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파람 할아버지 비룡소 걸작선 41
울프 스타르크 지음, 안나 회글룬트 그림, 최선경 옮김 / 비룡소 / 2005년 5월
평점 :
절판


외할아버지가 없는 소년이 있었다. 친구의 외할아버지 이야기를 듣고 자기도 외할아버지를 갖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두 친구는 함께 양로원에 갔고 거기서 멜방 바지를 입고 친구와 똑같이 턱에 반창고를 붙인 닐스 할아버지를 만난다.

친구 베라때문에 오긴 했지만 우쎄는 닐스 할아버지를 외할아버지로 삼기로 했다.

그리고 함께 커피를 마시고 빵을 먹고 이야기를 하고 용돈을 받았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우쎄는 베라와 함께 할아버지를 찾아갔다. 함께 외출을 해서 할아버지가 아끼는  이야기가 담긴 실크 스카프와 넥타이로 연을만들기도 하고 누워 있는 할아버지와의 대화를 통해서 서로를 알아가고 좋아하는 걸 알게 된다. 그리고 함께한 외할아버지의 생일 세 사람은 함께 외출을 하고 할아버지가 좋았던 기억으로 남은 버찌서리를 하고 즐거운 시간을 갖는다.

세상엔 쉽게 되는게 없단다. 연습만 하면 된다. 연습없이 되는 건 아무것도 없단다.

그렇게 서로 만나고 익숙해지고 서로 할아버지가 되고 손자가 되는 연습을 하면서 서로 알아간다.

그리고 닐스 할아버지에게 휘파람 부는 법을 배운 우쎄는 열심히 연습한다.

연습만 하면 되는 거니까..

다음에 만날땐 꼭 휘파람을 불어주기 위해 양로원도 가지 않고 연습한다 또 연습한다.

그리고 마침내 휘파람을 불 수 있게 된 날 두 아이는 길가에 핀 가장 아름다운 장미 한송이를 꺽어서 양로원으로 간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없다.

토요일 두 아이는 교회로 가고 우쎼는 마지막으로 할아버지에게 휘파람을 불어드리고 드디어 바람이 부는 언덕에서 연을 날린다.

함께 한 일상이 시간은 힘이 쎄다. 함께 먹고 마시고 자고 웃고 화내고 빈둥거리는 동안 보이지 않는 시간들은 차곡차곡 쌓여간다. 특별한 무언가가 있지 않아도 괜찮다. 함께 빈둥거리며 텔레비젼을 보거나 서로가 먼 산만 바라보면서 말없이 한참을 앉아 있어도 상관없다. 밥상에 앉아서 서로 대화가 없이 그냥 묵묵히 밥먹을 입만 벌려가며 있어도 상관이 없다. 그냥 그런 일상들이 쌓여서 추억이 될테니까.. 사실 그랬다 지난 더운 여름 아버지를 보내고 이제 더이상 그런 조금은 어색하고 미안하고 불편한 일상을 반복할 수 없다는 사실이 슬펐다. 뭔가 미안하고 잘못한 일들 좋았던 기억이 떠오르는 것이 아니었다. 그냥 귀찮아하면서 한귀로 흘려가면서 들었던 잔소리같은 것들 건성으로 대답하던 것들 그리고 사소한 반찬 투정들 툴툴거리는 짜증들 어쩌면 가까워서 어색하고 묻기가 난감했던 안부들이 이젠 그립다. 귀찮았던 전화통화  사소한 습관이 주는 불편함혹은 어색함이 이제는 그냥 추억이 되어버렸다. 살아있는 동안은 그저 시간이 쌓이는 일상이지만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순간을 건너면 그 모든 것은 추억이 되어버린다. 추억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겁고 무서운것인가를 처음 알았다. 그저 낭만적인 것 아름다운 것만이 아니다. 어쩌면 추억이라는 것은 이제 더이상 함께 할 수 있는 일상이 아니라는 의미이기도 하다는 걸  여름을 견디면서 알았다.

예전 아버지가 암수술을 하고 회복하시는 동안 서울에 머물렀었다. 그때 난 무슨 베짱인지 아무리 암이어도 아버지가 돌아가실 리가 없다고 믿었다. 목숨이 오가는 심각한 암이 아니었다는 이유도 있지만 60을 앞둔 나이에 암이라는 건 보통일은 아니지만 난 아버지가 아무렇지도 않게 내 곁에 계실거라고 믿었다. 그건 믿음이 아니었다. 사실 이렇게 아비없는 딸이 되고 싶지 않다는 억지였고 투정이었고 궤변이었지만 괜찮을거라고 믿었고 내가 당시에 임신중이라는 핑계로 병원엘 자주 가지도 않았다. 어쩌피 고비를 지나면 괜찮아질거라고... 냉정하고 무심한 딸이라고 했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병원이 두려웠다. 가면 아픈 사람만 있고 조금이라도 덜아프다는 것이 축복일 수 있는 공간이 두려웠다. 내가 병원에 가면 사실을 봐야하고 인정해야한다는 게 두려워서 그냥 욕을 먹고 피하자는 마음이 컸던거 같았다. 어쩌면 누구보다 다른 형제보다도 겁이 많아서였을지도 모르겠다.

하여간 아버지는 병을 이겨냈고 당분간 부산 집으로 가지 않고 서울에서 회복기를 가졌다.

그때 아버지를 모시고 인사동으로 삼청동으로 안국동으로 간 적이 있다.

인사동 끝머리에 있는 조금에서 솥밥을 먹고 안국역을 지나 선재미술관을 지나 한옥이 있는 거리를 걸었다. 그땐 아버지는 목소리 잃었지만 걸음걸이는  편안했던 걸로 기억한다. (아예 말을못하는게 아니고 가래 끓는 소리를 내기 시작한 무렵이었을 것이다.)

예전 당신이 대학 다닐적에 입주과외를 했던 동네라고 하셨다. 당시 동숭동 대학을 다니면서 학비를 벌기위해 이 동네 어느 부잣집에서 입주과외를 했다고 아마 선재 미술관이 그 근처가 아닐까 싶다는 말들. 그때 남의 집이라 눈치를 많이 봤다는 것.. 배가 고파도 늦게 들어오면 밥을 달라고 할 수 없었다는 것 그래도 부잣집이라 먹거리에 궁색하거나 인색하지 않았지만 왠지 자격지심에 달라고 먼저 말한 적 없다는 것.. 그 때 학생은 지금 미국에 이민가있다는 것등등... 혼잣말처럼 하신 게 생각이 난다. 아마 그때도 난 건성이었을 것이다. 아버지의 고학이야기야 이미 알고 있는 것이고 아.. 이 부근이었구나 하는 생각 이상 한 적이 없었다. 어쩌면 아버지와 단 둘이 데이트라고 할 수 있는 마지막 시간이라는 걸 그땐 몰랐으니까. 그 순간이 일상에서 추억으로 변해버릴 수 있다는 걸 그땐  몰랐다. 난 배가 부른 임산부였고 아버지는 암수술과 항암치료를 하는 환자였다.

그래서 느린 걸음으로 동네를 돌고 다시 인사동으로 와서 차를 마시던 기억이 난다.

어쩌면 조금 깊은 속내를 이야기 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냥 건성이었고 무덤덤했고 묵묵했다.

지금 그게 많이 아프다. 몰랐다는것도 미안할 수 있다는 걸 그땐 몰랐다...

그래서 이 동화책속의 우페가 부럽다. 무언가를 도모하고 이야기거리를 만들어내고 관심을 가지고 상대방을 바라볼 줄 아는 아이. 아이가 나보다 어른이다. 그래서 우페는 할아버지 장례식에서 담담하게 휘파람을  불 수 있었을 것이다. 난 그저 미안하다고 정말 미안하다고 이렇게 갑자기 가실 줄 몰랐다고만 할 뿐이었는데.. 게다가 이건 반칙이라고 억지를 부리고만 있었다.

우페의 추억은 아름답게 기억될 것이다. 두 사람이 쌓은 일상은 담담하고 편안하다.

나는 .. 나도 담담하고 아름다운 추억이 많을 거라고 믿는다. 미안한 순간이든 아름답고 고마운 순간이건 이젠 그저 일상을 넘어선 무언가가 되었으리라 믿고 싶다.

내가 아버지를 많이 좋아하긴 했다는 걸 너무 늦게 알아버린것도.. 이젠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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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문장들 청춘의 문장들
김연수 지음 / 마음산책 / 2004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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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가 생기면 제일 먼저 자전거 앞자리에 태우고 싶었다. 어렸을 때 내 얼굴에 부딪히던 그 바람과 불빛과 거리의 냄새를 아이에게 전해주고 싶었다. 아버지에게 받은 가장 소중한 것 , 오랜 시간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고 오랫동안 남아 있는 것. 집이 있어 아이들은 떠날 수 있고 어미새가 있어 어린 새들은 날갯짓을 배운다. 내가 바다를 건너는 수고를 한 번이라도 했닫면 그건 아버지가 이미 바다를 건너왔기때문이다. 나도 이제 열무를 위해 먼저 바다를 건너는 방법을 배워야 겠다. 물론 어렵겠지만..."  p 30-31

 

 

 

.그 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간 것일까. 다른 어떤 동물도 죽을 줄 아는 길로 걸어가지 않는데 왜 사라만은 그게 자기를 파멸시키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스스로 눈을 찌르는 것일까.....p49

 

 

 

'.... 키친 테이블 노블이라는 게 있다면 세상의 모든 키친 테이브 노블은 애잔하기 짝이 없다. 어떤 경우에도 그 소설은 전적으로 자신을 위해 씌여지는 소설이기때문이다. 스텐드를 밝히고 노트를 꺼내 뭔가를 한없이 긁적여 나간다고 해서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런데도 어떤 사람들은 짖장에서 돌아와 뭔가를 긁적이는 것이다. 그러고 이상한 일이지만 긁적이는 동안 자기 자신이 치유받는다. 그들의작품에 열광한 수많은 독자들에게 미안한 일이지만 키친 테이블 노블이 실제로 하는 일은 그 글을 쓴느 사람을 치유하는 일이다. "  p 60

 

 

"그렇다면 왜 쓰는가? 사회를 개선시키기 위해? 문학을 쇄신하기 위해? 인류를 사랑하기위해? 아니다 아니다 아니다 질문에 부정이 계속되었지만 그 해답은 찾을 수 없었다. ..........)중략) 그렇게 한달 정도 썼을 때쯤 이었다. 컴퓨터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들었더니 밤하늘이 보였다. 문득, 고독해졌다. 나는 지금 소설을 쓰고 있다. 오직 그문장에만 해당하는 일을 나는 하고 있었다. 그 소설이 어떤 평가를 받을 ㅣ 그 소설로 인해 내 삶에는 어떤 변화가 있을지 그런 생각ㅇㄴ 하나도 들지 않았다. 그저 ㄴ는 지금 소설을 쓰고 있다. 그 문장뿐이었다. 그리고 그때까지 살아오면서 받았던 모든 상처는 치유됐다. 파스칼ㄹ의 회심과 같은 대단한 일이 일어난것은 아니었다. 나는 다만 나는 지금 소설을 쓰고 있다 라는 문장에 해당하는 행위가 어떤 것인지 단숨에 깨달으면서 파스칼의 지복과 비슷한 감정을 잠시 느꼈다는 말이다."p66

 

 

"..다음날 이삿짐 트럭을 타고 언덕길을 내려가면서 나는 그 언덕에서의 삶이 내겐 봄이었다는 사실을 ㄲ개달을 수 있었다. 꽃시절이 모두 지나고 나면 봄빛이 사라졌음을 알게 된다. 천만 조각 흩날리고 낙화도  바닥나게 되면 우리가 살았던 곳이 과연 어디였는지 깨닫게 딘다. 청춘은 그렇게 한두 조각 꽃잎을 떨구면서 가벼렸다. 이미 저버린 꽃을 다시 살릴 수 있다면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 "  p 152

 

 

 

" ....살아오면서 나는 많은 것을 배웠다. 영어 가정법 문장을 어떻게 만드는지도 배웠고 3차 방정식을 그래프로 옮기는 법도 배웠다. 하지만 내가 배운 가장 소중한 것은 내가 어떤 사람일 수 있는지 알게 된 일이다. 내 안에는 많은 빛이 숨어있다는 것 어디까지나 지금의 나란 그 빛의 극히 일부만 보여주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일이다. .....(중략)연잎이  주름지고 또 시든다고 하더라도 한때 그 푸르렀던 말들이 잊히지는 않을 것읻. 내게도 그처럼 푸르렀던 말이 있었다. 예컨대 글을 잘 읽었다. 라든가. 그거 좋은 생각이구나 네가 어떤 시를 쓸지 꼭 보고싶다. 같은 말들.. 그런 말들이 있어 삶은 계속되는 듯하다.p196

 

 

 

" 김시습이 맞닥뜨린 어둡고 어두울 정도로 어두운 밤은 아니었지만 중학교 2학년 시절 나도 어둡고 어두운 어둠을 본 적이 있었다. 그 어둠을 보지 못했더라면 나는 아주 하찮은 조각에 불과알지도 모른다. 어둠을 똑바로 바라보지 않으면 그어둠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 제몸으로 어둠을 지나오지 않으면 그 어둠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  어둡고 어두울 정도로 가장 깊은 어둠을 겪지 않으면 그 어둠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 그건 중학교 2학년생에게는 너무 가혹한 수업이었지만 또 내 평생 잊히지 않는 쉅이기도 했다." p 202

 

한권의 책을 읽고 누군가를 안다고 한다는 게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지 얼마나 위험한 짓인지는 잘 알고 있지만 이 한권을 읽고 나니 이 작가라기 보다는 인간 "김연수"에 대해 조금 알거 같다는 건방진 생각이 들었다.비슷한 때에 학교를 다녔고 같은 노래를 들었고 얼추 닮은 경험치를 가져서는 아니다.

 

어쩌면 살면서 가장 비루하고 찌질했던시절에  한줄의 글이나 한권의 책이 준 위안을 풀어놓은 이 책이 그땐 나도 그랬다는 그리고 이미 시간이 한참 지난 지금 나도 이렇게 한권으로 위안을 받을 수도 있다는 걸 배운다.

작가가 앞에서 다시는 이런 글을 쓸 일이 없을거 같다고 한 것 삶을 설명하는데는 한문장이면 충분하다는 깨달음을 얻게 된 것처럼 나도 더 이상 돌아볼 시간은 없다.

돌아본다고 되돌릴 수도 없고 그 모든것이 다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시간이 흘러도 추한 것은 여전히 추하고 비루한 것은 비루하며 부끄러운 것은 낯도 들지 못하게 부끄럽다. 그래도 어쩌랴 그게 모두 내가 살아오고 저지른 나의 삶인 것을

작가는 그렇게 자기의 단편들을 솔직하게 드러내면서 아련해지기도 하고 희미하게 미소짓기도 하고 많이많이 미안해하기도 한다. 나도 함께 였다.

왜 김광석은 그 젊은 나이에 죽었는지.. 왜 꽃잎이 피는 것이 지는 것 보다 더 처연하게 보이는 때가 있는 것인지 나무나 사소한  일에 분노하고 너무나 사소한 일에 위로받는 것이 과연 괜찮은 것인지  왜 즉석떡볶이는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맛이나 요리 폼새가 달라지는 것인지.. 내가 부모에게 받았던 것들이 나중에 내가 부모가 되어서야 이해가 되어버리는 것인지 나도 작가와 함께 생각하고 또 생각하게 된다.

 

소설 쓰는 사람에게 참 할말은 아니지만 다른 어떤 소설보다 더 좋았다.

이전 읽었던 이후 작품인 지지않겠다는 말.. 보다도 좋다. 내게는..

어쩌면 가장 겸손하고 솔직하게 드러내는 글은 어느 순간이 아니면 영영 나오지 않은 것이여서인지도 모르겠다.

아뭋든 내게도 푸른 청춘은 있었다는 걸 문득 알게 해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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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g29, 2013 : 실시간

2 데이즈 인 뉴욕 (2

 

 

 

줄리델피가 많이 나이를 먹었다.

이전작이었던 비포 미드나잇에서도 뱃살과 늘어진 볼 주름을 감추지 않고 당당하게 나왔을때 참 당혹스러웠다. 그래도 여배우인데.. 그것도 프랑스 여배우인데.. 이래도 되나 싶은..

그런데 그게 참 좋았다.

사람이 나이를 먹으며 주름지고 늘어나고 불어나는 게 정상이 아닐까

그의 외모는 많이 변해서 참 동질감을 많이 느끼게 되었지만 그의 팔팔한 정신과 세계관은 여전하다. 전작에 이어 여기서도 남편과 혹은 주위사람과 참 많이 싸운다.

싸운다는 것이 그저 소모적인 행위나 누군가를 미워하는 에너지를 마구마구 내품는 것이 아니라

나를 드러내고 표현하고 남을 받아들이려는 행위로 인식된다.

그녀는 비포... 시리즈에서도 참 많이 떠들고 싸웠다.

비포 미드나잇에서 나이든 부부가 자식 문제 등등으로 호텔에서 처절하게 싸우는 걸 보면서 아.. 부부마다의 문제나 갈등이 프랑스라고 우아하지는 않구나 싶었다.

그러면서도 부러웠던 건 싸움이 참 싸움답게 잘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었다.

누군가 문을 쾅 닫고 나가버리거나  못 들은 척 안 들리는 척 하지 않고 마주보고 듣고 말하고 또 듣고 말하고.. 그렇게 계속 싸울 수 있다는 것이 부러웠다.

적어도 피하거나 무시하는 건 아니니까

정말  잘 산 부부는 이렇게 싸울때도 서로를 정면으로 바라보면서 싸울 줄 아는 부부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 영화에서의 줄리 델피도 마찬가지다.

전형적인 프랑스 여자인 그녀는 감정기복도 심하고 조울증을 보이기도 하지만 유쾌하고 자신에게 솔직하다. 조금은 가벼워보이는 그녀의 남자친구도 그녀와 참 합이 잘 맞다.

프랑스에서 온 가족 문제로 두 사람이 언쟁하는 씬이 몇번 나온다.

레스토랑에서 동생이랑 치고박고 싸운 후 밖으로 나가 언쟁하는 씬이나 그  전시회가 망했다고 생각하고 거리를 헤메고 와서 둘이 투닥거리는 씬이 참 좋았다.

서로를 피하지 않고 비난하기 위한 싸움이 아니라 이해하고 이해시키기 위한 싸움

그렇게 서로에게 열렬하게 퍼부으면서 자기 생각을 조율해나간다는 게 부러웠다.

 

싸우면 감정적이 되고 옛날 해묵은 감정까지 스멀스멀 올라와서 욱하게 되고 결국은 누구 하나는 그냥 회피하거나 무시하게 되는 싸움은 그냥 싸움이다.

끝이 없고 반성도 없고 감정만 남을 뿐이다.

그런 싸움만 이어지면 아이들 보기도 창피하고 결국은 왠만하면 안싸우려고 하지만 그건 화해나 이해가 아니라 그냥 회피이다. 아예 모른 척 속으로 온갖 저주를 퍼부으면서도 겉으로 아닌척 하는 것 웃으면서 상대의 커피잔에 침을 뱉는 행동이나 다름없다.

 

그래서 영화 내내 난 커플의 다툼이 부러웠다.

현명하게 누군가와 다투고 언쟁을 할 줄 아는 그녀가 부러웠다.

뱃살이 나오고 얼굴이처져도 여전히 나보다 아름답고 게다가 말싸움도 쌈박하게 잘하는 프랑스 여자... 그녀는 여전히 매혹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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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좋아하지 않은 내가 아이를 둘이나 낳은 이유는...

 

1. 무방비로 있다가 어쩔 수 없이

2. 그래도 하나보다는 둘이 있으면 둘이서 잘 놀지 않을까.. 그러면 난 좀 쉴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얄팍한 생각..

3. 그래도 둘이면 남들이 뭐라고 하지는 않을거니까

  (왜 결혼을 안하냐. 왜 애는 안낳느냐.. 왜 하나만 낳느냐.. 하는  무한관심을 가장한 오지랍스러

   운 질문들의 회피용으로)

 

 

처음엔 어느정도 성공이었다.

남들이 인정하는 꽤 다정한 언니였고 사랑스러운 동생이었는데

한 두해 전부터 삐그덕거리기 시작이다.

언니때문에 못살겠다. 동생이 부끄럽다.

언니는 맨날 시키기만 하고 틱틱거리고 다정하지 않다.

동생이 언니를 무시하고 함부로 말하고 때리기까지 한다. 적어도 난 손은 대지 않는다.

.....등등등.. 등등등

 

한쪽을 잡고 이야기 해보면 구구절절  속상하겠구나 싶고 힘들겠구나 싶어서 다독이지만

둘을 다시 붙여놓으면 이건 개와 고양이 . 개와 원숭이 물과 기름

이런 부조화도 없다.

다정할때 조차 언제 돌변할 지 모르는 위태위태함을  드러내기 일쑤고

한명만 데리고 외출하면 나마저 마음이 평화롭다.

그래도 언니인데.. 동생인데 같이 갈까? 하면 둘 다 펄쩍 뛴다.절대 네버...

왜 이렇게 됐을까

 

가만히 나를 돌아보기도 했다.

내가 둘 사이를 이간질 시키는 뭔가를 했나?
아니면 내가 둘 에게 무한한 애정을 주지 못해 결핍 상태인가?

결국 나의 화려한 계획은 처절한 실패다. 지금은...

 

둘째가 툴툴대며 하는 말이 있다.

엄마는 나랑같은 둘째이고 B형인데도 날 너무 이해하지 못해

엄마는 좋은 언니가 있었지만 난 너무 이기적이고 쌀쌀한 언니가 있을 뿐이야. 엄마랑 달라

큰애는 내가 둘째라 자기를 이해못하는 거라고 하고..

 

아.. 고양이처럼 혼자 뭉기적대고 누구의 간섭도 다정함도 싫어하는 큰아이랑

누구랑이라도 다정하고 싶고 서로 비비고 싶은 강아지같은 둘째는 계속 평행선만 그을까

 

솔직히 나에게 있는 자유에 대한 갈망과 누군가에 대한 그리움을    두 아이가

각각 한가지만 물려받아 가지고 있는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든다.

이리 들으면 이 아이가 이해가고 저리 들으면 저 아이가 이해가 가니...

 

이거 나이들면 해결이 될까요?

두 아이의 하소연에 귀막고 싶을 따름이다 지금 이순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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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어정쩡" 이 딱이다.

어정쩡...

이렇지도 않고 그렇다고 저렇지도 못한 중간에 끼어서 뭐라고 정의내리기 참 애매한 존재.

내가 살아온 날들을 돌아봐도 그렇다.

이렇다 할만큼 똑 부러지게 뭔가를 한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마냥 천사표처럼 허허거리면서 순진하게 살았던 것도 아니다. 그저 적당히 위악도 떨었고 적당히 비굴하게 착하척도 하면서 그렇게 살았는데 운이 좋았는지 별 어려움이 없이 지금까지 나이 먹었다.

내 아이들만 그런지 모르겠지만 가끔 내게 묻는다.

"엄마가 내 나이때 꿈이 뭐였어?"

"꿈?"
이 질문 큰 아이가 6살때부터 줄기차게 받아온 질문이다.

처음에는 이랬다

"엄마는 꿈이 뭐야? 지금부터 꿈을 꾸어야 뭐라도 되지 않겠어?"

처음 그 질문을 받았을 때 가슴에서 뭔가가 쿵하고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그때는 마흔도 되지 않았는데 이미 모든게 지나갔다고 생각했던 시기라 그랬던거 같다.

지금 내가 무엇을 꿈꿀 수 있을까

하지만 그 질문을 했던 여섯살 짜리가 이미 열네살이 되어버린 지금 생각하면 그땐 뭐든 꿈꿀 수 있었던 때였구나 싶다.

속된 말로 지금이 내가 살아갈 가장 젊은 순간이라는 것

그걸 알지만 지금도 가끔 어릴적 꿈이 뭐였는지 지금이라도 돌아간다면 무얼 하고 싶은지 물어보면 질문이 떨어지기 무섭게 대답할 수 있는 건 없다. 그렇다고 깊이 고민을 해도 대답할 수 있는 게 없을 거같다.

슬프다.

결국 나란 사람은 그렇게 그때나 지금이나 "어정쩡" 이 가장 적당한 대답이다.

 

뭐가 되고 싶다는 당찬 꿈도 허황된 망상도 없었다.

어쩌면 일찍 철이 들었던 거 같기도 하다. 뭔가를 꿈꾼다고 다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걸 이미 알았고 세상에는 내가 노력해서 얻을 수 있는 것들보다는 얻을 수 없는게 더 많다는 것도 알았고 그리고 맘대로 살아도 되는 건 아니지만 그냥저냥 게을러도 살아가는데 지장없는 나름 여유있는 부모도 있었던 까닭이었다.

난 뭐가 되고 싶었을까

뭐랄까 그 무엇이라는 것이 직업이라면 나는 구체적으로 꿈꾼 직업들이 없는 건 아니다.

기자가 되고 싶었고 선생님도 되고 싶었고 작가도 되고 싶었다.

어쩌면 어떤 일을 하건 내 일에서 프로가 되고 싶었고 그 일이 글쓰기랑 관련이 있었으면 하기도 했다. 참.. 한때 카피라이터가 되고 싶었던 적도 있었다.

그렇게 준비하다가 덜컥 은행에 입사하게 되면서 그냥 접었다.

그때 모든걸 거기에 걸었던 친구는 지금 그 길을 가고 있다. 크게 성공한건 아니지만 지금 후회하는지는 모르지만 자기의 꿈을 이루기는 했다.

그런데 나는 뭔가를 꿈꾸다가도 신포도를 앞둔 여우처럼 늘 변명을 했고 이유를 찾았고 조금은 쉬운길로 방향을 틀어갔다.

운이 좋았는지 그나마 재능이 있었는지 그 시작은 항상 잘풀렸지만 끝이 엉망이었다.

시작은 하되 끝을 본 건 하나도 없다.

젊은 천재가 가장 불행하다는 건 맞는말이다.

그렇다고 내가 천재씩이나 되는 것도 아니지만 뭔가 초반 운이 잘 풀리는 만큼 그것을 지속하는 끈기나 독기가 부족했다.

늘 어정쩡 좋은 것도 아니고 싫은 것도 아니고 잘 하는 것도 아니고 잘 못하는 것도 아닌

모든 걸 알고는 있지만 제대로 알지 못하는 상황이 내 상황이다.

 

세상을 나혼자 잘먹고 잘 산다는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하면서 내 주위의 상황에 눈물을 흘리긷 하지만 돌아서면 나도 명품백을 매고 거리낌없이 백화점을 돌아다니고도 싶었다.

잘 나가는 브런치 카페에도 아는 척을 해야하고 소외받는 이웃에 대해서도 깊이있는 성찰을 보이고 싶었다. 두 가지가 상반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나는 뭐든 잘나고 싶었던 것일뿐 뭐하나 깊이있게 빠지지도 못했다.

여기가면 저기가 걸리고 저기 가면 여기가 그리웠다.

누군가가 나를 강하게 이끌어준다면 그대로 끌려가고 싶으면서도 막상 뭔가에 끌리는 순간엔 주저하고 간을 보고 의심하기가 끝이 없었다.

 

책을 읽는 이유도 그랬다.

뭔가 사회를 사람을 알고 싶었고 소통하고 싶었다. 내가 모르는 세상이 없었으면 하고 바랬다면 그건 욕심일 뿐일까

책모임에서 김중미의 '괭이부리말 아이들:"을 읽으면서 누군가가 그랬다.

이 책을 나쁘다고하지는 않겠지만 이렇게 막막하고 마음아픈 이야기는 내 아이에게 권하고 싶지 않다고 .. 굳이 이런 이야기를 아이에게 읽히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때 순간 반발이 들었고 내생각은 그랬다.

내가 아이에게 이 책을 꼭 읽어야 한다고 권할 필요는 없지만 아이가 이 책을 궁금해하고 관심을 가진다면 나는 기꺼이 권하겠다. 아이에게 권하기는 할것이다. 그리고 읽느냐 마느냐는 아이가 결정할 일이지만 나는 아이에게 내가 모르는 세상을 보게 하는 기회를 뺏고 싶지 않다고..

내가 모르는 세상에 대한 책을 한두권 읽는다고 사람이 변하지는 않는다.

아니 모든 사람이 변하지는 않는다.

내가 모르는 일이라 이해를 못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고 마음아파하고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몇몇에게는 또다른 행동까지 이끌어낼 수도 있을 것이다.

그건 사람에 따라 다른 거니까.. 그걸 마음아프니까 막막하고 기분이 좋지 않으니 막아야 한다는 건 아니라도 생각했다.

나역시 김중미를 읽고 김애란을 읽고 누군가가 동화로 쓴 용산이야기를 읽으면서 마음이 몹시 아팠다. 아팠고 미안했고 또 미안했다.

나도 이제는 기성세대가 되어버려서 그저 미안한 사람이 되어있었다.

내가 그런 것도 아니지만 내가 전혀 책임이 없는 것도 아닌.. 어쩌면 어정쩡했던 모래알같았던 내 일상의 무심함이 모여서 뭔가를 저질렀을지도 모른다는 죄책감이 들었다.

미안했고 가만 있는 것도 힘들었다.

무언가를 행동할 수도없었고 하지도 못했으면서 그저 읽고 또 읽으면서 마음아파할 뿐이었다.

그런데..

어정쩡한 삶은 그게 전부였다. 부끄럽지만..아직도 읽고 있을 뿐이다. 나는..

아직도 나는 읽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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