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대상을 향해 전달되는 상방향 의사소통의 수단이다

일방적으로 한 쪽이 말하고 한쪽이 듣는 것이라도 상대가 있어야 완성된다,

비오는 날 중 염불하듯 혼자 중얼거리는 것은 의사소통이 아니다.

말하는 사람은 듣는 대상이 원하는 것 알고 싶어하는 것 관심있어하는 걸 생각해야한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것도 괜찮지만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상대가 들을 준비가 되었는지 보아야 내 말이 허투루게 사라지지 않고 상대에게 가서 닿는 것이다,

 

학교 선생님이 학부모를 상대로 짧은 이야기를 한다

학부모는 2.3학년 학부모들이고 잠깐 학교에 봉사하러 온 학부모를 상대로 감사 인사와 함께 학교 소식을 알려주는 아주 간단한 자리이다,

그 자리에서 교사는 1학년의 자유학기제에 대한 이야기. 학교의 다양한 활동에 대한 이야기

그 다양한 활동들이 생기부에 어떻게 반영되며 그것이 어떻게 특목고를 가는 스펙으로 도움이 되는지를 이야기한다,

학부모 중엔 형제자매가 있거나 입학 예정자가 있어 1학년의 활동이 궁금할 수도 있고

아직 2학년이면 특목고를 가기 위한 준비에 관심이 있을 수 있겠지만

이미 한 학년의 절반이상이 지난 2학기 중간에  2. 3 학년 학부모에게는 별 관계없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

특목고를  준비하는 학생들은 이미  준비가 끝난 것이고 일반고를 가는 학생에게는 별 소용이 없는 말들이다,

차라리  고입에 대해 아직 정보가 없을 수 있는 학부모에게 일반고 설명회가 있을 거라는 말이나

남은 학기를 어떻게 보낼 것인가 하는 거라든가 하는 걸 말했더라면 좋았을텐데 .. 란 생각을 한다

교사 입장에서는 우수한 아이들을 이야기하면 저절로 우수한 학교가 된다고 믿는 건지 모르겠지만 사실 한 학교에서 특목고를 쓰는 아이는  소수다,

10%정도가 될까 많아야 15%?

대부분 평범하게 일반고를 가고 평범하게 대학걱정하는  대책없이 해맑고 건강한 아이들인데

간혹 교사들은 특목고를 위해 얼마나 학교가 노력하는가에 목청을 높이고 얼마나 많은 진학율을 가졌는지를 강조한다,

집단에서 다수를 위해 소수가 희생되거나 소외되는 것이 아니라

소수를 위해 다수가 소외되는 기막힌 상황이다,

교사는 대상인 학부모가 듣고 싶은 말보다 하고 싶은 말만 한다

그게 더 자신들을 돋보이게 하고  자랑스러운 이야기이다,

물론 학교에 대해 그렇게 말하는게 잘못된 건 아니지만 대상을 잘못 골랐다,

시기를 잘못 골랐다,

입학식에 모인 신입생 부모에게는 충분히 어필되겠지만

이미 아이를 학교에 보낸후 막바지에 달하고  내새끼를 충분히 파악하고 있고 학교에 대해서도 어떻게 하는지 눈치 빤한 학부모 앞에서 특목고를 위한 준비나 비전따위가 무슨 상관이랴,,,

대상이 듣고 싶은 걸 말하지 않고 하고 싶은 걸 일방적으로 하달하는 것

이건 의사소통도 아니고 뭣도 아니지 않은가?

 

내가 우수해서 특목고정도는 쉽게 가는 자식을 두지 않아서 꼬아보는 건지도 모르겠다, 나이 들어 이것저것 맘에 안드는게 많아서  지적질만 늘어나서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오늘 그 자리에서 교장 선생님의 짧은 말은 영 아니다,

대상도 잘못 골랐고 시기도 잘못 골랐다,

적어도 누군가를 모아놓고 한마디쯤 해야할  경우가 많은  사람은

내가 말을 해야하는 대상이 누구인지 알아보고 그들이 듣고 싶은게 뭘까? 알고 싶은 게 뭘까를 잠깐이라도 고민하면 좋겠다,

학부모를 모아놓고 잠깐 감사인사겸 하는 말에서도 그렇게 배려가 없는데

1등부터 꼴찌까지 다양하고 많은 아이들에게는 과연 배려가 있을까 싶은

꼬인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머리를 싸매면서 시험지를 풀어내려는 녀석이나  받자마자 쓱~ 훓어보고 이름만 쓰고 잠드는 녀석이나 다들 귀한 자식이고 귀한 아이들인데

이 아이들도 대부분은 소외되고 말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어서

괜히 혼자 불쾌한 하루였다,

난, 너무 지적질만 하는 인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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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
줌파 라히리 지음, 이승수 옮김 / 마음산책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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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새로운 세상을 만나는 일

그저 내 세계가 확장된다는 생각만 했다

그러나 그녀는 자기의 세계를 확장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바꾸는 계기로 언어를 배운다

이탈리아어...

젊은 시절 여행했던 이탈리아에 대한 좋은 기억으로 이탈리아 언어를 배우고 언어를 몸으로 체감하기 위해 로마로 이주한다

작가가 자기가 쓰던 언어를 버리고 새로운 언어를 택한다는 건 모험이다.

어쩌면 작가로서의 생명을 걸고 할 수 있는 최고의 모험이다

그녀는 기꺼이 그걸 선택한다.

뒤에 역자의 말에도 있듯이 번역되어 읽기에도 이 에세이의 문장들은 단순하고 소박하다

그러나 대신 새로운 언어에 대한 절절한 애정이 묻어있다,

왜 이탈리아어냐고 묻지는 않겠다

무어라 이유를 댈 수 없는 연결이 있으리라

 

그녀는 인도인이다, 부모 세대에 미국으로 이주해서 뱅골어는 부모의 언어였고 그녀에게 생활의 생존의 언어는 영어였을 것이다, 부모와 통하기 위해 뱅골어를 말하지만 세상에 부끄럽지 않으려고 달라보이지 않으려고 영어를 더 많이 익히게 되고 더 익숙하게 된다, 중간에 뱅골어를 쓰고 영어를 못하리라 편견을 갖게 하는 부모의 외모에 부끄러움을 느끼고 또 그런 자신에게도 부끄러움을 느끼던 소녀는 자라서 이번엔 이탈리아 어로 바꾼다,

자기의 외모때문에 이탈리아어를 못하리라 편견을 갖는 사람들에게 자기보다 실력이 못한 남편의 언어에 찬사를 보내며 자신에게는 물어보지도 않고 못하는 사람으로 낙인을 찍는 이탈리아 인들을 보며 어릴 적 부모를 생각하고 절망하고 벽을 느낀다,

그런 수모를 겪으며 그녀는 이탈리아 어에서 무엇을 배웠을까

아니 무엇을 알고 경험했을까?

불완전하고  채 익지 않은 것이 주는 긴장감과 새로운 도전에 기꺼이 몸을 맡긴다,

이 낯선 언어로 쓴 소박하고 짧은 문장들에서도 그녀의 모습은 여과없이 드러난다,

익숙한 언어로 썼던 소설에서 느꼈던 삶의 불안 그럼에도 살아가려는 모습들이 이 얇은 책에서도 드러난다

언어의 문제가 아니긴 아닌가 보다

어떤 도구를 쓰든 문체에서 글과 글 사이에서 그녀가 느껴진다,

그래서 대단하다,

 

오래전에 사둔 저지대를 읽는 중이었다,

사 놓고 너무 두꺼워서 모셔만 두다가 왠지 여름에 읽으면 축축 처질거 같아서 또 미루었다가

이제 더 이상 미루면 안되겠다 싶어 책장을 폈다,

어쩌면 익숙한 관계 익숙한 인물설정 익숙한 사건 전개가 그려진다

뻔해.....

그런데 그 뻔한 것과 마주치는 것이 두려워서 책을 덮었다,

뻔해서라기 보다 그 뻔한 것임에도 내게 줄 어떤 감정의 파도를 미리 생각하고 지레 겁을 먹고

책을 미루는 중에 이 에세이를 발견했다,

일단 이것 부터 읽자....

낯선 언어로 쓰였을 이 얇은 책에서도 그녀는 쉽게 비춰진다,

언어의 경계에서 서성이고 외로워하면서도 계속 앞으로  나가고 있다

그것이 그녀의 힘이다,

이제 나도 다시 저지대를 펼쳐야 할 시간이다,

 

그리고 미루어둔 영어부터 공부를 다시 해야겠단 생각을 한다

영어로 소설을 못쓰겠지만 책은 읽어야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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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생기는 이벤트는 즐겁다

가슴 설레고 쿵닥거리는 기쁨이 있다

늘 그렇게 놀이동산 퍼레이드처럼 행복하고 신하고 예쁜 것들이 가득하길 바라지만

사실 다르게 생각해보면 그런 이벤트의 연속인 삶은 쉽게 지치지 않을까

그렇게 가슴뛰는 시간이 게속되다가는 죽을 수도 있다.

어떤 모퉁이를 지나 이벤트를 만나거나 퍼레이드를 보거나 참가하는 게 즐거운건 다시 돌아갈 일상이 있다는 것이다,

삶의 계기가 되었다... 라고 말할 때 그 계기 같은 건 어쩌면 길고 긴 일상 사이에 끼어 있어서 비로소 그것이 어떤 계기였고 이벤트였음을 알게 되는 게 아닐까

어떤 이벤트로 축제로 혹은 무언가로 충만한 마음은 그대로 마음에 넣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서 잘 사는 것이 중요하다

어떤 계기로 인해 내가 확 바뀌었다? 그건 아니다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그럼 죽을 수도 있으니까

그냥 하루하루 조금씩 먼지처럼 보이지 않게 변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가

긴 시간을 지내고 돌아보면 그때의 나랑 다를 내가 되었구나 하고 알게 되는 것이 아닐까

물론 어떤 순간의 충격이나  사건으로 그 이전과 이후가 바뀌는 사람이 있지만 대부분은 그냥 그렇게 비슷비슷하게 살아가는 시간이 쌓으면서 길게 돌아보면 아 붠가 바뀌었구나 하고 느끼는 것일게다,

별 일 없이 살고 변화없이 지루한 일상이라도 하루하루를 쌓아가고 채워가면서 조금씩 시간을 내어 나를 생각하고 사회를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삶의 의미라고 생각한다.

진짜 주요한 것은 한 순간의 어떤 이벤트가 아니라 켜켜이 쌓아가는 나의 지루한 반복들이다, 일상이라는 것이다, 그 시간들이 어느새 반짝 하는 빛을 보여준다,

 

책을 읽다보니 내가 그의 영화를 꽤 봤구나 알았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진짜로  일어날 지 몰라 기적>  <걸어도 걸어도>  <동경 이야기> 까지 네편이나 봤다,

그의 영화도 그의 에세이와 비슷하다

조곤조곤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풀어놓으면서도 사람의 심장을 쥐었다 놓았다 한다

그건 어쩌면 그가 의도한 바는 아닐지 모른다

그저 살아가는 모습을 세밀하게 관찰하고 그것을 사실 그대로 풀어놓으면 보는 우리는 그 안에서 나를 발견하기도 하고 내가 아는 누군가를 발견하면서 이미 영화속 어떤 인물이 아니라 나 혹은 내가 알고 있는 그 사람을 보기 시작한다. 내 이야기는 언제나 내게 가슴시린 이야기이니까

 

 

.......그쪽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힘이 너무 강하면 그 이면에 숨쉬게 마련인 그들의 일상이 소홀해진다, 그래선 안된다, 끝까지 일상을 풍성하게 생생하게 보여줄 필요가 있다, '이야기'보다 '인간'이 중요하다 이번에도 이런 관점을 바꿀 생각은 없다, 그렇기에 두 가족의 생활 속 디테일을 어떻게 쌓아가느냐에 충분한 시간을 들이려 했다,

                                                                                               p7

 

영화도 스포츠처럼 눈에 보이는 형태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책으로 친다면 실용서는 아니다, 보고 기운이 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가치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가치있는 거라고 생각해도 좋다,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에서 오다기리 조가 연기한 아버지는 아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세상에 쓸데없는 것도 필요한거야, 모두 의미있는 것만있다고 쳐봐 숨막혀서 못살아"

                                                                                                  p 67

 

영화속에 그려진 날의 전날에도 다음날에도 그 사람들이 거기서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겠다는 것이다, 영화관을 나온 사람으로 하여금 영화 줄거리 자체가 아니라 그들의 내일을 상상하고 싶게 하는 묘사 그때문에 연출도 각본도 편집도 존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p  121

 

나로서는 알 수 없지만 상대의 대사를 들을 수 있는 힘이야 말고 배우로서 가장 중요한 능력임이 분명하다 말하는 히미란 우선 이런 듣는 힘이 있어야만 생긴다고 고키군을 보며 확신했다,

                                                                                                         p 139

 

영화는 남을 심판하기 위한 것이 아니며 감독인 신도 판사도 아니다, 악인을 설정하는 것으로 이야기는 알기 쉬워질지 모르지만 반대로 하지 않음으로써 관객들이 이 영화를 자신의 문제로서 일상에까지 끌고 들어가도록 할 수 있지 않나 싶다 라는게 내 대답이었다, 

                                                                                                  p160

 

 

어쩌면 비굴하고 용기가 없어서 그렇게 보는 건지도 모른다는  시선을 감독은 조용하게 고백한다, 세상을 이렇게 바라봐도 되지 않느냐고 ...

그래서 일까 그의 영화 속 사람들은 모두 선하고 일상적이다,

착하다는 것 이 아니고 그저 무심하고 보통의 사람들이라는 거다,

보통의 사람이 질투를 하고 경쟁의식을 느끼고 누군가를 미워하고 스스로를 한심하게 여기면서 이런 저런 감정을 느끼는 것이 솔직하게 덤덤하게 보여진다,

그리고 그것이 가치를 보여줄 때가 많다, 아이든 어른이든 노인이든

그의 글도 그의 영화와 많이 닮았다.

어떤 큰 매력은 없지만 그저 덤덤하게 페이지를 넘기게 한다,

사실 영화에 대한 이야기가 더 많았으면,, 하는 바램도 있었지만 내가 좋게 본 영화의 감독이 좋은 사람같아 다행이다

시간 내어 그의 영화를 다시 찬찬히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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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대왕와 그의 아들 사도세자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

사도세자가 뒤주에  들어가 결국 죽는다는 대단한 스포를 알면서도 보러가게 되는 이야기

그 영화를 보았다.

역사적인 어떤 사실 혹은 세대간의 문제 뭐 이런저런 평이 많지만

내가 본 영화  '사도'는 중년 가장의 비애였다,

 

잠시 딴 소리 하자면

송강호라는 배우가 연기하는 아버지는 늘 짠하고 찌질하다,

효자동 이발사

우아한 세계

관상

변호인....

기억나는 이런 작품에서 어떤 사회적 배경이나 문제들을 빼버리고 그냥 한 가정의 가장이고 어떤 아이의 아비로서의 송강호는 늘 고군분투한다,

고지식하게 남의 머리를 깍아주고

가장으로서 책임을 위해 건달짓을 하고

아들 하나 지키겠다고 하다가 결국은 권력암투에 말려들고

아이에게 부끄럽지 않은 아비가 되려고 세상과 맞장뜨기로 하는

그런 늘 애쓰는 아비였는데 늘 그 아비의 마음이 아들에게 (혹은  딸에게 ) 가 닿지 않거나

너무 늦게 닿거나 그냥 허공에서 허지부지 사라진다,

 

이번 영화에서도 그랬다,

아들을 사랑하고 자랑스러워했는데 그래서 정말 애쓰고 애쓰는데 그 마음은 허공에서 스르르 없어진다,

아비는 아들과 통하려고 노력한다,. 잘되라고 잔소리도 하고 매도 들고  모른 척도 하고 모든 걸 하지만  아들에게 닿는건 아비의 마음이 아니라 행동들이고 말들이다,

아비는 열심히 달을 가르키는데 아들은 정작 달은 보지 않고 손가락만  보고 있다.

근데 아비는 모른다

자기가 달을 보라고 가르키는데 사실 그 굵고 투박한 손가락이 달을 가리고 있다는 걸...

손가락과 달이 보는 위치에 따라서 가려지기도 하고 가리키기도 한다는 걸 모른다,

그저 내가 보는 장소에서 내가 보는 것이 전부이고 그걸 아들의 자리에서도 그대로 보일거라고 굳게 믿을 뿐이다, 왜냐하면 아비는 그렇게 자기 아비에게 배웠으니까...

세상 아비들은 스스로 자식과 소통이 잘 되는 멋진 아빠라고 믿는다

그러나  미안하게도 자식들은 내 아비가 잔소리가 많고 자기이야기만 하는 꼬장꼬장한 인간이라고 판단할 뿐이다.

영화도 그렇다,

아비는 밤새 자식을 위해 책을 쓴다,

그런데 자식은 놀기 바쁘고 개나 그리기 바빠서 아비가 만든 책은 저만치 혼자 펼쳐져 있다,

아비는 속이 상한다,

우라질 노무 새끼....

그래도 참는다. 아니 참는다고 믿는다,

나는 많이 참는다,

나는 나랏일때문에 가족을 챙길 수 없다. 한 나라의 왕이란 그런 것이다,

그러면 집안일을 좀 알아서 잘 챙기고 잘 하면 어때서 

나중에 보면 나만 빼고 저희들끼리 꽁꽁 단합해서 나만 소외시킨다, 나만 잘못했다고 한다

모두 내 잘못이라고 만 하고 저누무 자식을 감싸고 또 감싼다

저래서 자식이 망가지는 걸 모르니 내가 나설 수 밖에..

 

영화에는 또 다른 아비가 있다,

그는 나중에 사도세자라고 불린다,

그에게는 아비와의 갈등이 가장 큰 과제이다,

아내는 그저 세손만 끼고 세손 세손... 세손이 우선이다,

나도 가족이다,

나도 힘들고 괴로운데 나만 참으면 된다고 한다,

내가 이렇게 된건 다 아부지 때문인데 나더러 참으라고 한다,

이게 가족이냐...

도리만 이야기하고 세손을 생각하라고 하고..

나도 내 새끼 귀한 줄 알지만 그래도 내가 살아야 내 새끼도 있는게 아닌가

자식을 위해 희생만 하면 나는 어디에 있는가?

나는 아직 젊고 하고 싶은 것이 많은데 내 자식이 내 바짓가랭이를 붙든다

내가 그 아이를 싫어하는게 아니다,

그가 테어난 기쁨을 그림으로 나타내고 그에게 줄 부채로 만들었다.

나는 그런 아비다, 그런데 나를....

 

두 아비는 참 외롭다, 괴롭다,

아무도 나만 이해해 주지 않는다,

저희들끼리는 이해하고 이해받고 서로 꿍짝이 잘 맞는데 나만 외톨이다,

이건 다.. 저누무 자식때문에... 저누무 노인네 때문에...

아비가 말했다

"왕이라고 언제나 칼의 손잡이를 잡는 경우는 없다 칼 끝을 잡지 않으려면 공부를 해야한다"

아들이 중얼거렸다.

"허공으로 날아간 저 화살이 얼마나 떳떳하냐?"

짧은 한마디가 각각의 마음이다,

서로 통할 수 없는 마음이다,

결국 영조가 외친다,

이건 집안일이다.....................

그리고 그렇게 역사적 비극은 시작된다,

왕가의 막장드라마가 펼쳐진다,

아들을 죽인 아비

아비를 죽게 한 자식

왜 죽었는지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나는 이걸 고독한 가장의 외로움이 빚어낸 비극이라고 하고 싶다. 소통하지 못하는 가장의 비극이라고 하고 싶다,

 

역사는 늘 승자의 기록이고 보는 사람의 관점이 들어갈 수 밖에 없고 읽는 이의 해석이 덧붙여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것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많은 다른 스토리를 가진다,

역사는 그것이  늘 올바른 것은 아니다,

누군가의 시각으로  정의롭기도 하고  부끄러워지기도 하다

역사와 역사 소설이 다르듯 역사와 역사적 사실을 소재로 한 드라마는 다르다

사실 이준익 감독이 무엇을 말하려고 했는지 정확하게는 모르겠다.

하여간 당파싸움으로 인한 사도세자의 죽음보다는 좀 더 개인적인 무언가를 그리려고 하지 않았을까 추측할 뿐이고

역사 속의 어떤 사실이 누군가의 눈에 띄어 영화가 되거나 소설이 되면서 무언가 다른 의미를 가진다, 그리고 그것을 보거나 읽은 누군가에 의해 또다른 의미가 발견되기도 한다

나는 그냥 이 영화 내내  한 가정의 가장이 생각났고 그 가장의 비루하고 처절한 견디어냄이 보였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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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들은 매일 죽어. 돌로레스 음 아마 지금도 어딘가에서 어떤 남편이 죽어가고 있을걸

우리가 여기에 앉아서 얘기를 하는 동안에 말이야 남편들은 죽으면서 아내한테 돈을 남겨주지

사고가 가끔은 불행한 여자의 가장 좋은 친구가 되지

법이란 좋은 거야 돌로레스 못된 남자가 나쁜 사고를 당하는 것 역시 때로는 좋은 일이 도리 수 있지...

 

 

가끔은 살아남기 위해서 거만하고 못된 년이 되어야 해 가끔은 여자가 자기를 지탱하기 위해서 못된 년이 되는 수 밖에 없어

 

 뭐 원래 쉬울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지 내 나이 지금 예순다섯인데 그 중 적어도 50년동안은 줄 돈은 딱딱 쥐 가면서 자기 의지로 선책하며 사는 게 인간다운 거라고 생각하면서 살았어. 내가 선택한 것 중에는 정말 고약한 것도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냥 중간에 그만두고 나갈 수는 없는 노롯이지 특히 부양가족이 딸려 있어서 그 애들이 스스로 하지 못하는 걸 대신 해줘야 하는 입장이라면 더 그래 그럴 때는 가능한 한 최선의 선택을 하고 그 대가를 치르는 수밖에 내가 치른 대가라면 밤에 잠을 자다가 악몽때문에 식은 땀을 흘리면서 깨어난 게 한두번이 아니라는 거지 아예 잠을 못 잔 날은 더 많고 게다가 돌이 그 인간얼굴에 부딪히면서 머리뼈가 부서지고 틀니가 부 서질 때 난 소리 벽돌로 만든 벽난로에 접시가 떨어진 것같은 그 소리도 내가 치른 대가였어, 그 소리를 30년동안 듣고 살았으니까 그 소리때문에 잠에서 깰 때도 있고 그 소리때문에 아예 잠을 못 잘 때도 있고 그 소리 때문에 대낮인데도 소스라치게 놀라기도 해 집에서 현관을 청소할 때나 베라네 집에서 은식기를 닦을 때나 테레비로 오프라 윈프리 쇼를 보면서 점심을 먹을 때 갑자기  그 소리가 들리는 거야 그 소리 아니면 그 인간이 우물 바닥에 떨어질 때 그 쿵 소리 그것도 아니면 우물에서 그 인간이 나를 부르던 그 소리 덜로오오리이이스..........

베라가 방구석에 전선이 있다거나 침대 밑에 먼지 덩어리가 있다면서 비명을 지를 때 실제로 뭘 보고 그러는지는 몰라도아마 내가 듣는 그런 소리하고 별로 다를 게 없을 거야. 가끔 특히 그 여편네가 쇠약해지기 시작한 후부터 내가 그 여편네 침대로 기어 들어가 여편네를 안고 그 돌멩이 소리를 생각하다가 눈을 감으면 접시가 벽돌로 된 벽난로에 떨어져 산산조각 나는 게 보였어 그런 게 보이면 나도 그 여편네가 언니라도 되는 것처럼 아니 나 자신이라도 한 것처럼 여편네를 끌어 앉았지 우리는 각자 그렇게 겁에 질려서 침대에 누워 있다가 함께 깜빡 잠이 들곤 했어 나는 그 여편네가 먼지 덩어리를 보지 않게 해주고 그 여편네는 내가 그 접시 깨지는 소리를 드지 않게 해주면서 가끔 잠들기 전에 이런 생각이 들 때도 있었지 '그래 이런거다 나쁜 년이 된 대가가 이런 거야 나편 년이 되지 안핬다면 이런 대가를 안치러도 됐을 거라고 말해 봤자 아무 소용없어 가끔은 세상이 여자를 나쁜 년으로 만드니까 바깥이 온통 어두운데 안에서 불을 켜서 그걸 지킬 사람이 나밖에 없다면 내가 나쁜 년이 되는 수밖에 하지만 그 대가라니.. 너무 끔찍해

 

 

 

첫문장을 읽었을 때 생각했다,

이렇게 긴 장편을 이런 주인공의 말투로 계속 끌고 가는 건 지루하지 않을까?

게다가 킹은 남자인데.. 돌로레스라는 나이든 여자의 목소리로 이야기를 끌고 가는게 과연 가능할까..

결국... 가능하더라

무지하고 욕잘하고 배운게 없고 억척스러운 우리 돌로레스 여사는 긴 이야기를 지루하지 않게 펼쳐내며 앞에서 언뜻언뜻 박어두었던 관게없어 보이는 에피소드들을 나중에 하나하나 확실하게 건저 올리며 이건 몰랐지 하고 우리를 놀라게 했다,

왜 베라의 치매를 그렇게 길게 묘사하는지 그녀와의 똥전쟁을 그렇게 이야기하는지 먼지 귀신은 뭔지..그건 결국 그녀가 깔아놓은 밑밥이었고 그건 알차게 수거되었다.

흔히 여성을 상징하는 달이 해를 가리는 개기 일식에 벌어지는 여성의  행동을 보여준다고 한다

그 날이 개기 일식인 것 학대받은 여자 돌로레스가 결국 일을 벌이는 것

남자 작가인 킹이 그렇게 할 수 있는 능력이 탁월하다는 생각을 하기도 하고 그래도 좀 더 심하게 후벼파지 않고 적당한 선에서 버무려 버린 것이 아쉽기도 하지만 어쩌면 딱 맞는 그 지점에서 이야기가 마무리 되었다는 느낌도 들었다.

나쁜 년이 되어야 한다는 것

베라도 돌로레스도 결국 제 손에 피를 묻히고 나쁜년이 되어야 했다는 게 슬펐다

어쩌면 가족을 위해서라기 보다 스스로의 존엄을 위해서 라는 것이 가장 이해받지 못할 이유이면서 동시에 무엇보다 가장 큰 이유일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누군가에게 무시당하고 나 자신의 가치를 떨어뜨리게 하는 것 그것보다 더 괴로운 일이 있을까

돌로레스는 딸 셀리나에게 가한 남편의 폭력과 아이들과 살아갈 돈을 이유르 대지만

그 이전에 자기의 허리를 몽둥이로 치고도 지나간 개를 친것 보다 더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는 남편의 태도에  절망한다. 나는 누구인가...

우물 아래서 조가 괴롭게 불러대던 그 이름 도올로오오리스..... 그걸 되찾고 싶었던 거다,

 

책을 읽으면서 내내 영화  "도희야"가 생각났다

좀 뜬금 없지만... 나를 지키기 위해 결국 괴물이 되어야 했던 도희가 돌로레스랑 겹쳐진다,

거기서 배두나가 분한 경찰은 베라처럼 도희를 사주한 것은 아니지만 어쩌면 어떤 암시를 주었던 건지도 모른다, 행복에 대한 잠깐의 경험과 나를 걱정해주는 눈빛 그런 것들이 도희안에 잠든 괴물을 깨우게 되고 결국 나를  지키는 힘으로 쓰였다,

베라는 아무 말도 한게 없다,

세상의 남편들은 언제나 늘 죽는다는 것  나쁜 년이 되어야 할때가 있다는 것 그걸 슬쩍 흘렸을 뿐인데 돌로레스는 그걸 자기것으로 받아 들였다,

지금 이순간 나쁜 년이 필요한 시점이구나... 라고

그리고 그녀들은 결국 남은 생을 먼지 귀신과 접시 깨지는 소리로 악몽에 시달린다,

묵묵히 견딘다,

모든 일에는 원인이 있고 결과가 따른다,

어떤 것을 얻기위해서는 댓가가 필요하다,

돌로레스도 베라도 당연하게 그걸 받아들인다

외로워지는 것  두려워지는 것 그건 두렵지 않다. 견딜 뿐이다.

둘이 함께 공모하진 않아도 함꼐 견딘다,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된다,

도희도 그 경찰과 그렇게 될 것이다,

서로 지긋지긋하게 의지하며 그렇게 나의 댓가를 견디며 살아갈 것이다,

세상에는 사람의 수만큼 많은 사연이 있고 많은 경우의 수 가 있는데 제도는 법은 그 모든 것을 다 일일이 헤아려 주지 않는다,

그렇게 된다면 법전은 세상에서 가장 두꺼워서 아무도 펼칠 수 없는 책이 되어버릴 것이고

제도는 만들어도 만들어도 끝이 없어진다,

결국 뭉뚱거리고 이렇게 저렇게 나누고 분류헤서 사회를 유지하는 제도가 생기고 법이 생긴다

그 제도 법에서는 보이지 않는 사각지대는 늘 존재한다,

돌로레스처럼

도희처럼

그럴 때 나쁜 년이 되어야 하고 괴물이 되어야 하는 것 그것이 슬프다,

 

가끔 스스로 잘 알면서도 못된 년이 되어야 하는게 아직은 여자들의 삶이다,

뭐라고 뭐라고 하더라도 스스로 악해지는 것 결국 스스로 망가지겠다는 다짐이고 스스로 댓가를 치루겠다는 의지이기도 하다

누가 그녀들에게 돌을 던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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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5-09-30 15: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ㅎ 저도 같은 생각을 했습니다. 아니 남성 작가가 무슨 1인칭 여성 목소리냐. 그것도 처음부터 끝까지 ? 근데 그게 킹의 힘이더군요. 톰 고든을 사랑한 소녀에세는 아예 어린 여자아이가 등장합니다. 숲에서 길을 잃은 소녀.... 이걸로 과연 300페이지 쓸 수 있겠어, 하다가 무리없이 끌고 가는 솜씨에 두순두발 다들었습니다.

푸른희망 2015-09-30 21:20   좋아요 0 | URL
그렇죠.. 전 잠시 킹이 여성호르몬이 많이 분비될 때 쓴건가 싶었네요..
톰 고든을 사랑한 소녀도 읽어봐야겠군요
킹이 사실 이렇게 대단할 줄 몰랐어요. 그저 호러나 환상적인 이야기를 쓰는 작가라고 무지하게 알고 있었거든요... 올 가을 킹과 만나야겠습니다
또 좋은 거 있음 추천 부탁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