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냥한 폭력의 시대
정이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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꿩이 생각났다.

제 머리만 모래속에 숨겨넣고 모든 것이 되었다고 믿고 싶어하는 어리석고 순진한 꿩

이야기들이 그런 꿩을 연상시켰다,

나만 아니라고 믿으면 아닌게 될거라고 굳게 믿어버리는 사람들의 이야기

 

아버지의 옛애인 미스조의 가장 가까운 친구였던  희준씨의 이야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반복적인  나날을 보내는 희준씨에게 어느날 아버지의 옛애진인 미스조의 부고가 날아오고 미스조가 키우던 거북이를 유산으로 받게 된다,

우연히 SNS로 연락이 닿아 한달에 한번 톡을 하고 만나고 밥을 먹는 사이가 전부였던 희준씨와 미스조는 어느 샌가 사람들에게 가장 가까웠던 사이라고 인정된다, 몰랐다, 서로가 가장 가까운 사이인지.... 한달에 한 번 만나는 사이가 가장 가까운 사이라니...

그러나 돌이켜보면 그렇게 자기 이야기를 편하게 하고 들어주는 사이가 가까운 사이가 아니면 뭘까? 미스조의 과거의 사랑이야기를 들려주고 희준씨는 자기가 키우는 고양이 인형 샥샥을 고백하는데 이건 다른 누구에게는 말하지 못한 비밀이기도 하다,

미스조가 예전 끝을 알면서도 모른 척 나이든 애인과 관계를 계속해오면서 이제 끝이라는 걸 알아버린 순간처럼 희준도 매번 반복되는 무탈한 일상들이 어쩌면 그렇게 무탈한 것이 아니라 위험하고 불길하라 수 도 있다는 걸 알아버린다, 그게 옳은 것도 아니고 안심할 일도 아니라는 것.. 아니 알지만 알려고 하지 않은 사실들을 미스조의 죽음으로 그의 이야기들로 슬며시 알아가고 있다

 

마흔번째 생일 아침 나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들, 영원히 일어나지 않을 일들을 떠올리며 비로소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미스조와 거북이와 나-

 

수학여행에서 돌아온 딸이 쓰러지고 병원엘 갔더니 임신이라는 사실에 놀랄 새도 없이 24주만에 아기를 낳았다, 무탈하다고만 할 수 없는 나날을 살았고 그렇게 아이도 자랐는데 지금 이순간은 도무지 현실이 아니라고 소리치고 싶을만큼 청천벽력이다, 인큐베이터에 있는 아기는 보고 싶지 않고 출산하고 돌아누운 딸아이의 등짝이라고 후려치고 싶지만 그렇다고 시간을 되돌릴 수도 없는 일이고 일어나버린 일이 없어지지도 않는다,

그런 불행 와중에서도 다행이다 싶은 일들을 억지로 발견해내면서 이건 잘 지나갈거라고 잘 지나가야한다고 스스로 되내이면서 섬뜩한 결심을 한다,

함께 등장하는 상대방 남자아이의 엄마역시 깨어져버린 후라이팬 뚜껑때문에  화가 치솟는 경험을 하지만 어쩌면 살아가면서 이유도 알 수 없이 폭발해버리고 산산히 부서지는 것이 프라이팬 뚜껑이라면 참 다행한 삶일거라는 걸 알아버렸다, 비슷하지만 다른 뚜껑 미묘한 어긋남이 폭발로 이어진다는 진실을 알게 되지만 그런 깨달음은 현실에서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얼굴도 모르는 아들의 아기에 대해 책임지고 싶어하지 않은 건 여자아이의 엄마와 마찬가지고 어떻게 해야할지 알 수 없는 것도 마찬가지고  일단 모른 척 하면 없는 일일거라도 믿고 싶은 것도 쌍둥이처럼 닮았다, 그렇게 두 엄마는 공모자도 아니면서 함께 모른 척하는 섬뚝함을 보인다,

 

이 단편에서 가장 무서운건 그 제목일 것이다, 이런 글에 이런 제목을 붙이다니,,,

손바닥으로 가린 입술사이에서 무거운 장찬식도 웃음도 새 나오지 않았다. 그녀는 다시 길 위로 나섰다. .................. 운전대에 엎드려 울 수도 없었다, 하늘을 유난히도 새파랬다, 파란 빛깔의 돔형 지붕이 이 세계를 뚜껑처럼 덮고 있는 것 같았다. 거대한 뚜껑이었다

                                    -아무것도 아닌것-

 

세번째 이야기는 그래도 조금 낫다고 하면 말도 안될까?

함께 동거하는 커플이 있고 둘은 잘나지도 그렇다고 뚜렷하기 못나지도 않은 어정쩡하고  흔한 젊은이들이다, 오래 사귀다가 동거하지만 어쩌면 헤어질 수도 있다는 예감과  아슬아슬한 갈등을 격어내고 있는데 어느날  남자가 어떤 살인을 제안받는다, 이복형이 나타나고 돈 많은 아버지를 죽이고 그 유산을 받게 되면 나누자고... 그 문제로 둘은 헤어질 수도 있다는 마음에서 함께 마음을 함친다, 일단은... 그리고 내 일이 아니라고 여겼던 그 일에 여자도 함께 나서면서 둘은 더 끈끈해지고 더 서먹해진다,

공범은 오래갈 수 없다,

서로가 서로의 가장 약하고 위험한 부분을 알고 있는 이상 신뢰는 끝이다,

둘은 아이가 생기고 결혼을 하지만 그건 거기까지다,

아무렇지 않다고 별일 아니라고 애써 부인하지만 그 흔적은 죽을 때까지 그래고 상대를 바라보는 동안은 떨어지지 않고 질기게 달라붙을 것이다,

설령 그 일이 제대로 되었건 아니건...

왜 제목이 이런지 잘 모르겠지만 우리안의 천사가 우리삶을 더 꼬이게 하는 법이라는 생각을 문득한다, 내 속에 악마만 득시글거린다면 세상은 그렇게 살기 팍팍하지 않을 것이다,  애매하게 껴있는 내 속의 천사가 나를 혼란스럽고 갈팡질팡하게 만드는게 아닐까 생각한다.

 

내가 잠시 한 눈을 팔아도 세상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단죄가 또 유에되었다는 사실에 나는 안도하고 절망했다., 극적인 파국이 닥치면 속죄와 구원도 머지 않을 텐데  또다시 살아가기 위하여 나는 바다 쪽을 향해 무거운 발걸음을 뗐다

 

                                 -우리안의 천사-

 

 

 

네번째 이야기는 먹먹했다,

소녀가 자신의 별명을 되지로 받아들여야한다는 것 그리고 받아들인다는 것 그렇게 대상화되지 않은 새로운 학교가 낯설다는 전제가 먹먹하고 아팠다,

그렇게 조숙하고 어른이 되어버린 아이가 겪는 새로운 K에서의 이야기다,

그 곳에서 아이는 무심하고  이기적인 부모대신 새로운 친구를 사귄다,

메이라는 친구는 자기보다 더 말이 없고 짝이 없는 아이였는데 그래서 둘은 단짝이 되고 함께 점심을 먹고 함께 논다,

그 아이에게 내 모습을 보았을까

아이와 메이는 서로에게 소중하지만 어른들의 세계에서는 용납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그렇게 아이는 어른이 된다,

 

 

엣애인의 부고를 지나간 신문에서 발견을 해도 아무렇지도 않게 되어버린 50대 교사의 이야기 를 지나

 

이사에 대한 어떤 공포물처럼 떠도는 이야기를 잘 잡아낸 이야기도 지나

 

마지막 '안나'로 넘어가면 속물적이고 세속적인 우리 이야기가 나온다,

내가 힘들고 괴로울 때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 내가 이야기를 터놓을 수 있는 사람 그 사람의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어느 순간 가장 불편한 사람이 되고 없어도 그만인 사람이 된다,

누군가가 필요하지만 그 사람이 어느 적성 선 이상응로 들어왔다고 여겨지는 순간 불편하고 불안하다,

나는 아무 행동도 하지 않았지만 그가 내 바운더리에서 사라지는 것 그건 다행이다,

내가 아무짓도 하지 않았으므로 내 잘못은 아니다,

나는 무어라고말 한 적이 없다,

그저 어쩔 수 없이 헤어졌고 만날 수 없을 뿐이다,

그렇게 내 생활은 아무렇지 않게 계속될 수 있다,

욕하고 미워할 수 도 공감할 수도 애매한 목에 걸린 작은 가시처럼 불편하고 힘들다,

 

모든 등장인물은 나는 아니라고 나만은 아닐거라고 믿고 싶어한다,

별탈없는 일상을 지겨워하면서도 약간의 균열에는 심하게 동요한다,

무심하게 15분동안 한바퀴를 도는 관람차에 재미없어하면서도 쉽게 올라타지도 않는다. 올라타기엔  뭔가 두렵다,

삶이 그렇다, 무심하고 지루하지만 그렇게 계속되어지면서 무언가를 바라기만 하는 것으로 이어지길,,, 실제로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길 간절히 바란다,

어리석은 타조처럼 모래속에 머리만 쳐박으면 아무일도 없는 거라고 믿고 싶은 순간이  누구에게나 온다,

다행히도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치기도 하지만 한 번의 균열은 절대 그 이전으로 되도릴 수 없다,

나만 아니면 돼!!

각자도생의 시대

냉정하고 살벌한 현실이 나만 지나기진 않을 것이다,

균열이 생겨도 나혼자 삭히고 모른 척 넘어가야 하는 시대다

타인의 불안이나 떨림은 더 이상 관여할 수도 없고 관여하고 싶지않다.

외롭지만 그렇게 익숙해지면  가장 편한 삶의 방식이 된다,

 

별것 아니지만 섬뜩해지는 순간 그리고 돌아서면 잊버리느고 기억나지 않은 순간들의 연속,.. 그것이 지금 이순간의 삶이 아닐까

쓸쓸하다.

 

너무 섬뜩해서  그리고 쓸쓸해서 별을 두개 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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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성평등에 반대한다 도란스 기획 총서 1
정희진 엮음, 정희진.권김현영.루인 외 지음 / 교양인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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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글은 코메디였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어떤 고민도 생각도 맥락도없이 공포와 혐오를 조장하는 집단의 앞뒤가 안맞는 행동들은 분노보다 실소를 터뜨리게 한다. 그런데 그런 우스꽝스런 행위들이 힘을 얻고 누군가를 억압하고 혐오하게 한다는게 섬뜩하다.

양성평등이 옳은 명제라고만 생각했다.
인간은 양성으로 나뉘고 그 두 성이 서로 평등한건 당연히 옳다고만 생각했다.
양성이라는 개념도 다시 생각한다
여성과 남성사이에 다앙한 성들이 있었다.
일반적 다수가 가진 성기와 성적취향만으로 기준을 삼으면 배제되고 비정상이 되어버리는 성들이 많아진다는걸 몰랐다.
평등이란건 결국 양팔저울이다
균형이 맞지않은 양팔저울은 한쪽이 올라가고 동시에 다른 한쪽이 내려와야 평등한 균형이 된다.
현실의 남성 평등에서 여성쪽의 추는 올라가기위해 즉 남성과 균형을 맞추기 위해 애를 쓰지만 남성쪽의 추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결국 균형을 맞춘 저울은 한쪽이 이그러처버린 이상한 모양새로 서로 마주한다
평등이란 어떤 기준에 다른쪽이 맞춰가는것이 아니라 서로가 조금씩 닮아가며 동시에 다를 수 있다고 인정해야한다.
남성 백인 중산층 이성애자 그들이 세상의 기준이 되는 현실에서는 어떤 평등도 이그러진 저울이다.

나도 제주 모 검사장의 사건을 바바리맨 사건으로. 변태짓으로만 생각했다.그런 나의 규정에 어떤 불공정함 편견이 있다고는 생각을 못했다
그런 의미로 두번째글은 내게 내려진가장 세찬 도끼질이다.

나도 모르게 가지고 있던 편견을 마주하게 된다,

나 역시 세상에는 남성과 여성 두가지 양성만 존재하며 그 이외의 존재는 알지 못했고 알지 못하는 것은 없는 것이고 있더라도 비정상이며 하찮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그 글에 동의하든 아니든 세상을 바라보는 또다른 시각을 알게 해준 도끼질이었다,

 

세번째 미성년자 의제강간은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해서 여러번 읽었다,

사실 한번으로 쉽게 이해되지 않은 문잗을도 있었고 그래서 미성년자 의제강간에서 미성년자 규정 연령을 내려야 하라는건지 말라는건지 조금 헷갈렸다, 내가 예 아니오 라는 테두리에서 문제를 바라보고 있음은 나중에 깨닫는다,

미성년자와 성행위를 하는 성인들의 기사를 볼때 마다 불쾌하기 짝이 없고 그들의 파렴치한 행위에 비해 터무니없는 형량에 울분을 토하기도 하면서 이때 대상 미성년자의 나이를 올려야한다고 주장했다, 몇살이 되었건 나이 많은 어른들의 요구는 그 아이들에게는 하나의 권력이고 강제이고 거부할 수 없는 것이다, 설령 동의하에 행해진 관계라 할지라도 그 동의가 과연  단어 그대로 동의인지 동의할수 밖에 없는 강제인지를 살펴야하는데 법은 너무 헐렁하다고 생각했다,

여기에 또다시 성인의 미성년자 강간 혹은 성관계의 문제와 미성년자와 미성년자 사이의 강간 혹은 합의된 성관계의 문제가 있고  성인 여성의 미성년자 남학생에 대한 강간 혹은 성관계의 문제등등 사안에따라 생각해야할 방향이 한가지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단순히 보호되어야 할 딸의 순결이 아니라 개인의 성에 대한 자기 결정권의 문제라는접근에는 동의하지만 그래서 어떻게 되어야 하는가의 문제는 복잡하다,

다른 모든 권리는 상한선이 높으면서 성행위에 대한 결정만은 그 상한선이 겨우 13세라는 것에 어이가 없고 나아가 그렇게 어린 아직도 애기티가 나는 아이를 대상으로 성적인 자극을 받을 수 있다는 성인들이 도무지 이해할 수 없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다,

 

네번째 메갈리아의 미러링은 사실 잘 알지 못하다가 자주 가는 사이트에서 번번히 거론되면서 흘려들은 게 전부였다,

당신들의 행동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라는데 발끈하는 사람들이 어이가 없다,

누군가의 행동은 당연한 반응이고 또 다른 누군가의 반응은 공겨기고 있을 수없다고 생각하는 무리들이 아직도 여전히 존재한다, 어쩌면 미러링을 보는 그들의 시선은 고정되고 일그러진 여성에 대한 시선이다, 나는 괜찮지만 너는 안된다는 ,, 고루하고 가부장적인 관념일 뿐이다,

우아하고 세련되게 억압과 차별에 대해 들려주고 싶지만 그렇게 하면 못알아먹는 사람이 셍각외로 너무 많다, 게다가 유머감각까지 없어서 고도의 블랙유머나 해학을 알아먹지 못한다.

자신들이 생각하는 여성상에 어긋나면 모든 것이 잘못된 일이고 틀린일이다,

 

두고두고 자주 들춰볼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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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성평등에 반대한다 도란스 기획 총서 1
정희진 엮음, 정희진.권김현영.루인 외 지음 / 교양인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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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은 여러번 읽어도 새로운 것이 보인다.
지금 여기의 상황에 맞게 소재를 잡고 주제를 드러내서 이해가 쉽다.
‘양성‘이라는 것 ‘펑등‘이라는 말의 의미를 다르게 웑딕적으로 생각할 수 있었다. 세상의 어떤 정의 혹은 의미도 각각의 입장과 태도 이익을 지닌다.정치적 옳음을 늘 생각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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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진처럼 읽기 - 내 몸이 한 권의 책을 통과할 때
정희진 지음 / 교양인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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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의 책이 내 몸을 통과한다, 그 책이 통과한 후 나는 그 이전의 나와 다르다,

아니 달라야 한다, 그래야 하는데......... 사실 나는 여전히 늘 제자리이고 그 모양 그 꼴이다,

책을 많이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책을 읽는다는 것이 중요한게 아니고 무엇을?  어떻게? 왜? 늘 질문을 하며 읽었어야 했다,

늘 비슷한 책들 내 취향에 맞는 내가 소화시킬만한 양념이 듬뿍들어가고 연하게 숙성시겨서 입에 맞게 잘 잘라놓은  책들만 읽었다,

물론 사이사이 나름 독서근력이 필요한 책들도 읽었지만 그냥 읽었을 뿐이엇다,

읽는 동안 두 주먹을 불끈 쥐기도 하고 입에서 반사적으로 욕이 나올 때도 있었고 몸이 떨리는 내가 정말 무지하구나 하는 쨍한 두통을 느낄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나는 예전의 나였다,

처음 어딘가에 잘못끼워진 단추가 분명히 하나가 있는데 쓱 보기에 아무렇지 않고 멀쩡해보여서 그냥 계속 단추를 채워나갔는데 순간 마지막 구멍이 하나 남거나 단추가 하나 남은 꼴이었다,

나름 열심히 읽었는데 열심히 알게 되고 느꼈고 배웠는데 나는 여전히 나다,

 

 

생각 좀 하고 행동해~~

아이들에게 혹은 덜렁대거나 실수를 하는 사람에게 쉽게 하는 말이다,

생각을 하고 예측을 해서 행동하라 그래서 실수를 줄여라  아니 없애라.. 뭐 그런 의미겠지만

책을 통해 나는 이제 행동하고 생각하라,... 를 더 믿게 되었다,

자꾸 생각만 하고 계산하고 미루어 짐작하고 나면 행동을 해야할 타이밍을 놓치거나 혹은 계속 불안하고 아직은 아닌거같다는 주저함만 남을 때가 있다,

생각이란 사건이 터지고 모든 일이 과정을 넘긴후에 되돌아보고 원인과 결과를 규명하고 그 의미를 찾는 일일 뿐이다, 늘 사후 약방문같은 거고  일 처리후에 남기는 보고서같은 것이다,

물론 미리 생각을 하고 계획을 하는 것도 있지만 정돈된 이론이나 관념은 늘 뒤에 따라오는 거였다.

내가 경험하고 행동하고 저질러보고 돌아보는 과정이 내게는 필요했다.

늘 준비하고 준비하고 아직도 배워야 할 것들 챙겨야 할것들의 목록은 마법의 두루마리처럼 끝이 없이 계속될것만 같고 이대로 일단 저지르는 건 누군가 등쳐먹는 일이거나 사기치는 일같다는 스스로의 검열만 계속하고 있었다,

아직은 부족하다,

아직은 배가 고프다,, 뭐 그런 말만 되내이면서 계속 생각하고 준비하고 또 생각하고....

배가 덜 찼어도 옴직일 수 있고 부족한 건 하면서 혹은 살면서 채워도 되고 덜 채워진들 어떠하랴 하는 마음을 마흔이 넘어 쉰을 바라보도록 갖질 못했다,

그런 처지에 스스로에 대한 기대치는 턱없이 높아서 왠만한 변화나 발전은 변화도 발전도 아니라고 생각하다보니 늘 채워도 채워도 부족하고 배고픈 가오나시처럼 되어버렸다,

결국 나는 이름도 얼굴도 없이 끝없이 채워야 할 것들의 목록만 쥐고 있다,

내게 책 읽기는 계속되는 목록을 작성하는 일이지 이 이상의 무언가는 아니었다,

 

 

저자의 독서목록에서 내가 읽었거나 들어본 책은 열손가락을 채 꼽을 수가 없다,

대부분이 처음 듣는 책이었고 이런 책도 있나? 이런 주제의 책도 있을 수 있구나 하는 무지한 끄덕임만 계속되었다,

몇권의 책은 장바구니에 넣고 몇권은 끌리긴 하지만 내가 읽을 거 같지않기도 했고 몇권은 나도 읽었지만 전혀 다른 감상이었고 ... 그랬다,

처음엔 말랑말랑한 문장들도 보여서 뭐 생각만큼 어렵지는 않다고 자만하면서 페이지를 넘겼다

<파이이야기> 는 나도 꽤 감동적으로 읽은 책이라 좀 더 느낌이나 생각을 듣고 싶었는데 그저 리처드파커와의 이별을 통해 저자의 상실감을 이야기해서 조금 실망이긴 했지만 다른 글들에서 나도 생각을 했었는데 그걸 참 잘 정리하고 표현했구나 싶은 문장들에 샘도 나고 그랬다,

연재를 했던 글이라 쓸 때의 감정이나  상황등이 제각각일테니 어떤 글은 너무 과잉된 감정이 보이고 어떤 글을 필사를 하고 싶을만큼 완벽하게 좋았다, 아주 잘 쓴 글 이라는게 사람마다 다른 거지만 아주 잘 쓴 글..이란 말이 주는 매끈함은 없지만 투박하기도 하고 이리저리 파도치는 감정들이 모두가 절실하고 솔직했다, 투박할 때도  이게 뭐지 싶게 툭 끝맺음이 있기도 했지만 글은 경험하고 말하고 듣고 생각하며 스스로 만들어가는 과정이었고  나름 자기가 찾은 자기의 답들이었다.

 

어릴 적 나는 꽤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어른이 되고싶었다,

누구의 어떤 질문에도 막힘없이 대답을 해내고 상대 코를 납작하게 해줄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세상에 억울하고 이게 아닌데 싶은 일들이 참 많았는데 그 순간 말로 표현할 길이 없고 하룻밤을 자고 나면 그 일들이 제대로 기억할 수 없다는게 너무 답답하고 억울했었다,

부모의 말이라고, 어른의 말이라고 모든 것이 옳지 않다는 건 알았지만  그것을 어떻게 반박해야할지 알 수 없었다, 그저 부들부들 떨리면서 잔뜩 약이 오른 모양으로 소리만 꽥꽥 지르는게 전부였던게 어린 맘에도 참 창피하고 분했었다,

책을 많이 읽으면 그렇게 될 수 있을까?

세상의 모든 것을 알 수 있을까?

그런 마음도 책읽기의 한 시작이 되었던거 같다,

그러나 읽어도 읽어도 알 수 없는 일들이 많았고 점점 내가 알게 된 것은 나는 모르는게 많다는 것뿐이었다, 그래서 어느 순간 입을 다물었다,

따지기 좋아하던 꼬마는 말없는 사춘기를 지나고 말없는 성인이 되었는데

속에는 말이 부글부글 끓어넘쳤고 그게 한쪽으로는 열등감도 되어허 누군가  몇 마디 하지도 않은 내 말에 딴지를 걸거나 내가 미쳐 표현하지 못한 언어들을 유창하게 드러낼때 바글바글 속만 태웠다, 나 내가 저랬어야 했는데,,.. 저건 내 생각이고 내 언어였어야 했는데

그렇게 몇번을 경험하고 넘어지고 상처받으면서 나는 점점 입을 닫고 책속으로만 들어갔지만

어려운건 이쪽으로 치우고 위험한 건 저쪽으로 치우고 맘에 안드는건 던져놓으면서 내 취향 내 수준에 맞는 독서만 게속이어갔다,

누군가가 권하는 책 누군가가 읽고 좋다는 책을 몰래 아닌척 읽으면서 왜 나는 좋지 않을까 왜 나는 이게 이해가 안되지? 그런 사소한 문제에만 머리를 싸매고 고민했지 정작 책을 제대로 마주하려고 하는 태도는 없었던 모양이었다,

책이란 누구에게나 같은 내용을 보여주지만 그걸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제각각 다른 반응을 이끌어내고 그렇게 제각각 다른 책이 된다, 그걸 나는 몰랐다,

타인이 알아낸 것 타인이 느낀것 타인이 감동한 것을 나도 똑같이 알지도 느끼지도 깨닫지도 못해서 늘 동동거렸다,

저 사람은 저런 책도 읽어내는데,. 나는....

오랜 독서기간의 대부분의 시간을 나는 누군가를 따라하고 흉내내고 질투하면서 보냈었다,

차라리 누군가 한 사람읨 모텔을 놓고 따라하는 책읽기라도 했더라면 나았을까 싶게

마음만 급해서 이사람 저사람 마구잡이로 흉내내고 따라하다가 제풀이 지치곤 했었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선명해지는 건 여전히 내가 알지 못하는것이 많다는 것이다,

세상은 넓고 내가 아는 부분은 극히 일부이다,

그 때문에 조급하고 불안하기만 했다,

많이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내가 아는 것이 정말 내가 아는 것이며 그것을 내가 정확하게 알고 있고 내 것이 되었는가를 생각해야했다,  책이 누군가 타인에게 다다르는 길과 나에게 다다르는 길이 다른 건 당연하다,

내가 경험하고 생각하고 만났던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 그 과정에서 내 생각 내 감정 내가 했던 실수나  결과은 오롯이 내것이어서 그런 단하나의 내가 만나는 책은 또 다른 단하나의 타인이 만나는 책과 다를 수 밖에 없다,

어쩌면 나는 나름 괜찮게 책을 읽어왔던것일 수도 있다,

세상에 단 하나 내 방식으로 읽었던 것이고 그걸 굳이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면 안달할 필요는 없었다,

적어도 "정희진처럼 읽기"는 내게 그걸 말해줬다,

계속 너의 방식으로 읽어라 대신 너의 방식에 대해 끊임없이 의심하고 질문하라,,

읽을수록 불안하다는 건 읽을수록 겸손하다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내 마음이다,,)

읽고 함께 나누는 일 그게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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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3-16 15: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루에 북플에 접속하면 관심 있는 책들을 많이 알게 됩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제 취향과 거리가 멀고, 읽으려고 해도 다른 책에 눈길 가느라 읽지 못합니다. 선호하는 취향에 맞는 책을 읽을 때가 마음 편합니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

 

시스템은 점점 정교해진다,

자본주의는 굳이 인간의 노동이 많이 필요하지 않다,

어쩌면 자본주의는 인간의 노동위에서 성장하고 몸집을 불려왔지만

그 자본주의가 완성된 곳에서 인간은 없다.

 

완벽한 시스템속에서 인간의 목소리를 듣기 힘들다,

무언가 문제가 있거나 의문이 있어서 물어보고 싶어도 우리는 먼저 기계음을 들어야 한다,

전화 버튼을 누르고 나면 녹음된 기계음을 듣고 또 한참을 유료로 기다린다,

그리고 몇번의 질문에 목소리없이 대답하는 순간을 지나야 사람을 만난다,

때로는 사람의 목소리를 듣지 않고 일을 처리해야할 경우도 있다,

어쩌면 누군가에게 가장 편리한 인테넷 그리고 넷망을 통해 정보처리가 되고 물물교환이나 매매가 이루어진다, 우리는 하루종일 누군가를 만나지 않고 모든 일을 처리할 수도 있다, 먹고 자고 소비하는 일을 사람을 만나지 않고도 가능한 세상이다,

 

주인공 다니엘 브레이크는 40년을 목수로 일한, 지금은 심장병으로 일을 할 수 있는 아마 60대 백인 남성이다, 그는 한번도 컴퓨터를 사용해본적이 없고 연필이 익숙하고 누군가와 얼굴을 마주보고 이야기하는 것을 할 수 있을 뿐이다, 마우스를 몇번 클릭하고 드래그를 해야 실업수당을  신청할 수 있고 의료수당의 문제에 대한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세상에서 다니엘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첨단의 기술로 편리하고 세련된 세상에는 사람이 없다,

I  나 라는 존재는 없다,

영화 첫 장면에서 화면없이 대사가 나온다,

의료수당을 위햔 면접에서 면접관의 질문과 다니엘의 답변이 나오는데 대부분의 질문은 예와 아니오로 이루어진다, 뭐든  다른 말이 첨언되면 에러가 된다, 보충설명이나 다른 구체적인 상황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그저 묻는대로 예 아니오 두가지뿐이다,

컴퓨터가   0 아니면 1 두가지만 있는 것과 다르지 않다,

세상은 그것을 발달이라고 하고 기술혁신이라고 하고 편리함이라고 한다,

 

그러나 다니엘은 아날로그 인간이다,

자기처지도 어려운데 더 어려운 싱글맘 케이티 가족을 돕는다,

집안 곳곳을 손봐주고 전기료를 내라고 돈을 주기도 하고 아이들을 인간대 인간으로  말을 걸고 귀를 기울인다,

케이티는 다이엘보다 더 처지가 딱하다,

돈이 없어 아이들에게만 식사를 주고 자기는 과일로 연명하고 식료품 배급소에서  허기를 견디지 못하고 통조림을 따서 손으로 허겁지겁 먹어버린다, 배가 고픈 사람들에게 음식을 제공하는 배급소에서 정작 케이티가 필요했던 것은  생리대였다,

그녀가 어렴게 뱉은 질문은   '혹시 생리대는 없나요?" 였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의식주만 필요한게 아니다,

의식주는 기본일 뿐이다,

사람답게 숨쉬고 살기위해서는 필요한게 또 더 있다, 풍족하게 살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저 인간답게 생존하기 위해서  또 무언가가 있어야 하는것이다,

언저리로 밀려난 싱글맘 케이티에게 생리대는 음식 이상의   절박한 무엇이다,

결국 그녀는 슈퍼에서 물건을 훔친 것을 들키고 급기야 매춘으로 나서게 된다,

젊고 아직은 아름다운 여자가 할 수 있는 가장 마지막 선택은 결국 자신을 놓아버리고 자신의 자존감을 무시하는 것이다,

 

시스템은 잘못이 없을 것이다,

입력되고 세팅되어진대로 일을 행할 뿐이다,

네 아니오의 대답만을 세팅했으니 그 이상의 말들은 과부하가 걸릴 수 밖에 없고

인간을  알지못하고 의뢰인 고객 사용자 만 알 수 밖에 없고

제각각의 개성이나  심성을  넣지 않아서 보험번호나 사회보장번호따위로  분류할 뿐이다,

결국 그 시스템은 편리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을 배제한다,

 

 

막다른 골목으로 몰린 엄마는 매춘을 결심하고 권리 하나 얻기위해 여기저기 시혜를 구걸하던 다니엘은 결국 자긴을 구직수당 대상자에서 이름을 빼라고 한다,

  :자존심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은 것이다"

그리고 한바탕 저항의 뭄부림을 치지만 결국 순응할 수 밖에 없다,

승소가 확실한 항고를 앞두고 다니엘은 어이없이 숨을 거둔다,

 

나는 의뢰인도 고객도 사용자도 아닙니다,

나는 게으름뱅이도 사기꾼도 도둑도  아닙니다,

나는 보험 번호 숫자도 화면 속 점도 아닙니다,

난 묵묵히 책임을 다해 떳떳하게 살았습니다,

난 굽실대지 않았고 이웃이 어려우면 그들을 도왔습니다,

자선을 구걸하거나 기대하지도 않았습니다,

나는, 다니엘 블레이크 개가 아니라 인간입니다,

이에 나는 내 권리를 요구합니다,

인간적 존중을 요구합니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한 사람의 시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감사합니다,

 

그가 항고할때 말하려고 준비했던 것이 그의 유언이 되어버렸다,

 

사람이 편하려고 개발된 시스템에서 정작 사람은 없었다,

함리적이고 신속한 과정이라는 것이 사람을 소외했다,

누군가를 도와주고 싶었고 자기 처지를 사실적으로 알리고 싶었을 뿐이다,

누군가에게 구걸하지 않았고 누군가의 것을 빼앗지도 훔치지도 않았고  어떤 일확천금을 꿈꾸지도 않았지만 다니엘 블레이크는 그렇게 가버렸다,

사람이니까 여기 사람이 있으니 사람의 말을 들어달라고 했을 뿐인데 아무도 듣지 않고 절차를 거치고 인터넷을 거치고 기다리고 맞추라고만 했다,

사람이 너무 흔해서일까

사람이 사람을 만나고 사람으로 대우받는 일이 정말 어렵다,

 

 

아직 삼성동 집 (사저라는 말도 쓰고 싶지 않다, 사저는 무슨..) 난방이 되지 않아서 들어갈 수가 없다고 한다, 아직 추운계절이라 난방이 필요하고 도배가 필요하고 인터넷망이 필요하단다,

그래서 일개 개인이 되어버린 인간이 일개 개인은 쉽게 들어갈 수도 가까이 갈 수 도 없는 청와대에서 빼대고 살았다 ( 경상도 울 할머니 말투인데 이렇게 딱 맞을 수가 없다)

인간적인 호의로 그정도는 봐주자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인간적인 호의 인간적인 도리, 정... 그래 좋다

그런데 누구는 인간적인 호의를 받아 마땅하고 누구는 인간적인 흐의따위는 불공정한 예외조항이 되니까 하면 안되는 일이 되나?

누구는 춘삼월 보일러가 안되서 집에 못들어가고

누구는  같은 봄날 차가운 바다에서 나오지도 못하는건 어쩔 수 없는 일이고

누군가는 길거리에서 내 목소리를 우리의 말을 들어달라고 그렇게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질러도  법에 어긋나고 원칙에 어긋나고 시스템에 맞지 않아서  들은 척도 하지 않나?

전세집을 옮길때도 칼같이 만기날을 맞춰야 하고 혹시나 하루 이틀 더 있어야하면 돈을 더 내야 하는 법이다,

돈내고 들어가는 호텔이나 여관방도 체크아웃 시간을 넘기면 추가요금이 붙는다,

인간적인 도리도 있겠지만 그래도 원칙이니까 지켜야 한다고 다들 동동거리는데

누구는 저 삐졌다고 온동네 티 다내면서 입 딱 다물고 엥돌아서 버티고 버티다  나간다,

누구는 사람이고 누구는 짐승인가

 

 

 

 

 

 

 

 

 

 

 

 

 

 

책을 읽고 어떻게 리뷰를 써야햐나  굳이 쓸 필요가 있나 생각했다,

나같이 마르크스는 이름만 알고 들은 풍월이 전부인 사람에게 마르크스의 여러가지 사상과 삶을 보면서 하나 내게 닿은 것은 사람이 우선이다,,, 라는 것이다,

산업혁명으로 노동과 자본으로 부가 축적되는 시기를 보면서 자본이 축적되면 될 수록 사람은 희미해진다, 자본이 자본을 낳는다, 그것은 선명한데 그 자본을 움직이고 생산을 하는 노동은 점점 희미해지고 가치가 보이지 않는다, 그 사회에서 사람이 만드는 노동 자본때문에 소외되는 노동을 먼저 보자고 하는게 마르크스라고 읽었다,

그게 맞는지 아닌지 아리송한 가운데 영화를 보았다,

 

다니엘은 아이의 방에 뽁뽁이를 발라주며 창으로 들어온 햇살이 모여 따뜻해질거라고 말해준다,

손으로 만든 물고기 모양의 모빌을 주면서 세상에서 가장 환한 바다속이라고 말해준다,

아이는 노인을 찾아가 이젠 우리가 돕게 해달라고 말한다,

아이가 노인을 안아준다,

그렇게 사람을 위로하는 건 사람일 뿐이다 사람의 체온이고 사람의 마음이다,

 

영화는 다니엘에 항고판정을 받지도 못하고 사망한다,

항고가 잘 되더라도 다니엘이 승리하는 건 아니다, 그저 의료수당을 받을 뿐이다,

그러나 그나마도 보지 못하고 다니엘은 사망한다,

어떤 작은 승리도 없이 그냥 그렇게 허망하게 영화는 끝이 난다,

결국 어떤 것도 작은 마무리도 없이 여전히 진행중이라고 감독은 말하고 싶었을까

 

탄핵이 되고 청와대가 비었다고 모든게 마무리가 된것이 아니다,

그는  여전히 처웃으면서 자기 잘못은 손톱만큼도 모른다는 얼굴이고

변화는 아직도 진행중이다,

어떻게 될지 나도 너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여전히 우리는 긴장해야하고 생각해야하고 말해야하고 행동해야할 읾이 계속될 뿐이다,

이젠 좀 쉬자는 마음을 지난 일요일밤 야간도주하듯 돌아와 쳐웃던 그 얼굴을 보고 화들짝 다잡게 되고 오늘 이 영화를 보면서 아직도 계속이구나,,,  생각한다,

아직은 화를 풀어야 할 시간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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