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저드 베이커리 - 제2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구병모 지음 / 창비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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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새살이 돋기 위해서는 상처는 필수불가결하나 조건이다? 였던가

 

상처를 입고나면 새살이 돋는다.

경우에 따라서는 상처가 덧나고 곪아서 썩어버리는 지경에 이르기도 하지만 그래도 소독하고 잘 갈무리하면 새살이 돋는다. 흍터로 보기 흉해지든 감쪽같이 원상복구가 되건....

그리고 그 새살은 각자의 몫이다.

 

 

예전 인생극장을 생각케하는 두가지 결말

두가지가 그다지 다르지는 않다,

언제나처럼 덤덤하고 건조하게 일상적이다.

깜찍하고 놀라운 헤피앤딩이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사람은 좀처럼 변하지 않고 시간을 되돌리건 되돌리지 않건 사람은 언제나 같은 순간에 비슷한 결정을 내린다.

다만 상처를 지나고 새살을 가진 소년이 성장했을 뿐이다.

 

한때는 그녀의 가장 최고작은 위저드 베이커리라고 생각했다.

초기작을 넘는 후속작은 없었다고,.

첨 읽었을때 놀라움 기가막힘이 너무나 강하게 남아있어서였을까

그 기대만큼은 아니고 이번에는 담담하게 읽힌다.

모든 상황들이 파악되면서 조금 심심해졌지만 대신 한구절한구절 고심하고 골라냈을 문장들이 눈에 보인다.

세상읭 물질계와 비물질계의 균형. 미묘한 시간의 비틀림등등을 묘사하는 솜씨도 예사롭지 않다.

결국 그동안 읽어왔던 그녀의 작품중에 제일 마음에 드는 걸 다시 확인한다.

최고니 뭐니 하는 평가는 내주제가 안되는 관두고 내 취향에 가장 맞고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것

 

 

만일 어떤 골목 모퉁이에서 위저드 베이커리를 만나면 나는 어떤 메뉴를 주문할까

살면서 수많은 그릇된 선택을 하고 그 선택에 대해 도망치고 싶어하고 숨고 싶어하는 일 없는 강한 조금은 뻔뻔한 사람이 되게 해달라는 건 어떨까

 

어떤 결론에 도달하든 그걸 살아내는 건 결국 내가 할 몫이라는 것

또 읽어도 그렇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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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영화포스터 커버 특별판)
줄리언 반스 지음, 최세희 옮김 / 다산책방 / 2012년 3월
평점 :
품절


지난학기 책모임에서 고전을 다시 읽으면서 꽤 깊은 울림을 준책이 데미안이었다.

예전에 읽었던 느낌과 다르게 이제는 데미안과 싱클레어의 시간을 지나 그들의 부모의 시간에 가까워진 나이에 다시 읽은 데미안은 또다른 세상을 보여주었다.

심오한 철학이나 데미안의 독특하고 깊은 사유의 세계보다는 평범한 싱클레어가 어떻게 변화해가는가가 더 관심을 끌었다고 했던 기억이 있다.

스스로를 부정하고 미워하고 그러면서 스스로에 대한 주체할 수 없는 그리고 알 수 없는 자신감이 혼재한 시절.. 사춘기라고 할 수도 있는 그런 성장기를 읽으면서 내내 내 아이를 떠올리고 나의 지난시절을 떠올리며 가슴이 먹먹해지기도 했다.

 

지금 또 이책을 읽으면서 어쩌면 싱클레어의 뒷이야기가 아닐까

아니면 그 아이들보다 조금은 더 평범하고 우리가 쉽게 볼 수 있는 요즘 아이들의 성장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물론 이 책은 성장기라고 하기엔 너~무 긴 성장기이기는 하다.

주인공의 나이가 60대라 성장기라고 해야하나 싶지만 결국 사람은 죽는 그 순간까지 성장을 멈추면 안된다는 걸 생각하면 진정한 성장기가 아닐까

20대 어느순간 훌쩍 커버린 이후 모든 성장이 멈추어버리기엔 남은 날들이 너무나 많다,

나이를 먹어도 온화하고 깊어지기는 커녕 점점 아집과 독선이 강해지고 사랑하고 이해하는 것보다는 미워하고 미워하는 것들이 자꾸 늘어가는 나자신에게 한참 실망하는 순간에 든 책이어서일까

 

토니의 어이없는 실수아닌 실수 그리고 그의 분위기 파악못함 도무지 알지를 못하는 단순성 그리고 뻔뻔하고 지극히 평군적인 삶이 주는 무게가 퍽!하고 다가온다.

딱히 찍어서 그가 무언가를 잘못했다고는 할 수 없다,

다만 예전 학창시절 그가 이야기했듯이 역사라는 것이 부정확한 기억과 불충분한 기억의 만남이라는 것 .......... 그것에 맞게 연결되었을 뿐이다.

한때 허세에 쩔었던 소년들이 눈군가 나와 다른 눈에 띄는 친구에게 흠모의 감정을 느끼고 열등괌과 자랑스러움을 동시에 느끼면서 청년이 된다. 그리고 지기 싫어하는 마음 드러내고 싶은 마음이 합쳐저서 어떤 편지를 보내고 잊는다.

아니 잊는다라는 건 옳지 않다.

과거는 잊혀지는 것이 아니라 기억된다. 다만 그 기억이 객관적인 사실들로 이루어 지느 ㄴ것이 아니라 개인적인 감정 , 정서. 그때의 날씨.혹은 그때 먹은 음식. 들었던 음악 등등과 포개어지면서 내가 보는 혹은 내게 보이는 진실로 변화한 것들이 기억이 된다.

기록하지 않고 머릿속에 넣어둔다는 건 그렇게 조금씩 변하기 마련이다,

기록도 그때 그 마음 그 기분이 나중까지 고스란히 전해지지도 않긴 마찬가지지만...

그리고 그 변형된 기억속에서 내가 스스로 별일 아니라고 느끼는 건 소멸되고 사소하지만 내게 중요한 일은 크게 확대되면서 새로운 질서를 가진다,

 

어쩌면 나는 대략 합의하에 결정된 역사가 더 안전하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전과 똑같은 역설이거나 즉 바로 우리 코앞에서 벌어지는 역사가 가장 분명해야 함에도 그와 동시에 가장 가변적이라는 것 우리는 시간속에 살고 그것은 우리를 제한하고 규정하며 그것을 통해 우리는 역사를 측량하게 되어있다.  p107

 

개인의 기억 역시  그런게 아닐까

 

시간이란 처엄에는 멍석을 깔아줬다가 다음 순간 우리의 무릎을 꺽는다. 자신이 성숙했따고 생각했을 때 우리는 그저 무탈햇을 뿐이다

 

요절하는 것보다는 늙은 것이 언제나 나은 법이다. 젊었을 때는 산날이 많지 않기때문에 자신의 삶을 온전한 형태로 기억하는 게 가능하다. 노년에 이르면 기억은 이리저리 찢기고 누덕누덕 기운것처럼 되어버린다.

 

스스로 질서를 부여한 기억속에서 인간이란 언제나 내가 이로운 것만 기억한다. 그리고 잊는다.

토니가 정말 성장하고 있다는 것 그것은 비록 자신이'평균치'의 인간으로 평균치의 삶을 살아온 지극히 평균치의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뭔가 의혹을 느끼는 순간 포지하지 않고 그 진실로 가까이 다가간다는 것이다. 물론 그 행동의 이면에는 누군가를 이해하려는 공감이 부족했고 자의적이었고 오만했던 행동도 있었다. 그러나 포지 하지 않고 들어가 결국 진실과 마주하고 내 기억속에서 사라진 그 사실 그리고 그 이면의 모습과 마주한다. 처절한 자기반성과 함께

결국 포기하지 않고 스스로를 깊이 파고 들어가는 인간이 성장하는 것일까

데미안이나 에이드리언이 될 수 없었던, 싱클레어조차 되지 못했던 평범한 인간 토니는 포기하지 않는 동안 계속 성장해왔다. 그리고 잔인한 진실앞에서 반성하고 후회한다.

 

신중하기 그지없는 삶을 살았던 내가 이긴적도 패배한적도 없이 다만 인생이 흘러가는 대로 살지 않았던가 흔한 야심을 품었지만 야심의 실체를 깨닫지도 못한 채 그것을 위해 섣불리 정착해버리지 않았던가 상처받는게 두려웠으면서도 생존력이라는 말로 둘러대지 않았던가 거지서납부를 하고 가능한 모든 사람들과 무난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살았을 뿐 환희와 절망이라는 말은 얼마지나지 않아 소설에서는 구경한게 전부인 인간으로 살아오지 않았던가 자책을 해도 마음 속 깊이 아파한적은 한번도 없지 않았던가.

 

주인공의 반서에 내 얼굴이 화끈거린다.

이렇게 살았으면서 이렇게 살고있다는 것조차 몰랐던 내게 쿵! 돌이 떨어진다.

책을 읽으면서 생각을 하고 이해를 하고 그리고 책장을 덮으면서 끝!이었다.

내가 공감을 하고 느끼면서도 끝!이었다.

알고 있다는 것 느꼈다는 것에서 한발도 나가지 못하고 내 속에  갇혀서 그것조차 몰랐다는 것을 이 책을 덮으면서 깨닫는다.

 

이 책에 숨은 대단한 반전이 사실 중요하지는 않았다.

엄밀히 따져 그의 잘못도 아니다.

에이드리언이 미성년자도 아닌 한사람의 성숙한 인간으로 스스로 선택한 일이고 선택한 결과이다. 결국 좋지 않고 아름답지 않은 마무리지만 그의 삶이라는 점에서,.. 누구의 삶도 경건하다는 입장에서 그를 존중한다.

평균치의 싦을 살던 주인공도 마찬가지로 경건한 삶이다,.

주도면밀하고 의도적으로 악의를 가진 행동은 아니다

 

그럼에도 그가 그 문제에 파고 들고 (그것이 노년의 따분함에서 비롯된 것일지라도) 포기하지 않고 공감하려고 애쓰면서 마침내 진실을 마주하는 것

그게 내게 없더라는 것..

이 책을 읽으며 내가 깨달은 것이다,

 

역사는 살아남의 자들의 회고담이라고 했던가

아직 살아갈 날이 많은 내가 조금 더 되돌아보며 나를 집요하게 파고 들어봐야할 때가 지금 이순간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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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마흔 번째 생일 사계절 아동문고 83
최나미 지음, 정문주 그림 / 사계절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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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행복 모든 이의 평안이 누군가 한사람의 보이지 않은 희생으로 이루어진다면 그건 진정한 행복이 아니다

명절을 앞두고 여기저기 하소연이 이어진다,

 

명절치루기. 손도 까딱하지 않는 남편들 잔소리하면서 휘어잡으려는 시어머니들

그 사이에서 뺀질거리거나 공손하거나  도전하거나하는 며느리들

명절에 친정에는 언제가야하는가

시집에서는 어떤 타이밍에 나와야 하는가

나도 내집에서는 귀한 자식이고 남들 못지않게 공부했고 노력했다. 그런데 왜 얼굴도 모르는 남편의 할아버지 아버지등등을 위해 나만 일해야하는가

한집안의 제사를 위해서 성이 다른 여자가 서로 갈등하고 힘들어하는게 과연 진정한 가족의 행복인가

멋지고 당당한 딸 . 나랑 통하고 아빠를 이해하는 딸은 괜찮지만

나대고 혼자만 생각하며 고집피우고 선머슴같은 딸은 곤란하다?

치매에 걸린 시모를 돌보는 건 오롯이 며느리 담당이다.

며느리가 제자리에 있으면 가족이 평안하고 아무일도 없는 것이고 그 일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는 순간 가족은 내팽개치는 것이고 나만아는 이기주의자가 되는 것이다?

남자처럼 당당하고 꿀리지 않게 살아가는 것이 어쩌면 다른 면에서 남자를 닮고 싶어하고 모방하는 또다른 폭력 혹은 비겁한 의미는 아닐까

 

주욱 읽어가면서 여러가지 생각이 든다.

하필 그 순간. 할머니가 아프기 시작한 무렵 내 일을 선언한 엄마가 밉다. 그렇게 이기적일 수가 없다.엄마만 참으면 모든 것이 만족스럽다.

아침마다 종종거리지 않아도 되고 고모들이 집을 들락거리지 않아도 되고 아빠가 늘 화난 상태로 있지 않아도 되고 언니 교복치맛단이 틑어져 벌점을 받지 않아도 된다. 엄마만 제자리에 있으면

그런데 엄마의 제자리는 어디일까

 

내가 편하고 아무탈 없는 일상을 살고 있는 이곳에는 보이지 않은 많은 노동들이 존재한다는 건 염연하나 사실이다. 그런 하위기반이 없이 저혼자 잘난 사람은 세상에 하나도 없다.

단지 그걸 잊고 있는 것이다.

세상에 공기가 있어 숨을 쉬고 물이 있어 살아가고 있다는 걸 평소엔 생각하지 않듯이

단지 매연이 심해지면 투덜거리고 목이 마를때만 고통스러울 뿐이다. 당장 달콤한 음료나 내 정신을 쨍하게 깨워줄 카페인이 든 커피만을 바라보고 신선한 공ㄱ이를 위한 공기청정기에 관심을 쏟을 뿐 공기 물.. 그 존재는 잊는다.

살면서 우리주변에 보이지 않는 사람들 노동들은 그냥 공기이고 물일 뿐이다.

엄마... 라는 것도 그렇지 않을까

제자리에 있으면 편하지만 없으면 티가 나는 것

그래서 엄마들이 하는 살림이라는 것이 그렇게 안할때만 티가 나는 건지도 모르고

 

인물들이 살아있고 끝까지 지가의 정체성을 버리지 않고 끌고간다. 쉽게 하하호호 화해하지 않는 것도 맘에 든다. 사실 현실에서도 쉽게 해결하기 힘든 문제다

가영이 아빠같은 사람이 보통이고 또 그렇게 나쁜 사람이라고 할 수도 없다.

각기 자기자리에서 제 할일을 하는게 뭐가 나쁘냐는 것 , 그리고 40년을 그렇게 교육받고 인지하고 살아온 사람이 갑자기 죽을 날을 받아놓은게 아닌 이상 바뀔리는 없다.

절대 변할거같지 않은 가부장인 아버지

조용히 할말 다하면서 내 권리를 주장하는 엄마

그리고 쿨하고 이기적인 그래서 때로는 도피처가 되기도 하는 언니

내가 돌봐줘야할 막내동생같은 친구 주환이

그 사이에서 가영이가 점점 자라고 있다.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을 이해하기 시작했고 좋아했던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게 되지만 결코 미워하지 않는다.

항상 내가 그 입장에 되지 않으면 모든 걸 알 수 없다.

축구시합 사건이 없었다면 가영은 끝내 엄마를 이해못했을 수도 있다.

가영은 여자로 태어났지만 어쩌면 사고방식은 철저한 남자아이인지도 모른다.

누군가 희생은 당연하다는 것.. 뭐 그건 조금 이기적인 사람이면 남녀없이 할 수 있는 생각이기도 하지만 .. 모든 딸들이 엄마를 다 이해하는 것도 아니지 않는가

내가 엄마이고 아내이고 며느리이기전에 나 자신으로 살고 싶다는 것

그리고 그렇게 꿋꿋하게 살아내는 엄마 윤서영씨에게 박수를 쳐주고 싶다.

설령 지금의 별거가 쭈욱 이어질지모르겠지만... 후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결국 딸들도 엄마를 이해하기 시작했으니까

 

이 작품에서 독특한 캐릭터.. 언니 가희다

꽤 시니컬하고 잘난척하며 극도의 이기심을 보이면서도 한순간 여러지며 눈물 흘리고 세상에 드러내어 창피한 일의 기준이 제나름 독특하다는 것...

꽤 매력적인 인물이다.

그리고.. 의외로 가영이 고모들이 착하다.

올케의 반란에 뭐라고 하더라도 결국은 함께 도와주는 것  뭐 좋은 마음으로 하는 건 아니겠지만

그래도 당번이라고 항상 와준다는 것 그 자체는 꽤 괜찮은 편이다.

손아래 올케라고 무시하고 맘대로 하지 않는 것은

뭐 구성상 그것까지 넣으면 이야기가 너무 복잡해지려나?

나의 평범한 일상이 누군가의 도움으로 이루어진다는 것

그 누군가에게는 그게 의무이고 직업일지라도 나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라는 것이 늘 감사하며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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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운
김애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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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애란을 첨 만난건 '두근두근 내인생''이었다

그전에 달려라 애비를 보았지만 사실 대충읽어서 기억나질 않는다.

그리고 이쁜 표지에 반해 구입한 책 두근두근을 읽으면서 혼자 감동했다.

내가 소설을 보면서 감동하는 건 참 드문데.. 이전에 심윤경을 읽으며 콧물흘려가며 울어본 이후 첨으로 느낀 먹먹한 감정이었다고... 기억한다.

책날개에 나온 작가의 사진을 한참 들여다 보면서.. 젊다는 건 참 좋은거구나.. 하는 엉뚱한 생각마저 했다는 것도 기억난다.

그리고 이번에 '비행운'을 읽었다.

책을 펼쳐 차례를 훓어보면서'비행운'이라는 제목의 단편을 찾았다. 한심스럽게도

그런 제목의 작품이 있다고 생각했다.

없네...

그냥 작품집에 제목을 달았구나

 

그리고 첫작품부터 읽어내려갔다.

음... 그렇구나

참 안쓰럽고 창피했겠구나.

도데체 남자들은 무슨 생각인지등등등

사실 '하루의 축'까지 읽으면서는 그냥 덤덤했다. 그녀들의 혹은 그들의 非幸運에  답답하고 마음아프다는 것.. 그러나 큐티클을 읽고 호텔 니약 따에 넘어가면서 이젠 더이상 널널한 자세로 읽을 수가 없다. 이건 더 이상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내가 내 아이들이 겪어야할 현실의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 마지막 방점을 찍은 것이 '서른살'의 수인이었다.

작가의 의도였는지 편집자의 의도였는지 아니만 아무생각없는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작품의 순서가 내게는 기가 막히게 충격이었다.

이런 일도 있을 수 있지 , 이런 일 가끔 신문이나 인터넷에서 보지? 속상한 일이지 세상이 잘못되고 있지 그런데... 그런데.. 이게 남의 일은 아니야 내 일일수도 있고 내 아이에게 생길 수도 있는 일이지

이건 소설속에서 나오는 소설같은 이야기가 아니라 내 이야기이고 지금  현실이야.

 

 

힘든 건 불행이 아니라 행복을 기다리는게 기져운 거였어.

 

너는 자라서 내가 되겠지. ,,,겨우   내가 되겠지..

 

절친이던 은지와 서윤을 갈라서게 한건 두사람의 탓이 아니다.

졸졸 흘러내리던 물이 바위를 뚫는게 아니다. 그 물을 끊임없이 받아내던 바위가 자신도 모르게 약해진 틈을 가지고 그틈에 들어온 한방울이 바위를 가른다.

미지근한 냄비속의 쥐가 처음부터 익혀지는게 아니듯 서서히 그 온도에 익숙해지다가 마침내 임계점에서 익숙한채 죽어버리는 것이다.

서윤이도 은지도 그렇게 알수없는 균열과 피로감에 멀어진다. 그들탓에 약하디 약한 우정때문에?그게 아니라는 건 그녀들도 나도 그리고 당신들도 알고 있다 다만 모른 척할 뿐이고

그들의 문제이니 그들이 해결할 일이라고 미룰 뿐이다.

수인이 다단게에 빠진것도 그녀가 나약하고 무지해서가 아니다.

그녀가 헤미를 끌어들이고 모른척 하는 건 그녀 탓일까

우리가  먼저 수인이를 끌어들였다는 건 증거가 남지 않은 것이니 모른척하면 그뿐일까

 

앨리스에서 세경도 알았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바뀌지 않을때는 내가 잘못해서가 아니라는 것 그럴때는 세상에 화를 내야한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알았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

그녀도 결국 샤회장을 이용할 생각응ㄹ 할뿐이니까.

그건 분노가 아니라 그냥 비겁이고 방편이다,.

 

소설속 인물은 분노도 하지 않는다. 아니 하지만 그 대상이 결국 나보다 약한 것에대해서도

남자친구가 내가 흠모한 선배가 날 이용하듯이 나도 나보다 약한 제자나 내곁에 가장 만만한 비슷한 친궁에게 분노하는 것뿐이다.

이렇게 우리가 서로에게 가장 만만한 누군가에게 분노하고 있다면 서로 상처를 입을 수밖에

그런데 방법은 모르겠다. 일단은 분노밖에는...

 

 

겨울방학내내 아이를 다그쳤다.

새학년이면 이제 중학생인데 이렇게 펑펑 놀아서 뭐가 될거니?

아이는 나름 최선을 다했다. 학원을 열심히 다녔고 숙제를 열심히 했고 나름 엄마표 숙제도 열심히 했다. 아이가 할 수있는 최대한

하지만 나는 성에 차지 않았고 잘 하는 건 당연하고 못하는게 이상하다는 정말'이상한 논리'로 아이를 다그쳤다.

힘들다고 징징거리고 아이가 학원에선 문제풀이가 정신이 없다고 하소연할때 나는 폭발해서 이번엔 학원 선생에게 다다다 거렸다. 아이가 학원 난방비내러 가는거야고..

 

이렇게 다그치고 최선을 다하라고 하고 노력하라고 하고 노력하면 좋은 대학을 가고 좋은 대학을 가면 좋은 직장을 얻고 좋은 삶이 기다린다고... 차마 말을 못한다.

그게 가능한 때도 분명 있었고 지금도 가능한 일이기도 하지만.. 모두가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라는 비밀도 알고 있다.

노력이 모두가 될 수도 없고 한만큼 받아내는 정직한 세상이 아니라는 것 .. 어짜피 그때도 지금처럼 불평등한 세상이었음에도 그래도 뭔가 희망이 있었떤거 같은데 지금은 오히려 희망고문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 결국 자라서 내가 될거같은 아이를 보면서 다그치면서 내가 나를 속이는 느낌

하지만 그래도 죄선을 다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모범시민다운 죄의식도 가지면서 그렇게 방학이 끝났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 도서관에서 빌려온 김애란의 책이 나를 그 혼란으로 다시 몰아넣는다.

아이와 드라마 '학교'를 보면서도 그랬다

저게 현실이구나 아이들이 불쌍하구나.. 그렇지만 현실에도 정인재와 강세찬샘이 있기는 한지 불신이 먼저 들고 늦지 않게 반성하는 민기엄마가 과연 존재할 수 있는 건지도 의문이었고

오히려 경민이나 은혜가 현실이라는 비겁하고 불신에 가득찬 결론만 내렸었다.

 

모든것이 세상탓이라고 하기엔 죄스럽고 그렇다고 내 개인이 모든 걸 책임져야한다고 결연하게 다짐하게엔 뭔가 억울한 우리는 과연 어디로 가야할까...

 

 

이건.. 리뷰는 절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글이 산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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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기상 분명 입춘이었는데도 눈이 내린 날

도서관 봉사날이기도 했다.

방학마치고 간 도서관은 어수선하다.

학년별 윤독도서가 다 돌아와서  선반마다 쌓여있고 이제 정리해야할 책들도 모아서 쌓여있고

그리고 새로 들어온 아직 비닐 커버도  입지 못한 새책들도 줄지어 있다.

책정리를 하는 틈틈히 성인용신간을 둘러본다.

오라...

내가 장바구니에 넣어둔 책들이 보인다.

치솟는 물가에 졸라매야할 가게부에.. 알라딘 장바구니 담긴 책들이 결제를 봇받은지도 어언 한달이 넘었는데... 길이 없진 않구나

 

냉큼 다석권을 빌린다.

 

 

 

누가 빌려가지 않아 접힌 부분하나없이 빳빳하고 빈틈없어보이는 책이 조금 부담스럽긴 했다.

여기 뭘 묻혀도 조금이라도 구겨도  안될거 같은 예감들

무심코 읽어내려가다가 결국 하루에 다 읽었다.

마지막 반전이라고 하는 광고에 끌려 집어든 책이지만 사실 그 반전이 중요한 건 아니다.

얼핏 영화' 올드보이'가 떠오르는 장면들도 있었지만 무심한 내 행동의 파장... 그리고 다가오는 예감 등등의 문제보다 정확히"평균치' 삶을 살았던 주인공 토니의 평범하고 일상적인 삶이 주는 무게감때문이었다.

잘난것도 없고 그렇다고 빠지지도 않은 외모 (물론 말년에 대머리가 되기는 하지만) 지성 학력 직업 그리고 가족사들 졸업하고 방황하고 취직하고 결혼하고 자녀가 생기고 이혼하고 은퇴하고 봉사하고 사는 평범하고 일상적인 삶에서 느껴지는 불안함  공포감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난 아무런 잘못을 하지 않았고 내가 순간순간 상대를 보고 느끼는 감정 판단들이  틀렸다고 할 수는 없지만 내 속에서 내기 믿는대로 축적되어버린 진실들 때문에 얼마나 많은 것들을 놓치고 살았고  상처주고 살았고 속고 살았는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사실 토니가 큰 잘못을 했다고는 할 수 없다. 에이드리언도 이미 성인이고 사리분별력이 있고 판단력이 있는 지성인이니 그의 불행을 누구의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

하지만 나비이론까지 끌어다 붙이는 건 너무 거창할지 몰라도  나의 사소한 행동이 가져오는 무시무시한 파장에 대해서 생각해볼 문제이다.

그리고 내가 가지고 있는 기억들이 온전한 것인지 한번은 의심하고 돌아볼 필요도 있다는 것

우리가 진실이라서 믿는게 아니라 믿으니까 그게 진실이라고 여기는 것들에 대해서도

내가 본 것 . 내가 들은 것. 내가 느낀 것. 그때의 나의 감정들 그리고 나의 판단이 항상 옳지 않다는 것 어떤 사람이나 사물 말과 몸짓은 또 다른 방향에서는 다르게 읽혀질 수도  있따는 사실들

마지막 장을 넘기면서 나도 모르게 다시 첫장으로 손이게가 하는 책이었다

무탈하고 편해서 따문하기까지한 일상과 평범한 행동이 거져오는 무시무시한 폭력이 더 무섭다는 것

다시 한번 느낀다.

 

역사는 살아남은 자. 대부분 승자도 패자도 아닌 이들의회고담에 더 가깝다는 것을....

 

신중하기 그지 없는 삶을 살았던 내가 이긴적도 패배한 적도 없이 다만 인생이 흘러가는대로 살지 않았던가 흔한 야심을 품었지만 야심의 실채를 깨닫지도 못한 채 그것을 위해 섣불리 정착해버리지 않았던가

상처받는게 두려웠으면서도 생존력이라는 말로 둘러대지 않았던가

고지서 납부를 하고 가능한 모든 사람들과 무난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살았을 뿐 환희와 절망이라는 말은 얼마 지나지 않아 소설에서나 구경한게 전부인 인간으로 살아오지 않았던가 자책을 해도 마음 속 깊이 아파한 적은 한번도 없지 않았던가...

 

 

책 초반에 에이드리언이 인용했던 말

역사는 부정확한 기억이 불충분산 문서와 만나는 지점에서 빚어지는 확신..

 

내가 옳다고 믿는 것들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들에 대해 한번쯤 뒤집어 보고 반성할 필요가 있다

그걸 알게 해준 책

그리고 내가 한때 역사를 전공했었다는 걸 기억하게 해준 책....이다...

 

 

 

아휴 도데체 이 작가는 뭐지?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었다.

다시 책 날개를 보면서 작가의 나이를 계산한다.

이미 다 살아서 세상을 저기 위에서 내려다 보는 듯한 무심하고 담담하게 써내려간 글들 사이에서 자꾸 눈물이 흐른다.

작가는 담담하게 서걱거리는 마음으로 건조하게 썼을지도 모를 문장들이 자꾸 내 목에 걸려서 꺽꺽대게 만든다.

하나도 낯설지 않은 것이 없다.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건  앞이 깜깜한 절망이 아니라 손에 닿지도 않는 한줄기 빛이 저 멀리는 반짝이는 것을 보는 것이라고...

차라리 모든 것이 막막하면 포기라도 하겠지만 미약한 희망이 보이고 내가 조금만 더 노력하면 닿을 듯한 용기를 가질때가 자장 무섭다,.

어두움앞에서는 목놓아 올어버리거나 욕을 하면서 누군가를 탓할 수 있지만 한줄기 빛앞에서 내가 무기력해질때는 그것은 오롯이 나만의 책임이다.

누굴탓할 수도 없고 책임을 전가할 수도 없고 그저 나 자신이 죄인일 뿐이다.

책속의 인물들 누구하나 열심히 살지 않은 사람이 없다. 한줄기 희망을 바라보면서 그게 손에 닿지 않는 신기루라는 걸 알지만 그래도 바라보고 있다는 것에 위안을 얻으며 그 빛으로 한걸음씬 내딪지만 그럴수록 조금씩 그 빛은 뒤로 물러난다. 아주 닿을 수 없는 곳으로 가는 것도 아니고 놀리듯이 장난치듯이 딱 한걸음만 뒤로 달아나는 통에 포기할 수도 없다.

미영이... 기옥씨가 용대가... 신혼의 임산부가 은지와 서윤이 잘못 살고 있는 건 절대 아니다.

그들은 정말 아둥바둥대며 최선을 다해 산다.

이게 정말 최선입니까?

신이 건조하고 냉정한 목소리로 몯는다면 그렇다고 자신있게 대답할 수 있을 만크므 최선을 다해 그 자리에서 할 수있는 모든 걸 다 하고 있다.  그런데... 변하는 건 없다.

그게 정말 무서운 일이다.

아프니까 청춘이고 흔들리지 않으면서 피지 않은 꽃은 없다고 하지만 아프기만하고 흔들리기만 하지 꽃이 필 기미는 보이지도 않는다. 아직 덜 아파서일까 덜 흔들려서일까 그렇게 자책하고 미안해하기만  할 뿐이다.

얼마전 끝난 드라마 ' 청담동 앨리스'가 생각난다.

거기서 주인공이 그랬다. 정말 노력하고 또 노력했는데도 전혀 나아지지 않으면 그때는 세상을 향해 화를 내야하는 거라고...

정말 세상을 향해 화를 내고 소리쳐야 하는 그 순간에도 우리 못난  주인공은 제 주변사람들을 먼저 들볶고(그것도 저보다약하거나 비슷한) 스스로  부끄러워한다. 그리고 자기들 끼리 갈등을 만들 뿐이다. 은지와 서윤처럼,.

그리고 서른살의 그녀처럼 모른 척하면서 엣제자를 다시 속이고 끌어들인다.

큰 욕심 낸적없고 조금만 지금보다 조금 큰 창을 조금 다 따뜻한 볕을 가지고 싶었을 뿐인데 그들은 모두 그자리에서 맴돌거나 더 아래로 추락할 뿐이다.

 

너는 자라 내가 되겠지.............겨우 내가 되겠지.

 

저주의 주문처럼 무서운 구절이다.

겨우 내가 되려고 그렇게 아둥바둥 이더냐..너의 빛나는 절음도 시들면 결국 내가 되는 것뿐이라는 ..너같은 새끼 낳아봐라는 말보다 더 무서운 저주...가 가슴이 박힌다.그래서 마지막 작품을 다 읽고서는 결코 수인을 나무랄수만도 없다.

 

내가 가진것을 물려주려고 혹은 나처럼 되라고  법대로 혹은 법의 이면을 걸어가는 사람들이 있고

나처럼 되지 말라고 비법하게 눈감고 수를 부려봐야 겨우 나밖에 안되는 사람도 있고..

세상은.... 그렇더라

차승조는 결국 아비가 사준 그림값으로 성공했던 거였고 한세경은 그런 행운조차 가질 수 없는 비행운의부류라는 것

드라마니까 두 개의 다른 부류가 만나는 교집합 부분이 생긴거고 소설에서는 비행운의 인간은 절대 행운의 인간을 만날 기회조차 없다

 

세상을 정면으로 응시하면서 어떤 감정도 없이 담담하게 무심하게 써내려간 글을 읽으며 가슴이 먹먹하다.이 글을 꼭꼭 씹어가며 읽어서 내 속에 담아두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이게 아닌데 싶을때 뭔가 억울할떼 다시 꺼내봐야겠다는 생각....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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