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희의 "낯술"을  낭독으로 들으니 술냄새가 나는 거 같다.

막걸리  소주 이과두주가  뒤섞인 냄새가 공기속에 흐른다.

낯술의 장점은..

끝을 정하고 마실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낮에서 시작해서 밤까지 끝을 모르고 달릴 수도 있지만

짧은 틈에 강하고 짧게 혹은 한 점처럼 누구도 모르게 간단하게 끝낼 수 있는 것이 낯술이다,

남들은 하루를 살아가는 시간을 나혼자 뚝 잘라서 햇살 아래서 마시는 낮술은 쉽게 취하지도 않는다

낮술은 애미애비도 못알아 본다고 하지만 짧은 시간을 잘라서  단시간에 마시는 낮술은 초각성상태로  마시는 거라 쉽게 취하지 않는다.

나는 그렇다. 내가 낮술을 마셨다는 것을 누구에게도 알리지 말라... 라는 마음으로 마시는 낮술이어서 그렇다.

이렇게 흐트러지는 모습을 누군가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순간이 동시에 낮술의 순간이다.

풀어지는 순간이면서 동시에 누구에게도 흐트러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싶다는 마음이 충돌하는 순간 그래서 오히려 더 쨍한 마음으로 마시는 낮술이다,

 

이야기 속에 주인공들은 우연히 낮에 막걸리를 마시는 할머니를 보면서 낮술을 익히고

낮술을 마시는 단골 장소가 있고

혼전 임신을 알고 낮술을 마시던 골목들을 돌아보고

아이가 정학을 맞았을 때 하소연할 친구를 그리워하며 중국집에서 잡채밥과 이과두주를 마시고

마지막엔  산더미같은 파전을 앞에두고 와인 글라스에 막걸리를 따라서 마신다,

아버지가 죽고  아이는 학교를 땡땡이 치고 혼자 집에 숨어들어 먹다 남은 떡볶이와 맥주를 마신다.

제목보다 덜 나오는 낮술 장면들이지만

그 순간의 낮술을 마시는 상황들은 충분히 이해했다.

 

낮술을 차라리 독한 술로 짧게 끝내거나

식사대신 막걸리로  배를 채울 수도 있고

가볍고 부담없는 캔 맥주로 시간을 떼울 수 있다.

쓸쓸하고 외롭고 그러면서 동시에 오기가 생기는 마음이 낮술의 안주가 된다

누군가의 눈치를 보면서 동시에 누가 보던지 말던지 하는 마음이 함께 알콜과 함께 목구멍을 넘어간다 안주는 무엇이든 상관이 없다.'

비오던 일주일이 지나고 간만해 해가 쨍한 지금

밀린 빨래를 베란다 가득 널어놓고 그 아래서 낮술 마시기 딱 좋은 날이다.

 

지금 들은 윤성희의 낮술은  신의 한수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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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7-08-22 1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낮술 한 사발 마시고 싶네요. 옛날에는 낮술 참.. 많이 마셨는데...

푸른희망 2017-08-24 14:24   좋아요 0 | URL
흐~^^ 낮술은 흐린 날보단 쨍한 날이죠....
 

 

 

 

 

 

 

 

 

 

 

 

 

 

마음이 소금밭이라는 말이 그냥 쿡 와서 박혔다.

아마 내 마음이 그랬던 모양이다.

뭐라도 해야하고  주위 사람을 다독여야한다는 건 알고 있지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투명인간처럼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고 누구도 알아차리지 않은 존재였으면 했다.

뭐 그건 일부 가능할지 몰랐따.

막 낯선 곳에 이사온 참이었으니까....

이곳에서는 대로에서 삿대질을 하고 싸워도 누군지 모를테고 길거리에서 코를 파건 껌을 찍찍 씹어대도 아는 얼굴을 마주칠 리 없었다. 그게 편하면서 외롭기도 했다.

늘 마주하는 아는 사람은 가족이었지만 그건 내가 챙겨야 할 대상이었지 내가 위로받을 대상이 되질 못했다 미안하지만...

아침에 깨지 말기를 소원하며 밤에 잠이 들었고 다시 시작하는 하루가 너무 길기만 했지만 그걸 티낼 수는 없었다. 내가 기운이 빠지면 안될거 같은 상황은 목아래까지 차오르지만 정말이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마음 또한 목아래까지 꽉꽉 차 올랐다.

 

가까운 도서관엘 가서 가족수대로 대출증을 만들었고 아이 학교 전학 수속을 하고 학교 도서관에서도 학부모 대출증을 만들었고 이주마다 오는 아파트 이동도서관에서도 가족수대로 대출증을 만들었다 이 네모난  카드가 어떤 작용을 할지 몰랐지만 그래도 어디론가 도피처를 만들어주지 않을까 생각했다.

도서관은 걷기엔 멀었고 뭔가를 타고가기엔 애매했고

학교 도서관은 아는 사람은 없지만 왠지 혼자 눈치가 보였고

이동도서는 의외로 볼만한 책은 없었다.

그래도 매주 꾸역꾸역 다녔고 책을 빌렸고 또 꾸역꾸역 읽었다.

지금 책을 읽을 타이밍이 아니었음에도 그냥 책만 읽었다

어쩌면 그때  아르바이트를 알아보거나 뭔가 새롭게 시작할 수 있었겠지만 모든 게 한없이 멀어보였고 한없이 허무했고 꼭 그래야하나 싶은 마음만 들면서 무기력했다.

지금도 가끔 느끼지만 내가 가장 무기력해보이는 순간은 한없이 늘어진 자세로 소파에 처박혀 책을 읽는 모습이다, 독서가 늘 옳은 것은 아니었다.

때로는 가장 꼴뵈기 싫은 모양을 만들어 낼 수도 있다.

해야할 일을 포기해버렸을 때

해야 할 일을 할 수가 없을 때

무엇이 해야할 일인지 알 수 없을 때

책을 집어들고 읽는다는 행위는 여유도 아니고 탐색도 아니고 뭣도 아니다

그냥 도피일 뿐이다,

마음이 어디에도 자리 잡을 수 없어서  그저 책속으로 도망치고 있을 뿐이었다.

그때 내 마음도 저 제목처럼 그저 소금밭처럼 쓰라리고 아팠다.

책을 읽어도 그 아리고 쓰린 통증은 여전했지만 할 수 있는 게 아니 하고 싶은 게 없었다.

그냥 무작정 있는 책을 집어들고 읽을 뿐이었다.

소설을 읽고 동화를 읽고 에세이를 읽고 알지 못하는 인문학을 읽고 요리책을 읽고 패션 인테리어책까지 꾸역꾸역 읽어대면서 나는 무엇을 기다렸던 걸까?

소금이 저절로 녹아서 그렇게 사라지길 바랬던 걸까

어떤 소금이 그냥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녹아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 있을까?

택도 없는 소리다

그냥 그 때 나는 도망치고 싶었던 것뿐이다.

눈앞에 산처럼 쌓아있는 해야할 일들을 마주 볼 용기가 나지 않아서

그냥 저절로 알아서 해결되길 바라는 요행만을 바라면서

그렇게 책속으로 도망쳤다

 

아마 세상 백만넘는 독서인을 모욕하는 일이었을 것이다,

무언가 더 나아지려는 것이 아니라 그저 그 자리에서 사라지고 싶어서 도망치고 싶어서 그렇게 책으로 들어가는 일은 부끄럽고 무의미하다.

읽어도 읽어도 속에 체끼가 내려가지 않은 기분으로 몇달을 보내면서

결국은 내가 해야할일은 내가 해야하는 것이고

하지 않았거나 미뤘던 일들은 그 댓가를 받을 수 밖에 없는 것을...

그래서 내가 얻은 것은...

책읽기가 늘 옳은 것은 아니라는 걸

온몸으로 체득한 것 뿐이다.

꾸역꾸역 읽어내는 책들도 꾸역꾸역 먹어대는 음식들처럼 쉽게 체하고 쉽게 질릴 수 있다

그건 뭣도 아니다,

그걸 알았다.

그래서 지금은 변했을까?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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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 외 열린책들 세계문학 174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지음, 조영학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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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터 하는 이야기는 기껏해야 가설에 불과하다. 확신은 없지만 그래도 개연성이 가장 크다고 생가한 이론이다, 내가 도장을 찍듯 복제해 낸 본성의 약한 측면은 조금 전 방기해 버린 선한 자아보다 나약하고 왜소했다 결국 지금까지 살아온 삶이라는 게 십중팔구 노력과 미덕과 절제뿐 사악한 자아를 활용할 기회는 많지 않았다. 따라서 에드워드 하이드는 헨리 지킬보다 훨씬 작고 가벼우며 또 젊을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헨리 지킬이 선이 빛나는 용모라면 하이드의 얼굴엔 악의 특성이 선명하고도 노골적으로 새겨저 있있다 뿐만 아니라 악은 내 시체의 기형과 타락한 징후를 새겨 놓았다. 하지만 거울이 비친 추악한 외모를 보며 내가 느낀 건 바감이 아니라 밪가움이었다. 그 역시 나 자신이므로 내게는 너무도 자연스럽고 인간적으로 보였다. 내가 보기에 하이드는 영혼을 보다 생생하게 영상화 했다. 지금껏 나라고 여겼던 불완전하고 분열된 자아의 모습보다 명확하고 개성적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난 분명 옳았다. 네기 에드워드 하이드의 모습을 하고 있는 한 접근하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불안의 기색을 드러내고 만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그것은 일반적인 인간 모두가 선과 악이 혼재된 존재인데 반해 이 모든 인류 가운데 오직 에드워드 하이드만이 순수 악의 존재였기 때문이다

               p 85

 

 

그날 밤 나는 운명의 갈람길에 서 있었다, 보다 고귀한 영혼으로 하여금 가설을 담당하게 하고 고겨하고 경건한 열망의 차원의 실험을 이끌었다면 모든 게 달라졌을 것이다, 그리하여 이 생사의 고통을 통해 악마가 아닌 천사를 만들어 냈을 수도 있다 약물의 작용에는 차별이 없다. 약은 악하지도 선하지도 않다. 다만 내 내면의 감옥 문을 흔들어 필립비의 포로들이 방면된 것처럼 내 안의 죄인을 끄집어 내고만 것이다.

    p 86

 

 

 

예전에 인간은 선한 존재인가 악한 존재인가에 대해 술자리 개똥철학을 나눌적에 나는 인간은 악한 존재라고 믿는다고 했었다.  왜냐는 질문에 내가 나쁜 짓을 할 때는 즐거웠고 짜릿했지만 선한 일을 하려고 할 때는 마음을 먹어야 해서였다고 대답했었다.

물론 무의식적으로 나는 신호규칙을 지키고 사람들에게 버릇없이 굴거나 함부로 대하지 않고 말투도 공손하고 무난하게 살고 있지만 어쩌면 그렇게 하지 않으면 돌아오는 불이익이나 비난이 두려워 몸에 익힌 무의식의 습관이라고 생각했었다. 간혹 슬쩍 거리에 쓰레기를 버리거나  거짓말을 하거나 무언가를 하지 않고 했다고 하거나 하고도 하지 않았다고 우기는 일들은 그 크기가 소소하고 별 일 아니더라도 나름 즐겁고 짜릿했다 그리고 나의 어릴적 꿈 중 하나가 스파이가 되거나 멋진 자객이 되는 거였는데 그것도 한편으로는 살인이나 폭력을 포함하고 있는 존재였다.

은밀하지만 무언가 질서를 흐트러버리는 일은 늘 로망이었고 즐거움이 될 수 있다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다만 현실의 나는 소심하고 찌질해서 한번도 그런 일을 한 적은 없다, 다만 찌질하고 소심하게 복수를 하는 경우는 있지만 그건 누구에게 말하기도 창피한 일들이다.

 

나 역시 약물을 발명하고 내 속의 또다른 인격을 꺼집어 낸다면 천사가 아닌 악마를 꺼집어 낼 확율이 높다. 게다가 현실의 사회에서 정말 미운 사람 죽어 마땅하거나 벌벋아 마땅한 인간들이 정치 경제 언론 문화 교육 다방면에서 굴비처럼 엮여서 줄줄이 등장하고  점점 각박한 살릶살이탓인지 갑질이 늘어나는 세상에서 살다보니 난 분명 악마를 소집했을 것이다. 하이드보다 더 미쳐 날 뛸 수도 있는...

 

살아보니 인간이란 악/ 선 이렇게 딱 잘라 두가지만 존재하지는 않더라

누구나 두 곳에 엉거주춤 다리를 걸치고 있고 다만 어느 쪽에 더 중점을 두고 더  인내하고 견뎌낼 수 있는가의 문제이지 딱 잘라 이렇다고 정의 내릴 인간은 거의 보이질 않는다

공부도 잘하고 집안도 좋은데다 성격까지 좋다는 건.. 그가 자기가 살고 있는 환경의 바운더리 안에서 어려움 없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원만하고 모든 걸 누릴 수 있고 인정받는 세상에서 악해질 이유가 뭐가 있겠는가? 그가 자기가 사는 환경에서 조금만 벗어나 조금 더 각박하고 험한 세상을 경험하거나 자기가 가진 달란트중에 하나라도 부족해버린다면 그도 중분히 달라질 수 있다,

가장 선한 천사에서 가장 악한 악마의 사이에 점점이 무한대로 다양한 인간군상이 존재할 뿐이다,

어디에 더 가까운가의 문제이지 딱 잘라  판단할 수는 없다 물론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 존재이기도 하지만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자체가 한가지로 딱 잘라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다양함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가 아니었을까?

 

젊잖은 지킬 박사는 억누룰 수 없는 하이드의 존재에 점점 눌리고 영역을 잃어가면서 결국 비극을 맞이한다. 어쩌면 지킬이 선한 존재여서 악을 감당할 수 없어  하게된 선택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존재가 한가지 본성만으로는 살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 아니엇을까 생각한다,

 

내 안에서도 다양하게 존재하는 본성들 중에

지금 여름을 견디는 동안 나는.. 사소함에도 버럭해버리는 조급하고  속좁은 인격이 가장 큰데... 그 모든 이유가 더위때문이라고 핑계 대고 있는 중이다,

선선해지면 조금 매력있고  교양있는 인격이 나올거라 믿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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얇고 글씨도 커서 쉽게 읽힌다,

슬픈 건 이렇게 큰 폰트의 글자도 이젠 읽기가 힘들만큼 노안이 심해졌다는 것

내내 안경을 올리고 읽었다, 슬프게도

이다혜 기자는  씨네 21보다는 팟빵 빨간책방을 통해 더 잘 알게 된 작가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아서인지 말이 빠르고 간혹 이동진의 말을 끊고 들어올 때도 있어서

가끔은 불편하게 들리기도 하지만 그래도 틀린 말은 하지 않는구나 싶을 때도 있었다.

긴장하면 말이 빨라지는 건 나도  마찬가지라... 불편하지만 불편하다고 하기도 불편한 것이었고

많이 읽고 많이 노력하고 많이 애쓰며 살고 있다는 느낌...

잘 알지 못하지만 참 열심히 사는 모습이 말투속에서 쓰는 언어들 속에서 느껴져서 그냥 모르지만 좋아하지도 않지만 응원하게 되는 편이다,

 

이 책은 너무 얇다, 글씨도 커서.. 그에 비해 가격이 비싸다,

전반적으로 책값이 너무 비싸긴 하지만,,,가끔 무식하게 글자 수에 따라 혹은 페이지에 따라 가격이 책정되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쓸데없이 말이 많아지는 책들이 더 많아지려나?

그냥 알고 있는 이야기도 있고

스스로를 많이 오픈해서 저자에 대해 알게 되는 이야기도 있고

그냥 끄덕거리면서 읽다가  가운데 부분  <소녀들이여 야망을 가져라>라는 부분이 너무 좋아서

이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다른 책에 대한 부분은 빨간 책방에서 말하는 논지와 조금 겹치기도 하고  별다르지 않지만

고등학교에 가서 했었던 강연을 정리했다는 저 부분은   여학생시절보다 조금이라도 더 산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거고 누구나 후회할 수도 있는 부분 그리고 누구도 말해주지 않지만 결국은 눈치로 체득할 수 밖에 없는 부분을 드러내고 이야기해준 것만으로도 고맙고 시원하다,

그 부분을 모두 옮길 수도 없고...

그 또래의 여학생이라면 딸이있다면 읽어볼 만하다,

엄마나 선생님 말은 죽어도 안들어도 누군가 언니같고 선배같은 이의 말은 또 찰떡같이 들을 나이인지라... 괜찮았다.

 

세상에는 나도 모르게 형성되는 내가 알지도 못하는 많은 차별이 있다,

남자와 여자

대학생인가 대학생이 아닌가

중산층인가  기초수급자에에 가까운가

가끔 나는 어떤 부분에서는 차별을 당하는 존재 이며 동시에 어떤 부분에서는 누군가 선망하는 존제가 되며 나도 모르게 내가 알고 있는 상식이라는 것이 누군가에게 폭력이 될 수 있는 사람이다,

 

가난하다는 것이 단순히 돈이 없다는 문제여서 개인의 노력으로 벗어버릴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가난을 경험하지 않았다... 라는 문장이나

선택이라는 단어자체가 대상에 따라  다를 수 있다는 것 그 자체가 벽이 될 수 있는 사람도 있다는 말,, 누구나 쉽게 자유롭게 선택하며 내가 원하는 것을 하면서 살라고 말하지만  그 선택조차 다시 태어나는 것부터 바꾸지 않으면 아무런 선택지가 없다는 사람이 있다는 것과 그 글 말미에 가해자의 선택이 아니라 늘 피해자 특히 여성의 선택에 더 많은 의미와 존중이 들어간다는 말도 공감한다. 남성들에게는 왜? 라고 어째서? 라고 묻지 않은 것을 여성에게는 따른다는 말도 그렇다,

얼마전에 읽고 다시 감동했던 <제인에어>와 <광막한 사르가소의 바다>의 이야기가 나와서 좋았고   "당신을 당신 딸이라고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지금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 스스로에게 사주고 싶은 것 어떻게 달라지나요?스스로에게 자학하며 던지는 말을 딸에게라면 어떻게  하고 싶으세요.."라는 대목에선 나도 뭉클하고 눈물이 났다.

더위를 피해 냉방이 잘 된 카페에서 시간 죽이기 용으로 읽기도 딱 좋았지만 그 이상으로도 괜찮다.

 

 

 

 

 

 

 

 

 

 

 

 

지난 번 읽었던 이 책과 함께 내 딸에게 읽게 하고 싶은 책목록에 넣는다,

먼저 쉽게 이다혜의 책을 보다가 이 책을 보면 괜찮겠다고 혼자 흐뭇하다...

 

 

 

 

 

\

 

 

 

 

 

 

 

 

 

 

처음 이사람 저사람 나와서 인터뷰하는 거랑 여러사람이 갑자기 등장하는 부분만 넘기면 정말 책장이 저절로 넘어간다, 시간이 금방 간다,

엄마들이란  호주나 한국이나 다를게 없구나

엄마들사이에서도 여왕벌이 있고 돼지 엄마가 있고 소문을 몰고 다니는 여자들이 있고 이유도 모르고 왕따를 당하는 엄마도 있고 목소리가 크고 정의롭기만 한 엄마도 있고 아름다워서 질투를 받거나 무조건 추앙을 받는 엄마도 있다,

아이들 사이의 왕따나 따돌림이 아이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그렇게 자란 아이들이 그런 엄마가 되고 또 그런 아이들을 만든다,

한편 폭력을 보고 자란 아이는 폭력을 쓰는 사람이 되고 자기도 모르게 또다시 폭력을 쓰는 아이를 기른다, 거울도 안보는 남자마냥 스스로의 얼굴을 알지도 못하면서

 

여기서 말하는 사소한 거짓말은 무엇이었을까 페리가 섹스 뱅크스라고 속인 거짓말?

단지 그것만은 아니다,

셀레스트는 자기가 가정 폭력의 피해자라는 사실을 타인에게 그리고 스스로에게 숨긴다,

제인은 귀여운 아들 지기가 어떻게 태어났는지 그 아빠가 어떤 사람인지를 쉽게 말할 수 없다,

매들린은 전 남편 네이선의 가족이 한동네 한 학부형이라는 사실을 공개하지만 그 속내까지는 꺼낼 수 없다.

저 여자들의 공통점은 뭔가 문제로 아파하면서 한편으로는 내가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내 잘못도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셀레스트는 끊임없이 페리를 쪼개며 좋은 면과 나쁜 면을 분리해내고 자꾸 좋은 면을 생각하려고 하기만 하고 제인은 그날 밤의 사건이 자기가 처신을 잘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하며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고 매들린은 화끈한 만큼 걱정도 많다.

셀레스트가 가진 문제가 가정폭력이라면 제인의 문제는 일종의 데이트 폭력이다.

폭력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생각하지만  내 잘못도 있다는 데서 오는 죄책감과 그 나쁜 남자가 한편으로는 좋은 아빠이고 좋은 남편일 때도 있다는 생각이 혼란을 가중시킨다.

나도 함께 때렸으니까 내가 먼저 저 사람을 도발했으니까 라고 자꾸 자기의 문제를  생각하고 그가 다시 다정하고 친절하고 나를 부유하게 만드는 일에 더 중심을 둔다. 내가 맞고 있고 그가 때리고 있다는 사실은 자꾸 뒤로 미뤄진다. 그렇게 멍해지고 몽롱하게 길들여간다,

그날 그 바에 가지 않았더라면 그 사람과 이야기하지 않았더라면 함께 엘리베이트를 타고 룸에 가지 않았더라면... 거기에 내가 알고 있는 내 단점 나는 뚱뚱하고 예쁘지 않다는  점을 노골적으로 비웃었던 사실에서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내가 못생겨서 냄새가 나서 역겨워서.. 그런 일을 당한걸까? 그 생각이 내내 떠나질 않고 누굴 만나도 그날 그 말이 나의 삶의 판단 근거가 된다.

매들린도 어쩌면 남편이 생후 한달되 딸과 자신을 버리고 떠났을 때 분노를 이겨내고 함께 삶을 헤처나왔던 그래서 딸이며 동시에 동지이고 전우이기도 한  에비게일이 아빠의 집으로 떠나는 순간 느낀 감정은 배신감이 아니었을까 그럼에도 엄마라서 그 감정을 드러내면 안되고 쿨하고 멋진 엄마가 되고 싶었던 거다. 딸이 주는 배신감앞에서 전남편과 지금의 남편을 비교하게 되고 자꾸 지금의 자식들이  문제가 되는 건 아닐까 생각하고 내가 남편의 새아내보다 못한게 있는 거 같고 자꾸 더 뒤쳐지는 것 같은 열등감이 커지게 한다.

내가 나를 존중하지 못하면 누구도 나를 존중하지 않는다.

어쩌면 내가 남에게 자존심을 세우기 위해서 나조차 속여버린 사소한 거짓말들을 이 책을 말하고 싶었을까?

다들 속물이고 한편 한심하기도 하지만 그럴수 밖에 없었겠다.라는 마음이 더 드는 건 나 역시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참 많이 다른 세여자가 서로 친해진다는 것 의심없이 믿어주고 서로를 위해 싸워주는 것 그리고 마지막에 악녀인줄 알았던 레니타의 반성도 참 동화적이다,

 

지구 저쪽 호주에서 겪는 여자들의 불편함과 불안이 이곳에서와 다르지 않다는게 참 서글프다,

많이 배웠든 지위가 어떻든 여자들은 여자라는 이유로 지워지는 무게가 있다,

남자들도 다르지 않겠지만

여자들의 그 무게는  무게를 느끼고 토로하면 여자답지 않거나 모성이 부족하거나 모든게 내 잘못으로 인한것이 아닐까 하는 죄책감까지 덧씌워진다. 세 여자는 누구도 악녀는 아니다,

남편에게 맞는일이 당연하지 않고 남성에게 성적인 모욕을 당하는 일은 내가 명백한 피해자이고 혼자 키워온 내 아이가 내 마음을 이해해주길 바라는 건 인간적으로 당연할 수 있는데 그 당연한 감정에 자꾸 죄책감이 덧칠되고 무게가 늘어간다. 그래서 서로의 상처를 견주고 무게를 재며 내가 좀 낫다고 여기거나 내가 더 억울하다고 하거나.... 아무렇지도 않은 척 눈물위에 웃음을 걸어놓는다. 모두가 통속적이고 속물이긴 해도 미워할 수 없는게  그들이 원죄이진 않다는 것

 

이렇게 여름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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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당당한 페미니스트로 살기로 했다 - 웃음을 잃지 않고 세상과 싸우는 법
린디 웨스트 지음, 정혜윤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17년 2월
평점 :
절판


 

모름지기 사람은 모두 서로 다르기 때문에 충고 같은게 도움이 될 확률이 매우 낮다. 어떻게 나를 변화 시킨 것들이 당신을 변화시키겠는가? 내가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대체 내가 어떻게 알겠는가? 그리고 마침내 당신이 당신 자신이 되었다는 사실은 과연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을까?

                                                                                        p64

 

어떤 것에 대한 설명은 그것을 정당화 하는 것으로 들리기가 너무도 쉽다는 사실 때문이다,

 

                                          p101

 

어떤 사람들이 특정 가치에 접근하는 거슬 막는 일은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음험한 정서적 폭력의 한 형태다 그리고 우리 문화는 소외집단들을 끊임없이 쪼그라뜨리고 침묵시키기 위해 그 권력을 마구잡이로 휘두른다,

                                  p 118 

 

 페미니스트들은 강간이 다른 범죄보다  '더 나쁘기' 때문에 강간 농담을 배제하려는 게 아니다,우리가 그것을 배제하는 이유는 우리가 적극적으로 성폭행의 정의를 축소시키기 위해 애쓰는 문화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문화는 스토킹 행위를  로맨스에다 집어넣고 희생자들이 잘못된 옷을 입고 잘못된 장소에 갔거나 잘못된 상대와 시시덕거렸다고 비난하며 여성 혐오가 깔린 변명 (남자는 다 그래) 으로 후토하고 강강범죄 신고에 대한 정서적 사회적 비용을 말도 안되게 높여버려서 신고를 꺼리게 만들며 실제로 이루어진 나쁜 행동보다 무고행위가 더 심각한 문제인 것처럼 말하고 강간 희생자에게 그들이 성적 유린을 당한게 '신의 계획'이라고 말하는 정치인을 선거에서 뽑고 재판까지 간 강간 사건에 대해 5퍼센트도 안되는 비율로 유죄판결을 내린다. 코미디언이 자구 살인이나 다른 범죄 행위들에 관해 우리가 농담을 할 때는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면서 그건 이중 기준이 아니냐고 항변한다. 뭐 다행히도 살인이 일어나고 있고 만연해 있다는 사실에 대해 의구심을 제기하거나 그런 일을 당한 것을 신고하지 못하게끔 억압하는 문화적 서사는 없다 아마 사법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한다면 우리는 강간도 다른 범죄처럼 취급하기 시작할 것이다,

                            p 249 

 

어떤 일을 내가 직접 겪어보지 못했다고 해서 그게 사실이 아닌 것은 아니다, 얼마나 멋진 생각인가!

                       p 297 

 

 

 그가 그렇게 평범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나니 무서웠다. 그에게는 같이 즐겁게 일하는 여자 동료가 있었고 그를 사랑하는 실제 인간인 여자친구도 있었다 그들은 그가 온라인에서 재미로 여자들을 괴롭혀서 정신적 외상이 남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른다, 어떻게 그 두 인물이 같은 뇡서 나올 수 있는 걸까?   트롤들은 우리 주변에서 살고 있다, 극장에서 나를 만났는데 내가 나쁜  년이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익명으로 글을 올린다, 혹은 식당에서 내 시중을 들었는데 내 가슴이 사진에서 봤던 것만큼 크지 않았다거나 혹은 6년 전에 한 바에서 내 옆에 앉았는데 당시 내가  먹은 메뉴들이 이러이러한 것들이었다고 이야기한다, 사람들은 인터넷에서 일어나는 일은 중요하지 않다고 그것은 실제 삶이 아니라고 말한다, 하지만 인터넷 트롤들 덕분에 나는 문명 세계와 우리의 가장 끔찍한 자아 사이에 경계가 그저 환영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떠울리게 된다

                                     p 364

 

지금 나의 직업적인 삶에서 내가 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은 사람들아에 공개적으로 나서서 틀렸다고 단단한 방패를 내걸고 그것을 꿋꿋하게 지켜나가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선한것보다 쿨한 것을 더 중시하는 사람에게 그건 틀렸다고 말한다, 나는 내 몸을 무기로 만들어 나를 공격하고자 하는 여성혐오주의자들을 향해  그건 틀렸다고 말한다, 나는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자기네 들이 화가 났을 때 불태울 땔감으로 가볍게 취급하는 사람들이 내 관심과 존중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느끼는 남자들에게 그런 생각은 틀렸다고 말한다, 나는 내가 배아보다 덜 중요하다고 ㅈ장하는 종교적 열성당원들에게 그건 틀렸다고 말한다, 나는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으라는 내 본능을 향해 그러지 않을 거라고 말한다, 

 

 그것은 사회가 여자들에게 정해놓은 경계 고분고분하고 다른 이를 돌보는 사람이 되고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으라는 명령을  걷어차서 무느뜨리고 나 자신의 경게를 세우는 한가지 방식이다, 나는 이걸 할거야 저걸 할거야 하면서 말이다, 당신이 나를 예속시빌 수 있다고 믿는 한 나는 당시에게 친절할 필요가 없다, 나는 바쁜 사람이고 내 시간이 무슨 공공재도 아니다 당신은 지루해빠진 사람일 뿐이니 그냥 내 앞에서 꺼지란 말이다,  이것이 바로 세계를 만드는 일이다,

                                               p368

 

 

페미니스트는 한가지 방식이 아니다, 엄격하지 않고 절대적이지 않으며 단 하나의 신념이 아니다, 수많은  이질적인 생각들 서로 다른 입장과 그들의 생각들이 모여서 서로를 인정하고 폭넓게 받아들이는 삶의 태도를 말하는 것이다,

단지 남성 여성의 문제만이 아니라 모든 차별과 편견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아우르는 일이다,

엄격하게 이런것이 페미니즘이라고 규정할 필요가 없다,

내가 있는 자리에서 내가 느끼고 생각하는 것 그리고 다른 의견을 받아들이고 곰곰히 생각해보는 일들이 모두 페미니즘이 될 수 있다,

단 마음을 열고서

그럴 수 있겠구나.

니가 틀린 건 아니야  라고 하면서

누군가가 배제되거나 소외되지 않았는지 예민하게 감수성을 세우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다른 사고나 관념에 대해 비판할 수 있고 반대할 수 있지만 그 존재를 무시하지 않는 일이다,

 

저자는 뚱뚱한 페미니스트임을 전반에 내세우지만  비만 혐오나 다이어트 문화 외모지상주의 이외에 낙태 생리 몸에 대한 여러가지를 다루고 있다,있는 그대로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 내 몸에 대한 결정권은 누구보다 내가 먼저라는 것을 이야기한다, 유쾌하고 통쾌한 방식으로....

글은 내내 유머가 넘치고 사이다처럼 시원하지만 그래도 저자가 겪었을 마음고생이 상처가 느껴저서 마냥  즐겁게 넘길 수 없다, 게다가 그 문제는 지구반대편 여기서도 똑같은 문제이다,

'일베'는 어디나 있구나 하는 씁쓸함도 함께 알게 된다,

내가 속한 세대 사회 구성원이 모든 것이 아님에도 내가 느끼지 않은 것 내가 알지 못하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 꽉 막힌 사고가 자꾸 편견을 낳고 소외를 낳는다.

내가 어떤 크기의 세상을 살건인가 그건 내가 정할 일이다,

깨지는게 나쁘진 않다, 세상이 확대되는 일일 수 있다면...

 

처음엔 좀 산만하지만 읽다보면 저자의 매력에 점점 빠져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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