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고도 가까운 - 읽기, 쓰기, 고독, 연대에 관하여
리베카 솔닛 지음, 김현우 옮김 / 반비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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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비로소 아버지를 생각했었다,

살아계시는 그 긴 시간동안 그는 당연히 있어야 할 사람이었고 당연하게 내 아버지였고 언제든 그 자리에 있어야 할 사람이었다,

그런 아무런 의심없는 당연함은 그의 부재를 더욱 낯설게 했다,

사실 부녀간이라고 해도 정다운 관계가 아니었고 경상도 남자답게 무뚝뚝하고 바쁜 대한민국 아버지의 전형이었다, 오래 앓기도 했고 임종 전에는 어떤 징후가 잇었던 것은 아니지만 어쩌면 올해를 넘기지 못할지도.... 라는 생각도 했었다,

그러나 그의 부재는 의외로 다른 가족들에게 큰 충격이었다,

어느 정도 예상을 하고 준비를 했지만 막상 닥친 임종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하고

어쩌면 언제나 당연하게.. 라고 여긴 탓에 뭐든 나중으로 미룬 탓에 어떤 것도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한채 맞이한  이별이었던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냉정하게 생각한 것도 한참 후였다,

어.. 이게 뭘까 싶게 죄책감이 들었고 억울하고 이건 아니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겉으로는 태연하게 내 자식을 돌보고 일상을 살고 웃고 사람도 만나고 살았다,

그러다 문득 문득 그런 나 자신이 무섭다는 느낌이 선뜩하게 다가왔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가장 힘든 사람은 엄마였을 것이다,

애증의 관계

두 사람은 그런 관계일 것이다,

자식을 다 키우고 나면 이혼해야지 하는 마음을 살았다고 그런 와중에도 정도 들었고 한 팀으로서 나누어야 할 의리와 함께 해치워야 할 일들이 있었고 동지애와  증오심 가족간의 신뢰  미움 등등이 이리저리 묘하게 섞인 마음이 어쩌면 두 사람을 단단하게 이어가는 방법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 툭 하고 그 관계가 끊어지고 이제는 미워하거나 의지해야할 때로는 지긋지긋했던 상대가 사라지고 난 뒤의 엄마에게도 미안한 마음 그동안 고마운 마음이 많이 남았던 모양이다,

엄마와 아빠 사이에 그렇게 많은 이야기가 숨어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물론 40년넘게 함께 한 부부가  스토리가 많다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그렇게 끊없이 실을 뽑아내는 거미처럼 엄마의 이야기는 네버엔딩이었다.

같은 이야기를 듣고 또 듣고 말하고 또 말하고

말하고 듣는 일이 상대방에게 나를 공개하고 서로 나누고 그렇게 나의 모든 것이 확장하는 관계라는 걸 전혀 알지 못한 나는

한 쪽 귀를 열어놓고 들어오는 이야기를 다른 귀로 다시 내보내면서

그저 고개를 끄덕이고 등을 도닥이면서 같은 이야기를 다른 생각을 하면서 들었다,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들었지만 서로를 나누지는 못했다,

리베카 솔닛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그녀와 모녀관계가 낯설지 않았던 이유가 그래서였는지 모르겠다,

누군가를 애도하면서 동시에 애도하는 누군가가 피곤해지고 피해버리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솔닛과는 다른 이유지만 나도 엄마를 피하고 싶었다,

늘 반복되는 이야기도 지겨웠고 그 이야기가 아름답지 않아서 더 힘들었고

누군가의 고생담들   내 삶으로 책을 쓴다면 수십권이 나온다는 그 시대 여자들의 보편적인 이야기 그리고 은밀한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계속 들으면서 어쩌면 이런 반복적으로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는 것도 하나의 폭력이 아닐까 생각했다,

공감하고 이해하고 받아주면서 점점 멍해지고 아프고 피하고 싶지만

그렇게 내 감정을 드러내서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건 또 할 용기가 없었다,

어쩌면 엄마에게도 아무런 감동도 없이 영혼이 빠진 표정으로 기계적으로 맞장구치면서 듣는 딸을 보는 것도 큰 고역일 수도 있겠다,

그냥 내 속을 뱉아내듯이 이야기를 쏟아놓을 누군가가 필요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나의 부끄러운 이야기를 내 속에서 나온 자식이 맞장구 치고  눈 맞추며 들어준다면 더 어색하고 못할 거 같아 차라리 무심하고 아무런 영혼없는 대꾸가 편했을지도 모른다고 혼자 자위한다,

 

엄마를 무언가를 말하면서 자기 신세타령이상을 전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나의 살아온 삶이 딸에게 이어지기를 이해받기를 바랬을 것이다,

그건 나도 알았다, 그리고 이해했고 삶을 알아갔지만 그래서?

그 다음이 막막하다,

엄마를 감히 위로하거나 괜찮다고 하기가 참 막연했다,

어깨를 토닥여주고 삶이란 그런 거라고... 다들 진창인 줄 알고 디디게 되는 것이고 빠져들면서도 살아갈 수 밖에 없는 것이라고 해주어야 하나 싶으면서

그건 또 얼마나 주제넘은 일인가 하는 마음에 주저하게 된다,

내가 누군가의 말을 잘 들어준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아무리 긴 이야기라도 끊어내지 않고 반박하지 않고 그저 고개를 끄덕이고 들어주는 인내심은 있다. 그러나 내 마음은 늘 딴 곳에 멍해져 있는 경우가 있다는 건 몰랐다,

집중하지 않는다,

그저 흘려들을 뿐이다,

내 마음에 닿는 것은 받아들이고 닿지 않으면 굳이 손을 내밀어 잡으려고 애쓰지 않는다

그냥 그렇게 흘러가고 물러나는 걸 멍하니 바라볼 뿐이다,

관계 맻음이라는 것이 서툴러서 그랬다,

들을 수는있지만 대꾸하는 건 어렵고

늘 상대에게 꼭 맞는 무언가가 있을 거라는 정답 강박으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던 시간이 많았다

엄마와도 그렇다. 정확하고  바른 답을 찾아 위로하고 공감되지 않으면 소용없다는 초조감과 강박이 집중을 방해하고 듣기를 거부했던 거 같다.

 

당신의 이야기는 무엇인가? 이야기란, 말하는 행위안에 있는 모든 것이다, 이야기는 나침반이고 건축이다, 우리는 이야기로 길을 찾고 성전과 감옥을 지어 올린다, 이야기 없이 지내는 건 북극의 툰드라나 얼음 뿐인 바다처럼 사방으로 펼쳐진 세상에서 길을 잃어버리는 것과 같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은 그의 입장이 되어 보는 것이라고 흔히들 말한다, 이는 당신이 그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는 것 혹은 그의 이야기를 스스로에게 어떻게 말하면 좋을지 가늠해보는 것이다.

하나의 장소가 곧 하나의 이야기이며 이야기는 지형을 이루고 감정이입은 그 안에서 상상하는 행위이다, 감정 이입은 이야기꾼의 재능이며 이곳에서 저곳으로 건너가는 방법이다, 심장마비로 말을 잃어버린 노인. 처형앞에 선 젊은이 국경을 넘는 여인 롤러코스터를 타는 어린아이처럼 오직 책에서만 접해 본 사람이 되어 보는 것 혹은 나와 침대에 나란히 누운 옆 사람이 되어 본다는 것은 어떤 일일까?

                                              p13

 

 

 

세상이 크다는 사실은 구원이 된다, 절망은 사람을 좁은 공간에 몰아넣고 우울함은 말 그대로 푹 꺼진 웅덩이다, 자아를 깊이 파고 들어가는 일 그렇게 땅 밑으로 들어가는 일도 가끔은 필요하지만 자신에게서 빠져나오는 일 자신만의 이야기나 문제를 가슴에 꼭 붙들고  있을 필요가 없는 탁 트인 곳으로 더 큰 세상 속으로 나가는 반대 방향의 움직임도 마찬가지로 필요하다. 댱쪽 방향 모두로 떠날 수 있는 능력도 중요하며 가끔은 밖으로 혹은 경계 너머로 나가는 일을 통해 붙잡고 있던 문제의 핵심으로 들어가는 일이 시작되기도 한다. 이것이야 말로 말 그대로 풍경 안으로 들어온 광활함 이야기로부터 당신을 끄집어 내는 광활함이다,.

 

                                                                      p53 

 

 

자아라는 것 역시 만들어지는 것,  당신의 삶이 만들어 내는 작품이자 모든 이로 하여금 예술가가 되게 하는 어떤 작업이다, 늘 무언가가 되어 가는 이 끝없는 과정은 당신이 종말을 맞이할 때 미로소 끝나며 심지어 그 후에도 그 과정의 결과는 계속 살아남는다, 우리는 스스로 만들어 가고 그 과정에서 우리는 자아라는 작은 우주와 그 자아가 반향을 이르키는 더 작은 큰 세계의 작은 신이 된다, <프랑켄슈타인> 이 동화라면 그건 바보같은 짓을 벌이던 와중에 죽어가는 낯선 이를 구한 혹은 그 낯선 이의 이야기 덕분에 구원을 얻은 월턴의 이야기가 될 것이다, 프랑켄슈타인의 허영심 가득한 고독 그 실수에서 깨우침을 얻은 월턴은 죽음같은 극자방과 영광을 쫒던 자신의 야망을 버리고 온대 지역으로 동료애와 생존이 있는 곳으로 되돌아올 준비를 한다, 월턴의 짦은 이야기가 마치 조개껍데기처럼 프랑켄슈타인의 이야기를 감싸고 있고 그 책 전체에 메리 셀리의 이야기가 스며있다,

 

                                                                   P 85

 

 

글쓰기는 누구에게도 할 수 없는 마을 아무에게도 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모두에게 하는 행위이다, 혹은 지금은 아무에게도 할 수 없는 이야기를 훗날 독자가  될 수도 있는 누군가에게 하는 행위이다, 너무 민감하고 개인적이고 흐릿해서 평소에는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말하는 것조차 상상할 수 없는 이야기를, 가끔은 큰 소리로 말해 보려 노력해 보기도 하지만 입안에서만 우물거리던 그것을 다른 이의 귀에 닿지 못했던 그 말을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는 적어서 보여 줄 수 있음을 알게 된다. 글쓰기는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침묵으로 말을 걸고 그 이야기는 고독한 ㄷ독서를 통해 목소리를 되찾고 울려 퍼진다. 그건 글쓰기를 통해 공유되는 고독이 아닐까 우리 모두는 눈앞의 인간관게보다는 깊은 어딘가에서 홀로 지내는 것 아닐까? 그것이 둘만으로 구성된 관계일지라도 말이 실패한 것을 글이, 아주 길고 섬세하게 전할 수 있는 것 아닐까?

 

                      P100

 

 

 

고통에도 목적이 있다, 고통이 없다면 우리는 위험에 처하게 된다,. '느낄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돌보지 않는다' 당시 나의 상황에 놀랄 만큼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말이었다.

 

                                                               P151 

 

 

어떤 감정이입은 배워야만하고 그 다음에 상상해야만 한다, 감정이입은 다른 이의 고통을 감지하고 그것을 본인이 겪었던 고통과 비교해 해석함으로써 조금씩이나마 그들과 함께 아파하는 일이다, 그것은 다른 사람이 된다는 것이 어떤 기분일지 당신 스스로에게 해주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은 고통받아 마땅하다고 말하는 이야기들때문에 그런 감정이입이 차단될 수도 있다.

사회 전체가 자신은 경계에 있는 소수자들과 무관하다고 여길 만큼 무감각해지도록 교육을 받을 수도 있다. 마치 가까이 있는 사람들과 맺는 인간적 관계를 지워 버리는 사람들이 있듯이 말이다.

감정이입 덕분에 당신은 고문 배고픔 상싥의 느낌을 상상할 수 있다. 당사자를 당신안으로 불러들여 그들의 고통을 당신의 몸이나 가슴 혹은 머리에 새기고 그 다음엔 마치 그 곹통이 자신의 것인양 반응한다. 동일시라는 말은 나를 확장해 당신과 연대를 한다는 의미이며 당신이 누구와 혹은 무엇과 스스로를 동일시하느냐에 따라 당신의 정체성이 구축된다. 신체적 고통이 자아의 신체적 경계를 정하는 것이라면 이러한 동일시는 애정 어린 관심과 저지를 통해 더 큰 자아라는 지도의 경계선을 정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정신적 자아의 한계는 더도 덜도 말고 딱 사랑의 한계다  그러니까 사랑은 확장된다는 이야기다, 사랑은 끊임없이 뭔가를 덧붙여가고 가장 궁극적인 사랑은 모든 경계를 지워버린다,

 

                                                                P158

 

 

 

나는 앤을 아는 지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녀가 꼬처럼 지고 있다고 적었다.

 

                                                               P 187

 

 

그러나 진정 놀라운 점은 실을 잣는 이들이  모두 아직 형태가 없는 덩어리르 ㄹ앞에 놓고 거기서 실을 뽑아내고 그것으로 고기잡는 그물이나 잠옷같은 세상을 담을 물건을 만들어 낸다는 사실이다. 실 잣는 이는 형태가 없는 것에서 형태를, 조각들로부터 연속된 것을 , 흩어진 사건들에서 서사와 의미를 만들어 내는데 왜냐하면 이야기꾼은 또한 실을 잣는 이 혹은 천을 만드는 이이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우리의 삶을 굽이굽이 흐르며 우리들 각각을 서로에게 이어주고 목적과 의미 우리가 반드시 가야만 하는 어떤 길처럼 보이는 그곳으로 이어준다. 그긋은 그날  늦은 밤까지 해변에서 우리가 했던 일처럼 우리 뒤로 바늘땀같은 발자국은 남기는 일이다.

 

                                                    P 195 

 

 

지진은 오랜 시간 쌓여 온 긴장이 낳은 결과이다 눈에 띄지 않게 조금씩 커지던 그 긴장이 쌓이는 과정은 볼 수 없다. 긴장은 오직 그것이 터져 나올 때만 볼 수 있다, 아픈 사람과 노인 죽어가는 사람을 본다. 그런 광경이 우리 안에 쌓이고 어느 시점에선가 우리의 삶이 바뀐다, 영화나 소설에서는 사람들이 갑자기 바뀌고 그 모습이 영원히 유지된다. 편리하고 극적이지만 실제 삶은 그렇지 않다, 삶에서 우리는 무언가와 거리를 두고 되돌아 가고 결심하고 다시 시도하고 멈췄다가 다시 출발하고 그렇게 가다 서다를 반복한다, 변화는 대부분 천천히 이루어진다, 내 인생에게 변화를 일으킨 여러 사건이 있었고 갑작ㅈ스러운 깨달음이나 위기도 있었다. 루비콘 강을 한두 번 건거기도 했지만 대체로 무언가를 쌓아가고 있다,

 

                                                                     P159

 

 

 먼 거리르 작은 공간에 압축시켜 놓았다는 점에서 미로는 인간이 만들어 낸 다른 두 고안물과 닮았다. 하나는 실타래이고 다른 하나는 단어와 문단과 쪽을 하나로 묶어 놓은 책이다, 책의 문장이 실타래에 감긴 한 가닥의 실이라고 , 그 문장도 실처럼 풀어 낼 수 있는 것이라고 상상해보자., 그렇게 풀린 문장이 만들어낸 선 위를 걸을 수 있다고 실제로 걷고 있다고 말이다, 독서 또한 하나의 여정이다, 눈은 선처럼 펼쳐진 생각을 따르고 책이라는 압축된 공간에 접혀 있던 그 생각들이 당신의 상상과 이해안에서 다시 차근차근 풀려 나간다,

                                                                                  P278

 

듣는다는 것은 귓속의 미로에서 소리가 사방으로 돌아다니게 허락하는 것이며 귀를 기울인다는 것은 거꾸로 그 길을 되돌아서서 그 소리를 만나는 것이다, 이것은 수동적이기보다는 능동적이다, 이 듣는다는 행위 말이다, 이는 당신이 각각의 이야기를 다시 하는 것 당신의 고유한 언어로 그것을 번역하는 것 당신이 이해하고 반응 할 수 있게 당신의 우주에서 그 자리를 찾아주는 것. 그리하여 그것이 당신읭 ㅣㄹ부가 되도록 하는 것이다, 감정이입을 한다는 것은 감각의 미로를 통해 들어온 정보를 맞아 주기 위해 손을 뻗는 것 그것을 껴안고 그것과 섞이는 일이다, 즉 타인의 삶이 여행지라도 된다는 듯 그 속으로 들어가는 일이다,

 

감정 이입이란 자신의 테두리를 밖으로 살짝 나와서 여행하는 일 자신의 범위를 확장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진정으로 타인의 현실적 존재를 알아보는 일이며 바로 이것이 감정이입을 탄생시키는 상상적 도구를 구성한다고 할 수 있다

 

                                                   P 286

 

 

어머니가 내가 자신과 다르다는 이유로 화를 내던 시절 , 나 역시 내가 어머니와 비슷하다는 사실에 끔찍해하고 비슷해지지 않으려고 애를 쓰던 그 시절을 되돌아 보면 우리가 사실 얼마나 닮았는지 어머니가 나의 가장 본직적인 취향이나 관심사 혹은 가치체계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는지 알게 된다,

 

 

고대 그리스어 시그노미(SUNGMOME)라는 단어가 있다, 이해하다 공감하다 용서하다 봐주다 라는 뜻을 모두 담고 있는 이 던어는 생각과 느낌을 구분하지 않는다, 이 단어는 이해가 용서 혹은 대상 자체의  출발점이라고 제안한다. 이 단어의 범위는 이해를 위한 감정이입이 필요하고 감정이입에 이르기 위해 이해가 필요하며 감ㅁ정이입은 또한 용서임을 이모든 것은 서로서로를 도우며 함께 이룽지는 것임을 암시한다, 어쩌면 그것들은 처음부터 따로 있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건 어쩌면 내가 모르는 또다른 커다란 세계를 받아들이는 일일지도 모른다,

사람은 누구나 저마다의 세계를 가지고 있다,

누구와도 겹치지 않은 자기만의 부분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 세계.. 내가 보지도 접하지도 못한 그 세계를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공감이 아닐까

우리는 그저 나와 겹치는 세게만을 바라보고 받아들이면서 타인을 공감한다고 감히 말하고 있는 건 아닐까

내가 모르는 세게는 모르는 까닭에 받아들일 수도 없고 받아 들일 생각도 안하면서 그저 내가 아는 것을 이해함으로서 공감한다고 믿어버리는 어리석은 존재가 아닐까

공감하고 타인을 이해하면서 감정을 이입한다는 것이 결국 아주 개미허리만큼의 내가 아는 범위안에서 동동거리고 있다는 거 그리고 그게 전부라고 믿어버리는게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가장 가까운 사람일수록 가장 잘 안다고 믿어버리고 나랑 닮았다고 믿어버림으로서 그저 내가 아는 세계의 기준으로 판단한다,

나는 엄마를 그렇게 판단하고 엄마도 나를 그렇게 판단할 지모른다,

우리는 서로를 잘 안다고 하지만 결국 내가 알고 싶어하는 만큼일 뿐이다,

책장에 밑줄을 그으면서 자꾸 생각한다,

나는 얼마나 족좁은 인간이고 얼마나 편협하고 얼마나 생각만 많은 사람인가

내가 이해하는 타인은 내가 보는 만큼일 뿐이라고

그래서 나는 누군가를 알아가면서도 겨우 손톱만큼만 나를 확장하고 있을 뿐이라고 ..

세상은 넓은데 나는 그 안에서 몸을 잔뜩 웅크리고 있을 뿐이다,

보이는 것만 보고 들리는 것만 듣고 눈을 돌리지도 귀를 다른 곳으로 기울이지도 않은 채.....

 

 

책은 그냥 툭 끝맺음을 한다

솔닛이 경험하고 생각하고 느꼈던 것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면서 그것이 때로는 자기 고백이기도 하고 나기 주장이 되기도 한다, 뭐가 다르랴만....

감정이입 공감에 대해 이야기하고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이야기들 그 이야기가 이어주는 관계에 대해 그래서 사람이 섬으로 고독해지지 않고 서로 연결될 수있음을 말한다

귀를 기울이는 것 누군가를 돌보고 마주 보는 것을 이야기하면서 아이슬란드의 어두워지지 않은 밤과  빛을 완전히 차단할 수 없는 무력감에서 느끼는 어떤 깨달음  어떤 문제가 있지 않은한 노~ 라고 말하지 않고 받아들일거라고 결심하게 된 래프팅의 제안  수술 어머니의 치매 그런 경험의 이야기가 녹아 있다,

이야기는 어떤 주제도 교훈도 주지 않고 그냥 시작하고 흘러가는 대로 그대로 마무리 된다,

강이 흘러 바다로 간들 그게 끝일까?

삶이 죽음으로 마무리 되었다고 그게 끝일까

(저자는 불교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를 하듯이 윤회라는 것도 생각했을 것이다)

나와 우리 엄마의 관계도 둘 중 하나가 이 세상에 없다고 끝이 될까

어떤 이후의 시간도 우리 둘은 여전히 모녀일것이고 서로 생각할 것이고 그리고 그때 너무 늦게 깨달으며 후회하겠지만 그렇게 또 누군가는 살아가게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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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정아 엄마와 순영이 딸

 

엄마는 말했다,

내가 너한테 잘못한 것만 자꾸 생각나는데 너는 왜자꾸 아니라고만 해

딸이 말한다.

그때 엄마가 어땠는지 다 아니까 그럴 수 밖에 없다는 걸 아니까....

아들을 못 낳아서 자식을 못 낳아서 할머니한테 아버지한테 구박받는 걸 아니까

엄마가 힘든 걸 아니까 그래서 그렇다는 걸 아니까

 

딸은 엄마를 아니까 마음을 그냥 덮어 두었고

엄마는 딸이 자기에게 마음을 터놓지 못한 이유가 자기탓이라고 생각한다,

이미 일은 터졌고 상처를 입었고 그걸 어미로서 몰랐고

엄마는 내가 내 자식을 헤아리지 못했다고 속이 까맣게 타들어가고

딸은 자기의 불행을 엄마가 알아버려서 그래서 자기가 엄마 마음에 벽돌 하나를 더 얹어 놓았다는 자책감에 마음이 아프다, 그래서 울수 도 없었다,

 

아 그랬던 거구나..

드라마를 보는 순간 무언가 내 머리를 쳤다,

그랬던 거였다,

 

나도 엄마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다,

드라마처럼 드라마틱하지 않지만 내 엄마도 많이 힘들었다,

어린 눈치에도 할머니와 사이가 좋지 않다는 게 느껴졌고 한집에 살던 고모들도 그다지 엄마에게는 다정하지 않고 어딘가 군식구같은 냄새를 풍겼고 아빠역시 그 시대 고단한 가장이었다,

엄마에게 더 이상 짐을 올려 놓을 수는 없었다,

손이 가지 않는 아이

혼자 알아서 하는 아이

그렇게 인식되어지며 나이를 먹고 철아닌 철이 들면서 규정되고 이름지어진대로 살아지게 된다,

어떤 일이든 아무렇디도 않다,

나만 그런 것도 아닐 것이다, 별거 아닌 일이었다,

혼자 우는 경우가 있어고 그 울음은 짧았고 대체로 하두번의 꺽꺽 거림으로 끝을 맺었다,

울면 안돼 징징 짜면 안돼

이건 누가 나에게 경고한게 아니었다,

누군가에 의해 주입된 것이 아니고 내가 나에게 하는 경고였고 내가 나에게 하는 단도리였다,

울지말자 울 일 아니다,

뭐라고 하지 말자 어쩌겠는가 내문제인걸 ...

그렇게 조개처럼 입을 닫았다,

아무 일도 없었고 아무 탈도 없었다,

누군가에게 벽돌을 올려놓으면 안된다고만 생각했다,

그땐 그 벽돌이 내 위에 차곡차곡 쌓여간다는 걸 몰랐다,

감정을 표현하는 것도 연습이 필요한 일이라는 건 나중에 어른이 되고도 나이를 많이 먹어서 알았다, 욕구를 드러내는일 본능적인 행동이나 표정 말투도 훈련을 통해 통제가 가능하다는 것이 내삶으로 증명되었다,

가능한한 아무렇지 않게

상처받지 않은 모습으로

내가 받은 것만 기억할 것

고마운 것만 생각할 것

그게 맞다고 생각했다,

배운 사람으로서의 할 태도라고 생각했고 그런 사고나 태도가 더 우월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많이 힘들었다,

그것도 내가 아직 덜 성숙해서라고 생각했었다,

나도 아프다고 힘들다고 배째라고 하고 싶었지만 할 수 없었다,

그건 내 몫이 아니었다,

화가 나면 내가 못되먹어서 화가 났다고 생각했고 못되먹어서 성질이 나는 거라고 ... 생각했다,

 

드라마를 보면서 그 속의 모녀가 서로에게 벽돌을 얹지 않으려고 조심하고 살면서 많이 멀어졌고 많이 힘들었음을 보면서 울음이 났다,

배려라는게... 내가 억지로 해서 될 일이 아니었다,

말하지 않으니 아무렇지 않을거라고 믿어 버리는 건 내가 그만큼 힘들고 고단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는 걸 알았다,

 

이미 지난 일이고 돌이킬 수도 없었고

그땐 젊은  내 엄마도 그게 최선이었을 것이고

좋은 의도로 했을 거라는 걸 머리로 알아가는 걸로 족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늘 머리와 가슴은 다르게 놀았다,

가슴은 자꾸 억울하고 서운하다고 하는데 그걸 눌렀고 그러면 안된다고 머리가 타일렀다,

가슴은 자기를 표현하기를 주저하게 되고 나중에는 표현하는 방법을 잊었다,

그렇게 나이를 먹었던 거다,

그래서 나는 잘 참고 말안하고 알아서 하는 딸이 되어버렸다,

나도 모르게

그리고 너무나 슬프게 그게 가장 편한 일이 되어버렸다,

누구에게 고백하지 않는 것 누구와 나누지 않는것 누구에게 마음을 보여주지 않는것

그걸 이제 알았다,

드라마를 보면서

드라마속 나이든 여자들 중에 가장 힘들고 주책맞지만 가장 귀여운 그녀를 보면서 그리고 무뚝뚝하고 무표정한 그녀의 딸을 보면서 나는 나를 본다, 내 엄마를 보았다,

그리고 슬퍼졌다,

 

#2  난희 엄마와 완이 딸

 

바람피우는 아버지  일찍 과부가 된 엄마

매맞는 아내였던 외할머니 이제는 바보가 되어서 할머니만 졸졸 따라다니는 할아버지

할아버지의 폭력에 불구가 된 외삼촌

억척스러워진 엄마

말 잘 듣는 딸

그 딸은 이제 자기 것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했다,

사랑했던 남자는 불구가 되어버렸고  텅 빈 마음을 달래려고 결혼한 선배를 이용했다,

엄마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늘 엄마말 잘 듣는 딸이고 싶었고 이젠 어떤 말도 엄마에게는 위로를 받을 게 없다고 여겼을지도 모른다,

엄마는 늘 보고 싶은 것만 본다,

나를 보지 않고 나에게서 보고 싶은 것만 본다,

내가 왜 선배를 만났는지 내게 물어보지도 않았다,

그저 보고 싶은 것 유부남은 만나는 미친년같은 딸이라고만 보고 딸의 앞날을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다, 그런 엄마가 이해되는게 너무 싫다,

어린 시절 엄마는 나와 함꼐 죽으려고 했다,

힘들어서 죽고 싶었다는 건 이해가지만 왜 나도 함께 죽어야 했던 걸까

그때  일을 그냥 묻었다, 드러내지 않았다, 그래야 무슨 소용일까

그러나 이젠 드러내기로 한다,

엄마와 마주하는 것 내 상처와 마주는 것이다,

 

누군가를 위해 최선을 다 한다는 것이 어쩌면 그 사람에게 가장 큰 부담이 될 수도 있다,

가장 가까운 사람이라면 더 그럴거다,

가까워서 그 마음을 다 알지만 그 사람이 해주는 최선이 내겐 부담이 될때 괜히 내가 나쁜 사람이 아닐까 하고 죄책감이 든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죄책감을 주는게 정말 사랑일 수 있을까?

그건 사랑이 아니라 집착이라고 딸 완은 생각할지 모른다,

그런데 문득 엄마 난희의 마음에 기울어진다,

내가 줄 수 있는 사랑 내가 배운 사랑이 이것이라고 믿고 무장정 퍼부어 주었는데

그는 내가 준 모든 것이 사랑이 아니라고 한다, 지겹다고 하고 집착이라고 하고 부담이라고 한다면 나는 뭘까

내가 그동안 무슨 헛짓을 한것인가?

사랑이란 어쩌면 감정이 아니라 이성을 필요로 할지도 모르겠다,

니가 원하는 것 좋아하는 걸 말해봐,

그리고 경청하고 그걸 해주려고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하는것?

무작정 우물처럼 퍼울려지는 감정보다 조금은 절제되고 딱딱 가로세로를 맞춘 이성이 간간이 끼어들어야 하는 걸까?

 

이번 주말 다시 드라마는 이어질 것이고

나는 내 엉마를 생각하고 내 자식의 엄마인 나를 생각하며 또 꾸역꾸역 텔레비젼앞에 앉을 것이다,

그녀들의 사랑은 어떻게 정리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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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그램속의 어떤 여학생이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한다

'완벽하게 준비된 사람을 뽑으려는 거 같아요"

정확하진 않지만 그런 의미....

고등학교는 완벽하게 준비된 중학생을 원하고 '

대학생은 완벽하게 준비하고 온 고등학생을 원하고

직장은  완벽하게 준비된 대졸자를 원하며...

세상은 이제 만인에 대한 만인의 경쟁이 되어버렸고

조금이라도 기득권을 가진 집단은 점점 벽이 단단해지고 그 속으로 들어가는 문은 함부로 눈에 띄지 않는다,

내가 어떻게 노력해서 여기까지 왔는데

감히 너 따위가 나랑 어깨를 나란히 하다니,,,,,

어디 감히 일반고가 어디 감히 수시가 어디 감히 지균이.....

 

"좀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긴 할거 같아.,.. 나는 열심히 했는데 그 사람은 쉽게 왔다고 느껴지면.."

딴 사람도 아니고 내 아이의 말

그래 그렇기도 하겠지

하지만 그게 아닌데,,,

 

낮에 만난 이들과 나눈 대화의 한부분

무료급식을 반대했다던 그들은 급식으로 인한 재정때문에 다른 데 써야할 재정이 줄었다고

더 좋은 곳에 더 많이 아이들이 누릴 수 있는 외부활동이나 좋은 환경이 줄어든 건 아쉬운거 아니냐고

무료 급식이 아니고 의무 급식이고 

아이들이 받을 사소해 보이지만 큰 상처가  내아이가 누릴 수 있는 외부활동보다 더 하찮은거냐고 하려다 말았다,

나도 자신이 없어서

모두가 준비된 사람을 원하고 깔끔한 환경을 원하고 쿨하고 세련되고 싶어한다,

 

그렇게 준비된 사람을 원하는 세상에서 준비를 하다가 삶을 소비하는 상황이라면

나중에 어쩌면

준비되지 못한 사람은 죽지도 못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섬뜩하게 든다

준비된 상위 몇프로는 안락하고 평온한 죽음으로 돌아가고

나머지는 좀비처럼 죽지도 살지도 못한 상태로 떠돌게 되는 건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 아이가 고민하고 행복한 시간을 갖기보다

공부에 집중하는 시간을 좀 더 갖길 바라고 있을 뿐이고.....

한강 작가의 맨부커상 수상을 기뻐하다가도

속물처럼 아이에게 말한다

저 작가 연대 나왓잖아....

 

나부터 지독한 모순 덩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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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5-18 16: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인간이라면 누구나 모순덩어리일 수밖에 없어요. 이 당연한 사실을 모른 척하고 뻔뻔하게 사는 사람이 더 나쁘다고 생각해요.

푸른희망 2016-05-18 16:57   좋아요 0 | URL
그렇게 위안하지만.....
어제 방송도 그렇고 요새애들 애쓰는거 보면 어른이 어릇 노릇 못해 고생시키는구나 싶어 부끄럽고 그래요
 

 

수학여행가는 에피소드에서

"남자들은 바보가 한 명 있으면 휘둘리기 마련이야" 하든가

"바보는 쉽게 전염된다"는 말

한 사람이 바보짓을 하면 다른 사람도 쉽게 따라하게 된다는 뜻일게다 아마...

그 말이 따뜻했다,

바보를 바보라고 따돌리지 않고 그냥 어울린다는 말이라고 받아들였다,

넌 바보고 멍청하니까 우리가 될 수 없다고 우리 밖에 놔둬 버리는게 아니라

같이 바보가 되어 버리는 그런 멍청하고 어이없는 행동이 따뜻하다

 

7권동안 어떤 악인도 없다,

까칠하고 직설적인 사람들도 있고 철이 없는 사람도 있지만 악한 사람은 없다,

누구나 따뜻하게 받아주고 스며든다,

가마쿠라에 살러온 스즈를 맞이한 세자매뿐 아니라 축구하는 친구들  신용금고 사람들  식당 사람들 누구나 함께 어우러지는게 이 만화의 매력

 

이번 회는 읽으면서 울컥한 부분이 많이 생겼다,

사치가 따뜻해졌고  요시노가 외롭지 않게 생겼다, 스즈의 꽤 괜찮은 남친은 더 말할 필요도 없고... 다만 치카가 걸리지만 별일 아니기를....

누군가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이 참 좋다,

칼칼한 그 카페라고 우기는 식당이 되어버린 가게 아저씨같은 사람이 내 주변에도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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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팟케스트를 알고 낄낄대며 들었다,

결정장애를 가진 현대인들의 결정을 도와준다는 컨셉도 참신했고 두 사람의 케미도 유쾌하고 좋았다, 누군가를 깍아내리거나 면박주지 않고 스스로 망가지면서도 청취자의 고민을 진지하게 대하고 공감하려고 하는 태도도 좋았다,

뭐 그렇게 대단한 상담을 하는 건 아니지만 한껀한껀 나름 최선을 다한다고 느꼈다,

한명은 먼저 지르면서 나서면 다른 한명은 조곤조곤 정리하고 마무리하거나  보기보다 허당인 면을 드러내는 한명에게 면박을 주면서 함께 깔깔대는 모양새가 오래 알고 이해하지 않으며 나오지 못할 조화였다,

사실 누군가의 고민을 들어주는 일이 쉽지 않다,

해결책은 늘 알고 있고 무엇을 해야하는지는 본인이 가장 잘 알지만 그 선택이 옳다고 지지받고 싶고 때로는 해야하지만 한번은 도망가고 싶은 마음을 누군가가 다잡아주길 바라는 것

그런걸지도 모르겠단 생각을 한다

설령 도무지 해결책을 알지 못하는 문제이더라도 알지못하므로 무엇이든 해답이 될 수도 있다, 어~ 하고 내가 몰랐던 부분을 들을 때가 있고 아리송한 걸 명쾌하게 납득시키기도 하고 이건 너무 엉뚱하잖아하고 무시하다가도 언젠가 불쑥 다른 곳에 써먹을 수도 있다,

나는 두 사람이 벌써 데뷔한지 20년이나 지난지 몰랐다,

하긴 김숙이 난다김을 하면서 삼천만 땡겨달라고 했을 때는 나도  젊었을때고 한창 송은이가 만원의 행복을 할때는 첫아이 이유식을 먹이면서 본 거 같기도 하다,

한번도 대단한 스타가 되진 못했지만 그래도 꾸준하고 성실하게 한 분야에서 20년을 지내왔다는게 세삼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무언가 대단하고 특별한 사람이 되는 것 보다 꾸준하고 진득한 사람 그래서 오래오래 남아 있는 사람이 더 가치있고 존경스럽다는 생각을 요즘 많이 한다,

난 한번도 진득하게 뭘 해본 적이 없다,

졸업무렵 공부를 계속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가 덜컥 취직이 되어버렸고

그렇게 시작한 사회생활은 채 몇년 되지 않아 이게 적성이 아니라고 느끼는 순간 이미 사표를 내버렷고 글을 쓰겠다고 맘 먹고 공부하고 스터디하고 시작했지만 그것도 내 재능에 대한 고민고민만 하다가 흐지부지 되어버렸다,

늘 고민하고 생각하다가 아무것도 못하고 지금 나이를 먹었다는 생각을 한다,

지금 공부하는 상담도 늘 회의적이고 어떤 유용한 가치를 가지나 혼자 머리를 싸매고 있다, 일단 생각을 멈추고 몸을 움직이라는데 나는 여전히 커다란 대가리만 굴린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가장 오래 진득하게  버티는 카테고리는 사람. 여자 이것밖에 없는 거 같다 ㅜㅜ

각설하고....

 

팟방을 많이 듣진 않았지만 두가지 사연이 기억에 남았다,

부모님께 커밍아웃을 해야할까요 라는 사연에 홍석천과 연결했던  사연

그때 홍석천이 그랬다 가능한한 오래오래 하지 말라고...

어떤 조언보다 진정성 있게 들렸던건 그의 경험이 상처가 녹아 있었던 것은 말 할것도 없고

무엇보다 상담자의 마음을 공감하고 알기때문에 해주는 말이기 때문이다,

하면 상처받고 안하면 죄책감이 든다면 차라리 죄책감이 낫다는 것

속이는게 아니라 내가 좀 더 튼튼해지고 막말로 혼자 독립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때 까지는 버티고 버텨야 한다는 조언이 울컥하면서 와 닿았다,

뭐 부모니까 이해할거라든가 부모를 속이지 말자든가 하는 도덕적인 판단이 아니라

너가 상처받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느껴졌다,

니가 우선이라고 너를 먼저 생각해도 괜찮다는 마음이 내게도 푹 꽂혔다,

 

그리고 김생민이 조언한 돈을 쓸까요 모을까요?

그 답게 돈은 모으라고 있는거지 쓰라고 있는게 아니라는 말을 키득거리면서 들었지만

누가 뭐라고 하든 내 방식을 고수하는 뚝심이 은근히 부러웠다,

계속 이어지는 돈에 대한 그의 철학을 들으면서 짠돌이지만 그래도  누구에게 해를 입히는 것이 아니라 나름 철학이 있구나 하고 감탄했다,

외국여행을 가라 어쩌라는 말을 다 자르고 딱 10만원으로 통영을 다녀오라는 고의 결론이 그래서 더 유쾌하고 즐거웠다,

 

누군가의 말을 듣고 공감해야한다는 건 알지만 막상 그 '공감'이라는 것은 쉽지가 않다,

내가 알아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모르고 이해할 수 없지만 그 사람을 인정하고 존중한다는 마음 그 마음이 공감이다,

'앵무새 죽이기'에도 나왔듯이 남의 신발을 신어보아야 한다는 말 그 사람의 입장을 생각해야한다는 것인데 우리는 너무 쉽게 우리의 시선으로 우리의 입장에서 타인을 본다, 그래서 어설프게 충고를 하고 연민만 해버린다,

공감은 어떤 결론을 내주는 것도 아니고 무조건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도 아니다,

어떤말로도 위로가 될 수없다고 외면해버리는 것도 아니다,

내가 먼저 아프고 힘들다는 것을 직면하고 누구나 그럴 수 있다고 여기는 마음

각자 각자의 입장에서 아픔이 있고 어려움이 있음을 알고 만져주는 것이 공감이다,

 

 

" 난 잘하는게 없어, 친구를 사귀는 것도 너무 힘들고 남자애들이든 여자애들이건 먼저 말거는 것도 어려워 되고 싶은 게 뭔지도 모르겠고 하고 싶은게 뭔지도 모르겠어 자존감이 너무 낮은거 같아 ......그래 맞아 어쩌면 너무 나자신한테 엄격한걸지도 몰라 너무 나에 대해 기대가 커서 왠만하면 잘하는거 아니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네 왜 이렇게 된건지 모르겠어 자꾸 자신이 없고 무기력하고 아무것도 하고 싶은 거 좋아하는 것도 없고 싫어하는 건 정말 많은데 좋아하는 건 모르겟어..."

한 번씩 잊을 만하면 듣게 되는 딸아이의 하소연이다,

내가 너무 엄격하게 키웠나 키우면서 뭘 잘못했나 시간을 헤집어서 기억을 꺼집어 내보면 후회할 것들만 떠오르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결정적인건 없었는데...

사람은 누구나 불안하고 스스로가 마음에 안들 수 밖에 없다지만 조금은 무모하고 자기에 대해 과대망상을 해도 괜찮은 나이에 너무 쪼그라들기만 한 아이를 보면서 나를 보기도 한다,

나도 싫은 건 확실하게 말할 수 있지만  뭘 좋아하니? 하고 물어보면 말문이 턱 막힌다,

내가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 동시에 그러지 못하는 현실에서 자괴감을 느끼고 스스로 쪼그라들지만 그걸 누군가가 알까봐 황소개구리만큼 몸을 부풀리기도 하고 아닌척 쿨한 척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하고 살고 있다, 그냥 이제 나한테 익숙해져서 어쩌라구 하는 똥뱃장으로  살긴 하지만 그런 유전자가 고스란히 아이에게 전해져서 아이는 아직도 불안하고 스스로가 마음에 들지 않고 기대치는 자꾸자꾸 하늘만큼 높아지고 뭐 그런 중이다,

책은 우리의 수치심에 대해 이야기한다,

흔히 수치심과 죄책감을 혼돈해서 쓰는데 저자는 명확하게 구분해준다,

어떤 잘못이나 문제가 발생했을 때 죄책감은 내가 한 행동에 대한 비난이고 부끄러움이고 반성이지만 수치심은 나자신에 대한 비난이고  분노가 된다,

내가 왜 이런 짓을 했지 그런 행동을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하는 건 죄책감이고

나란 놈이 그렇지 늘 이모양이꼴이야 나는 한심한 놈이야 ... 하게 되면 수치심이 된다,

죄책감은 고칠수 있고 다시 시작할 수 있지만 수치감은 그대로 주저앉아버린다,

그 수치감은 어디서 오는가?

내가 속한 가족 사회 집단에서 주입하는 어떤 가치관에 의해 내가 알게 모르게 익숙해진 기준이기도 하고  내 속에 자리잡은 어떤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나의 부녹하고 부끄러운 모습이 누군가의 의도적인 혹은 의도치 않은 말한마디로 건드려지고  폭발해버리거나 스스로를 망가뜨리게 된다, 그 수치심은 어쩌면 내 안에 자라지 않은 아직 어린 아이가 자기 존재를 드러내는 것같다,

나 아직 여기 있으니 좀 봐달라고... 나 좀 안아주고 위로해달라고

그 아이가 내 속에 있다는 게 부끄러운 일은 아니다,

아마 누구나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자라지 않은 아이를 한명씩 품고 있다,

다만 우리가 그 아이를 알아주고 마주보고 위로해주는게 필요할 뿐이다,

그 아이는 나와 영원히 함께할 존재이니 잘 지내야 할 뿐이다,

누군가의 말한마디 행동하나에 상처받는 게 어쩔 수 없는 사람이다,

수치감을 느끼고 그래서 나 자신을 끊임없이 괴롭히고 스스로가 가치없다고 느끼는  그 마음이 다시 나를 부끄럽게 느낀다,

누구나 살면서 상처를 갖는다,

적은 세월을 산 아이라고 아픔이 없지는 않다,

그 상처를 어떻게 바라보고  기억할지에 따라 내게 수치감을 줄것인지 그저 하나의 경험으로 받아들일지가 결정된다,

누군가에게 수치감을 주는 언어가 아닌 공감하고 자비로운  반응을 보여야 한다는데 그건 알기는 쉽지만 행하기는 쉽지 않다,

그 마음을 읽어주고 받아주고 공감하는 것

결국 수학을 풀듯이 계속된 연습문제가 필요한 것인지 모르겠다,

나는 위로이지만 그게 또다른 상처가 될 수도 있고 내 마음에 숨은 수치심을 건드려서 마주하고 싶지 않고 그 상대를 피하고 싶은 마음이 들때도 있단다.

먼저 나를 마주하고 나에게 관대할 때 타인에게도 관대할 수 있다는 말이 훅 다가온다,

 

내가 눈군가를 달래주고 안아주는 일이 서툴다는 걸 알게 되었다,

다정하지만 무뚝뚝했던 부모님은 어색해서 아마 표현을 안 했으리라 믿는다,

누군가에게 다정한 위로를 경험하지 못해서 나는 늘 그게 어색했다,

애교도 없고 다정하지 않은 건 성격탓이 아니라 내가 경험이 없고 배우지 못한 것이었다,

내가 누군가의 다정한 위로보다 툭툭 던지는 적확한 한마디의 말을 더 신뢰하고 편해하는 것

그래서 나조차 누구에게 다정하게 다가가기 보다 공감하고 이해하지만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진단하는 말을 던지는게 더 편했다, 그게 상대에게 상터가 될 수도 있다는 걸 알지만 적어도 가식적이지 않고 뒤에서 험담하는 것이 아니라 직설적이고 솔직하다고 믿었다,

어쩌면 그런 것들이 상처받고 싶지 않은 나만의 갑옷이었던 거 같다,

위로로 무너지고 싶지 않고 징징짜는 꼴을 보이고 싶지 않은 마음이 단단하게 나를 무장시키고 타인에게도 그것을 요구하게 된다,

어른대 어른으로서는 넘어갈 수 있는 일들이지만 상대가 어린 아이일때는 그것만큼 가혹한 것도 없다,

감정은 눌러야 하고 이성적이어야 하고 나는 늘 조언하고 판단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아니다 싶어 모든 감정을 감추지 말고 말하라고 했더니

그 응대가 너무 힘들다,

배운대로 하는 건 뭔가 가식적이란 생각만 들고 그저 바라봐주고 안아주는 건 상대에게 전해지지 않을 때가 있다,

어쩌라는 거냐고....

생긴대로 살자니 그게 아닌것 같은데 바꾸자니 그건 내 옷이 아니다,

수학 영어 국어 과탐 사탐만 아니라 내 감정을 들여다 보는 것 표현하는 것 그리고 공감하는 것 모두가 공부가 필요하고 연습이 필요하고 시험이 필요한 일이었다,

책을 읽으며 공부를 하며 알게 되지만 늘 용기내어 한걸음 다가가는 것이 힘들다,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왔지만 가슴에서 발로 가는 길은 아직도 요원하다

 

세상에 나는 또 하나가 더 없다,

단 하나인 나는 단하나여서가 아니라 그 존재로 가치있고 의미가 있는 존재이다,

불완전하고 누군가와 달라보이고 어딘가에 끼어들 동질감을 느끼지 못하고 겉도는 것 같아도 나는 여전히 나이고 여전히 의미있는 존재다,

누구나 아프지만 드러내지 않을 뿐이다,

그 다른 누군가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치있고 의미있다,

내가 그렇듯이...

나를 알고 조금 용기를 내서 한걸음 내딛는 일

그리고 부끄러움이 영원히 내옆에 머무는 건 아니라는 것

의외로 타인은 쉽게 잊을 테고 남의 판단이 중요한 건 아니라는....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자꾸 잊게 되고 그 이상으로 나를 덮치는 수치심을   없애지 말고 그냥 인정하고 함께 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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