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고 이해하는 건 쉬워진다.

내 경험이 넓지 않아도 살아온 연륜이라는게 생기긴 하나보다.

작가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 그것이 설령 내가 곡해하는 것이라 해도

알아 먹겠다.

 

다만... 문득 문득 떠오르는 구절이 내용이 누구의 무슨 작품인지 도저히 모르겠다,

연달아 단편들을 읽었는데 거기 나오는 단편적인 상황은 떠오르는데 무슨 작품인지 도통 모르겠다.

이제 예전 할머니 말씀이 이해된다.

 

무딘 니 두뇌를 믿지 말고 예리한 펜 끝을 믿어라.

 

그래서 나는 읽는 대로 메모하고 기록하기로 한다... ㅈ짧고 유치하게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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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부모 - 대한민국에서 가장 아픈 사람들의 이야기
이승욱.신희경.김은산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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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순간 내가 내 아이에게 물려줄 수 있는 가치는 이것인 것같다. 나는 어떤 갈등을 겪어왔는지, 그 속에서 무엇을 원했지만 무엇을 주저했는지 무엇에 안주했으며 무엇을 피하고 싶어하고 두려워했는지 그리고 무엇이 필요했는지. 이것은 내 삶의 고민이자 아이의 삶의 고민이 될 것이다. 이런 부모를 보면서 아이가 자신이 원하지 않은 것을 제대로 부정할 수 있는 순간이 오기를 기대한다. 그 부정을 위해 오랜 시간이 걸린다 하더라도 나는 언제나 아이의 편에 설것이다.   p 261

 

옳다고 믿는 가치를 삶 속에서 실현하는 것이 왜 그토록 힘들고 어렵고 막막했을까?.................

일차적으로 부모인 나 자신이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확신이 없었떤 것이 과연 내 개인만의 문제였을까? .......이에 대한 충분한 정보와 이를 지원하는 제도적인 도움을 받지 못했다.

 

결국 부모 노릇이 막막한 것은 우리가 메뉴얼을 모르기 때문이 아니라 부모 개인에게만 부모 노릇의 책임이 부여되기 때문이다. 우린 지금 내가 겪고 있는 문제가 결국 나맘ㄴ의 문제가 아닌 우리 모두의 문제라며 우리 사회가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하는 데 기여할 수 있는 문제임을 지지해주는 가치와 시스템이 필요하다.

 

 

아이가 대학을 그만두기로 결정햇을 때 모든 것이 확연해졌다. 아이가 나의 가치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야 말고 가장  건강하게 내가 그동안 말해왔던 가치를 제대로 받아들이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아이가 항상 독립된 인간, 책임지는 인간 배려와 성찰을 고민하는 인간이 되기를 바랐다. 그런데 아이는 무엇보다도 나의 가치를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음으로꺼 독립된 인간이 되는 길을 시작한 것이다

 

 

연초에 방영했던 드라마 학교2013이 떠올랐다,

망가진 공교육, 무엇하나 기준점이 없이 갈팡질팡하던 아이들 그리고 어른들

드라마를 보면서 내내 마음이 아팠고 미안했던 기억이 있다,

우리 어른들이 잘못했다는 것 그걸 지금 아이들이 뒤집어 쓰고 저렇게 용쓰고 있구나

 

이 책에서도 말한다 아픈 아이들 뒤에는 아픈 부모가 있다,

미성숙한 아이들 뒤에서 미성숙한 나이만 먹고 자라지 못한 어른이 있는 것이라고

거기서 끝이 났다면 그렇고 그런 거려니 했겠지만 한 발 더 나아가 어른이 어른으로서 자랄 수 없고 죄의식과 잘못된 욕망으로 갈등하게 만드는 시스템의 부재까지 건드린다,

물론 건드리고 넘아간다고 뭔가 대책이 있는 건 아니다.

책 말미에 여러가지 대책들을 세워놓았지만 사실 여전히 뜬구름이이고 이상적일뿐이다.

 

하지만 현재 학교의 문제 아이들의 문제 그리고 부모의 문제가 단지 개개인의 미성숙이나 무지 도덕적인 해이때문이라고 치부하지 않는다는데 장점이 있다,

아이들이게 너희 잘못이 아니야 라고 하는 것처럼 부모들의 잘못만도 아니다

내가 살아봤더니 백도 없고 오까네도 없는 삶이 얼마나 절망적이고 무서운지 아니까 너희는 백을 가지고 오까네를 가지고 살았으면 좋겠다고 하는 것.. 그걸 무어라 할 수 있겠는가?

다만 그 불안감에 아이들이 상처받고 부모들도 더 깊은 죄의식이 빠지거나 그 조차 모르는 돌멩이가 되어가는 지도 모른다.

끝에 뭐가 있는지도 모르고 마구마구 남들따라 뛰어가는 레밍턴취처럼 절벽끝에서나 비로소 아니다,.. 라고 하지만 그땐 이미 늦다,

 

학교 드라마를 돌아보면 그 드라마엔 부모가 없었다.

단 두명의 부모가 나왔던 거 같다. 모범생이었던 여학생의 부모와 수재인 남학생의 부모

보다 나은 환경을 아이에게 주기위해 아이속은 들여다 보지 못하고 계속 정신없이 몰아붙이던 엄마는 아이의 위험한 선택앞에서 변하게 되지만 우아하게 아무렇지도 않게 아이를 집어삼키던( 이책의 표현대로) 엄마는 끝까지 자기가 무슨 짓을 하는지 모른다,

두 아이는 엄마와 싸우는 것도 힘들다,

반변 주인공 남신이나 흥수는 부모가 없다.

아이가 성장하는데 부모는 걸림돌이 될 뿐이라는 것 같아 끔찍하게 얼굴이 화끈거린다.

오히려 부모없는 두 아이는 부딪치고 실수하고 후회하면서 성장한다.

부모라는 것이 아이들의 성장의 걸림돌이라는 걸 보여주는 암시였을까

 

아이를 교육시키는 것 이상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는 나같은 부모는 늘 불안하고 갈등한다

세상이 좋은 학교를 나오는 것만으로 성공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

이미 누구나 알고 있는 것처럼 출발선이 저마다 다르고 노력해야하는 양도 저마다 다르다.

불평등하고 부조리하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그렇다고 도망칠 대안도 없어서 그래도 남들처럼 하면 남들만큼은 하지 않을까하는 환상을 꺠고 싶어하지 않는 마음

아니라는 걸 알지만 꾸역꾸역 아이는 그 길로 가길 바라는 마음이다.

빽이나 오까네가 먼저인  드러운 세상이지만 그래도 희망은 있을거라고... 우리아이는 어쩌면 고난역경을 이겨낸 미담의 주인공이 될 지도 모른다는 환상으로 아이들에게 미련한 그림을 보여준다.

 

이미 아이들도 태어나는 것으로 지위가 결정되고 인생의 역전이 시작된다는 걸 아는데

부모는 애써 아닌척 모른 척 한다,

부조리한다는 걸 알지만 누군가 나서서 깨어주길 바라면서 그게 나는 아니라고.. 누가 시작하면 해볼까 하는 비굴한 마음만 가지고 있다.

아는것과 실천하는 건 하늘과 땅차이라는 걸 부모가 되면 가장 절절하게 얻게 되는 교훈이다.

 

아이가 자기주장을 펴는 당당한 아이이가 바라면서 내 말에 거역하는 건 분노하게 되는 것

시험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는 말로 교묘하게 니가 열심히 하지 않아서 나온 결과라고 심리전으로 아이를 옥죄는 것

좋은 학원 알아보고 정보얻는 것 그래서 사람관계에 지쳐가는 것이 다 너를 위하는 거라고 하는 것

그것부터 하지 말자.

나랑 달라서 나를 거부하는 것이 제대로 자라고 있는 거라는 말만 얻고 가자.

부모의 길은 멀고 외롭다.

그게 학부모이든 그냥 부모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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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3-12-12 14: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지금 이 책을 읽고 있는데, 리뷰를 보다가 공감하게 되어서 댓글 남깁니다. ^^
책이 참 좋아요... 우리의 문제에 대해서 정녕 되집어보게 되더군요. ㅠ

마지막 말씀대로, 부모의 길은 참으로 멀고 외로운거 같아요.
그래서 우리의 아이들도 외로운가봐요. 어쩜 좋을까요...

눈이 많이 오네요, 추운 날 따스하게 입고 다니셔요. 리뷰 반가왔습니다.

푸른희망 2013-12-12 22:54   좋아요 0 | URL
책이 참 좋죠.. 저도 첨엔 그렇고 그런 교육에 관한 건가 싶었는데 참 많이 생각하게 하고 위로도 되더군요.. 들러주셔서 고맙습니다..
 

돌이켜 보아야 보이는 것들이 있다.

내가 그 시간속에 함께 있을 때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 몰랐던 것들이 한참  시간이 지난 후 알게 되는 것들이다.

어쩌면 시간이라는 것들에 푹 빠져서 깊이 깊이 숙성이 된 다음에야 맛이 드는 것처럼 그제사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다.  사람들은 그걸 후회라고도 한다. 깨달음이라고도 하고

 

그땐 내 마음도 몰랐다. 내가 그를 사랑하는 건지 미워하는 건지 아니면 애써 쿨한척 하는 오락가락하는 마음이었던 건지

누군가를 미워했다고 믿었는데 사실은 그게 아니라 내가 미움 받을까 위악을 떤 것이었다고 나중에 알게 되기도 한다.

그땐 다 이해했다고 니 마음 내가 알고 니 아픔 내가 공감한다고 두 손 잡고 함께 울었고 술잔에 취해 주절주절 떠들었는데 돌아보면 내가 뒤통수 맞은 일이었따거나 내가 아주 오해하며 그 사물을 혹은 사람을 사건을  한단면만 바라보았구나 하는 가슴치는 한탄이 따르게 되는 경우도 있다.

 

세상에 정리되고 통제되는 숫자와 건조한 문장들로 그 모든 감정을 다 살릴 수 없다.

몇년에 태어나고 몇년에 죽고   언제 어느때 몇시에 사고가 발생하고 피해자가 몇명이고 피해액수가 얼마이고 그로 인한 손실이나 복구비가 얼마가 든다든가

누군가가  언제 태어나고 언제 취학통지서를 받고 입영문서를 받아 군대를 가고 몇년에 결혼을 하고 언제 사망했는가 하는 기록들은  마치 마른  곤들래 같아서.. 그걸 시간이라는 물속에 푹 담궈놓고 한참을 잊고 나서야 아차.. 내가 곤드레를 담궜었는데 기억하고 다시 양푼이로 달려가도 그 곤드레는 그저 뻣뻣함이 가실뿐 아직 먹을 수 있는 상태는 아닌 것처럼.. 겨우 뭔가 기록과 숫자속에 숨겨진 이야기를 보여준다. 하지만 그게 전부이고 끝이 아니다. 곤드레처럼

 

오랜시간 미지근한 물속에 담겼던 곤드레처럼 푹 물러진 이야기는 이제 그 향을 드러내고 본래 모습을 드러내긴 하지만 어딘가 원래 모습과는 많이 다르다,

얼마나 물에 담궜는가.. 말리는 과정에서 어떤 변화가 있는가에 따라 곤드레의 모양이 다르듯이 이야기도  그걸 들여다 보는 사람의 마음과 상황 그리고 시간적 공간적인 것에 제한을 받을 것이다.

누가 어느방향에서 들여다 보는가. 얼마만큼의 애정을 가지고 들여다 보는가 에 따라 다른 무늬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내가 발견하지 못한 뒷부분의 이야기는 여전히 끝없이 숨어있다. 태어나 처음 만진 코끼리의 다리가 전부라고 믿는 장님처럼 그 다리에 대해서만 뭉툭한 기둑같은 것 아래 있는 손바닥만한 발톱하나만 만져보고는 아... 여기 무언가가 숨어있다 이것이 본질이라고 외치는 어리석은 장님처럼 아마 내가 본것에만 집착해서 그게 전부라고 믿어버리고 의미를 부여하고 만족해한다.

허나.. 이야기는 아직 끝이 아니다.

 

그래서 더 오랜 시간이 흐르고 한번 더 끓여내고 밥과 함께 푹 익혀진 곤드래만 먹을 수 있다

그제사 아.. 곤드레가 이런 맛이구나 하고 아는 것처럼

이야기는 시간속에 더 푹 담겨서 고아졌다가 모든 것이 흐물흐물 형체도 없이 뭉개져서야 비로소 또 다른 면을 드러내고  나는 퍼즐을 맞추듯이 그때 이런 이런 상황이었음을 다시 깨달으면서 바보가 도통하듯이 아하! 하고 한탄한다,

 

그래도 그것이 모든 건 아니다,

 

 

 

 

 

 

 

단편을 읽는게 편했다

읽는 호흡이 짧아서 긴 글은 적응이 되질 않았다, 얼른 무언가 어설프도 끝이 났다는게 내겐 중요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냥 오징어를 씹고 난 뒤처럼 뭔가 오래오래 남아서 조금 찝찝하기도 하고  혹은 더 오래 여운을 가진다는 착각도 하면서 내 나름대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게 좋았던거 같다.

아무래도 장편은 작가의 의도가 그대로 드러나지만 단편은 독자가 읽고 판단함에 따라 여러가지의 결론이 나올 수 있는 것이라고 믿었던거 같다.

그리고 단편은 읽었다고 만족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나면 이게 저거같고 저건 또 저기 있는 무언가와 닮은 느낌이란 혼란만 늘었다,

나이를 먹었으니까 뭔가 기록해두지 않으면 기억속에서 뒤섞이는 현상인지 아니며 단편들이 가지는 공통점 같은 건지도 모르겠다. 어떤 작가가 쓰든 단편들은 비슷해보였다

읽는 동안은 작가의 색채가 느껴지고 각각이 가지는 고유한 문장이라든가 쉼표들 혹은 묘사가 있지만 그 내용이 형식이 내 안으로 들어와서는 작가고유의 것들과 내것이 뒤섞인다,

내가 가졌던 경험들 내가 품었던 생각들이 작가의 그것들과 섞이고 반죽되고 삭혀지고 부풀어지면서 나이들면 비슷해지는 모양새처럼 그렇게 비슷비슷한 것들이 되어버렸다,

 

결국 남은 건 한 참 시간이 흐른 후 느끼는 되새김질이 주로 단편에 많구나 하는 생각이다,

그땐 미쳐 깨닫지 못했던 것들,, 너무 젊어서 너무 무지해서 혹은  사느라 바빠서 잊고 있던 것들이 잠자리에 누워 천정을 올려다보며 점점 말똥말똥해지는 정신으로 혹은 어떤 사고를 겪은 후 내 사고의 틀이 뒤바꾼 후 아니면 그저 시간이 흐르다 보니 그때의 일들이 문득 떠오르고 그때 그게 아니었구나 하고 무릎을 치거나 뒤늦게 후회되는 것 혹은 알아가는 것들이 단편속에 숨어있다,

 

장편은 나름의 긴 서사로 인해 고유의 생명을 오래오래 유지하게 되지만

단편은 그렇게 나와 뒤섞여서 또다른 이야기로 재 탄생되어버린다,

그게 단편의 매력인지 나의 무지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내게는 장편보다 뭔가 고민할 거리를 더 많이 던져주고 이리저리 꿰어맞추고 이야기를 굴리다보면 또다른 모습으로 드러나기도 하는 것..

그것이 단편을 읽는 재미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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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박사는 누구인가?
이기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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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은 저마다 이야기 속에 한가지씩 여백을 두고 그 여백을 채우려 다른 이야기들을 만들어내는 법인데. 그게 이 세상 모든 이야기들이 태어나는 자리인데 그때의 나는 그것을 미쳐 알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고모부만 해도 그렇다. 내가 고모부에 대해서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생각하지 않으려 했던 것은 아마 그 부분이 내겐 여백과도 같은 부분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말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 같은 것.   p 85   밀수록 다시 가까워지는.

 

 

그래서 판결문 속 문장들을 모두 그런 식으로만 채웠던 것일까? 형용사 하나없이 시간대별로 주어와 목적어와 술어로만 나열한 그 문장들은 오로지 입증 가능한 사실들로만, 누군가가 술을 마시게 하고 또 누군가 그 술을 마시고 , 또 누군가 그 술때문에 사망에 이르게 되었다는 결론들을 향해서만, 무정하게 내달리고 있었다. 나는 그 문장들이 답답했고 또 한편 불편했따. 내가 답답했던 이유는. 그 안에는 p가 그 즈음 겪었던 실연과 그로 인해 한글자도 쓰지 못하고 지낼 수 밖에 없었던 나날들과 치기와 분노와 우울의 기록들이 모두 빠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들은 모두 입증 불가능한 셰계이니까, 법의 이름아래 고려되지 않고 모두 배제된 것들이었다. 하지만 그 역시 엄연한 사실이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나는 그것이 답답했다. 내가 불편했던 이유는 나 역시 그 문장들과 똑같은 태도를 지난 몇개월동안 취했다는 사실을 그제야 똑똑히 정면으로 바라보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입증 불가능한 세꼐를 빤히 알고 있었으면서도 침묵하는 쪽을 택하고 말았다. 누군가 죽었으니까 그 어떤 무게도 그것보다 더 무겁지 않다는 생각을 분명 하긴 했지만 좀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그 누구에게도 비난받고 싶지 않았다. 눈에 부이지 않는 세게로 누군가의 죽음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만큼의 용기가 내겐 없었던 것이었다. 어쨌던 죽은 박수희 역시 내 제자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니까 그것만 입증 가능한 새계였으니까

                    p193  탄원의 문장

 

나는 한 살 두 살 나이를 먹어갈수록 짐작과 진실 사이엔 그리 큰 강물이 흐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짐작이란 어쩌면 진실을 마주 보기 두려워서 그게 무서워서 바라보는 그림자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또한 갖게 되었다. 그러니 이 이야기의 운명 역시 어쩌면 그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저 모르는 척 다른 이야기를 하는 마음 들 강의 그림자를 바라보면서 하는 짐작들. 나는 지금 그것을 하려고 하고 있다. 이제야 비로소 중요한 건 두루마리 휴지가 아니었다는 것을. 그것을 알게 되었으니까...    p 263   화라지송침

 

 

어쩌면 우리는 모두 무언가를 참아내고 있는 사람들인지도 모른다. 지금 참아내고 있는 그 무엇으로 우리는 우리의 존재를 증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고독을 참아내는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 죄의식을 찿ㅁ아내는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 거절을 참아내는 사람과 망상을 참아내는 사람들 당연한 말이지만 그 사람들 모두가 같을 수는 없다. 거기에 더해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참아내기도 한다. 누가 어떤 괴물 같은 짓을 하더라도 그것을 참아내고 있는가 누가 그것을 견뎌내지 못하는가 그것이 우리의 현재를 말해주는 숨겨진 또 하나의 눈금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나나 아내나 우린 뚤 다 기종씨를 참아내지 못한 사람들이었다. 물론 나의 그것과 아내의 그것이 다를 수도 있ㄷ고 나의 짐작과 아내의 진실이 같을 순 없을지라도, 기종씨를 외면했다는 점에서 아내나 나는 같은 사람이었다. ..........................아내나 나나 우리는 서로가 서로르 ㄹ참아내는 선에서 그렇게 적당히 타혐하면서 지내는 사람들인지도 몰랐다. 그게 조금 쓸쓸하게 들릴지 몰라도 그게 또 우리였으니까.    p 323

 

 

고백하자면 살아오면서 조금 비겁하게 눈감고 모른 척 지나온 것들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뭐 대단한 정의나 도덕같은 게 아니더라도

내 옆에 있는 가까운 사람의 마음을 가만히 들여다 보고 공감하려기 보다 귀찮고 무언가 복잡한 일에 얽매일까 두려워서 그저 건성건성 아는 척 하고 넘아가는 일들이 많았다.

아이에게도 나는 눈맞추며 이야기하기보다 한귀로 흘려들으면서 엄마는 다 알아.... 이해해.. 사랑해... 그렇게 앵무새처럼 되뇌인적도 적지 않았다.

사람은 누구나 제 몫의 문제를 안고 살아가는 것이고 그 제몫이라는 건 누가 도와주거나 해서 줄어드는 건 아니라는 이기적이고 냉소적인 생각이 속이 또아리를 틀고 있었던거 같기도 하다.

그냥 안듣고 말면 그만이니까

그러다 보니 무언가를 이해하는 것도 그저 겉핡기에 지나지 않은 적도 많았을 것이다.

누군가 아파하면 그래 그랬구나.... 하고 추임새를 넣으면서도 내 한쪽에서는 너만 그런거 아니거든.. 누구나 어려운 일을 겪는 법이거든.... 무게의 무겁고 가벼움이 문제가 아니라 그게 나한테 닥쳐진 상황이라는 건 누구에게도 똑같은 거거든.. 하는 얄미운 소리만 속으로 퍼부었다.

 

어쩌면 내가 그렇게 얄밉게 굴지 않고 이타적이고 누군가를 이해하고 공감하려고 노력하는 아주 천사표인 인간이라고 하더라도.. 내가 상대를 모두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을까

내가 타인이 아닌 이상 그의 말을 행동을 고개 끄덕이며 진심으로 그럴 수 밖에 없겠구나 하고 생각했을까.. 설령 그랬다고 하더라도 그건 결국 내 입장에서 문제를 다시 분해하고 재조립해서 이해한 것은 아니었을까...

 

사실 즐거우려고,,, 키득거리려고 소설을 들었는데 한편 한편 읽으면서 마음이 무거웠다.

첫이야기 "행정동"은 그래도 나았다.

내가 본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 보이는 것 표면에 드러나는  이면에 많은 것들이 숨어있다는 것을 고개를 끄덕이면서공감했다.

 

"밀수록 가까워지는" 에서는 마음이 좀 그랬다. 그 삼촌의 마음이 무엇인자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화자인 조카만큼의 먹먹하고 죄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한 사람을 모두 안다는 건 본인도 불가능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다.

삼촌도 자기를 제데로 알았을까? 스스로도 알 수 없는 감정의 격정에 휘둘리면서 갈등했을 것이고 본문에 있는 문구처럼 삶의 공백은 스스로도 채우지 못한 빈칸으로 남겨질 때가 많은 법이니까.

 

"탄원의  문장" 에서는 그런 생각을 했다. 내가 알고 있는 누군가는 그 사람이 맞는가? 나는 어쩌면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보고 나의 기호에 따라 상대를 판단하고 오해하고  엉뚱한 사랑을 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나의 정의감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기도 한다는 것... 나는 그 단편에서 최의 입장보다도 그 최가 울타리 뒤에서 들었던 노부부의 대화에서 그만 탁.. 무언가가 무너져 버렸다. 삶의 이면이라는 것 쉽게 남에게 보여지지 않는 그 세세한 빈 부분은 누가 감히 판단을 하고 정의를 내릴 수 있을까

 

"화라지송침"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보는 것 내가 견디는 것 내가 참아내는 것들.. 그것이 전부인 건 아니다.

마지막 화자의 상상인지 현실인지 과거의 모습에서 컥... 무언가 떨어져 내리는 느낌이 들었다,

 

모든 책을 다 읽고 드는 생각은 죄책감이었다.

내가 의도를 했던 하지 않았던.. 혹은 내가 그저 제 3자로서의 입장일지라도 같은 인간으로 느끼게 되는 죄책감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된다.

누군가에게 미안한것들은 어쩌면 내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고 결정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맥베드에서 나왔었나? 무지야 말로 가장 큰 죄가 아닐까 하는 것

작중 인물들은 상대를 배려하고 위해주려고 노력하지만 어쩌면 그것이 오히려 상대에게 상처가 되거나 또다른 누군가를 소외시키는 일을 만들기도 한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려고 그저 어느 순간 눈을 감아버리기도 한다.

그리고 잊어버리면 그만이지만 이 찌질한 인물들은 어쩌지도 못하고 죄책감에 시달리는 것이다.

 

비겁하고 비굴한 나도 그랬다.

아이에게 혹은 친구에게 이웃에게

이게 아니고 저거라고 뭔가 무모하게 혹은 단호하게 내 주장을 내보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남의 입장을 전적으로 이해하고 공감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어정쩡하니 맞장구만 치고 그래그래 니가 힘들었겠구나 하고 말하지만

돌아서면 찝찝해지는 기분

아.. 이게 아닌데.. 저 사람이 모든게 옳은 건 아니잖아.

그게 옳은 건 아닌데 왜 난 그 말을 못했을까...

하는 죄책감 혹은 후회로 똘똘 뭉쳐서 나만 괴롭힌다.

그리고 집에 웅크리고 앉아서 다시 그 일을 복기하면서 내가 어떤 지점에서 어떻게 행동했떠라면 어땠을까 하는... 하등 도움이 되지도 않고  무가치한 일에 매달리고 있다.

그렇게 모든 일을 되돌아보면서 느끼는 회한에서 비겁한 사람은 어떤 교훈도 얻지 못하고

또다른 죄책감을 얻어오는 일을 반복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주인공들이 남같지 않아서... 그래서 괴로웠다.

허허 거리고 웃거나 한숨쉬는 게  아니라 누군가가 니가 바로 이렇잖아.. 하고 확 내질러버릴까

전전긍긍하게 되었다.

 

십수년전 일을 새삼 여기에 다시 꺼내든 이유는 간단하다. 그것이 내 안에서 아직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해되지 않고 알 수 없는 일들을 잉해하기 위해선 우선 그것들에 대해서 차근차근 이야기 해야한다. 그것이 내가 알고 있는 유일한 윤리이다. 

 

윤리라고 믿고 있는 한 나는 계속 후회되는 부분을 죄의식을 느끼는 부분을 복기할 것이다.

(하지만 무언가 결론을 내리거나 진실을 마주하는 것이 중요한 건 아닐것이다. 중요한게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깊이 고민하는 것만으로도 내겐 소소한 위안이 되기도 하니까..)

 

 

 

참고....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라는 책과 함께 나의 올해의 책에 들어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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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광주는.. 대학엘 들어가서 음성적으로 틀어주던 그 충격적인 영상에서가 아니라

 임창정이 참 우스꽝스럽게 나와서 어이없이 휘말리고 안타까워하던 영화 스카우트 그리고 공선옥의 "라일락이 피면"에 수록된 짧은 단편에서였다

 

 

나에게 용산 참사는 그 근처에 살고 있던 그때의 기억이나 신문 혹은 다쿠멘터리 등이 아니라  동화책 " 동화없는 동화책"속의 작은 이야기에서 였다.

 

 

나에게 삼풍백화점은 그 당시 하던 일을 잊고 몰두하던 신문 뉴스 방송들이 아니었고 정이현의 오늘의 거짓말에 들어있는 단편을 통해서였다.

 

 

그리고 세계사에서 혹은 화면에서 보았던 홀로코스트도 결국 나는 모퍼고의 "모짜르트를 위한 질문"을 통해서였고

 

 

아마 지금 기억하지 못하는 여러가지 역사적인 사건들 사건 사고들을 기억하는 건 어쩌면 정확한 통계와 사실을 보여주는 뉴스가 아니라 전해들은 혹은 재구성되어 허구가 섞여진 이야기들을 통한 것이라 믿는다.

 

이야기의 힘은.. 사실은 아니지만 사실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눈으로 숫자로 기록된 객관적이고 차가운 사실이 아니라

오늘 내가 만난 사람 스쳐지난 거리 

나처럼 화내고 짜증내고 돌아서서 미안하고 머쓱했던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로 들려준다.

그래서 사망 00명 어쩌구 저쩌구가 아니라

누군가의 아버지 누군가의 친구 누군가의 누나가 되어 나와 다르지 않는 사람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뉴스를 통해 들은 사건은 그저 냉랭하게 머리속을 맴돌지만

이야기를 통한 사건들은 마음이 먹먹하고 눈가가 지끈거리는 감정으로 다가와 오래도록 내 마음에 남아있다.

이야기는 그런 것이다.

시시한 거짓말이거나 화려한 언변의 사기가 아니라

그렇게 우리에게 정말 사람이 그랬다고 사람이 그렇게 살아왔다고 그리고 죽었었다는 걸 깨닫게 해준다.

 

사람들은 뉴스가 세상을 보는 창이라고 하지만 내게는 이야기가 밖으로 향한 창이 되어주었다.

아무리 뉴스에서 크게 다루고 많은 정보를 준다지만  한 사건이 내 마음속에 깊이 자리잡고 의미를 갖게 되는 건 항상 뒤늦게 이야기를 통해서였다.

내게 세상의 창은 이야기였다.

조금 늦게 정보를 접할 수 밖에 없지만 그래도 차가운 숫자와 사실의 나열이 아니라 그것이 사람의 일이라는 것 아픔이고 상처고 회한이고 혹은 희망이고 기쁨일 수 있는  나와 무관하지 않는 일이라는 걸 알게 해주는 건 이야기였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이야기의 힘을 믿는다.

아직도 이야기가 ..  소설이... 동화가 해야할 일이 많이 있다고 .. 지구에서 인간이 멸종되지 않는한 언어가 사라지지 않는한 이야기는 영원하리라 믿는다.

 

그 무엇보다도 이야기는 힘이 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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