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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위안 - 불안한 존재들을 위하여
알랭 드 보통 지음, 정명진 옮김 / 청미래 / 2012년 3월
구판절판
'철학의 위안'이라는 제목은 보에티우스의 책에서 가져온 듯 하군요. 제가 알기론 움베르토 에코 역시 동명의 책을 낸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보에티우스의 책을 읽어보지 않은 저로써는 어떠한 내용이 후대의 작가들에게 영감을 주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현실에서 유리되어 우주 저멀리에서 관조하는 철학이 아닌, 힘겨워하는 이들의 옆에서 어깨를 부축해 줄 수 있는 철학을 연상시키는 제목은 충분히 인상적이었으리라 생각해봅니다. 보통은 온갖 주제를 섭렵해가며 책을 냅니다만, 항상 일반인들의 감성으로도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책을 내곤 하죠. 이 책 역시 그런 기대에서 벗어나지 않겠구나 안도하게 만드는 제목이 아닌가 싶네요.
책은 소크라테스, 에피쿠로스, 세네카, 몽테뉴, 쇼펜하우어, 니체 이렇게 6명의 철학자의 삶과 사상을 따라갑니다. 처음에는 굳이 이 철학자들을 골라낸 이유가 무엇일까 궁금했는데요, 책을 읽어가다보면 보통의 의도를 알 수 있더군요. 저자 자신이 가진 가치관을 뒷받침하는 철학자들을 선정했던 것이죠. 보통의 책은 항상 인간이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를 중심에 놓고 쓰여졌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에서는 인간이 행복해지기 위해서 필요한 것으로 사랑과 우정을 꼽고, 이 둘을 놓고 고심했던 철학가들 6명을 골라낸 것입니다. 쇼펜하우어 같은 비관론자도 부정할 수 없었던 소박하지만 당연한 진실에 대해 보통은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죠.
보통의 책이 언제나 그렇듯, 이 책 역시 편안하면서도 지성과 감성을 자극하는 언어들이 가득합니다. 철학자들의 사상만이 아닌, 그 사상을 뒷받침하는 철학자 자신의 삶과 당대의 사회상을 보통 특유의 언어로 그려낸 것이 특히 마음에 듭니다. 어떠한 삶을 살 것인가를 두고 평생 고민한다는 점에서 이러한 위인들 역시 우리와 다르지 않았다는 공감을 느끼게 만들거든요. 에피쿠로스, 세네카, 몽테뉴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철학자인지라 저로써는 이름 정도만 알고 있었는데요, 이번 기회에 그들의 철학이 어떤 것인지 조금이나마 맛볼 수 있었던 것도 좋았구요. 특히 에피쿠로스의 철학은 의외로 인상적이어서 그에 대한 책을 더 찾아보게 될 것 같습니다.
깔끔한 디자인과 풍부한 삽화 덕에 눈도 즐거운 책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상당히 오래전에 쓰여진 책으로 알고 있는데요, 이렇게 뒤늦게 출간된 것도 의외고 이렇게 세련되게 편집되어 있는 것도 의외입니다. 보통이 가지는 감성이 다소의 시간차를 극복할 정도로 세련되었던 것일지, 아니면 늦은 출간을 감안하여 출판사에서 다소 손을 대어 지금의 모습으로 만들어낸 것인지 궁금하기도 하군요. 이로써 그의 대표작은 모두 번역출간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그러면 이제는 보통이 신작을 써주기를 기대해야겠군요. 다음에는 과연 어떤 주제를 다룰지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