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든애플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67
마리 유키코 지음, 최고은 옮김 / 비채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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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세상은 넓고 이상한 사람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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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자에 돌 자갈 모래 물을 담는 문제가 있다,

어떻게 넣으면 가장 많이 상자에 넣을 수 있는가

 

 

 

 

 

 

 

 

 

답은 가장 큰 것부터 넣는다 이다

가장 큰 돌멩이를 넣고 그다음으로 큰 자갈을 사이에 넣는다

큰 덩어리일수록 사이사이 빈 공간이 크게 생긴다

그 사이의 공간을 작은  자갈로 채우고 또 그 사이의 공간을 모래가 채우고

그리고 보이지 않은 틈을 물이 채운다,

가장 큰 것부터

그렇게 빈곳을 채운다,

 

사람의 관계도 그렇다

첫눈에 들어오는 것 누구에게나 보이는 것

그것이 가장 먼저 닿는다,

얼굴 말투 표정 몸짓

익숙하고 친근한 그것이 먼저 다가오고

그 이후 취향이 보인다,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하고 싶은 것  피하고 싶은 것

그건 조금만 더 알게 되면 드러난다,

취미  옷입는 취향 음식에 대한 까탈스러움 소탈함

그리고 더 욱 깊이 들어가 마음이 보인다,

이런 표정은 이런 마음이구나 저런 표정은 저런 것이구나

그러나 알아가도 보이지 않는 틈이 있다,

물이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은 눈에 드러나지 않기도 하는 법이다,

왜 저럴때 화를 내는지

별 거 아니었던 거 같은데 민감하게 구는 건지

어제까지도 아무렇지 않았던 일이 왜 지금 새삼 걸리는 것인지,,,

그렇게 관계는 모든 틈을 메울 수 없다,

나 자신도 나 자신의 모든 틈을 속속들이 알 수 없다,

 

타인은 그러서 두렵고 불안하다,

동시에 매혹적이다,

나와 다르다는 것 내가 모른다는 건 불안과 동시에 유혹이다,

모르니까 알고 싶고

모르니까  외면하고 싶다

익숙함에서 편하고 싶으면서 동시에 타인에 대한 호기심이 생긴다,

 

그리고 그 타인과 나 사이의 빈틈을 매운다

조금씩 큰 것부터 보이는 것부터 내가 이해할 수 있는 것부터

 

책을 읽으며 생각했다,

두 주인공이 만나서 이야기를 했다면

서로 얼굴을 보고 대화를 한 것이었다면

이렇게 깊은 내면이 드러나지 않았을 것이다,

얼굴은 가면이기도 하다

내가 쉽게 숨길 수 있고 보고 싶은 것 보이는 것만 본다,

그러나 틈을 가진 두 사람이 보지 않고

편지를 쓴다는 건 어쩌면 대상이 있긴 하지만 나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이다,

얼굴을 보지 않으니 맞출 필요도 없고 눈치 불 필요도 없고 미루어 짐작할 필요가 없다

대상은 있으되 오롯이 집중되는 건 나 자신이다,

서로 편지가 오가지만

어쩌면 일방적인 내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렇게 두 사람의 빈틈이 메워간다

내가 알지 못했던 내모습도 타인의 편지에서 찾아낸다,

어쩌면 일방적인 소통이기도 한 편지가 나를 비춰준다,

그게 편지의 속성같다

 

아직 틈이 많은 순간은 내용이 추상적이다,

마음을 이야기하고 감정을 이야기하면서도 이성적이고 무언가 나를 포장한다

그러나 점점 틈이 메워지는 동안 이야기는 구체적인 스토리를 가지고 사적이고 소소한 에피소드들로 이어지면서 흐름을  놓치지 않는다,

아픈 아이 이야기  자주가는 카페 이야기

현재 동거하는 여자 이야기 새로운 사업 이야기

틈이 어느 정도 메워진 후 이야기가 생기고 흐름이 생겼다,

 

그냥 주절주절 하는 이야기속에 내마음이 있고 내 의지가 드러난다,

묘사로 시작해서 이야기로 마무리된다,

그리고 틈이 메워지고 두 사람은 그렇게 끝이 난다,

다 메워진 상자는 이제 잘 놓아두면 된다, 다 채웠으니까

편안하고 안정감 있지만 관심에서는 멀어지기 시작한다,

모른다는 것이 주는 빈틈이 주는 긴강감과 호기심은 없다

대신 편하고 안도감이 있다,

관계는 그렇게 된다,

잊혀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이제 그 상대를 알았다고 느낀들 그게 전부는 아니다,

아마 알것이다, 이제 이해할 만하구나

빈칸은 채워졌으나 내가 미처 보지 못한 많은 빈칸이 있을 것이다,

모든 칸은 채울 수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타인이란 언제나 내겐 완전한 존재가 될 수 없는 법이니까

 

저자가 말하려는 것이 아닐지 모르겠지만

책을 덮고 계속 관계에 관해 생각했다,

내가 맺은 관계들

안다고 여겼던 타인들

모른다고 무심하게 지나친 타인들

짧거나 길거나  오래되었거나 새로운 것이거나

그런 인연이 예사롭지 않다고 그리고 우리 삶에서 어떤 모퉁이가 나올지 모를 일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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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수
미야모토 테루 지음, 송태욱 옮김 / 바다출판사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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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 편지를 쓰면서 저는 당신에게서 받은 모든 편지를 다시 읽어보았습니다,

여러 가지 것들이 마음에 떠올랐습니다, 어느 것이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저만의 마음의 무늬같은 것입니다, 하지만 딱 하나 글로 전할 수 있는게 있습니다, 자신의 목숨이라는 것을 본 당신은 그것에 의해 살아가는 것이 무서워졌다고 썼지요 하지만 사실은 짧다고 하면 짧다고 할 수 있고 또 길다고 하면 길다고 할 수 있는 이 인생을 살아가기 위한 가장 강력한 양식이 되는 것을 본 것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당신에게 보내는 마지막 이 편지를 대체 어떻게 맺어야 좋을지 저는 펜을 쥔 채 어찌 할  바를 모르고 있습니다, 그건 그렇고 저는 왜 모짜르트의 음악에서 그런 말을 생각해낸 것일까요? 살아 있는 것과 죽은 것은 어쩌면 같은 일일지 모른다... 마치 어딘가에서 떨어져 솟아난 것 같은 뜻밖의 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말을 편지에 툭 써넣은 일이 당신에게서 제가 몰랐던 많은 것을 배우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결코 말하지 않았을 말 '모짜르트'의 주인이 마치 저에게서 들은 것으로만 착각했던 말 우주의 불가사의한 구조 생명의 불가사의한 구조라는 말이 지금 저에게 깊은 전율같은 감정을 느끼게 합니다,

나이프로 자신의 목을 찔러 죽은 세오 유카코씨  죽여 있는 자신을 바라모았으면서도 다시 살아돌아온 당신 나이 들어 한층 일에 집중하고 있는 쓸쓸한 아버지 또 하나의 숨겨진 가정을 갖고 그 여자와의 사이에 태어난 세 살짜리 여자아이의 아버지로서 고심하고 있을 가쓰누마 소이치로  당신이 고양이에게 먹히는 쥐를 봤던 바로 그 시각에 근처 달리아 화원의 벤치에 앉아 무한한 별들을 바라보던 저와 기요타카 우리의 생명이란 얼마나 불가사의한 볍칙과 구졸르 숨기고 있는 것일까요?

 

 

얼음이 소리없이 녹아내리는 모습

커다란 덩어리의 얼음을  상온에 꺼내놓고 잊고 있다가 무심하게 돌아보니 물이 흥건해져 있고 얼음이 녹고 있는 모습을 보는 기분?

소리없이 제 몸을 녹이는 얼음 그리고 흘러내리기 시작한 물을 바라보는 막연하고 조용한 순간

얼음은 소리없이 언제부턴가 녹고 있었고 그리고 아마 또 어느 순간 제몸을 녹여 아무 것도 남기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면서  아무짓도 못하고 지켜보고 있는 기분

이 책을 읽는 느낌이 그렇다,

 

세상에 유기체가 아닌게 있을까?

모든 것은 생성되고 성장하고 갈등하고 그리고 소멸한다,

세상에 사라지지 않고 영원하다는 것은 그 형체가 존재하지 않은 추상적인 정의뿐이란 생각을 한다,

사랑 행복 이성 평화 자유 평등....

형태는 없지만 존재하는 그런 어떤 단어의 정의만이 영원할 뿐

그 단어들조차 인간사에 스며들면 스스로 만들어지고 성장하고 갈등을 격고 소멸할 뿐이다,

세상 모든 것들이 플라스틱처럼 썩지않고 계속 삶을 이어간다면 너무 징그럽지 않겠는가

목숨이 달린 것이든 어떤 추상적인 감정이든 심지어 사람들이 모인 어떤 집단도 그렇게 스스로 유기체처럼 만들어지고 성장하고 그리고 그렇게 사라져야 할 필요가 있다,

그 기간이 길든 짧든... 그게 이 세상의 변하지 않은 평등한 질서라고 생각하고 싶다,

 

이 소설은 그런 유기체같은 관계 감정에 대한 이야기다,

한 때 부부였으나 어떤 사건으로 남남이 된 아키와 아리마는 우연히 놋코누마로 오르는 케이블카에서 재회를 한다, 짧은 만남이지만 강렬했던 그 순간이후 두 사람은 편지를 주고받고

그리고  10년간 방치된 얼음이 상온으로 드러나 녹아내리는 것처럼 마음을 녹여나간다,

상대에 대한 배신감 상실 그리고 스스로에 대한 자책과 분노로 어긋난 삶을 살던 두 사람은 상대를 알아가게된다, 몰라서 비워놓았던 그 빈칸을 스스로 채워나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렇게 녹아 형체가 사라진 얼음처럼 그들의 감정 그리고 관계도 그렇게  사라지게 두었다, 미련하게 붙잡을 이유가 없고 필요가 없다

만남이 있고 헤어짐이 있고 행복이 있고 불행이 오고 오해가 있고 이해가 있었다,

그것으로 되었다,

 

안다고 믿었던 상대에 대해 내가 너무나 많은 빈칸을 가지고 있었다는 깨달음

내가 몰랐고 알고 싶지 않다고 고집스럽게 믿었던 상대를 알아가면서 마음은 녹아간다,

이해하게 되고 빈칸이 채워지면서 둘은 이제  비로소 헤어져야 할 시간임을 알게 되고

내 삶에 있는 나의 빈칸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나를 이해하면서 누군가를 이해할 수도 있지만

누군가 타인을 알아가면서 그 방식을 나에게 적용할 수도 있다,

타인을 통해 나를 알아가는 것

서로의 삶에 나 있는 구멍을 메워나가게 되는 것

그 일들이 서술된 소설은 무척이나 아름답다,

그렇게 서로에 대한 이해가 비단에 아름답게 수놓아지듯이 두 사람의 서신으로 완성된다,

 

다 읽고 난후

이 책의 원서가 읽고 싶어졌다,

묘사가 아름답고 단어 하나하나가 아름답고 적확하다는 기분?

원작도 그런걸까?

아니면 번역자가 잘 번역을 한 걸까?

번역된 소설에서 우리 소설처럼 아름답고 맛갈나는 단어가 나오는게 신기하다

(어쩌면 내가 우리말에 무지한 탓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다시 '환상의 빛'을 읽어봐야겠다,

아키와 아리마의 편지를 읽으며  내내 우미코가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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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 고든을 사랑한 소녀 밀리언셀러 클럽 50
스티븐 킹 지음, 한기찬 옮김 / 황금가지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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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 고든을 사랑한 `소녀`가 아니라 소녀에게 사랑받은 `톰 고든`이 주인공
개고생은 소녀가 목숨걸고 하지만 결국 빛나는 건 톰 고든이다, 그것때매 지루해도 끝까지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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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학자를 붙인다는 건 굉장히 어마어마한 일이예요 어떤 건 아직 '학'자를 안붙이잖아요. '술'일 수도 있는 거고 영어에서도 '-ology'  '-tics'등 다양하게 구분하죠. 제 전공인 문화학같은 경우도 '문화학'이 아닌 ' 문화연구' 라고 하거든요. 'culturral studies' 라고, '학'자를 붙인다는 것은 어마아마한 일이예요  체계를 만들어가야하는 일이죠. 그런데 이모든 걸 다규격화해내는 거 같아요. 공부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삶의 영역에서 배워야 하는 것들까지 게속해서 식민화하고 규격화하는 데 그렇다면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가  생각해봤을 때 구가지가 있는 것 같아요

첫번째는 시장의 창출이예요. 이 시장은 어마어마하게 만들어지거든요. 가르치고 배우고 하는 걸로 해서 교수직 만들어지고 학생들 등록금을 내고 하는게 엄청난 시장이죠. 또 하나는 한국과 같은 경우가  "이 분야가 먹고 살 만한 곳이다' 그러다 보면 공정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경쟁이 심한 사회이다 보니까 그렇겠지요. 그리고 그러자면 평가가 표준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표준화된 평가는 곧 자격증을 의미하죠. 그리고 자격증이 만들어진다는 것은 시험이 있다는 것인데 시험이란 능력의 위계를 상정하는 것이죠. 결국 그렇게 되어야만 공정하다고 생각하면서 능력과 자격을 동치시키는 것이 한국에서는 굉장히 재미있는 현상이라고 생각해요.

 

 

다양한 배움이 출현해야 할 곳에서 다양한 배움이 출현하지 못하고 다양한 영역을 획일적인 배움으로 식민화 한 상태가 된거죠. 다른 나라와 비교해도 최악의 상태를 만들어가고 있어요. 다양성조차도 힉일화해버리는 거죠

또하나 픽업아티스트같은 직업이 만들어지는 게 사람들이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인것도 있지만 더 무시무시한 것은 이걸 가르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예요. 그러니까 학원이 만들어지는 거예요. 그러니까 제가 요즘 교육쪽에서 강의하는 주제중의 하나가 아까 말씀드린 거처럼  ' 배울 수는 있되 가르칠 수 없는 게 있다'예요 사람들이 교육에 대해서 괸ㅇ장히 착각하는 것 중의 하나가 '가르치면 배운다'예요 그런데 어떤 건 가르칠 수 있지만 어떤 건 가르칠 수 없다 그리고 어떤 건 가르칠 수 없는대 배우는 것이 있다 그것을 파가름하는게 저는 교육의 핵심이라고 생각해요.

최근에 강의한 주제가 가르칠 수 없는 것 그러나 배울 수 있는 것이예요. 인성 교육 비판하면서 제가 하는 얘기인데요 "효자가 되라" 이걸 어떻게 가르쳐요? 효자는 자기가 살면서 돼어야 되겠다고 생각하면서 배우는 거거든요. 학교라고 하는 건 여기 와서 배우는 것도 있지만 우리가 가르치겠다 가르칠 수 있다 라고 얘기하는 것이고 가르칠 수 있으니까 거기에 체계를 만들어서 학문으로 만드는 것이고 그 정점에 대학이 있는거죠. 원래 가르칠 수 없는 것들 이성을 사귀는 법 남들에게 사랑바든 법 상사와의 관계 이런건 가르칠 수 없는 것이거든요. 그건 부딪히면서 경험을 통해서 배우는 건데 이걸 지금 다 가르칠 수 있는 것으로 만들어놨죠.

 

 

 

그런 맥락에서 보면 삶이라는 것이 굉장히 허약해지고 빈약해지고 있는 것이죠 공부는 삶의 보조이고 살아가기위해서 공부하는 것인데 지금은 거의 공부를 위해 살아가는 것이 되었어요.  삶의 영역에서는 배움이 일어나지 않고 있고 배움이 일어난다 하더라도 그것을 배움으로 인지하지 못하게 되고 배움이 일어나더라도 계속 불안해지게 되는 거예요. 그럴 바에는 차라리 내가 학원 가서 깔끔하고 매끄럽게 배우는 게 속 편하겠다는 생각응ㄹ 하게끔 되는 것 같아요. 공부 중독인데 공부가 없어요. 그리고 결국 삶이 사라지는 거죠.

 

공부중독의 비극적 역설은 여기에 있는 것 같습니다, 삶의 문제를 풀기 위해서 공부를 하는데 공부와 삶을 분리 시키고 공부에 올인하다 보니 삶이 더욱더 빈약하고 허약해지고 있다는 것 그 빈약함과 허약함을 채우기 위해서 가르칠 수 없는 것을 또 가르칠 수 있는 것처럼 만들면서 삶은 공부의 식민지로 전락하고 있고요

이 과정에서 공부가 교육화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널벡 보면 삶은 그 자체가 공부의 과정 배움의 과정이잖아요. 인간은 살면서 살아가기 위해서 늘 배울 수 밖에 없죠. 그걸 우리가 공부라고 할 수 있을 거예요. 반면 교육은 그것을 단계적으로 구분되어 제도화한 것이라고 할 수 있어요. 교육은 반드시 필요하죠  가르치지 않으면 배울 수 없는 것들이 있기 때문이예요 그러나 공부 전체가 교육이 되는 것은 매우 위험합니다, 가르칠 수 없는 것도 가르칠 수 있는 것처럼 만들어 버리거든요

이런 점에서 우리가 이 책에서 말하는 공부 중독이란 사실은 교육 중독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 바닥에는 삶의 위기에 대한 초조함이 크게 작동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중간이라도 가려면 막차라도 타야하고 그 막차를 타는 유일한 방법이 교육 자본을 축적하는 공부라고 생각하다 보니 이 상황이 더욱더 악화되고 있는 것 아닌가 합니다, 어찌되었건 교육자본이 신분을 상승시키고  삶을 안정시키는 첩경이었던 시절이 있었으니까요. 이 신화에서 벗어나야 할 때 벗어나기는 커녕 더욱더 강화하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고 그러다 보니 삶이 더욱더 빠른 속도로 망가지고 있고요

 

 

 

우리는 왜 공부를 하는 걸까요? 공부는 성장하기 위해 하는 것입니다, 개인의 능력이 신장되는 것이건 인격이 성숙하는 것이건 또는 시민으로서 성장하는 것이건 공부는 성장을 하기위해 하는 것이죠. 그러나 지금 한국에서의 공부는 성장과 는 점점 더 거리가 멀어지고 있어요 성장과 아무 상관없는 공부를 공부라고 하고 있고 그걸 청소년들에게 강요하고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저는 학생들이 "이걸 공부한다고 제가 뭔가가 될 수 있나요?" 라고 하는 말을 단지 실용적인 질문으로 이해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해요. 이 말을 직업을 구하고 경제적으로 성공하는 데 혹은 살아가는 데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는지를 묻는 것을 휠씬 넘어서는 적극적인 질문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바로 이걸 공부하느 것이 자신을 무엇으로 성장시키는가 에 대한 질문이죠.

이 문제에 답을 해줄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깝게도 한국 사회가 사람의 성장에 대해  성공을 제외하고는 아무런 답도 줄 수 없다는 것을 반증합니다, 바로 이 점에서 공부를 통해 성공할 가능성이 거의 없는 대다수의 학생들이 공부를 해야한다는 당위에 대해 수긍을 하지 못하는 것이죠. 이들을 붙들어 놓고 지금'공부'를 시키는 것은 정말 무의미한데도  그저 맹목적으로 공부를 시키고만 있어요. 공부를 하는 자가 아니라 공부를 시키는 자가 공부말고는 시킬 숭 ㅣㅆ는 게 없다보니 그저 공부를 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시키는 자의 '공부중독'이예요

삶이 성장의 과정이라면 공부는 성장하는 삶을 위한 도구여야 합니다, 지금과 같은 공부는 삶을 식민화하는 도구일 뿐이예요. 이런 공부를 그만두자는 것입니다, 대신 공부의 자리를 원래대로 돌려 놓아야 되요 당대의 문제를 파악하고 혜처나가는 삶의 지례 기술을 익히는 과정으로서의 공부 말이예요. 청소년들만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우리 어른들도 잘 모르고 있어요. 무능력하기는 어른들도 매한가지입니다, 공부라는 맥락에서 보면 어른과 청소년 모두가 처한 동시대서이죠.

바로 이런 점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청소년을 우리와 더불어 당대를 살아가고 있는 동시대인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동시대인으로서 이 난국의 시대를 헤쳐갈 삶의 기술을 배우는 성장의 도구로서의 공부를 해나갈 수 있을 거예요.

이것은 청소년들이게 필요한 만큼이나 어른들에게도 어른읃ㄹ만큼이나 아이들에게도 필요합니다, 청소년들을 문제화하지 말아야 합니다, 공부와 관련한 우리 모두를 문제화해야합니다,

 

 

왜 공부를 해야하나.. 하는 질문에 현명한 대답이라고 하는 것이 떠돈 적이 있다,

내가 지금 무엇이 되고 싶고 무엇을 하고 싶다는 명확한 꿈이 있는게 아닐지라도

나중에 내가 무엇이 되고 섶거나 무엇을 하고 싶어지는 순간이 올때

그때 지금 하지 않은 공부가 내 발목을 잡지 않기 위해 나는 지금 공부를 한다

아니 공부를 해야한다는 ,....

 

꿈이 없다고 무얼 해야할지 모르겠다는 아이에게 나도 보여준 적이 있고

이 말을 들은 적이 었는 작은 아이가 그래서 공부를 해야하지 않을까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결국 공부다,

무엇이 되기 위한 준비 언젠가 이룰 무언가를 위해 지금 이순간 내가 만능감을 느끼기 위해

우리는 공부를 하고 공부를 해야한다,

'공부하고 있다'는 말은 누구나 수긍을 할 수 있다,'

노력하고 있다는 의미이고 준비하고 있다는 의미이고 지금 나는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당위성을 준다, 그렇게 공부를 하지만 정작 타석에 들어서서 헛방망이를 휘두르거나 공을 맞추는 일은 두렵다, 공부하는 순간도 불안하지만 공부를 마치는 그 시점이 돌아온다는 것도 두렵다,

그렇게 모두가 실패일 줄 알면서 이건 아니지 않을까 하는 걸 알면서 그 패턴에서 내려올 수 없고 계속 맴돈다,

헛짓도 함꼐하면 마음이 놓이는 법이다,

나만 헛지랄을 하는게 아니라는 게 큰 위안이 되고 그 지랄이 언젠가 성공으로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가 있다,

 

아이가 눈물을 뚝뚝 흘리며 말한다,

미안해 공부를 못해서...

공부를 못해서 분하고 화가 난다는 게 아니라 부모에게 미안한 일이 되어버린다,

당연히 공부를 해야하고 하는 이상 잘 해야하는데 못한다는 것

그건 죄송스러운 마음이 되었다,

달리기를 꼴지 했다고 노래를 못한다고 눈물을 흘리며 부그러워히지 않는다,

심지어 길거리에 슬쩍 쓰레기를 버렸다거나 새치기를 했다거나 어른에게 못본 척 인사를 안했다고 울며 고백하는 일은 없다,

공부는 그렇게 되어버렸다,

이 패턴을 버려야하는데

사실 그 대안은 두렵다,

끝없이 달리는 열차에서 단백질 스틱을 먹으며 견디는게 아니라는 건 알지만

달리는 열차에서 내리는 일은 더 두려운 것처럼

공부는 괴물이 되었고...

대안은 모두가 알면서 아무도 하지 않는다,

 

책은 모든 문제점이 파해쳐지고 분석되어 있지만 대안을 주지 않는다

아마 대안을 줄 수 없을 것이다,

그 대안이란게 어떤 선동적 구호가 될 수는 있지만 정말 바라는 답은 아닐테니

이게 아니라고 하면서 여전히 누군가가 답을 주기 바라는 것

그것역시 공부 중독이다,

나 역시 지금의 만능감에 만족하면서 지금 잘 하고 있는 줄 착각하는 중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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