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루 푸른도서관 50
이금이 지음 / 푸른책들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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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딸이 함께 몽골여행을 한다.

단둘만의 여행은 아니고 엄마의 동창여행에 딸이 함께 따라가는 모양새다.

엄마와 딸의 최초의 세계여행. 단 둘만의 여행

낭만적이고 뭔가 은밀한 소통 즐거움이 기대되지만 천만에...

엄마와 딸은 그저 대면대면하고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할퀴고는 정작 자기가 받은 상처만을 들여다 보느라 내가 상대에게 하는  한마디 무심한  몸짓 하나가 상처가 되는지는 알지 못한다.

책을 펼치면 딸의 입장에서 엄마를 바라보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나이먹은 아줌마들의 주책 젊고 잘생긴 가이드에게 체면도 모르고 알랑거리고 아줌마 특유의 넉살과 입담으로 모든 정보를 알아내고 놀리고 친근하게 들러붙고.. 한마디도 15살 소녀의 눈에는 그저 한심하고 속물스러운 아줌마부대였고 계속 여행을 후회한다.

볼거리가 대단한것도 아니고 음식이 입에 맞는것도 아니고 말상대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나마 내가 좋아했던 그룹의 오빠를 닮은 가이드때문에 뭔가 기대를 하고 설레지만 번번히 엄마로 인해 방해받고 정작 그 왕자님은 아줌마들에게 둘러싸여 있을 뿐이다.

밖에서  엄마의 새로운 면을 보기도 하지만 흥... 한때 주름잡던 문학소녀였고 나같은 두근거림이 있다는 건 상상조차 되지 않고 지금은 그저 팔뚝살이 철렁거리고 젊은 가이드에게 잘보이려고 화장을 떡칠하고 번번이 내 로맨스를 방해하는 훼방꾼일뿐이다.

데려온 딸은 신경도 안쓰고 친구들과 떠들고 히히덕거리기 바쁜 엄마..

나는 여기 왜 왔을까.. 한순간 가이드와 함께 본 석양에 가슴 설레고 본격적인 로맨스를 꿈꾸지만 그런 하룻밤의 신기루였을까... 아침에 천청벽력같은 소식이 기다린다.

그렇게 이틀이 지나고 1부가 끝나면 엄마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생애 전환기에 선 엄마는 딸과 함께 좋은 시간을 위해서...라며 여행에 나선다.

딸을 보며 나도 한때 저랬지 하는 감성을 느끼지만 내가 한떄 그랬던것들이 나이들어 보니 별거 아니라는 걸 아는  현재라.. 사사건건 딸을 챙기기 바쁘다.

그런 허튼데 마음주고 시간 빼앗길 필요가 없다는 것 화려하고 도전적이고 반항적인 삶을 지향해서도 안된다는 것... 이 어미가 살아온 45년의 인생이 알려준 그 정답을 딸은 어떤 시행착오없이 알기를 바란다.

거인이 펼쳐놓은 외투의 구멍사이로 보이는 쏟아질듯한 별빛들 가도가도 지평선만 보이는 막막하기만 사막 그 거대한 자연앞에 초라하고 작아지는 나를 보면서 울음도 터뜨리고  친구에게 날선 질투도 느끼면서 여행을 하고 있다. 자유롭게 뭔가 굉장한 터닝포인트를 기대하며 온 여행이지만 정작 내 속에 꽁꽁 숨겨둔 무언가를 꺼내 보기는 두렵다.

어쪄면 그걸 꺼내어 정면으로 마주하는 순간 45년 내 인생이 무의미하다는 걸 알게 될까봐 그게 두렵다.

 

엄마와 딸의 여행 , 이국에서 겪는 여러가지 에피소드로 보는 딸과 엄마의 성장이라는 건  상투적인 이야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다 읽고 책을 덮으면서 가슴이 먹먹하다.

어쩌면 지금 내가 글 속의  엄마의 나이에 다인과 같은 딸이 있어서가 아니라,

어쩌면 그 엄마가 느끼는 현실을 마주 하기 두려움같은것이 내 속에 아직도 웅크리고 있어서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지금 아둥바둥 잡고 힘들게 끌고 가고 있는 것들이 어쩌면 한순간의 착각 신기루일거라는 것

계속 쿵쾅거리는 가슴은 마지막 부분 다인의 말에서 왈칵 감정이 쏠렸다.

신기루가 마냥 신기하고 이상하고 허무하기도 했지만 어쩌면 여행중에 그 신기루때문에 희망을 가지고 기대를 할 수 있는게 아닐까 하는 것

살아가는 세상에 아무 의미없는 시간은 없을 것이다.

그 시간이 나중에 뼈아픈 후회가 될지라도 혹은 나중에 기억도나지 않는 허무한 시간일지라도 그게 의미없는 건 아닐껏이다. 그 순간순간은 뭔가 절실하고 몰두했던 것들이 있었으므로...

 

아이가 읽고 싶다고 해서 빌렸다가 시험기간이라 내가 먼저 읽었다

책장을 덮으면서 내가 먼저 읽기를 참

 잘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아이도 이 책을 읽고 제 엄마를 이해하려고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고..

어쩌면 그나이에 그저 내 성적에 안달하고 엄친딸과 비교나 하고 투덜거리기나 하고 돈돈거리는 엄마를 보며 한심하다고 내아이도 생각할지도 모른다.

엄마는 마냥 팔자가 좋아서 시험도 안보고 단어를 외울필요도 수학을 풀 필요도 없고 친구들 사이의 고민도 없어보이고 빈 집에서 하루종일 (적어도 반나절은) 원하는 걸 하고 지내는 구나.. 하는 그런 부러움반 한심함 반 생각을 했을것이다.

하지만 그런 딸에게 나도 책속의 엄마 이상의 무언가를 줄 수는 없을 거같다. 무언가 멋진 말을 하고 싶지만 번번히 누군가에게 가로채이거나 기회를 잃을것이고 아이의 마음을 읽어주고 싶은 멋진 엄마이고 싶은 동시에 아이의 성적과 미래를 당겨 걱정하느라 전전긍긍할것이다.

 

전혀 비슷하지는 않지만 라이팅 클럽이 생각났다.

 

 

 

공통점이라면 둘 다 엄마와 딸에 대한 이야기이고  딸이 엄마를 한심하고 무시하기도 하지만 결국 사랑하고 있다는 것 그 둘사이의 한없이 깊은 애증이 보여진다는 것

그리고 그 속에서 치열하게 자신에 대해 고민하고 고민하고 상처주고 상처입는 다는 것 아닐까

 

엄마는 딸들에게 꼭 너같은 딸낳아서 키워봐라 하고

딸은 절대로 엄마와 같은 삶은 살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절대 닮고 싶지도 않고 닮기를 바라지도 않지만 내게 가장 무서운 비판자이고 내게 가장 쓰라린 상처와 위안을 동시에 주는 존재들이다. 엄마에게 딸은 딸에게 엄마는...

나도 한때 내 엄마가 좀더 멋지길 바랬고 너무나 통속적이고 집요하게 걱정하는 걸 간섭이라고만 생각했고 절대 내 마음을 이해못한다고 나랑 수준이 맞지 않은 사람이라고 여겼었다. 그런데 이제 내가 그렇게 오만했던 나이때의 나를 지켜보았을 엄마 나이가 되면서 엄마의 행동이 이해가 되고 받아들일 수는 없어도 그럴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적어도 그때의 엄마는 나보다 많이 젊었고 그래서 피가 더 뜨거웠을 것이고 더 힘들었을 것이다.

결혼이 늦은 그래서 속물이 되어 결혼한 나랑 달란 보송보송한 20대 초반에 결혼한 엄마에게 시집이며 남편이며 딸이며 하나같이 버겁고 혼자 수습할 수 없는 대상이었을거라는 생각을 한다.

이제 나도 엄마랑 다르지 않는 삶을 살고 있고 엄마랑 다르지 않는 모습을 내딸에게 보여준다.

나는 다를 거라고 적어도 아이와 친구가 되고 이해하고 소통하는 사람이 될거라고 큰소리 쳤지만

그리고 지금 그러하다고 믿고 있지만.. 아마  내 아이는 속으로 엄마랑 말이 안통해! 할지도 ..

엄마가 딸이 되고 딸이 엄마가 되는 순간이 겹쳐진다고 그게 반복된다고 책은 조용히 이야기해준다.

라이팅 클럽을 다 읽고 책을 덮었을때 뭐라고할 수 없던 먹먹함이 지금도 느껴진다.

계속 나는 달리고 있는데.. 이 울타이를 벗어나려고 몸부림치고 있는데 자꾸 제자리를 맴도는 느낌.. 사막에서 길을 잃고 같은 자리를 맴도는 자동차처럼 나도 그렇게 열심히 도망치고 달렸었는데 어느새 내가 정말정말  달아나고 싶었던 바로 그 곳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걸 알아버렸을때 느끼는 망연함...

그리고 그 달리는 과정에 내가 봤던 아름다움, 이상, 꿈이 어쩌면 신기루였는지도 모른다는 것

지금부터 내 아이도 그렇게 지독한 달리기를 하겠지만 어쩌면 계속 맴돌기만하는 걸 시작할것이다

멀리 멀리 엄마로부터 떨어져보라고.. 나랑 다른 길을 가보라고 등을 떠밀어주고 싶지만 한편 그 손을 차마 놓지도 못하는 이야기..

그리고 항상 깨달음은 나중에 온다는 것..

 

지금 마흔의 중반에 서서 문득 삐뚤어지고 싶다는 욕구가 생긴다.

한없이 삐뚤어지고 내 마음이 내키는 대로 살아봐도... 나쁘진 않을거같다는 건..

어쩌면 숙희로 살다가 이제 춘희로 살고 싶다는 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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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 않는다는 말
김연수 지음 / 마음의숲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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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 내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건 지지 않는다는 말이 반대시 이긴다는 걸 뜻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깨달음이었다. 지지 않는다는 건 결승점까지 가면 내게 환호를 보낼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안다는 뜻이다. 아무도 이기지 않았건만 나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았다. 그 깨달음이 내 인생을 바꿨다.

 

 

유행가의 교훈이란 이런 것이다. 지금 여기에서 가장 좋은 것을 좋아하자 하지만 곧 그것보다 더 좋은 것이 나올텐데 그때는 그 더 좋은 것을 좋아하자. 물론 더 좋은 것도 오래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 다른 더 좋은 것을 좋아하자 아무튼 지금 여기에서 가장 좋다고 생각하는 것만 좋아하자.

.... 인생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최고의 삶이란 지금 여기에서 살 수 있는 가장 좋은 삶을 사는 것이리라. 물론 가장 좋은 삶이라는 건 매순간 바뀐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런 식으로 제대로 산다면 옛날 좋아했던 유행가를 들을 때처럼 특정 시기를 떠올리게 하는 경험들을 많이 할 것이다.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살 수 없다고 해서 하기 싫은 일을 반드시 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뜻은 아니지 않은가? 오히려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살 수 없으니까 하기 싫은 일은 더구나 하지 말아야지.

 

아마도 어른들이 나중에 얼마든지 할 수 있으니까 지금은 공부하라고 말하는 때의 그 나중에 얼마든지 할 수 있다던 그 일을 할것이다,이건 지금의 나에게도 해당하는 일이다. 인생은 왜 이다지도 긴 것일까 그 이유는 긴 인생의 눈으로 조망할 때에만 지금 이 순간의 의미가 분명해지기 때문이 아닐까

 

 

애들은 싸우면서 크는 거야 하고 어른들은 말하지만 그건 다 뻥이다. 애들은 싸우면서 서열정하는 법과 복종하는 법을 배운다. 아마도 어른들은 자란다는 것은 질서에 복종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무 생각없이 펴든 책에서 날카로운 송곳을 발견하는 경우가 종종있다.

무심코 집은 책에서, 그냥 설렁설렁 눈으로 훓어가다가 한구절에 마음에 와서 콱 박혀버리는 순간.. 사실 다시 돌아가 읽어보면 별 말아니고 아무것도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그 순간 그 구절에 내게 와서 꽂혀버렸다는 건 내가 감추고 있다는 것조차 잊어버린 내 가장 약하고 부끄러운 부분과 맞아떨어졌기때문이 아닐까 한다.

 

한때 벌떼처럼 몰려서 누구나 손에 들고 인용하던 하루끼를 부끄러운 말이지만, 읽지 않았다.

처음 나왔던 노르웨이의 숲을 손에 들었지만 영 진도가 나가지 않았고 그의 문체가 자꾸 겉돌기만 했다. 세련되고 현대적이고 감각적이라던 그의 글들이 촌스럽고 고지식한 나에게 맞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그의 단편들이나 소소한 에세이는 열심히 많이... 아마 전부 읽지 않았을까

그러면서 그의 단순하지만 경쾌하고 쿨한 사고방식이 어떤건지 알았고 작가이면서 아침에 일찍 일어나 달리기를 하고 샐러리맨처럼 시간을 정해 글을 쓰고 요리를 하고 일찍 잠자리에 든다는 생활방식도 맘에 좋아하게되었다. 흔히 작가라고 하면 날밤을 새고 쬐죄죄하고 헝클어진 머리를 가진 종류라고 생각하고 반듯하고 시계추같은 생활은 절대 하지 않을거라고 믿었는데 그게 아니라는게 나름 나에게 충격이었다. 그리고 아.. 반듯하고 성실한 사람이 뭘해도 되는구나 하는 생각도 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하루키가 생각났다. 그의 달리기에 대한 몇몇 책들과 해외거주시 썼든 에세이들 일상생활에 대한 담담한  소감들을 쓴 글들이 자꾸 오버랩된다.

그렇다구 누가누구를 따라하고 모방했다는 생각이 든건 아니고 이 지구상에 바슷한 사람도 많ㅇ고 비슷한 취미를 가진 사람도 만히고 같은 일을 하면서 같은 생활방식을 가진 사람들도 있구나 했다.

그리고 그의 몇몇 문장들이  이유없이 내 속살을 찔러대고 있었다.

저 위의 구절이 어째서 나를 찔러대는건지는 지금은 잘 모르겠다.

그래 그랬지 하는 공감도 있었고 지금 내가 고민하는 것을 단순하고 경쾌하게 진단해주는 경우도 있었고 내가 생각하면서도 뭐라고 표현하지 못한 걸 쉽게 글로 나타내기도 했다. 다만 그것뿐인것이 약해있는 나를 찔러 상처주고 있었다.

원래 체력이 떨어지면 감기도 쉽게 걸리고 쉽게 상처입고 쓰리지는 법이니까

우연히 나랑 같은 동네에 사는 어떤 젊은 (이제 젊다고 할수 없을지 모르겠지만) 작가가 내가 다녔덨 곳을 이야기 하면서 내가 고민하고 혹은 고미하는 지도 모르면서 힘들었던 어떤 문제에 대해서 경쾌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샘나고 속상하고 부끄러운거였던거 같다.

그러고 보면 나도 이 작가의 소설은 읽은게 없고 이런 에세이만 두권째 읽고 있다.

이제 조금씨 소설을 찾아봐야겠따는 생각이 든다

왠지 하루끼때와는 달리 조금은 공감하는 부분도 있지 않을까 하는 끌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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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기의 성장과정에서 부모란 어떤 역활을 해야할까

아이가 사춘기에 접어들어선 순간을 알아차릴때 부모는 어떤 표정을 어떤 몸짓을 해야하는 걸까

세상에는 사춘기에 대하여 통과의례에 대한 책은 많은데 그에 대처하는 부모에 대한 책은 무엇이 있을까

물론 알라딘만 해도 좋은 부모 카테고리에 들어가면 많은 서적들이 줄지어 있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말고.. 자연스럽게 내가 읽으면서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그런 책은 없을까?'

성장기의 바이블같은 데미안에서도 호밀밭의 파수꾼에서도 부모는 아무런 역활을 하지 않는다.

아니 주인공이 부모의 개입을 원치않고 더 나아가 부모를 부정한다.

그밖에 많은 성장소설에서 영화에서 부모는 그저 배경에 불과하다.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내 자식을 믿는다는 맹종적인 부모가 나오거나 아에 부모존재가 부제하거나 오히려 없으니만 못한 상황까지 있다.

마틸다에서도 그렇고 우리 소설들에서도...나의 아름다운 정원,  완득이 ,우아한 거짓말  너도 하늘 말라리아 유진과 유진등등의 지금 머리에 떠오르는 책들을 봐도 부모가 무슨 역활을 했을까

그저 살아가기 바빠서 무심했거나아이가 아직 어리다고만 치부했거나  하면서 그 성장의 주변부에서만 얼쩡거리고 있었던 거같다

도무지 그런 식으로 내가 반면교사를 삼을 게 없다.

내가 아직  독서가 부족해서인지도 모르겠지만....

 

아이가 순간순간 감정이 바뀌고 여러가지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퍼붓는다.

왜? 왜? 어째서 ? why not? 

세상이 부조리하고 나자신은 한없이 초라하고 부모는 더이상 믿을 수도 의지할 수도 없다는 막막함속에 서 있는 아이에게 내가 어떤 역활을 해야할까

좋은 부모 카테고리에 있는 책들을 부지런히 읽으면서 이런 경우에는 이런 대처법을 저런 경우에는 저런 대처법을  .. 그렇게 끼어맞추면서 해법을 찾아가고 성경을 암송하고 108배를 해가며 마음을 다스리는 것 그런것들밖에 없을까 싶다

책속에서 근사한 부모는 어디에 있는 누구일까

아이가 사춘기를 맞아 미친 망아지처럼 날뛰고  내 가슴에 화살을 마구 쏘아대고 있어도 담담하게 평정심을 유지하면서 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케빈에 대하여의 케빈엄마 그녀가 내게 좋은 충고를 해 줄 수 있을까 괜찮은 주인공의 엄마를 작지만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그런 역활을 하는 부모를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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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책읽는 모임에 참석하면서 좋은 점은 예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 읽게된다는 점이다.

책에 대한 깊이 있는 대화나 지식이 느는 건 아니지만 함께 책을 읽고 이야기하고 때로는 이야기가 샛길로 빠지고 이것저것 사정으로 연기되는 경우고 많지만 그래도 꾸준히 뭔가를 읽어간다는 건

내게 큰 수확이다.

혼자라면 읽을 엄두도 나지 않았을 책들을 함께 읽는다는 것 그게 참 좋다.

이번에 읽었던 책은 헷세의 '데미안이다,

 

이 책을 마직막으로 읽었던게 고3때였다.

대입을 코앞인데 혼자 고민하고 방황하고 누구도 알아채지 못한 반항을 하면서 읽었던 책

그때 다 이해했다거나 공감을 했다는 기억은 없다.

다만 시험공부안하고 엉뚱한 책을 본다고 혼났던 기억이 있고 좀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제목이 데미안인데 왜 주인공은 데미안이 아니라 싱클레어인가  의아해했던 기억이 있다.

역시나 그때도 기억에 남았던 건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꺠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압락사스"

 

혼자 밑줄긋고 그렇지 세계를 깨지 않으면 나아갈 수 없다고 생각했던거 같고 내 세계를 깨는 일이 이런 입시는 아닐거라고 생각했고 어쩌면 대학만 가면 뭔가 새로운 세계를 갈거라는 믿음도 있었던거 같고 암튼 그랬다.

 

그리고 이제 나이 먹어 다시 읽는 데미안은 어렵고 철학적인 수사가 많은 책이 아니라 어떤 소년의 성장기로 읽혔다.

이미 방황하고 고민했떤 시기를 지났기때문일까.. 하는 서글픔도 묻어난다.

싱클레어의 누구와도 나눌수 없는 고민들, 가족에게도 말 할 수 없고 말하고 싶지 않는 심정, 사실 털어놓고 부모에게 매달리기만 해도 거의가 해결될 수 있었던 프란츠와의 관계도 그렇고 그 후에 만난 데미안이 주는 충격들 고민들 불쾌감 거부 그러나 말 할 수 없는 이끌림 등등 그건 대 문호인 헷세여서 가능한게 아니라  그 시절을 살아오고 견뎌낸 사람이람 ㄴ 일반적으로 앓아왔던 통과의례같은 몸살이 아니었나 싶다. 다만 헷세여서 이렇게 후세에 남을 기록이 되는 것이고 일반 범인들은 그냥 그런 때가 있었지 하며서 돌아볼 뿐이고...

돌아보면 별 것도 아닌일에 밤잠을 못자고 고민하고 행여 부모님이 아실까 전전긍긍했던 기억이 나도 있다. 야단맞고 무시당하고 친구에게 배신 당한 기억들을 혼자 끙끙거리며 누구에게도 털어놓기 힘들었던 기억.. 그런데 그런 깊이를 알 수 없었던 그 당시의 고통도 언제 어떻게 없어졌지는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냥 그렇게 유치하게 (지금 돌아보면)아픈 고민이 있었다는 건 기억이 나지만 어쩐 계기로 어떻게 헤쳐왔는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그렇게 자라면서 시간이 해결해주는 부분도 있고 어쩌면 그 고통을 이겨낸 과정자체가 고통보다 더 큰 악몽같아서 아예 기억에서 지워버렸는지도 모르겠다.

싱클레어도 그런 악몽의 순간을 지나고 있었다. 프란츠라는 괴물에게 쫒기는 것, 그건 훝날 보면 별일 아니고 부모님에게 솔직하게 털어놓고 조언을 구하기만 해도 풀릴 일이지만 혼자 비밀을 만들고 끙끙거리느라 더 부풀린다.  나의 수치심을 누군가가 알아차린다는 것 누군가에게 들킨다는 것이 그때는 죽음만큼 부끄럽고 치욕스럽다. 사실 그 수치심이라는 것이  속된말로 한순간의 쪽팔림으로 드러내 버리면 별거 아닌것이지만 감추고 끙끙거리는 사이 점점 부풀어서 내가 어쩌지 못하는 압박으로 다가오기도 한다는 걸... 그 나이때는 모른다. 오로지 그 수치심만 보일 뿐이다,

 

프란츠를 몰아내준 데미안에게 싱클레어는 끌리면서도 두렵다 누군가에게 또 끌려가고 주도권을 내어준다는 것이 맘에 걸린다. 그의 말들은 내가 알던 다정하고 밝은 진리와는 반대에 있고 내가 끌리고 유혹을 느끼는 어둡고 침침한 그곳같아서 끌리면서도 두렵다.

 

허용된 밝은 세계에서는 숨기고 은폐해야 하는 하나의 원시적 충동이 내 자신 속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새롭게 발견해야만 했던 시절이 왔다. 나의 호기심이 찾은 것, 꿈과 기쁨과 두려움이 내게 가져다 준것, 사춘기의 큰 비밀 그것은 내 유년의 평화에 감싸인 행복감에는 맞지 않았다. 나는 다른 모둔 사람들처럼 행동했다. 이제 더는 어린아이가 아닌 아이의 이중생활을 영위했다. 내 의식은 집안의 허용된 세계속에 살았으며 어렴풋이 솟아오르는 새로운 세계는 부정했다. 그러나 동시에 나는 꿈, 충동. 은밀한 소망들 속에서 살았다. 그 위에서 저 의식적 삶이 만드는 다리는 점점 더 불안해졌다. 내 속에서 유년의 세계가 붕괴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세계에 이끌리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 그건 유혹적이고 아름답다. 어둡고 옳지않는 것이라는 걸 알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매혹적이다. 그렇게 끌리면서도 이건 아니라고 내면에서는 소리치고 그러면서도 가고 싶다고 느낀다. 부모몰래  금지된 영화를 보고 금지된 장소를 흘낏거리고 술을 마시고 담배도 물어보면서 집에 돌아와 부모의 아무것도 모르는 표정을 보면 찔리는 건 당연하다 그래서 다시는 그러지 말아야지 하고 마음을 먹고 저런 착한 분들을 속인다는 것에 죄의식도 갖지만 유혹이 주는 달콤함을 거부할만큼 강한 의지도 없다. 아니  그 의지만큼 유혹에 흔들리려는 의지도 반대쪽으로 강하다.

그렇다고 그런 짓을 하는 것이 모두 비행이고 올바르지 않고 선도가 필요한게 아니라는 걸 나중에 깨닫게 된다. 그렇게 흔들리고 경험하면서 성장한다는 걸 그때는 모른다

이미 다 컸다는  우월감도 생기고 저항도 느낀다.

결국 자기자신을 컨트롤하고 다스리는 건 자신일 뿐이다.

부모님도 또 다른 누군가도 그저 조언자일뿐이고 타인일 뿐이다.

 

내 자신의 신화 두 세계 혹은 세계의 두 절반 - 밝은 세계와 어두운 세계에 관한 생각이었던것이다, 나의 문제가 모든 인간의 문제 모든 삶과 생각의 문제라는 통찰이 갑자기 신성한 그림자처럼 나를 뒤덮었다. 그리고 가장 나다운 개인적인 삶과 생각이 얼마나 깊이거대한 사유의 영원한 흐름에 관여되어 있는가를 보고 갑자기 느끼게 되자 두려움과 경외심이 나를 압도했다. 그 통찰은 즐겁지 않았다. 확인해주고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었는데도 왠지 즐겁질 않았다. 그 통찰은 가혹했다. 맛이 떫었다. 그 안에는 일말의 책임의식이 이제는 어린애일 수 없다는 홀로 서 있다는울림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방황으로 세계관이 바뀌고 세상을 보는 눈이 바뀌는 것 혹은 커지거나 왜곡될 수도 있는 것 그건 이제 내 책임이다. 내가 내 고민을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고 나눌 수 없어지면서 어떤 행동이나 사고도 오롯히 내몴으로 남는다. 그건 성장이기도 했고 거기에 따른 책임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두렵고 무서운 일이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싸인하는 모습을 부럽게 바라본다. 마트에서 식당에서 혹은 은행에서 펜을 들고 멋지게 싸인하는 모습이 부럽다. 나도 멋진 싸인을 가지고 싶고 여기저기 남기고 싶다.

그러나 그 싸인이 '이 모든 것의 책임을 내가 지겠다'라는 의미라는 건 알지 못한다.

어쩌면 어른이 된다는 건  내 싸인을 가진다는 것은 내가 나를 책임져야하고 누군가에게 미룰 수도 없고 전가할 수 없다는 고독감을 받아들이겠다는 의미이기도 하니까

어른들이 하는 말.."누군가 간섭하고 잔소리할때가 좋을때"라는 말을 그 나이때는 모른다.

다만 조금씩 내가 성장하고 있다는 것 이건 내 책임일거라는 막연한 긴장감이 생기는 시기이기도 하다.

더이상 어린아이도 아니라는 조금 쓸쓸하고 무서운 느낌을 지나면서 그렇게 성장하는 것이다.

그때 부모가 할일은.. 어쩌면 싱클레어의 부모처럼 모든 것을 알고 있으면서 모른 척 해주고 기다려주고 다시 돌아온 탕자를 안아주는 것밖에 없는지도 모르겠다.

아이가 자라고 성장하는 동안 부모도 점점 그 책임이 줄어들겠지만 오히려 그 책임감이 없어지는 과정이 두렵고 걱정스러워 계속 손을 놓지 못하고 팔이 늘어지고 꺽여도 어쩔 줄 모르고 꼭 쥐고 있는 경우도 생긴다.

 

성장하면서 나는 내가 참 싫었다. 내 얼굴이 마음에 들지 않고 내 성격이 마음에 들지않고 심지어무탈하고 여유로운 환경도 맘에 들지 않았다. 내가 조금만 어찌어찌했더라면 내부모가 조금 어찌어쩌한 사람이라면... 배부른 줄 모르고 고민하고 투정하면서 이 모든걸 변화하는 것도 내 하기 나름이라는 조금 어처구니없어보이는 책임감도 느끼고 그랬던거 같다.

그리고 지금 성장기의 내 아이도 맘에 드는게 하나도 없어보인다.

생긴것도 키가 남들보다 큰 것도 손재주가 없는 것도 다리가 긁은 것도 아마 말은 하지 않아도 제 부모에 대한 불만도 많으리라 짐작된다.

싱클레어도 역시 스스로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지난 반년동안 나는 매우 빨리 자랐다. 그리하여 키가 훌쩍 컸고 마르고 미완성인 채 세계를 들여다 보고 있었다. 소년의 사랑스러움은 내게서 완전히 사라졌다. 사람들이 나를 별로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을 나 자신도 느꼈으며 스스로도 자신을 결코 사랑하지 않았다.

 

어쩌면 성장이라는 것이 그러한 자기부정의 과정을 거쳐야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를 부정하고 미워하면서 나를 객관화시킬 수도 있고 세상과 떨어뜨려놓아서 관찰자적인 입장에서 시큰둥하게 혹은 시니컬하고 삐딱하게 바라보는 과정도 지나야 하는 것이다.

내가 뭐가 잘나서가 아니라 어쩌면 못나고 자신없어하는 행동임에도 남들 눈에는 더없이 건방지고 무례한 행동들이 그렇게 나오는 것이다.

그렇게 자기를 부정한다는 것은 오히려 그만큰 자신에게 집중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싱클레어도 수업을 빠지고 술에 빠지고 잘난척하는 것처럼 보이고 세상이 맘에 들지 않아지는 과정을 겪으면서 새로운 조언자를 만난다.그리고 누군가에게 조언자가 되기도 한다.

 

나는 늘 나에게 열중해 있었다. 늘 나 자신에게 그리고 마침내 한 번인생의 한토막을 살아보기를. 나에게 나온 무엇인가를 세계안에다 주기를 세계와 관계를 가지고 싸움을 벌이게 되기를 열렬히 갈망했다.

 

그에게 배운 가장 중요한 것은 나잔신에게로 가는 길 위의 또 한걸음이었다. 나는 당시에 열여덟살의 평범치 않은 젊은이였다. 수백가지 일에서 조숙하고 다른 수백가지 일에서 몹시 뒤쳐지고 무력했다. 때때로 다른 사람들과 자신을 비교하면 자주 우쭐하고 교만했으나 또 꼭 그만큼 자주 의기소침하고 굴욕스러워했다. 어떤 때는 자신을 천재로 생각하는 가 하면 어떤 때는 절반쯤 돌았다고 생각했다.또래들의 기쁨과 생활을 같이 하는 것이 잘 되질 않았고 자주 비난과 근심으로 자신을 소모했다. 마치 내가 절망으로 그들로부터 떨어져 있기라도 하듯이 마치 내게 삶이 닫혀져 있기다도 하듯이..

 

그 사이 나를 내면적으로 키워준 것은 학식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였다. 기분 좋았던 것은 나 자신 속에서 앞으로 나아감이었다. 나 자신의 꿈 생각 예감에 대한 커가는 신뢰였다. 그리고 내가 나자신 안에 지니고 있는 힘에 대한 늘어나는 앎이었다.

 

누구나 관삼 가질 일은 아무래도 좋은 운명하나가 아니라 자신의 운명을 찾아내는 것이며 운명을 자신 속에서 완전히 그리고 굴절없이 다 살아내는 일이었다.

 

내가 아벨이라고 믿었는데 어쩌면 표적을 가진 카인인지모른다는 두려움과 의심 그리고 스스로 누려왔던 따뜻하고 밝은 집과 부모님을 거부하고 싶은 충동이 성장의 과정이라면 참 아프고 힘든일이다.

세상에 공짜란 없고 쉽게 손에 넣을 수 있는 것이라면 가치가 높을 수 없다는 게  세상살이의 법칙이듯이 성장도 누군가의 도움으로 이루어 질 수 없고 누가 대신 할 수 없다. 다만 때가 달라서 누군가는 이르게 시작하고 누군가는 늦게 시작할 뿐이고 누군가는 둔감해서 혹은 안정적이어서 쉽게 겪기도 하고 누군가는 깊은 흉터를 남길만큼 길고 고약하게 겪기도 하는 것이다.

이 책에는 밑줄을 그을 만한 말들이 많았고 성찰하게 하는 구절도 많지만

지금 이 순간 나를 가장 끌어당기는 것은 데미안이나 피스토리우스 에바부인의 말들이 아니라 그 말들을 받아들이고 내것으로 만들어나거나 무시하는 싱클레어의 고민이 더 와닿는다.

여러가지 말들에 흔들리고 스스로를 고민에 빠뜨리면서도 점차 성장하고 있는 소년이 더 눈에 보인다. 이 성장이 어쩌면 한때의 방황일 뿐이고 치기였다고  판결이 나더라도 그것이 허무하고 의미없다고 할 수는 없을것이다. 한때의 방황이 모든 사람을 성장하게 하는 건 아니고 오히려 구렁텅이 속으로 몰아넣는 경우도 있지만 적어도 나자신에게 대해 이렇게 골몰히 집중하고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다면 그런 걱정은 접어도 되지 않을까

 

나이를 먹어서 읽은 책이어서 일까 이 책의 싱클레어도 호밀밭을 지키고 싶어하는 홀든도 모두 내 자식처럼 느껴진다. 한때는 나와 동일시 했던 인물들이 이제는 자식같다는게 좀 서글프기도 하지만 오롯이 혼자 흔들리고 격어내는 그들의 성장통만은 대견하고 아름답다

그리고 이제 그 성장통앞에 서 있는 내 아이도 이렇게 대견하게 고민하고 흔들리기를 욕심내 본다.

 아무것도 몰랐을 때 읽었던 느낌 그리고 세상을 조금 살아내고 읽었었을때의 느낌을 비교해보는 것도 꽤 괜찮았다.

내 아이가 처음 이 책을 그리고 호밀밭을 잡았을때  어떤 구절에 밑줄을 그을까..

그리고 시간이 흘러 다시 책을 폈을때도 그 구절에 마음을 나눌 수 있을까.. 새로운 밑줄이 생기고 지워질테지만 그 아이의 홀로가는 성장에 좋은 위안이 되어주면 좋겠다.

예전에 내가 그랬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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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좋은 날 - 씨네21 이다혜 기자의 전망 없는 밤을 위한 명랑독서기
이다혜 지음 / 책읽는수요일 / 2012년 9월
평점 :
품절


책을 많이 읽는 것이 과연 좋을까?

아이 엄마들 모임에서 나온 주제다.

아이가 책을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 책을 읽지 않은데 어떻게 하면  읽게 할 수 있을까

과연 책만 보는게 좋은 걸까

책을 많이 보면 어떻게 될까?

 

과연 어릴적 책을 많이 읽은 어린이는 어떻게 될까

아마.............. 책을 많이 읽은 어른이 되지 않을까

그냥 그런거 아닐까

책을 읽어서 똑똑해지고 출세하고 돈을 많이 벌고 유명해지고... 글을 잘 쓰게 되고 작가가 되거나...

뭐 그런게 아니라.. 책을 많이 읽었던 어린 시절을 가진 어른

그게 전부다... 현실은

 

책을 많이 읽어도 거짓말도 하고 가끔 사기도 치고 남의 가슴에 비수도 꽂고

게을러서 오후 느즈막한 햇살이 방안끝까지 찰동안 이불에서 뒤군다

뭐 책을 옆에 끼고 있는 것도 아니고 가끔 라면받침으로 쓰고 바퀴멀레 땓려잡을 때 쓰고 아이 수학문제 풀때 밑에 받침으로 쓴다.

외출때마다 책을 들고 나가지만 그냥 그렇게 들고나갔다 들어오는게 전부다

굳이 가방 무겁게 책을 넣을 필요가 없는걸 알지만 그래도 지갑과 함께 꼭 챙겨넣는다

없어도 그만이지만 그래도 왠지 허전한....

 

왜 책을 읽을까

일단.. 시간 보내가 좋다.

뭐라도 하고 있어야겠고 누군가가 없고 혼자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할때 책이 만만하다

굳이 읽지 않아도 된다. 펴놓고 멍하니 백일몽에 빠지거나 같은 문장을 무한반복하고 있어도 상관없다. 혼자 카페에 앉아 있기 무료하고 멋적을때 스마트폰으로는 눈이 침침하고 가물해지는 나이에 활자가 뚜렷하 책을 펴놓으면 괜찮다.. 읽지 않아도..

 

외로울때 누군가와 수다떨고 싶을때 ... 그러나 내가 듣고 싶지 않은 말을 듣기 싫을때

듣고 싶은 말만 쏙쏚 골라 듣고 싶을때 책은 괜찮다.

중간에 귀찮다 싶으면 그냥 탁.. 덮으면 그만이니까

그리고 허전하면 다시 펼치면 된다.

굳이 끝까지 읽지 않아도 상관없다. 중간에 말을 짤라먹어도 경우없다든가 무례하다는 말을 듣지 않아도 되니까...

 

그리고 조금씩 어딘가에서 잘난척할 거리도 생기고..

 

작가는 참 영악하다. 책을 딱 호기심느낄 만큼 보여주고 쓰윽 지나간다.

그래서...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궁금하다.

어쩔 수 없이 장바구니만 빡빡하다.

내일은 일단 도서관이나 가야겠다.

근데 꼭 내가 원하는 책은 대출상태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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