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달콤한 재앙
케르스틴 기어 지음, 함미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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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증맞은 제목과 감각적인 표지의 책 '이토록 달콤한 재앙'입니다. 케르스틴 기어라는 작가는 이 책을 통해서 처음 알게 되었는데요, 의외로(?) 독일의 작가더군요. 선입견이 무서운 게, 멜로 소설 하면 프랑스나 미국을 떠올리게 되지 독일은 좀처럼 생각하게 되질 않거든요. 근래 들어 보기 힘들었던 다양한 장르의 독일 소설들이 국내에 출간되고 있는 것 같은데요, 저로써는 멜로는 또 처음이네요.

설정은 사실 상당히 상투적입니다. 직장에서의 문제, 시댁 식구 등과의 갈등 그리고 결정적으로 남편의 뜨뜻미지근함에 질린 한 여성이 '왕자님'형 남자와 만나게 됩니다. 왕자님과의 돌발성 도주를 꾀하던 그녀는 불의의 사고를 당하게 되는데요, 정신을 차려보니 신기하게도 5년 전의 과거로 시간여행을 했음을 알게 됩니다. 미래를 알고 있던 그녀는 남편이 될 남자인 '펠릭스'를 피하고 왕자님 '마티아스'와의 멋진 미래를 꾸며보기로 마음 먹지요. 겸사겸사 사고로 점철되었던 언니의 결혼식을 완전히 새롭게 만들어내고 , 불행한 남성과의 만남으로 고통받은 친구들도 구조해주고 말이죠.

예상가능한 전개와 희미한 갈등요소는 장점이자 단점으로 작용하는군요. 남편과의 불화 내지 타 인물간의 갈등이 너무나도 소소하고 그나마 코믹하게 그려지다보니 주인공의 일탈은 공감이 가기보다는 투정으로만 보입니다. 펠릭스와 마티아스의 인물상도 전형적이고 피상적인 수준으로 그려지다 보니 주인공이 갈팡질팡 하는 심정에도 그닥 감정이입이 되지 않고요. 평범해보이는 주인공이 뿜어내는 알 수 없는 마력에 푹 빠져서 꼭두각시 놀음을 해야하는 너무나도 이상적인 두 남자의 모습을 보노라면, 도대체 이 남자들은 무슨 죄인가라는 생각을 금할 수 없다는.... 특히 마티아스는 무슨 죄인가요?^^; 물론 그덕에 심리적 부담을 전혀 느끼지 않고 술술 읽어갈 수 있는 점은 있습니다만, 중심이 되는 줄기가 빈약한 것은 확실히 아쉬운 부분입니다.



그에 비해서 곁가지라 할 이야기들은 훨씬 흥미진진합니다. 이 책에서 가장 흥미진진한 사건은 엉망진창이었던 언니의 결혼식을 이상적인 것으로 바꾸기 위해 주인공이 고군분투하는 장면이었네요. 괴상한 인물들이 집결하여 온갖 난장판을 만들어낼 것을 싹부터 하나씩 하나씩 잘라내는 과정이 유쾌하기 그지없게 그려집니다. 1인칭 시점이기에 가능한 수다스런 입담이 이런 과정을 더욱 코믹하게 그려내는데 도움이 되고 있고요. 하나 더하자면 독일 지방의 사투리를 전라도, 경상도, 충청도 사투리로 번역해낸 번역가의 솜씨도 인상적이었네요. 주석도 그렇고 마지막에 실린 옮긴이의 말을 봐도 그렇고, 번역가 분께서 상당히 애정을 가지고 의욕을 발휘했다는 느낌이 듭니다.

제목이나 표지에 실린 소개글이 주는 인상과는 달리, 정말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는 칙릿 소설이라 하겠습니다. 플롯 부분을 빼고 보자면, 작가의 개성이 강하게 드러나서 읽는 맛도 쏠쏠하고요. 독일인 혹은 독일 소설에 대한 선입견도 다시 한번 부스러졌네요. 역시 독일인이라고 내내 무뚝뚝하기만 할리는 없겠죠? 깜찍한 여주인공의 좌충우돌 우당탕 모험담을 즐길 수 있는 소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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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그림자의 춤
앨리스 먼로 지음, 곽명단 옮김 / 뿔(웅진)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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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여성 작가들은 저와 코드가 좀 맞나 봅니다. 어릴 적에는 루시 모드 몽고메리의 '빨강머리 앤'에 푹 빠졌었고 뒤이어 가브리엘 루아의 '내 생애의 아이들'과 '전지전능한 할머니가 죽었다'를 인상깊게 읽었었습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마가렛 애트우드의 강렬한 작품에 반했고 말입니다. 그러다가 올해 노벨상 수상을 계기로 앨리스 먼로라는 작가를 알게 되었는데요, 이 작가도 캐나다 여성 작가지 뭡니까~ '미움 우정 구애 사랑 결혼'과 인상깊은 첫만남을 가진 후 두번째로 보게 된 책이 '행복한 그림자의 춤'입니다. 마가렛 애트우드야 다소 색깔이 다릅니다만, 나머지 작가들은 제법 공통점이 많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그려내면서 그 속에서 소박하고 고집있게 삶의 진리를 탐구해내고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지요?



'행복한 그림자의 춤'을 읽어가면서 다소 이상한 점을 느낄 수 있었는데요, '미움 우정 구애 사랑 결혼'과 분위기가 상당히 다르다는 점이었습니다. '행복한...'에 실린 단편들이 간결하면서도 가볍고 경쾌한데 비해, '미움 우정..'의 작품들은 생에 대해서 좀 더 진중하면서도 다층적인 태도를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출간일이 '미움 우정..'쪽이 빠른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왜 더 후기의 작품처럼 느껴질까 의아했는데요, 혹시나 해서 찾아보니 '미움 우정..'이 국내 출간일만 빠른 것이고, 실제 쓰여진 것은 '행복한.,'이 1968년(하물며 처녀작이라고 하네요), '미움 우정...'이 2001년으로, 무려 30년이나 늦게 출간된 작품이었습니다! 작품의 색깔이 다른 것은 당연한 일이었던 셈이네요. 더하여 이렇게 오랫동안 작품을 계속 내왔다니 대단하다는 생각도 하게 되는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자의 공통점도 적지 않습니다. 일단 주로 여성 화자를 주인공으로 삼고 있고요, 그에 따른 시각으로 삶의 이면에서 평범하면서도 흔들림없는 진실을 드러내고자 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겠습니다. 서사보다는 묘사가 부각되고, 특히 생동감 있는 인물의 심리상태를 그려내는데 있어 탁월한 면이 있다는 점도 그렇고요. 다만 '행복한 그림자의 춤'은 화자가 작가인 것처럼 느껴지는 고백적인 작품들이 많았던 것 같네요. 예컨대 '작업실'은 여성 작가를 화자로 삼고, 어이없는 인물과의 불쾌한 만남을 냉소적으로 그려내고 있는데요, 왠지 작가의 경험에 기반한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는 면이 있더군요. 가장 인상적인 작품은 '떠돌뱅이 회사의 카우보이'와 (역시나) '행복한 그림자의 춤'이었습니다. 비참하고 구태한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이는 아버지와 노선생의 모습을 그려내면서도 결국에는 그 속에서 따뜻한 애정과 고귀한 의지를 발견해내는 과정은, 어느 나라의 누구에게든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는 내용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작품의 성격이나 내용을 볼 때 좀 더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는 것은 '미움 우정..'보다는 '행복한 그림자의 춤' 쪽인 듯 합니다. 작가와의 첫만남 용으로는 후자 쪽이 더 적절했겠다 싶은 면이 있네요. '미움 우정..'은 단편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무게감이 있어, 부분부분 만만치 않다는 느낌을 받았었거든요. (사실 번역도 '미움 우정...'은 뭔가 수상쩍게 느껴지는 부분이 적지 않았던데 비해서 '행복한..'은 더 매끈하고 자연스러웠다는 느낌입니다.) 오랫동안 꾸준히 작품활동을 해온 작가의 경우, 작품의 변천사를 캐보는 재미도 쏠쏠하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제 가장 신작인 '디어 라이프'에 도전해볼까 하는데요, 작가의 또다른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지 벌써 궁금해지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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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브 데이즈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조동섭 옮김 / 밝은세상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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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글라스 케네디도 상당히 다작하는 작가인 듯하네요. 어느샌가 신작이 출간되었습니다. [리빙 더 월드]가 4월, [더 잡]이 8월에 출시되었으니, 거의 3, 4개월에 한권씩 책이 출간되고 있네요. (설마 출간일만 그렇고 예전에 쓰여진 책이 몰아서 출간되는 것은 아니겠지요?^^;) [더 잡]은 못읽었고 [리빙 더 월드]는 읽어보았는데요, 실은 [리빙 더 월드]가 꽤 실망스러운 완성도였기 때문에 [더 잡]을 건너뛰었던 것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이렇다보니 아무래도 다작이 질 저하의 원인이 아닌가 의심스러운 눈으로 보게 되는 것이 사실이더라고요. 좀 쉬면서 변모를 꾀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달까요?

아무튼 이거야 저 혼자의 생각이겠고요, 그렇게 걱정하면서 읽기 시작한 [파이브 데이즈]는 다행스럽게도 [리빙 더 월드]보다는 한결 볼만한 책이었습니다. 사실 기본 설정은 영화 같은 데서 정말 자주 보게 되는 것입니다. 일상에 짓눌려 삶의 감각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에 힘겨워하는 한 여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남편과의 냉랭해진 관계가 그것을 더욱 힘겹게 만들고 있지요. 어느날 출장으로 5일간 가족을 떠나있게 되는데요, 거기서 한 남자를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 남자와의 만남이 정체되어 있던 삶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오게 된다는 것이지요.



소재도 그렇지만 이야기의 전개에 있어서도 이번 작품은 상당히 상투적인 면이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더글라스 케네디 소설의 상징이라고 할 '반전'이 등장하지 않고 있는 것이지요! 그만큼 이번 소설은 기법에 의존하는 대신 삶의 권태와 시련을 돌이켜보면서 진정한 '나'는 무엇인가를 고민해보자는 작가의 의도가 보입니다. 전작이 무리한 반전으로 인해서 망가진 면이 있는만큼 그것에 대해 다소 반성했던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한데요, 아무튼 무리하지 않는 스토리텔링 덕분에 살아난 부분이 적지 않았던 것 같다고 생각해봅니다. 결론에서 던지는 메시지도 사실 마음을 움직일만한 것은 아닙니다만, 저는 담담히 끌어가는 이야기 안에서 제시되는 다양한 인물들의 삶의 방식이나 고뇌의 양상에 오히려 마음이 끌렸습니다. 우리와 아주 다른 문화 속에서 살아가면서도 이렇게 같은 문제로 고민하고 그것을 극복하며 살아가려 하는 사람들의 노력이 신기하도록 우리의 그것과 닮아 보였거든요. 더하여 미국, 그것도 특정 지역에 한정하여 강하게 묘사되는 지역의 특징있는 모습들도 읽어가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주인공의 말과 인물들의 대화를 통해서 그려지는 이러한 모습들이 소설에서 가장 흥미롭게 읽히는 부분이었다고 이야기하면 조금은 본말전도려나요?

크게 어렵지 않으면서 흥미진진한 주인공의 여정에 빠져들 수 있다는 점이 더글라스 케네디의 소설이 가지는 장점이 아닌가 했는데요, 새로운 전략을 취한 이 소설은 따라서 생소하게 느껴지는 면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작가가 조금은 다른 모습을 보여주려 한 것이라는 점, 그리고 그런 변모가 나쁘지 않았다는 점에서 저는 이번 소설이 만족스럽게 느껴졌습니다. 과연 다음 작품에서는 어떠한 선택을 할지 기대가 되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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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움, 우정, 구애, 사랑, 결혼
앨리스 먼로 지음, 서정은 옮김 / 뿔(웅진)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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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이 되니 이런저런 수상 소식이 들려오는데요, 올해의 노벨문학상 수상자는 '앨리스 먼로'라는 낯선 작가더군요. 사실 저만 몰랐지 작가분께서 나이가 있으신만큼 이미 많은 작품을 내셨고, 대표적인 작품도 국내에서 꾸준히 번역출간되었기 때문에 아는 분들은 다 아는 모양입니다만.. 수상자라는 점을 제외하고도 이 작가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는 요소가 있었는데요, 제가 개인적으로 캐나다 여성작가에 대한 애정이 있다는 점입니다. 어릴 적에 만났던 루시 모드 몽고메리를 시작으로 가브리엘 루아, 마가렛 애트우드 모두 인상적인 작품으로 제게 깊은 감동을 안겨주었거든요. 앨리스 먼로의 경우 단편작가라고 하니 가브리엘 루아를 생각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책의 소개를 보니 그녀는 미국작가 오 헨리의 작풍을 이어받았다고 평가받는 모양입니다.(제가 어릴 적에 또 오 헨리 단편집을 아주 좋아했다는 점^^) 단편이라는 점을 차치하고라도 생의 페이소스를 담아낸 결말의 반전이 공통적이라서일 것입니다. 책의 제목과 같은 단편인 '미움 우정 구애 사랑 결혼'이 그런 특징을 가장 잘 드러내고 있지 않았나 생각되네요. 가정부 일을 해온 조해너라는 수수한 여성이 2명의 소녀가 꾸민 악의없는 장난에 엮여져 큰 곤란을 겪을 뻔 했으나 예상치 못한 우연으로 전혀 다른 결말로 향해가는 과정은 확실히 오 헨리 소설의 아이러니를 연상시킵니다. 하지만 앨리스 먼로의 경우, 인물의 복잡한 내면을 인물 물 자신의 시각으로 세세하게 묘사하는 데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는 점에서 오 헨리와 아주 다르게 느껴집니다. 작가는 인간이 얼마나 복잡하고 섬세한 존재인지는 인생 본연의 아이러니를 배경으로 할 때 더 잘 드러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어요.

이것은 '곰이 산을 넘어오다'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느샌가 영화화도 되었다는 이 작품은, 치매를 앓는 아내를 요양소에 맡긴 한 남자의 심리를 그려냅니다. 젊을 적 저지른 잘못으로 인해 아내에게 지고 있는 죄책감과 더불어 병이 깊어지는 아내의 행동으로 무력감과 배신감과 서글픔을 느끼게 되는 모습이 묵직하고 담담하게 묘사되고 있는 것이죠. 작품의 말미에서 그가 내리는 선택은 그것의 논리적 이유 때문이 아니라, 그러한 선택을 하게 만드는 마음의 복잡다단함 때문에 공감하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사랑 때문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이기심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 맞을 결정입니다만 그것에 대해 누가 뭐라고 할 수 있을지요... 묵직하게 여러가지 화두를 던져주는 작품이었네요.(다만 이리저리 궁리해봐도 '곰이 산을 넘어오다'라는 제목의 의미는 알 도리가 없네요. 좀 더 고민을 해봐야 되려나요?)



단편 특유의 속도감을 느끼기 힘든 느긋한 전개나 수많은 심리묘사와 부거운 분위기 때문에, 묘사보다 서사를 좋아하는 분들게는 조금 답답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하지만 서사에 대한 흥미를 조금씩 잃어가는 저에게는 소박하고 잔잔하게 그려내는 여러 인물들의 모습은 반갑고 친밀하게만 느껴지더군요. 가브리엘 루아의 소설은 제가 너무 좋아했고 지금도 사랑하는 작품들인데요, 이제 그 옆에 앨리스 먼로의 소설을 꽂아두려 합니다. 가끔씩 빼들고 다시 음미할 수 있는 작가를 만나게 된 듯하여 기쁘기만 하네요.

덧. 번역은 흐름상 크게 걸리는 부분은 없었습니다만, 의역을 하면서 의미가 변질되었다는 인상을 받게 되는 부분이 적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이 작품의 색깔을 생각해보면 그런 의역은 아쉽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네요. 출간된지 제법 시간이 흐른 책으로 알고 있는데요, 이번 기회에 손봐서 개정하여 다시 낸다면 좋지 않을까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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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리만자로의 눈 - 전2권 (한글판 + 영문판) 더클래식 세계문학 컬렉션 (한글판 + 영문판) 43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구자언 옮김 / 더클래식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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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서사적인 작품도 좋아합니다만, 일반인이 보기 힘든 부분을 짚어내어 일반인이 언어화할 수 없는 것을 묘사해내는 작품을 좋아하는 편입니다. 그러다보니 선이 굵은 작품은 그닥 읽지 않는 편이었는데요, 헤밍웨이의 작품에 대해서도 그런 이미지가 있어서인지 그다지 읽어볼 생각을 하지 않았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영화화된 것은 얼핏 보았어도, 소설 중에서는 '노인과 바다'와 '킬리만자로의 눈' 정도만 읽어보았더라고요. 그것도 어릴 적에 말입니다. 그러다가 근래 코맥 맥카시의 선굵은 작품을 읽고 의외로 큰 감명을 받아서인지 헤밍웨이에 대해서 다시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코맥 맥카시가 헤밍웨이의 적자로 불리고 있기 때문이지요. 그래도 장편은 좀 부담스럽고 해서 단편 쪽에 먼저 손이 가네요. 사실 단편도 길이에 차이가 있게 마련인데요, 헤밍웨이의 단편은 절대적 길이조차도 짧다는 느낌이네요. 막상 작품 속으로 들어가면 문장도, 표현도 당연하다는 듯이 짧고 간결하고요. 더클래식에서 나온 이 책에는 5편의 작품이 실려있는데, 부담없다는 말이 딱 맞을만큼 금방 읽을 수 있는 분량이었습니다.



소개된 작품 중에서는 아무래도 읽어본 적이 있었고 유명하기도 한 '킬리만자로의 눈'을 자세히 살펴보게 되더군요. 결혼으로 벼락출세하고 그 과정에서 꿈을 저버린 한 남자가 불의의 사고를 겪고 서서히 죽어가면서, 자신의 인생과 다가오는 죽음을 그려나가는 내용입니다만, 사실 줄거리가 중요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사실 줄거리로 설명되는 소설은 문학작품이라고 불릴 수도 없을 것이겠지요.) 그 간결함의 와중에 죽음을 맞이하는 인물의 심리적 변화를 설득력있고 사실적으로 그려내는 솜씨는 분명 눈길을 끌만합니다. 우연인지 아니면 의도적인 선택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이 단편집에 실린 작품들은 '킬리만자로의 표범' 외에도 모두 인물의 고통과 죽음을 거칠게 담아내고 있더군요. 고독과 허무함과 넘쳐나고 있는 것이지요. 이런 점 때문에 헤밍웨이의 작품이 '남성적'이라고 여겨지는 것일까요? 하지만 자신의 내면을 돌이켜보는 인물들의 연약함, 그리고 그것을 스케치해내는 작가의 표현은 '여성적'이라고 보이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애초에 남성적, 여성적이라는 분류가 가지는 무차별성을 생각해보지 않았던 저의 선입견이 잘못이었을지도 모르겠네요. 새롭게 헤밍웨이의 작품을 탐독해가는 계기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 한글판과 짝지어져 있는 영문판은 아직 읽어가는 중입니다만 제 실력으로는 사실 어휘가 제법 까다롭더군요. 다행히 단편이기도 하고 번역본을 본 직후라 내용이 어느 정도 기억이 나서 쉬엄쉬엄 읽어가고 있는 중입니다. 더클래식 컬렉션은 작품의 선택이나 선택된 작품의 분량을 보았을 때 분명 영어를 공부하는 사람들을 어느정도 대상으로 노렸다는 느낌이 드네요. 비록 영어에 능숙하지는 못합니다만, 번역이 넘지 못하는 언어의 간극을 엿보는 재미를 맛본 적 있는 저로써는 좀 더 관심을 가지게 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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