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새끼손가락은 수식으로 연결되어 있다 - W-novel
사쿠라마치 하루 지음, 구수영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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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그런 셈이지. 그래도 괜찮아. 내가 너를 선택한 데는 확실한 이유가 있으니까 말이야. 아까도 말했지만 너는 훌륭한 숫자를 가진 사람이야. 너라는 사람은 잊더라도 친화수는 못 잊을 거야. -p15


내가 수학을 좋아해서 그런걸까? 이 책의 제목을 보는 순간, 줄거리도 읽어보지 않고 '이 책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목으로나, 표지로나, 일본 소설의 느낌이 확 났다. <우리의 새끼손가락은 수식으로 연결되어 있다>은 평소 믿고 보는 위즈덤하우스 출판사에서 처음으로 출간한 라이트노벨이다. 나는 이 책을 통해 라이트노벨을 처음으로 접해봤는데, 그동안 읽어왔던 소설보다 확실히 가벼운 소설이라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난 후의 울림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기억은 심장에도 머물러. 인간의 마음은 문자 그대로 여기에 있으니까. -p32


<우리의 새끼손가락은 수식으로 연결되어 있다>의 이야기는 고등학교 교실에서 시작된다. 소설 속 '나'는 친구를 만들지 않고 혼자 지낸다. 그래도 불편하다거나 친구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기 때문에 학교 생활은 그럭저럭 할만했다. 소년의 반에는 그런 소년과 비슷하게 혼자 지내는 여학생이 있다. 소녀의 이름은 '아키야마 아스나'. 소녀는 학교에서 수학 천재로 소문이 나 있는 학생이다. 누구에게도 관심이 없던 소녀가 어느 오후 소년에게 한 마디를 건넨다. "전향성 건망증.".


그래서 내가 수학을 좋아하는 거야. 현실 세계는 복잡하고 괴기스럽지만 숫자는 누가 풀어도 같은 답이 나오니까. -p80


소녀가 말한 전향성 건망증은 한 달을 주기로 기억이 리셋되는 병이다. 이런 병을 앓고 있기 때문에 소녀는 친구를 만들 수 없었다. 하지만 소년에게는 "친구가 되어줘."라고 말한다. 친구가 되고 싶은 이유는 소년이 갖고 있는 '친화수' 때문이다. 소년의 핸드폰 번호가 친화수라는 이유로 친구가 되고 싶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소녀는 소년 자체보다는 소년이 갖고 있는 숫자가 좋은 것이다. 조금은 이상한 이유이지만, 친구가 되지 않을 이유도 없기 때문에 소년과 소녀는 서로 하나 밖에 없는 친구가 된다.


처음에는 아니라는 논리를 펼친 바 있지만, 나는 그녀의 말대로 2가 고독한 숫자라고 통감하게 됐다.

홀로 있었을 때, 나는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품은 적이 없었다.

다만 그녀를 알게 된 후 고독을 알게 됐다.

1이 2가 된 순간, 고고함이 고독으로 바뀌었다.

사람과 접함으로써 혼자 있는 것은 외로운 것이란 사실을 깨닫고 말았다. -p99


소녀는 리셋되는 기억들을 새로운 달에 알기 위해 매일 일기를 쓴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달이 와도 소년과 계속 친구가 될 수 있었다. 이런 것도 이제 어느 정도 익숙해졌지만, 문제가 하나 있었다. 기억을 잃는 주기가 1일씩 짧아지고 있다는 것. 이렇게 계속 지내다보면 어느 날부터는 단 하루도 기억을 유지하지 못한다. 기억을 잃는 소녀 때문에 더 자세히 기억을 해야하는 소년. 소년은 소녀와 시간을 보낼수록 소녀와의 추억이 쌓이고, 우정에서 점차 사랑의 감정을 느낀다.


내가 너를 잊더라도 너는 절대로 나를 잊지 마. 혹 내 기억이 너를 잃는다 해도, 이 마음이 너를 기억하고 있으니까. -p204


드라마, 영화를 보면 눈물 연기를 하는 배우들 때문에 나 또한 같이 눈물을 흘릴 때가 많다. 반면 책은 글이기 때문에 영상보다는 감정이입이 덜 된다. 그래서 내가 책을 읽으면서 눈물을 흘린 적은 딱 한 번 있었는데, 이 책을 읽고 두 번이 되었다. 초반에는 소년과 소녀가 나누는 대화를 보며 그저 가벼운 미소만 지어졌는데, 후반에 가슴을 쿵하고 울리는 이야기가 전개되어 소설 속 소년이 받는 위로를 나도 같이 받았다. 쌀쌀한 가을과 정말 잘 어울리는 예쁜 소설 <우리의 새끼손가락은 수식으로 연결되어 있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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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 나를 위한 지식 플러스 - 맥덕기자의 맥주, 어디까지 마셔봤니? 나를 위한 지식 플러스
심현희 지음 / 넥서스BOOKS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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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제일 즐겨 마시는 술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나는 '맥주!'라고 바로 대답할 것이다. 대학생일 때는 소주, 맥주, 막걸리 등 따지지 않고 거의 매일 이것저것 마셨었다. 그런데 대학교를 졸업한 후로는 대학생일 때처럼 친구들과의 술자리도 많이 없고, 밖에서 마시기 보다는 집에서 마시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가볍게 한 잔 마시기 좋은 맥주를 즐겨 마시고 있다. 요즘은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마시고 있는 맥주. 마실 줄만 알지, 사실 맥주에 대해서 아는 건 거의 없다. 그래서 한 번쯤은 맥주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알아보고 싶었는데, 맥주에 관한 좋은 책이 나와서 읽어 보게 됐다.


맥주도 커피처럼 구운 정도에 따라 색깔이 달라진다.


<맥주 나를 위한 지식 플러스>는 '맥덕기자'라는 별칭을 갖고 있는 심현희 기자가 쓴 책이다. 이 책에는 맥주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부터 특정 맥주에 얽힌 비하인드 스토리까지 더한, 알찬 맥주 책이다. 글만 적혀 있는 게 아니라 귀여운 그림들과 다양한 사진들도 함께 있어서 내용을 이해하는 데 좀 더 수월했고 책을 읽는데 지루하지 않았다.


맥덕기자의 추천맥주와 함께 책을 읽으면 더욱 좋다.


요즘은 맥주 한 잔과 함께 책을 읽는 분들도 참 많은데, 이 책이 그렇게 하기 딱 좋은 책이 아닐까 싶다. 이 책 속에는 맥덕기자의 추천 맥주가 여러 개 있다. 이 추천 맥주들은 심현희 기자가 읽으면서 마실 수 있도록 국내 마트나 펍 등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으로 정했다고 하니, 본격적으로 책을 읽기 전에 맥주 하나씩 미리 준비해놓고 읽으면 좋을 것 같다.


대학생일 때 학교 앞 자주 가던 술집 입구에 옥토버페스트 사진이 있던 게 생각난다.


'맥주는 여름과 어울리는 술'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다양한 맥주 스타일을 접해보지 못하고 차갑게 마시는 맥주에 익숙하기 때문이라고 심현희 기자는 말한다. 더불어 심현희 기자는 가을과 겨울에 어울리는 맥주들도 소개해준다. 짧은 가을이 얼른 지나가기 전에 맥덕기자의 추천 맥주를 꼭 마셔봐야겠다.


맥주의 종류도 이렇게나 많다니... 앞으로 마셔봐야할 맥주가 참 많다.


맥주를 마시는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라거'와 '에일'. 나는 사실 이 둘의 차이점을 잘 몰랐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 차이점을 알게 되었고, 앞으로 맥주를 마시러 가게 되면 골라 마셔보고 그 차이점을 직접 느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라거에도 종류가 여러 가지이고, 에일에도 종류가 여러 가지이니 세상에 못 마셔본 맥주가 얼마나 되는건지 정말 가늠이 안된다.


나는 매번 그냥 맥주만 마시거나 견과류, 치즈 정도만 함께 먹었었는데...


'맥주'하면 생각나는 안주는 무엇일까? 우리나라 사람들 대부분은 '치킨'이라고 대답할 것 같은데, 나는 치킨을 별로 좋아하지 않고 피자를 좋아해서 피자와 함께 마신다. 간단한 안주와 함께 먹고 싶을 때는 치즈나 견과류와 함께 마시고, 사실 많은 경우는 맥주만 마신다. 맥주는 다른 술과 다르게 맥주 하나만 마셔도 좋지 않은가. 이렇게 맥주의 안주는 한정되어 있다고 생각했는데, 심현희 기자는 맥주의 종류에 따라 그와 어울리는 다양한 안주를 추천한다. 정해진 답은 없지만 페어링 원칙 3가지가 있다고 하니 이 원칙만 알아도 맥주를 더욱 맛있게 마실 수 있을 것 같다.


우리 집에는 '윗' 밖에 없는데...


다른 술보다도 맥주를 즐겨 마시는 이유 중에는 편리함도 있다. 캔맥주를 사놓고 마시고 싶을 때 캔만 따면 되기 때문이다. 보통 혼자 마실 때는 캔째로, 가족과 함께 마실 때는 잔에 따라 마신다. 우리 집에는 맥주를 살 때 같이 묶여 있었던 잔이 있는데, 그 모양이 '윗' 모양이다. 그냥 아무 잔에 담아서 마시면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맥주의 종류만큼 잔 모양도 참 다양하다. 특히 스타일별로 맛과 특징이 큰 차이가 나는 크래프트맥주의 경우 적합한 잔에 담아 마셔야 해당 맥주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고 하니 맥주를 마실 때 참고하면 좋을 것 같다.


요즘 서울은 자주 안 가는데 수원에도 가볼 만한 맥주 펍이 있을까?


'백 번 읽는 것보다 한 번 맛 보는 것이 낫다'. 책을 읽으며 이론을 습득했다면 이제는 실전이다. <맥주 나를 위한 지식 플러스>의 뒷 부분에는 부록으로 '서울의 가볼 만한 맥주 펍'과 '맥덕기자가 만난 맥주덕후' 인터뷰가 있다. '서울의 가볼 만한 맥주 펍'은 사진과 함께 적어 놓았는데 사진만 보면 '이런 곳이 서울에 있다고?' 할 만큼 이국적인 분위기가 느껴지는 곳이 많아서 놀랐다. 다음에 친구와 함께 가봐야겠다.



가끔 TV 프로그램에서 맥주 축제의 모습을 본다. '언젠가 저 축제는 꼭 가 봐야지'라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로 활기찬 모습에 계속 반하게 되는 다양한 맥주 축제들. 지금 갈 수 없다면 맥덕기자가 <맥주 나를 위한 지식 플러스>에서 추천해 준 맥주를 집에서 마시며 혼자 즐기는 것도 좋을 것 같고, 마지막에 추천해 준 서울의 맥주 펍에 가서 제대로 된 맥주들을 마시며 축제의 느낌을 조금이라도 느껴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맥주를 더욱 더 맛있게, 제대로 마시고 싶으신 분들은 이 책, 꼭 놓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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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상 위에 차려진 역사 한 숟갈 - 역사 속 한 끼 식사로 만나는 음식문화사의 모든 것
박현진 지음, 오현숙 그림 / 책들의정원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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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은 많이 들어왔고 항상 공감이 되는 말이다. 이 말은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처음 나온 표현으로, 지금은 역사에 국한하지 않고 다양한 분야에서 쓰이고 있다. <밥상 위에 차려진 역사 한 숟갈>을 읽고 나니 이 표현을 쓰고 싶다. '아는 만큼 맛있다'.


<밥상 위에 차려진 역사 한 숟갈>은 박현진 교수가 2015년부터 지금까지 조선일보에 연재한 인기 칼럼 <아하! 이 음식> 중에서 베스트 칼럼 45개를 엮은 음식문화사 책이다. 나는 역사에 많은 흥미를 갖고 있진 않지만, 우리가 평소에 쉽게 접하는 음식들에 담긴 역사는 많이 들어본 적이 없고, 알면 더 재밌고 맛있게 먹을 수 있을 것 같아 이 책에 관심이 갔다.


책을 펼쳐서 제일 먼저 읽게 되는 부분은 프롤로그. 이 책은 프롤로그에서부터 흥미로운 사실들이 적혀 있다.


일본에 가면 일본 사람들이 자부심을 느끼는 스시, 소바 그리고 낫토와 같은 음식이 있지만, 이들 식품들이 한국에서 전래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일본인들은 무척 놀랄 것이다. -프롤로그 中


또한 콩의 원산지(만주)이면서 바다에 접해 있는 우리나라가 두부를 만드는 방법을 처음 발견했다고 하면 일본인이나 중국인들 모두 놀라지만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프롤로그 中


일본인, 중국인들이 놀랄 사실들인데, 사실 나도 놀랐다. '우리나라하면 김치지!' 라는 얕은 생각만 갖고 있었다는 게 부끄럽기도 하고, '모르는 게 죄는 아니니까. 이 책 읽으면서 좀 더 두꺼운 지식 만들어 보지 뭐.' 하며 이 책에 더 흥미가 생기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밥상 위에 차려진 역사 한 숟갈>에는 한식뿐만 아니라 양식, 일식, 중식 등 다양한 음식을 다루고 있다. '내가 좋아하고 자주 먹는 음식부터 먼저 골라 읽어야지' 하며 목차를 폈는데, 무엇을 먼저 읽어야할지 모를 정도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좋아하고 자주 접할 음식들이 적혀 있어 어느 하나 뺄 수 없었다.


칼디라는 한 목동이 기르던 염소들이 어떤 빨간 열매를 먹은 후 춤을 추듯이 활달해지는 것을 관찰하고서 호기심에 그 열매를 먹었더니 피곤함이 없어지고 정신이 맑아지는 현상을 경험한 후 다른 사람들에게 전파했다고 한다. -p160


커피라는 말의 기원은 고대 아랍어 카와(qahwah)에서 터키어인 카브(kahve)가 된 후 지금의 커피(coffee)로 바뀌게 되었는데, 그 의미는 '이슬람의 와인'이라는 뜻이다. -p160


그 중 하루에 한 잔 이상은 꼭 마시는 커피에 대한 역사가 참 흥미로웠다. 커피의 효능을 처음 알게 된 사람이 에티오피아의 목동 칼디이고, '커피'라고 하면 왠지 유럽 느낌이 나는데 그 의미에는 '이슬람'이 들어가 있고, 최초의 커피하우스는 미국도, 유럽도 아닌 터키에서 문을 열었다는 사실까지. 문장 한 줄 한 줄이 신기했다.


이처럼 <밥상 위에 차려진 역사 한 숟갈>은 문장 한 줄도 그냥 스쳐 읽어 지나갈 수가 없다. 몰랐던 역사들을 새롭게 알 수 있고, 알았지만 얕게 알고 있었다면 더 깊은 역사를 알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내가 먹는 음식을 더 맛있게 먹고 싶다면 이 책을 꼭 한번 읽어봤으면 좋겠다. 시간의 흐름에 따른 역사를 배우는 것도 중요하고 좋지만, 이 책을 읽어보니 음식으로 배우는 역사도 색다르고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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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 뭘 사랑까지 하고 그래 - 인생, 힘 빼고 가볍게
김서령 지음 / 허밍버드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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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금 연애를 하고 있지 않아서 그런가? <에이, 뭘 사랑까지 하고 그래>는 제목을 본 순간부터 '이 책은 내가 공감할 이야기가 많을 것 같은데?' 생각하면서 끌린 책이다. 제목을 봤을 때 제일 먼저 든 생각은 '그러게, 무슨 사랑이냐. 나는 지금도, 아니 오히려 지금이 더 좋은데.'이다.


사랑이 전부인 것 같은 시절이 있었던 김서령 작가처럼 나도 한때는 '사랑 없이는 못살아'라며 연애를 해왔다. 활활 타오르며 지속될 것 같던 연애들은 끝이 났고, 잠시 소강 상태에 접어든 지금. 연애를 하지 않으면 삶이 재미없고 지루할 것만 같았는데 이게 웬걸? 지금이 훨씬 자유롭고 편하고 좋다. 물론 이별을 하고 나서 며칠간은 슬픔에 파묻혀 지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오히려 마음이 편해진다. 연애할 때 있었던 끊임없는 감정 소모가 없다는 점이 제일 큰 변화였다. 그로 인해 자연스럽게 크게 변화된 점이 또 한 가지가 있다면 '나에게 집중할 시간이 많아졌다'는 점. 김서령 작가가 이 책을 통해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도 결국 '사랑보다 내 삶에 집중하라'가 아닐까 싶다.


그럼 김서령 작가는 지금 싱글인가? 그건 아니다. 그녀는 아기 엄마가 되었다. 제목을 보고 이 사실을 알았을 때는 왠지 모를 배신감이 들었지만, 그녀의 글을 읽으며 그런 마음은 점차 사그라들었다. 그녀가 아기 엄마가 된 것도 사랑을 좇아서 된 게 아니라, 무엇보다 그녀 자신에게 집중을 한 결과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책 속에 김서령 작가와 그녀의 친구가 한 대화가 나온다.


"넌 1년에 고향 집을 몇 번이나 가?"

"두 번쯤? 설하고 추석."

내 대답에 곰곰 생각하던 친구가 말을 잇는다.

"그럼…… 이제 서른 번 정도 남았겠구나."

"뭐가?"

"엄마를 만날 일." -p77


나는 아직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지만 훗날을 생각하며 이 대화를 읽으니 마음이 쿵하는 느낌이 들었다. 사춘기도 아닌데 쌀쌀맞게 대했던 것들을 반성하며……. 한집에서 같이 지낼 때 좀 더 살갑게, 속 썩이지 않는 딸이 되어야겠다고, 부끄럽게도 20대 후반이 되어 새삼 다짐한다.


<에이, 뭘 사랑까지 하고 그래>는 산문집이다보니 김서령 작가의 일기장을 훔쳐보는 듯한 느낌이 들어 가볍다고 생각되는 책이 아니다. 딸로서, 아내로서, 엄마로서, 친구로서의 김서령 작가의 모습을 다 담고 있는 책이어서 그녀를 직접적으로 알지는 못해도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조금씩 알아갈 수 있는 재미있는 책이었다.


사랑이 꼭 연인과의 사랑만 있는 건 아니지 않은가. <에이, 뭘 사랑까지 하고 그래>는 사랑까지는 필요없는 것처럼 제목이 쿨하게 적혀있지만, 김서령 작가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며 오히려 '사랑을 하라'고, 이왕 하려는 사랑 '좀 더 폭 넓은 사랑을 하라'고 일러주는 것 같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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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사랑 계정
송은영 지음 / 지원출판사(知元)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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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이라고 하면 '설렘'이 가장 먼저 떠오르지만, '짝사랑' 이라고 하면 '외로움'이 떠오른다. '사랑'에 '짝'이라는 글자 하나 붙었을 뿐인데, 그 느낌은 완전히 다르다. 나도 짝사랑의 기억이 있다. 남들이 하는 짝사랑의 느낌도 나와 같을까? 짝사랑을 좋게 생각할까 아프게 생각할까? 그동안 '사랑', '이별'에 대한 에세이는 많이 읽어왔는데, 짝사랑을 주제로 한 에세이는 읽어본 적이 없어서 이 책의 내용이 더욱 궁금했다.


나의 소중한 사람들이 부담 없이 다가올 수 있는 쉬운 사람이면 좋겠어 내가. 우리가 서로 마음끼리 닿는 사이라면 그 사이에서 나는 늘 쉬운 사람으로 있을게. -p85


<짝사랑 계정>은 이 세상에서 '사랑'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자칭 짝사랑 마니아 송은영 작가가 짝사랑의 모든 순간을 모아 만든 에세이다. 짝사랑에 관한 책이라고 해서 꼭 남녀간의 사랑 이야기만을 담은 책은 아니다. 연인뿐만 아니라 친구들, 가족들 사이에서도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짝사랑. 송은영 작가는 이런 모든 짝사랑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송은영 작가는 누구나 한 번쯤 해봤을 짝사랑을 말하며 독자들의 공감을 끌어내고 따뜻한 위로를 건네준다.


이제 그는 떠나고 없다. 그런데 그의 취향, 아니 이젠 나의 취향이 된 것들. 그로 인해 알게 된 많은 것들이 나를 가장 잘 표현하는 것들이 되었다. -p113


책을 읽으며 내가 했던 짝사랑의 기억도 떠올려 보았다. 대학교에 갓 입학했을 때 처음으로 좋아했던 선배에 대한 일반적인 짝사랑의 기억. '짝사랑은 외롭고 힘든 것'이라고 흔히 생각하지만, 나에게 있어 짝사랑은 그와 반대였다. 짝사랑의 대상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설렜기 때문에. 나의 짝사랑은 안타깝게도 끝내 이루어지지 못한 짝사랑이었지만, 지금은 그것도 하나의 좋은 추억이라고 생각한다.


그와 헤어지고 내가 가장 힘들었던 것은 더는 사랑을 못해서, 연애를 못해서가 아니었다. 누구보다 나를 잘 아는 한 사람. 그 사람이 내가 사는 세상에 이제는 살고 있지 않다는 것. 그래서 일상을 공유할 수 없다는 것. 그게 가장 힘들었다. -p121


송은영 작가는 '어쩌면 모든 연인들의 사랑은 반쪽짜리부터 시작되었을지 모른다'고 말한다. '그 사랑의 씨앗이 그보다 나에게 먼저 찾아온 것뿐'이라고. 나도 작가의 말에 공감한다. 둘의 마음이 통하면 사랑이 되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짝사랑이 되는 것일테니까. 이렇게 보면 짝사랑과 사랑은 어느 정도의 운이 따라줘야 하는 한 끗 차이인 것 같다. 나는 어쩌면 짝사랑이 '그 운이 찾아올 수 있는 희망이 있다'는 점에서 사랑보다 더 설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짝사랑은 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단정짓지 말고, <짝사랑 계정>을 읽으며 위로 받기도 하고, 짝사랑은 사실 지금도 흔히 일어나고 있는 중이라고 생각하며 나의 마음에 대해 더 솔직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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