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 가는 마음
윤성희 지음 / 창비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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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더운 올 여름에 묵묵히 읽어 내려간 이야기들

이 여름에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문득 한다

작가의 글은 늘 그렇듯 대단한 사건이 있는 건 아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대단한 사건이라는게 어떤 걸 뜻하는 걸까? 드라마에 나올 법한 이야기들? 세상에 이런 일이에 방영될만한 일들이 그렇게 자주 빈번하게 일어나지는 않는다.

그냥 내 생일이 아닌데 타인들이 내 생일인줄 아는 작은 착각이나 실순잔치에 당자가는 나오지 않고 그 자손들이 잘 먹고 돌아가는 일. 인생이 꼬여서 꽈배기 가게나 해볼ᄁᆞ 하고 결정을 내리는 일, 친구와 영화관에서 밤을 세거나 누군가의 타임캡슐을 찾아내는 일, 혼자 간 식당에서 맛있는 동태탕을 발견하고 옆자리 사람들의 이야기를 엿듣거나 친구 아이를 돌봗주는 일, 가스 폭발로 죽다 살아나서 내가 운이 좋은 편이었구나 라고 깨닫게 되는 일?

이런 일들로도 충분히 인생이 꺽어지고 무언가 생각하게 되고 의미를 찾기도 한다. 그리고 그 후도 이전과 다르지 않은 생활을 계속해 나갈 뿐이다.

무언가를 꺠닫는다고 사람이 크게 바뀌지는 않더라 그냥 살아온 관성대로 살아가겠지만 문득 이전 기억이 떠오르고 한 번 더 마음을 가다듬거나 추억하거나 그럴 것이다.

윤성희의 소설집에는 그런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나는 작가가 정말 이야기꾼이라는 생각을 늘 한다.

어떻게 이렇게 줄줄줄 천연덕스럽게 이야기를 이어갈 수 있을까

시작은 영등포였는데 마무리는 동대문이랄까.

표제작 < 느리가 가는 마음>을 보면 체육선생님 이야기에서 시작하다가 내가 몸살을 앓는 이야기로 넘어가다가 이모가 등장하더니 느닷없이 땀구멍아저씨로 넘어가더니 만물상 트럭에서 끝이 난다.

아무렇지 않게 태연하게 이야기는 이어진다. 이게 무슨 관계야 왜 이런 소릴 하나 하는 마음이 들지 않게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이 사람 이야기를 했다가 저사람 이야기를 했따가 그리고 그냥 그렇게 마무리 그래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은게 정말 이상하다.

 

공중부양을 하다가 뒷꿈치가 땅에 닿지 않아 까치발을 하던 나와 후드티를 절대 벗지 않은 성규의 하루밤 가출에 대한 이야기가 있고

망해버린 아빠를 따라 고모가 살고 있는 시골집으로 이사한 내가 고모이 꽈배기짐 이야기와 거기서 사귄 현규라는 친구 그리고 고모의 이웃 아저씨들 이야기를 능청스레 연결한다.

이모를 따라 이모가 연애할 때 보냈던 느린 우체통의 엽서를 회수하게 위해 따라나서는 이야기도 있고 죽어버린 내가 엄마 곁을 맴돌면서 엄마가 우는 정면얼굴을 한 번도 본 적이 없구나를 깨닫게 되는, 엄마의 꿈속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과 엄마의 마음을 알아차리는 이야기도 있다.

다양한 이야기가 담긴 티셔츠를 제작 판매하는 삼촌의 다양한 직업편력 이야기를 들으며 웃는 돌에 대한 티셔츠를 만들고 싶다는 이야기도 있고 생일에 대한 여러 가지 우연들과 사건들에 관한 이야기, 오랜 친구사이의 다양한 감정들 사랑하고 미워하고 증오하고 다시 이해하는 이야기 등등등

그냥 평범한 사람들이 나와서 자기 이야기를 하는데 하나같이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이야기들을 한다. 그래서 내가 어떤 깨달음을 얻거나 내가 그 일로 이렇게 성장했다는 이야기도 아니다. 그냥 그런 일이 었었대

작가는 등장인물들의 감정을 직접 표현하지 않는다. 이런 일이 있었고 그 일이 이렇게 되었고 참 우리 고모는 우리 이모는 우리 아빠는.... 그렇게 이야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다가 첫 문장과는 전혀 상관없는 문장으로 완결되지만 그래도 이상하지 않다.

이번 소설집도 이전 다른 소설집들과 다르지 않지만

모든 이야기에 생일이 등장한다는 것. 그리고 대부부느 부모 중에 한 쪽만 있는 상황이라는 것 그리고 오래 지내던 곳을 떠나왔거나 오래 알던 사람과 관계가 끊어졌거나 그래서 외로운가? 라고 살펴보면 또 그렇게 외롭다고 할 수는 없지만 괜찮다고 할 수도 없는 묵묵히 견디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들이다.

생일이라면 으레 기쁘고 행복한 날이거나 오히려 반대로 우울하고 가장 싫은 날일 수 있는데 모든 생일들은 (진짜 생일이거나 생일이라고 착각하거나 내가 정한 생일이거나 상관없이) 덤덤하다. 그래 생일이니까 미역국을 먹고, 미역국을 먹었으니까 생일같아서 생일이라고 하고 착각한 친구에게 생일축하를 받았으니 생일처럼 지낼까 하는 인물까지

생일이지만 생일같지 않고 생일이 아니지만 생일같은

특별하지만 평범하고 평범하지만 특별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술술 하고 있다.

산다는 게 그렇다.

특별한가 평범한가는 그 시간이 결정하는 건 아니다.

내가 그 시간을 그 경험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달린 일이다.

혼자 간 식당에서 고사리가 잔뜩 든 조기탕을 먹게 된다면 그날이 생일이고

열 번 꼬아 만든 꽈배기를 받는 날이 생일이기도 하고

구내식당에서 미역국과 잡채가 나온 날이 생일처럼 생각될 수도 있다.

생일이어소 조금 멋쩍을 수도 있고 그냥 이유없이 근사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늘 느끼지만 작가의 문장을 하나하나 보면 등장인물의 감정을 표현하는 문장은 없다. 그냥 묘사가 있고 상황이 있는데 그 문장들이 이어지면서 인물의 감정이 느껴진다.

 

다행이다. 여기면서도 마음 한켠에서는 엄마가 잠 못 이뤘으면 하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엄마가 새벽 내내 거실 소파에 앉아서 해가 뜨기를 기다ᅟᅧᆻ으면, 그러면 내가 옆에 앉아서 머리를 쓰다듬어 줄 텐데. 엄마의 꿈속으로 들어가 내가 아직 여기 있다고 말해 주고 싶었다.”

슬픈 일이 생기면 그때의 내 사진을 보았다. 눈이 붓고 눈곱이 낀 아기가 울고 싶어도 울지 못하는 아기. 다시 눈물 샘이 막힌 아기가 된 기분이었다.” (자장가)

 

아저씨엥게 비닐봉지를 건네받으며 나는 생각했다. 한여름이 되면 아빠랑 엄마랑 똑같은 꽃무늬 잠옷 바지를 입고 수박을 먹어야지 하고 ’ (느리게 가는 마음)

 

그런 날이 있자. 너무 작은 소리여서 처음에는 자세히 들리지 않았다 다시 볼륨을 높인 후 그 장면을 돌려보았다. 않았어요 라는 말이 끝나자마자 그런 날이 있지 하고 누군가 말했다. 마치 주고받는 대화처럼 엄마였다. 엄마의 목소리가 틀림없었다’ (웃는 돌)

아침에 일어나 창밖을 봤는데 맞은 편 옥상에서 빨래가 흔들리는 게 보였다. 그 빨래는 전날에도 있었고 전전날에도 있었다. 사흘이나 걷어가지 않은 빨래라니 갑자기 슬퍼졌다. 온몸이 바닥으로 가라앉는 것 같았다. 갑자기 슬퍼졌다. 온몸이 바닥으로 가라앉는 것 같았다. 조금만 움직이면 눈물이 쏟아져 멈출 수 없을 것 같았단. 나는 학교에 가고 싶지 않다고 용기를 내 엄마한테 말했다. 하지만 왜 그런지는 말할 수 없다고 나조차 설명할 수 없다고 그랬더니 엄마가 말했다. 괜찮아 그런 날이 있지.’

어머니는 못난놈이라고 욕을 했다. 못된 놈이 아니라 못난 놈이라는 나는 그 말이 이상했다. (중략) 어머니는 잘못 알고 있었다. 동생이 늘 운이 좋았고 그래서 동생 옆에 있으면 나는 늘 운이 나쁘게 느껴졌다. 나는 그게 무서웠다. (해피 버스데이)

 

내가 살아온 시간을 죽 풀어낸다면 별거 아닌 시간이 별 시간보다 더 많았을 것이다.

별일이라고 말하기 뭣한 시간들 사건들 상황들 그런 시간이 모여 나를 만들었다

어쩌면 누군가 죽고 누군가와 헤어지고 어떤 상황에 맞딱뜨려서 어쩔 수 없는 시간들이 흐르고 죽고 싶었다가, 견뎠다가 모른 척 덮었다가 다시 마주하게 되었다가 알고 보니 별일이 아니었구나 깨닫기도 하고 그게 엄청난 일이었구나 하고 새삼 놀라게 되는 일들

그런 일들은 너무나 능청스럽게 묘사하면서

내가 겪은 일들이 그런 거였구나

그런 일도 있지, 그럴 수도 있지, 라는 마음으로 마무리 되는 것

 

유난히 더운 지금

어쩌면 다가올 시간 중 가장 시원할 수도 있는 이 여름

천천히 돌아가는 선풍기 앞에서 더운 공기를 흩어내면서 하나하나 이야기를 읽다보면

그래 그럴 수도 있지 무슨 일이든 일어 날 수 있는 거지

그런 마음이 느리고 습하지만 간간히 바람에 흩어지면서 몽골몽글 일어나고 있다.

 

이 여름에 에어컨 말고 선풍기 앞에서 느리게 읽기 딱 좋은 소설집이다.

다음 소설집도 여름에 나오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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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두 얼굴 - 사랑하지만 상처도 주고받는 나와 가족의 심리 테라피
최광현 지음 / 부키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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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도 올 때가 있고 떠날 때가 있는 모양이다.

쉽게 읽혔고 많이 도움이 되었고 그리고 나를 돌아보게 되기도 했던 책 세권을 정리했다.

사실 볼 때마다 내가 아닌 타인을 대입하면서 그가 변하지 않으니 문제야... 했던 시각이 점차 나에게 집중되면서 그럼에도 내가 어떻게 해야하나? 나는 타인에게 상처를 주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가족이란 참 지랄맞아서 없으면 아쉽고 뭔가 내가 부족한게 아닐까 라는 생각도 하게 되지만

막상 함께 하면 몰래 버리고 싶기도 하고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서 이런 인연의 굴레에서 헤매고 있는가 자책을 할 때가 있다.

내 가족이어서 감사하다가도 돌아서면 내 가족이라는 것 때문에 죽여버리고 싶은 마음....


우스개로 넘어갈 때도 있고 심각하게 고민할 때도 있는 어쩌면 내가 살아가면서 나보다 더 많이 머리속에 넣고 나보다 더 많이 애써주고 나보다 더 많이 사랑하고 나보다 더 많이 실망하게 되는 존재가 가족이다.

원가족을 피해서 새롭게 가족을 구성했더니 늘 그 꼬리표가 따라다니는 찝찝한 기분들

여우를 피하려다 호랑이 굴에 들어왔다는 당혹감

어디서 꼭 나같은 것들이 나와서 나를 혼란스럽게 하는가 하는 마음들

버리자니 욕먹는게 싫고 참아내자니 미쳐버릴 것 같은......


가족아래 더 작은 요소 개인이 있지만

특히나 한국사회에서는 개인주의가 많아지고 있다고 하지마는 여전히 가족이 우선이다.

한때 코로자 지원금도 가족단위로 받았고 

가족단위로 국가에서 통제하고 

가족단위로 뭉뚱거려서 꼬리표가 붙어버린다.


가족이라서 가장 많이 상처를 주고 가장 위험한 존재인데

가족이라고 가족안에서 안정을 찾으라고 한다.

그 가족에 대해 많이 배운

그리고 많이 삐딱해진 책 세권을 다시 읽고 정리하고 이제 보내려고 한다. 



가족의 두얼굴

(사랑하지만 상처도 주고받는 나와 가족의 심리테라피)

 

- 가족도 권력관계다.

가족도 표현하지 않으면 모른다. 나의 감정, 욕구의 표현도 연습이 필요하다.

원가족과 현가족

사람은 사랑과 인정이 필요하다.

가족내에서 각자 역할이 있다. 영웅이 있고 희생양이 있고 그래도 되는 사람이 있다.

관계는 쌍방이다. 서로 비슷한 크기와 무게가 오고갈 때 안전하다. 한쪽이 일방적이라면 오래 지속하기 어렵다.

 

 

1.어린 시절 나를 돌아보다.

 

가족은 우리가 태어나 처음으로 관계를 맺는 곳이다. 우리가 가족 안에서 어떤 관계를 맺고 어떤 감정을 경험하는가는 평생 동안 간직될 감정의 채널을 고정시키게 만든다.

우리는 가족관계를 통해 인생을 살면서 수없이 형성하게 될 대인관계에 대한 기본적 믿음과 기대를 갖게 되며 이것은 친구, 연인 부부, 자녀 등 여러 관계 속에서 많은 영향을 미친다. 가족관계는 우리의 인간관계를 찍어 내는 붕어빵 틀이라 할 수 있다.

(동창모임이 각자 자기 자랑만 하는 지루한 모임이 아니라 그 모임에 있는 내가 외로운 것이다. 나 자신이 비교하면서 열등감을 느끼고 마음이 불편한 것이다. )

 

자신의 외로움의 실체를 알았다고 외로움에서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 어린시절부터 따라오는 외로움과 상실에 대한 불안은 생활습관처럼 반복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체를 알고 나면 조금씩 차이가 생기게 된다. 이제 매일 일상에서 자신과 대화하며 자신을 설득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상처는 한 번에 해결되지 않는다. 다만 자기의 상처를 잘 인식하고 그것을 통해 끊임없이 자신을 설득하고 그 상처가 주는 고통을 스스로가 통제하고 다룰 수 있으면 된 것이다.

 

어렸을 때 상처를 받거나 좌절하면 누구에게 먼저 달려갔나요?”

무언가에 상처를 받았으 때 누구에게도 갈 수 없었다는 것은 한번도 사람을 통해 상처를 치유받은 경험이 없다는 뜻이다.

 

<환상유착> 아이가 학대하는 부모가 문제가 아니라 본인이 나쁜 아이여서 생긴 일이라고 믿어버리는 것 그것이 덜 고통스럽게 때문이다. 그러나 성인이 된 이후에는 부모의 모습을 그대로 답습할 수 있다.

 

우리 가족의 인정할 수 밖에 없는 불편한 진실(blind spot)

가족으로부터 받은 수많은 가치와 신념들 너는 공부에 소질이 없어. 너는 못됐어. 너는 나약해. 언니보다 못해 등등

가족최면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열린 마음과 자세가 필요하다. 폐쇄적인 가족은 언제나 경직되어 있으며 무엇을 하면 안되고 무엇을 해야만 한다는 엄격한 규칙을 가지고 있다.

가족은 융통성있고 유연하게 일상을 움직여야 한다.

 

새로운 가족은 백지상태에서 시작하지 않는다. 부부는 자신이 근본적으로 뿌리를 둔 가족 전통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각 배우자는 이전 세대의 가족문화와 전통을 새로 시작하는 결혼생활로 가지고 온다. 그것이 좋은 것이든 불행의 시작이든.

 

2. 배우자 선택의 숨은 이유

남녀가 서로 낯설지 않으면 즉 상대에게서 자신의 익숙한 모습을 발견하면 편안해지고 끌리는 것이 사랑의 일반적인 법칙이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어린시절 경험한 내 가족의 모습을 재현해 줄 사람에게 강하게 끌린다.

어린시절의 모습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

 

어린 시절의 가족을 거리를 두고 바라볼 필요가 있다. 그곳에서 경험한 감정에 용기 있게 직면하는 것이 출발점이다. 먼저 자기 가족을 객관적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그리고 여기서 자신이 얼마나 상처를 받았고 힘들었는지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헤아려야 한다. 이렇게 자신과 가족을 들여다 보는 작업을 하고 나면 배우자의 선택과 만남 속에서 발생하는 불안과 긴장에 좀 더 초연할 수 있다.

 

세상에 낮은 기대치를 갖는 아이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왜곡하기 쉽다.

불행의 패턴을 똑바로 바라보는 용기가 출발점이다.

직면의 대상은 어린 시절의 상처이다. 자신 안에 존재하는 상처받은 내면의 아이를 고찰하며 자기 공감의 경험을 가져야 한다.

 

3. 상처를 주고 받는 가족

 

가족의 문제와 갈등은 구성원 한 사람의 탓이라기보다 그를 둘러싼 가족의 환경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본다. (시스템의 관점에서 개인이 아닌 개인이 처한 환경에서 원인을 찾아본다.)

 

죄책감과 수치심을 부르는 가족 비밀

고통스러운 사건이나 문제의 비밀은 숨기려고 하면 할수록 의도와 다르게 더욱 아래 세대에게 영향을 많이 끼친다. 고통스러운 사건의 비밀을 간직한 첫세대는 비밀을 지키고 싶은 마음과 이를 털어놓음으로써 자유로워지고 싶은 양가감정 사이에서 갈등한다. 이 과정에서 부분적으로 누설된 비밀 때문에 아래세대는 무언가 있음을 직감하지만 전모를 알기 어렵고 물어볼 수 없다.

첫 세대에게는 말로 표현될 수 없는 것이 있었다면 다음 세대에게는 이름 붙일 수 없는 것이 된다.

여기서 비밀의 내용은 잊혀지고 오로지 그 존재만 감지되면서 끊임없이 의문을 자아낼 뿐이다. 감추려고 하면 할수록 비밀은 자녀세대에게까지 불안감을 전달한다.

(알지 못하는 것은 스스로 덩치를 부풀리고 괴물이 된다. 마루밑에는 그저 어둠이 있고 먼지가 있을 뿐이지만 계속 그 아래를 들여다 보지 못하는 동안 괴물이 존재하고 자라고 자라서 절대 보면 안되는 공간이 되면서 누구도 근처를 지나고 싶어하지 않는다. 모르기 때문에 상상을 하고 상상은 걷잡을 수 없이 뻗어 나간다. 비밀은 안전을 위해 만들어졌지만 이후 누구도 감당할 수 없고 마주하기 두려운 불안이 된다. 그리고 내가 그 불안을 가지고 있음을 말하지 못하는 동안 수치심과 죄책감이 함께 달라붙는다.)

 

가족은 변화에 저항한다. 가족 시스템에는 일종의 관성이 있어서 지금까지 해오던 방식을 고수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런 가족 시스템의 경향을 향상성이라고 한다. 가족의 붕괴를 두려워하고 변화에 저항하려는 향상성 때문에 가족 비밀이 만들어지지만 그로 인해 가족 사이의 갈등은 증폭된다.

 

어린 시절 생존하기 위해 부모의 사랑이 필요했다면 성인에게는 주변의 인정이 필요하다.

(아들러) 인간 본성에는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가 있어 어려서는 부모의 관심과 인정을 받기 위해 부모가 좋아하는 것을 하기도 하지만 반대로 싫어하는 것을 함으로써 관심을 끌기도 한다. 이도 하나의 권력욕구라 할 수 있다.

폭력과 분노를 표출하는 가장은 대부분 가정의 테두리 밖에서 권력을 행사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우리는 매시간 권력을 상대에게 행사한다. 지극히 사적인 관계에서도 권력은 존재한다.

누가 선택을 할지 누가 결정을 할지 등등

 

아이에게 좋은 아빠는 무엇보다 아내와 사이가 좋은 아빠다.

아이의 영역은 엄마의 영역에 속한다. 아빠가 아이들과 사이가 좋으려면 이것을 암묵적으로 지지해 주는 엄마가 있어야 한다.

 

희생양

한 사회 안에서 불안 불만과 갈등이 일어났을 때 가장 적은 대가를 치르고 일시적으로 가장 높은 효과를 낼 수 있는 대응책은 누군가 또는 일부 소수자들에게 문제의 책임을 전자시키는 것이다.

가족 희생양은 가족 중 한 사람의 희생으로 가족 구성원 전체가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는 것

부부 갈등에 자녀가 하는 역할들 (문제아 또는 영웅)

문제아 역할을 맡은 자녀는 억울하게도 여러 가족 문제의 원인 제공자로 비난 받는다. 한번 문제아로 지목된 자녀는 가족 안에 야기되는 긴장과 불안에 극도로 예민해져서 식구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더욱 비난받을 짓을 하는 식으로 반응한다. 역설적이지만 문제아는 나쁜 짓을 함으로ㅆ 가족이 느끼는 고통과 분노를 자신에게 돌리게 만들어 가족의 결속을 이루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가족은 일시적인 안정을 찾겠지만 희생양이 되니 자녀는 죄책감과 열등감 그리고 높은 불안감을 피할 길이 없다.

누군가 희생양이 되면 다른 자녀는 안전하게 자신의 시간을 누릴 수 있다.

희생양은 감수성이 예민하고 겁이 많다. 부모의 고통스러운 상태를 재빨리 알아챌 수 있을 정도로 예민하고 죄책감을 과도하게 갖고 버림받을 것에 대한 두려움을 느낄만큼 겁이 많고 조화를 갈구하는 아이일 경우가 많다.

 

영웅의 역할은 자녀가 부모를 대신해서 부모의 오랜 바람을 풀어주는 역할을 수행한다.

부모에게 충성심을 보임으로써 자신의 은혜를 갚으려 하는 것이 보편적이라면 부모가 자녀의 충성심을 이용하여 자신의 욕구를 채우려는 경우가 종종 있다. 좋은 성적, 높은 연봉 등을 강요하는 것 등

 

가족에서 발생하는 많은 상처는 대개는 선한 의도와 동기에서 출발한다. 동기 자체는 나쁘지 않을지 모르지만 방법에 문제가 많다.

파괴적 권리: 부모에게 이용당한 자녀가 자신이 당한 것을 다시 되돌려 주려 할 때 행사하는 권력 (시집살이 되물림, 군대 후임에 대한 폭력 등 본전 생각)

 

삼각관계 속에서 자녀는 부모의 대리 배우자 역할을 하기도 한다. 부부 간에 발생하는 갈등 분노 원망 우울 등을 느끼면서 부부는 자녀를 배우자의 자리에 세우고 배우자를 대신해서 위로를 받으려고 한다. 삼각관계에 편입이 되면 자녀는 더 이상 자녀로서 존재하기 보다 부부 갈등을 담당하는 한 축으로 정서적 불안 상태에 놓이게 된다.

 

 

가족안에서 많이 쓰이는 이중구속언어들

명확한 의사전달도 연습이 필요하다.

 

 

관계의 심리학

 

먼저 자신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타이과 관계를 맺는 방식이 건강하게 작동한다.

내가 진지하게 한 말에 상대가 건성으로 받으면 나는 상대방의 태도에 이미 상처받는다. 말이 아닌 태도, 비언어적 표현이 더 상처가 되거나 위안이 될 때가 있다.

자신에게 엄격하고 메마르면 타인에게도 마찬가지다. 상대를 어떻게 받아들이는가는 나를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의 문제일 수 있다.

 

갈등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지 않는다.

관계의 두가지 시선

콤플렉스 (마음의 응어리) 관계 패턴의 재현 즉 익숙함에 끌린다.

힘든 기억이라도 익숙함이 더 강하다.

자신의 상처를 당사자가 아니라 지금 내 앞에 있는 (그를 닮은) 약자에게 쏟아붓는다.

소통(체계이론) 감정(정서)는 전염이 강하다. / 이중메세지 화법 (하라는거야? 말라는거야?)

균형잡힌 상태를 잘 유지 하는 것이 필요하다.

일부분이 아닌 전체를 봐야 한다. 상호작용에 세심하라. 향상성 (안정적 예측가능성)

3. 나는 나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 (자아분화)

불행에도 패턴이 있다. (무의식적인 반복)

행복도 배워야 한다.

애착은 대인관계의 시작이다.

가까워지려는 마음(애착) vs 거리를 두려는 마음( 분화) 독립성과 자율성이 필요하다.

4. 삼각관계 익숙함에 끌린다. / 세사람이 되면 관계가 복잡해진다.

5. 나는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가 (자존감)

성장 공감능력 (의사소통)

6 희생양 : 가족의 짐을 짊어진 사람

고맙지 않고 수치스럽고 만만하고 보이지 않은

예민하고 민감하고 죄책감과 두려움이 큰, 분위기를 잘 파악하고 신경쓰는,

부모의 보호자, 우상 대리인 악당, 광대 문제아 등등등

7 가족구조

나만의 문제가 아니다.

애쓰지만 구조적 문제로 갈등과 문제를 야기한다.

관계의 문제는 개개인이 아닌 전체적인 시각에서 봐야 한다.

현상 뒤의 감정 (정서), 관계 역학을 봐야 한다.

(아이의 도벽 통제 무관심- 불안 잘 키울 수 있을까?- 친밀감 부족- 아이의 불안 혼란- 도벽)

8. 가족 트라우마 (침대위의 여섯사람)

상처는 상처를 만든다.

가족은 두 남녀가 배우자를 선택하는 것으로 시작하지만 두 남녀의 선택과 동시에 이전 세대에서 수없이 반복되고 해결되지 않은 상처들 역시 함께 선택된다.

가족은 무의식적으로 감정 욕구 신념 등을 공유한다.

어쩌면 인생이란 도화지의 절반이 채워진 채 태어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9. 존중받고 싶은 욕구 (권력)

관심이 필요하다 = 권력을 가지고 싶다.

가족안의 서열문제

의사소통 역시 권력에서 표현된다. (지시 vs 복종)

10 해답은 당신 안에 있다. (관점 바꾸기)

강의 물길을 차단하는 것이 직면이라면 강의 줄기를 바꾸고 흐름을 바꾸는 건 존중이다.

관점이 변하면 다른 것이 보인다.

 

상처는 가만있지 않는다. 어떤 식으로든 해결되고 싶어한다.

위로받고 지지받고 용서받기 바란다.

상처는 현재 미래에 영향을 미친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상처에 공감받고 싶어 한다.

 

가족의 발견

 

상담에서 의미전환’ ‘재구성’ ‘긍정적 피드백이라 부르는 치료기법들은 자신이 겪고 있는 고통과 갈등을 새로운 시각으로 볼 수 있게 해준다. 고통을 유발하는 환경을 바꿀 수는 없어도 고통을 겪는 사람에게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온다. 어떤 사건이나 문제 행동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면 그에 대한 개인의 관점뿐 아니라 가족 전체의 관점도 바뀐다. 새로운 의미 부여나 의미의 전환은 내면의 판단 기준과 사고의 틀에 영향을 주고 부정적인 측면 반대편에 있는 긍정적인 측면을 보고 느끼고 생각하고 행동하게 함으로써 스스로 뭄ㄴ제를 해결하는 효과적인 치료과정이 된다.

 

화가는 한 곳을 소실점으로 정하고 그곳을 중심으로 그림을 그려 나간다. 우리는 풍경 그 자체를 조망하는 것이 아니라 기준점을 중심으로 풍경을 그리고 그 외에 다른 것들을 본다. 그림의 전체 구도는 관점의 위치에 따라 달라지기에 객관적인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동일한 풍경이라도 어디에 기준점을 찍고 바라보는가에 따라 전혀 다르게 보일 수도 있다. 이 소실점이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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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는 불안, 우울증, 위통, 여드름, 알레르기 같은 증상들을 유발한다. 분노를 자신의 내면 깊숙이 억눌러 둔 사람은 이를 느끼고 적절히 표출해야 하지만 분노가 허용되지 않은 환경 속에서는 분노를 더 깊은 곳으로 가져간다. 이렇게 하는 그들은 착한 사람들이다.

분노의 표현이 허락되지 않는다는 것은 욕구 자체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분노와 욕구가 표출되지 못한 채 내면에 쌓이면 분노는 부패되고 변질되어 원망이라는 감정으로 변한다. 분노는 사랑과 관심 이해를 원하는 감정이지만 원망은 파괴를 원하는 감정이다. 원망의 감정에 휩싸이면 모든 대인관계가 자기 안에 있는 원망을 더욱 건드리고 촉진시켜 고착된다.

회복은 자신안에 있는 감정을 알아채는 데서 시작된다.

안정된 치료는 가족과 주변 사람들이 분노의 감정을 공감하고 이해해 주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자기 안에 있는 분노를 이해받으면 그 자신도 그것을 인정하고 해소하려고 노력하게 된다.

 

관계의 문제는 상대방이 주도권을 쥐고 있는 것 같지만 알고 보면 내가 주도권을 쥐고 있는 경우가 많다. 해결의 열쇠를 상대방이 쥐고 있다고 생각하면 답답하고 조급하지만 열쇠가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알고 나면 부담감이 훨씬 덜해진다.

 

니체 살아있는 모든 존재는 권력이 필요하다.’

모든 인간은 권력을 추구한다. 단지 힘에 대한 갈망이 아니라 인정받기 위해, 자존감을 획득하고 자기 삶의 의미를 얻기 위해서이다. 권력은 힘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아실현과 자기 성취를 위해서 필요하다.

마음의 병을 가진 모든 사람의 한가지 공통점은 바로 무기력이다.

무기력하다는 자기 인식은 더욱 무기력한 상황을 불러온다.

때로는 자살이 주도권을 의미하기도 한다. 유일하게 자신의 몸에 혹은 스스로가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자해밖에 없는 경우

문제해결을 위해서는 주도권이 있어야 한다. 주도권을 가지기 위해서는 나 스스로에 대해 잘 알고 내가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알아봐야 한다.

 

무의식을 의식의 차원으로 바꾸는 것

과거고통과 기억들 감정들을 잘 분류하고 제자리에 갖다 놓는다. 현재는 과거와 다르다.

나는 누구인지 내가 다른 사람들과 어떻게 다르고 그들 속에 어떻게 자리하고 있는지 나의 인생에서 현재는 어떤 의미인지 알게 되면 마음의 안정을 얻는다.

 

새의 시각으로 보기 (객관적 관찰)

자기 문제를 한걸음 뒤로 물러나 보면 그동안 보이지 않은 부분이 보이고 여기서 새로운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의심하기 바라보기 결심하기

객관적으로 자기를 바라보면서 홍수처럼 밀려오는 부정적인 생각을 나를 관통하는 길이 아닌 다른 길로 흘러 들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내 생각을 의심해 볼 것.

 

 

어떤 사람이든 사고나 행동에는 반드시 패턴이 있고 그런 패턴이 있으면 거기에 약점이 생기지 (중략) 패턴이 없으면 인간은 살아갈 수 없어. 음악에서의 테마 같은 거야. 하지만 그건 동시에 인간의 사고나 행동에 틀을 만들고 자유를 제약해 ‘ (1Q84)

우리의 모든 생각과 행동에는 일정한 패턴이 있으며 이것은 우리의 사고와 행동을 결정하는 틀이 된다. 마찬가지로 어느 가족이든 무의식적으로 공유하고 있는 사고와 행동의 패턴이 존재한다. 가족 관계의 패턴은 결혼생활 속에서 어떤 관계나 일이 매일 반복되면서 만들어 진다. 그리고 이런 패턴 속에서 가족 문제는 반복된다. 개개인의 성격이나 마음이 맞지 않아서, 조금 더 참지 않아서, 누군가의 성격이 좋지 않아서가 아니라 일정한 패턴에 따라 고통스러운

결혼생활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새로운 가족은 백지상태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이전 세대의 가족문화와 전통을 가지고 온다.

 

가족문제에서 현재의 문제가 과거의 문제의 연속이거나 반복임을 알게 되는 경우가 빈번하다. 많은 이들이 스스로 의식하지 못하는 어떤 반복의 매듭에 얽매어 있거나 자신을 잡아주고 끌어주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도 이해하지도 못한 채 불행하르 반복하고 있다.

 

기성세대의 가족상처 3종세트 돈만 벌어오는 가장, 중독(숨은 중독 오피스 중독) , 무기력.

*무기력 자신감과 삶의 주도권을 잃어버린 사람, 자기 학대적 우울, 폭력적 절대적인 가부장

잃어버린 자신의 힘을 가족 안에서 보상받으려고 한다.

 

성인이 되어서도 여전히 자기중심적으로 주변과 세상을 보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이 고통스러운 삶을 살고 있는 이유는 어린 시절 자기 중심적인 시각을 건강하게 성장시키지 못한 데 있다. 어린 시절 학대를 받은 사람은 그에 대한 기억과 생각으로 고통을 받는다. 그를 괴롭히는 학대의 환경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데도 그에 대한 생각들로 아침부터 밤까지 내내 고통을 당한다.

트라우마 희생자들은 자기중심적인 세계관을 갖고 있다. 그들은 왜곡된 시각을 통해 다른 사람이나 사건을 바라본다. 불신으로 가득한 자신의 세계에 너무 익숙해져서 여전히 믿을 수 없게 된 자신과 세상을 바라본다. 그 결과 그들의 눈에 비치는 세상은 늘 적대적이고 위험하고 불안하다.

(자신의 욕구에 대해 미숙한 사람, 자기 감정과 욕구를 알아차리지 못해서가 아니라 자기중ㅅ임적 시각에서 자기를 보고 있다. 자신이 아들이 아닌 딸이라서 엄마의 인생을 힘들게 만들었고 엄마와 고통이 모두 자기때문이라며 스스로 수치스러워했던 바로 그 시각으로 자신과 타인을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

 

상대도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라는 믿음은 수많은 실망과 갈등을 낳는다. 여기에 덧붙여 나를 정말 사랑한다면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가 행동할 것이라는 거울생각의 함정은 남녀 관계를 전혀 생각하지 못한 위험으로 빠뜨릴 수 있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자기의 생각을 투사한다

우리는 상대방이 자신을 사랑한다면 어떤 특정한 방식으로 행동할 것이라고 가정을 갖고 있다. 그리고 그 어떤 특정한 행동은 자기 마음속으로 정해놓은 일정한 행동으로 상대방도 자신이 생각하는 방식 그대로 행동하고 반응할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이런 생각은 안타깝게도 안제나 빗나가고 실망감을 안겨주게 된다. 남녀의 근본적인 갈등은 바로 여기서 발생한다. 두 남녀는 상대방이 어떻게 생각하고 기대하는지 전혀 모른 채 자기들만의 방식으로 상대가 행동해주기를 바라면서 더욱 갈등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다.

 

자존감이란 자기 자신을 어떻게 보는가와 가족들이 나를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의해 결정된다. 낮은 자존감을 가진 가족안에서 살아가야 한다면 가족구성원들이 나를 바라보는 시각을 변화시키기는 사실상 어렵다. 그러나 내가 나를 바라보는 시각은 변화가 가능하다.

 

가족향상성

가족 간의 느낌 안정감, 생산성, 친밀감과 관계의식, 통합된 구조의식, 책임감, 도전과 자극의 욕구, 기쁨과 긍정의 욕구 등 모든 심리적 욕구가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난다. 가족은 항상성의 법칙에 따라 가족 내 문제를 계속 유지한다. 한 가족은 언제나 일정한 긴장과 갈등상태를 유지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이 가족항상성이다. 가족항상성은 나아가 가족의 문제와 증상이 어떻게 계속 유지되는지 설명한다. 즉 패턴화된 가족 증상을 잘 설명해준다.

 

가족의 균형이 깨졌다는 건 지금까지 지속된 방식으로는 더 이상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족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새로운 항상성을 만들어야 한다. 만약 가족 안에서 누군가의 변화가 받아들여지면 이것은 당사자의 변화에서 가족 전체의 변화로 이어지게 된다.

가족안에서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개방성과 폐쇄성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가족사이의 경계와 접근성

가족안에서 관계는 끊임없이 변화지만 기본적인 관계의 틀과 질서는 있어야 한다.

 

가족 안에서 일정한 위계질서가 존재한다. 가족이 건강하기 위해서는 가족 구성원의 서열, 즉 가족내 자기 자리가 분명해야 한다. 만일 가족 구성원 중에 자기 서열이 무시되고 불분명한 위치를 점하는 사람이 있을 때 가족 안에는 반드시 갈등과 문제가 생긴다.

가족 갈등과 문제는 가족 안에 존재해아 하는 사랑의 질서가 무너졌을 때 발생한다.“

사랑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 먼저 경계가 필요하다.

자기만의 공간, 자기만의 비밀 자기만의 세계가 어느 정도 허용되면 아이는 부모에게 존중을 받는다고 느낀다. 부모 자녀 관계는 사랑만으로는 안된다. 균형을 잡아주는 존중이 필요하다.

경계가 존재한다면 이번에는 접근성이 필요하다.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서로 다가갈 수 있으며 정서적 교류를 유지 할 수 있어야 한다.

 

공감은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이해하고 공유하는 능력이다. 공감은 보통 다음과 같이 형성된다. 대화를 할 때 상대방에게 감정이입을 하면 상대방은 자신이 이해받는다고 느낀다. 그러면 두 사람 간에 신뢰가 쌓인다. 타인의 감정을 정확히 파악하고 그에 대해 공감할 수 있는 능력으로 상대방이 표현하는 것에 주파수를 맞출 수 있다. 그 순간 별개였던 두 사람은 감정적으로 연결이 된다.

우리가 나와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고 느끼고 판단하는 다른 모든 사람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것은 공감능력 덕분이다. 비록 상대와 똑같은 감정을 느끼지 않지만 그의 기분이 어떤지 입장이 어떤지 어떻게 생각하는지 헤아릴 수 있고 이것이 서로 간에 소통을 가능하게 만든다.

 

가족의 진짜 문제는 트라우마를 일으킨 그 사건이 아니다. 자신의 트라우마에 대해 어떤 이해도 공감도 받지 못했던 데 대한 절망과 슬픔이라는 사실이다.

일어난 일이 상처를 주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의 반응, 말이 상처가 된다.

 

정면 공격이 아닌 측면 공격

부정적인 문제를 해결하려고 애쓰는 대신 긍정적인 생각, 긍정적인 행동을 촉진하여 부정적인 요소나 문제를 중화시킬수 있다.

이때 필요한 최고의 행동은 감사다. ( 감사 일기 쓰기)

 

이야기 치료는 문제가 가족들이 공유하는 이야기 속에서 존재하고 유지되기 때문에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고 구성할 것을 요구한다. 그리고 가족 문제를 하나의 이야기로 객관화시켜서 가족에게 고통을 주는 것이 사람이 아닌 문제 자체라는 것을 알게 해 준다. 사람들이 겪는 대부분의 문제는 관계의 맥락 속에서 발생한다. 문제는 관계와 소통의 과정 중에서 발생한다.

가족에서 문제를 떼어내면 그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을 수 있다.

문제에 이름 붙이기

지금껏 말하지 못했던 것을 이야기와 생각을 통해 정리하고 구분하는 행위는 감정적인 부담을 크게 덜어준다. 자기가 겪었던 트라우마를 말로 표현할 수 있다면 그 상처는 이제 덜 아프고 통제할 수 있는 상처로 변할 것이다.

 

뭐라고 할 수는 없으나

남자들이 쓴 심리서적에는 특히 가족상담 심리서적에서는 고개숙인 남자에 대한 애틋함이 늘 배어있다. 가장의 고단함을 이야기 한다.

돈벌이에 급급해서 그게 가장의 역할 전부라고 생각해서 가족을 등한시 했던 가장들이 느끼는 외로움과 소외감을 이야기 하며 그렇게 살지 말라고 가족을 돌보고 함께 눈맞추고 살아야 한다고 외치고 있지만 결론은 그들이 외롭고 측은한 존재라는 걸 자꾸 들먹인다.

그래서 어쩌라는 걸까

가장이 집 밖에서 집안을 위해 애쓰고 있는 동안 다른 가족들이 희희락낙하며 편하게 지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보이지 않은 노동, 댓가가 없는 노동인 가사일을 하는 아내가 있고 (어쩌면 함께 경제활동을 했을 수도 있다.) 부모와 감정을 나누고 위로받고 싶었지만 부모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참고 견딘 자녀들도 있다.

가족은 모두가 함께 견디는 존재들이다.

내가 너무 힘겹게 가족을 위해 희생하고 있다면 내 가족 역시 그렇다.

가족은 집단이고 서로 정서공동체이다.

모빌에 비유되는 가족인 만큼 누군가 애쓰고 견디는 그 힘에 다른 가족에게 그대로 전달이 된다. 그 견딤에 감사하며 함께 견디기도 하지만 그 견딤이 너무 힘들고 부담스러워 참으면서 견디는 구성원도 있다

가정폭력을 알고 그래서 해체되어 마땅하다 싶은 가족을 그래도 끌고 가려는 건 폭력 피해자의 몫이었다. 왜 그래야 하나 의문이 들고 이해할 수 없지만 어쨌든 가족을 해체할 수 없다는 절박함은 가족 누구에게나 있다.

죄책감을 갖거나 나중에 어떤 모멸감이 올지 몰라 두려워할 수도 있고

자녀에게 망가진 가족을 안겨줄 수가 없기도 하고

경제적인 문제나 주변의 시선때문일 수 있겠으나 가족구성원 누구든 견디고 버티고 있다.

 

애착 문제가 나오면 늘 엄마는 죄인이 된다.

자식을 잘못 키워서 내가 무언가를 잘못해서... 엄마 탓이 아니라고 하지만 주 양육자는 여전히 엄마라고 생각한다. 엄마와의 애착이 잘못되었다.

엄마가 사회생활을 해서 엄마가 우울해서 엄마가 잘 몰라서

그래서 아이가 망가지고 문제가 생기면 계속해서 엄마의 양육태도를 점검하고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지만 그 교육과 점검에 아빠가 참여하는 경우는 참 드물다.

그냥 옆에 있는 사람이다.

엄마와 마주해서 질책하는 사람이거나 상관없이 옆에 서 있는 사람이다.

어쩌면 세상 대부분의 심리학자들이 남자여서 당연히 남녀구분을 하고 남녀 역할이 다르다고 믿고 아이 양육과 교육이 엄마의 몫이라고 믿는 그들의 고정관념에서 나온 이론이 아닐까 의심스럽다.

한번도 아이를 키워보지 않았으면서 젖은 똥귀저기를 갈고 밤새 아이를 재우느라 눈이 벌개진 경험도 없이 아이가 토하고 아플 때 피가 마르는 경험도 없이 아이의 웃고 울고 싸우고 후회하고 죄책감을 느끼는 과정도 없이 보여지는대로 이론을 만든 건 아니었을까

 

가족이 해체되거나 망가지면 가장 피해를 받는 건 어쩔 수 없이 자녀들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참고 견디는 건 고개 숙이 남자들 만이 아니다.

남자가 고개를 숙일 수도 있다. 힘들면 누구나 어깨가 처지고 고개가 내려간다.

위로는 누구나 필요하다.

가장이 고개를 숙이는데 아무렇지 않은 가족이 있을까

반대로 아내가 , 엄마가 고개가 쳐지고 수치심 또는 죄책감을 느끼는데 아무렇지 않은 가족이 있어야 할까? 엄마에게 수치심 또는 죄책감은 디폴트 값으로 따라다니면서 아빠의 죄책감은 호들갑스럽게 떨쳐야 할 이물질처럼 군다.

 

가족은 정말 중요하다.

그래서 가족이 해체 되어도 괜찮다고 말해야 한다.

가족이 중요하니까. 가족 구성원 개개인이 정말 중요하니까 계속되는 고통이나 상처를 주는 가족은 잘라내고 새롭게 대안적 가족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가족은 하나가 아니다.

한번 만들어지면 영원불변한 것이어서도 안된다.

가족도 유기체처럼 변화하고 생성했다가 사라지는 것이라고 보면 안될까

세상에는 영원 불변하다고 믿는 것들이 상처를 주고 아프게 할 때가 많다.

가족 역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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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지키는 여자
샐리 페이지 지음, 노진선 옮김 / 다산책방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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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자신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다만 자신이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지 모르는 사람이 있고 자신의 이야기를 잊고 싶어하는 사람도 있다.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지만 들려줄 사람이 없어 혼자만 간직하고 있다가 터질 것 같이 긴박한 사람도 있다.

당신은 어떤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가?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줄 준비가 되어 있는가

나의 이야기를 시작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당신에게 그 이야기가 시시할 수 있고 벅차서 감당하기 어려울 수도 있고 그 사이 어딘가 머물러 있을 수도 있다. 어떤 이야기든 그 이야기를 가진 사람에게는 가장 소중한 부분이다.

때때로 사람들은 자신의 이야기 가치를 모를 때가 있다.

그런 경험이 있었어. 그런 일이 있었지 하고 잊고 지내고 있다가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문득 떠오를 때가 있다. 맞아 나도 그런 순간이 있었어

 

지난 토요일 점쟁이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래 내가 아빠에게 많은 것들을 받았구나 라는 사실을 새삼 기억해냈다. 참 많이 미워하고 멀리했던 사람이었다. 절대 한자리에 오래 있기 힘든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그에게 우선순위에서 밀렸듯이 나 역시 그를 내 우선순위에서 밀어내고 있었다.

그러다 그가 아팠고 어쩌면 이 순간들이 마지막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한 적이 순간 있었다.

순간이라고 표현하는 건 나는 그 생각을 오래하지 않았다.

미운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이렇게 관계가 끝날거라고 믿고 싶지 않았다.

나는 비극이 싫었고 슬픔이 싫었고 불편함이 싫었다.

그런 일들은 내 인생에 일어나지 않기를 바랬고 누군가가 내 앞길에 놓인 여러 불편한 것들을 치워주길 기대하고 또 기대했다. 무슨 근자감이었는지 나는 내가 평탄할거라고 믿고 있었고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아프고 입원했고 수술을 하고 퇴원을 하고 항암을 하는 동안에도 그가 죽을 거라는 생각은 전혀하지 않았다. 내 삶에는 비극은 없다고 믿었다. 아니 비극이 있어서는 안된다고 믿고 있었다.

그는 나와 친하지 않았지만 오랫동안 내 삶에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장애물들을 치워주고 있었다.

그런 행동은 그의 인생관에 전혀 맞지 않았음에도 어쩔 수 없이 부모라는 입장에서 혹은 아내의 간절한 바람으로 그 짓을 계속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몰랐다.

아니 나는 모르지 않았다. 알았지만 그냥 당연하게 생각하고 받아들였다.

그리고 점쟁이는 나의 그런 운이 이제 다 했고 이제는 내가 가진 운명으로 살아야 하는 시기가 왔다고 말을 했다. 그래서 내가 많이 외로울 것이고 힘들 것이고 계속 베풀기만 해야한다고

내가 베푼다는 건 그만큼 많이 받았다는 의미일 것이다.

받은 것이 없는 사람은 줄 것도 없다.

내가 많이 주어야 하는 운명이라면 그만큼 많이 받아서 채운 것이라고 생각하기로 하니 마음이 그렇게 슬프지는 않았다.

다만 내가 그렇게 아낌없이 주었던 사람이 이제 없구나 라는 사실을 그가 돌아가시고 10년이 훨씬 지난 지금에서야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그와 내가 가진 이야기들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내가 태어났을 무렵이 마침 퇴근 이후여서 삼남매중에 유일하게 부친이 와서 태어난 나를 보았고 안았다는 엄마의 이야기가 있다. (내가 기억할 턱이 없다)

이촌동 살 때 밤에 몹시 아팠을 때 같은 아파트에 사는 의사에게 가기 위해 그의 등에 업힌 기억이 있다. 그는 절대 자식이나 손자들을 안거나 다정하게 대하는 사람이 아니었는데 그날을 어쩔 수 없이 당신이 업지 않으면 안될 상황이었을 것이다. 그의 성정에 늦은 시간 남에게 폐를 끼치는 것이 죽기보다 싫었을 수도 있었을 텐데 아내의 성화에 혹은 아픈 딸을 위해서 딸을 업고 남의 집에 민폐를 끼치러 가는 그 길이 얼마나 아득하고 부대꼈을까

언니가 친구들이랑 놀러가서 삐진 나를 데리고 미술관에 함께 갔던 기억도 있다. 언니는 어쩌면 놀러 간게 아니라 학교 숙제로 미술관에 갔을 지도 모르겠다. 그 생각은 나중에 들었다. 아무튼 별 일도 아닌 일로 삐진 나를 엉겁결에 떠맡은 그와의 외출이 내키지 않은 내가 함께 미술관에 갔다.

어쩌면 엄마는 그렇게 둘을 짝지워 내 보내고 편안한 저녁시간을 가질 속셈이 있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참 많이 어색했다. 그와 나 단 둘이 뭔가를 하는 것은 처음이었을 것이다.

극사실화에 놀라는 나에게 좋은 그림이란 사실과 똑같은 것에 있지 않다는 그의 설명은 아직도 기억이 난다. 나 그 설명을 진지하게 듣지 않았고 또 잘난척 하네 아는 척 하는 하는 마음으로 들었던 그 마음도 기억한다. 그리고 서점에서 책을 사주었고 (그 책 제목은 80일간의 세계일주였다.) 그리고 집에서 저녁을 먹자고 하고 돌아왔다. 도저히 둘이서 함께 무얼 먹는게 편하지 않을 것 같다는 무언의 공감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가끔 부산에 가서 둘이서 영화를 보기도 했지만 그때도 대화는 별로 없었다.

수술 이후 서울 북촌길을 걸으면서 그가 그 근처에서 입주 가정교사를 했던 일들을 들었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을 했었다. 그때 주인집에서 함께 미국으로 가자고 했을 때 따라갔다면 그의 삶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주인집에서 무슨 생각으로 서울대에 다니던 입주가정교사를 데리고 미국으로 함께 가자고 했는지 알 수 없지만 그때 가족을 두고 따라 나섰더라면 어땠을까.

시골에 있는 가족을 두고 나만 생각하고 그냥 훌쩍 떠났다면 그는 자유롭고 좀 더 홀가분하지 않았을까

외롭고 내성적이고 공부를 좋아하고 책을 좋아하던 소년이 그려졌다. 외국에 대한 호기심이 있고 새로운 세상에 대한 동경이 없지 않았을텐데.. 그때 그냥 그렇게 충동적인 결정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어쩌면 고리타분한 그의 성정에 외국 생활이 맞지 않고 뻔뻔하지도 못해서 외롭고 고독하고 힘든 시간이었을 수도 있다.

엄마가 늘 하는 말처럼 공부를 잘해서 마침 사법시험이 되어서 남들이 우러러 보는 직업을 가져서 다행이지 그렇지 않고 그냥 직장생활을 했다면 참 많이 힘들었을 성격이었다고

혼자 잘해해는 일들 누군가와 함께 하지 않아도 되는 일, 그리고 적당히 존경받고 거리감을 둬도 되는 일 그 일이 정말 그에게는 천성이었을까

혼자 공부하고 혼자 즐거워하는 모습들도 기억한다.

그렇게 외롭고 고독하고 내성적인 그를 생각한다.

그리고 그가 나에게 주었던 여러 가지들 기억들 돈, 시간, 추억, 여러 가지 감정들

정말 좋았어 아직도 그리워 라고 말을 할 수는 없다.

일상에서 잊고 살았고 내 삶이 우선이었으니까

그러나 점차 그도 참 많이 노력하고 애썼구나 라는 건 알 수 있다.

그렇게 자기 가족을 챙기고 다시 처자식을 챙기는 일

그의 어깨에 오종종 올라있는 열명이 넘는 가족들이 얼마나 무겁고 힘들었을까

그가 도망가지 않아서. 묵묵히 견뎌주어서 그만큼 나머지 가족들이 살아왔고 지금도 살고 있다.

그 말이었구나

그냥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일들이 지금 그의 나이를 지나가면서 무조건 당연한 일은 없다는 걸 세삼 깨닫는다.

 

 

 

처음 이 책은 지루했다.

청소도우미가 남의 이야기를 듣고 남의 이야기를 모으고 있다는 것이 마뜩치 않았다. 그냥 반납할까 고민도 했다. 왜 이 이야기가 페이지터너라고 불릴만큼 재미있다고 한 걸까? 외국과 우리 정서가 다른 탓인가 의심스러웠다.

 

그러나 하나씩 에피소드를 읽으면서 점차 나도 빠져든다.

처음 내가 매력을 느낀 건 캐리루이즈의 이야기였다.

 

지금보다 훨씬 젊은 시절에 런던 극장가를 걷던 캐리루이즈는 야구방망이를 든 갱단에게 공격받는 한 남자를 보게 되었다. 눈 앞에 펼쳐진 그 끔찍한 광경을 제외하면 거리에는 인적이 없었다. 캐리루이즈는 가방을 뒤져 제일 먼저 손에 잡히는 물건을 꺼냈는데 알고 보니 하비 니콜스 백화점 회원카드였다. 그녀는 그 얇은 플라스틱 카드를 높이 쳐든 채 경찰이다라고 외치며 그들에게 달려들었다. 갱단은 도망쳤지만 그 전에 야구방망이로 그녀의 옆통수를 후려쳤다. 그 충격으로 캐리루이즈는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정신을 차려보니 눈앞에 젊은 의사의 얼굴이 있었다. 그는 극장에서 쏟아져 나온 관걕 중 하나였고 이제 관객드은 쓰러진 두 사람 주위를 에워ᄊᆞ고 있었다.

자기야 난 그때 내가 죽어서 천국에 간 줄 알았어. 그이는 정말로 세상에서 제일 잘 생긴 남자였거든 그런 남자가 내 손을 잡으면서 괜찮을 거라고 날 두고 가지 않겠다고 말하는 거야” “ 그이 말이 맞았어 나는 당신을 놓아주지 않을 거예요 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그이의 손을 꼭 잡았더니 50년이 지난 후에도 난 그 손을 잡고 있었어. 마지막 순간까지 그이의 손을 잡고 있었지 암튼

누군가 자신의 손을 잡아준 것이 언제인지 제니스는 기억나지 않는다. (여주인공을 찾아서)

 

(누구나 처음 들었을 때보다 더 나은 이야기를 남겨야 한다.)

베키의 이야기는 실화인가요?“ 그녀는 이 문제를 오랫동안 심사숙고했고 이야기는 현실에 기반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래야만 우리 삶에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날 수 있고 보통의 평범한 사람에게도 비범한 힘의 선의가 있으며 그로 인해 늘 희망이 있다고 믿게 되기 때문이다.

 

(모든 이야기는 시작이 있다.)

집으로 가는 길에 재니스는 이번만큼은 이야기를 수집할 여유가 없다. 머릿속이 베키 생각으로 가득 찼기 때문이다. 베키의 동생은 어떻게 됐을까 아마 좋은 결말은 아닐 테지만 그래도 확실하게 알고 싶다. 부모님은 배키를 탓했을까? 그때 베키는 몇 살이었을까? 하지만 재니스의 경험상 어린아이일 때는 그 점이 중요하지 않다. 자신이 결코 어리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그냥 나일 뿐이고 죄책감과 책임도 기꺼이 떠안는다. 그 짐이 자신에게 너무 버거우며 사실은 어른들이 짊어져야 할 짐이라는 사실을 모른 채

 

(모든 이야기는 죽음으로 끝난다.)

그는 놀라면서도 감동했으며 상대의 이야기를 들어봐야 그 사람을 진정으로 알게 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 그렇다면 b부인의 이야기는 무엇일까? 스파이 이야기?

 

(이야기는 다른 사람에게 들려주지 않으면 소멸한다.)

착한 사람에게 단점이 있듯이 악당에게도 장점이 있는 거야. 재니스 순진하게 굴지 마. 나쁜사람이든 악당이든 자네가 뭐라고 부르든 간에 그들도 나쁜 점만 있는 건 아니야. 자네가 하고 싶은 말이 뭔지 말해봐

부인의 말을 듣고 개뻐해야 정상이죠. 어머나 나쁜 사람에게도 좋은 점이 있구나. 하고요. 하지만 왠지 그런 말을 듣고 싶지 않아요. 책 속 이야기일 때는 그냥 받아들일 수 있어요. 당차고 못된 성격에 그걸 보완하는 장점은 거의 없는 베키 샤프도 좋아할 수 있죠. 하지만 실화일 때는 누군가가 하지만 저들도 나쁜 점만 있는 건 아니야 라고 말하는 걸 견딜 수 없어요. 왜냐하면 현실에선ㄴ 네 바로 그거예요 제 삶에서 저는 하루도 빠짐없이 나쁜 사람과 힘든 일을 견디며 살아야 하니까요. 전 오랫동안 저 자신에게 이렇게 말해 왔어요. 사람은 단순히 선악으로 나눌 수 없어. 그이는 망상에 빠져 있고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이기적이고 사람들을 실망시키고 형편없는 아빠고 거짓말하고 과장하고 내가 마룻바닥을 닦아서 번 돈을 물 쓰듯이 쓰면서 내가 하는 일을 무시하지 그러면서 또 하지만 나쁜 점만 있는 건 아니야 라고 말하면서 그이의 장점을 찾죠. 계속 새 직장을 구하고 백수 사태로 오래 있지 않고 날 때리지 않고 다른 여자를 쪼아다니지 않고 가족끼리 외출도 하고 꽤 유쾌한 성격이기도 하고 펍에서 만나는 그이의 친구들은 그이를 좋아하는 것도 같고 내가 부탁하면 쓰레기도 버려주잖아 근데 그거 아세요? 그걸로 충분하지 않아요. 충분하기는 개뿔 그러니까 균형있게 봐야 해 그리고 이봐 네가 쓰레기라고 생각한 사람도 사실은 장점이 있어 라는 부인의 말을 난 견딜 수 없어요. 왜냐하면 난 그렇게 이성적인 사람이 되려고 이미 오랫동안 노력해 왔으니까요. 지금 부인이 내게 요구하는 태도로 이미 살아왔다구요. 아 이건 흑백논리가 아니야. 재니스 하지만 빌어먹을 균형 잡힌 시각을 가지려고 엿같은 상황에서도 좋은 점을 보려고 모든 에너지를 다 쓰고 나면 나를 알지도 못하는 할머니가 균형 잡힌 시각을 가지라고 훈계는 말이 듣기 싫을 때가 있죠. 가끔은 지붕에 서서 이 모든 게 엿같고 더 이상 못 해 먹겠다고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외치고 싶어요.“

 

(마음이 머무는 곳이 곧 집이다.)

차에서 내리며 재닛는 자신의 삶을 가장 크게 지배한 감정이 죄책감임을 꺠닫는다.

 

(아무에게도 들려주지 않은 이야기)

 

세상에 새로운 이야기는 없어요.

하지만 이건 자네 이야기야. 재니스 자네는 이 이야기를 해야만 해.

그런가요? 말하면 뭐가 달라질까요? 제가 결말을 바꿀 수도 없는데

바로 그 대목에서 자네가 틀렸다는 거야. 때떄로 우리에게 필요한 건 약간의 희망뿐이야.

 

(재니스는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이야기. 어떠면 여동생 조이와 함께 겪었던 그 시간들을 조이와도 나누지 않았다. 본인은 조이보다 큰 아이라고 믿었고 조이를 지켜야 하는 존재라고 믿으면 자신도 여전히 어린 아이이고 보호가 필요한 약한 존재라는 생각을 할 수가 없다. 내가 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걸 왜 내 엄마는 모르고 있고 조이는 알면서 혹은 알지 못한 채 그들에게 이쁨을 받으려고 애를 쓰는지 그리고 그 광경을 슬프게 지켜봐야 하고 불안하게 지켜내야 하는 건지 그리고 그 어린 재니스가 어떻게 어린 조이를 지켜내고 남자를 없애버렸는지는 천천히 다른 이야기처럼 시작한다.

이야기는 그렇게 재니스의 입을 통해 다시 구성되고 다시 의미를 가진다. 내가 누군가를 죽인 살인자이다 그래서 지금 현재 삶에서 속죄하면서 살아야 한다. 누구든 나를 좋아할 리 없다. 마이크의 행동들을 나는 견디고 받아들여야 한다. 아들 사이먼도 나를 좋아할 수 없다. 내가 그의 동의 없이 멀리 있는 기숙학교로 그를 보내버렸기 때문에 그는 나를 미워한다. 동생은 어쩌면 모든 것을 알고 있으면서 그래서 나를 무서워하고 있을지 모른다. 그런 모든 혼자만의 생각들이 이야기를 통해 내 속에서 나오면서 이야기는 다른 결말을 가진다. b부인이 원한 건 그런 거였다. 이야기는 입을 통해 나오는 순간, 청자에게 닿는 순간 그 이야기는 화자의 것만이 아니다. 이야기는 살이 붙고 의미가 첨가되고 바뀌어 가면서 다른 이야기로 다시 전달된다. 그리고 그렇게 재 구성한 이야기는 다른 결말을 가지고 나는 그 이야기에서 비로소 한 발 떨어져서 바라볼 수 있다. 내 이야기지만 더 이상 나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개인적인 것은 사회적인 것이다. 모든 것들이 그러하다. )

 

(슬픔은 죄책감처럼 무겁지 않다.)

저는 대체로 항상 죄책감을 느끼고 거의 평생을 그렇게 살아온 것 같아요. 동생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했다는 데 죄책감을 느껴요. 어른이 되고 보니 당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었다는 걸 알았지만 그래도 조이가 마땅히 누려야 할 행복한 어린 시절을 누리지 못했다는데 여전히 죄책감을 느껴요. 아저씨가 죽은 뒤에 조이의 삶이 더 힘들어졌다는 데도 죄책감을 느끼고요. 그게 제 탓인 것 같아요.

조이는 엄마의 사랑을 원하고 필요로 하는 어린 소녀였는데

그건 자네도 마찬가지야 자넨 겨우 열세 살이었잖아

전 더 나은 삶을 살 자격이 없어요. 하지만 조이는 다르죠 조이는 아무 짓도 하지 않았으니까요

어쩌면 죄책감은 병과 같은지 몰라요 자기도 모르게 걸리는 거죠.

죄책감은 허락을 구하지 않고 들어오는 것같아요. 문을 두드리고 밖에서 얌전하게 기다리지 않는다고요.

번식력이 아주 강한 잡초처럼

 

(종이에 적힌 글)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것은 살면서 좋았던 일을 공유할 뿐 아니라 화자의 나쁜 기억을 내보내는 기능 바람에 먼지가 흩날리듯 나쁜 기억을 흩어지게 하는 기능도 있는 걸까

 

지금 그녀는 놀랍도록 자신을 잘 통제하고 있다. 차분한 절망감에서 비롯된 행동이다.

 

(모두가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어때요? 앞으로도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수집할 건가요?

멈출 수 없을 것 같아요. 멈추고 싶지도 않구요. 사람들의 이야기속에서 우리가 될 수 있는 최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맞아요 어쩌면 내게도 서너개의 이야기가 생길 거예요. 이제라도 따라잡아야 겠어요.

 

나는 몇 개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을까

그의 나의 이야기는 몇 개가 되려나

그는 나와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었을까

타인의 이야기를 듣고 수집하고 지키는 이유는 그 이야기가 나와 전혀 관계가 없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늘 연결된다. 타인의 경험이 나의 경험일 수 있고 내 문제에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리고 그 이야기가 내게 묘한 희망이나 안정감을 주기도 한다.

누군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

그리고 그 귀를 내게도 기울인다. 내게 있는 이야기는 몇 개 인가

나는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을까

웃으며 시간을 보내기 위해 하는 이야기도 필요하다. 조금 더 진지하게 이야기하다보면 이 상대가 나를 떠날 수도 있다는 부담으로 조금 두려워하면 꺼내야 하는 이야기도 있다. 내가 누군가를 미워했고 저주했고 그리고 무언가를 저질러버렸다는 이야기들

내가 남편을 미워하고 이혼을 생각하기도 하고 지금 몹시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해서 가족들이 조금은 성가시기도 하다는 이기적인 이야기들

그 모든 이야기들이 있다.

사람은 어쩌면 여러 가지 이야기들로 구성된 존재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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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역하는 말들 - 황석희 에세이
황석희 지음 / 북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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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역하는 말들 (황석희)

 

화낼 준비가 되어 있다.

화낼 준비를 하는 것 그것은 어쩌면 나를 보호하기 위한 무의식적 방어기제일지도 모른다.

남들보다 먼저 화를 내야 상처받지 않는다는 착각, 먼저 공격해야 방어에 유리하다는 계산

이런 사고방식이 우리도 모르는 새 일상에 깊이 스며들어 있는 것만 같다.

 

2. I’m not defined by you (나는 당신에게 정의되지 않는다. 네가 뭔데 날 정의해)

어떤 사람이 나를 고구마라고 부른다고 해서 내가 고구마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의 말엔 날 정의할 권리가 없다. 그러니 남들 말에 딱히 휘둘릴 일도 아니다.

 

3. 서른의 불안감을 어떻게 이겨 냈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지만 사실 서른의 불안감을 이겨 낸 게 아니라 그저 떠안고 살았던 것 같다. 불안이 내 속을 아무리 좀먹어도 피가 철철 나도 그냥 그러려니 하는 선천성 무통증 환자처럼, 그런데 지금 생각하면 진짜 안 아팠던 걸까. 모르겠다. 어쩌면 너무 아파서 아픈 줄도 몰랐는지도.

 

4. 어떤 논리가 있든 어떤 사정이 있든 내 마음에 안들면 틀렸다고 주장하는 태도

이런 상황이 연출되면 대개는 목소리가 큰 사람이 이긴다. 목소리 큰 사람과 싸우는 일은 피곤한 일이다.

 

5. 자식들은, 특히나 궁하게 자란 자식들은 그저 부모의 인생이 불행했을 거라고 넘겨짚는다.

하지만 부모의 인생은 부모의 인생대로 희로애락이 있었을 것이다.

어떻게 나는 그 시절을 한번 물어볼 생각도 않고 당신의 불행을 멋대로 단정했을까

 

6. 생각해 보면 이건 정말 이상한 일이다. 사람은 보통 셋이 이야기할 때 둘이서 다른 한 명을 철저히 무시하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런데 우린 너무나 당연하게 아이 앞에서 이렇게 대화해 왔다. 아이가 대화를 알아들을 리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번역을 한다는 건 소통이다.

당신의 의미를 알고 싶다는 마음이다.

서로 같은 언어를 쓰고 있어도 다른 의미가 있을 수 있다.

상대방의 언어가 나와 다를 때가 있다. 같은 모국어가 다른 의미로 전달되는 경우

그래서 상대방의 뜻이 오역되고 내 뜻이 오역되기도 한다.

타인은 늘 낯선 존재다

내가 가장 잘 알아야 하는 건 나 자신일뿐

타인은 어제 알던 사람도 오늘은 다른 사람이다.

내가 미루어 짐작했던 일들. 내가 배려한다고 믿으며 삼켰던 말들 묻지 않은 말들이 때로는 서로를 오역하는 일이 된다.

상대가 먹을 수도 있다고 믿고 먹지 않은 과일이 냉장고에서 썩어갈 때

상대는 내가 사놓은게 마음에 들지 않아 먹지 않는구나 라고 생각하며 원망을 삼킨다.

혼자 있고 싶구나 여겨서 조용히 문을 닫고 나올 때

나와 함께 있고 싶지 않나 하는 마음에 서운함으로 빈 마음을 채운다.

늘 고생해서 힘든 시간만 보냈을거야 라며 가엾은 마음을 품을 때

사실 고생이 많았지만 사이사이 행복하고 예쁜 기억들은 지워져 버린다.

상대를 단언하지 말라

그는 내가 아니다.

사람이란 납작한 존재가 아니다. 너무 다면적이어서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은 얼굴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고 스스로도 모르는 얼굴을 하고 있을 수도 있다.

나 역시 그렇다.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될 수 없고 누군가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미움을 받겠지만 그럼에도 누군가에게는 가장 필요한 존재일 수 있다.

나를 잘 아는 건 결국 상대에게 가까워지는 길이다.

번역을 한다는 건

다른 언어를 소통하게 만드는 것

사람사이에도 번역이 필요하다.

사람사이에도 노력은 늘 필요하다.

 

나는 노력이라는 노래를 좋아하지 않는 이유가

사랑도 노력이 필요하다.

노력을 한다는게 사랑이 아닌게 아니라 노력조차 하지 않는 것이 사랑이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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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미 돌아오다
사쿠라다 도모야 지음, 구수영 옮김 / 내친구의서재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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슴슴하고 오래씹어야 느껴지는 맛. 추리물로는 느슨하다 싶지만 곤충에 대한 정교한 이야기가 흥미롭다.
추리보다 사람사이의 관계, 가치관에 대해 더 생각해보게 된다. 죽음은 언제나 슬픈 일이지만 유난히 슬프고 마음이 아린 건 곤충을 통해 사람을 이야기하는 작가의 능력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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