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겸손하게 행동할 것이다.

그때는 몰랐다.

나는 이미 다 알고 있는데 왜그렇게 어른들은 했던 말을 하고 또 또하는지

뻔한 말들, 하나마나한 말들, 지금 나한테 하나도 와닿지 않은 말들만 했는지 몰랐다.

이제 내가 나이를 먹고보니 내가 지금 내 아이에게 그런 말을 하고 있다.

나는 정말 절실하게 진심을 담아 아이가 알아주었으면 잊지말았으면 하는 마음에 말을 하지만

아이는 전혀 이해하지 않고 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게 다른 누가 아니라 몇년전 그때의 나였다.

내가 다시 내 아이의 나이가 된다면

나는 겸손하게 어른들의 말에 귀를 귀울일것이다.

이미 알고 있다 , 어른이라고 다 옳은 말만 하고 도움이 될만한 조언말을 하는 건 아니라는 걸

하지만 누군가가 내게 말을 하고 어떤 경험에서 나온 잔소를 되풀이해서 하더라도

그걸 일단은 들어볼 것이다.

어쩌면 내가 스쳐지나간 그 길한모퉁이 어딘가에 보석이 숨어있었을 경우도 있고 무심코 받아든  동전속에 귀한 무언가가 함께 있을 수도 있지 않겠는가

그리고 그 말이 무엇이든 나를 사랑하는 사람.. 나를 아는 사람이 해주는 말이라면 나름 진심이 있는 거라고 믿고 일단 경청할 것이다.

그랬더라면 지금 내가  조금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물론 별 차이 없이 나이를 먹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누군가의 말을 제대로 듣는것은 누군가를 알아가는 첫걸음이고 그렇게 누군가를 알고 이해하고 공감하는 건 결국 내 세계가 넓어진다는 걸 그땐 몰랐다.

내가 듣고 싶은 것. 그 순간 내게 필요한 것들만 듣는 것 그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그때가 후회스럽다.

어쩌면 내 아이도 아직 그걸 모를 것이다.

아니 어쩌면 내가 말하기가 서툴러서 아이가 원하는대로 잘 말하는것이 되지 않아서인지도 모르겠다.

누군가가 내게 해주는 조언은 그게 무엇이건 일단 귀기울여주는 겸손함이 필요하다

지금 내 나이에도 역시 그러하니 지금이라도 잘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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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단어 - 인생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박웅현 지음 / 북하우스 / 2013년 5월
평점 :
절판


책을 읽는다고 인생이 변하거나 뭔가 드라마틱하게 바뀌는 일은 절대 없지만

그래도 뭔가가 조금씩 조금씩 내면에 쌓이면서 무게를  가지는 일은 생기지 않을까

내가 책을 읽고  내 아이들이 책을 읽기를 권하는 건

그것으로 논술을 잘 써서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점수를 받고 성공했으면 하는 속물적인 욕심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뭔가 혼자만의 위안을 가졌으면 하는 것이다.

힘들고 외로울때 뭔가 위로가 필요할때 누군가 없을 수도 있다. 소극적이고 도피적인 방법이긴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시간을 견디고 용기를 내고 숨을 돌릴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그 외 다른 여러가지 다른 것들이 위로가 되고 용기를 주겠지만 그래도 책읽기가 더 낫다고 생각하는 건 나 혼자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책읽는 시간만한게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실 이 책이 한창일때 나는 생각했다. 아마도 인문학을 뒤집어쓴 자기계발서겠구나.싶었다.

그의 전작 "책은 도끼다"를 읽었는데 누구나 하는 평처럼 참 좋다기보다는 참 자기 주관을 소신있게 그러면서 설득력있게 썼구나 싶었다. 그 책을 읽고 예전에 읽었던 김훈을 다시 꼼꼼하게 읽어보았다는게 나름 수확이었다. 역시 김훈이구나.. 하는 생각과 더불어...

책을 많이 읽기보다는 한두권이라도 꼼꼼히 읽고 다시 읽고 내 영혼을 흔들어주는 책을 가지는게 좋다는 그런 교훈(?)을 얻기는 했고 그게 맞다고 생각했다.

많은 것보다 하나라도 깊게 알고 공감하고 내것으로 만드는 것이 좋을테니까

 

그리고 "여덟단어"를 읽었다.

전편도 그러하듯이 강연을 엮어서인지 책이 쉽게 읽히고 잘 넘어간다.

그의 목소리를 들어본 적은 없지만 왠지 이렇게 말할거 같은 말투가 느껴지면서 그의 강연에 가있는 기분으로 책을 읽었다.

자존

본질

고전

현재

권위

소통

인생

 

솔직히 마흔넘어 더 이상 어디서 교훈을 찾으랴 싶었는데  나는 읽는 동안 참 착한 학생처럼 고개를 끄덕이며 읽었고 감동했다. 부끄럽지만

내가 좀 더 나이를 덜 먹었을 때 누군가가 이런 말을 조곤조곤 (왠지 말투가 조곤거릴거같았다) 이야기 해주고  조언했더라면 내 인생은 조금 달라졌을까? 뭐 대단한 것이 바뀌진 않았더라도 삶에 대한 태도라든가 작은 습관하나쯤은 바뀌지 않았을까 싶었다.

사실 누구나 아는 이야기이고 어디서나 들을 수 있는 이야기이다.

스스로를 소중하게 생각하라

껍데기나 누군가 나밖의 세상이 세운 기준이 아닌 나 스스로의 중심과 본질을 찾아 집중하라

고전을 읽고 들어라

세상을 관심을 가지고 애정을 가지고 보라

현재를 즐겨라

동의되지 않은 권위에 굴복하지 말고 불합리한 돈의 힘에 복종하지 말자

다름을 인정하고 상대를 배려하며 소통하라

인생은 하루하루 작은 완성

이 만들어내는 큰 그림이다

등등  누구나 알지만 그래서 사소하게 여겨지지만 여전히 중요한 것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래서 부끄럽지만 혼자 감동했다.

왜냐하면 이건... 내가 잘 실천하지 못하는 것들이면서 동시에 내가 내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싶은 것이기도 했다. 내가 잘 행하지 못하지만 내 아이들은 하기를 바라는 조금 모순된 일이지만 그만큼 보편적이고 꼭 필요한 삶에 대한 자세라고 생각했던 것이니까

책의 세부적으로 들어가 몇몇의 예들이나 예술을 감상하는 방법등은 작가의 주관적인 면이 많이 들어가므로 조금 불편한 것들도 있었다. 클래식을 몰라도 그림을 잘 알고 즐기지 않아도 그래도 무언가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은 있을거라고 생각하기때문이다. 만화를 보고 잡지를 뒤적이면서 혹은 공원길을 걷고 아이의  엉성한 그림속에도 감동할 수 있고 깨달을 수도 있을 것이다.

유명한 그림을 알고 클래식을 듣지 않아도 느끼는 정서는  있고 그것이 더 천하거나 낮다고는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 세세한 점은 두고 전체적으로 저자가 하고싶은 말은 충분히 공감할 만하다.

그리고 읽기도 어려운 편이 아니므로 누군가 부모대신 또다른 멘토가 있어 내게 이런 조언을 해준다는 기분으로 내 아이에게도 권하고 싶다.

어쩌면 지금은 무슨 이런 고리타분한 말을.... 하면서 몇줄 읽고 내팽겨칠 수도 있다.

(어제밤에 꼭 읽어보라고 줬더니 소파위에 던져놓고 들어가더라)

아직은 와닿지도 않을 것수도 있고 또 어쩌면 이렇게 멋지지 않은 내부모와 비교하며 우울해하기만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인생을 조금이라도 더 살았던 경험으로 이런 조언을 조금 일찍 듣는게 어쨌거나 도움이 될거라고 말해주고 싶다.

나를 존중하는 것 본질에 충실하는 것 권위에 눌리고 두려워하지 않는것 오늘 하루를 열심히 살아내는 것... 이건 정말 중요한 일이니까..

(가장 좋은 말은 인생편에서 제발 꿈을 꾸지 말라는 말이었다.  대입이든 고입이든 자소서에 나의 꿈을 정하고 그에 맞추어 여러가지 스펙들을 꿰어나가는 것이 유행처럼 되어버린 지금 아직 하고 싶은게 없고 되고 싶은 게 없다는 것만으로 기가 죽고 뒤쳐졌다고 생각하는 내 아이에게 혹은 나에게 뭔가가 되고 싶은 꿈보다 하루하루 알차게 메워나가는 일이 더 조중하다는 말 꿈은 다양하게 바뀔 수도 있다는 말 그리고 차선책에서도 최선을 다하면 된다는 말을 아이가 이해하면 정말좋겠다)

 

빌려읽었는데 사야겠다고 생각했다면 괜찮은 책인거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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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왕국이 불편한 이유는 내가 딸을 둘 키운다는 사실때문만은 아닐것이다.

하지만 그것과 전혀 상관이 없다고도 할 수 없을 것이다.

왕에게는 딸이 둘 있었다.

척 보기에도 큰딸은 단정하고 지혜롭고 자상하다.

작은 딸은 세상의 모든 막내가 그러하듯이 활발하고 호기심이 강하고 충동적인 면도 있다.

아이를 키워보면 안다.

내 속에서 나온 아이들이고 각각을 보면 둘다 나를 혹은 나의 배우자를 닮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은 정말 다르다.

큰 딸 앨사는 능력을 타고 났다. 만지는 것들을 얼음으로 만드는 능력

그건 동생에게 즐거운 눈놀이를 하게 만들 수도 있고 언제나 신나게 스케이트를 즐기게 할 수도 있지만 한편  손에 닿는 모든 것을 얼어붙게 만들기도한다.심지어 사랑하는 동생까지도

그 능력이 어떠한가는 일단 제쳐두고

왕에게는 능력을 가진 첫째와 평범한 둘째가 있었다.

왕과 왕비는 그 능력의 비범함과 무서움을 알고는 그 능력에 집중한다.

엘사를 누구와도 접촉시키지 않고 그 능력으로 누구에게도 피해가 가지 않도록 주의 하면서 아이를 키운다. 하지마나 동생 안나는 그 이유를 모른다. 이미 지워진 기억으로 언니의 능력조차 기억하지 못하고 그저 언니랑 놀지못하는 쓸쓸함과 외로움만 가지고 있다.

공부 잘하는 큰 아이가 있다. 언제나 일등이고 백점이다. 부모는 당연히 욕심을 낸다.

조금만 더 뒷바라지 하면 우리가 조금 더 노력을 하면 충분히 잘 될 수 있고 크게 성장할 수 있는 아이... 그 아이에게는 그 아이만의 특별한 교육과 훈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길로 매진한다. 아이도 성실하고 순종적이다. 자신의 능력을 잘 알고 부모말에 따른다. 훌륭한 커리큘럼 좋은 선생님 우수한 코스를 따라 아무런 저항없이 순순히 따른다.

아이의 빛나는 미래는 멀지 않았다.

그리고 또다른 아이가 있다. 평범하고 명랑하고 에너지가 넘친다. 그나이때 아이들처럼

아이는 늘 제 형제와 놀고 싶다. 눈싸람을 만들고 물장난을 하고 소꼽놀이를 하고 수다를 떨고 싶다. 하지만 엘리트코스에 들어선 언니는 시간이 없다. 늘 문  저 너머에서 무언가에 몰두한다.

언니가 그 방으로 들어가서 문을 닫으면 누구도 떠들거나 뛰어다닐 수 없다. 언니를 방해하면 안된다. 언니가 무얼하는지 모르지만 언젠가는 나와서 나와 놀아주기를 한없이 목을 빼고 기다린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다.

한 아이는 점점 자기에게 얹혀진 기대감이 무겁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도망치고 싶지만 이미 늦었다. 그렇다고 이대로 계속하기엔 이제 두렵다. 나보다 나은 경쟁자가 보이기 시작했고 내 한계를 알것도 같고 무엇보다 그 모든 기대를 저버리는 것이 그들이 나에게 실망하는 것이 가장 두렵다.

그래서 이젠 스스로 문을 열고 나갈 수가 없다. 이방에 숨어서 계속 나를 다그치는 것밖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한 아이는 외롭다. 혼자 뛰고 노래하고 놀지만 외롭다. 자유로운데 뭔가가 부족하다. 그냥 자유롭지 못한 잔소리를 듣는 누군가가 부럽다 어쩌면 그 잔소리는 사랑의 다른이름이고 관심의 또다른 얼굴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어쩌면 자유로운것이 아니라 버려진게 아닐까.. 아닐거라고 스스로 되내이지만 뭔가 나만의 것을 가지고 싶다.

그리고 왕과 왕비가 죽고 성문이 열린다.

이제 두 아이는 성인이 되었고 세상으로 나가야 한다.

언제나 성문을 꼭꼭 닫고 살 수는 없는 것이다.

한 아이는 자신의 본모습이 들킬까 두렵다.

누구에게도 본래 얼굴을 보일 수 없어서 외롭고 무섭다.

한 아이는 누군가의 사랑을 갈구한다. 그게 누구이든 무엇이든 나를 사랑하는 사람만 있다면 나를 던질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찾았다.

세상이 두려운 한 아이는 누구도 믿지 못한다. 그래서 첫눈에 사랑에 빠진 제 형제를 경계하고 힐난하고 반대한다.

오로지 관심만을 원하던 한 아이는 제 형제의 거부가 너무나 충격이다. 나는 왜 사랑을 할수가 없는가 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거부하는가

그래서 사건이 터지고 자매는 헤어진다

 

큰 아이가 태어나고 나도 다른 부모처럼 기대가 컸다.

아이가 자라 무엇이 될까 나와 어떤 관계를 맺게 될까..

아이를 보면서 나는 새로운 꿈을 꾸고 있었다.

아이는 영리하고 순종적이었다. 나름 고집이 강했었는데 그래도 꺽을만큼이었고 내가 잘 콘트롤 할만큼의 호기심도 있었다.

자라면서 아기나라를 하고 한글을 배우고 수를 배우고 영어를 배우고

순간순간 삐끗거리는 순간이 있었지만 아이는 잘 따라오고 있었다.

다행히 책도 좋아하고 혼자서도 잘 읽었고 호기심도 많았고 또래에 비해 조숙한 편이었다.

이렇게만 가면 꽤 괜찮을거라고 나는 스스로 만족했다.

그리고 둘째가 있었다. 한창 큰애에게 관심을 가져야 할무렵에 태어난 둘째였다.

세살터울... 어쩌면 가장 쉬울 수도 있고 어려울 수도 있는 터울이었다.

막 세상에 호기심을 보이고 공부를 시작하는 아이에게 집중하려면 동생은 조금 성가셨다.

다행히 둘째는 잘 잤다. 혼자서도 잘 자고 깨서도 울지 않은 아이였다.

낮잠을 3시간씩 자는 둘때덕에 큰아이에게 집중하는 게 가능했다.

어느정도 나이가 되어 둘째도 큰아이처럼 관심을 가져야 하는데 자꾸 뒤로 쳐졌다.

조금 늦어도 괜찮아. 아직은 괜찮아.

학교에 들어간 큰 아이는 모범생이었다. 수줍고 소극적이긴 하지만 영리하고 따라가는데는 문제가 없었고 기대에 어긋나지도 않았다.

둘째는 조금 문제였다. 어느 순간 낯을 가리기 시작했고 낯선 환경에서 마구 소리를 지르고 제멋대로 하고 혼자만의 시간을 즐겼다. 가족이외에 누구와 도 말을 하지 않았다. 말을 못하는 건 아니었다 다만 하고싶지 않다는게 강하게 느껴졌다.

수건없이는 스트레스가 심했고 외출시는 수건으로 얼굴을 가리기도 하고 고집스럽고 누가 뭐라고 하든 어디서든 고집을 피웠다. 어느순간 순한 큰 아이가 둘째를 부끄러워하기 시작했다

그 전부터 나도 그랬던거 같다. 힘든 아이

하지만 나는 최선을 다한다고 생각했다.

큰아이때 하지 않던 아기학교를 다니고 문화센타를 다니고 아이 친구엄마와 어울리고  아이는 조금씩 나아졌다. 고집은 여전하지만 점차 사회성은 길러졌고 나름 매력이 있어 미움은 받지 않을 수 있어 다행이었다.

작은 아이가 편해지면서 나는 큰 아이와 함께하는 긴장감과 경쟁을 작은 아이앞에서 풀었다. 그냥 그 아이랑 있으면 늘어졌고 편해졌고 내버려뒀다. 나도 쉬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큰 아이가 전투라면 작은 아이는 휴식이었다. 남들보다 많이 늦었는데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손끝조차 꼼짝 하기 싫었다. 어쩄든 되겠지 싶은 마음만 들었다.

 

큰 아이는 어느순간부터 평범해졌다. 나도 잘하고 싶지만 엄마의 기대만큼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고 소리쳤다.

작은 아이는 엄마는 나에게 관심이 없다고 했다. 언니랑은 싸우든 언쟁을 하든 항상 말을 하고 상대를 하는데 나랑있으면 늘 피곤하고 가만있기만 한다고 했다.

틀린말이 아니라는 사실에 화가 났다. 하지만 그렇게 화를 내는 내게 더 화가 났다.

갑자기 내가 실패했다는 생각만 들때도 있었다.

다시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큰 아이는 초등때 반짝하는 전형적인 중학생이 되었고

작은 아이는 학습이 느리고 욕심과 하고싶은 건 가득한데 현실은 소심하고 부끄러운 고민을 가졌다. 나는 두 아이에게 아무것도 해 줄 수가 없다.

어느 순간  이렇게 아이들이 내 손을 떠나는 순간이 온다는 게 아니라 원래 내가 가진 능력이 아이에게 몰두하는 에너지나 능력이 없었다는 걸 너무 늦게 깨달았다.

아이는 엄마의 관심이나 능력으로도 자란다.

하지만 가장 쉬우면서 중요한건 엄마의 뒷모습을 보고 자란다는 걸 나는 몰랐다.

어정쩡하니 아이에게 몰입하는 부모 흉내나 낼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의 삶을 살았어야 헸다.

그랬더라면 큰아이에 대한 기대감은 조금 가벼웠을 것이고 작은 아이에 대해서는 관심과 훈육이 들어갔을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지나치게 몰두하고 누군가에게는 지나치게 방임해버린것

그것이 지난 10녀년간의 나의 불찰이다.

하지만... 정말 다행이도..

내 아이들은 아직 문제는 없다.

사회적 기대나 어떤 목표치에는 한없이 못미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직은 착하고 바르고 평범한 아이다.

내가 조금 덜 기대하고 비범하기 바라는 욕심만 내려놓는다면

뭐 단점이야 있겠지만 그래도 꽤 괜찮은 아이들이다.

 

영화에서 왕과 왕비가 조금더 현명했다면  아니 여전히 나처럼 어리석었더라도 조금 더 살았다면 두 딸들이 그렇게 모진 고생을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내 형제를 오해하고 내 능력을 믿지 못하고 세상을 온통 얼려버리는 그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

내가 내 아이들에게 바람이 있다면 (어쩌면 이것도 욕심이지만)

스스로를  부양할 수 있고

세상에 감사하지만 아닌것은 아니라고 말 할 수 있으며

둘이 사이 좋게 의지하며 세상을 헤쳐나가는 것이다.

 

요즘 세상엔 부모가 둘려쳐줄 수 있는 울타리가 많다. 내가 조금 더 돈이 많다면 능력이 있다면 지위가 있다면 내 자식들에게 물려줄 것이 많아진 이상한 세상이다.

하지만 내가 줄 수 있는 어떤 눈에 보이는 건 하나도 없다.

내 노년조차 불확실한 부모에게 태어난 내 아이에게 내가  줄 수 있는 거라면

그건 어쩌면 행복했던 기억과 그래도 자랑스러운 부모의 모습이 아닐까

그래서 나는 영화관을 나오면서 결심했다.

내 삶을 좀 더 치열하게 살아야겠다....

 

영화를 보면서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나말고 또 있을까?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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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입니까 반올림 24
김해원 외 지음 / 바람의아이들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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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아이들을 참아내고 아이는 어른들을 참아내고 아빠는 아내와 아이들의 갈등을 참아낸다

누구나 내가 참아낸다고 생각한다.

내가 자기들을 얼마나 참아내는 줄알아?

이렇게 평화롭게 하루하루를 넘기는 것이 내가 참아내기때문이라는 걸 저들은 알까?

모른다.

아무도 모른다.

모두 내가 참아내기때문이라고 한다.

참아내는 이유는 가족이기때문에

가족이니까 헤어질 수 없고 어쩔 수 없이 함께 가야 하고 살아야 하고 함께 밥을 먹어야 하니까

끊어낼 수 없으니 참을 수밖에.,

그 누구도 아닌 내가 참을 수 밖에...

 

어느 순간 가족이 이렇게 되어버렸다.

누군가가 참지 않는 순간 헤체되어버리고 눈앞에서 사라질 것처럼 불안한것이 가족이 되어버렸나

 

소설은 네편의 이야기가 연작으로 이어진다.

핸드폰 광고를 위해 모인 네 사람이 자신들이 바라보는 가족이야기를 들려준다.

여고생입장에서 싱글 여성의 입장에서 중학생 소년의 입장에서 그리고 가장인 아버지의 입장에서

모두 특별하거나 문제가 있는 가족이 아니다,

평범하다,. 너무 평범하다.

이젠 사춘기 자식들과의 힘겨루기나 아이에게 자신의 꿈을 투영에서 모든 걸 바치는 부모 희생하는 가족 혹은 싱글가족  가족을 살려내느라 잊혀진 가장같은 건 너무 평범해져버렸다.

모두들 바쁘고 서로에게 알게 모르게 상처를 주고 어쩌다 보니 미안하다고 말할 시기를 놓쳐버렸고 그래도 내맘 알겠거니 하고 삼키고 넘어가고 이해한다고 믿지만 한구석에 상처를 갖게 되는 것

그게 가족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얽히고 으르렁거리고 물고 물리면서도 여전히 함께 굴러가는 것

그게 가족이다,

함께 밥을 먹고 잠을 자고 tv를 보고 낄낄거리지만 그 속을 모두 알 수 없는 사람

그래도 내가 믿을 수 밖에 없고 믿을 수 있는 사람

그게 가족이다.

 

내가 드라마도 연작을 몹시 좋아하는데 소설이 연작이라는 것도 맘에 든다.

언젠가 나도 이런 작업을 해보고 싶다는 욕심도 생긴다.

너무 평범해서 오히려 할말이 더 없고 진부할 수 있지만 그래도 가족이라는 주제로 참신하게 이야기들이 이어진다.

어쩌면 청소년들보다는 그 부모들이 많이 봐야할 거 같다. 나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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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딸을 키우는 부모에 대해 생각을 많이하게 된다.

아들을 키우건  딸을 키우건 부모가 달라야 할 건 아니지만 소소하게 들어가면 조금은 달라야 하지 않을까 싶다.

아직은 어떻게 달라야 하는지 어떠해야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겨울 왕국을 보면서  계속 그런 생각을 했다,

딸을 둘 키우는데.. 게다가 그 두딸이 성향이 다르고 한쪽이 초능력(혹은 장애라고 할 수도)을 가진 아이라면 부모로서의 태도가 어떠해야하는가.

나는 보는 내내 그 왕국의 왕과 왕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안나와의 사고가 있기전에 엘사의 마법에 대해서는 이미 알고 있었고 그렇다면 그렇게 일이 터지기까지 그냥 둘게 아니라 그전에 뭔가 대책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아니다. 그전에는 아직 어리니까 문제가 없으니까 그냥 둘 수도 있다,.

하지만 누군가의 생명을 위협할 수도 있다는 걸 알고난후엔 좀 더 다른 조치를 해야하지 않았을까

마냥 아이를 홀로두고 누구와도 접촉하지 못하게 하는 것 그건 방안에 있는 아이에게는 점점 죄책감에 빠져들게 하고 문밖에 있는 아이에게는 외로움만 깊게 했다,

어쩌면 내가 저 아이를 죽게 할지도 몰라,

나는 왜 언니랑 놀지 못하고 엄마아빠 시선에서 비껴나 있을까

아이가 갖기 않아도 될 죄책감  외로움을 주는 부모라니..

게다가 아이들이 아직 불안한 상황에서 맘편하게 배타고 나가 죽어버리다니,...

엘사의 마법을 조금 더 긍정적으로 바라봐도 좋지 않았을까

아이가 겁을 먹을 수록 마법의 힘은 강해진다는데 부모가 오히려 아이에게 겁을 주고 두려움만 심어준 꼴이다. 결국 그 고생을 하고 헤어지고 오해하고 난 뒤에야 마법의 진정한 힘을 알게 된다

세상의 모든 힘은 양면성을 가진다,

그 힘으로 무한히 긍정으로 나갈 수도 있고 끝없는 부정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

내가 가진 힘을.. 내가 가진 배경이나 처지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를 아이에게 가르치는게 부모가 해야할 일이다

이미 타고난 재능 혹은 능력을 받아들이고 어떻게 이용하는가 쓰야하는가를 가르쳐지고 깨닫게 하는 것 그 왕국의 왕과 왕비는 그걸 못했다.

그래서 그렇게 길고 긴 고행이 시작되고 영화가 시작되었다.

 

요즘 보는 드라마가 두개 있다.

늘 챙겨보는 건 아니지만 왠만하면 보는 것

" 따뜻한 말한마디" 와 "사랑해서 남주나"

둘다 보면  토 일 월 화 연달아 보게 된다.

이 두 드라마를 보면서 친정엄마란... 무언가 생각을 한다.

"따뜻한 말한마디"이 고두심이 연기하는 친정엄마는 현명하고  좋은 엄마 그 자체다.

딸들에게 경제적으로 심정적으로 든든한 후원자다. 딸들이 데리고 오는 이성친구를 흔쾌히 받아들이고 전혀 구김살없이 아이를 키웠다. 필요할떄 도움을 주고 모른 척할때는 절대 먼저 나서지 않는다. 혼자 스스로도 단단해서 딸들에게 하소연도 하지 않고 끈적거리지 않고 스스로 삶도 잘 꾸려나가는 정말 좋은 엄마다.

 

"사랑해서 남주나" 에서 차화연이 연기하는 엄마는 경제력은 떨어지지만 (나중엔 그것도 아니라고 나오지만)이혼까지 해서 유년시절 아이에게 상처를 주긴 했지만 엄마 자체는 참 씩씩하고 긍정적이다. 스스로 누구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  조금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딸을 지켜보고 지지한다.

힘들때 다가오면 안아주고 그늘이 되어주지만 딸아이의 연애나 이별 등등을 참견하지 않고 묵묵히 지켜낸다.

두 드라마를 보면서 그리고 내 친정엄마를 생각한다.

울 엄마도 전형적인 엄마다. 자식에게 모든 걸 내주고 뒷바라지 하고 바라지는 않는,,

그런데 자식이란 늘 그렇듯 조금은 이기적인 존재라 .. 이제 그런 무조건직인 사랑이 부담스럽다.

어쩌면 내게는 분에 넘치게 받은게 많아서 도저히 그걸 깊을 길이 없으니 부담스럽다는 마음으로 도망치는 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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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적이고 고지식한 남편

무조건적인 희생을 강요하고 마땅하게 생각하는 전형적인 장남의 아내자리

그걸 같은 여자로 분개하고 공감도 가는 면도 많았지만 그걸 머리로는 다 이해하면서  한편으로는 엄마가 좀 더 어른이어서 이 모든 걸 품고 가면 좋겠다.싶은 이기적인 마음도 있었다.

나이 먹어가면서 엄마만큼 아버지도 이해가 갔고 그럴 수 밖에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그 생각이 더 단단해졌다.

어쩌면 여자로서 억울한 마음 답답하게 느끼는 점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엄마로서는 조금 자제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 하는 뭐 그런 이중적인 생각이 엄마를 조금은 멀리하게 되었던거 같다.

어른이 되고 결혼을 하고서는 정서적인 이유기를 끊어야 하는 게 맞지만 그래도 엄마가 하나라도 해주고 싶어하고 해줄수있는 건데..하는 내 욕심이 더욱 이중적인 생각을 강화시켰다.

뭐 달라는 것도 아니고 준다는데... 무조건 거절할 필요는 없지

이 마음은 뒤집어 보면 자꾸자꾸 받아가니 안줄수도 없는,.... 뭐 그것과도 같지 않을까

한때는 철없이 나도 이제 성인이라고 관심을 끊고 나는 나라고  하늘찌르는 자신감이 있었건만 돌아보면 그건 철없는 치기였던거 같다

그떄도 나혼자 독립이 아니라 아딘가에는 아직도 탯술로 연결된 무언가 마지막 보루는 남겨놓고 간섭만 잔소리만 사절.. 뭐 이런거였다.

엄마가 늙어가는 게 안쓰럽고 아버지 돌아가시고 점점 약해지셔서 통화하다보면 우는 경우도 많아지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자식으로 부모가 부담스럽다는게 얼마나 큰 불효인지 모르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내가 힘들때 엄마가 조금 더 강하게 나를 잡아주고 다져주면 좋겠다는 이기적이고 나 중심적인 생각에서 벗어나기도 힘들었다.

나도 힘들어.. 이 말이 목구멍에서 넘어오지 않게 하는 것만으로도 벅차다고만 생각했다.

그런 엄마를 보고 난 저러지 말아야지 생각하면서 픽 웃어버렸다.

엄마들을 딸들을 키우면서 나처럼되지 말라고 하고 딸들은 자라면서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고 한다는 말이 떠올랐다.

그리고 나도 이제 딸을 가진 엄마가 되어버렸는데 내 딸들도 그런 생각을 할까

나는 그런 생각하는데.. 적어도 나와는 달랐으면 좋겠다.

 

그렇게 나랑 다른 딸이려면 먼저 내가 우리 엄마랑 다른 엄마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

좋은 엄마라는 게 어떤 건지 머릿속을 떠나지 않은 내내 보던 영화에서 드라마에서 나는 괜찮은 친정엄마 롤 모델을 찾고 있었던거 같다.

 

무엇보다 엄마가 먼저 홀로 설 수 있어야 한다.

내가 꾸는 꿈이 있어야  내 딸들을 통해 대리꿈을 꾸며  아이들을 닥달하지 않을거 같다는 것

스스로 지탱하고 살 수 있는 근거는 마련되어야 한다는 것

내가 아이들에게 덜 먹이고 덜 입히는 건 자라서 별 거 아닌게 되지만 내가 덜 준비되어 누군가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건 나중에 타인에게 피해가 될 수 있다는 것

내가 그렇게 단단히 서있다면 아이들이 나중에 손내밀때 아무런 주저없이 당당하게 잡아 주지 않을까

내가 먼저 탯줄을 잘라내고 세상으로 보내야 겠지만 돌아온다면 언제든지 품어줄 수 있어야 하는 넉넉함도 필요할것이다.

엄마는 아무나 할 수 없을 거 같다.

속된 말처럼 든든한 친정처럼 든든한 뒷빽도 없다는 건 경제력만의 문제는 아닐것이다.

언제나 나를 믿어주는 누군가 있다는 것

그리고 가끔 내가 힘들때 그 누군가를 잊어도  혼자 잘 견딜거라는 믿음을 주는 것

언제든 울음을 섞지 않고 말하고 화내고 주장할 수 있을만큼 강해지는 것

나는 그런 엄마가 되고 싶다.

내 딸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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