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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포스 신화 - 부조리에 관한 시론
알베르 카뮈 지음, 오영민 옮김 / 연암서가 / 2014년 1월
평점 :
너무 유명해서 핵심적인 내용은 어느 정도 주워섬길 수 있고, 그러다보니 왠지 읽어본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잊고 지내다가,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제대로 읽어보게 되는 책이 제법 많지요. 이번에 그 목록에 추가된 책이 '시시포스 신화'입니다. 사실 카뮈의 오라가 더해지지 않더라도 시시포스 신화는 그 자체로 매력적인 이야기입니다. 그것에 카뮈가 실존적 해석을 덧붙임으로 인해서 시시포스는 '인간' 그 자체가 되었지요. 인간을 가장 냉철하게 바라보는, 그렇기에 역설적으로 인간을 가장 고귀한 존재로 만드는 것이 실존주의가 이닌가 하는데요, 그 핵이 되는 개념 중의 하나인 '부조리'를 조각해낸 책이 바로 이 책이죠.
그다지 분량이 많은 책이 아님은 알고 있었습니다만, 이 책이 철학서라기보다 에세이에 가깝다는 것은 지금에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사실 의외랄 정도로 복잡한 철학적 개념어가 등장하지 않고 있더군요. 때문에 읽는 것 자체는 할만한 책이었습니다. 다만 그것이 머릿속으로 파고들어 소화가 되는가는 별개의 이야기라 하겠군요. 얇지만 절대 만만치 않은 책이었지요. 그런 책을 만났을 때 제가 대처하는 방법은 일단 무조건 죽 읽어내버리고 보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어느 정도 책의 방향성만큼은 더듬어볼 수 있기 때문에 다시 한번 읽을 때 한결 편해지더라고요. 때문에 그렇게 일독을 마친 지금은 전형적인 장님 코끼리 다리 만지기 상태라고 할 수 있겠네요.
이 책의 시작은 알려진대로 강렬하고 매혹적입니다.
"참으로 진지한 철학적 문제는 오직 하나, 바로 자살이다."
부조리에서 살아가는 것을 논하기에 앞서 삶 자체가 필요한가라는 문제를 먼저 던져놓고 시작하는 것이죠. 그리고 은근슬쩍 이전의 철학에 대해 냉소를 던지고는-카뮈는 이 책 곳곳에서 은근히 많은 유머를 구사합니다. 다만 유머처럼 느껴지지 않는 것이 많아서 문제지만...^^;-다양한 방식으로 가능한 대답을 더듬어봅니다. 물론 그 끝에서는 결국 당위론에 기대고 있습니다만 그 사고의 과정이 상당히 공감되는 것들로 채워져있는 것은 사실이네요. 좀 더 삶에 가까운 곳에서 사유하고 있는 철학이라는 느낌이 들었다고 할까요? 이어지는 과정에서는 부조리의 실체를 그려내는 과정이 이어집니다. 사실 이 과정은 절대적 진리를 찾아가는 과정이라기보다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는 과정처럼 느껴진다는 것이 제 개인적인 감상이기는 했습니다. 이래서 '부조리'이다라기보다 부조리이므로 '이러하다'에 가까운 방식 같거든요. 니체의 철학이 여러 방식으로 다양하게 변주되고 있는 것 같다는 인상이 들기도 했습니다.
부조리를 체화한 영웅상으로써 책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시시포스의 이야기는 역시 인상적입니다만, 책의 중간에서 또다른 화신으로써 돈 후안이 등장한다는 것은 몰랐었네요. 돈 후안의 허세와 조롱의 '죄' 그리고 죽음은 삶에 대한 투쟁으로써 시시포스의 그것만큼이나 무게있게 해석됩니다. 그가 죄악의 쾌락과 뒤이은 고통 및 죽음 모두를 삶의 '규칙'으로써 받아들였고 그것은 시시포스가 그의 끝없는 형벌을 받아들인 것과 같은 무게인 것이라는 것이죠. 익숙했던 시시포스 신화와는 또다른 화두로써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만듭니다.
앞으로도 깊이 곱씹어보아야 할 화두들이 많았습니다만, 새삼 인간의 삶이란 것이 얼마나 이해하기 어려운 것인가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이해에 앞서 삶을 제대로 보아내는 것조차도 너무 어렵다는 생각이 듭니다. 보이지도 않는 삶에 대해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문제죠. 때문에 부조리라는 개념이 인간 누구에게나 가슴 속에 파고드는 화살처럼 다가올 수 있는 것이 아니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