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야 치유 식당 - 당신, 문제는 너무 열심히 산다는 것이다 심야 치유 식당 1
하지현 지음 / 푸른숲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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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말 새로운 학교에 전학와서 처음으로 상담을 갔다.

지난 학교는 학년이 바뀌자 마자 상담을 해서 선생님에게 전해듣는 학교에서의 내 아이에 관한 정보를 '얻는' 것이 아니라  내아이는 이러이러한 성향이 있다고 정보를 '드리는 '자리였다.

매번 아이을 상담하고 느낀건 늘 내가 우리아이가 어떠어떠하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으면 선생님들은 내 고백을 바탕으로 아이를  바라보고 이해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만약 아이가 활발하고 적극적이라고 하면 그런 아이려니 하는 시선에서 바라보면서 그 틀에 맞추려고 하고 조금 아니다 싶으면 아 다른 면도 있구나 하고 보고 내성적이고 소심하다고 하면 또 그런가보다하고 그 틀에서 바라보는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했었다.

그래서 몇년의 상담끝에 내가 가진 결론은 기왕이면 첫인상을 좋게 심어주기 위해서라도 내 아이의 단점보다는 장점을 우선 이야기하자고 맘 먹었다.

어짜피 집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새는 것이고 1년간 생활하다보면 부지불식간에 자기 원래 모습이 보이고 틈도 보이기 마련이라 기왕이면 좋은 인상을 심어줄 수 있는 쪽으로 내가 만들어야 겠다는 조금 계산된 속도 있었다.

사실 작년 큰아이 상담을 하면서 이제 사춘기에 접어들었는지 조금 삐딱하고 어두운 면이 있어 걱정입니다 ... 했더니 학년말 전학문제로 찾아갔을때 그리고 중간 1학기 마치고 내주는 학교생활기록표에도 온통 '사춘기에 접어들어서인지 반항기가 보이고 어쩌구 저쩌구.."뭐 그런 틀에서 평가하고 바라본걸 보고 기함을 했다. 딱 내가 학기초에 말한 틀에서 조금도 벗어남 없이 그냥 그대로 아이를 보고 맞추었다는 느낌..

 

그래서 이번 새로운 학교에서는  어짜피 어떤 아이인지 정보가 없는 상황이니 두 아이를 좀 더 근사하게 만들어주자는 얄팍한 수로 상담에 임했다.

큰아이는 중학교 입학을 앞둔 마지막 학년이라 주로 학습적인 면에서 이야기를 했고 경험많은 노련하고 그리고 조금 매너리즘도 보이는 인간적인 선생님이라 그럭저럭 상담을 마쳤다.

 

그리고 둘째아이  상담을 하면서 선생님이 우선 하신 말씀이 물론 2달 가까이 생활을 했지만 아직 아이 파악이 되지 않은 상황이나 어떤 아이인지 알려달라고... 해서 미취학시절의 만행에 가까운 일들은 싹 접어두고 그냥 지난 2년간 무던하고 활발한 아이였다고.. 공부는 남들보다 뒤쳐지고 아는게 많지 않아 그게 콤플렉스이긴 하지만 그래도 알고자 하는 호기심이 있기때문에 지켜보고 있다고 둘째라 많은 기대보다는 즐겁게 학교를 다니는 것 그리고 학교가 재미있고 가고 싶은 곳이기를 바랄 뿐이라고 했다.'

선생님은 이런 저런 말 끝에 아이가 많이 소심하다고 했다. 낯선 환경이어서 그런지 발표를 많이 하지 않고  아는 거 같은데 손을 들지 않고 자기 의견을 표현하지 않는다고 했다.

1학년때는 나름'발표의 여왕"이어서취학전 6개월 반짝한 스피치 수업이 나름 효과가 있나보다 내심 생각할만큼 아이가 많이 활발하지는 않아도 한번씩 발표를 하고 자기 의견을 내곤 했는데 영 아니란다.

뭐 소심하고 내성적인 부모 밑에서 비슷한 언니를 두고 있는 아이에게 많은 기대를 한 건 아니었고 어릴 적 멋모르고 활발하다가도 나이 들고 이것저것 눈치도 보이고 내가 아는 것이 과연 정확한지 의심이 들고 완벽하지 않으면 절대 내보이지 않으려는  성격도 있어서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선생 말씀이 예전에야 그런 아이들도 모범생이고 괜찮았지만 요즘은 자기 pr시대이니만큼 스스로를 표현해주고 드러내는 것도 필요하다고 강조하셨다. 내가 가만있으면 누가 날 알아주겠느냐  자꾸 내가 나를 표현하고 드러내는 것 그런 것이 요즘은 필요하다고...

자꾸 뭔가가 이게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지만 뭐라고 할 말도 없고 집에서 어떻게 해줘야 할까요? 하고 묻는게 고작이었다.

집에서 아이 기죽이거나 무시하거나 윽박지르는 것도 아니니 소심하고 남들앞에서 긴장하는 걸 어떻게 해줘야 하나 싶으면서 그런걸 잘 하게 도와주십사 학교를 보내는 거 아닌가 하는 반발도 들고 암튼 뭐라고 말도 못하고 노력하겠습니다.. 하고 왔다.

 

집에 와서 생각하니 이렇게 말할걸 하는 게 떠올랐다. 늘 한박자 늦게 뭔가 답이 떠오르는게 늘 문제다  나란 사람은....

세상엔 자기를 드러내고 적극적인 아이도 있고 수줍고 소심해서 있는듯 없는 듯 하는 아이도 있다.사실 목소리가 크고 자기주장이 뚜렷한 사람이 리더쉽도 있고 더 눈에 띄고 좋아보이기도 하지만 수줍고 소심해서 뒷켠에 앉아 있는 아이들도 그에 못지 않은 저력이 있는 법이라고

밖으로 표현되지 않은 에너지가 안으로 쌓이고 쌓여서 내적 성숙이 이루어지고 깊이 오래 묵혀서 익혀진 생각들이 얼마나 아름답고 창의적일 수 있는지도 생각해 달라고

세상에 얼굴이 똑같은 아이가 하나도 없듯이 세상에 같은 성격의 성향의 아이만 있는 것이 아니고 다양한 사람이 있고 다양한 일을 하고 다양하게 살아간다.

적극적으로 이끄는 사람도 필요하고 뒤에서 묵묵히 수행하고 처리하는 사람도 필요하고 깊은 사색과 성찰로 누군가의 마음을 위로하고 공감해주는 사람도 필요하다고

내 아이가 비록 드러나는 리더는 아니더라도 공감하는 리더(부끄럽지만...)일 수도 있고 조금 늦게 피는 꽃이라 아직은 많이 안으로 쌓으면서  내면이 익기를 기다리는 때일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왜 조목조목 따지지 않았을까

선생님이시라면 더구나 교직 연차가 오래되고 경험이 많은 선생님이시라면  아이들 제각각 가지고 있는 장점 특성을 알아주고 기다려주고 받아주는걸 해야하지 않냐고 따질 걸 그랬다 싶었다.

그래서 선생님의 첫 인상은 참 않좋았다

그러나 겪으면서 본인은 귀찮을 수도 있는 체험 수업을 많이 해주시고  저학년에 많은 엄마숙제를 대부분 수업시간에 활동하고 체험하게 해서 부담도 줄여주고 성적보다는 아이 하나하나에 관심을 많이 기울이는 걸 보고 마음이 풀어졌다.

다만 내 아이가 소심해서 행여 불이익을 받을까 걱정한게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할 만큼 내가 마음이 풀어지고 심지어 선생님이 이해되기 시작했으니까

 

사실 아이의 상담이야기랑 이 책이랑 관계가 없는데...

심리 상담기같은 책을 읽으면서 학기초 아이 상담이 떠올랐을 뿐인데..

 

 

'정신분석적 정신치료를 하면 자칫 빠지기 쉬운 함정이 있어...........치료자가 만든 프레임에 환자를 집어넣는 거야. 애초에 이 사람은 이럴것이다 라고 가설을 만들지 그건 중요한 과정이야. 그런데 그 프레임에 환자를 가둬놓고 조지는거야., 넌 이런 사람이지 맞지? 그렇지? 인정하란 말이야.라고 . 환자는 기본적으로 치료자의 마음에 들고 싶어해 그 만큼 의지하고 신뢰하는 대상이니까. 자기는 잘 모르고 어떻게든 변화하고 싶고 달라지고 싶거든 그러니 치료자가 그렇다고 하면 그렇다고 믿고 싶어지지 심리적인 진실이 뭣이건 간에말이야. 난 그게 싫었어 프로이트가 말했어 환자의 정신 역동에 대한 설명은 치료가 끝나봐야 정확히 알 수 있다고. 치료가정에서 끝없이 가젓을 수정하는 과정을 반복해야해. 물론 처음 세운 가설의 파워는 무시할 수 없어...

 

큰아이의 선생님은 아이를 처음 가설에 넣고 그것에 너무 매달렸는지도 모르겠다  똑똑하고 실력있고 경험많은 선생님이라 더 그랬는지도 모른다. 내가 들은 것 내가 본것을 토대로 만든 가설에 아이를 놓고 이것이 맞다고 믿으며 바라보면 아이는 그렇게밖에 보이지 않는다.

내가 작은 아이에게 네가 너무 발표를 안하고 소심해서 걱정이란다. 발표 좀 많이 하자고 다그치면서 자기 주장이 있고 똑똑하고 활발한 아이라는 프레임에 아이를 넣고 다그친다면 아직 어린 아이라 어쩌면 따라줄지도 모르지만 그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윗 귀절을 환자와 의사가 아닌 교사와 아이 부모와 자녀로 바꾸어도 크게 뜻이 달라지지 않을 거다.

 

'멈춤의 필요성을 스탠딩을 통해 깨닫게 하려는 것이었다.....그런데 인생은 봉우리에 올랐다고 해서 끝이 아니다. 더 놓은 봉우리 봉우리의 연속 그것이 인생이다. 따라서 가끔은 멈춰 서서 지금 어디쯤 가고 있는지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를 살펴 볼 필요가 있다. 더 나아가 주변경관도 찬찬히 즐기면서 물 한모금 마시면서 멍때리는 시간도 필요하다. 10분 전에 제치고 올라왔던 사람이 내 앞을 지나치더라도 조바심을 내서는 안된다. 그 사람은 그 사람의 페이스가 있고 내게는 내 페이스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또 꼭 끝까지 올라가야만 등산은 아니라는 것 지겨우면 멈춰서 놀다가 내려와도 되는 것이 즐기는 등산이요 인생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적극적으로 아무것도 안하기도 중요한 쉬는 방법 중 하나라는 것을 깨닫기를 뭔가를 채워 넣기에만 익숙한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안하고 있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도리어 불안해진다. 뇌 속이 간질간질한 것이 마치 등짝에 난 뾰루지에 손이 닿지 않을 때 그 순간의 간절함과 안타까움이 수시로 찾아온다. 이 시기를 넘겨야만 한다. ...."

 

내가 아무것도 안하는 건 인정하고 이해하지만 내 눈앞에서 아이가 아무것도 안하고 빈둥거리는 건 이해되지 않고  인정할 수 없는 부조리함 덩어리인 내가 와닿는 말이다.

이 문구를 내게 적용하는 건 쉬운데 누군가에게도 적용되어야 한다는 걸 받아들이기 어려운걸 보면 나도 어쩔 수 없는 학부모이고 조바심내는 이기적인 엄마이다.

 

증상이란 것도 결국 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 결과물이자 타혐물일 수 있다는 얘기더라구요. ... 그게 힘들고 괴롭기는 해도 사실 더 큰 문제가 드러나는 것을 막아주는 셈이었더라구요. 그게 무서우니까 먹고 토하는 쪽으로 간거였으요, 그러니 그 증상을 너무 미워하지 말래요 그것도 나의 일부니까요.

 

결론은 아이의 행동 하나하나에 반응하지 말고 큰 그림을 보자는거

그리고 느긋하게 기다리자는 거..

내가 조바심낸다고 달라지는 건 하나도 없다는 거 세상이 바뀌지도 않는다는 거

하지만 할일은 지금씩 해야한다는 거

쉽고도 어려운 이야기

책을 읽는 내내 그냥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

그리고 하나 더

세상 안달복달하며 살지 않아도 된다고 별일없이 살아도 잘 사는 거라고 하지만

한번 정도  미친듯이 다그치고 몰입해서 정상을 향해보는 것도 괜찮은 경험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도 했다.. 그게 인생의 전부여서는 안되지만 어디선가 언젠가는 한번 해볼만한 일이라는거..

아직도 내가 뭔가를 이루지 못해서 갖는 아쉬움일 수도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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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의 아름다운 청춘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찾아가지만 그 시간을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 그때를  추억할거리가 달라진다.

지금 악마가 내게 다가와 다시 빛나는 청춘으로 되돌려 줄터이니 딱 한가지만 해보라고 한다면 나는.. 연애를 하고 싶다.  (왜 악마가 이런 제안을 하냐고 묻는다면 천사는 이런 유혹을 절대 하실 분이 아니시라 믿어서지요..)

인생을 돌아보며  내가 가장 잘 한것 혹은 가장 후회되는 것을 꼽으라면? 이라는 질문을 보면서 후회되는 건 정말 열손가락 발가락을 동원해도 다 못 헤아릴 만큼 많지만 내가 잘 한것은? 이  질문에는 그만 턱 하고 숨이 막힌다.

내 인상을 돌아봐서  후회되는 것들이 없진않지만 그래도 이만하면 나름 선방했다는 평가를 내리겠지만 그래도 그 중  잘 한게 무어냐는 구체적인 질문에는 늘 답이 궁하다. 그렇다면 잘 산게 아니란 뜻일까

 

다시 청춘이 되면 정말 미친듯이 공부를 하고 싶고  책을 읽고 싶고 조금은 영리하고 영악하게 돈문제에 대해서도 깐깐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만 그 보다 연애를 하고 싶다.

무어그리 박복했던지  80년도 국민학교에서 5학년부터 남녀를 갈라놓는 학교를 나와서 중간 전학으로 한학기 남자구경했다가 주욱 여중 여고 여대를 나왔다. 게다가 직장도 남자보다는 여자가 조금 더 많은 곳을 다녔다. 몇번을 바꾸어도 계속....

그러다보니 적극적인 성격도 아니고 절세 미인도 아닌 까닭에  변변한 연애를 해본 적이 없다.

지금 생각해보면 적어도 연애를 하려면 누구나 돌아볼 만큼 미인이거나 아니면 남자들에게 붙임성이 좋고 낯을 가리지 않거나  내세울것도 없으면서 아집만 가득한 헛된 자존심같은건 없어야 하는데 있어야 할 외모도 성격도 없으면서 자존심만 높아서 결국 연애를 안한것도 아닌 못하고 젊은 시절이 지나갔다. 그러다보니 한두번 해프닝같은 만남, 친구도 아니고 원수도 아닌 어정쩡한 관계의 동문들  타학교와 함께 했던 동아리 친구 선배들이 전부고 그나마 알던 남자들도 졸업하면서 거의 연락이 끊어지고 말았다.

그래도 그때는 아직 어려서 그다지 아쉬운 줄도 모르고 나 잘난 맛에 살았던거 같다.

지랄 총량의 법칙이라는 게 과연 존재하는 것처럼 사람에게는 뻘짓을 하고 온갖 해괴망측한 짓을 해야하는 양도 정해져 있다는 생각이 든다. 연애든 주사든  뭐든 젊었을때 치기어린 마음으로 해버려야 하는 걸  제때 하지 못하면  그렇게 순탄하게 지나는게 아니라 나중에 늙어서 조금은 추하게 그런 뻘짓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20대초에 하지 못한 연애가 결국은 서른을 바라보는 느즈막에 찾아와서 지금 되돌아보면 정말 얼굴 벌개지게 할 거 다하고 추태를 부렸구나 싶은  기억들도 함께 생겼다. 

밤늦게 누군가를 기다리며 초조해하고 행복해도 해봤고  아무 이유도 없이 억지부리고 땡깡부리렸던건 받아도 받아도 자꾸 기갈나던 내 속의 허전함을 나도 어찌할 수 없어서 애정을 갈구했던것같다. 인정하기는 부끄럽지만

늦은 나이에 시작된 연애에도 남들이 할건 다하고 싶어서 함께 해돋이를 보러가고 차안에서 음반하나가 몇번을 반복하도록 음악을 들으며  침묵을 함께 하기도 했다.

뭐랄까 내 곁에서 얼마이상 떨어지는 것도 용납이 되지 않았으면서 동시에 내곁에 얼마이상 다가오는 것도 허용하지 않았다. 이만큼 내 곁에 있어주기를.. 하지만 요만큼의 내 공간은 인정해주기를..  늦도둑이 무섭다고 연애에 미쳐서 할일을 내팽개치기도했고  계속 빼삐를 들여다보며 연락이 오기를 뭔가 메세지가 담겨있기를... 있지도 않을 메세지를 찾아서 공중전화에 매달리거나 혹시 그의 비밀번호릉 알게되지 않을까 음흉한 계획을 세우기도 하고

 지금 생각하면 얼굴이 확확 달아오르기도 하고 어이없는 행동도 아무렇지도 않았다. 술에 취에 첨본 운전기사에게 한탄을 쏟아내기도 했으니까 짧은 기간동안 할건 다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 늦은 연애를 후회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없는것 보다는 나았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뭐든 그 짓을 할 때 이뻐보이고 용서가 되는 시기가 있다는  교훈을 얻기도 했다.

조금 추했을지라도 그게 늦은 나이지만 내게는 처음이었으니가 다 이해가 되고 나름 용서가 되는건지도 모르겠다.

첫사랑이라는 게 그런게 아닐까

좀 유치하고 어이없고 억지부리는 것이라도 다 통하게되는것

그러려니 하고 이해되고 오히려 익숙하게 능숙하게 되는 것이 더 이상한 것

무모하고 철이없고 서툴러서 오히려 더 아름답고  상처가 많아서 기억에 오래 각인되는 것이 아닐까

 

베르테르도 로테에 대한 마음이 첫사랑이어서 그렇게 열정적이고 무모했고 급했다.

물론 제 격정과  무모함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자기 정수리에 총구를 들이대는 그의 행동을 납득할 수는 없지만 그렇게 미치도록 누군가에게 빠져서 경주마처럼 옆도 뒤도 돌아보지 못하고 상대방에서 순수하고  적극적으로 빠져드는 용기.. 그것이 첫사랑의 특원이다.

비슷한 청년이 이탈리아 베로나에도 있었다.

사랑에 빠져서 가족도 원수도 모두 잊어버리고 오로지 한 여자에게 매달리고 함께라면 죽음도 무섭지 않았다는 것...... 그것도 첫사랑이 아닐까

(첫사랑이란게 처음 하는 사랑이라는게 아니라 첨으로 눈이 멀어질만큼 집착하고 몰두하는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한때는 나도 미쳤다 싶을 만큼 빠져든 적도 있었지만 그래도 돌아서서 혼자의 시간이 되면 내가 미친게 아닌가... 아니 미쳤구나 이러지 말아야지... 그래도 품위는 지켜야하지 않나? 하는 이성적인 생각을 하기는 했었으니 나는 첫사랑이 아니었을까?

맹목적으로 눈멀고 집착하면서도 순간순간 나의 품위를 생각한다는게 조금 우습기도 하다.

 

 

요즘은 워낙 헤사하고 아름다운 청년들이 떼를 지어 몰려나오다 보니 너도나도 첫사랑의 아이콘이 되고 순수청년이 되고 말아  "순수"라는 말이 오히려 상업적으로 들리는 판이다 심지어 송중기의 늑대 소년 이후로는  반인반수의 저 철수마저 저렇게 아름답다면  굳이 인간일 필요가 있으랴 싶게 열광하고 있는 형편아닌가

내가 알고 있는 가장 순수하고 그래서 어리석고 서투른 첫사랑에 빠진 청년은 "봄날은 간다"의 상우였다.

라면먹고 가라는 말에 헤벌죽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르고 그녀의 전화 한통화에 서울에서 강릉까지를 한걸음에 달려오는 그 커다란 키마저도 너무 서투르고 어설퍼서 맘이 갔던 인물이었다.

그렇게 사랑하고 사랑해서 세상이  온통 아름답고 그녀와의 지금이 소중하고 그녀와의 미래를 꿈꾸게 되는 청년.. 사랑하므로 모든것이 해결되리라 순진하게 믿고 있던  소년같은 청년이 상우였지만  그의 그 서투르면서도 집요하고 지칠 줄 모르는 사랑은 세상을 알만큼 아는 속물같은 사람에게는 많이 두렵고 벅찬 존재가 아닐 수 없다.

만약 상대 은수도 막 20대가 된 순수하고 서툰 처녀였다면 둘은 얼마나 행복했을까

어쩌면 어린나이에 덜컥 살림을 차리고 지금껏 행복하지 않았을까

적어도 열렬했던 기억은 남아있을 테니까...

내가 이 영화를 보면서 절절히 공감하며 느낀게  역시 연애도 해야할 나이가 있구나

철없는 시절 이런 남자가 내게 있었다면  ,, 아무런 계산도 없이 그저 상대가 좋아서 정신을 못차릴 만큼 사랑하고 행복해하는 것.. 그런것도 때가 있구나..

어쪄면 여자가 남자보다 세상의 이치를 빨리 깨닫고 먼저 성숙해지는 존재라 이런 상우같은 남자는 뭘 모를때 만나는 것 그래서 그 존재만으로 충분하고 행복할  수 있는 짧은 순간을 즐겨야 한다는  조금은 서글픈 교훈을 얻는다.

내 남동생이라면 머리라도 쥐어박으면서 여자에게 그렇게 빠져들면 안된다. 더구나 은수같은 닳고 세상을 잘 아는 여자라면 더욱 전략이 필요하고  전술을 잘 짜야 한다고 아는 척 충고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시간이 흘러 올해 초 새로운 첫사랑의 순수청년이 나타났다.

"건축학개론"속의 승민

나이든 엄태웅의 승민말고 절은 이제훈의 승민이다.

그는 그래도 상우보다는 조금 세상을 많이 알고 계산할 줄 알았다.

첫눈에 서연에게 끌리고 그를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었지만 그래도 서연에게 누군가가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 자신의 자존심을 먼저 지킨다. 정신없이 상대에게 빠져들고 배신의 상처에 눈물을 흘리지만 그래도 과감하게 돌아서버리는 현실감도 가지고 있다.

예전 상우가 남자와 모텔에 들어간 은수를 어찌 할 수 없어서 찌질하게 그차를 키로 그어버리거나 화를 내며 돌아와 달라고.. 사랑이 어찌 변하냐고 징징거리는 것과는 다르게

승민은 사랑은 변할 수 있는 거고 여자는 더 좋은 조건의 남자에게 끌리는 거고 내게 상처를 줄 여자라면  상처받기전에 내가 먼저 상처를 주겠다는 계산까지 할 줄 알았다.

그러나  그 첫사랑의 *년을 마음에 품고 잊지못하고  현실에서 어정쩡하게 누군가에게 다가가지 못하고 살고 있었다.

 

 상우는 떠난 여자에게 징징거리며 매달리고 그녀가 다른 남자와 모텔을 가는 것까지 뒤쫒아 확인하고  홧김에 그 차를 확 그어버릴만큼 유치하고 무모했고 승민은 용기있게 고백할 타임도 번번히 놓치고 선배에게 대놓고 서연을 좋아하는지 무슨일이 있었는지 물어보지도 못하고 혼자 짐작하고 혼자 고민하고 혼자 상처받고 혼자 상처를 준다.

내 온 영혼을 바쳐서 사랑하고 그도 나를 사랑한다고 철석같이 믿었는데 눈앞에 보이는 연인의 배신이 그들로서는 하늘이 무너지는 상황도 첫사랑이어서인가...

나름 계산한다고 해도 그 계산에는 사칙연산이 전혀 적용되지 않는다.

내마음에 상대의 마음을 더한다고 해서 우리의 마음이 하나가 되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함께 한 시간과 사랑에서 누군가의 마음이 변해서 사라진다고 해서 고스란히 내것만 남는 것도 아니다.

뭔가 이상한 나라의 계산법 처럼 뭔가를 더하고 뺐어도 원래보다 더 많이 허전하고 더 많이 충만한기분 그게 첫사랑이니.. 아무리 영민한 머리더라도 계산이 쉽지는 않다.

 

그 첫사랑을 통해 상우나 승민이 얼마나 성장통을 겪고 성숙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게 한번 두번 사랑이 덧입혀지고 경험이 쌓이면서 조금씩 속되게 되거나 익숙해지면서 변해갈것이다.

아쉽게도 서양의 두 청년은 그렇게 성숙해질 기회마저 박탈당하고 말았지만

 

첫사랑이 아련하고 아름다운 건 이미 많은 시간이 지난 후이기때문에 가능하지 않을까

나도 고백하자면 헤어지고 얼마간 세상에 그렇게 나쁜놈도 없고 죽일놈도 없었다.

그래도  내게 좋은 추억을 주고 경험을 준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된것도 몇년되지 않으니까...

 

언젠가 상우에게 은수가 웃으며 기억될 수 있을까

승민에게 서연은 그렇게 한채의 집을 남겨놓고이제 마무리가 가능했을까

베르테르도 살았다면 나이먹고 늙어가는 로테를 담담하게 바라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겼고

로미오도  뱃살이 늘어나고 잔소리가 늘어가는 줄리엣을 그러려니하고 바라보는  체념을 배웠을지도...

 

그때 그랬더라면..

이런 결심을 했다면.. 하는 후회와 가정법은 역사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개인사에도 적용된다.

내가 다시 그 때로 돌아간다면 갈 수 이다면

이것저거 재지 않는 그런 사랑을  하고 싶다.

남의 눈에 미쳤구나 싶어도 상관없이 나혼자 충만하고 행복한 그런 사랑을 하고 싶다.

그래서 내 딸들에게 담담하게 이 엄마도 한때는 빛나고 환하던 때가 있었단다..

하고 조금은 뻐기면서 이야기 해 주면 좋겠다....

 

이 가을

그냥 넋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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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5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박찬기 옮김 / 민음사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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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도 했던 말

베르테르는... 우리영화 "봄날은 간다"의 상우와 닮았다.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대로변에서 벙찐 얼굴고 그렇게 외치던 키만 멀대같이 큰 소년도 아니고 청년도 아닌 그 어정쩡한 인물이 바로 몇년을 건너뛰어 저기 독일에도 있었구나

 

 친구여  이번에 이런 사소한 일에서도, 오해나 태만이 어쩌 술수나 악의보다 이 세상에 다툼을 더 많이 일으키고 있는지를 다시 한번 깨달았다. 적어도 술수나 악의 때문에 문제가 일어나는 일이 휠씬 드문 것만은 사실이다.  P12

 

사람이 사랑에 빠지는 것 더구나 피끓는 젊이이가 사랑에 빠지는 건 당연한일이다. 이것저것 재지않고 무조건 앞으로 달려드는 것 그리고 그대로 두눈 질끈 감고 풍덩 빠지는 것  그게 당연하고 옳다. 아 아니다. 젊음의 특권만은 아니다. 아니 젊다는 것이 물리적인 더 살았고 덜 살았고의 문제가 이나라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뭔가가 날것으로 내게 다가오는 것  그래서 처음으로 경험하는 떨림, 황홀함.  흔들림, 변덕, 격정 그런것들이 무어라 이름짓고 정의할 틈도 없이 닥쳐오고 물러나기를 반복하는 것... 첫사랑

그것에 한번 사로잡히면 누구나  눈을 가리고 달리는 경주마처럼 뒤나 옆은 보이지 않는다. 누군가가 해주는 충고 한마디 하나도 들리지 않는다.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고 오로지 내 모든 촛점은 단 하나 그것에 매달릴 수 밖에 없다.

어쩌면 사소한 만남 스침이 그렇게 인생을 뒤흔들만큼 큰 파도로 다가온다.

속된 표현으로 귀에서 종소리가 들리고 온 세상이 갑자기 일시정지 버튼을 눌러놓은 듯한 상황 번데기가 찢어지는 아픔같은거... 뭐 그런거 아닐까

그렇게 인생의 문제는 계획에도 없이 다이어리에 기록되어진 것도 아닌것이 그렇게 성큼 다가온다.

상우도 그랬고 베르테르도 그랬다.

무심하게 관심없던 누군가가 내 눈으로 들어왔고 내게는 그녀밖에 보이지 않는다.

 

 

나는 사람들이 평등하지 못하고 또 평등해질 수도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존경받기 위해서 이른바 천한 사람을 일부러 멀리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자들은 , 마치 패배하는 것이 두려워서 원수를 보고 도망치는 비겁한 친구나 마찬가지로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정의롭고 세상의 비겁함에 분노한다. 그리고 나 자신은 비겁하게 살지 않겠노라고 그렇게 다짐하며 세상을 비난한다.

 

 

그들은 상당한 시간이 지난 다음에야 비로소  돌이킬 수 없이 좋은 시간을 낭비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늦은 것이다. P 54

 

인간은 역시 인간이오 약간의 분별력을 가졌다더라도 일단 정열이 끓어오르고 인간성의 한계가 몸에까지 닥쳐온다면 그런 것은 별로 아니 전혀 문제가 되지 않지요 그렇기는 커녕,,,,,

 

 

사랑에 빠닌 그들에게는 세상이 아름답다. 그녀를 기다리는 것도 지루하지 않고 돌아서는 그 순간부터 그녀가 몹시 그립다.

그런데... 현실은 만만한 것이 아니다.

함께 라면을 먹자고 꼬셨던 그녀가 내가 등을 돌리고 냉정해지고  나와 한몸처럼 생각이 같고 감성이 통하던  그녀에게는 멋지고 이성적인 약혼자가 있다.

세상에 어찌 난관없는 사랑이 있으랴

어려움은 사랑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고 두 사람을 친밀하게 만들어준다.

그렇게 믿었다.

그리고 철없이 뛰어들었던 그 사랑안에서 이번에는 대책없이 괴로워하고 힘들어하고  고통받는다.

그리고 한 청년은 옛추억에서 행복해하는 치매 할머니를 보며 위안을 얻고 또 바다 건너 사는 한 청년은 자신의 머리를 권총으로 누른다.

 

한 청년은 그렇게 소년에서 쳥년으로 자랐고 그가 철철 피흘리던 상처는 이제 쓰라림이 사라지고 보기흉한 딱지를 남겼다가 이제 희미한 흉터가 되어 청년을 단단하게 만든다.

한 청년의 상처는 그대로 해집어지고 방치되어 썩어들어가고 구더기가 끓게된다.그리고 그 상처는 영혼까지 갉아먹는다.

 

베르테르의  이야기는 괴테가 자신과 친구의 경험을 바탕으로 단숨에 14주만에 썼더고 한다. 젊은 시설의 괴테 작품으로 그의 젊음과 열정 그로인한 미숙함이 가득한 작품이지만 그래서 동년배들에게 더 잘 와닿았고 쉽게 열광케하고 뒤따르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여인을 만나서 첫눈에 사랑에 빠지고 그리고 즐거웠다고 고뇌하고 괴로워하고 스스로의 인생을 그렇게 상처투성이로 만들었다가 누구의 충고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고 다른 누구의 모습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 그 순간 그 철없고 서투르고 무모한 사랑이  이 작품속에 있다.

 

예전 내가 잘난척 하고 읽었던 것이 그런 서투르고 치기어린 시기에 아직 다다르지 않은 때여서 공감이 힘들었고 지금은 이미 그런 젊음을 지난 시간이여서일까

그의  서투르고 뜨겁기만 한 사랑이  와닿지 않는다. 유감스럽게도....

 

그냥 누군가의 글 한귀절이 생각났다.

누군가를 만나 사랑한다면 잘 헤어질 수 있는 사람과 만나라

사람이 만나 사랑할때는 무엇이든 용서가 되고 다 이해가 되지만 사랑역시 사람의 일인지라 서로가 싫증나거나 이해관계가 달라지거나 주위의 반대가 심해지거나 등등의 이유로 헤어질 상황이 다가올때  예의바르게 잘 헤어질 수 있는사람...

지금은 이별의 감정으로 세상에서 가장 밉고 저주스러운 사람일지라도 언젠가  시간이 흘러 되돌아 보면 아름답고 좋았다고 기억되는 사람을 만나라고...

그의 그 책 다른 구절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지만 그 부분만은 격하게 동감하면서 기억한다.

상우에게 은수는 지금은 이해할 수 없는 이기적인 여자지만 그래도 좋은 기억이 될 것이다.

로테에게 베르테르는 어떨까

마음이 잘 통하고 함께 있으면 즐거웠던,,, 그러나 사랑이라고 미처 생각치 못한 그 상데를 내가 사랑하고 있었구나 나를 사랑하고 있었구나 하고 알아버린 그 순간 죽어버린 상대

그는 로테에게 아름다운 추억이 될까 아니면 그대로 봉인하고 싶은 쓰라린 상처일 뿐일까

내가 로테가 아니니 알 수는 없지만  지금 베르테르의 그 나이를 훨씬지난 지금... 그의 태도는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는 것은 알 거 같다.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먼저 죽어버리는 것 그 이상 상처도 배신도 없지 않을까

물론 그녀가 유부녀이라 더이상 아름다운 결실을 바랄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죽어버리는 건 정말 무책임하고  어리석은 짓이 아닐까

 

한때 사랑했고 그리고 헤어졌고 세상살이에 지쳐 그 기억이 희미해져가도 어쩌다  갑자기 그 사람은 지금 어떻게 살까? 하고  궁금해지고 괜히 입가에 희미하게 미소가 만들어지는 것...

시간은.. 어떤 사랑이든 상처든.. 그렇게 덤덤하게  조금은 아름답게 치장해주는 것이기에

지지리 궁상맞고  남루하더라도 그 기억을 지고 살아가는게     도리가 아닐까싶다.

 

나중에 내 아이가 어떤 사랑을 하고 이별을 하고 상처를 입고 입히는 입장이되든

그렇게 견디라고... 니가 누군가를 사랑했다는 사실 그것만으로도 빛나는 보석이 될거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리고 헤어짐의 상처도 그 보석의 아름다움을 가리진않는다고. 혹 그 빛나는 아름다움에 생채기를 내고 얼룩을 만들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어딘가 패이고 얼룩진 그 보석은 세상 어디에도 없는 너만의 것이라는 걸.. 너를 너답게 빛내주는 거라고 말해주고 싶다..

 

아.. 대책없이 주책맞게 이 가을 나도 사랑이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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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환영
김이설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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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화려한 언변을 구사하는 사람에게 끌렸다. 누구에게나 환한 미소를 지으면서 듣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멍해져서 그대로 빨려들것같은 말, 글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모든 수식어를 떼어내고 바로 명사와 동사로 문장을 이어가고 말을 이어가는 사람에게 끌리기 시작했다. 담담하게 어떤 감정도 섞이지 않고 톤도 일정하게 어찌보면 졸릴지 모르겠다 싶다 낮으면서 단단한 목소리로 들려주는 이야기

그 낮은 목소리 단단하고 건조한 말투에 자꾸 귀가 다가간다.

 

환영

이 책이 그랬다.

어떤 환상도 설레임도 없이 담담하게 한 여자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남편대신 백일도 채 되지 않은 아이를 두고 백속집에 일하러 가는 여자 윤영.. 처음 그렇게 시 경계를  드나들 때는 희망이 있었다.

지금은 내가 이렇게 젖몸살을 앓으면서 뼈마디가 으스러지도록 일을 하지만 언젠가 남편이 공무원이 된다면 모든일은 추억이 되리라... 그건 정말 잔인한 고문이었다.

어디서 들었을까

첨부터 뜨거운 프라이팬에 올라가는 쥐는 놀라서 펄쩍 뛰지만 서서히 온도가 올라가고 데워지는 프라이팬 위의 쥐는 전혀 놀라지 않는다고 점차 올라가는 온도에 적응에 가면서 자기가 어떤 상황인지 어떤 방향으로 가는 건지 알지 못하면서 그렇게 익숙해간다는 것이다.

그건 정말 섬뜩하다.

나의 고통을 내가 알지 못한다. 나는 그저 희망을 가지고 있을 뿐인데 그 희망이 나를 옳아매고 나를 점점 어두운 구멍으로 등을 떠밀고 있다.

분명 "희망"을 품었는데 그렇게 가슴에 품고 한참을 정신없이 내달라디 문득 내려다 보면 내가 안고 있는 것은 빛나는 희망이 아니라 냄새나고 물러터져버린 절망이고 눈앞이 갑자기 깜깜해진다.

내가 바라보고 정신없이 달려왔던 불빛은 어디로 갔는가.

윤영은 돈때문에 그렇게 점점 가랑이를 벌리고 그 치욕을 스스로 죽여나간다.

어떤 사람이 그녀에게 돌을 던질 수 있을까

어떤 화려한 수식도 없고 절망의 비명도 없고 그냥 덤덤하게 해가 뜨고 지듯이 아침을 먹고 나면 점심때가 되는 것 처럼 그렇게 어느순간 어쩔 수 없이 그런 순간이 왔다.

별채에 들어가고 가랑이를 벌이고 그리고 다시 옷을 입고 물가에 섰다가 다시 홀에서 빈그릇을 치우는 상황... 그건 별난게 아니었다.

그렇게 주머니에 들어온 꼬깃한 만원짜리 몇장이 내 밥이 되고 내 아이의 옷이 되고 우유가 되고 방세가 된다. 그러니 그게 어찌 별난 일이 될 수 있으랴.. 그냥 덤덤한 일상이 되어버린다.

그런 덤덤함이 일상처럼 흐르는 시간이 그렇게 쌓아가고 견뎌가는 시간일 뿐이다.

그리고 윤영은 거기서 나올 방법은  점점 사라진다

 

누가 윤영은 나와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

지금 이순간 내 가정이 무너지고 내 앞이 막막해지고 내 새끼가 배가 고파서 울고 있다면 나...

왕사장이  돈냄새를 뿌리면서 은밀한 제안을 해온다면

나는..

나는 과연 윤영과 다른 선택을 한다고 당당하게 말  할 수 있을까

그저 따뜻하고 평화롭던 불빛이 순간 사라지고 내앞에 깜깜한 앞이 보이지 않는 벽이 나타 나버리면 나는 ..  어쩌면 윤영같은 기회조차 없다고 우울할지도 모른다.

 

문체가 너무 담담하다. 한 여자를 이렇게 감정없이 따라가면서 묘사하고 보여주는 글이 아프면서도 쉽게 책을 놓기 힘들었다.

그래서 어떻게 될까..왠만한 다른 글들처럼 막연한 희망이라도 암시하면서 끝나지 않을까, 다 그렇지 뭐 하면서 투덜거릴지언정 그렇게 유치하고 휴유~ 하고 한숨 돌리는 결말을 기대했는데  이야기는 끝까지 몰고 간다.

어쩌면 김기덕의 영화를 보면 이런 느낌이 들지 않을까

울 수도 없고 소리 칠 수도 없고 도망갈 수도 없는 ... 사방이 막혀버린 상황..

그렇게 더 이상  떨어질 수도 없는 시간을 견디고 살아내는 그녀에게 내가 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다.

내가 설령 그렇게 되더라도 내게 뭔가를 해 줄 누군가도 없을 것이다.

지금 은  세상이 그렇게 꽉 막혔다.

눈물조차  보이지 않는다.

저 많은 불빛들 속에 내것은 하나도 없다는 것

그것이 절망이라는데... 누군가에게는 어쩌면 내게는 그게 일상이기도 하다.

누구나 피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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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젠가 내가 이름만을도 책을 고른다면 당연히 이 이름이 아닐까

"구병모"

 

 

드디어  "고의는 아니지만"을 다 읽었다.

내내 찜찜하면서도 감동한다. 아니 감동이라는 말은 틀렸다.

뭐랄까 이 작가의 끝은 어디일까 궁금하다.

현실을 상황을 우리의 일상을 이렇게 바라볼 수도 있구나 이렇게 비틀어볼 수도 있는거구나  계속 감탄하면서 책장을 넘긴다.

왜 첨 샀을 때는 이 책이 그렇게 넘어가지 않았을까? 그런데 지금 이렇게 잘 넘어가는 이유는 뭘까?

 

그의 글속에는 현실이 우리의 일상이 아닌 것이 없다.

비유가 사라져버린 언어의 도시. 늘 뭔가를 공평하게 해야하고 아이들 모두를 사랑하려고 노력하며 강박증에 갖혀버린 유치원 교사 육아가 너무나 고달픈 엄마. 곤충으로 변하는 성폭력자 등등

내가 일상을 살면서 한번은 스쳤던 생각들 순간순간 느낀 분노 절망이 이 책속에 고스란히 들어있었다.

 

 

아이를 키우면서 늘 절망했다. 아이는 육아책에 등장하는 메뉴얼대로 절대 진화하지 않는다.

끊임없이 나를 돌아보게 하면서 내가 어디가 부족한가 모성이 부족한가 엄마로서의 자격이 없는 것이 아닌가 ,,,, 끊임없는 죄책감이 시달렸다. 그리고 나의 욕망과 상반되는 육아법들은 끊이없이 내 안에서 충돌하면서 죄의식을 만들고 내 속을 갉아먹어갔다.

"어떤 자장가"를 읽으면서 나는 이상한 위로를 받는다. 나만이 아니다.

적어도 난 아이를 세탁기나 오븐 냉장고에 넣지는 않았다,

어두운 방에 그냥 내버려둔 적도 있었고 아이가 눈을 떠서 혼자 놀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아이가 울지 않는다는 이유로 내 몸이 피로하다는 이유로 그냥 모른 척 한 행동들은  이 여자에 비하면 정말 새발의 피가 아니었던가.. 그렇게 혼자 위안했다.

그리고 나도 이 여자처럼 아이를 사랑했노라고

 

내가 나이를 먹으면서 점점 더 선명하게 체득하게 되는 것

진짜 상처를 주는 사람은 선한 사람들이다. 착한사람의 착한 행동은 우리가 뭐라고 욕을 할 수도 없다. 그저 그 행동과 비교되어 내가  조금 더 나쁜 사람이 되고 내가 이상하고 불만이 가득한 사람이 될 뿐이다. 내가 논리적이지 못해서 지식이 딸려서 반박할수도 없지만 그러면서도 억울함이 하나구석에서 스멂수멀 올라오는 건 어쩔 수 없다.

물론 그 착한 사람도 상대적으로 악한 나도 "고의는 아니었"다. 아니었을 것이다.

"고의는 아니지만"의 유치원교사 f처럼 항상 공정하고 누구라도 상처없이 함께 할 수 있는 활동을 만들어내기 위해 애쓸 뿐이었다.

이러이러한 일들이 공정하고 누구에게나 불평없는 상황을 만들어 내는 거라고 하면 할말이 없다.

그러나 그 공정함이 주는 냉정함 무심함이 누군가에게는 날카로운 종이 모서리에 베이는 느낌으로 다가갈 수 밖에 없었다. 나도 모르는 새 상처가 생기고 붉은 피가 배어나온다. 내가 아픔을 느끼는 순간은 이미 피가 주르르 흘러내리는 순간이다. 상처가 생기는 그 순간을 인지하지도 못하고 상처를 가진다.

사실 F가 잘 못한건 아니다. 하지만 그 공명함이 선함이 아이들에게 상처가 된다는 걸 모른다. 난 늘 아이들을 사랑하고 공정하게 대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었다. 내가 순간 힘든다는 것 그리고 내 사비를 들여서가면서 나는 노력하고 있다고... F는  그렇게 항변할 자격이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상대가 받는 상처가 가치없거나 잘못된 것도 아니다. 공정함이라는 이름으로 대항마저 할 수 없는 아이들은 마지막 F의 불운앞에서 "미농지같은 미소"를 짓게 만든다.

누구를 탓할것인가...

세상에 사람들이 부대끼면서... 더구나 배경도 다르고 개성도 다른 사람들이 부딪치면서 어떤 억울함도 부당함도 없는 인큐베이터 속같은 무균질의 사회란 있을 수 없는 것 아닌가.. 어디선가 누군가는 상처받고 억울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내 감정선들으르 그렇게 드드럭 박아버리는 일도 옳지는 않았다. 그렇게 감정을 죽이는 것이 살아가는데 부당함을 받는 것이라 믿고 밀어버린다. 그로인해 우리가 잃어야 하는 것 그런것 까지 헤어리는 여유가 없을 것이다. 언제나 후회는 나중에 문이 닫히는 순간 쑤욱~ 들어오는 법이니까.

 

그래서 희망을 이야기하면서 우리를 서서히 고문에 익숙하게 만드는 이 사회에서 "조장기의 그 학생처럼 모든 나의 불행이 오로지 나만의 책임이고 나만의 문제로 귀착된다. 내가 못나서 돈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현실을 받아들여야 하고 그래도 나아지지 않는 현실에서 차라리.. 불행의 냄새를 풍김으로 새들의 공격대상이 대기를 갈망하게 되는 이 현실이 슬프고 무섭다.

이미 새들에게 공격당한 인간의 살덩이에 부러움을 느껴야 하는 현실이 단지 이야기속의 것일뿐이라고 단언할 수 있을까

 

딸아이를 키우면서 무서운게  행여 아이의 동심에 순수에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남지 않을까 전전긍긍한다는 점이다. 내가 능동적으로 행하는 성에서도 상처를 입을 수 있는 현실에서 내가 원치 않는 상황으로 몰려서 가지는 상처들이 미루어서 여전히 두렵고 무서웠다.

세상을 흉흉하게 하는 여러 사건사고를 보면서 이러한 언제든 호르몬의 작용으로 악마로 변하는 인간들을 격리시키고 혼내줄 방법을 상상하게 한다. 사형집행이라든가 종신형 거세법을 떠나서 아예 이사람들이 단한번의 실수조차도 용납하지 않도록 강학 독하게 하는 무슨 방법을  간절히 바라는 지금 "곤충채집"을 읽었다. 작가가 이 작품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든 나는 이 방법이 몹시 맘에 든다(어쩌면 내 속의 악마가 원하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사람으로서 한번의 기회를 더 준다던가.. 사람이 사람을 죽일 수는 없다던가 그들에게도 인권은 있다는 말들은 다 개소리라고 생각케 하는 요즘세상에 이보다 더 단순하고 위협적이며 모든 잠재적 범죄자를 잠재울 수 있는 방법이 또 있을까....

 

책속의 이야기는 허구이고 끝없이 펼쳐지는 환상이지만  더불어 지극히 현실적이고 일상적이었다. 지금 이 순간 내가 상상하고 내머릿속을 스쳐갔던 것들이 이야기속에 들어있다.

누군가를 향해 마구 찔러대고 싶은 칼날들 가끔은 나를 향해 휘두르는 몽둥이가 이 속이 있다.

읽고서 작가의 부족함인지 나의  아둔함인지 그래서 어쩌라고... 하는 결말을 내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래 이런거지... 이럴때가 있었고 이런 순간이 있었고 이럴 필요가 있다고.. 함께 동조하고 함께 날카롭고 반짝이는 것을 휘두르고 싶게 하는 것

그것이 이 책에 있다.

 

이 작가의 생각의 끝은 어디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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