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의 독서 - 세상을 바꾼 위험하고 위대한 생각들
유시민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9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얼마전 친정에서 책정리를 했다. 아버지 유픔을 정리하면서 책들이 처치곤란이라는 엄마 하소연에 하루 다니러 가서 나름 정리를 했다.

많은 전공서적은 어쩌지 못하고 나중에 처리하기로 하고 아버지가 모았던 그리고 우리가 보다가 남겨둔 책들을 정리했다.

왠만하면 내가 다 챙겨오고 오래된 백과사전이나 다시 볼거같지 않는 책들은 정리해서 버렸다.

하나하나 정리하는 중에  E. 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가 나왔다.

 책표지를 싸고 있는 " 이화서적" 포장지.

이미 누렇게 변한 곳이 군데군데 보이는 그 책은 내가 87년 대학에 들어가 첨 산 책이었다.

이걸 수업중에 들었던 기억은 없다.

참고문헌 맨 위에 있었고 학회 공부하는 목록에도 있어서 함께 읽었는지 혼자 읽었는지 기억도 가물한... 그저 기억하는 건 " 역사는 과거의 현재의 대화다"뭐 그런거...

한참 고민하다가.. 이제와서 뭐... 하고 과감하게 정리했다.

 

대학와서 처음 산 책이 "역사란 무엇인가" 였고 처음 리포트를 쓴다고 읽었던 책 그래서 첨으로 썼던 리포터가 최인훈의 "광장"을 읽고 쓴 것이었다.

그때 어떤 느낑믈 가졌고 어떻게 썼는지는 모르겠다.

생각보다 책은 재미있게 넘어갔고 머리속에 들어오진 않고 이마에 붙여놓는 수준의 이해나마 남북분단이나 이념에 대한 것 그리고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회색인간 주인공이 생각날 뿐이다.

 

읽기 시작한 책에서 나도 그렇게 나의 푸른 시절

아무것도 모른 책 사고 펼쳤던 그래서 조금 지루하고 어렵지만 그래도 꾸역꾸역 읽어내렸던 그 책들을 다시 만났다.

그는 이 책들을 어떻게 만났는가?

 

 

내가 생각하는 좋은 서평은  서평을 읽고나면 그 대상이 되는 책을 읽고 싶어지는 것이다.

그것이 내가 읽은 책이라도 다시 한번 더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

책이 또다른 책을 부르고 또다른 생각거리를 만들어내고 또다른 감동을 갖게 하는 것

 

나쁜 서평은 그냥 아하.. 이런 책이 있구나 하는 정도로 책장을 덮으면 끝

그리고 내가 읽은 책이 나오면 스킵하는 것

 

이 책은.. 조금 위험하다.

누구나 이야기하듯 서평의 독후감의 최고봉이라는 건 인정한다.

흔히 말하듯 고전이란 것은 누구나 알지만 그래서 누구도 읽지 않은 책이란다.

너무 잘 알아서 마치 읽은 듯이 착각하게 만드는것

많은 해석이 있고 인용이 있고 여기저기서 줏어 들은 게 많은 책이라 마치 내가 다 알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

하지만 한번은 읽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무게감으로 다가오는 것

저자는 자신이 젊었을 때 읽은 책을 다시 보면서 자신의 생각을 경험을 이야기한다.

그런데..

그 경험치나 사고가 너무나 이해가 쉽고 공감이가고 쏙쏙 정리가 되어서..

사실... 이것만 읽어도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이 자꾸 드는 거다.

굳이 원서를 읽지 않아도....

어렵고 지루하기만 한 사기나.. 종의 기원 따위를 읽지 않고 이렇게 지나다고 어디가서 잘난체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만 드는 것이...

그래서 위험하다.

책에 대한 호기심을 넘어 고액의 쪽집게 괴외를  받고난 직후같은.. 이제 모든 걸 알아서 하산해도 되지 않을까하는 얄팍한 수만 떠오른다.

고로 참 좋은 책이라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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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살면서 우리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얼마나 자주 할까. 그러면서 얼마나 가감하고 윤색하고 교묘히 가지를 쳐내는 걸까 그러나 살아온 날이 길어질수록 우리의 이야기에 제동을 걸고 ㅇ ㅜ리의 삶이 실제 우리가 산 삶과 다르며 다만 이제까지 우 리 스스로에게 들려준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 다는 사실을 깨닫도록 우리에게 반기를 드는 사람도 적어진다, 타인에게 얘기했다 해도 결국은 주로 우리 자신에게 얘기한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살아남은 대부분의 우리는 늙는 데 연연한 적이 없다. 내 판단이지만 요절하는 것보다는 늙는 것이 언제나 나은 법이다 아니 내 말뜻은 이렇다. 이십대에는 자신의 목표와 목적이 혼란스럽고 학신이 서지 않는다 해도 인생 자체와 또 인생에서의 자신의 실존과 장차 가능한 바를 강하게 의식한다. 그 후로... 그후로 깅거은 더 불확실해지고 더 중복되고 더 되감기하게 되고 왜곡이 더 심해진다. 젊을 때는 산 날이 많지 않기 때문에 자신의 삶을 온전한 형태로 기억하는게 가능하다. 노년에 이르면 기억은 이리저리 찢기고 누덕누덕 기운 것처럼 돼버린다. 충돌사고 현황을 기록하기 위해 비행기에 탑재하는 블랙박스와 비슷한 데가 있다. 사고가 일어나지 않으면 테이프는 자체적으로 기록을 지운다. 사고가 생기면 사고가 일어난 원인은 명확히 알 수 있다. 사고가 없으면 인생의 운행일지는 더욱더  불투명해진다.

 

 

역사는 승자의 거짓말이며 동시에 패자의 자기기만 이기도 하다.

 

 

 

다시 읽은 책 "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두번째는 자꾸 번역이 걸린다. 매끄럽게 읽히지 않은 것이 나의 짧은 식견탓이 아니라 번역탓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문장들이 앞뒤가 맞지 않다거나 뭔가 어색한 번역투라는게 이번엔 자꾸 보인다. 다시 읽는 것이라 몇군데는 건너뛰기도 했다.

 

다시 읽고 드는 생각 둘  토니가 그렇게 잘못한게 없다는 것이다.

사람이 경솔했다는 건 있지만 젊은 나이에 그렇게 이전 애인이 친구와 눈이 맞았다고 한다면 열받지 않을 젊은이가 있을까. 순간 친구도 잃고 사랑도 잃고 뭐 그런 유행가가사의 주인공이 되어버린 상황이 아닌가... 심하긴 하지만 그런 편지를 써보낼 수도 있지 않을까

사랑에 빠진 젊은이라면 그런 편지쯤은 아무렇지도 않게 구겨 버릴 수 있는 여유가 있어야하지 않을까.. 그 편지를 꼼꼼하게 분석하고 뜯어보고 결국은 그 편지에 적힌 시덥잖은 충고마저 (그 여자의 엄마를 만나보라고 하는) 받아들인 에이드리언이 더 쫌스럽다는 생각도 했다.

결국 문제는 에이드리언의 일기조각에 씌인것처럼 책임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그 책임의 소재가 너무나 불확실하다는 점이다. 인생의 선택을 누구에게 책임지울것인가...

 

다시 읽고 드는 생각 셋  토니가 찌짏고 못나긴 했지만 그래도 나쁜 인간은 아니다. 세월이 흘러 진실을 마주하고 솔직하게 진심으로 사과한다는 것은 대단한 것이다. 나이먹으면서 아집이 강해지고 왠만해서는 내가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게 된다. 토니의 말대로 과거는 내 마음대로 미화되거나 윤색되어 사실과는 다르게 추억이 되기도 하고 대단치 않은 것을 기억하게 만들기도 하고 뭔가 심각했던 상황들은 대수롭지 않게 변하기도 한다. 그래서 어쩌라고... 하면서 넘길 수 있는 일임에도 토니는 남아있는 유일한 피해자인 베로니카에게 사과를 한다. 너무 늦었지만 어쩌란 말인가.. 내가 그땐 전혀 눈치채지도 알아차리지도 못한 일인것을...

 

다시 읽고 드는 생각 넷.. 베로니카는 토니에게 아무런 감정이 없었을 것이다.

토니가 유산문제로 일기장 문제로 그녀를 건드리지 않았다면 베로니카는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그대로 적응하면서 토니라는 존재는 잊으며 살았을 것이다.

그런에 어느날 갑자기  이미 지워져 버린 그 이름 토니.. 라는 작자가 실체가 되어 일기장의 소유를 주장하고 나서니 순간 열받지 않았을까

에이드리언도 지워가면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그녀에게 토니의 등장은 걷잡을 수 없는 파문이 되었을 것이다. 토니의 이메일은 단순한 이메일이 아니라 베로니카가 덮어놓고 있던 과거의 기억  불쾌감 배신감 모욕 그리고 무거운 책임을 줄줄이 감자캐듯이 드러나게 만든 시발점이 되버렸다.

웃기지도 않다. 지가 뭔데.. 지금 와서 에이드리언의 일기장 소유를 주장한단 말이야?

그리고 거슬러 올라간 기억들 기록들에서 토니의 편지를 다시 기억해내고 모든 원인을 토니에게 돌리고 싶어했을지도 모르겠다. 이놈의 편지만 아니면... 아니 예전에 이놈이랑 얽히지만 않았다면.. 그래서 불쾌하게 대하고 증오를 드러내고 마구 무시한다. 하지만 문득문득 그런 생각도 하지 않았을까.. 이 미련하고 무지한 녀석이 무슨 죄라고... 그래서 순간적으로 따뜻한 모습을 보였을지도... 물론 그런 모습이 토니를 오해하게 만들기도 했지만 ...

베로니카는 안그래도 힘들고 지친.. 하지만 이제는 적응해가는 일상에 토니가  침범한게 싫었을 것이다. 넌 모르니까 아무것도 모르니까 그만 꺼지라고 하지만  눈치없는 토니는 자꾸 엉겨붙고 일기장을 핑계대고  결국 베로니카는 현실을 보여준다.

이 바보야 문제는 일기장이 아니야. 니 편지도 아니야...

 

다시 읽고 드는 생각 다섯.

몰라도 되는 일은 그냥 모르는 채 살아가면 그게 더 행복할까?

아니면 꾸역꾸역 미련하게 파고 들어서 상처입고 불행해지더라도 알아야 하는 걸까

호기심이라는 게 고양이만 죽이는게 아니다. 그놈의 호기심이 관심이 결국 옛상처를 건드리며 세상에 드러났다. 그래도 드러났으니 내가 몰랐던 잘못에 대해 나의 오해에 대해 사과할 수 있다고 토니편을 들어줄 수 있을까? 왜 잔잔한 호수에 돌을 던졌냐고... 베로니카 편을 들어야 할까

나의 만족 정직성을 위해 타인에게 해를 가해도 되는 걸까? 그건 선일까 악일까

 

다시 읽고 드는 생각 여섯.

베로니카 어머니의 유언으로는 에이드리언이 죽기 마지막 몇달간은 행복했다고 했다. 그런데 왜 죽었을까.. 무엇이 에이드리언으로 하여금 자살을 하게 했을까

토니 어머니 말대로.. 너무 똑똑해서 였을까?

살아남은 자들보다 갑작 죽은 이의 슬픔이 고독이 느껴졌다. 아.. 첨 읽을 땐 에이드리언은 그냥 하나의 소모품이었구나. 토니를 꺠닫게 하고 베로니카를  시험에 들게 하는 장치로만 봤나보다.

두 사람에게 열중하느라..

하지만 다시 읽으면서 자살을 선택한 에이드리언.. 그리고 예전 학창시절 자살했던 롭슨

두 사람의 영민함은 다를 지 몰라도 삶에 대한 불안이나 절망의 무게는 같았을까

책은 결국 에이드리언의 이야기는 하나도 해 주지 않고 끝이 난다.

하긴 그게 중요한건 아닐지 모른다.. 깊은 슬픔을 느끼게는 되지만 문제는 결국 살아남은 자들의 기억이고 자기기만일 뿐이다.

 

이 책의 장점은 여러가지 생각을 많이 하게 한다는 것. 그리고 읽을 때마다 다른  면을 보여준다는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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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 미술관은 분위기가 참 좋다.

고궁안에 있다는 점도 그렇고  오래된 석조건물이라는 것도.. 그리고 미술관이 횡하니 넓지 않고 조금 좁은 듯한 것이 오히려 아기자기하고 따뜻한 분위기가 있다.

 

새로 개장안 현대미술관을 갈까 하다가 덕수궁으로 왔다.

아늑하고 오밀조밀한 장소에서 내게 익숙하고 이야기가 많이 숨어 있는 그림을 본다는게 겨울에는 더 어울리는 거 같아서였다,.

내가 알던 사람들 눈에 익은 그림들 교과서에서 보던,, 혹은 상식으로 알았던 것들을 실제로 본다.

첨에 갔을때는 오디오 해설을 들었다.

그림에 대한 지식은 생기겠지만 화풍이 어떻고 작법이 어쩌고 하는 건 사실 몰라서도 잘 들어오지 않았다.

이번엔 그냥 눈으로 봤다. 그림을 보고 작가랑 제목을 보고 그려진시대를 보았다.

저런 시절 저런 그림은 어떻게 나왔나.. 보여지는 한폭의 그림뒤에 더 많은 이야기가 숨어있는게 느껴진다.  암울한 시대에 모던보이나 서구적인 분위기를 보면서 꽤 잘 살았군.. 하는 삐딱한 시선도 가졌다가 한참 들여다 보는 그림속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 부서질듯 위태로운 불안도 느껴진다.

 

 

오지호의 "남향집"이다.

이전 어떤 기사인지 모르겠지만 이 그림을 본 적이 있다. 그때부터 낯설지 않고 참 눈에 익은 느낌이었다. 그림의 배경이 되는 장소를 어쩌면 내가 알거 같기도 하고 내가 가본 곳 같기도 한 묘한 느낌... 그러다 생각이 났다. 내 외가집같구나.

사실 내가 방문하고 기억하는 외가집이 아니라 엄마의 낡은 흑백사진속의 외가집 모습이 보였다,

50~50년대 평범하고 소박한 집 그리고 그 집에 사는 야무진 여자아이

그림속 단발머리 소녀는 엄마의 낡은 사진 속 인물들과 똑같은 헤어스타일을 하고 있다.

바가지를 씌우고 자른 것 처럼 깡충한 뒷머리와 눈썹이 드러난 앞이마.. 그리고 조금은 쩨려보듯이 도전적인 눈빛으로 정면을 바라보는 시선 하지만 그 속엔 불안과 수줍음도 들어있는 묘하게 정감가는 표정... 그림속 소녀는 눈코입이 보이지 않지만 아마도 그런 표정일것이다.

내가 익숙하게 보아온 표정이기도 하고...

그렇다. 나는 저 그림에서 유년시절 우리 엄마를 본다

이제 70이 훌쩍 지난 엄마도 그런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짧은 머리가 맘에 들지 않아 속상할 수도 있고 오빠들 남동생에 치여 존재감 없는 중간딸이라는게 화가 나기도 하고 그러면서 세상에 대한 꿈도 있고 희망도 있고 뭔가 모를 기대감이 가득했을 나이

따뜻한 양지에서 바라보는 바깥풍경에 대한 동경같은 걸 품을 나이..

옆에 늘어진 강아지의 팔자를 부러워하지만 결코 그렇게 되고 싶지 않다는  치기어린 뭔가를 가질 수 있는 건 따뜻한 빛과 공기를 가진 남향집 소녀였고 아직은 살아갈 날이 많은 나이여서일 것이다. 볕이 강할수록 그늘도 깊다는 걸 그때는 눈에 보이는데도 모를 것이다. 그 짙은 그늘보다는 빛과 볕이 더 눈에 찰테니까

그림앞에 서서. 엄마.. 하고 불러봤다 괜히 코가 찡하다.

미안하기도 하고 쑥스럽기도 하고 짠하기도 하고.. 하지만 따뜻한 기분도 함께이다.

저렇게 환한 볕아래 아무 근심없는 소녀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Masterpieces of Mode

 

박수근 작품중 내가 맘에 들었던 것.

이것도 오지호의 남향집과 비슷하다.다만 박수근 화풍의 특징상 그렇게 환한 볕은 없다는게 다를 뿐이고.. 이 그림도 많은 이야기가 들어있다. (작가가 가진 이야기가 아니라 보는 사람이 갖는 이야기) 아마 남향집도 저런 오래된 골목에 있었던 집이었으리라

그 골목에 오전에서 오후까지 길게 해가 비칠것이고  4시무렵부터는 저렇게 조금씩 빛이 줄어들면서 조금은 어둑하고 아늑하고 가라앉게 될것이다. 그래도 그 골목이 익숙하고  편해서 누구나 아무런 걱정없이 다닐 것이다. 계집애들은 아직 놀이를 끝내지 못했고 저녁준비하기에 아낙들도 아직은 여유가 있다. 아직은 해가 지지 않았고 어둡지 않은 시간 어쩌면 해가 드는 낮에 계속 집안일이나 심부름 동생 보기  등등으로 정신없이 고달팠던 여자들의 여유시간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익숙한 냄새 익숙한 풍경을 가진 동네 골목에서  둘셋씩 모여서 시간을 흘려보내는 이 순간이 하루의 유일한 휴식시간이라는 생각도 든다.

남향집속의 계집아이도 여기서는 친구랑 이야기하고 있다.

나중에 미래엔 어떤 삶이 펼쳐질지 알 수 없지만 지금 이순간은 행복하고 즐겁다. 친구가 있고 이제 쉴 수 있으니까.

 

그림을 보면서 내가 이러쿵 저러쿵 이야기를 생각할 수 있는 것도 내가 결국 저 시대에 조금으 발을 담그고 있었기때문이 아닐까 싶다. 내가 경험하지 않았어도 경험했던 사람들과 함께 살았고 그 흔적을 엿본 기억이 있고 아직은 그때의 흔적이 남았던 70년대 80년대를 살았고... 그래서 그 그림들을 보면서 그때의 소리 그때의 모습 그때의 냄새를 떠올릴 수 있다. 그건 축북이다,

그 축복덕에 나는 조금은 더 풍요롭게 그릶을 감상할 수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그림도 좋다. 여름 오후 모기장을 혼자 차지하고 덜렁 누워있는 여유가 재미있고 근사헤 보인다. 여름에 모기장에 들어가 저렇게 누어본 사람은 알것이다. 요즘은 일인용 모기장도 나오지만 예전 나 어릴적에는 온 방을 다 덮을 커다란 모기장을 치고 온가족이 들어가 잠을 잤던 기억이 있다.

모기를 잡는 건지 사람을 잡는 건지 알 수 없는 그 모기장 안에서 형제들이랑 웃고 떠들고 치고 받다가.. 그러다 모기장 찢어진다.. 하는 한소리를 듣고 조금 멈칫하다가 다시 시작되는 장난질,.

그 커다란 모기장에 대한 기억을 가진 나는 .. 그 모기장안에 혼자 저렇게 덜렁 누워있는 생각을 그때 왜 못했을까 하는 아쉬움도 들고... 부럽기도 하고 그랬다. 그 어떤 설명없이도 그림속 인물의 마음을 알거 같고 부럽다.

 

내가 보는 그림에 대한 느낌이나 평가가 어쩌면 작가의 의도와는 크게 다르거나 엉뚱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내가 가진 생각 내가 가진 경험을 토대로 그림을 대상으로 바라볼 수 밖에 없고 해석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참 편협하게도 내가 이해하고  경험했던(그게 직접이던 간접이던) 것을 느낄 수 있는 그림이 좋았고 좋았다.

이중섭의 경우는 그 유명한 황소보다는 "길떠나는 가족이 좋았다" 같은 제목으로 올려진 연극을 본 경험때문일 것이다. 내가 이중섭에게 받은 인상은 어떤 위대한 화가 살아있는 동안이 고흐처럼 불행했던 화가의 이미지보다 가족을 그리워하고 사랑한 가장이 이미지가 큰건 그 연극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때의 기억이 어떻게 변색되었을지라도 내겐 좋게 남아있었다. 그래서 길떠나는 가족.. 앞에서 나는 내가 잃어버린 가족을 만난것 처럼 설레고 흥분되었다.

내가 가진 얕은 기억이나 경험도 어떤 대상을 감상하는데 좋은 역활을 한다는게 참 좋았다. 어쩌면 나름 시대를 잘 타고 난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을 만큼.

어쩌면 그래서 그림을 함께 본 내 아이들은 그런 공감을 못 느꼈을 수도 있다. 그저 교과서에 나오는작품.. 하나의 교양이나 지식이 되는 작품으로 대할 수 밖에 없을 지도 모른다.

그아이가 본 내 어릴적 사진은 아파트가 배경이었고 지금과 비슷한 헤어스타일이나 옷차림의 내가 있고 골목보다는 아파트 동 호수가 더 익숙한 상황에서 골목길이나 남향집은 또다른 느낌이 아닐까.

아직은 덜 여문 경험때문이라고  생각도 해보지만 그래도 어떤 공감이나 경험이 없이 보는 건 다를 수도 있겠구나.. 싶다. 내가 느끼는 것도 내 부모가 느끼는 것이랑은 확연히 다를 수 밖에 없을테니까...

미술관에는 진시성격때문인지 유난히 나이드신 분들이 많았다. 부부가 함께 와서 보는 경우도 많았다. 엄마랑 왔으면 좋았을 걸... 아버지가 살아계셨다면 오시고 싶었을거 같다는... 그런 생각도 했다. 어쩌면 그분들이 좋아하는 그림은 그분들의 기억과 경험은 또다른 것이었를 거다.

그걸 함께 이야기 해 볼 기회가 없다는 게 슬펐다.

 

아이에게 좋아하는 그림을 하나 골라보라고 했다.

아이 둘이 공통으로 고른건.. 이인성의 해당화였다.

 

내 아이들은 이 그림에서 어떤 이야기를 발견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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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도 되겠지 - 호기심과 편애로 만드는 특별한 세상
김중혁 지음 / 마음산책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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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진의 빨간 책방을 들으면서 첨 알았다. 김중혁이라는 작가...

사실 이전엔 소설가라는 것과 김연수 친구라는 것만 알았다. (작가에게 미안하네)

그런데 팟방을 뜰으면서 이동진과 주거니 받거니 하는 말을 들으면서 이 작가의 말이 생각이 참 좋았다. 그냥 나랑 비슷하게 생각하네 싶은 맘도 들었고 너무나 매끈하게 이야기하는 이동진에 ㅣ해 버벅거리고 얼버무리는 경향이 많지만 그래도 뭔가 자기 주장을 해야할테는 투박하고  솔직하게 자기를 드러내는 게 좋았다.

그래서 책이 궁금했는데 소설은 제목을 보니 사실 끌리지 않았고  이 책은 나올때부터 제목이 끌렸다.

그래 뭐라도 되겠지... 안달할거 뭐있나 싶은 마음에 제목이 정말 와닿았다.

그리고 미루고 미루다 도서관  장장 에약까지 하면서 본 책

우선 이렇게 두꺼울 지 몰랐다.

사실 어느 정도에서 잘랐으면 좋았겠는데 내용물이 너무 많았다. 그러다 보니 모든 글이 고르지 않았다. 특히 후반부

두번째 요즘 젊은 작가들의 경향이기도 하지만 하루끼 풍의 문체가 자꾸 걸린다.

물론 이 작가으이 방송을 듣다보면 이 작가의 목소리가 저절로 재생되어 나와 문체랑 말투랑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자꾸 하루끼가 연상된다.

조금은 가볍고  아니면 말고 식이거나.. 중간에 개입해서 (괄호속에 들어갈 말들이 튀어나오는) 뭐 그런 것들이  걸렸다.

하지만 내용이 공감이 가는게 많다.

자기를 솔직하게 드러내면서  단점도 감추지 않고 소심하고 꾸준하지도 못하고 게으르고 방만한 성격이지만 그래도 뭔가 이루지 않았는가.. 이렇게도 살 수 있지 않은가 하고 이야기한다.

그렇지 그래... 우리 아이들도 나중에 뭔가 되긴 되겠지? 하는 무한 긍정을 마구 샘솟게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래서 뭐... 결국 이 작가는 그래도 뭔가가 되었지만 다들 이렇게 뭔가가 되는 건 아니지 않은가? 하는 의심과 불안이 뭉게뭉게 피어오르기도 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따라하기엔 왠지 미심쩍고 불안하고 위험해 보이는...

어쩔 수 없는 학부모의 마음이 자꾸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대단한건 아니라고 하지만 그래도 작가가 .. 나도 이랬어 그런데 괜찮아.. 하는 말을 읽으면서 나자신은 공감이 가지만.. 이걸 우리애들는 금서로 해야하지 않나 나는  이중성을 마구 드러내게하는 책이었다.

그래서... 애들이 보면 좋겠지만.. 나중에 어느정도 걸러낼 이성이 생길때 보면 좋겠다는 욕심이...

 

하지만 뭐 이런걸 다.. 혼자 생각하고 말지.. 했을 것들을 모두 세세하게 기록하고 글로 풀어내는 그 부지런함과 정성에는 감동했다. 별 건 아니지만  누군가 술자리에서 수다떨고 말 이야기들에서 그래도 뭔가를 꺼집어 내는 걸 보니 작가구나 싶고 참 사람 좋을거같다는 생각도 들고... 암튼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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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치지 않는 비 - 제3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작, 개정판 문학동네 청소년 17
오문세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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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델과 그레텔은 뿌려놓은 조약돌을 밟으며 집으로 돌아간다.

나는 하나하나 작가가 뿌려놓은 밑밥을  잡아가면서 막바지로 향해갔다,

처음엔 그저 그랬다. 문장도 나쁘진 않은데 자꾸 걸렸다. 쉽게 줄줄 읽혀지지 않았고 목에 턱턱 걸리면서 거칠고 서툴렀다. 뭔가 나쁘진 않는데 매끄럽게 넘어기는게 없었다.

괜히 골랐나 싶었다.

중간에 패스트푸드점에서 할머니를 만나는 장면에서 그만 책을 덮었다.

어쩌면 나는 청소년 문학이라는 것에서 어떤 재미나 커다란 스케일 혹은 요즘 아이들의 발랄한 무언가를 찾았었던 거 같다.

단언컨데.. 이 책에는 그런게 하나도 없다.

그냥 한 소년이 가출이 아닌 여행을 떠날 뿐이다.

왜 그런지 알 수 없고 도데체 어떤 배경인지 읽어도 잡히지 않는다. 다만 함께 동행하는 형에게 뭔가 비밀이 있구나 하는 감은 있다. (이런건 진부하진 않지만 이제 너무 쉽게 보인다.)

하지만 꾹 참고 다시 책을 읽으면서 나는 헨델과 그레텔이 뿌린 조약돌처럼 그렇게 이정표를 찾아서 하나씩 하나씩 보물을 주워가며 이야기의 끝을 향하고 있었다.

가출이 아닌 여행을 떠난 아이는 길에서 많은 사람을 만난다.

터프한 세상에서 노래를 부르고 싶어하는 노래에 재능이 없는 전직 의사도 만나고

거리의 부랑자도 만나고 산타클로스 할머니도 만나고 사연이 깊은 목사도 만난다,

그리고 여행의 중간목적정도 되는 예전의 여자친구 (여자인 친구)19번도 만나고 대장도 만나고 펜더도 만나고....

길을 떠난 아이는 여러 사람을 만나서 위악도 떨고 건방지게 굴기도 하고 다정하기도 하다.

그리고 어느날 문득 거울앞에서 인중에 돋아난 털을 발견하고 조심스럽게 면도기를 사용한다.

 

어쩌면 엄마가 마지막에 남긴 "괜찮다"는 말이 크게 목구멍에 걸리고 명치에 걸려서 그렇게 방황을 했었던가보다. 괜찮다는 말은 참 묘하다.

누군가가 괜찮다고 하면 그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위안이되기도 하지만 떄로는 비수가 되기도 한다. 너가 말한 그 세음절 "괜 찮 다"가 공중에서 나에게로 는 닿지 않을 때가 그렇다.

너는 괜찮지만 나는 도저히 괜찮을 수 없는 경우가 있는 법이다.

차라기 그말을 지하주차장에서 벽에 등응ㄹ 대고 웅크렸던 형이 들었더라면 죄의식이 덜했을까  또다른 비극이 일어나지 않았을까 소년은 생각하고 고민하지만 해결이 없어서 주먹을 쓰고 야구 배트를 쓰고 전학을 간다.

엄마의 그 세음절을 나중에 긴 여행끝에  소년에게 도달했다.

이젠 정말 괜찮다고...

정작 소년에게 괜찮다고 말해 주었으면 하는 이들은 아버지나 형은.. 모두 입을 닫고 있었고 소년이 그 세음절의 무게로 휘청거릴때 형수는 소년을 위로한다.

형보다 강하다고 견딜 수 있을 거라고...

 

책을 읽고 불현듯 드는 생각이 "우아한 거짓말"의 남학생판이네 였다.

뭐 비슷한 점이 없긴 하지만 가족중 누군가가 죽고 이후에 홀로 견뎌내야 한다는 것이 그렇다.

하긴 소년에게는  만지와는 다르게 두번의 죽음이 있얶고 다정하고 친구같은 엄마 대신 스스로를 못이겨내서 자식에게 무심했던 아버지가 있을 뿐이지만  큰 사건이후 그 이유를 홀로 찾아내고 견뎌야 한다는 점에서는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길을 떠나서 사람을 만나고 조금씩 드러나는 소년의 아픔이나 상실을 보면서 세상에서 잚어진 무게를 혼자 견뎌내야 한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본다.

게다가 비까지 내리는 상황이다.

비에 아예 흠뻑 젖어버리면 더 이상 젖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첨에 비를 보면 무조건 피하고 한방울이라도 튀는 걸 못견뎌하지만 이미 젖어버린 몸에서는 아무런 두려울 것이 없다.

언젠가 비는 그칠테고 사람들은 그런 것을 비라고 부르니까.

 

 

.

 

책장을 덮으면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게 된다.

처음부터 다시 꼼꼼히 읽으니 그제사 내가 무지하게 거칠다고 투덜거렸던 문장들이 다가왔다,

소년이 아프다고 할 수 없었던 말들 외롭다고 할 수 없었던 말들 두렵다고 할 수 없던 말들이 거칠고 단순하고 덤덤한 문장속에 숨어있었다.

그랬구나...

 

나는 쿨하다... 란 표현이 참 싫어졌다.

나는 상처받고 싶지 않아요.. 난 아프고 싶지 않아요.. 그러니 다가오지 마세요 날 건드리지 마세요 그냥 그만큼 거리에서 바라보기만 하세요.

나도 다가가지 않을 겁니다.

그렇게 세상에서 도피하는 말 같아서 싫었다.

상처가 싫어서 더 단단한 껍질 속으로 들어가버리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또 더 나아가 내가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더라도 그냥 아무렇지도 않고 여기고 말거라는  소심한 이기심까지 들어있는 말같아서..

차라리 뜨겁지 않더라도 뜨뜨미지건한 정도라도 온기를 가지는게 낫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냥 다가가고 거절당하고 상처받고 소독하고 주저않고 울고.. 그렇게 감정에 충실하고 촌스럽게 사는게 정말 사는게 아닐까.

소년의 삶이 쿨함에서 조금씩 온기를 가질거라고 생각한다.

누군가의 말을 들어주고  망설이지만 대꾸해주는 것부터가 그 시작일 것이다.

 

청소년 소설이라기엔 벅찬 느낌이다.

하지만 한문장 한문장 읽으면서 많은 생각이 들고 끊임없이 고민하고 망설이게 만드는 무언가는 있다. 누구하나 허투로 나온 사람이 없고 한 사람 한 사람이 고지식하고 거칠지만 나름의 의미를 가진다는 점이 참 좋다.

꽤 괜찮은 작가를 알게 되어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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