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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 신부 1 ㅣ 민음사 모던 클래식 44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이은선 옮김 / 민음사 / 2011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민음사의 새로운 도전, 모던 클래식 시리즈의 신간 '도둑 신부'입니다. 모던 클래식 시리즈는 일단 청결하고 감각적인(?) 표지 디자인이 매혹적인데요, '도둑 신부'도 하얀 표지를 배경으로 모피옷을 입은 흑의 미녀가 대비되어 강렬한 인상을 줍니다.
이 소설은 '도둑 신랑'이라는 서양 동화에서 모티브를 따왔다고 합니다. 동화를 좋아했던 편이라 어느 정도 이름난 동화는 다 안다고 생각했는데, 이 동화만은 낯설더군요. 인터넷을 검색해봤더니 그림 형제의 동화였더군요. 요약하자면 신부를 맞아 삶아먹는(!) 도둑떼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림 형제다운 잔혹동화라 하겠는데요, 내용이 내용인지라 어릴 적 읽어보지 못했던 모양입니다. 소설 속에서는 주인공 중 한명인 '로즈'의 쌍둥이 딸들이 모든 동화의 인물들을 여성으로 바꾸어버리는 버릇이 있어, 이 동화를 '도둑 신랑'에서 '도둑 신부'로 바꾸어버리는 장면이 나오지요. 이 소설이 페미니즘 소설의 성격을 가질 것이라는 예감이 들지요?
옆길로 잠시 빠져서, 이 책 외에 최근에 읽은 모던 클래식 시리즈 중 하나가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였습니다. 동성애자 저자가 쓴 소설로 흥미진진한 페미니즘 소설인데요, '도둑 신부'를 읽게 되면서 연달아 페미니즘 소설을 읽은 셈이 되었네요. 살펴보니 지금까지 출간된 모던 클래식 시리즈에서는 여성 작가의 소설 비중이 상당히 높은 편인 듯 합니다. 보통 고전 소설 전집을 보면 남녀 작가 비율이 10대 1이나 될까 싶다는 점을 감안해보면 의외랄 수도 있겠는데요, 그만큼 여성 작가진의 비약이 컸다는 이야기도 되겠고 모던 클래식 시리즈가 추구하는 경향성이 엿보인다고 할 수도 있으려나요?
사실 저 역시 '페미니즘'보다는 '신사도'가 더 익숙한 고리타분한 남자지만, 근래 출간되는 페미니즘 소설을 읽다 보면 의외의 인상을 받게 되곤 합니다. 그간 페미니즘 하면 여성신분상승, 여성들의 공격과 남성들의 방어, 평등을 위한 역차별, 골통 남자와 알파걸 등 상당히 공격적인 경향을 떠올리게 되곤 했습니다. 학창시절에도 교육적 차원에서 페미니즘 소설을 읽은 적이 있었습니다만('이갈리아의 딸들'이라는 소설이었죠), 강력한 메시지에도 불구하고 그 노골성 때문에 오히려 좋지 못한 인상을 받았던 것도 사실이었구요.
개인적으로 좋은 소설은 '인생에 대한 진리'를 이야기해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런데 어째선지 그간 읽은 페미니즘 소설에서는 핍박 받아온 여성과 핍박하는 남성의 '외형적인 양상'만 그려질 뿐, 그 여성과 남성이 '어쩔 수 없이' 떠맡아 삶을 살아가는 와중에 얻게 되는 개인적인 삶의 진리를 그려내고자 하는 노력은 보이지 않았던 것이죠. 그런데 이번 '도둑 신부'나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에서는 그러한 노력이 강하게 드러나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일반화된 '남성'과 '여성'이 아니라 한 남성, 한 여성의 삶의 양상에 눈을 돌리고 있다는 점은 그간 페미니즘에 대해 아쉽게 여겼던 부분을 어느 정도 해소해주었다는 기분이 듭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이 소설에서도 남성이 등장하는 부분은 상당히 축소되어 있다는 인상이기는 하네요. 아버지들이나 남편들이 이 소설의 주인공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만, 그것은 주인공들이 관습적으로, 제도적으로 내면화한 남성들의 양상으로써 하나의 상징이 되고 있을 뿐입니다. 그 남성들이 옮다 그르다는 것과는 별개의 차원에서 그 남성들을 '받아들이는' 여성의 모습에 돋보기를 들이대고 있는 것이죠.이 소설이 여성이 스스로의 내면을 돌이켜보고 한 인간으로써 자신감을 가지기를, 그리고 굳은 자아를 형성해가기를 바라는 작가의 의지를 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네요.
세 여인의 삶을 굉장히 사실적이고 세밀하게 그려냈고 그 세 여성의 결핍과 욕망, 의지의 표상으로써 아주 인상적인 팜므 파탈 '지니아'가 자리잡고 있습니다만, 의외로 이 인물들은 하나같이 사실주의적이라기보다 상징적인 것으로 느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작가의 의지가 너무나 강하게 작품 세계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일까요? 덕분에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나면 의외랄 정도로 명쾌하고 상쾌한 느낌을 받게 됩니다. 사실 클래식 소설을 읽고 그런 느낌을 받는 경우는 드물잖아요? 이 감상의 정체는 조금 더 돌이켜 곱씹어봐야 될 것 같기도 하네요.
지금까지 읽은 모던 클래식 시리즈는 하나같이 즉각적인 재미의 수치가 상당히 높았다는 느낌이네요. '도둑 신부'의 경우, 에쿠니 가오리나 제인 오스틴을 연상하게 되는 부분도 적지 않았으니까요. 클래식 소설의 상당수는 초독 과정에서 한걸음 한걸음마다 재미를 느끼기 어려울 뿐더러 피상적인 의미조차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가 적잖았던 것 같거든요. 인내심을 가지고 책을 끝마쳤을 때, 혹은 무언가 실마리를 잡고 몇 번 다시 읽었을 때 감동과 전율을 느끼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죠. 그런데 모던 클래식 시리즈는 읽는 과정 자체가 즐거워서 다른 책들도 쉽사리 접근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게 만드네요. 몇 권 안 읽었는데 너무 섣부른 판단이려나요? 그럼 앞으로 몇 권 더 읽어보고 다시 생각해보아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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