다만 이 치료법은 일종의 최면치료였으며 결과적으로 프로이트에게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이죠. 프로이트의 삶 역시 이 메스머의 만남을 시작으로 하여 소포클레스, 말러, 아인슈타인, 발자크와의 관련성을 통해서 그려집니다. 코헛은 많은 이들이 의심의 눈초리로 지켜보던 정신분석을 이어받습니다만 '자기-대상'이라는 새로운 발상에서 출발하여 '자기 심리학'을 제창해냈는데요. 이 과정 역시 다양한 인물들의 삶과 씨줄 날줄처럼 얽혀가며 묘사되고요. 메스머도, 코헛도 이해하는데 '자기'가 중요한 실마리가 된다는 점이 재미있네요. 한자는 다릅니다만...



정신분석의 흐름을 충실히 그려냈다는 점이야 그렇다치고 이 책은 의외의 매력을 보여줍니다. 문학적이고 예술적인 향기고 퐁퐁 솟아나거든요. 일단 저자가 글쓰기에 능숙하다는 것을 읽어낼 수 있을 정도로 글이 수려합니다. 세 인물이 살던 장소의 사진을 풍부하게 담아낸 것은 물론이고 문학고전의 일부를 인용하여 적절히 활용하기도 합니다. 편집을 비롯, 디자인도 수려해서 눈이 즐거운 책이었습니다. 의외랄 정도로 상쾌하고 경쾌하게 읽을 수 있었어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신은 아무것도 쓰지 않았다 - 자연학자 이브 파칼레의 생명에 관한 철학 에세이
이브 파칼레 지음, 이세진 옮김 / 해나무 / 2012년 7월
절판



요새 창조론과 진화론의 갈등이 제법 첨예한 것 같습니다. 일신교적 전통이 강한 미국에서만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우리나라에서도 교과서와 관련해서 대립각이 생겨나고 있는 것을 기사에서 보았거든요. 창조론과 진화론의 갈등은 결국 유신론과 무신론의 갈등에 다름 아닐텐데요, 유신론의 반격(?)에 대항하는 무신론자의 재반격도 만만치 않습니다. 저만해도 이 주제와 관련하여 리처드 도킨스와 알랭 드 보통의 책을 읽을 수 있었거든요. 그리고 세번째로 읽게 된 책이 바로 이 책 '신은 아무것도 쓰지 않았다'입니다.



제목에서도 느껴지겠습니다만 저자 이브 파칼레는 야심찬 무신론자입니다. "나는 하잘것없는 물질 덩어리일 뿐이다"라는 저자의 자기규정으로 시작하여 저자는 무신론의 입장에서 창조를 재구성합니다. 당연히 철학과 신학은 물론 물리학, 생물학, 역사적 지식이 요구될 텐데요, 다분야에 있어서 저자의 박학다식함은 혀를 내두를 정도입니다. 움베르토 에코의 책을 읽으면서 천재는 이래서 천재구나, 이런 사람이 또 있을까 생각했는데 정말 세상은 넓은가봅니다. 그런 사람이 또 있었으니 말입니다. 저자는 다양한 내용을 기가 막히게 엮어내어 빅뱅부터 시작하여 행성의 형성, 세포의 출현, 생물의 진화를 그려내고 캄브리아기의 생명체 폭발까지 한달음에 그려냅니다. 두께부터가 읽기에 만만치 않은 책이라는 인상을 주고 있습니다만 책에 담긴 내용의 풍부함은 두께를 능가할 정도이지요.



평범한 독자의 입장에서는 부담스러운 면이 없을 수 없는 책입니다만, 각오(?)했던 것보다는 읽을 만한 책입니다. 이것은 저자의 유려한 문체와 번역자의 훌륭한 번역 덕이 아닐까 하는데요, 어려운 내용이라도 달변가의 말로 들으면 보다 이해하기 쉬운 법이니까요. 저자는 원자론적 유물론을 서사시 형식으로 노래한 루크레티우스의 고전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에서 깊은 인상을 받고 그것을 현대적으로 다시 쓰고자 이 책을 계획했다고 하는데요, 그래서인지 이 책도 하나의 서사시처럼 읽히거든요. 이런 구성도 책을 읽는 재미를 유지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으리라 생각되는군요.



목차를 보고 이 책이 왜 캄브리아기에서 마무리될까 의아했었습니다. 당연히 인류의 출현까지는 이어지리라 기대했었으니까요. 그런데 책의 마지막에 실린 저자의 말을 보니 이해가 가더군요. 아직 한권의 책이 더 계획되어 있더라고요. 제목부터가 '인간의 장편소설'이니 어느정도 방향성이 예측되지 않나요? 이 책이 만족스럽기도 했고 좀 더 익숙하고 날카로운 내용이 실릴 수 있는 주제인지라, 후속작이 상당히 기대됩니다. 빠른 시일 내에 출간될 수 있었으면 바래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키아벨리의 인생지략 - '군주론'의 마키아벨리가 전하는 독한 인생 멘토링
나이토 요시히토 지음, 박지현 옮김 / 더난출판사 / 2012년 9월
품절



요새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다룬 책을 부쩍 보게 됩니다. 아마도 불안한 사회상의 한 반영일까요? 생존을 위해서는 이기심과 무도함이 필요하다는 그의 사상은 한편으로는 비난의 대상이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매혹적입니다. 아마도 인간의 내부에 있는 이기심을 부정할 수 없으니 그에 대해 정당성과 방향성을 지시해주는 그의 말이 매력적일 수 밖에 없을 것 같군요.



이 책은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을 자기개발서로 썼다면 이렇게 썼으리라 생각되는 방식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그의 말 중 하나를 소주제로 삼아 현대인이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행동하는 것이 좋을지 해설해주는 것이죠. 대부분의 자기개발서가 상당히 친절하고 간결하여 읽기가 편하도록 쓰여집니다만, 일본의 자기개발서는 그런 면이 더 부각되는 측면이 있습니다. 한 단락의 길이도 아주 짧고 변죽을 두드리는 말은 최대한 자제하며 핵심되는 문장에는 밑줄까지 쳐주는 것이죠. 덕분에 술술 읽어내려갈 수 있었습니다.



소제목만 봐도 강렬하기 그지없습니다. "나쁜 사람이 대접받는다", "친절은 미덕이 아니다", "악행을 되풀이하라", "복수를 꿈꿀 수 없을 정도로 철저히 밟아라" 등등... 얼핏 들어서는 비도덕적인 것은 불론이고 결과적으로는 평판을 떨어뜨려 오히려 해가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만, 해설을 보면 납득되는 면이 있구나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예컨대 "악행을 되풀이하라"는 말은 얼핏 말도 안되는 소리같지요. 하지만 악행이 되풀이되면 하나하나의 행동은 잊혀지게 되고 마침내 그런 이미지로 굳어지게 된다는 것이죠. 물론 이런 이미지가 꼭 좋을수야 없겠습니다만, 그런 이미지를 무리하게 거부하는 것보다 그런 이미지를 수용하여 일관성있게 행동하는 쪽이 보다 도움이 된다는 것입니다. 주변 사람들도 그러한 일관성에 맞추어 행동하게 마련이기 때문이지요. 궤변처럼 들리자만 실제 주변에서 악한 사람이 살아가는 양식을 보면 이해가 가기도 합니다.



물론 '꿈보다 해석'이라고, 현대에 맞게 무리한 해석을 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사실 그렇게 볼만한 해석이 적지 않고요. 하지만 애초 자기개발서가 읽는 사람의 이득을 증진시키기 위해서 쓰여진 것이라는 점을 감안해보면 당연한 것이기도 하죠. 삶에 있어서 이기심이라는 것이 불가피한 것이고 한편으로 필요한 것이기도 하다는 것을 깨달아가는 저에게는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책이었습니다. 솔직하지만 생각보다 과격하지 않은 책이니만큼 걱정 없이 읽으셔도 되리라 생각되네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크로스 2 : 진중권 + 정재승 - 은밀한 욕망을 엿보는 크로스 2
진중권.정재승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2년 8월
장바구니담기



크로스 시즌 2가 나왔네요. 워낙 작가진이 빵빵한데다가 전작의 반응도 나쁘지 않았고, 신문연재물을 단행본으로 엮어낸 양식인지라 출간도 용이한 편이니 지금쯤 나오겠구나 하니 딱 나오는군요. 통섭이 한창 이슈가 되던 때, 가장 유명한 저자 중 두 명, 그것도 한 명은 인문학으로, 다른 한 명은 과학으로 이름을 떨친 두 명이 힘을 합쳐 쓴 글이라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는데요, 솔직히 살짝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다는 소감이었어요. 톡톡 튀는 개성의 충돌을 기대했는데 생각보다 밋밋했거든요. 그래서 후속작에서는 어떤 변화가 있으려나 궁금했었습니다.



이번 책은 전작에 비해 좀 더 정치적이거나 사회적인 이슈를 다루고 있습니다(라고 아예 머릿글에 쓰여있습니다). 저처럼 개성의 충돌을 기대하는 사람들에게 알려주려는 듯, 두 작가가 대립하고 논쟁하는 형식을 택하기보다 완전히 다른 관점에서 문제를 바라보는 것에 중점을 둔다고 합니다. 내용의 풍부함이나 탁월한 통찰력을 어필하기보다 다양한 스펙트럼의 문제의식을 제시하고자 하는 것이 이 책의 목표라는 것이죠.



역시나 다루고 있는 소재는 아주 다양합니다. 트랜스포머, 뽀로로, 낙서 등 가벼운 것에서부터 자살, 종말론, 나는꼼수다, 4대강 등 묵직한 것에까지 이릅니다. 전작에서와 마찬가지로 정재승 님은 모범생적인 태도로 과학적 관점에서 소재를 서술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고요, 진중권 님은 언제나처럼 고개를 살짝 삐딱하게 기울이고 미학적 돋보기를 들이대며 소재의 뒷면을 들추는 방식을 택하고 있습니다.



임팩트라는 면에서 보면 전작과 마찬가지로 다소 약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머릿말에서 10년 후에 읽어도 유효한 글을 쓰고자 했다고 말합니다만, 막상 10년 후에 다시 읽을 생각이 들 정도의 매력은 부족하지 않았나 싶습니다.(두 번 정도 읽어볼만한 매력은 있습니다만^^;) 사실 제가 두 작가에 대해 워낙 높은 기대치를 가지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객관적으로 보자면 '잘' 만든 책임은 틀림없거든요. 두께만 봐도 알 수 있듯, 전작보다 분량도 많아지고 디자인도 유려해졌으며 내용도 충실하니 말입니다. 결정적으로 크로스 3가 나오면 분명 사볼 테고요. 책값이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을 책이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