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리, 행복은 숨바꼭질을 좋아해 둘리 에세이 (톡)
아기공룡 둘리 원작 / 톡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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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로로를 좋아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생각하곤 했다. '나는 둘리를 그렇게 재밌게 보면서 자랐는데...' 내가 어렸을 때 둘리 만화 비디오를 여러 번 돌려봤던 기억이 있다. 둘리 에피소드들 뿐만 아니라 만화에 나오는 노래들도 수없이 들으면서 자주 흥얼거리기도 했다. 심지어 간단한 영어 공부도 둘리 비디오와 함께 했을 정도로 나는 둘리가 그만큼 친숙하다.


둘리를 보면서 흔히 하는 말들이 있다. 그저 즐겁기만 하면 아직 어린 것이고, 둘리와 그의 친구들을 돌보는 고길동이 불쌍해 보이기 시작하면 어른이 된 것이라고. 어렸을 때는 고길동이 둘리에게 당할 때마저도 통쾌해하며 즐겁기만 했는데, 요즘에 다시 생각해보니 조금 투덜거리기는 해도 자신의 가족을 먹여살리는 가장 고길동의 모습이 안쓰럽다는 생각도 들고 우리 아빠의 모습과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 캐릭터들을 내세운 책들이 많이 출간되고 있는데, 나는 그 중 이렇게 어렸을 적 추억이 많은 둘리 책에 관심이 더 갔다. 《둘리, 행복은 숨바꼭질을 좋아해》는 억만 년 전으로부터 빙하를 타고 지구로 온 아기공룡 둘리가 우리 지구인들에게 행복은 무엇인지, 행복은 어디서 찾을 수 있는지 등 '행복'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는 따뜻한 에세이다.


책은 만화 잡지에서 볼 수 있는 카툰, TV에서 방영하던 만화 속 장면을 몇 개 담고 있어서 어릴 적 그때의 추억을 다시 한 번 불러일으킨다. 몇몇 장면들은 보면서 어렸을 때 재밌게 봤던 에피소드들이 새록새록 떠올랐고, 당시 나왔던 노래들도 신기하게도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어 흥얼거리며 미소가 절로 지어지기도 했다.


둘리가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명확하고 간단하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고 가까이 있다.' '어쩌면 그 행복을 알아채지 못하고 지나치고 있을지 모른다.' '남들과 비교하지 말고 나 자신에게만 집중하자.' 둘리는 다른 곳에서 지구로 와서 이 지구가 낯설게 느껴졌다고 말하는데, 지구에 살고 있는 우리들도 자신과 다를 바 없이 똑같이 지구를 낯설어하는 존재로 보면서 많은 이야기를 해준다. 이런 둘리를 보면서 어쩌면 둘리와 그의 외계인 친구들보다 우리가 더 이 세상을 낯설어 하고 힘들어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위로를 해주는 따뜻한 에세이들을 그동안 많이 읽어왔는데, 둘리가 하는 말을 포함해서 그들이 하는 말에는 공통적인 주제가 있다. 바로 '행복'과 '자기 자신'. 힘든 삶 속에서 위로를 받고 싶어 자꾸만 에세이를 찾아 읽고 있는데, 《둘리, 행복은 숨바꼭질을 좋아해》를 읽고나서 어쩌면 나는 이미 답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저런 다짐을 많이 하게 되는 새해. 행복을 찾는 답을 이미 알고 있으니 둘리의 말을 떠올리며 이제 그 답을 찾아가는 길을 구체적으로 찾아봐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둘리의 추억을 갖고 있는 분들에게 새해에 읽기 딱 좋은 이 에세이를 추천하고 싶다.



잠깐 발걸음을 멈춰 봐요.
한적한 곳에서 호흡을 고르고
열심히 걷느라 아픈 다리를 주물러 줘요.
다른 사람들은 열심히 걷고 있는데
이렇게 쉬어도 되나 죄책감 갖지 말아요.
잠시 멈춘다고 지구가 멸망하지는 않아요.

아기공룡 둘리 ∥ 둘리, 행복은 숨바꼭질을 좋아해 p96

말하지 않고 알아주기를 원하는 건
타인의 마음을 시험하는 거예요.
말하지 않고 알아주기를 원하는 건
자기 자신에게 또 다른 상처를 주는 일이에요.
위로받고 싶다면 말해요.
지금 내가 어떠한지.

아기공룡 둘리 ∥ 둘리, 행복은 숨바꼭질을 좋아해 p135

타인을 미워하고 싫어하는 것에도
시간과 정성이 들어요.
귀한 시간을 부정적인 감정에 소모하지 말아요.
귀한 정성을 싫은 사람에게 쏟지 말아요.
그러기엔 우리의 삶이 너무 짧아요.

아기공룡 둘리 ∥ 둘리, 행복은 숨바꼭질을 좋아해 p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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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꽃이 떨어지기 전에 - 삶, 사랑, 죽음, 그 물음 앞에 서다
경요 지음, 문희정 옮김 / 지식의숲(넥서스)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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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미국 드라마), 일드(일본 드라마)는 몇 작품 본 기억이 있지만, 중드(중국 드라마)는 줄임말도 어색하게 느껴질 만큼 거의 본 적이 없다. 하지만 내가 기억하는 딱 하나의 중국 드라마는 바로 <황제의 딸>이다. <황제의 딸>의 방영 날짜를 찾아보니 내가 초등학생일 때인데, 정확한 내용은 기억하지 못해도 재밌었다는 점과 여배우들이 예뻤다는 점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우리나라 국민들도 이 드라마를 기억하고 있을텐데, 이런 <황제의 딸>을 쓴 작가 경요의 새 책이 출간됐다.




많은 소설을 써냈던 작가 경요. 이번에 내놓은 책은 소설이 아니라 에세이다. 《눈꽃이 떨어지기 전에》는 그녀가 경험한 삶을 담았고, 그 중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가장 비중있게 담겨 있기 때문에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에세이라기 보다는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진지한 에세이다. 책은 총 2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1부는 그녀의 남편인 신타오가 질병을 앓으면서 삽관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2부는 이들 부부가 겪은 희로애락을 담고 있다.




작가 경요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담은 글들을 올리곤 했다. 책 속에는 그녀의 글에 공감을 많이 한 셰진더라는 사람과 나눈 이야기도 담겨 있다. 셰진더는 와병하신 모친을 간병하며 비적극적 치료 동의서에 서명을 했는데, 다른 사람들 눈에는 그저 효도를 다하지 않는 사람으로 본다는 얘기가 담겨 있었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표면적으로는 그렇게 보일지 몰라도, 사실 그러한 상황을 직접 겪는 사람이 아니라면 이런 말조차도 할 자격이 없다고. 계속 힘들어하다가 생의 마지막에 들어서도 고통 속에 죽음을 맞이하게 한다면, 그게 과연 환자를 위한 일일까? 작가의 말처럼 '죽는 것은 필연'인데, 그렇다면 더더욱 존엄을 지니며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게 아닐까?




작가의 남편 신타오는 어느날 대상포진 진단을 받는다. 나는 대상포진이라는 병을 들어보기는 했지만 어떤 병인지 자세히는 몰랐는데, 작가의 글을 읽고 이 병은 '환자가 자살을 생각할 정도로 고통스러운 병'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대부분의 병은 병원에서 의사와 간호사가 치료를 해주지만, 이 병은 보호자의 손도 많이 빌린다. 이에 따라 작가 경요는 몇 년간 남편의 '특별 간호사'로 활약해야 했다. 글만 읽어도 그 활약들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게 느껴지는데, 이런 일들에도 불구하고 '특별 간호사로 사는 것도 행복'이라고 말하는 작가가 더욱 더 위대해 보였다. 후에 신타오에게 치매까지 찾아오게 되는데, 그런 그를 간병하고 삽관하기까지의 과정도 고스란히 이 책에 적혀 있다.




《눈꽃이 떨어지기 전에》는 에세이지만, 어느 소설보다 더 소설같은 그녀와 그녀의 남편 이야기를 담고 있다. 신타오에게 치매가 찾아오기 전, 사랑꾼이었던 그의 모습과 현재 병원에 입원해 기억을 잃어가고 있는 그의 모습이 대비되어, 책을 읽으면서 안타까웠고 슬펐다. 신타오를 보며 '죽음이란 정말 무엇일까' 생각해보았다. 전에는 삶을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생각만 했는데, 요즘은 그만큼 웰다잉의 권리도 중요시하는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도 이제 존엄사 법이 시행되고 있는 것을 보면 더욱 더 그렇게 느껴진다.




'존엄사'라는 단어를 알기 전까지는 '그래도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이 아닐까' 하는 생각만 했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진지하게 다시 생각해보니 그건 환자를 위한 게 아니라 오직 곁에 있는, 환자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이기심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 편하자고 아주 작은 희망 하나만을 붙들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더 고통 속으로 밀어 붙이고 괴롭게 하는 건 아닐까? 지금 이 순간에도 작가 경요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분들이 많을거라 생각한다. 어느 한 갈림길에서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갈팡질팡하고 있는 분들에게 이 에세이를 추천하고 싶다. 이 에세이가 정확한 답을 해줄 순 없겠지만, 분명 힘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삶과 죽음‘에 관한 책이자 ‘사랑‘에 관한 책이다. 책의 주제는 아기자기한 사랑이 아니라 내가 피와 눈물로 써 내려간 규탄의 말이다. 생명에 대한 규탄, 지고한 인류를 향한 규탄, 인간에게 ‘존엄한 죽음에 대한 권리‘가 있는지를 규탄한 것이다.

경요, 《눈꽃이 떨어지기 전에》 p327

죽음과 직접 대면하자! 사실 그건 긍정적인 일이야! 사람은 누구나 죽으니까! 웃으면서 죽음을 바라보고 우아하게 돌아서는 것이야말로 인생에 있어 최고의 엔딩이지!

경요, 《눈꽃이 떨어지기 전에》 p19

‘죽음‘은 두려운 것이 아니다. 두려운 것은 ‘죽은 것도 산 것도 아닌‘ 것이나 ‘살아도 죽은 것과 같은‘ 것 또는 ‘목숨만 겨우 부지하는‘ 것, 그리고 ‘인위적으로 살아는 있으나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이다.

경요, 《눈꽃이 떨어지기 전에》 p88

최고의 경지에 이른 사랑은 그의 몸뚱이를 억지로 붙들고 있는 것이 아니라 놓아주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경요, 《눈꽃이 떨어지기 전에》 p164

살아 있다는 말은 무척이나 많은 아름다운 것들을 내포하고 있다. 이 세상을 즐길 수 있고, 희노애락의 감정을 느끼며, 해가 뜨고 지는 것을 보고, 바람과 비의 소리를 들으며, 맛있고 입에 맞는 음식을 먹고, 영화와 각종 예술을 감상할 수 있는··· 이런 것들을 할 수 있어야 사람이 살아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경요, 《눈꽃이 떨어지기 전에》 p198

낭만은 꼭 작정하고 계획한 곳에 있는 것이 아니다. 소소한 일상 속에 언제라도 낭만이 깃들 수 있다!

경요, 《눈꽃이 떨어지기 전에》 p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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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락 아르테 한국 소설선 작은책 시리즈
은모든 지음 / arte(아르테)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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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락사'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안락사는 생명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민감하게 생각할 수 밖에 없는 문제이다. 현재 적극적 안락사를 허용하는 국가도 스위스,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벨기에 정도 뿐이라고 한다. 평소에 안락사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이 소설을 읽고난 후 좀 더 깊게 생각해보게 되었다.


《안락》은 자신의 수명 계획을 세우고 계획대로 진행하려는 할머니와 이에 대한 가족들의 생각과 갈등을 다루고 있는 소설이다. 내가 처음에 이 소설 제목을 봤을 때는 그저 따뜻한 이야기인 줄만 알았는데 아니었다. '안락'에서 더 나아가 '안락사'를 다루고 있는, 쉽게 볼 수 없는 소재를 다룬 소설이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안락사'를 생각해봤을 때 나는 자연스럽게 '존엄사'도 떠올리게 되었다. 존엄사와 안락사는 어떻게 다른 것일까? 둘의 차이를 명확하게 알지 못해 검색해보니, 존엄사는 회복 가능성이 희박한 환자의 연명 치료를 중단하는 것이고, 안락사는 일상 생활이 가능하지만 스스로 생을 마감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히면 약물을 투여해 인위적으로 생을 마감하는 것이라고 한다. 우리나라는 올해 초에 법적으로 존엄사가 본격 시행되었고, 안락사는 허용하지 않고 있다.


이 소설 속에서는 안락사 법안이 통과되면서 5년 후에 생을 마감하겠다는 할머니의 수명 계획이 그대로 진행이 된다. 소설 속 할머니는 '말이 씨가 된다'라는 말을 철저하게 지키시는 분이다. 말을 한 번 내뱉으면 정말 그대로 진행을 하기 때문에, 가족을 모아 놓고 수명 계획을 발표했을 때도 주인공의 엄마를 비롯한 모든 가족들이 놀란다. 특히 주인공의 엄마는 할머니의 막내딸로서 처음에는 완강하게 반대하지만, 할머니의 계획을 꺾을 수 없다는 걸 알고 할머니가 눈을 감기 전까지 더 많이 찾아뵙는다.


안락사에 대해서 옳다, 그르다, 판단하는 건 맞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이 책을 읽고나니 안락사가 꼭 반대되어야만 하는 안건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소설 속 할머니는 할아버지를 잃고, 할머니의 자매, 즉 이모 할머니도 요양원에 계시면서 소통할 사람이 거의 없어지고 있다. 또한 파킨스병이 진행되면서 가족들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아 안락사를 선택하고 자신의 물품들을 스스로 정리한다. 어떻게 생각해보면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하는 것보다 미리 자신의 주변을 정리할 시간이 있다는 점은 괜찮은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오래 살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전제 조건에는 '건강'이 있다. 아프면서 오래 사는 건 나도, 내 주변도 모두 고통스러울 뿐이다. 책을 읽으며 소설 속 할머니처럼 더 아프기 전에 미소를 지으며 생을 마감하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안락사를 원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무분별하게 안락사를 선택하는 경우가 있을 수도 있으니 법률로 만드기 전까지는 정말 많은 논의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생을 살면서 떼어놓을 수 없는 죽음. 죽음의 방법 중 하나인 안락사에 대해서 평소에 생각해본 적이 없는 분들에게 한 가족의 모습을 보면서 안락사에 대해서 다양하게 생각해볼 수 있는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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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내셔널의 밤 아르테 한국 소설선 작은책 시리즈
박솔뫼 지음 / arte(아르테)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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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주로 읽는 책의 장르는 단연 소설과 에세이인데, 요즘에는 소설보다는 에세이에 더 손이 간다. 그 이유는 가볍게, 아무 때나 읽어도 흐름을 잃지 않을 수 있는게 에세이이기 때문이다. 요즘은 하루 할 일을 다 끝내고나서야 책을 읽는데, 그 시간이 늦은 밤이 될 때가 많다. 늦은 밤에 읽기 시작하면 1~2시간 정도 읽고 잠이 드는데, 소설은 이렇게 읽다가 흐름이 끊겨 중간에 읽다 만 소설들이 있고 아예 시작조차 못한 소설들도 꽤 있다.


아르테 출판사에서 나온 '작은책' 시리즈는 이런 나에게 딱 맞는 책인 것 같다. 우선 시중에 출간되고 있는 보통의 책들보다 작은, 나의 손바닥만한, 아담한 크기를 갖고 있다. 이런 작은 크기에 페이지 수도 100 페이지가 조금 넘어서 단숨에 읽기 딱 좋다. 작은책 시리즈는 국내문학 시리즈이다. 현재 출간된 작은책 시리즈는 박솔뫼 작가의 《인터내셔널의 밤》과 은모든 작가의 《안락》이 있다. 나는 먼저 박솔뫼 작가의 《인터내셔널의 밤》을 읽어 보았다.


《인터내셔널의 밤》에는 부산으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한솔은 일본에 살고 있는 친구의 청첩장을 받고 갈까말까 고민을 하다가 가기로 결정하고, 부산에서 비행기를 타고 일본으로 가기 위해 부산행 기차에 올라탔다. 나미는 자신을 보호해준다고 믿고 있던 곳에서 도망쳐 나오고, 자신을 찾지 못하도록 멀리 떠나기 위해 부산행 기차를 탔다.


나미는 한솔의 옆자리에 타고, 나미가 한솔에게 먼저 말을 걸기 시작하면서 둘은 꽤 많은 대화를 나누며 부산에 도착한다. 부산에 도착한 후, 둘은 나미의 용기로 한솔이 일본으로 떠나기까지 남은 며칠동안 함께 시간을 보낸다. 한솔과 나미는 서로에게 어떤 감정을 갖고 있고, 그들의 결말은 어떨까? 두 주인공 모두 어떤 곳으로부터 벗어나고자 발버둥치고 있고 그런 현실이 안타까워 보이기도 했지만, 그래도 둘 다 나름대로 행복을 향한 길로 가는 중인 것 같아 안심이 되기도 했다.


그간 내가 읽어 온 소설들은 짜임새있고, 기승전결이 확실하게 보이는 스릴러 소설이 많았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인터내셔널의 밤》은 솔직히 무엇을 얘기하고자 하는건지 나는 명확하게는 잘 모르겠다. 그래도 짧은 소설에서 주인공들의 심경 변화라고 해야할까? 소설의 초반에는 주인공들이 색깔이 없는 것처럼 보였는데, 소설의 마지막에서는 조금씩 밝은 색이 칠해지는 듯한 모습이 보이는 듯 해서 따뜻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에세이처럼 부담없는 소설을 읽고 싶은 분들에게, 기차를 타는 느린 여행을 계획하고 있는 분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작은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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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손님
히라이데 다카시 지음, 양윤옥 옮김 / 박하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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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없어 고양이'. 올해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보거나 읽어봤을 문구이다. 고양이를 키우지 않는 사람들이 주로 귀여운 고양이의 모습을 보면서 절로 나오는 표현이다. 유행어가 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고양이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 수 있는 표현이기도 하다. 이런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올해는 고양이에 관련된 책이 많이 출간된 것 같다. 그 중 나는 한 마리의 고양이가 그려져있는 심플한 표지의 고양이 관련 책을 집어들었다.


《고양이 손님》은 일본의 시인이자 소설가인 히라이데 다카시가 쓴 소설로, 우리나라에 출간되기 앞서 전 세계 24개국에 출간되어 많은 사랑을 받은 책이다. 또한 많은 독자들뿐만 아니라 <뉴욕타임스>, <가디언> 등 많은 해외 언론에서도 극찬을 한 소설이다. 내가 어렸을 때 제일 감명깊게 읽은 책이 안도현 시인의 《연어》인데, 이 책을 포함해서 《어린 왕자》, 《동물농장》, 《갈매기의 꿈》과 함께 최고의 우화 5편에 선정되었다고 하니, 그 내용이 더욱 더 궁금해졌다.


이 책은 주인공 부부가 살고 있는 집 주변을 묘사하면서 시작된다. 부부가 번개골목이라고 이름을 붙인 골목에서 어느날 새끼고양이 한 마리가 나타나고, 그 고양이는 옆집이 데려다 기르기로 하면서 '치비'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하지만 옆집이 기르는 고양이라고 하기 무색할 정도로 치비는 부부가 사는 집으로 자주 넘어왔고, 부부도 점점 관심을 갖고 간식까지 챙겨주면서 긴밀한 관계를 맺게 된다.


《고양이 손님》은 조금만 읽어보아도 작가의 필력에 감탄하게 된다. 책 속에 그려진 공간은 대부분 부부가 임대하여 살고 있는 작은 집과 주인집 할머니댁, 그리고 그 앞 정원 정도로 작은 공간을 묘사하고 있는데, 그 표현이 아주 세밀하다. 그냥 단순히 이미지를 묘사하는 게 아니라 독특한 비유를 하며 묘사를 해서, 계속 감탄을 하며 읽어나갔다.


이 책은 단순히 고양이가 나오는 귀여운 소설이 아니다. 만약 고양이가 없었다면 이웃과 거의 소통하지 않는, 삭막하기 그지없는 현대의 모습만 가득했을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작은 정원의 변화로 알 수 있는 사계절을 볼 수 있어서 좋았고, 작은 고양이 한 마리로 인해 생기는 삶의 변화를 보면서 내 주변을 다시 둘러보기도 했다. 삭막한 현실 속에서 작은 고양이와 함께 따뜻한 겨울을 보내고 싶은 분들에게 이 소설을 추천하고 싶다.



처음에는 조각구름이 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떠 있다가 바람에 아주 조금, 좌우로 날리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히라이데 다카시, 《고양이 손님》, p6

겨울로 접어들었다. 서서히 치비는 살짝 열어둔 창문 틈새로, 마치 작은 물길이 거듭거듭 완만한 비탈을 적시고 뻗어나가듯이 우리 생활 속으로 들어왔다. 하지만 그때 일종의 운명이라고 할 것까지 그 물길에 함께 따라와 있었다.

히라이데 다카시, 《고양이 손님》, p23

사체를 봉한 장소에 서고 싶다는 심리는 애초에 어떤 것일까. 이미 상실해버린 그것이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귀한 존재였다는 것을 확인하고, 그것과 앞으로 또 다른 차원의 통로로 맺어지고 싶은 심리일 것이다.

히라이데 다카시, 《고양이 손님》, p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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