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시골(?)혹은 지방 마을을 둘러싼 은밀하고 음흉한 분위기

그들만의 알 수 없는 집단의식같은 건 차처하고

 

제일 눈에 띄고 자꾸 걸리는 부분은 하루카의 행동패턴이다,

이게 지금 이시간 일본 여중생들의 생활이나 감정 불안인지 모르겠지만

끊임없이 주위 시선을 의식하고 내 행동하나 내 말한마디가 친구들에게 어떻게 보일까

전전긍긍하는 모습이 더 다가온다,

물론 낯선 환경이고

좋은 의도로 이사한 것도 아니라서 그럴 수 있다,

아버지가 공금에 손을 대서 달아났고 도둑의 딸이라는  꼬리표를 달게 되고

태어나서 자라온 익숙한 환경을 떠나 처음 보는 곳에서 살아야 한다는 것

게다가 친엄마도 아니고 언제든 자기를 버려도 상관없는 계모와 배다른 동생과 함께 하는

낯설고 가난한 삶이 그 나이 중학생에게 어떤 의미인지 모르는 건 아니지만

너무 주위 눈치를 많이 보고 있었다,

내가 전학생인게 들키면 어떻게 될지

너무 공부를 잘해서 튀어도 안되고 너무 깔끔해서 튀어도 안되고

너무 어리숙해도 안되고

친구가 이런 말을 하는 의도는 뭔지 다시 한번 뒤집어 보고 곱씹어야 하고

저런 말을 할때 내가 어떤 표정 어떤 대꾸를 해야하는지

내 가족을 어느 선까지 오픈해야하는지,,,

그냥 전학생 낯선환경이라고만 여기기엔 너무 피곤하고 너무 불안하다

 

지금 이 나라의 여중생들도 비슷해지고 있다,

친구들사이에서 어쨌든 튀지 말고 잘 섞여야 하고 너무 몰려다니고 내 의도와 상관없는 집단행동이 부담스럽고 힘들지만 그걸 티내서도 안된다,

똑똑하고 공부도 잘해야하지만 그것때문에 재수없는 년이 되어서도 안되고

찌질하고  공부 못하는 년도 절대 안되고

언제나 단짝은 있되 어느 누구와의 관계도 소홀 할 수 없고

어제의 동지가 내일의 적수가 되어 내 뒤에 칼을 꽂을지도 모르는 불안으로 누구에게 속내를 쉽게 털어놓아서도 안되지만 너무 장막을 쳐서 내몰아서도 안된다,

인간관계라는 것이 점점 어렵다,

그냥 친하게 생각없이 놀고 이야기하고 떠드는 것 같아도

그 안에 치밀한 계산이 필요하고 쓸데없어보이는 두뇌싸움이 필요하다

튀어도 안되지만 못나도 안되고 그러면서 동시에 이익은 가져야 하고 다정함과 좋은 성격은 유지해야 한다,

그래서 아이들은 늘 뾰족하다

하루카도 뾰족하다

유일하게 사토루 앞에서 바보취급하면서 잘난척 하는 일 그거 가장 마음을 놓는일이 아닐까 싶다,

 

점점 경쟁이 심해지고 한 번 탈락하면 패자부활전 따위는 사전에나 있는 단어이고

한번 결정된 계급은 왠만해선 뒤집어 지지 않고

내 아래 있는 것들은 절대 내 위로 올라와선 안되고

내가 한 노력이 얼마인데 그건 그냥 빈둥거린 베짱이들이 가로채는 일이 있어서는 안되고

일이점에 커트라인이 걸리는 세상이라 뭐든 칼같이 정확하지 않으면 믿을 수 없고

내가 불안해서 지금은 이 아이랑 놀지만 언제든 갈아탈 준비는 하고 있어야 하는 것

정글의 법칙은 김병만의 것이 아니다,

지금 여기

아직 솜털이  보송보송한 아이들이 그 정글은 치열하게 겪고 있다,

순수하고 아직은 철없는 아이

이건 어른들의 환상일 뿐이다,

환상은 환상이고 어른들 역시 그런 영악하고 발랑까진 것들을 철듬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고 있다

 

마을의 패쇄성이니 미스터리니 하는 건 모르겠고

그렇게 불안하게 열심히 발버둥치는 하루카만 기억에 남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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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려령 지음 / 창비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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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어른들의 생각보다 더 착하고 속이 깊다,

그냥 어른들은 자기들 그 시절을 잊고 요즘 아이들은... 이라고 말한다,

요즘 아이들은...

핸드폰만 보고 어른 말도 안듣고 욕이나 찍찍 해대고 친구들이랑 몰려다니면서 이상한 짓이나 하고...

아이들이 하나 둘 있으면 어른들은 무시하지만 서넛이상 모이면 어른들도 조심한다,

다가가지 않는다,

흔히 신문에 인터넷에 실리는 기사들처럼 무슨 험한 꼴을 당할지 모르니 내가 무서워서 피하나 드러워서 피하지... 행여 재수 없이 불똥이나 튀면 나만 손해지

그리고 멀리서 바라보며 혀를 차고 욕을 한다,

그래서 어른들은 꼰대들일 수 밖에 없다,

지들도 몇십년만 더 거슬러 올라가보면 어른들은 말귀가 통하지 않는다고 투덜거렸고 몰려 다니면서 별 짓 안해도 재미있던 경험들이 있었고 몰래 하던 술 한잔  매운 담배 한모금이 꽤 짜릿하고 왠지 으쓱했던 경험이 다들 있으면서

지들은 모범생처럼 잘 자란 것들인냥 이야기한다,

요즘 애들이란....

 

그런데 의외로 요즘 애들은 참 속이 깊고 생각이 많다,

아이들은 부모가 맘 아플까봐 아픈 이야기를 하지 않고 혼자 삭인다,

부모가 해결해주지도 못하고 속만 상할까봐 그 속상한 마음에 엉뚱한 화풀이를 하거나 더 망신서러운 일을 할까봐 혹은 혼자 울음을 삭일까봐 말하지 않고 견딜 줄도 안다,

 

<고드름> 의 아이들은 그냥 헤프닝이었다,

시간이 남아서 피시방을 갔고 인터넷을 떠다니다가 살인사건 기사를 읽었고 그리고 범인없는 범행도구라는 문구에 범인은 있고 범행도구는 없다면? 이라는 기발하지도 않은 생각을 했을 뿐이고 그리고 그 또래가 모인 것처럼 그냥 생각없이 떠들었을 뿐이다, 생각없이 살인을 이야기하고 생각없이 킬킬거렸고 범행도구와 방법을 이야기했을 뿐이다,

니들 왜 학원 땡땡이 치고 피시방에 왔냐고 하면 할말이 없긴 하고 왜 많은 주제를 놔두고 살인사건이니 범행도구니 그런 살벌한 이야기를 하느냐고 하면 할말은 없지만

뭐 어른들은 그럴 때가 없나?

회사가기 싫을 때가 있고 외근이라고 핑계대고 땡땡이 칠 수도 있고 머리속 생각은 더 야하고 더 유치하고 더 더러운것들도 많이 하면서.. 우리의 잘못이라면 생각없이 그리고 주위에 사람들이 있다는 걸 인식하지 못하고 좀 떠들어댄 거 뿐이라고...

그런데 일은 커졌고 어른들은 달을 가르키는데 달은 안보고 가르키는 손가락이 더럽다고 손톱에 때가 끼었다고 하필이면 그 손가락으로 가르키냐고만 하고 있다,

그래서 아이들은 참고 미안해하고 용서를 비고 반성해야한다,

어른은.. 지들이 잘난 줄만 안다,

 

<그녀>에서도 어른들은 관심과 애정이라고 여기며 남의 삶에 마구 끼어든다,

거기에 대들면 영락없는 호로자식이다, 부모가 어떻게 키웠길래 ... 저 혼자 잘난 줄 알지... 저렇 버러장머리 없는 놈... 돌아오는 건 손가락질이고 욕이다,

예전 주인공  아버지는 욱해서 뒤엎었다가 두고두고 용서를 빌러 다녔다,

뭐 그래도 서로 솓가락이 몇개인지 다 아는 마을이라 유야무야 넘어갔지만

이번에 이사온 그녀 (나중에 미진이라 알게 된) 는 얄짤없다,

걸리면 나이 불문 그대로 되갚아준다,

미친년이라는 소리가 무섭지도 않고 나만 참고 있을 필요가 없다고  당당하다

그래도 틀린 말은 없다,

내편이면 시원하고 니편이면 얄미원 캐릭터이긴 하지만 그래도 아주 밉지만은 않다,

그리고 화자 소년은 참 착하다,

그녀석의 사촌들도 그렇고...

속이 좋아서 착해서 어른들말에 고분고분 잘 따른다,

사실 아직 이런 녀석들이 더 많을 것이다,

 

<미진이> 에서 가장 인상적인 인물은 미진이 엄마였다,

사실 엄마도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내가 낳았으니 내가 생사여탈권을 쥐고 죽여줄까? 라고 뻔뻔하고 무심하게 말 할 수도 있다는 걸 보여준다,

돌직구도 이런 돌직구가 없다, 아이의 단점을 있는 그대로 필터없이 되갚아준다,

요즘말로 팩트 폭력감이지만. 사실 틀린 말이 아니라서 더 아프고

그 말을 한 사람이 다른 사람도 아닌 내 엄마라서 미진이는 더 아프다,

엄마라면 응당 이래야 한다는 당위성에서 한참을 벗어난 엄마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고 세상 혼자 고독하지만 그게 틀리지도 않았고 엄마도 아프다는 걸 머리로 너무 잘 이해하니까

더 마음이 아프다,

아는 건 아는 거고 아픈 건 아픈거다,

내가 그런 싸가지 없는 년이라고 해서 그런 말이 아무렇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 할까

가끔 아이의 자율성을 존중한다는 핑계로 무심하게 책임지지 않으려는 말들을 뱉았던 나를 돌아본다, 나도 가끔 책임에서 벗어나고 싶은 그냥 사람이니까..

 

<아는 사람>  가장 아프고 불편한 이야기

그럼에도 마주해야만 하는 이야기다

불편하다고 피할 수만은 없다,

성에 관해 성폭력에 관해 이제는 모두가 함께 공개적으로 이야기하고 교육하고 생각해야할 시점이다, 아는 사람이라는 주제가 더 섬뜩하다

강풀의 <이웃사람>처럼 내가 잘 안다고.. 아니 그냥이라도 안다고 생각해서 방심한 순간 그 사람이 악마로 변할 수 있다는 거다, 영화에서는 그 이웃사람이 악마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악마를 함께 잡는 우리 편이기도 했다, 조금만 관심을 보이자고...

주인공은 이제 아는 사람이 더 무서울 텐데,...누구도 알고 싶지 않고 더 이상 아는 사람을 만들고 싶지 않다는 주인공의 속내가 아프고 아프다,

그럼에도 어떤 폭력도 내가 원인은 아니라는 걸 잘 말해준다,

폭력이 순식간에 내게 훅 들어온 것이지 내가 폭력으로 걸어간게 아니다,

내 잘못이 아니다, 나는 소중하고 언제든 존엄을 가질 권리를 가진 인간이라고 아이는 그 순간에도 생각한다,

내가 아이의 전화를 받은 엄마라면.....

상상만으로 눈앞에 깜깜하지만 그래도 너는 잘못이 없다고 그리고 용감하고 조금 무식하게 아이를 위해 싸워야 한다고 다진다...

 

<만두>와 <파란아이>에는 참 예쁜 아들딸이 나온다,

엄마를 위하고 친구를 위하는 예쁜 아이들

입은 걸지만 마음은 예쁜 아이들

입술은 파랗지만 속이 깊고 누구든 이해할 줄 알고 공감할 줄 아는 친구들

에쁜 성장기다

 

<이어폰>은 참 현실적이어서 무섭기도 했다,

가끔 나도 아이들에게 말할때 내가 누구한테 말하나 싶을 때가 있다,

요즘 아이들은 누구나 귀에 이어폰을 꽂고 있다,

길을 갈때 공부를 할때 혼자 방에 있을 때 심지어 온가족이 거실에 함께 있을 때도 이어폰을 꽂고 있을 때가 있다,

길가다가는 그러다 사고가 날까 걱정이고

집에서는 서로 보이지 않은 벽을 치는 기분이지만..

어쩌면 아이는 그 벽안에서 가장 행복하고 가장 안전하고 가장 편안할지 모르겠다,

중일이도 그 이어폰 속의 세상에서 가장 행복했었다,

그 가장 행복하고 신나는 순간이 가장 불행하고 무서운 순간과 함께 했다는 것

그게 문제였다,

내가 행복을 만끽할 때 그래서 주위에 무심하고 무심할때

엄마는 죽었다,

겨우 벽하나 문하나를 사이에 두고 엄마는 죽었고 나는 음악에 맞춰 춤을 췄었다,

싸이고패스도 아니고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중일이의 죄책감 아버지의 죄책감 그리고 남은 가족들의 보살핌 모든 것이 덮여지는 게 싫지만 들추기도 두려운 시간들

참 멋진 고모가 중일이를 다독인다,

미안할 때는 미안하다고 말하고 고마울 때는 고맙다고 말할 수 있는 것 그게 나중에 후회가 없다고

그리고 그런 소소한 일들이 행복이라는 걸 이제 중일이는 안다,

사실 그 전에도 알았었는데 잠깐 잊은 것 뿐이다,

 

아이들은 욕을 하고 반항을 하고 아이씨~~를 입에 달고 살지만

그래도 속이 깊다,

엄마를 생각하고 친구를 생각하고 남의 입장을 생각한다

다만

표현하지 않는다,

생각만 할 뿐이지 몸은 쉽게 움직이지 않는다,

조금만 표현하면 조금만 움직이면 참 좋겠는데 그럼 바로 상대에게 전해질텐데

참 속이 깊고 참 바른 아이들인데 왜 말을 그렇게 할까? 왜 행동은 그렇게 할까

 

 

사실 김려령의 성인대상 소설들은 실망을 했다

취향이 다를 수도 있는 것이지만 왠지 너무 자기 세계에 빠진 느낌?

뭐 그런거였는데

역시 청소년소설에서는 작가를 따를 사람은 아직은 없을 거 같다,

그냥 그 아이 마음속을 투명하게 들여다 보듯이 짚어내고 그 눈높이에서 받아주는 표현들이 생생하다.

내 소원중 하나가 욕을 찰지게 잘하는 건데

작가의 책을 다시 찬찬히 보면 좀 잘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해본다,

 

아이들은 그냥 있는대로 바라봐 줄 수 있는 시간

그게 어른에게 부모에게 필요할거다,

아니 적어도 내겐 필요한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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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려령 지음 / 창비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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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김려령이다.
요즘 아이들을 이토록 내밀하게 안아주는 작가가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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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아이가 크면서 글밥이 많은 동화책으로 넘어 간후 그림책을 보지 않았다.

아이와 함께 나도 성장하고 단계를 밟아가고 마음이 조급해지면서 그림만 많은 그림책을 잊었다.

그러다 상담 공부를 하면서 무엇보다 그림책만큼 쉽게 마음을 열기 쉬운 도구가 없다는 걸 알았다

그림책은 누구에게나 열려있다,

글을 알아도 글을 몰라도 상관없다,

시간을 쪼개내지 않아도 휘리릭 볼 수 있고

하루종일 책을 끼고 앉아 아까운 곶감 빼먹듯이 두고두고 볼 수도 있다,

그리고 그림책에서 받은 느낌은 제각각이다,

나의 처지난 상황 감정에 따라 누구도 발견하지 못한 무언가를 볼 수 있다,

누구나 주목하는 가운데 커다란 주인공 대신 구석에 아무도 모르게 숨어있는 누군가에게 마음이 가기도 하고 흘려그리듯 대충 그린 구석의 꽃 하나 혹은 배경 하나에 꽂힐 수도 있다,

그게 다 괜찮다고 말해주는게 그림책이다,

다시 아이가 되고 싶은 내 아이에게 읽어주기도 편하고 듣기도 편하다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있을 때 그냥 그림책 한권을 슬쩍 밀어넣어도 괜찮다,

나는 이런 의미를 주고 싶은데 아이는 혹은 상대는 저런 의미를 발견해도 상관없다,'

서로 미처 보지 못한 그 그림에 그 한 줄에 의미를 나눌 기회가 된다,

 

                  

 

 

 

 

 

 

 

 

 

 

 

 

 

 

두 작가의 그림책 이야기를 읽는다,

미스다 마리는 자기가 어렸을 때 읽은 그림책을 이야기한다,

그때 미처 발견하지 못했거나 어떤 편견으로 읽다 만 혹은 들춰보지도 못한 그림책을 이야기하며 그때의 감정과 추억을 이야기한다,

지금 알게 된 것을 그때 알았더라면 어땠을까 ..

그때 그 친구가 준 그림책의 의미를 알았더라면 우리 사이는 달랐을까

그때 무서워서 펼치지 못한 책을 내가 읽었더라면

그때 너무 아끼던 그림책을 아직 가지고 있었더라면

다 부질없지만 그래도 의미는 있다,

그때의 미련이나 후회가 다시 그림책을 들추게 하고 그 때 발견하지 못한 혹은 느끼지 못한 감정이나 의미를 다시 알아본다,

그림책은 나의 과거로 가는 문이기도 하고 내가 미처 열지 못하고 망설이던 저 아래의 무의식을 건드리기도 하고 아주 어이없이 간단하게 타인을 공감하게도 만든다,

그림책속의 인물중에 내가 이해하지 못할 인물은 이제 없다,

단 한줄 혹은 귀퉁이의 조그만 인물도 그냥 허투루 넘어가지지 않는다,

그때 못 본걸 지금은 볼 수 있다,

내가 못 본걸 누가 보고 이야기 해 줄 수도 있다,

단순하다. 그래서 더 깊고 넓다,

 

<그림책에 흔들리다> 저자도 마찬가지다,

누군가의 아픔에 그림책으로 위로하고 스스로도 위로받는다,

아팠던 과거나 속상했던 순간 그림책이 함께 한다,

그림책을 읽으며 주인공에게 동질감을 느끼고 주인공을 따라 불안하고 어려움을 겪지만 결국은 그에게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마치 내가 모든 걸 해낸것 처럼 공감하게 된다,

그림책의 주인공에게 공감해본 사람은 타인을 이해할 수 있다,

미스다 마리보다 이 책의 저자는 그림책이 주는 위로와 공감을 더 내밀하게 이야기해준다,

아이를 키우며 느끼는 여러가지 감정들   죄책감  불안  패배감 등등을 그림책을 통해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 감정이 잘못이 아님을 알고 안도한다, 내 감정에 솔직해지고 나만 겪는 어려움이 아님을 아는 것 그래서 나를 조금 더 사랑하게 되는 일 '

그 어려운 일을 그림책이 해낸다,

 

미스다 마리의 책을 보면서 나도 다시 그림책을 읽어봐야지 마음을 먹게 되고

김미자 저자의 책에서 나는 나도 나름 괜찮은 엄마고 괜찮은 살이라는 위로를 받는다,

누군가의 내밀하지만 솔직한 고백이  나에게도 힘이 되기도 하나보다,

 

별 거 아니라면 아니겠지만

소소하고 자잘한 자기고백이 때로는 힘이 될 때도 있다,

그림책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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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의 하루

이 영화의 원래 제목이 '최악의 여자'라고 한다,

영화를 보기전 여러가지 정보를 종합해보면

주인공 은희가 제각각의 남자들에게 하는 거짓말에 포인트가 맞춰져 있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 난 후 생각은

은희가 언제 거짓말을 했지?

은희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제각각의 대상에게 제각각 어울리는 역할을 한 것 뿐이다,

누구나 그렇지 않은가?

나도 엄마로서 아내로서  학생으로서 친구로서 동료로서 제각각 다른 모습을 보인다,

친구들에게 엄마처럼 굴 수  없고 내 아이들에게 동료처럼 대할 수도 없고 남편에게 딸처럼 어리광을 부리지 않는다, 그건 상대에 대한 예의라고도 할 수 있다,

맞는 상황에 맞는 에디튜트를 갖추는 것

그건 상황과 장소에 맞는 옷차림처럼 당연한게 아닐까

그리고 종합해보면 현오나 운철에게 각각 다른 모습을 보일 수 밖에 없다,

대상이 다르지 않은가?

같은 사랑하는 애인이라고 해도 생김새가 다르고 성격이 다르고 처한 상황이 다르고 관계가 다르다, 그렇다면 상대에게 맞게 맞춰 줄 수 잇다,

그게 어떻게 거짓말인가

그리고 어째서 은희가 최악의 여자란 말인가

은희는 찌질하고 철없고 자기만 아는 남자를 만난 최악의 상황에 처한 여자일 뿐이다,

어쩌면 현오도 운철도 은희로 하여금 거짓말을 하게 만들지 않았는가?

남자들은 자기 언행은 생각하지 않고 양다리를 걸치고 서로에게 다른 말을 한 은희를 거짓말장이로 만들고 쌍년으로 만들어버린다,

은희 하나가 희생하고 욕을 듣게 되면서 스스로는 괜찮은 남자가 되고 교모하게 상황을 빠져나간다 은희에게 땅을 파고 들어가라고 막말을 해대면서 자기는 매우 선하고 아무 잘못이 없는양 군다,

현오는 철이 없다, 철없음이 젊음이라고 착각한다. 자기의 거짓말이나 자기의 혼돈은 전혀 개의치 않고 자기가 은경이라고 부른 사실은 냉큼  잊어버리고 은희에게만 타박이다,

운철도 이혼도 안한 자기 상황을 무슨 순애보처럼 꾸미고 운명앞에 거부할 수 없는 순정남처럼 행동한다, 그렇게 보이고 싶어하고 은희가 그렇게 받아주길 바라면서 은희에게 젊은 애인이 있음을 알고는 은희만 타박이다,

두 사람은 전혀 자기의 본 모습을 볼 수도 없고 볼 생각도 없고 알려는 의지도 없다,

그냥 은희 하나 이상하고 최악의 여자로 만들고 유유히 빠져나간다,

 

은희는 그렇게 혼자 남산에 남겨졌다,

물론 은희가 두 사람에게 진실하고 진정성이 있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우리는 살면서 매순간 진성성을 보이나?

나를 꾸미고 싶고 내가 다른 사람처럼 행동하기도 하고 또 그게 난가? 하는 착각도 하면서 사는 거 아닐까

은희에게 최악이란 하필 자기가 가진 여러가지의 페르소나를 한꺼번에 마주햇다는 우연같지 않은 우연뿐이다,

그게 뭐 어쨌다고.....

료헤이의의 대화에서는 낯선 언어때문에 거짓말을 할 수 없지만 의사소통은 언어만 있지는 않다, 거짓말을 하고 속이려면 언어는 문제도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은희는 그 앞에서는 조금 진실하고 본모습을 드러낸다,

어떤 보여지는 모습을 기대하지 않는 그에게 편안함을 느낀다,

때때로 나를 전혀 모르는 누군가가 가장 편할 때가 있는 법이니까,

 

이 하루가 은희에게 료헤이에게 현오에게 더구나 운철에게도 최악의 하루일 수는 있다,

제각각의 이유로

하지만 은희가 최악의 여자라는 건 절대 동의할 수 없다,

 

이런 아침 극장안은 달랑 두명의 관객이  있었다,

두 명은 앉혀놓고 상영해서 뭐가 남을라나 하는 생각도 문득 들었지만 대형 멀리 플랙스에 대한 걱정까지 할 필요는 없겠다 싶었다,

둘 다  비슷한 나이의 동성이라.. 정말 편안하게

먹어가며 눈치보지 않고 웃음을 터뜨려가며 영화를 봤다,

주로 현오나 운철을 보며 기가 막혀 웃고

은희의 영악하게 굴어도 아직 세상을 모르는구나 하는 모습에 혀를 차며 웃었다,

니네들 세상을 더 살아봐야겠구나

겨우 그걸로 최악이니 어쩌니 하는 걸 보니... 하는 아줌마스러운 마음으로 영화를 봤다,

말은 나누지 않았지만 또 한명의 관객 역시 같은 마음 아니었을까

우리는 같은 포인트에서 웃었으니까...

 

삶이란 가까이서 보면 최악이고 더할 수 없는 비극이겠지만 멀리서 물을 마시고 오징어를 씹어면서 보면 더 할 수 없는 코메디고 희극이더라

타인의 최악의 하루에 웃어댄게 조금 미안하긴 하지만

주인공들이 10년 정도 더 살고 나면 웃을 수 밖에 없겠구나 하고 알지 않을까 생각한다,

 

한예리는 예쁘진 않지만 참 매력적이다,

어디에 있어도 참 잘 어울리고 스며드는 배우다,

 

영화는 최악의 하루지만... 그날 나의 하루는 영화로 인해 최악만은 아니다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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