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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파 라히리 지음, 서창렬 옮김 / 마음산책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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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리뷰는 아니다.

 

책을 다 읽었다,

산 지  일년이 조금 되었을까? 책장에 꽂아놓고 계속 노려보고 부담만 느끼다가 펼쳐들었다,

아니 이전에도 읽었었다,

첫부분 수바시와 우다얀의 소년 시절의 이야기를 읽다가 책장을 덮었다,

이 책은 그냥 순식간에 그냥 읽어치워서는 안되겠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휘리릭 읽어버릴 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인도역사를 모르고 70년대의 복잡한 사정을 모르니까 라고 핑계를 대기도 했고

첫 몇장면에서 뒤의 이야기가 충분히 유추되고 그게 마음이 짠해져서 이렇게 읽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했던 거 같다

그렇게 버려두고 계절은 바뀌었다,

그리고 어제 다 읽었다,

내 예상이 맞는 부분이 있고 아닌 부문도 있었다,

이렇게 3대에 걸친 이야기가 펼쳐지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우다얀과 수바시의 이야기는 맞았지만 그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 가우리의 등장은 예상치 못했다

 

인도에 남아 혁명에 가담한  적극적이지만 서툴렀던 우다얀

현실을 생각하고 미국으로 떠났지만 내내 이방인으로 돌면서 마음 한 구석에 빚진 기분을 평생 안고 살아가는 수바시

그들 사이에서 아내로 제수로 다시 아내로 살아내다 자기 삶을 찾아 떠나버린 가우리

그리고 그들의 아이 벨라

모두가 제각각 제가 서있는 곳에서 자기가 바라보는 곳을 향해 삶을 시작한다,

그 시작점은 같았을 지라도 한걸음 한걸음 내딛여짐에 따라 방향이 달라지고 무늬가 달라졌다,

형제였어도 부부였어도 그들은 제각각의 삶을 살아갔다,

이야기는 우디얀에게서  수바시에게서 가우리에서  그리고 벨라에게서 조금은 두 형제의 엄마로부터 보여지고 느껴지고 생각나는 것들을  서술한다,

각각 자기의 입장이 있다, 누구의 삶이 누구의 삶보다 못하다거나 누구에게 피해만 준다고 할 수도 없엇다,

물론 가우리는 많은 부분을 수바시에게 빚을 지고 살았다,

수바시가 동생에게 느끼는 빚진 기분과는 다르게 정확하게 무게를 달수 있는 형태의 빚을 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인도를 떠나게 했고 새 삶을 살게 했고 그녀가 원하는 공부를 가능하게 해주었던 남자를 배신하고 떠나는 그녀가 곱진 않지만 미워할 수는 없었다,

                                

                                         어쩔 수 없었다,

 

뭐라고 해도  비난받을 수밖에 없는 변병이지만 어쩔 수 없었다,

가우리가 느낀 답답함 죄스러움  그리고 도무지 자기 옷을 입은 것 같지 않은 삶에서의 해방이 절절하게 와 닿았다, 누구나 모성이 있는게 아니고 누구나 남들처럼 흉내내며 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녀의 선택을 적어도 나는 지지한다,   불쌍한 년보다는 차라리 나쁜 년이 낫다,

 

수바시의 삶은 어딘가 스토너를 연상시킨다,

미국으로 떠나와 자리 잡은 그곳을 한번도 벗어나지 않고 삶을 이어온 그의 모습이 미주리 대학을 떠나지 않고 견뎌온 스토너와 겹쳐진다,

자기만의 시간속에서 삶을 견디는 방식으로 표현하고 저항해온 두 남자는  답답하고 밉기도 하지만 그래서 더 돌아보게 만든다,

(그래도 수바시가 딸에 대해 더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어 다행이다 싶기도 했다

적어도 앨리스보다 벨라는 행복할 것같다)

 

신념과 투쟁으로 짧은 삶을 마감한 우디얀

그는 순수하지만 서툴렀고 다정하지만 이기적이었다,

누군가를 해방해야한다고 하면서도 집에서는 대접받기만을 원했던 모순적인 그의 모습은 낯선 타인이 아니다,  그런 그이기에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고 가우리를 끌어들인 행동의 결과가 평생 가우리에게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는 죄책감을 남겼다

뭘 그런 걸로... 라고 하기엔 가우리에게 남은 무늬는 너무나 선명하다,

 

누군가에게 영향을 받고 휘청거리게 되고 내가 원하지 않은 무늬를 그리면서도 사람들은 제각각의 삶을 살아낸다,

뭐라고 하든 그것은 나의 삶이고 나의 문제였다,

제각각 누구에게는 상처가 되고 누구에게는 무심함이 되더라도 내가 원하는대로 살아갈 수 밖에 없음이 슬프지만 단단하다

자기만의 공간..

책에서는 가우리만이 자기만의 공간을 원한다고 표현되어있지만

결국 누구나 자기만의 공간을 가지고 그 속에 웅크린다,

벨라의 옷장속도 그런 공간이고  평생 한 연구소를 떠날 수 없는 수바시의 그 대학도 그의 공간이다, 인도 켈거리가 우디얀의 공간이듯이

그들의 어머니는 이층 테라스가 그녀의 공간이다, 그곳에서 신선한 공기를 맞으며 희망도 보았지만 결국 가장 잔인하게 아들의 죽음도 목격하는 그녀만의 공간이다,

 

책은 세 사람 그리고 그 주변의 사람들을 이야기하지만

공간을 이야기하고 시간을 이야기하며

사람이 공간과 시간 속에서 어떤 무늬를 그리고 서로의 무늬에 침범하는지 선명하게 보여준다,

저지대에 고여서 흐르지 않은 물처럼 때로는 서로 멈춰서 엉기기도 하지만

끝내 말라버린 저지대의 물기처럼 그렇게 제각각의 삶으로 돌아간다,

 

두께에 비해 쉽게 읽혔고

쉽게 읽힌데 비해 오래오래 생각하게 한다,

단편보다 별로야 별로야... 하고 중얼거리면서 마지막장을 덮었고 그리고 그 말은 이제 안하기로 한다 더 낫다 아니다 라는 평가가 의미가 없다,

그녀는 좋겠다,

이제 하고 싶은 말을 다하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문득 든다,

다음 책은 어쩌면 조금 오래 시간이 걸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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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파 라히리 지음, 서창렬 옮김 / 마음산책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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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제각각의 시간을 견디며 산다, 각각의 시간은 다르게 흘러간다, 느리거나 빠르게 직선이거나 굽어져서 누가 누굴 탓하겠는가 그것이 삶이다, 살아내는 것 그 단순함이 가장 강한 것이다. 그녀의 다음책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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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반년만에 책을 다 읽었다,

알리딘이었던거 같은데 누군가의 서재에서 이 책을 소개받고 장바구니에 담아두었다가 중고서점에서 구입했었는데 그때 어디서 추천을 받았는지 도통 기억나질 않는다,

내가 혼자 이 책을 구입할 리가 없다,

이런 책의 존재를 알 리도 없었으텐데

 

첫장은 무심하게 지하철 안에서 폈다,

아주 재미있지는 않겠다 싶었지만 그래도 읽을 만하다 싶었고 의외로 쉽게 책을 놓을 수가 없었다 대단한 사건이 일어나지도 않고 묘사가 이어지고 속 마음이 이어지는 문장들을 두세번 반복해감 읽으면서도 꽤 괜찮구나 하는 생각을 했던거 같다,

쉽게 다 읽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고 양이 많지 않아서 금방 읽을게 두려웠었다,

아껴 읽어야지 했다가 중간에 다른 책들이 끼어들고 쉽게 손에 잡히지 않았고 계속 순서에서 밀려나고 지하철 안에서 읽기엔 뭔가 아쉬운 생각도 들고 그래선 안된다는 생각도 들었고

그렇게 반년을 끌었다,

그리고 루스의 이야기를 다 읽었다,

구시의 이야기이고 동생 루실의 이야기이고 할머니 엄마 할아버지 이모의 이야기다,

house keeping 이라면 집안일이란 의미일텐데

집을 쓸고 닦고 가꾸며 삶을 유지하는 사람들.... 이란 말일까

정착민들이 집을 가꾸고 닦고 쓴다, 언제든 떠날 사람에겐 불필요한 노옹이 집안일일 수도 있다, 먹고 자고 생활하는 것   그것도 집안일이지만 그 이상의 가꾸고 보존하는 일도 집안일이다,

훌쩍 떠날 사람이라면 그렇게 미련을 두지 않는 법이니까

할머니와의 삶이 끝나고 이모와의 삶이 시작되면서 불안해졌다,

언제 떠날까

이모가 아이들을 두고 떠날까? 아니면 그래도 책임으로 house keeping을 이어나갈까?

집은 있지만 불안하게 떠도는 자매가 자꾸 걸렸다,

훌쩍 나갔다가 이슬에 젖어 들어오는 이모도 불안했다,

제목과 이렇게 안맞는 소설은 뭐지 싶었다,

내가 가서 그 집의 먼지를 털어내고 거미줄을 치우고 쌓여있는 종이와 깡통들을 치워주고 싶었다, 아이들을 좀 씻기고 머리도 자르고 옷도 빨고...

도무지 생활의 묘사는 없고 늘 쌓여있는 먼지 마을의 중심이 고여있는 호수

불안한 철도와 기차이야기들 뿐이다,

눅눅한 계절  건조한 계절  도무지 씻는 묘사는 보이질 않아 책장을 넘기며 근질거렸다,

그래서 반년이 걸렸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끝이 났다,

루실은 남았고 루스는 떠났다,

뭐가 옳고 그르고 잘했고 잘 못되었고는 없다,

선택은 각자의 몫이고 책임만 지면 된다,

누구 탓을 할 필요도 없이,,....

 

내가 이 책을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가 다시 궁금해졌다,

누군가의 글에서 보고 알았을텐데 어떤 글이었는지 궁금하다

도무지 기억나질 않는다,

 

다른 건 모르겠고 루스가 묘사하는 창밖에서 들여다 보는 누군가의 얼굴에 대한 것만 자꾸 머리속을 맴돈다,

내가 문득 내다보는 창밖에 낯선 얼굴이 내 집안을 나를 들여다 보고 있다면....

그 더럭 놀랄만한 상황이 자꾸 걸려서 계속 내 집 창밖만 보게 된다,

 

이 책을 다른 님들은 어떻게 읽었는지 몹시 궁금하다,

언젠가,,

나~~중에 다시 읽어야겠다,

지금은 몹시 피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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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수용소에서 (양장) - 빅터 프랭클의
빅터 프랭클 지음, 이시형 옮김 / 청아출판사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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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3대 심리학 이론이라고 할 수 있는 로고테라피의 창시자 빅터 프랭클의 대표적인 저서

 

가혹한 정신적 육체적 스트레스를 받는 그런 환경에서도 인간은 정신적 독립과 영적인 자유의 ㅈ취를 간직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진리랑 인간에게 모든 것을 빼앗아 갈 수 있어도 단 한 가지 마지막에 남은 인간의 자유 주어진 환경에서 자신의 태도를 결정하고 자기 자신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만은 빼앗아 갈 수 없다는 것이다,

 

수면 부족과 식량부족 그리고 다양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는 그런 환경이 수감자를 어떤 방식으로 행동하도록 유도할 가능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최종적으로 분석을 해보면 그 수감자가 어떤 종류의 사람이 되는가 하는 것은 그 개인의 내적인 선택의 결과이지 수용소라는 환경의 영향이 아니라는 사실이 명백히 드러난다, 근본적으로 어떤 사람이라도 심지어 그렇게 척박한 환경에 있는 사람도 자기 자신이 정신적으로나 영적으로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를 선책할 수 있다는 말이다, 강제 수용소에서도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삶으로부터 무엇을 기대하는가가 아니라 삶이 우리로부터 무엇을 기대하는가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삶의 의미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것을 중단하고 대신 삶으로부터 질문을 받고 있는 우리 자신에 대해 매일 매시간마다 생각해야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대답은 말이나 명상이 아니라 올바른 행동과 태도에서 찾아야 했다, 인생이란 궁극적으로 이런 질문에 대한 올바른 해답을 찾고 개개인 앞에 놓여진 과제를 수행해 나가기 위한 책임을 떠맡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까지 시련을 겪어오면서 다른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것을 잃은 적이 있담ㄴ 그것이 무엇인지 한번 스스로에게 물어보라고 했다, 나는 의외로 그들이 대처할 수 없는 것을 잃어버린 경우는 거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를 죽이지 못한 것은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들 것이다"  니체

 

 

                                            -강제 수용소에서의 체험-

 

 

 

로고테라피는 환자의 미래에 촛점을 맞춘다, 말하자면 미래에 한자가 이루어야 할 과제가 갖고 있는 의미에 초점을 맞춘다는 말이다,

 

의미를 찾을는 인간의 노력이 마음의 평온을 가져오기보다는 긴장을 불러 일으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사람은 어느정도 긴장 상태에 있을 때 정신적으로 건강하다

그 긴장이란 이미 성취해 놓은 것과 앞으로 성취해야할 것 사이의 긴장 현재의 나와 앞으로 되어야 할 나 사이에 놓여있는 간극 사이의 긴장이다, 이런 긴장은 인간에게 본래부터 있는 것이고  정신적으로 잘 존재하기 위해 필수 불가결한 것이다,

 

로고테라피에 의미한 우리는 삶의 의미를 세가지 방식으로 찾을 수 있다,

1) 무엇인가를 창조하거나 어떤 일을 함으로써  2) 어떤 일을 경험하거나 어떤 사람을 만남으로써   3) 피할 수 없는 시련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기로 결정함으로써 삶의 의미에 다가갈 수 있다,

 

그러나 만약 그 시련이 피할수 있는 것이라면 시련의 원인 그것이 심리적인 것이든 신체적인 것이든 정치적인 것이든 그 원인을 제거하는 것이 인간이 취해야 할 의미있는 행동이다, 불필요하게 고통을 감수하는 것은 영웅적인 행동이 아니라 자기학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자유란 조건으로부터의 자유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 조건에 대해 자기 입장을 취할 수 있는 자유를 말한 것이다,  

 

저자는 나치의 강제수용소에서 살아남았다, 오랜 기간 그곳에서의 체험을 통해 사람은 어떤 시련앞에서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자유의지를 가질 수 있고 또 그 자유에 대한 책임을 가질 수 있으며 그렇게 시련을 견뎌내는 것이 삶에 대한 의미를 가지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어떤 갈등상황 앞에서 사람은 본 모습이 드러난다,

내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그것은 주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그 최종 선택을 하는 것은 나이다, 그때 사람은 동물이 되기도 하고 인간으로 남기도 하는 것이다,

수용소 안에서 저자는 많은 동물로의 전락과 함께 인간으로 남아 있는 고결한 영혼들도 보았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 것인가

비현실적인 낙관이 아니라 현재 처지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면서도 그 속에서 의미를 찾고  현재의 내 삶에 충실하게 나 답게 살려는 마음이 사람을 살아남게 하는 힘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흔히 운명이라는 말을 한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는 거대한 흐름이 있다고 믿는다, 내가 태어나는 곳 태어나는 시기를 내가 정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처음으로 세상에서 만나는 환경도 내가 택하는 것이 아니다,

운명은 나의 의지가 단 1 %도 들어갈 수 없는 어떤 던져진 상황이다,

그러나 그 상황에서 사람은 개개인에 따른 선택을 한다, 그 선택들이 모여서 업이 된다,

업이란 운명처럼 보이지만 결국은 내가 그동안 선택해온 내 길이 인도하는 것  선택들이 모여 만들어진 내 과거이고 내 모습이다,

내가 선택하지 않은 것에 대해 깊이 고민할 필요는 없다, 다만 내가 선택하는 것 내 의지가 들어가는 것에는 내 자유가 있고 내 책임이 있다.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러나 그런 개인의 선택 의지를 자꾸 듣다보면 괜히 심통이 났다,

모든 것이 개인의 선택이고 의지라면 결국 내가 지금 이렇게 된 현재의 내 모습은 오롯이 나만의 책임일 수 밖에 없는 것일까

세상은 결국 만인에 대한 만인의 책임으로 각자 도생의 길로 나가는 것뿐이란 말인가

내가 지금 좋은 성적이 나오지 않은 것은 내 노력의 부족이고 내가 지금  일자리를 얻지 못하는 것도 나의 나태함 때문이고 내가 비정규직인것 내가 쉽게 해고당하는 위치에 있을 수 밖에 없는 것 내 가족이도 죽어도 누구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도 이유를 물을 수도 없다는 것  그것도 오롯이 내가 갖야할 내몫의 고난이고 모든 것이 내가 내 삶에서 의미를 찾지 않고 혼돈으로 어지럽고  무언가로 도망치기때문이라는 모든 것이 나때문이란 말인가 하는 심통이 났다,

사회에서 해야하는 것 함께 바꾸어야 하는 것 세상에는 혼자만의 의미로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데 하는 불만이 자꾸 삐져나온다,

그냥 버티라 고난을 버티고 마주하라는 말이 너무 무책임하게 들리는 지금이다,

그때 저자는 피할 수 있고 바꾸어야 하는 시련은 맞서지 말고 바꾸려고 하라고 한다 스스로를 학대하지 말라고 했다,  오히려 어떤 말보다 그 한마디가 내겐 빛이 되었다,

세상에는 맞서지 말야야 할 시련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련을 바꾸고 제거해아하는 것도 결국 나로부터 시작되는 것 아니 나도 함께 해야하는 일이 맞다,,,,

 

1장 수용소에서의 상황들의 묘사가 그저 지나가 과거같지 않았다,

지금 이순간으로 데처해도 다를바가 없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언제나 기회를 잡아 더 약한 사람들에게 모진 사람이 있다,

지금 상황에서 앞을 볼 수 없고 어떤 희망이 없음은 그때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내가 좀 더 노력한다고 바뀌는 것은 없다,

나는 언제나 최선을 다하지만 늘 나보다 여유있게 앞서가는 사람들이 있고 나는 제자리이기만 해도 다행이고 뒤쳐지는 것은 정해진 사실처럼 느껴지고

모든 것이 부당한데 누구에게 하소연하고 따져야 하는 것인지 그 대상이 없고

사람은 저마다 의미가 있고 존귀하다지만 지금 세상에선 가장 흔해빠진게 사람이라는 생각만 들고 나는 언제든 어디서든 데체될 수 있는 보잘것 없는 수용소안의 죄수와 다를 바없다는 생각만 드는 것이 현실이다,

끔찍하게 그때와 지금이 오버랩된다,

그런데도 삶의 의미를 생각하라고....

싫다고 버티고 버티다 백기를 든다,

그 마저 안하겠다면 어쩌겠는가

나는 소중하니까 내 삶의 의미는 누가 정해주는 것이 아니므로 살에게 의미를 묻지 말고 삶이 나에게 물어올 의미를 잦아 나서는 수밖에 없겠다,

나를 스스로 귀하게 생각하는 것

실존이란 지금 이순간 내가 여기에 살고 있고 나는 나 스스로 이미 의미가 있음을 믿고 당당해지는 것에서 시작되는게 아닐까

이미 속되고 속되어서 한마디 한마디가 속속 들어오는 것은 아니지만

자꾸 부정하고 싶고 반박하고 싶지만

빅터 프랭클 박사에게 많이 의지하고 싶은 마음도 든다,

 

세상 그대로는 아름답다,

세상을 아름답지 않다고 하는 건 결국 사람이다,

내가 사는 세상의 아름다움을 찾아보는 것 그리고 그 아름다움에 내가 무언가를 기여할 수 있는 것을 찾는 것을 내 삶의 의미로 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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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 강
미야모토 테루 지음, 허호 옮김 / 문학동네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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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으로 그려내는 한 시절 기억의 풍경
돌아가고싶진 않지만 지우고 싶지 않은 내것인 기억과 경험이 펼쳐진다.아름답지 않지만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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