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죽이기
아멜리 노통브 지음, 최정수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10월
절판



한때 반전(反轉)영화가 많은 사랑을 받은 시기가 있었죠. 지금도 꾸준히 반전영화가 상영됩니다만, 그때는 극장에 올라가는 영화의 절반이 반전영화였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특히 기억에 남는 작품이라면 '식스센스'와 '유주얼 서스펙트'가 있네요. '식스센스'는 영화 곳곳에 실마리를 던져놓지만 관객이 눈치채지 못하게 위장해나가다가 마지막에 베일을 벗겨내며 조각을 맞추어내어 관객들이 경악하게 만드는 작품이었죠. 반면 '유주얼 서스펙트'는 일반적인 스릴러처럼 진행되던 끝에 마지막에 그간의 스토리 전체를 부정함으로써 관객들을 '멘붕'하게 만드는 스타일의 반전영화였습니다. 때문에 '유주얼 서스펙트'의 경우에는 영화의 의미라는 측면에서 제법 많은 비판도 받았습니다만, 반전 자체의 강렬함과 새로운 스타일의 창조라는 특색 때문에 의의를 인정할만한 영화였습니다.



아멜리 노통브는 우리나라에서 사랑받는 프랑스 대중소설가 중 대표적인 인물이라 생각되는데요, 특히 반전이 일품인 소설을 써내는 작가입니다. 이번 작 '아버지 죽이기' 역시 그런 스타일의 소설이리라 예상하고 접했고요. '아버지 죽이기'라는 제목은 오디피우스 컴플렉스를 중요한 소재로 사용했음을 드러내고 있는데요, 소설의 얼개는 그 틀을 차용하고 있습니다. 그 끝에 말그대로 오디피우스 컴플렉스가 전도되는 반전이 등장하고요. 전개 과정은 '유주얼 서스펙트'식이라 하겠는데요, 결국 책의 10분의 9가 부정되며 10분의 1의 결말에 봉사하는 방식인 것이죠. 문제는 그러한 부정을 용납할 만큼 반전이 강렬하지도, 재밌지도, 인상적이지도, 자극적이지도 않으며, 새로운 스타일이라고 할만한 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독자로 하여금 도대체 이 책을 왜 읽었는가 회의하게 만드는 엉뚱한 '반전'을 불러일으키는 것입니다.



다행이라면 책이 얇다는 점이네요. 이 책이 두껍기까지 했다면 정말 시간이 아까워서 화가 났을 것 같습니다. 실질적으로 등장인물은 3명, 거기에 숨겨인 인물 1명이 등장하는 간결한 구조인데, 그 중에서 주요 인물인, 혹은 그렇게 생각되었던 크리스티나는 도대체 왜 등장했던 것인가, 그녀가 말하고 보여주던 것은 무엇인가 싶습니다. 결말에서는 아예 소외되어 버리는 그녀는 그저 하나의 맥거핀으로 볼 수밖에 없는데요, 헛웃음이 날 따름이네요. 책의 중간중간에 좋게 봤던 섬세한 묘사조차 결국 결말 때문에 기능을 상실함으로써 배신감을 더해줄 뿐이고요. 주제가 있을 것으로 생각했던 독자들에게든, 재미가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던 독자들에게든 실망감을 안겨준 실패작이라 생각합니다. 차기작을 낸다면 좀 더 분발해주었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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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의 고아 아시아 문학선 4
우줘류 지음, 송승석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12년 9월
품절



중국이 얼마나 강대해졌는지는 근래 출판경향을 봐도 알 수 있더군요. 10년 전과 비교해보면 믿기지 않을 만큼 많은 중국의 책들이 출간되고 있더군요. 예전부터 많았던 일본 서적에 중국 서적이 더해진다는 인상이네요. 하지만 그 과정에서 여타 아시아 국가의 책은 소외될 수밖에 없을 텐데요, 출판계 역시 수요의 원리가 지배하니만큼 당연한 일이겠습니다. 하지만 역시 안타까움을 느낄만한 일이겠고요. 그런 와중에 출간되는 아시아 문학선은 독자들이 관심을 기울여 성장을 기대해봐야될 시리즈가 아닐까 싶네요.



아시아 문학선 4권은 타이완 작가 '우줘류'의 소설이네요. 처음 접하는 타이완 작가인데요, 일제가 타이완을 지배하던 1943년에 쓰기 시작하여 일제가 패망한 1945년에 탈고한 소설이라고 하네요. 배경이 배경이라서일까요, 왠지 강한 공감대를 형성하며 읽을 수 있는데요, 소설 속 주인공 타이밍은 타이완 자체일 뿐 아니라 식민지 지배를 받았던 여타 국가들의 모습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타이밍은 50년의 세월에 걸쳐 타이완은 물론 일본과 중국을 떠돌며 자신의 이상을 찾아 헤매입니다. 하지만 실현될 수 없는 그 이상은 그를 '아시아의 고아'로 만들고 종국에는 죽음으로 끝맺음을 내고 말지요.



소설을 읽을 때 전체적인 구조와 내용보다는 정교한 개념의 확보와 디테일한 심리묘사에 더 관심을 갖는 편입니다. 그런 면에서 저자가 그려내는 인물의 심리와 당대 타이완과 기타 국가의 모습에 대한 묘사는 매혹적으로 다가왔습니다. 현학적인 부분이 적지 않다는 점은 다소 거슬렸지만요. 중국과 일본의 소설 외에 처음으로 접하는 아시아권 소설이었는데요, 제법 만족스런 첫만남이었다고 생각되네요. 다음 시리즈도 기대해보게 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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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링 타임 - 세상을 바꾸는 새로운 학생운동
클레어 솔로몬 지음, 인윤희 옮김 / 지와사랑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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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의 월 스트리트 붕괴는 참으로 엄청난 사건이었습니다. 9.11테러는 비극적인 사건이었으나 외부로부터의 공격이었고 당연히 그에 따른 대응도 상대적으로 명쾌할 수 있었습니다. 반면 월 스트리트 붕괴는 정치인, 은행가가 기획하고 국민들이 방관한 끝에 일어난 내부적 붕괴였고 그만큼 미국, 더 나아가 현자본주의의 문제점을 극단적으로 노출시켰지요. 그럼에도 그에 대한 대책을 마련한다는 것이 쉽지 않고요. 물론 그 원인을 한 가지로 확정해낼 수 없는 사건이겠습니다만 그 책임의 상당부분이 신자유주의로 향할 수 밖에 없음은 부정할 수 없겠습니다. 그렇기에 이후 세계 곳곳에서 동요가 발생한 것은 당연한 추이겠고요.



이 책은 월스트리트 붕괴 이후 주로 자본주의 국가 내부에서 발생한 학생 중심의 저항운동을 정리하고 있는 책입니다. 영국의 등록금 투쟁에서 시작하여 이탈리아, 캘리포니아, 프랑스, 그리스 그리고 튀니지의 청년운동이 이어지고 있지요. 국가마다 상황이 다르고 그에 따라 운동의 방향성도 다소 차이는 있었습니다만, 그 근간에는 이상을 짓밟는 권력에 대한 이상의 반격이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순수함과 열정을 가진 학생들이 그 운동에서 선두에 선 것은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우리 역시 광주학생운동과 4.19의 전통을 가지고 있지 않나요..



이처럼 청년운동의 이념은 동서고금 다를 바 없습니다마나, 책이 그려내는 세부적인 청년운동의 모습은 자못 독특하네요.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와 같은 소셜 네트워크가 저항의 파급에 중대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죠. 저항을 말하는 책이 하나같이 중시하는 것은 연대일 터, 이 책도 다르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연대가 가능한 필수 요건이 바로 소통일 것입니다. 정보의 독점과 통제가 권력의 최대 방패라면 그 방패를 뚫는 창 역시 정보일 수밖에 없는 것이죠. 그런 의미에서 세계적인 연대가 가능한 기술적 여건이 갖추어지는 것은 저항운동에 있어서도 하나의 전기가 되는 것임을 상기해봅니다.



상당히 다양한 인물들이 참여하여 저술된 책이니만큼 다소 산만하고 다소 거친 서술도 눈에 띕니다. 전반적으로 들뜨고 흥분된 어조가 유지되는 것도 당연하다면 당연하겠네요. 책에 실린 시위 현장의 사진과 어울려 이런 어조는 상당히 강렬하게 뇌리에 박히는군요.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싶다면 그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움직이는 사람이 없으면 안됩니다. 영국의 학생운동 편에 실리고 말미에 다시 한번 인용된 말을 재인용하고 싶네요.


"권력은 요구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내주지 않는다. 과거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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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과 소설가 - 오르한 파묵의 하버드대 강연록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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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한 파묵의 소설 '순수 박물관'을 1년 전쯤 읽었습니다. 상당히 낭만적인 소설이었습니다만 파묵이 실제로 '순수 박물관 '을 건립하여 개관했다는 얘기를 듣고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나네요. 다른 것은 몰라도 작가에게 있어 소설이란 현실 이상의 것이로구나 생각하게 되었달까요? 이 책은 '순수 박물관'을 출간할 즈음 하버드대에 초청받아 강연했던 내용을 정리한 책인데요, 파묵의 가치관이나 소설관을 알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강연록을 자주 보는 편입니다만, 아무래도 일반 이론서에 비해 읽기 편하고 난이도도 높지 않은 편이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평소에는 보기 어려운 작가의 개성이 강하게 드러난다는 장점도 있고요. 그런데 이 책은 그런 예상과는 다른 책이었습니다. 제대로 이론적인데다 다소 관념적이기까지 한, 본격적인 개론서의 인상을 주는 책이었거든요. 때문에 단숨에 읽어버리겠다는 당초예상과는 달리 읽어가는데 제법 시간이 걸렸습니다. 진지하게 읽어야 맛을 볼 수 있는 책이라고 하겠네요.



내용상으로 이 책은 '순수 박물관'의 주해라고 보는 것이 적당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순수 박물관'은 낭만적인 스토리와 별개로, '나'의 세계 이해가 중요한 플롯이 되는 책이었지요. 때문에 파묵 자신의 가치관과 세계관으로 보이는 생각들이 곳곳에 넘쳐흘렀는데요, 그것을 소설을 쓰는 작가의 입장에서 정리해낸 것이 이 책입니다. (이 책에서 '순수 박물관'의 '나'는 작가 자신이 아니라고 못박고 있습니다만 한편으로는 작가의 분신이기도 하다고 말하는 점이 눈에 띄더군요.)



이 책에서는 '안나 카레니나'나 '악령' 등의 러시아 고전 소설들이 중요한 교재로 활용되더군요. 고전 중에서도 고전이라할 작품들입니다만 분량이나 무거움에 질려 원본을 읽어본 작품이 거의 없는데요, 파묵의 설명을 보다보니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불끈 생기네요. 그러고보니 '순수 박물관'은 읽어봤습니다만 막상 '내 이름은 빨강'은 읽어보지 못했네요. 두 작품은 개성이 상당히 다르다고 들었는데요, 이것도 읽어봐야겠구요. 책은 책을 부른다는 것을 다시 한번 증명해주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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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선생의 시끌벅적 한국사 8 - 근대화를 향한 첫걸음을 내딛다 용선생의 시끌벅적 한국사 8
금현진 지음, 이우일.박소영 그림, 정진숙 정보글, 이상찬 감수 / 사회평론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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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교육계에서 역사 과목에 대한 관심이 높은데요, 아무래도 입시에서의 필요성 때문이기도 할 것입니다. 다소 씁쓸한 얘기입니다만 어떤 이유로든 역사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으니 결과는 나쁘지 않다고 해야할까요? 한 국가가 다른 국가를 이해하는 것이 갈수록 중요해지는 현실에서, 역사의식이라는 사고틀은 본질적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역사를 어릴 적부터 교육해야 하는 것도 이것이 하나의 사고틀이기 때문이겠고요. 때문에 아동교육용 역사서에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일단 표지에서부터 딱 보이게 이우일 님의 손길이 느껴지지요. 요새 만화는 안그리시는 건지 일러스트에만 참여하고 계신 것 같기도 한데요, 그만큼 많은 책에서 이우일 님의 이름을 보게 됩니다. 표지만 봤을 때는 만화라는 매체를 활용하는 역사서가 아닐까 싶어서 Why 한국사 시리즈를 연상했었는데요, 책을 펴보니 의외로 일반도서더군요. 용선생과 여러 학생 등 개성있는 캐릭터들이 등장하여 시간순으로 역사를 탐방하는 이야기 전개는 노빈손 시리즈를 강하게 연상시킵니다. 구성 뿐 아니라 편집도 상당히 유사한데요, 노빈손 시리즈의 영향력이 무섭구나 싶네요.



용선생 시리즈는 Why 시리즈보다 대상연령이 다소 높다고 보이는데요, 단순히 만화냐 아니냐를 떠나 구성이나 편집이 좀 더 본격적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각장의 끝에 내용을 요약한 정리노트를 싣는다던지, 퀴즈형식의 복습문제를 실어둔 것이 눈에 띄네요. 초등학생이나 혹은 중학생에 이르기까지 학교 수업의 예습복습용 부교재로 사용해도 괜찮지 않을까 싶은 구성입니다. 책을 읽어버릇하지 않는 학생들에게는 문턱이 느껴질 수도 있겠다 생각되는데요, 유머러스한 구어체의 서술이라던가 풍부한 사진과 일러스트가 다소 부담을 덜어주고 있는 점이 다행이네요.



비슷한 책을 워낙 많이 접하다보니 내용보다 디테일에 먼저 눈길이 가는 편인데요, 용선생 시리즈는 상당히 공을 들여 만든 책이라고 보입니다. 디자인부터 시작해서 구성, 분량 할당에 이르기까지 등 꼼꼼히 재보고 다듬은 티가 나서 소비자의 입장에서 기분좋을만한 책입니다. 내용 역시 거슬리는 것 없이 무난하게 올바른 시각을 유지해서 아이들이 보기에 무리가 없어 보이고요. 8권 정도로 분량을 잡은 것도 적절하지 않았나 생각되는데요, 초등학생 아이에게 권해줄만한 괜찮은 시리즈가 아닌가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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