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부는 국가관이나 사회관 같은건 잘 맞는 편이다,

광화문도 함께 나가고 뉴스를 보면서 다투는 일도 별로 없다,

다만 더 어려운 문제 그러니까 서로의 취향 입맛 취미는 정말 안맞는 사람이다

그리고 결혼 20년이 다되가는 지금 내가 아직도 이해하면서 이해가지 않는 그리고 이해하고 싶지 않은 의문은

남편은 자기 의견에 가족이 반대하는 걸 무지하게 싫어하고

배고픈 순간을 절대 못참는다는 것과 삼시 세끼가 무척 중요하다는 점이다,

 

 

지난 주말 우리 부부싸움의 원인은  남편이 홈쇼핑서 보고 사고 싶어하던 소파를 내가 싫다고 했고 그래서 남편이 화가 났고 늘 화가 나면 휙 하고 나가는 게 싫어서 이번엔 내가 나갔다 올게 하고 말했더니 돌아오는 말이  " 그럼 밥은?' 이말에 더 뚜껑이 열렸고

밥은 밥통에 있고 반찬은 냉장고에 있고 아이들은 커서 손이 가는 상황도 아닌데

오로지 자기 밥만 생각하는 밥통같은... 그럼 마음에 가출을 했었다,

그리고 갈 데가 없어서 가 아니라 굳이 돈을 써서 어딜 가고 싶지 않아서 도서관에 앉아 종일 책을 읽었다,

 

 

굳이 이 책에서

"하늘로 가는 길"과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이 더 재미있던 건 그냥 그게 더 재미있을 뿐이었다,

뭐 남편을 살해하는 이야기라서 그런건 절대 아니라고 맹세할 수 있다,

그냥 그 때 더 재미있었을 뿐이다,

 

그날 도서관 닫는 시간에 집에가서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결국

저녁을 차려서 함께 먹은 것이었다,

밥.. 밥.. 밥....

지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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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수 클리볼드 지음, 홍한별 옮김 / 반비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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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주 전에 어떤 분이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오래되어 정확한 워딩은 기억나지 않지만 전체적인 의미는 이랬다,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정말  오늘도 무사했구나 하는 마음이 들어요

 집 밖이 얼마나 위험하고 두려운 곳인지 아니까

 아이들이 그런 곳에서 10시간 이상을 보내고 무사히 돌아올 수 있다는 데 감사하고 다시 집 밖을 나갈 수 있도록 힘을 주는 것 말고는 할게 없더라구요'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미취학 그것도 기저귀를 달고 있거나 막 떼었거나 한 아이들을 키우고 있었다, 그 말이 전혀 이해되질 않았다,

집 밖에 두려우면 얼마나 두렵고 학교가 힘들면 저 혼자 힘들까 싶었다,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그 분의 아이가 학교에서 어떤 왕따 비슷한 일을 겪었던 거 같고 그래서 마음고생이 심했다는 것을 짐작하긴 했지만 그렇게 학교가 위험하다는 표현은 듣기 거북했다,

너무 애를 감싸는게 아니야?

내 애를 위해 내 아이 내 가족을 제외한 모두를 나쁜 편으로 몰아가는 건 아닐까 하는 정의감도 들었다,

 

#  2

 

아이를 키우면  그리고 아이가 자라면서 우스개소리로 하고 혹은 심각하게 알게 되는 것이

내 아이는 내가 아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라는 것이다,

내 눈에 보이고 내가 있는 곳에서 행동하는 것이 그 아이의 전부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은 특히 엄마는 그 아이를 전적으로 신뢰해주어야 한다

라는 아주 모순된 두 문장이었다,

내 눈에 보이는 내 아이를 믿어서도 안되고 그렇다고 의심해서도 안된다,

그건 늘 모순이지만 진실이었다,

 

 

#  3

 

몇번 썼던 적이 있는데 아이가 학교에서 친구문제로 심각한 상황을 겪으면서

나는 아이들이 순진하기만 한 존재는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의외로 정의롭게 흘러가고 어른들 말을 잘 듣고 쉽게 반성하는 건 동화나 영화속의 이야기일뿐 아이들은 순진한 얼굴로 말갛게 거짓말도 하고 남에게 상처도 입히고 아무렇지 않기도 하다,

그리고 누군가는 편안하게 무탈하게 견디는 공간과 시간은 누군가는 어렵고 힘들게 견디기도 한다, 같은 대상 같은 공간이 사람에 따라 다르게 다가오는게 가능하다는 것도 알았다,

 

아이가 힘들었을 때 너무 좋은 엄마처럼 공감하고 이해하려고 했지만 솔직히 고백하자면 버거웠다

사실 이야기를 듣고 냉정하게 생각하면 별 거 아닌 일이라고 여기기도 했고

내 아이가 너무 예민하고 까탈스러워서 문제를 크게 만든다고도 생각했고

아이들의 문제는 누군가가 가해자고 누군가가 피해자라고 딱 잘라 말하기 애매하다는 부분도 있어서 우리아기가 전적으로 피해만 보았다고 볼 수도 없다는 걸 알면서

나 스스로가 누군가를 만나는 것이 위축되기도 했다,

솔직히 그런 아이가 부끄럽기도 했고 왜 남들처럼 무탈하게 살아주지 않는지 표나지 않게 원망도 했고 아이때문에 내가 움츠려 드는 일이 억울하다고 생각도 했다,

아이 말에 귀를 기울여아 한다는 걸 알지만 세심하게 살펴야 한다는 건 머리로 알았지만

내가 힘들고 내가 싫어서 그냥 모른 척 한 적도 많았다,

말하지 않으면 더 묻거나 알려고 들지 않았고

내가 해결할 수 없는 일을 들어봐야 서로 감정만 상하는데 싶기도 했고

어쩌다 아이가 보여주는 밝은 모습이나 학교 생활을 재미나게 들려줄 때는 그래 이렇게 괜찮은 걸 괜히 걱정했구나 스스로 다독이면서 이게 원래 모습이라고만 믿고 싶었따

어쨌든 나의 태도는 두려워서 무능해서 피하고 싶었던 것이었다,

머리 큰 자식 문제를 부모가 해결 할 수 없는 일이라는 핑계를 대면서 그렇게 모른 척하고 관심을 가지기도 하면서 이 순간만 잘 모면하길 바랬던 것이 내 솔직한 태도였다,

 

 

#  4

 

지금도 아이는 친구가 없다는 말을 자주한다,

어떨 때는 친구랑 어떻게 지냈는지 막 조잘거리다가도 어떨 땐 친구가 없어 외톨이라고 했다가

그냥 아무렇지도 않은 척 지내다가

다른 문제로 스트레스를 받고 짜증이 치받으면 또 자기가 친구도 없고 힘든데 왜 집에서도 가만두지 않느냐고 화를 내기도 했다,

감정 기복이 심하고 화를 내고 말하지 않고 방문을 쾅 닫고 들어가버리고 자주 배가 아프고 편두통이 나는 것이 사춘기 아이의 특징이 아니라  사춘기 아이들의 우울증의 한 특징이라는 걸 이 책을 읽기전에 어디서 보긴 했다,

아 저게 다 우울증이구나...

아이가 우울질이 큰 성향이라는 건 짐작했지만 그래도 알고 있고 본인도 인지하고 있으니 더 크게 번지지는 않을거라고 몰라서 대처못하는 상황은 없을거라고.. 그리고 누구나 조금씩의 우울한 기질은 있지 않을까 하는 안이한 생각으로

나도 설마 우리집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고 우리아이들은 적어도 내 앞에서는 버릇없다고 종종 생각될 만큼 솔직하게 감정이나 욕구를 드러내니까 크게 문제 될 일은 없다고 나를 위안하고 있었다,

가끔은 살얼음 위를 지나는 것처럼 불안해서 이러다 내 명에 내가 못살겠다 여기다가도

이정도이기만 해도 감사다하다는 나날들이 번갈아 온냉탕처럼 지나가면

서 지금도 그렇게 아이들과 살고 있다,

 

 

#  5

 

우스개로 넘기기엔 끔찍한 이야기가 있다,

한 아버지가 작고 여린 아들이 늘 걱정이었다, 학교에서 맞고 다니진 않은지 혹시 덩치 큰 녀석들이 내 아이를 괴롭히지는 않은지 아버지는 늘 아들을 염려하고 관심을 가졌다, 혹시 누군가가 괴롭히지 않은지 때리지는 않은지 늘 물어보고 관심을 가지고 아이를 염려했었다,

어느 날 학교에서 부모호출이 왔다,

아버지는 아 내 아들이 누군가에게 맞았구나 큰 일이 생겼나보다 하고 학교로 달려갔더니

세상에 내 아이가 누군가를 괴롭히고 떄렸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렇게 관심을 가지고 내가 너한테 질문을 하고 또 했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생겼느냐고 한탄 하는 아비에게 아들이 그랬단다,

아버지는 내가 누군가에게 맞고 다니는지 괴롭힘을 당하는지만 물었지 내가 누군가를 때렸냐고 누구를 괴롭혔냐고는 한번도 묻지 않았잖아요. 그래서 답할게 없었다고....

누구나 부모라면 내 아이가 피해자가 될까 전전긍긍하지 누군가의 가해자가 될거라고는 절대 생각하지 못한다, 물론 그런 염려를 하는 부모도 있겠지만

평범하고 그래도 잘 컸다고 믿는 내 아이가 누군가를 괴롭히는 가해자가 될거라고는 생각하지도 않고 상상하고 싶지도 않은 일이다,

학교폭력 실태나 사례를 볼 때도 피해를 당할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만 눈여겨 보고 일반 저잣거리에 떠도는 가싶에도 누구가가 피해를 보았을 때 어떻게 나가야 하는가만 소문처럼 떠돌 뿐이다, 가해자는 무조건 나쁜 사람이고 그 부모도 똑같고 그렇게 키웠으니 그런 자식이 나왔다고 그러게 철석처럼 믿으면서 나는 나쁜 부모가 아니니 내 자식이 나쁜 자식일리 없다고 믿는다,

 

 

#  6

 

어릴 적 나도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내 기억에 가장 어릴 적 죽고 싶다는 생각은 초등학교 5학년때였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어이없는 이유였다, 나는 물건을 잘 잃어버리는 아이였고 내가 잃어버린 우산만 5개가 넘어가서 늘 그 문제로 혼나곤 했는데 드디어 6개째 우산을 잃어버렸다, 돌아가면 혼날 게 뻔하고 나도 이런 내가 너무 싫어서 차라리 죽어야 겠다는 마음이 들었었다,

어쩌면 우산분실은 핑계였을 것이다,

그때 나는 무언가로 나 자신이 너무 싫었고 모든게 그 모든 괴로움은 내탓이었고 나만 없으면 다 괜찮을거라는 생각을 했고 굳이 살아갈 이유도 없다는 생각도 했던거 같다

그 때 나를 살린건 나의 소심함이었다,

높은 곳에서 떨어져 죽자니 떨어지는 순간이 두려웠고 칼로 자해하지니 그 고통이 끔찍했다, 목을 매달까 했지만 숨막히는 순간의 고통이 느껴져서 싫었다,, 결국 어떤 방법도 무서워서 그냥 엄마에게 야단맞는게 가장 덜 아프겠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야단을 맞았는지 어땠는지 기억나진 않는다,

그때 아파트 벤치에 혼자 앉아 오래오래 죽는 방법에 대해 생각했던 것이 기억이 났다,

그러나 엄마는 그때도 그 이후 내가 죽음을 생각했을 때도 내가 그랬다는 걸 절대 모른다,

나 역시 죽고 싶을 만큼 힘들었을 때 이걸 누군가에게 들키는 게 죽는것 보다 더 싫었다,

더구나 가까운 가족에게는 잘 난 모습을 보이고 싶었다,

그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은 마음과 이런약한 마음을 들키고 싶지 않을 마음  알아봐도 소용없을거라는 마음이 뒤섞여서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고 더 웃고 더 활발했던 걱 타았다,

결국 그렇다 책에도 나오지 만 속이려 들려면 누군든 속일 수 있다,

다만 모든 사건 이후 결국 그때 그런 행동이 그런 의미였구나 하고 결과론적인 이야기만 오갈 뿐이다, 그때는 아무도 모를 수도 있다,

 

 

 

 

콜럼바인 사건 이후에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다가와 자기네 이야기를 들려주고 숨겨왔던 고통을 털어놓았다, 그런데 이른바 '완벽한 아이들" 이야기가 무척 많아서 놀랐다, 과학박람회에서 상을 받고 육상대회 메달도 휩쓸고 최고의 음악 학교에서 전액 장학금을 받는 아이들 무언가 문제가 있다는 뚜렷한 징후가 나타난 경우도 있었다, 성적이 떨어지고 성생활이나 약물에 탐닉하고 위법 행위를 저지르기도 했다, 그렇지만 워낙 빛나는 아이들이었기 때문에 부모의 레이더를 피할 수 있었다, 다른 분야에서 능력이 탁월한 만큼 부모가 가지들의 끔찍한 고통을 보지 못하게 숨기는 일도 잘 했다.,

 

 

 

토맘스 조이너 박사는 심라학자이자 아버지를 자살로 잃은 사람으로서 꼼꼼한 자료조사는 물론 공감과 개인적 관점이 담긴 아름다운 책을 쓴다, 세걔의 원이 겹쳐진 벤다이어그램으로 표현되는 조이너 박사의 자살 이론이 이 분야를 새로이 정의했다,

조이너 박사는 사람이 두가지 심리적 상태를 꽤 오랫동안 겪으며 살았을 때 자살로 죽고자 하는 욕망이 생겨난다고 했다, 첫째는 좌절된 소속감 (나는 혼자야) 이고 둘째는 스스로를 짐이 되는 존재로 생각하는 것 ( 내가 없으면 세상이 더 나아질거야) 이다, 이런 사람들이 자신의 보존 본능을 넘어서는 단계에 들어선다면 (나는 죽는 게 두렵지 않아 ) 위험에 임박했으며 자살을 저지를 수 있다고 본다.

그러니까 죽고자 하는 욕망은 첫번째와 두번째 심리상태에서 나온다, 자살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은 세 번째 요인에서 나온다

 

 

 

몇가지 중요한 점을 정리해주면 도움이 될 것 같군요.

 

1. 부모님이 어떻게 해서 혹은 어떻게 하지 않아서 딜런이 그 행동을 하게 된 것은 아닙니다.

2. 딜런이 어떤 상태인지 부모님이 '보지 못한' 것이 아닙니다, 딜런은 원래 비밀이 많은 아이였고 자기 내면을 부모님뿐만 아니라 자기 주위 모든 사람들에게 의도적으로 감추었습니다,

3. 삶의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딜런의 심리작용은 심하게 악화되어 제대로 생각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4. 이렇게 악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딜런의 이전 자아가  아직 남아 있어서 총격 도중에 최소 네명을 살려주었습니다,

 

                         피터 레먼 박사의 이메일  

 

 

 

 

이게 역설 가운데 하나다, 우울에 시달리는 십대 아이들이 상냥하게 자기 생각을 잘 이야기한다면 도와주기도 더 쉬울 것이다, 우울증 안내 책자 사진처럼 깔끔하고 에쁘장한 외모에 주먹으로 턱을 괴고 슬픈 듯한 눈으로 비 내리는 창밖을 내다보는 아이라면 말이다, 하지만 어려움을 겪고 있는 아이는 막상 만나면 불쾌할 때가 많다, 공격적이고 호전적이고 무례하고 화를 잘 내고 적대적이고  게으르고 짜증을 내고 솔직하지 않고 위생상태도 썩 좋지 않을 때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까다롭고 다른 사람을 밀어내려고 하느 ㄴ아이들이 누구보다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이기도 하다, 사실 이런 성향이 도와달라는 신호일 수도 있다,

 

 

 

모든 걸 잘한 건 아니다, 공부를 할수록 딜런에게 어떻게 했더라면 더 좋았을걸 하는 것들을 배워나간다, 설교하는 대신 귀를 더 많이 기울였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할 말이 없을 때 내 생각과 말로 빈 공간을 채우는 대신 말없이 같이 앉아 있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딜런의 감정을 달래려고 하는 대신 인정해주었더라면 , 뭔가 느껴질 때에 '피곤해요 숙제가 있어요' 같은 핑계로 대화를 피하더라도 받아들이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같은 핑계로 대화를 피하더라도 받아들이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어둠 속에 딜런과 같이 앉아서 딜런이 걱정하지 말라고 해도 걱정되나다고 끈덕지게 말했더면 좋았을 것이다, 다른 모든 걸 다 버리고 딜런에게 집중하고 캐묻고 다그쳤더라면 내가 보지 못했던 것을 볼 수 있을 정도로 밀착했더라면 조핬을 것이다,

이런 후회를 하지만 딜런이 파괴적인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는 뚜렷한 징조는 전혀 없었다,

 

 

모든일이 지나고 나면 명확하게 보인다,

저자 수 클리볼드도 컬럼바인 사건이 지나고 시간이 흘러 계속 딜런을 생각하고 자기 행동을 생각하면서 조각들을 맞추어간다,

그때 그런 행동이 징후였을까 그때 나는 왜 그걸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내가 그때 그렇지 않았떠라면 혹은 그랬더라면 그때 그 아이의 행동을 그냥 사춘기의 특징이라고 넘기지 말았더라면 뒤늦게 모든 것이 뿌엏게나마 보이고 모든 것이 회한이었다,

 

자기 자식에 대해 최선을 다하지 않은 부모가 있을까

관심이 없는 부모가 있을까

수 클리볼드도 그렇다,

책을 보면 그녀도 최선을 다했다,

딜런 입장에서는 아쉬운 부모의 모습도 있겠지만 누구나 그만큼 하고 누구나 그만큼 무지하고 무심하다, 내가 그때 다가갔더라면 내가 그때 안아주고 말을 걸어주었더라면 하는 회한속에서 가장 와 닿는 것은 빈공간에 내 이야기로 채우지 말고 가만히 옆에 있어줄걸. 이라는 거였다,

나역시 그렇다,

내 아이가 잘못될까봐 손가락질은 당하지 말하야지 무시당하거나 잘못 컸다는 말은 듣지 말아야지 하는 마음에 어쩌면 대화의 70퍼센트는 잔소리인지도 모르고 타이르고 가르치고 주입하는데 보냈던거같다, 아이가 몰라서 안하는게 아니라는 것

그 당시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고 내키지 않은 마음이 있고

무기력하고 기운이 없을 수도 있고

죽기보다 하기 싫을 수도 있다는 걸 모르고

모든 걸 해야하고 좋게 보여야 한다는 걸 가르친다는 명목으로 주입하면서

사실 나는 내 아이가 잘 컸다는 것으로 내가 잘 살고 있음을 증명하고 싶었던거 같다,

어쩌면 수 클리볼드도 그런마음이 있었을 것이다,

모든 부모가 자식에게 동동거리는 것은 아니지만 자식의 모습이 내 자부심이기도 한 법이ㅏ,

 

아이는 잘 못된 부모탓이 아니고 총기 사용의 문제 왕따문제 사춘기 감정의 문제 뇌건강의 문제(이 책에서는 정실질환이 아니라 뇌건강이라고 언급하는 부분이 좋았다) 모든 것이 복합적이었다, 어는 것 하나가 원인이가고 당위성을 만들어버리지 않았다,

모든 것이 문제이며 동시에 모든것이 문제가 아닐 수 도 있는 일이었다,

어떤 사건이 일어나고 원인을 분석하고 찾아볼 때 명확한 대답이 나오면 모두가 편하다,

부모의 방치나 폭력이라고 나오면 나는 그런 부모가 아니니까 하고 안심하고

학교 폭력이나 왕따라고 하면 내 아이를 한 번 더 돌아보고 내 아이의 피해만 살펴보게 되고

불안한 사회 경쟁의 심화라고 나오면 사회탓 시대탓을 해버리면 그만이다,

누군가 대상을 정해 화풀이를 하고 나만 아니면 그만이라고 안도해버리는 일

그것은 아니라고 책에서 말하고 있었다,

모든 것이 원인이며 동시에 모든 것이 아니라는 것... 어떤 한가지가 아닌 복합적인 것 그때읙 정서와 뇌건강의 모든 것이 복합적으로 얽혀있고 어쩌면 가장 중요한 무언가는 가장 눈에 띄지 않고 우리가 무어라 정의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한다,

 

자식을 키운다는 것

더 크게 확장해서 사람이 누군가 타인을 이해하고 완전히 안다는 것

그건 불가능 한 일일것이다,

내 자식이라 가장 가까워서 늘 함꼐 하니까 잘 아는 건 아니었다,

어쩌면 그래서 가장 속기 쉽고 속이기 쉬운 존재가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아니었을까

철석같이 믿으며 전혀 의심하지 않은 그 절대성의 틈을 비집어 틈은 내는 일이 어쩌면 가장 쉬운 일 아니었을까

무조건적인 믿음 그리고 동시에 내가 모르는 부분이 있을 수 있다는 합리적인 의심을 동시에 갖는일 ..

그것이 관계에 대처하는  어쩔 수 없는 자세일 수밖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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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12-12 17: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식의 결점은 곧 부모의 결점,
자식의 좋은 점은 곧 부모의 좋은 점

대부분 부모가 이런 생각을 해서 그런지(저희 부모님도 그렇습니다), 자식을 애지중지 키웁니다. 그런데 이 생각에 너무 집착하면 자식의 결점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좋은 점만 보려고 합니다. 자식이 결점이 곧 부모의 결점에서 비롯한 일로 받아들이니까요. 제가 부모가 되지 않아서 자식을 대하는 부모의 입장을 잘 모르지만, 이 책을 읽어보니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푸른희망 2016-12-12 19: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렇지요 부부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는결국 부모를 닮지요 보웬의 다세대 전수과정 이론이 괜한게 아니거든요 자기를 닮아서 애틋하다가 밉다가해서 마음이 더 복잡할지두요^^

hnine 2016-12-12 1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아이가 공부를 좀 더 잘하고 못하고는 그야말로는 번호 붙이자면 5번이나 6번쯤 순서에 있을까요? 그보다 더 신경써야하고, 또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들에 비하면 저는 공부와 성적은 한참 나중이라고 생각하는 엄마라서요.
내가 보는 아이가 전부가 아니라는 말씀은 고개 끄덕여지면서도 또 한편 마음이 서늘해지네요.
저자의 경우를 봐도 그렇지만 아무튼 자식 키우는 엄마는 겸손해질 수 밖에 없는 것 같아요. 남의 자식 얘기라고 흘려듣게 되지도 않고요.

푸른희망 2016-12-13 17:28   좋아요 0 | URL
아이를 키우는 일이 정답이 없는 일이라 늘 어렵지요

머리로 아는것도 몸으로는 영 움직이지않은것도 많구요
 

로알드 달 지음, 정영목 옮김 / 강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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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자기꾀에 자기가 넘어가거나 어리숙해뵈서 만만하게 본 상대에게 살해당하거나
술자리에서 분위기에 집중시키기 딱 좋다는 느낌?
엉뚱하고 고약하고 심술궃지만 미워하기엔 또 애매한
딱 로알드 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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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어 라이프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3
앨리스 먼로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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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성적인 사람들이 더 소설을 좋아한다

이건 참일 수도 있고 거짓을 수도 있다,

내가 세상의 모든 내성적인 사람을 다 만난것도 아니고 내 주변의 내성적인 사람들 중에 소설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불론 있다,

그래서 다시 정리해서 말하자면

세상에 호기심은 많으나 내성적인 사람은 소설을 좋아한다,

이건 참일까 거짓일까

적어도 내 경우는 참이다,

나는 내가 내성적인지 아닌지 헷갈릴 때가 있다,

사람들틈에 있는 것보다는 혼자가 더 편하긴 하지만 의외로 모임에 나가면 분위기를 잘 맞출 줄도 알고 농담도 할 줄 알고 받아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시간이 길지 않다 서너 시간만 지나도 피곤해서 집으로 간절하게 돌아가고 싶다,

그냥 고요하고 조용한 내 집에서 혼자 빈둥거리며 책 속에 이야기속에 빠져들기를 간절히 원한다

그리고 나는 소설 읽기를 좋아한다,

물론 소설이 아닌 글도 읽기를 좋아하지만 기본적으로 나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그 이야기가 재미가 있든 의미가 있든 그건 중요치 않다,

그저 누군가가 나오고 어떤 이야기가 있으면 무조건 좋아한다,

너무 긴 이야기든 너무 지루한 이야기든 너무 허무맹랑한 이야기라도 나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나름의 이야기가 다 제각각 의미가 있을 거라고 믿는다,

좋은 소설도 없고 나쁜 소설도 없다고

그저 내가 좋아하는 내가 싫어하는 소설이 있고

지금 이순간 내게 닿은 소설이 있고 지금은 맞지 않은 소설이 있고

내개 오래 입은 늘어난 셔츠처럼 편한 소설이 있고 깃이 빳빳해서 어딘가 불편한 소설이 있을 뿐이다

소설의 가치를 평가하는 일은 철저하게 나를 중심으로 결정된다,

적어도 내가 내리는 결정은 그렇다,

누구나 좋다고 해도 나는 싫을 수 있고 모두가 싫다고 해도 나는 좋을 수 있다는 것

그게 이야기의 매력이라고 믿는다,

내가 너무너무 싫어도 누군가는 감동적일 수 있다는 걸 받아들일 수 있다

내가 좋은 걸 설명하고 납득시킬 수 없는 만큼 타인이 좋아아흔 걸 내가 모두 이해할 필요는 없다 그냥 모두가 제각각의 이야기를 좋아한다고 여기기로 한다,

 

이 소설집속 단편들을 하나하나 읽으면서 떠오르는 문장은   " 아무렇지 않은 척 한다" 라는 것이었다,

주인공들은 어쩌면 아무 의미도 없고 재미도 없는 어떤 삶의 한토막을 들려준다,

그것이 그 주인공의 삶에 어떤 혁명적인 모퉁이일 수도 있지만 어쩌며 그저 스쳐가는 순간일 수도 있고  겨우겨우 짜내서 셍각난 어떤 토막일 수도 있다

그러나 어쩌면 그 순간 주인공들은 그 이야기의 과정을 겪으면서 너무너무 혼란스러웠으나 결국 아무렇지 않은 척 하고 있구나 하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무언가 말하고 싶은 것이 있는데 그 말을 꺼내기가 어렵다,

빙빙돌리거나 주제를 이해시키기 위해 필요이상 배경상황을 장황하게 설명하고 막상 아무렇지 않은 척 해야하는 어떤 사건은 짧게 언급하고 지나간다,

내가 말하고 싶은 걸 길고 지루한 설명속에 꽁꽁 숨겨두지만 결국 둑자가 그걸 찾아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 그런게 읽힌다,

아무렇지 않은 척 이야기를 끄내고 그게 그리 중요한 건 아니라고 담담하게 서술하고 있지만 그 어떤 작아보이는 일이 얼마나 큰 파장을 몰고 왔는지를 알아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눈빛이 매번 짧은 단편속에서 느껴진다,

 

내성적인 사람들은 .. 아니 나도 그렇다,

별 일 아닌척 툭툭 내뱉으며 아무렇지 않다고 말하지만 그 속에 숨은 윌리처럼 헷갈리고 뚜렷하지 않은 무언가를 찾아달라고 끊밍없이 누군가를 시험에 들게 한다,

알아 듣는다면 내편 알아듣지 못하면 남의 편

그렇게 딱딱 금을 그어가며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한 아무렇지 않음을 보이며 그 속을 읽어주기를 바라는 복잡하고 나도 잘 모르기 시작한 내마음이

소설집  여기저기 숨어있었다,

 

각각의 단편속의 인물들은 평범하다

너무 평범해서 단막의 공통 배경인 타운속에서 스윽 지나가도 아무도 눈치치재 못할것이다

누구의 기억에도 오래 남지 않을 주인공들은 저마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특별할 것도 대단한 사건도 아니다,

그러나 그 이야기속에 인물들은 제각각의 의미를 숨겨놓는다,

절대 대놓고 드러내지 않는다,

내성적이고 소심한 속내를 그저 무심하게 툭 아무렇지 않은 척 내어 놓는 바람에 누구도 그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심지어 어떤 주인공은 가장 은밀하고 중요한 이야기를 아무것도 아니라는 식으로 던지고 만다

그래서 한편 두편 읽다보면 이 사람이 저사람 같고 너무 비슷비슷해보이지만

그렇게 모든 인물을 '비슷하다'는 말로 표현해버리면 그들에게  예의가 아닐것이다,

오히려 가장  모욕적이고 상처를 주는 말이 될지 모른다,

그들은 같지 않다,

타인의 눈에는 비슷해보이는 내성적이고 소심하고  특징없이 평범해 보이지만

그들은 제각각의 무늬를 가지고 있었다,

그걸 알아보는 건 어쩌면 그들처럼 소심하고 내성적이고 동시에 집요한 강박을 가진 사람일 것이다

활발하고 명랑한 이들은 절대 알아차리지 못할 미묘함을 은밀하게 보여준다,

 

일본에 가 닿기를

아문센

에어빌리를 떠나며

자갈

안식처

자존심

모리

기차...

 

그리고 마지막 디어라이프까지

 

비슷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짧은 이야기를 읽으며 서서히 지쳐갔다,

아무렇지않게 던지는 별 거 아닌 이야기들을 들을 수록  그냥 무심하게 듣고 넘기기 힘들었다,

그러면 안될 거 같은 내속의 강박이 강하게 작용하면서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니

진이 다 빠진다,

 

어쩌면 이 인물을 만들어 낸 작가가 그렇게 내성적이고 집요하고 세밀한 사람이 아니었을까

마냥 좋아보이는 책날개의 작가 사진을 다시 들여다 본다,

밝게 웃고 있는데

어쩌면 글들은 모두가 집요할까,,,

누가 나를 바라보지 않아도 상관없다

나는 너희의 이해를 구하지 않을 것이다, 다가가지도 않을것이다,

그러나 나를 봐준다면... 거부하지는 않을거다,

소설들은 그렇게 말하는 거 같다,

그래서 에이 치사하다 싶어 모른 척 할까 하다가도 그냥 내가 먼저 끌려서 다가가게된다,

이것마나 보고 그만 읽어야지 그만 읽어야지 하다가 마지막 작품까지 같다,

단편수도 맣고 두께도 왠만하긴 했지만

이렇게 단편집을 읽고 기가 빨리는 기분은 처음이다,

내성적이고 집요한 작가에게 쓸데없이 호기심만 많은 내성적인 독자가 그대로 말려들었구나

이렇게 책을 만날 수도 있구나... 첫 경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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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귄북스 오리지널 디자인 4대 비극 특별판 세트 - 전5권 - 햄릿 + 리어왕 + 오셀로 + 맥베스 + 4대 비극의 탄생과 숨겨진 의미 펭귄북스 오리지널 디자인 4대 비극 시리즈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강석주 외 옮김, 스탠리 웰스 외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14년 4월
평점 :
품절


책은 딱 손에 잘 잡힌다,

작고  가볍고 막 쥐고 다니기 좋다,

다만 너무 가벼워서 쉽게 구겨지고 조금만 방심하면 쉽게 더러워질거같다는 게 단점

 

정말 오랜만에 세익스피어의 4대 비극을 다 읽었다,

고전이라는게 누구나 알고 누구나 읽었다고 착각한다는 것

그런 의미에서 이 네권의 책은 내게 전형적인 고전이다,

사실 읽긴 했다,

대학 때 들었던 연극의 이해 수업때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꾸역꾸역 읽었던 기억이 있다,

그때 말로만 듣던 오이디푸스부터 베케트까지 그냥 뭐랄까 꼭 읽어야 하는 필독서도 아니고 그저 교양수업의 하나여서 그럴 필요도 없었지만 지적 허영이라고 해야하나 치기라고 해야하는 읽어댔던 기억은 있다,

"읽었다"가 아니라 읽었다는 "기억"이 있다,

 

세익스피어의 비극하면  함께 따라오는 것이 성격적 결함이다,

이전 고전 희곡에서는 신탁에 의한 비극 즉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강한 힘에 의해 내가 비극속에 빠지게 되는 것이라면

여기서부터는 인간적인 결함으로 스스로 초래하는 비극이라는 점이다

인간이 다양하게 가지는 감정중에서 저마다 가지는 약한 부분들이 불쑥 돌출되면서 문제가 생기는 것

그 성격적 결함이 나를 몰아대고 격정에 휘말리고 점점 그 결함이 결함인지 모르고 극단으로 몰고 가는 것

무엇때문이 아니라 스스로 파국으로 치닫는 것

그게 세익스피어의 비극이다,

 

 

 

 

누구나 알 듯이 오셀로의 성격적 결함은 질투다,

누구보다 용맹하고  재능있던 장군 오셀로는 이아고의 거짓말을 믿는 순간 스스로 질투로 걸어들어간다,

 

이유가 있어서 질투를 품는 게 아니라 질투를 품으니 질투를 하는 것입니다,질투란 괴물입니다

스스로 태어나 스스로 먹이는 괴물

 

이아고의 이야기가 머리에 박힌 이상 오셀로는 누구의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오직  이아고라는 필터를 통해 데스데모나를 보고 캐시오를 보고 스스로를 괴물로 만든다,

조금만 생각이라는 것을 한다면 조금마나 냉정해진다면 진실을 아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진실은 의외로 여기저기 자기의 흔적을 남긴다,

다만 우리가 쓰고 있는 필터때문에 그 흔적을 찾을 수가 없다, 아니 지나치면서 모른 척하기도 한다 그런 무심함  그 비좁은 틈으로 괴물은 자란다,

스스로의 질투를 질투인지 모르고 오셀로는 파국으로 달려간다,

가장 사랑하는 대상 데스데모나가 죽은 이후 그는 괴물을 마주한다,

그리고 비극은 마무리된다,

나는 어떤 필터로 세상을 보고 사람들을 보는가

내가 가진 이 필터를 나만 모른다,

오래 가지게 되면 그것이 나의 맨 눈이라고 생각하고 그것이 나 자신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렇게 보여지는 모든 것이 진실이고 사실이라고 믿는다,

그것이 나 개인의 문제라도 큰 비극이지만 누군가 권력을 쥔 사람의 문제라면 그건 재앙이다,

 

 

 

 

 

맥베스의 성격적 결함은 어리석음이다,

그 역시 오셀로처럼 용맹한 장군이고 영주였다,

전쟁에서 승리하고 적의 목을 참수하고 돌아오는 맥베스는 어리석음으로 마녀의 말을 믿는다,

글래미스의 영주  코더의 영주 그리고 뫙이 될 맥베스

어처구니 없을 수도 있는 그 예언은 무엇보다 달콤하다

용맹한만큼 어리석었던 맥베스는 그 말을 믿고 싶다,

달콤한 예언을 마다할 이유는 아무리 뒤져도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불안하고 소심한 그는 아내에게 그 소식을 알린다,

어쩌면 좋을까  불안하고 어리석은 그는 혼자 판단할 수도 없다,

맥베스보다 더 저돌적이고 강한 아내는 그 예언을 현실로 받아들이기로 한다,

손에 피를 묻힌 채 그 예언을  현실로 이룬다,

모든 것을 가졌다면 평안했어야 했다,

이제 더 이상의 불안도 없이 권력을 누리기만 햇어야 했는데

이미 더럽혀진 이후 그는 불안에 시달린다,

백베스를 부추긴 더 용감했고  막무가내였던 그의 아내조차 몽유병으로 잠을 잃어버렸다,

끊임없이 손을 씻고 또 씻으며 죄를 부인하려고 하지만 이미 더렵혀진 손은 되돌릴 수 없다,

피는 또다른 피를 부른다,

살인은 또다른 살인을 부른다,

죽음으로 얻은 자리는 죽음으로 유지된다,

이제 누구도 믿을 수 없다, 가장 믿고 의지한 아내는 이미 미쳤다,

불안과 어리석음으로 맥베스는 스스로 점점 더 예언에 의지한다,

이 비극에서 그 나마 가질 수 있는 위안은 맥베스가 품었던 죄책감이다.

내가 잘못했다는 걸 안다는 것 누구에게 말할 수 없고 드러낼 수 없지만 그는 죄책감에 시달린다

그 죄책감이 더 큰 죄를 짓게 하지만 그 약한 마음의 틈이 그를 인간일 수 있게  하지 않을까

조금 더 용기를 낼 수 있다면 조금더 한 발 내밀었다면 그는  좀 더 나아질 수 있지 않았을까

어쩌면 인간을 인간일 수 있게 만드는 감정은 다른 게 아니라 죄책감이 아닐까

인간은 잘못을 하는 존재다

완벽하지 않고 불안하고 나약하고 비겁하다,

그러나 죄책감이라는 한조각의 틈이 그를 인간을 완성한다,

미안한 마음 불안한 마음 그리고 되돌리고 다시 새롭게 하고 싶은 마음

그 마음이 죄책감  혹은 수치심에서 시작되는 게 아닐까

물론 그 마음이 너무 깊어지면 안되지만 적절한 죄책감과 수치심이 좀 더 인간에게 존엄을 주는 게 아닐까

죄책감도 없고 수치심도 없는 그래서 자기가 무엇을 잘못한 것인지 모르는 것

그것이 최악이다,

 

 

 

 

 

가장 가련한 주인공  왕 리어

한때 모두에게 존경을 받고 신임을 평화롭게 왕을 통치해온 왕은 성급하게 딸들의 사랑을 확인해보다가 큰 봉변을 당한다,

가벼워보이지만 리어왕의 불행은 봉변이다,

너무너무 큰 봉변....

어쩌나,,,

거너릴과 리건의 입에 발린 아첨에 마음을 빼앗기고 코딜리어에게 자꾸만 사랑을 재촉한다,

나를 얼마나 사랑하느냐

사랑한다면 보여다오  들려다오  측정할 수 있는 것을 제시하라

나이탓이었을까 아니면 오랜시간 통치로 인한 스트레스였을까

리어왕은 너무나 성급하고 괴팍해졌다,

자꾸 빨리빨리 더 많이 많이 더 더 더....

결국 그렇게 눈에 보이는 것 측정가능한 것만 추구하던 급하고 성마른 그는 모든 것을 잃어버린다, 헤아릴 수 없는 보이지 않은 마음을 그가 잊었던 탓이었을까

책에는 또다른 어리석은 아비가 나온다,

글래스터 백작은 서자 에드먼드의 말에 속아 에드가를 멀리하고 죽이려고 든다,

지금 이순간 내가 듣는 것 보는 것 그것을 믿어버리는 것

성급하고 어리석은 인간은 생각할 틈을 갖지 않는다,

딸들의 탐욕과 욕심도 거들었지만 그의 성급한 욕심이 나라를 망치고 가족을 망치고 모두를 죽음으로 몰아갔는지도 모른다,

 

 

 

 

 

우리의 젊은 햄릿은 생각이 많아도 너무 많다,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죽음에 대해 삶에 대하 오래오래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선친의 유령이 나타나 복수를 부탁하지만 쉽게 믿지 못하고 쉽게 행동하지 않는다,

어쩌면 앞선 주인공들의 어리석음이나 성급함 불안은 갖지 않았지만

정반대의 느긋함  우유부단 깊고 깊은 생각은 그의 발목을 잡는다,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아버지의 장례를 치른후 슬픔에 잠기기도 전에 어머니는 삼촌과 결혼식을 올린다,

이런  부조리앞에서도 햄릿은 어떤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속으로 끓어가는 마음은 누르고 어찌해야할 지 모른다,

아직 젊고 세상의 정의에 고민하는 햄릿은 죽음과 삶의 부조리앞에 갈팡질팡한다,

선친의 유령과의 만남

연극으로 드러난 지금 뫙의 악행 그리고 어머니의 회한

그 모든 것들앞에서 햄릿은 그저 무능하고 어떤 결정을 내릴 수 없어 계속 미쳐있다,

그의 미친 짓들은 결국 현실도피의 다른 이름이다,

그렇게 도피하고 꾸물거리는 동안 성급한 젊음은 많은 죽음을 부르고 결국은 모두가 죽음에 이르는 파국에 다다른다,

어쩌면 햄릿은 그의 성격적 결함보다 어쩔 수 없는 현실의 부조리들 어른들의 부정직함 악행들앞에서 무너지는 젊음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런 모든 부조리를 결국 비극으로 이끄는 것은 햄릿의 우유부단함속에 불쑥불쑥 드러나는 성급함이다,

 

삶은 우리가 원하는대로 이끌지 않는다,

예상한 우리의 답은 늘 정답을 피해간다,

세상에 답이란 존재하는지 조차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약한자의 이름은 여자가 아니라 인간이다,

인간은 남녀노소를 떠나 모두가 약하고 흔들리는 존재다,

인간은 모든 감정에 자유로운만큼 모든 감정에 흔들리고 잘못된 선택을 하고 돌이킬 수 없는 행동을 하고 파국으로 치닫기도 한다,

그럼에도 삶은 계속된다,

어쩌면 그래서 살아갈 이유가 되고 살아갈 맛이 나는 것이다,

 

희곡들이 세익스피어의 작품이냐 아니냐는 설들이 분분하다,

떠도는 이야기들 모두가 가져다 쓰는 이야기들을 정리하고 다듬어서 희곡으로 만들어 낸 이가 세익스피어라는 건 분명하다,

모든 것이 창작물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표절이라고 하기도 애매하다

 

단순하고 선명한 선과 악이 있지만 모두가 약하고 어리석고 한계를 가진 인간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세상앞에 인간이 얼마나 하찮은 존재인가

얼마나 어리석고 약한 존재인가를  네편의 비극으로 여과없이 보여진다,

그럼에도.. 우리는 계속 살아갈 것이다,

후회와 죄책감 수치감을 안고도 우리는 다시 죄를 저지르고 잘못을 하고 착각을 하고 살것이다,

누군가에게 지배받는 고전적인 인간의 시대는 지났다

스스로 죄를 짓거나 스스로 깨우치고 스스로 일어설 수 있는 인간

그것이  지금 현재 인간이라면

나는  우리는 어떤 인간으로 살고 있는가

인간이어서 인간이구나 하고 당연하게 여길것이 아니라,,

인간이어서 고민하고 괴로워할 줄 아는 것 그게 인간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이란,,, 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할 수 밖에 없는 시절이어서

결국 모든 책이 그렇게 읽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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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12-02 1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햄릿>을 다시 볼 때마다 새롭습니다. 그 전에 봤을 때 감흥이 없던 인물의 대사나 특정 장면이 다시 읽으면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처럼 느껴져요. ^^

푸른희망 2016-12-02 11:31   좋아요 0 | URL
정말 그래요 한 5년뒤 다시 읽으면 어떤 문장이 나를 찾을까요?

cyrus 2016-12-02 11:35   좋아요 0 | URL
저는 <햄릿>을 마지막으로 읽은 게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최소 1년은 넘은 것 같습니다. ^^;;

수미 2017-02-06 1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해릿 을 다시 보니좋았습니다.그전에 읽었던때가 기억남나다.좋았습니다.

카알벨루치 2018-06-12 15: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 펭귄시리즈 클래식 사놓고 감감무소식이네요~세상엔 좋은 책이 너무 많아 엄청 행복하네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