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언 매큐언의 속죄..

이야기와 이야기와 이야기 그리고 그 이야기를 둘러싼 커다란 테두리(?)

사건이 일어나고 그 결과 한 사람은 어던 죄도 없이  댓가를 치러야 하고

알맞은 시간에 속죄를 하지 못했던 사람은 스스로 자기를 벌주면서 속죄를 한다,

그리고 결국 이 모든 이야기가 하나의 커다란 속죄였음이 드러나는 반전 반전 또 반전

 

속죄 용서 이런 단어를 떠올리면 사라믈은 김창동의 영화  <밀양>을 떠올린다.

어쩌면 그의 또다른 작품 <시>도 용서와 속죄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러나 내가 떠올리는 것은 이정향의 <오늘>이다,

용서를 해야히지만 하지 않을 권리도 있다, 피해자에게는

용서 이전에 반성이 있어야 하고 변화가 있어야 하고  사죄하는 과정은 필수 불가결한 것이지만 용서는 선택사항이지 의무사항이 아니다,

사람들은 용서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얼마나 거룩한지를 말하지만 막상 사죄에 대해서는 잊는다,

그 사람이 얼마나 진심인지 얼마나 댓가를 현실적으로 치렀는지는 넘어간다,

그저 용서만이 온세상을 아름답게 하고 살기좋게 하고 옳은 것이라고만 말한다,

피해자는 제 상처를 추스르기도 전에 용서해야하는 압박속에 갖히고 만다,

용서 하지 않을 권리는 누구에게나 있다,

그러나 사죄는 권리가 아니라 마땅히 해야할 과제이다,

 

 

 

 

 

 

 

 

 

 

김애란의 <서른살>의 나는  이렇게 중얼거렸다,

 "너희도 자라면 내가 되겠지 고작 내가 되겠지"

 결국 자신처럼 되어버린 제자를 생각하며 주인공은 어쩌지를 못한다

 일껏 외면하고 모른 척하고 살아가려고 했는데 노량진에서 함께 생활했던 언니의 편지를 받고

지금의 "내"가 되기전 그 어리고 발랄했던 제자의 나이였던 "나"를 떠올리며

다시 내가 버리고 온 제자를 떠올릴 수 밖에 없었다,

죄책감이란 그런 것일까

기껏 떼어냈다고  돌아서서 휴우 한숨을 돌리는 순간에도 그 놈은 내 등뒤에 짤싹 붙어 있다,

보이지 않아서 없다고 생각하고 싶다, 그렇게 생각하려고 한다, 그렇게 여긴다

그리고 그렇게 된다,

그러나 내 등뒤의 무게에 혼자 휘청거리는 사람은 있다,

보이지 않아서 없다고 믿고 싶지만 그 무게를 느낄 수 밖에 없는 사람들

그들은 약하고 미미하고 보잘것없는게 그래서 그 무게를 어쩌지 못한다,

<서른살>의 주인공은 힘겨운 노량진에서의 재수생활끝에 미미한 대학에 진학하지만 취업은 또 아득하고 그렇게 학원가를 전전하면서 나름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보람도 느낀다,

지독히도 공부를 안하고 희망도 없는 아이들이 순진하고 발랄하게 다가오는 것

그래서 그들이 조금이라도 나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지고 함께 다가섰던 그 순간은 희망의 순간이었다,

그러나 조금 더 라는 유혹으로 시작한 다단계 생활과 그로 인해 피폐해진 생활 관계속에서 마지막으로 아직 순수하고 발랄한 제자를 끌어넣는 순간까지 그는 아직까지는 희망이 있었다,

그런데 제자의 문자를 씹고 전화를 거부하는 순간 그는 ..... 죄인이었다,

자기를 아직도 순수하게 기억하는 언니에게 편지를 쓰면서 부칠지 알 수도 없는 편지를 쓰면서

주인공은 그게 속죄라고 생각할까

이미 자기치럼 피폐해지고 자기정도의 어른밖에 되지 못한 제자를 졔속 밀어내면서도 그는 아마

오래오래 그 아이와 함께 할 것이다, 그게 그의 벌이다,

 

내가 읽은 책은 이언 매큐언의 <속죄>인데

나는 자꾸 김애란의 <서른>이 떠올랐다,

이미 죽어버린 사람들에 대한 속죄와 아직 살아있고 내곁을 계속 맴도는 사람에 대한 속죄

어느 것이 더 쉬울까

이미 죽어버린 사람에게는 돌이킬 수 없다는 회한이 남았지만

아직 살아있고 내 손이 닿는 곳에 있는 사람이라면 아직 희망이 있지 않냐고

쉽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차라리 죽어버려서 모든게 끝나버려서 가벼워질 수 있는 (그게 어쩔 수 없는 자기기만일 수 밖에 없드라도) 것이 있다면 아직 현재진행형이어서 점점 젖은 솜처럼 무거워지는 우유부단 회피 망설임의 덧대어지는 죄들이 있다,

누구의 죄가 더 클까

나는 신이 아닌데도 아무것도 아닌데도 자꾸 두 사람을 비교하고 있었다,

 

 

 

 

 

                

 

 

이차대전과 작가라는 소재에서는 두 책이 연상된다,

전쟁동안 사람들이 모여 책을 읽게 되는 이야기와

전쟁을 겪으며 궁핍한 상태를 견디는 작가가 멀리 대서양을 건너 미국에 있는 서점주인과 교류하며 서로를 공감하게 되는 이야기

그리고 이 책도 다른 인물이지만 전쟁을 겪는 이야기와 글을 쓰고 싶어하는 이야기가 겹친다,

글을 쓴다는 것은 무언가를 기록해서 남기고 싶다는 것이다,

남기고 싶은 것

그저 흩어지고 엷어져서 사라지지 않도록 붙잡고 싶은 그 순간 그 감정 그 사람을 영원히 박제하고 싶은 마음이 다,

잡고 싶은 그 마음은 나를 드러내는 일이기도 하다,

내가 잡고 싶은 그것은 어떤 대상일 수 있지만 그것은 '나'를 그대로 박제하는 일이다,

브리오니는 자기의 죄를 반성하기 위해 그 순간을 기록하기로 하고

건지감저껍질 파이의 작가는 그 시대의 상황을 씀으로써 그 시대의 모습과 함께 자기의 존재를 드러내는 일이다,

작가가 글을 쓰는 것은 어떤 대상인 동시에 자신이다,

그것이 반성이든 생계를 위한 것이든 어떤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든

그가 쓴 글에는 작가가 드러날 수 밖에 없다,

너무  택도 없는 비유겠지만

어쩌면 이 서재에 글을 남기는 나도 내가 읽은 책들(대상)을 기록하는 일인 동시에 나를 드러내느 일이다, 내가 여기서 쓰는 글은 그 책이 아니라 그 책을 읽은 나라는 사람일 수밖에 없다,

쓴다는 것

기록한다는 것은

그 대상을 바라보는 내가 들어가지 않을 수 없다,

브리오니가 자기가 들어가는 자기가 주인공이 되는 이야기를 쓰려고 하는 것은 그가 아직 어리고 유치하고 서툴러서가 아니라 그때부터 누구가 품고 있는 욕망이기 때문이었다,

자기가 주인공이가 자기가 겪어야 하는 그 순간

그것이 바로 자기가 중심이 되어 돌아가는 이야기가 될 수 밖에 없다,

 

 

 

역사에서 if 란 있을 수 없다,

이미 벌어진 사건이나 사실을 되돌릴 수 없는 것

역사만 그러한 것이 아니라 사람의 삶이라는 것도 그렇다,

되돌릴 수 있는 것은 없다, 되돌리려고 하고 돌릴 수 있다고 하더라도 억지로 꿰맨 상처는 흉터로 남아버린다,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되돌리는 일은 없으며 원인에 대한 결과는 단 하나뿐이다,

소설은 그 역사가 하지 못하는 일을 한다,

결말을 바꾸고 그때 그 일이 일어나지 못하게 혹은 일아나게 하는 일

그때 하지 말았어야 할 말은 지워버리고 해야만 했어야 하는 말을 삽입한다

신은 아니지만 작가는 그렇게 세상을 바꿀 수 있다,

자기가 쓰는 작품안에서

브리오니가 그렇게 자기 작품속에서 세상을 바꿈으로써 속죄를 한다,

미안한 마음  그러나 이제는 닿을 수 없는 그 마음으로 몇번은 고치고 고쳐가며 소설을 썼다,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이것이 모두 브리오니의 소설이라는 걸 알게 되면서

그가 앞에서 언급했던  "소설에 없던 것은 내 삶에도 없었다"

부딘칠 수 없던 일들을 차마 쓸 수 없던 그는 드디어 직면해서 쓰기 시작했다,

지나버린 역사 지나버린 시간을 되돌릴 수 없지만

다시 만들어내면서 자기 마음을 드러내고 자신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브리오니는 자기가 꼭 들어가야만 한다고 믿었던 유년시절의 미성숙한 의지에서

자기를 드러내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을 받아들이는 성숙한 작가가 되었다,

 

 

브리오니는 결국 언니 세실리아에게도 그의 연인 로비에게도 용서를 구하지 못했다,

미처 그럴 틈도 없이 두 사람은 사망했고 용서를 빌어야 할 대상을 잃어버린 브리오니는 그 커다란 속죄를 해피앤딩이 있는 소설로 대신한다,

허무하게 죽어버린 연인을 소설속에서 아름답게 그리고 행복하게 살려내면서

스스로는  용서를 구하지만 결국 용서한다는 말을 듣지 못하는 대상으로 만들어버림으로서

스스로를 속죄하려고했다,

열세살의 브리오니는 어쩌면 그럴 수 있다고 생각은 했다,

아직 어리고 세상을 자기 중심으로 바라볼 수 밖에 없는 나이였고

이제 어른이 된다는 어쩌면 설레고 짜릿하면서 아찔한  그 순간이  얼마나 그릇되고 독선적인지 알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본 사실 내가 받아들이는 진실이 전부라고 믿는다,

이미 틀을 만들고 그 틀로 세상을 바라보며 그 틀이 어른의 틀이라고 생각하는 어린 아이였다,

존중받고 관심을 끌고 싶고 세상의 중심이고 정의를 실현해야하는 인물을 자기여야 한다고 믿는 아이 그 아이의 거짓말은 아니지만 잘못된 판단이 사람들을 끝으로 몰아갔다,

이건 아니지 않을까 하는 망설임도 앞으로 밀고 나가려는 힘에 밀리고 만다,

그리고 후회는 언제나 때가 늦었다,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해서

속죄를 한다는 것에 대해서

모두를 아울러 속죄에 대해 죄책감에 대해 글을 쓰는 일에 대해 생각해본다,

어떤 죄도 업는 사람은 없겠지만 그 죄 이후가 사람을 결정하는 게 아닐까

직면하고 반성하는 사람도 있고

자기 잘못을 모르는 사람이 있고

잘못을 알지만 끝내 아무것도 하지 않은 사람도 있다,

누구나 세가지를 경험하지 않았을까? 적거나 크거나,,,

 

그냥 이야기의 재미를 따라 읽다가

주인공에 따라 나를 생각하고 내가 아는 누군가를 생각하다가

전쟁과 역사에 대해 생각하다가

글쓰기에 대해 생각하다가

결국 속죄라는 것에 대해

그리고 결국 인간이란 죄를 저지르는 것보다  그 이후가

속죄를 어떤 타이밍에 어떤 방범으로 하는가 의 문제가 그 품격을 결정하는게 아닐까

그리고 어쩌면 도덕책에서는 가장 쉽게 서술되어있지만

삶속에서는 가장 어려운 행동의 문제가 아닐까 생각을 한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을 가져다 주는 이언 매큐언은 진정 작가라고 할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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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lmo 2017-01-16 14: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이언 메큐언...미루고만 있었는데,
이동진 때도 안 읽던걸 펼쳐들고 싶게 만드셨습니다요~^^

푸른희망 2017-01-17 21:20   좋아요 0 | URL
꼭 읽어보셔요. 김중혁도 추천했잖아요~~^^님의 리뷰 기대합니다

cyrus 2017-01-16 15: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가 글쓴이 자신을 드러내는 글이라는 생각, 푸른희망님의 생각에 공감합니다. 글쓴이가 책을 읽으면서 느낀 생각들은 완벽히 옳을 수가 없어요. 틀릴 수 있습니다. 생각이 틀리는 것은 정상입니다. 그런데 간혹 어떤 사람은 자신의 리뷰가 비판받으면 불편하게 받아들입니다. 그런 상황을 이해하지만,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시인하면 뭐라 할 사람 없습니다. 다만 자꾸 자신의 생각이 옳다면서 고집 부리고, 상대방의 의견을 무시하면 주변 사람들의 잡음이 더 많아집니다. 글은 글쓴이의 결함을 가리기 위한 옷이 아닙니다. 글은 글쓴이의 분신입니다.

푸른희망 2017-01-17 21:21   좋아요 1 | URL
그래서 가끔 서재에 글을 올리고 나면 너무 부끄러울 때가 있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뻔뻔하게 계속 기록하려고 노력합니다~~

cyrus 2017-01-17 21:26   좋아요 0 | URL
2, 3년 전의 글을 다시 읽어보면 부끄러워요. 그 당시 글을 쓰면서 발견하지 못했던 비문이 보여요. 벌거벗은 아기 시절 모습이 찍힌 앨범사진을 보는 기분입니다. ^^
 
게스트 퓨처클래식 4
세라 워터스 지음, 김지현 옮김 / 자음과모음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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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려고 누웠는데 느닷없이 이 책이 떠오르는 거다,

아 내가 이 책을 읽으려고 얼마나 오래 기다렸던가...

구입할까 말까를 망설이며 장바구니에 넣었다가 보관함으로 옮겼다가 다시 장바구니로 옮겼다가

우연히 도서관에 비치된걸 알고 예약하고 기다리고.,...

보통 에약 2순위래도  4주 정도면 받을 수 있는데

이 책은 계속 연체에 걸렸는지 두달이 지나고 거의 잊을 무렵 내 손에 들어왔다,

핑거스미스의 두께를 알고 있어서 어느 정도 짐작을 했지만,,그 묵직함이라니,,,

그러도고 한동안 읽지 못했다,

두께에 그리고 미리 지레 겁을 먹고 있던 내용에 그냥 저냥 다른 책을 읽다가

책을 펼쳤다,

그리고 이 책을 읽는 내내 뉴스에서는 박근혜와 최순실이 화두로 떠올랐고

프랜시스와 릴리안의 사랑과 우정보다는 최순실과 박근혜의 애증관계에 더 집중하게 되었다

현실이 상상이상이라서였을까

두 사람의 우정과 사랑사이 그리고 사랑이 자꾸 겉돌았다,

그래서 뭐?

그래 알았다니까 알았어, 니네들도 영혼의 반쪽이었구나

뭐 그렇다고 살인이 등장할 건 뭐람?

뭐 그렇게 반쯤은 딴데 넋이 빠져서 두 사람을 조금 소홀했고 그렇게 책장을 덮었다,

초반에 비해 조금 상투적이고 지리멸렬했던 후반이 가까스로 끝났구나 하고 잊었다,

 

그런데 어젯밤 문득 떠오르는 거였다,

이건 이렇게 지나가면 안되는거였구나

 

전쟁이 지나고 이어지는 지리멸렬한 일상들

이미 세상은 전쟁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거리에는 상의군인 퇴역장교가 넘쳐나고 여자들의 사회활동은 활발해졌지만 여전히 그런 모습은 눈에 두드러지는 거였고 니네들은 우리덕에 전쟁에서도 편하게 잘 살아오지 않았느냐는 증오가 여기저기서 불쑥 튀어나오는 상황

무언가 지루하고 갑갑한 현실이 바뀌기를 바랬지만 그건 전쟁이 일어나기를 바란것과는 다르다,

변화가 전쟁만 있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몰락한 상류계급 

전사해버린 두 남자 형제

무기력하게 죽어버린 아버지

투자실패로 이어진 가난 가난

결국 아직 채 서른도 되기 전에 노처녀가 되어버린 프랜시스는 무능력한 상류 마나님이었던 어머니와 이제 여기저기 삐걱거리기만 하는 낡고 큰집을 유지하기 위해 하숙을 친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거라고 믿었던 프랜시스앞에 나타난 릴리안과  레너드

 

세간의 눈을 두려워하는 어머니를 설득해서 들인 이층 세입자들로 인해

조금씩 조금씩 삶은 달라지고 틈이 생기고 균열한다,

세상은 조금씩 아니 퓍퓍 바뀌고 있는 중이었는데 그걸 모른 척 하던 모녀에게 구체적인 변화의 증거가 나타난 셈이다,

어머니 이외 아무런 관계망이 없던 프랜시스에게 릴리안은 인간과 인간의관계를 다시 자극한다

함께 소풍을 나가고  찝적거리는 남자를 쫓아내고 함께 뒷계단에서 담배를 피우고 책을 읽고 이야기를 하고 살림을 조언하면서 우정이 생기고 위안을 얻는다,

때로는 작은 관계가 급박한 삶에 작은 휴식이 된다,

어쩌면 두 사람의 동성애라는 거대한 담론보다 그렇게 서로 사랑하고 질투하고 초조해하고 불안해하는  관계가 이 책의 중심이 아니었을까 ,

 

변하지 않으면 안되는 시대적 상황에서

이제 변하지 않으면 안되는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프랜시즈

변화에 대해 느끼지 못하다가 프랜시스를 만나고  자기를 돌아보며 주저하다주저하다 변하기로 마음먹은 릴리안

그들이 조심스럽게 한 발 내디딘 새로운 세상은 그녀들에게 가혹했다,

살인이 일어나고 경찰의 조사가 이어지고 이상한 방향으로 탐문과 수사가 진행되면서

두 사람사이에 미세한 균열이 생긴다,

변하지 말았어야 하는게 아니었을까

그냥 그대로 살아온 방식대로 순응하며 살아야 하는게 아니었을까

그러나 이미 한발을 내디딘 후였다,

되돌아 가기엔 모든 것이 너무 멀리 와 있었다,

 

책이 끊이 나도 프랜시스와 릴리안이 어떻게 될지 정확히 말할 수 없다,

그러나 한가지 알 수 있는 건

이젠 이전의 프랜시스와 릴리안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대로 발을 디딘 두 사람은 그렇게 앞으로 걸어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지금 현실에서 우리도 칼을 뽑았고 시작을 해버렸다,

파도파도 끝이없고 상상이상의 막장이 계속되어서

우리가 이런 치사하고 저급한 스캔들까지 알아야 하나 싶은 자괴감이 들지만

이미 발을 디뎠고 여기에도 변화가 필요하다

 

두 사람을 떠나보내면서

이제 우리도 발을 디뎠구나

되돌릴수 없고 그러고 싶지 않고 그래서는 안되는 시점을 지나고 있다,

그녀들의 앞날에 행운을 빈다,

그리고 우리 앞날에도  정의가 있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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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하게 에니어그램을 해본 적이 있는데 그때는 5번 유형이었다,

그냥 간단한 검사여서 그런가 보다 했는데

에니어그램을 공부하신 분께 두 차례 강의를 듣고 다시 검사하니 내 유형이 아리송했었다,

에니어그램도  mbti.처럼 성격유형을 알아보는 검사로 쉽게 접근했었는데

공부하신 분의 열강을 들으면서 솔깃하다가도

결국은 꼭 사람을 그렇게 유형별로 나눌 필요가 있나 싶은 생각을 했었다,

사람이란 언제나 어떤 면이 있으면서 동시에 다른 면도 있는게 아닐까

하면서 대충 넘어갔는데

 

이 책을 빌려서 한 번 제대로 알아보자 하다가

결국 중간도 못가고 일단 덮었다,

여러가지 문항을 보면서 점검을 해보면 내가 아닌 성격은 확실하게 아닌데 맞다 싶은 건 이렇게 보니 이것도 맞고 저렇게 보니 저것도 맞고 알 수가 없다,

읽다보니 1번 유형도 보이고 3번 유형도 보이고 4번 유형도 보이다가 이젠 5번은 전혀 아닌것도 같고...

어쩌면 내가 갖고 싶은 성격에 나를 맞추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고

내가 원하는 성격으로 살려고 가면을 쓰다가 그렇게 굳어버린 면도 있지 않나 생각도 하고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선명해지는 것이 아니라 점점 뿌옇게 된다,

공부가 짧아 그렇다고 할 수 밖에 없겠지만

삐딱한 마음에 꼭 이렇게 사람 성격이 확실하게 구분되는 건 아니지 않냐고 반항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컸을거다

그떄 강희하신 분도 성격이라는 것이 다양한 모습을 가지고 있고 상황에 따라 나이에 딸다 모습이 달라지기도 한다고 하시는데

그렇다면 꼭 이렇게 검사를 해야하나?

요새는 진로지도에도 에니어브램이나 MBTI 가 이용되기도 한다고 들었다,

어떤 길을 찾는데 작은 도움은 되게지만 딱 그정도가 아닐까

어쩌면 내가 이런 검사도 어떤 용한 점쟁이한테 사주를 풀이하고 점괘를 얻는 마음으로 다가가서 생기는 장벽인지도 모르겠다,

나도 모르는 내 삶에 딱 정확한 정답을 달라는  억지를 부리느라

모든게 못마땅한걸까?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자 누구인가....

역시 리어왕의 이말이 어떤 검사보다 더 정확한 진단이다,

이런 멋진 말을 정말이지 구리고 구린 누군가가 자기 소설 표제로 써버렸다는게 몹시 괘씸하지만,,,

나로서는 에니어그래을 들여다보는 것보다 소설속의 인물을 만나는게 더 편하게 느껴지니

역시 공부 부족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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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이소오 2017-01-11 2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책 읽을때마다 유형이 바뀌어서 나중엔 2~3개 빼고 다 해당되는것 같아 결국 이도저도 아니게 되버리더라구요. 차라리 애니어그램보단 별자리가 더 정확한것 같아요 ㅎ

존재혁명 2020-06-16 06: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성격심리로 접근해서 그래요. 영성심리로 접근해야 이해가 되어집니다
 
설국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61
가와바타 야스나리 지음, 유숙자 옮김 / 민음사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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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의 독서....

 

"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 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은 하애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멈춰 섰다,

 

 

뮤진에 명산물이 없는 것은 아니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그것은 안개다,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서 밖으로 나오면 밤사이에 진주해온 적군들처럼 안개가 무진을 삥 둘러싸고 있는 것이었다, 무진을 둘러싸고 있던 산들도 안개에 의해 보이지 않은 먼 곳으로 유배당해버리고 없었다, 안개는 마치 이승에 한이 있어서 매일 밤 늦게 찾아오는 여귀가 뿜어내놓는 입김과 같았다, 해가 떠오르고 바람이 바닷 쪽에서 방향을 바꾸어 불어오기 전에는 사람들의 힘으로써는 그것을 해처버릴 수가 없었다,  (중략)

 

눈으로 뒤덮힌 온천마을과

안개가 마을 휘감아 무엇이든 뿌옇게 존재를 삼켜버리는 안개

그리고 고향 (정서적 고향일 수도)에서 만나는 낯선 여인

그 여인에게서 얻는 구원 사랑 허무함

남자는 한량이거나 어떤 생활의 고민따위는 없는 참으로 안개같고 눈같은  비현실적인 환타지스러운 존재

 

삶에 지치거나 삶에 권태를 느끼는 남자가 먼 타지 혹은 마음의 고향에서 여자를 만나 구원을 얻는 이야기 그러나 허무하고 덧없는 이야기

나이 40을 넘으면 이해하고 동감하게 된다고들 하는데

나는 아직도 나이를 더 먹어야 하는 모양이다,

 

모든 것을 덮어버리는 눈 질척이며 들러붙는 눈 사이를 막아버리는 눈 떄로는 그대로 고립시키는 눈

그낯설과 환상적인 온천 마을에서 시마무라는   코마코와 요코를 만난다

 

안개처럼 뿌옆고 실체를 드러내지 않은 무진행에서 나는 미친 여자를 만나고 죽은 작부를 보고 인숙을 만난다

 

그리고 일어나는 혹은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은 이야기들

마을과 자연과 눈과 안개와 마음 마음 마음

그럼에도

그래서 뭐? 어쩌라고? 하는 마음이 불쑥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조금 더 나이를 먹고 읽으면 또다른 것들이 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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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EBS를 무심히 보다 우측 상단에 부모자격시험 이란 글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는 걸 봤다,

아마 EBS 프로그램 예고였을것이다,

아이랑 보다가  무심하게

  "정말 부모 자격시험이 필요한거야, 아무나 부모가 되니까 학대받는 아이도 생기는거고

   자식을 키운다는게 정말 쉬운 일이 아닌데 누구나 부모가 될 수 있다는 건 말이 안되지"

 

그랬더니 아이가

  "엄마는 저 시험 통과할 수 있을거 같아?"

 

내가 답했다

    "당연히 통과 못하지.. 내가 어떻게..  아마 시험에 떨어지면 재시험을 봐야 할거고

    그러려면 아마 모여서 합숙 훈련을 하거나 자녀를 빼앗기겠지

    자격이 없는 부모가 자식을 키우면 안되니까 아마 시험에 합격할 때까지 자녀를 빼앗길거야"

  

   "엥? 자식을 빼앗아간다구?"

  

 '당연하지 자격이 없는데 어떻게

    아마 합격해야 자녀를 돌려주지 않을까?

   그동안 자녀는 국가가 관리하겠지뭐.. 아마 난 머리가 나빠서 서너번은 떨어져야 자격시험에  

  합격할거야 어쩌면 너무 많이 떨어져서 자격박탈을 당할지도 모르지

  그럼 자식을 못키울거고 그러면..."

 

  "엄마 너무 즐거운거같아..."

 

 아 순간 자격이 없어 자식을 키울 수 없는 상황아리는게 너무 즐거워지는거다,

뭐 내가 싫다고 도망가는 것도 아니고 자격이 없어서 못한다는데 어떡하겠어?

나혼자 저항할 수도 없고 자격이 없으니 스스로 물러나야지...

흐흐흐...

상상만으로도 즐거운걸 보면 난 모성이 많이 부족한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사실 아이를 둘 낳고 키우면서 진저리치게 힘들었던 기억이 별로 없다,

내가 능력이 대단해서가 아니라 뭐든 대충대충 그까이꺼 하는 마음으로 하다보니 그다지 힘든 게 없었던 게 아닐까 하는 게 요즘 생각이다,

문제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그때마다 이렇게 생각했던 거 같다,

  "설마 내 아이가 이상하겠어? 그럴리가,,,"

정말 안이하고 위험한 생각이긴 하지만 그럭저럭 무탈하게 아이들을 커갔다,

그렇게 힘든게 없다고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육아가 너무 힘들어서 괴롭고 우울하다고 한 순간은 없었다,

그럼에도 난 늘 여기서 탈출하는 꿈을 아이가 없었더라면 하는 꿈을 꾼다,

심지어 요새는 뻔뻔스럽게 모든 여자가 다 모성이 있는게 아니야 모든 엄마가 더 그래야하는 것도 아니야 하면서 아이들에게 쇄뇌시키는 중이다,

서로에 대한 기대치를 조금씩 낮추면서 조금만 신경써줘도 서로가 감동할 수 있게...

 

 

 

 

 

 

 

 

 

 

 

 

 

 

 

 

 

아마 이 책을 다 읽는데 몇달이 걸렸을 것이다,

리뷰에서도 썼을 텐데 정말 진도가 나가지 않은 책이었다,

그럼에도 중간에 그만 둘 수도 없었다,

지루하고 늘 비슷한 패턴이 반복되고 딱히 별일이 일어나지도 않지만 나는 손에서 놓지 못했고

오랫동안 읽지 못하고 오랜만에 읽을 땐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읽고 또 읽었다,

핑거본 마을의 루스와 루실 자매

그 자매를 어머니에게 맡기고 자살해버린 아이들의 엄마의 삶과 선택을 늘 생각했다,

어떻게 이런 어린 자매를 남기고 죽었을까

익숙하게 봐 왔던 할머니도 아니고 처음 본 낯선 마을에 사는 할머니에게 아이들을 맡기고 아무런 망설임없이 그렇게 돌진할 수 있는 힘은 무엇이었을까

 아이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마을의 지루하고 나른하구 끈적이고 진흙같이 꾸덕꾸덕한 나날을 읽어나가면서 나는 내내 그 아이들의 엄마를 생각했다

왜 무엇때문에 어떻게 용기를 내서?

읽으면서 내게 내려꽂힌 것은 단 하나...

자매를 남기고 죽으면 안되겠구나,

적어도 자매가 성인이 될때 까지는....

 

가끔 상상한다 나도 내가 지금 없다면 내 아이들은 어떻게 될까?

미친 중딩시절 엄마가 없다면?

대한민국에서 가장 예민하고 민감한 시기라는 수능을 앞둔 시기에 엄마가 없다면?

내가 대단히 좋은 엄마도 아님에도...  대한민국에 아들도 물론 그러하겠지만...

딸들에게 엄마가 없는 유년시절이 있다는 것은 참 많은 상실감을 주겠구나 싶었다,

나는 그런 시절을 엄마가 있어서 보냈음에도 엄마가 있어 고맙다는 생각은 안해봤다,

늘 당연하다고 여겼고 일상이고 상식이라고 생각했던 모든 것에서 엄마가 해주었던 모든 것을 걷어내고 나면 .. 끔찍하지만 남는게 없었다,

물질적인 것도 그렇고 정신적으로 그랬다,

내가 엄마에게 정신적으로 의지하지 않았다고 나름 외롭고 불안하게 그러나 자유롭게 얽매이지 않았다고 여기면서도 엄마에게 받았던 무언가가 있었다,

그때는 지긋지긋하고 떨쳐버리고 싶었던 끈끈한 무언가가 지금 돌이켜 생각하면 그때 그것이 나를 지탱시켰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부성과 다른 모성애라기보다 모성만 줄 수 있는 무언가가 있긴 할것이다

루실과 루시 자매도 나름 잘 살아가고 있었다. 둘이서 씩씩하게 모른 척하며 때로는 아는 척하면서 척척하면서 버티고 있었다.

그러나 알 수 없는 상실감  뭐라고 꼭 꼬집어 말할 수 없는 빈 틈이 있지 않을까

[ 할머니도 이모도 줄 수 없는 일상은 일상이지만 무언가 딱 아귀가 맞지 않은 느낌 같은 거 말이다

책의 주제와 무관하게 이 책을 읽는 내내

적어도 아이가 아이일 동안 내 마음대로 죽겠다는 건 하지말아야겠다고 내내 생각했었다,

 

 

이 소설을  다시 보면서 얼마전 읽었던 윤성희의 소설  <베개를 베다>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감정의 표현보다는 건조하고 단단한 묘사와 서사가 이어지는 것이 닮았다고 생각했었다,

 

 

 

 

 

 

 

 

 

 

 

 

 

 

소설집 속의 한 단편  "못생겼다 말해줘" 였나?  (도서관에서 빌린 책은 반납해버려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매번 상황에 따라 이유를 바꾸어가며 딸을 낳기로 결심한 순간을 말하는 엄마가 나오고 그 말을 잘 들어주는 착한 딸이 나온다,

엄마는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꼭 한마디씩 하고 딸과 나란히 돌아오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끝에 그래서 그 순간 나는 딸을 낳기로 했어 라고 한다,

그 말이 매번 반복되고 매번 달라지는 건 어쩌면 그건 내가 딸을 잘 낳은거라고 절대 후회할 일이 아니라고 스스로에게 하는 다짐같았다,

이건 잘못된 선택이 절대 아니었어

이건 옳은 결정이었어.

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은 아버지에 대한 궁금증을 갖는게 왠지 속물적 관심일거라 여기게 될 만큼 어머니의 어조는 강하고 단호하다,

아니 강하지도 단호하지도 않아서 더 그렇게 들렸다,

자기가 선택한 삶을 삶의 한 모퉁이 모퉁이 찰라의 순간 주체적으로 선택했던 소소한 경험에 비추어 자꾸자꾸 강조하고 싶어한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누구나 엄마가 되는 순간 자꾸자구 자기의 걸정에 대해 누군가 공감하고 동의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생기는게 아닐까 싶었다,

아이를 낳은 것에 대해 책임을 지고 있는것에 대해 그리고 지금 이순간까지 도망치지 않고 포기하지 않았음에 대해 존중해달라고 소심하게 바라는 마음이 내게 왔다,

 

아이가 없었을 때는 아이를 낳고 키운다는 일을 그냥 막연하게 생각했다,

내가 스스로 컸다고 믿는 것처럼 아이도 스스로 자랄거라고

양육을 하고 교육을 하면 되는 것이 아니겠냐고 스스로 자만했었다,

그러나 아이는 양육과 교육보다 더 크게 필요로 하는 것이 많았다

끊임없는 관심이 필요하고 지치지 않을 체력을 요구하고 바닥없이 깊은 인내심을 요구했다,

물론 아이가 직접적으로 요구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렇게 해주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불안과 죄책감을 안겨주었다,

요구하지 않은 것들을 해주면서 불안과 죄책감마저 느껴야 하는 것이 모성이고 육아라는 삐뚤어진 생각을 많이 했다,

아하,,, 이래서 엄마들이 자녀에게 바라는 것이 많아지는구나

조금만 내 마음을 몰라주면 섭섭하고 속상하고 배신감을 느끼겠구나,

그걸 경계하고 싶었었다,

그냥 그까이꺼 대충대충 죽지 않고 사고 나지 않고 병나지 않을 만큼

나는 아직도 아이들에게 이겨먹고 싶고 내 마음대로 하고 싶고 가끔은 모른 척 하고 싶고

때로는 내가 그들보다 더 중요한 사람이다,

 

 

 

 

 

 

 

 

 

 

 

 

 

 

이 책에서도 묘한 모녀가 나온다,   

이디스와 그레이스다,

이디스의 신경질적이고 예민한 성격은 아마 선천적이었을 것이다,

엄격하면서 속물적인 집안 가풍과도 연관이 없진 않았을 것이고

첫눈에 빠진 스토너와의 결혼이 실수라는 걸 너무 이르게 알아버렸고 그 이후의 삶은 복수하듯이 그렇게 자기를 던지며 살았을 것이다,

누구보다 자기를 찾기도 힘들었고 스토너에게 맞추기도 힘들었을 그녀의 삶을 이해하고 싶었다,

책속에 비중이 적게 나오고 나와도 그녀의 기행같은 모습만 나오니 그녀의 입장을 모두 알 수는 없지만 그녀에게도 나름의 이유가 있으리라 믿었다,

그레이스에 대한 그녀의 태도가 모두 납득할 수도 하고 싶지도 않았지만

어쩌면 그녀가 그레이스를 바라보는 시선속에 내가 내 아이들을 바라보았던 시선이 몇가지쯤은 겹쳐있지 않았을까 싶었다,

다만 스토너와의 고요하고 평화로운 공부시간을 그녀가 빼았았다는 것은 이해할 수도 용서할 수도 없었다,

어쩌면 내가 더 모성이 모자라서 그렇게 나 대신 누군가가 대신해주기만 하다면 무조건 좋다고 하는 것인데 이디스에게는 이지러졌을지언정 모성이 있어서 그 누군가 대신을 용납할 수 없었던 걸까?

깊이 길게 나오지 않았지만 이디스의 입장을 너무 알고 싶었다,

그냥 그런 모성도 이해하고 싶었던 건 내 속에 이디스 역시 존재하기 때문일것이다,

 

 

 

 

 

 

 

 

 

 

 

 

 

 

 

 

 

 

이 책에도 골때리는 엄마 가우리가 있다,

고백하건데 가우리는 어쩌면 내가 상상만 했던 모든 것을 실행으로 옮긴 인물이었다,

자식을 낳고 늘 저기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던 여자

지금 여기에 있기로 결정하고 마는 것이 아니라 늘 어딘가 저기를 바라보며 자기를 무엇보다 가장 우선에 놓는 그녀를 나는 손가락질 할 수 없었다,

결국 그 모든 것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다는 것

자기가 사랑했던 사람을 따라 이른 나이에 가족을 버리고 결혼을 했고

그 사람이 자기 눈앞에서 죽는 것을 보았고

자기를 탐탁치 않게 여기던 시부모를 떠나 사랑하지 않던  남편의 형을 따라 미국으로 왔고

그리고 그 남자와 함께 전남편의 아이를 낳았지만

결국 그 아이도 그댇로 두고 떠난다,

그리고 멋지게 성공도 했다,

그리고 가능한한 돌아보지 않으려고 애를 쓰는 그녀에게 돌을 던지기 힘들었다,

 

 

사회성이라기보다는.... 사교성이 좀 부족한 나는 모임이나 동창회에 늘 대는 핑계가 아이였다,

아이는 그럴 때 참 유용했다,

아이가 어려서

아이가 아파서

아이가 지금 예민할 시기라,,,

아이가 이유가 되면 어떤 불참도 이해가 되었다,

뭐 의무적으로 해야하는 사회생활이 아니어서 이기도 하겠지만 그래서 돌아오는 말은 좋은 엄마네,... 이런 말들

사실 좋은 엄마여서가 아니라 솔직히 아이처럼 좋은 핑계가 없었다,

어른들이나 누구든 아이가 핑계가 되는 건 돌아서서 쑥덕거릴지언정 앞에서는 괜찮다고들 했다,

나 나는 이렇게 아이들을 이용하고 있구나 하는 마음이 한구석에 없진 않았지만

아이가 이렇게 유용할 수도 있구나,,, 하고 못된 생각도 했었다,

 

음...그래서인지도 모르겠다,

난 이렇게 모성보다 자신이 더 중요한 여자들에게 끌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남들이 손가락질 하거나 뭐라고 쑥덕거리며 욕을 듣더라도

나 자신을 삶의 중심에 놓고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

악녀라고 할 수 도 있고 비정한 년이라는 말을 들으며 누구에게도 이해받기 힘들었을 사람들

그리고 그녀 자신들의 선택이 늘 옳지도 않았을 것이고

스스로도 그 선택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 때도 많았을 것이다,

다시 되돌아가서 삶을 다시 시작하고 싶은 순간도 있었을 것이고

그럼에도 지금의 선택을 그대로 밀고 나갈 수밖에 없다는 ....

 

어쩌면 좋은 엄마도 되기 힘들고 그렇다고 딱 내  중심으로 살아가기도 눈치보고 있는

이도저도 아닌 입장에서 차라리 이렇게 딱 중심을 잡고 세상을 나 중싱으로 돌려버리는 '

인물들이 무지하게 부러웠던 모양이다,

내가 가지 못했던 길을

그리고 지금도 꿈만 꾸면서 망설이기만 하는 길을 주저없이 택한 그녀에게

그저 응원하는 것으로 내 마음을 풀고 있는 거 같다,

 

 

 

 

    이 책을 빠뜨릴 수 없겠다,

   나는 책으로 영화로 눈구보다 에바에게 감정이입을 했었으니까

   정말 호로자식같은 캐빈을 결국 포기하지 않은 엄마 에바

  그녀는 캐빈을 포기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어쩌면 자신을 포기하지 않은거였다고 나는 생각했다,

 때로는 내게 따뜻하고 말랑말랑한 스웨터같았던 존재가  때로는 벗을 수도 입고 있을 수도 애매하고 손에 들고 있기엔 거추장 스러운 존재일 수도 있는 것....

감히 그것이 자식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책 속에서 에바가 감옥에 간 캐빈을 면회 갔을 때 만난 어떤 여자가 말한다,

"아이가 잘못되면 사람들이 하는 흔한 말 그 엄마가 어땠는지 아이를 방치하지 않았는지 너무 구속하고 달달몪지 않았는지 술주정뱅이였는지 아이는 내팽개치고 나돌아다니지는 않았는지

그렇게 따지고 묻는 사람들이 그 아이가 그렇게 되도록 그 아버지는 무얼 했는지는 하나도 궁금해하지 않는다고..."

 

과장인지 모르지만 엄마라는 말에는 늘 자식이 함께 존재한다,

모성이라는 이름이 때로는 하나의 족쇄가 된다,

모성은 그렇게 굉장하게 여겨진다,

그걸 대단하다거나 위대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유감스럽게도 그 무게에서 자유로운 사람들이다,

딱 집어서 남자들이 더 강조하는 편이다,

모성은 위대하므로 희생은 대단한 것이고 그것은 아동들에게 절대적인 것이고

그렇게 사랑받지 못하는 모성을 느끼지 못한 아동은 결핍을 느껴서 문제아가 된다,

위의 여성처럼 아이의 문제에서 엄마는 절대 벗어날 수 없다,

심리학자들도 엄마의 존재의 역할을 늘 강조한다,

조금  확대해서 대체모성까지  포함헤주지만 늘 아이의 주 양육자는 엄마였고

엄마가 양육을 담당할 수 없는 상황은 언제나 에외적인 상상응로 몰아붙이면서 은근하게 그것은 비정상이라고 말하진 않지만 그렇게 치부해버린다,

치사한 것들....

결국 위 소설속의 엄마들은 죄책감을 느끼거나 손가락질을 받거나 모멸감과 무책임함을 스스로 견딜 뿐이다,

아빠들은? 생물학적이든 정서적이든 아빠들은?

그저 타자이고 관찰자이고 방관자들이다,

아이가 잘못 되는 것에서 아빠는 늘 하나의 방패를 가진다, 엄마라는....

 

봉준호의 <마더>에서 엄마는 결국 미쳐버린다,

스스로 ,,, 미치지 않으면 자식을 지킬 수 없다,

결국 자기 아들 대신 감옥에 간  청년을 보며 엄마는 천연덕스럽게 걱정한다,

"넌  널 도와줄 엄마가 없니?"

그렇게 엄마를 몰아붙이면서 그런 엄마가 미치도록 손가락질을 해대는 세상이 현실이다,

극성맞거나 무관심하거나

적절한 모성이란 늘 책임에서 비껴서서 그 희생의 열매를 얻어먹는 사람들에 의해 결정된다,

 

<걸어도 걸어도>이 엄마는 희생적이고 인자한 전반부의 모습과 달리 순간 섬찟한 얼굴로 말한다

네 아들을 죽게한 그 아이는 계속 내 아들의 기일에 와야한다고 그렇게 게속 죄책감을 가져야 하고 미안한 마음을 가져야 하는 거라고...

모성은 늘 내 아들 내자식에게만 향해있고 내 바운더리 밖은 모두가 적이다,

그걸 모성이라고 하면서 동시에 비웃고 손가락질 한다,

하지 않으면 무책임하다하고  아둥바둥 책임을 지려면 손가락질 하기도 한다,

적절한 모성이 있지 않냐고?

그게 누구에게 적절한 것일까?

 

내가 가끔 엄마라는 역할을 하고 싶지 않다고 천연덕스럽게 말하지만

그 한편에는 미안함이 늘 자리잡는다,

다른 엄마들은 안 그럴텐데

내 엄마는 그런 적이 없었을 텐데..

정말 그럴까?

 

엄마라는 이름을 갖는 순간

나를 먼저 생각하는 것조차 죄책감이 되어버리는 현실이 참 싫다,

그냥  나도 좀 나쁜 그러나 엄마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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