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연습 : 내 아이를 바라는 대로 키우는
신규진 지음 / 아름다운사람들 / 2014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이를 키우는 모든 부모는 불안감을 가지고 있다.

내가 지금 잘 하고 있을까? 혹시 나의 잘못된 판단이나 행동이 내 아이를 망치는 건 아닐까

그 불안감은 엄마들을 모두가 가는 길로 가게 한다. 그래 남들이 다 하는게 그래도 맞을 거야. 그래서 학원정보를 캐러 다니고 학교 선생님에 대한 정보를 모으고 괜찮은 교재 친구들의 성향을 파악하고 등등 그렇게 남들이 보면 쓸데 없는 치맛바람을 일으킨다는 행동을 하기도 한다.

그런 행동력이 없는 사람도 나름 불안하다.내가 잘 하고 있을까

행동력은 없지만  스스로 걱정이 많은 사람 혹은 적어도 나는 휩쓸리고 싶지 않아.. 하는 엄마들은 아마 교육서를 읽을 것이다. 나 역시 그렇다.

내가 잘 하고 있는 건지 .. 혹은 나만 모르는 은밀한 비책이 나온 건 아닌지..늘 궁금하고 불안하다.

 

어쩌면 좋은 부모 섹션의 도서들은 이런 엄마의 불안 심리를 건드리고 다독이는 능수한 세일즈맨같다. 그래그래 잘 하고 있잖아. 괜찮아 너만 그런 건 아니야. 워낙 요즘 애들이 별나야지

하긴 별나다 별나다 해도 그 나이때 다그랬지 뭐.. 어려울 거 없어 아이 마음을 이해하고 잘 받아주면 돼. 물론 부부 사이도 좋아야 하고 양육자의 인격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거 잘 알지.

불안해서 책장으르 넘기는 엄마를 위로하고 다독이면서 뭔가 은밀하고 소중한 정보를 줄것처럼 닥오지만 사실 모든 것은 상식이고 일반론이다

하긴 어느시대건  아이를 키운다는 건 늘 있어왔던 일이고 우리 부모가 그랬고 우리가 그러고 있고 나중에 우리아이도 그렇듯이 부모와 자식 사이의 사랑과 신뢰 그 이상은 모두가 중언부언일 뿐ㅇ다.. 거기 조금 요즘 트렌드에 맞는 공부법 진학법들이 양념으로 얹어질 뿐이다.

 

부모는 어떤 대단한 비책으로 자식을 키우지 않는다. 그럴 수도 없다.

 

내가 스스로를 사랑하고 존중하고 교양있고 바르게 살아가면 그 뿐이다. 어떤 말도 어떤 충고도  필요하지 않다. 아이는 내 입에서 나온 소리를 듣고 자라는 것이 아니라 내 행동을 보고 내 뒷모습에서 느끼며 자란다. 굳이 책을 보지 않아도 여러 매체에서 혹은 우리 이웃에서 보여지는 반듯하고 착한 아이들에게는 늘 반듯하고 선한 부모가 있다.

문제는 아이가 아닌 부모라는 거다.

 

아.. 난 알고 있었는데.... 책을 덮으며  생각한다. 이번에도 또 낚였구나.

육아서가 뭐 대단한 걸 전해 줄리 없는데.. 어짜피 답은 누구나 알고 있는 것인데 너무 기본적인것이라 잊고 있었고 그래서 많이 불안했었고 무언가 짧고 강하게 효과를 보는 무언가 요행을 바란 내가 어리석었을 뿐이다. 답은 늘 내 안에 있다.

 

하지만 이런 책이 주는 장점도 있다.

잊을 만하면 한번씩 일깨워주는 것... 아하.. 맞아 이런 건데.. 별거 아닌데  하는 작은 깨달음을 주는 정도.나만 그런건 아니라는 위안도 함께 말이다.

 

사실 이 저자의 이 전 책 "바라지 않아야 바라는대로 큰다" 나 이번 이 책이나 별 다른게없다. 저번 책이 이론이나 서술 위주라면 이책은 개별 사례가 중심이라는 것 두권이 많이 중첩된다.

이제는 아이들의 여러 문제 사례나 고민들이 여기저기 넘쳐나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접할 수 있고 부모된 입장에서 반성도 가능하다. 남의 자식 볼 거 없이 내 자식을 가만히 오래 들여다 봐도 알 수 있을 거다. 그래서 아하... 하며 무릎을 칠 만한 건 없다.

 

 

내가 삶이 즐겁고 여유있으면 아이를 대하는 태도도 여유가 생기고 아이를 인정하고 존중할 수 있다. 사실 부모는 아이만을 생각하는 존재라지만 내가 우선 되지 않으면 관계가 건강할 수 없는 것이다. 내 아이의 건강한 정서와 건강한 관계를 위해 나를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는 것이 이 책을 읽고 다시 얻은 깨달음이다.

 

이젠 제목에 낚이지 말고 흔들리지 말고 내 아이를 믿고  눈을 맞추자는 것도 또하나의 깨달음이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제도적인 모욕이 가장 고통스러운 모욕이자 모욕적인 고통이 된다. 말하지 못하는 고통이 말할 수 없는 고통이 된다. 자신의 상처를 드러낼 수 없는 인간 자신의 고통을 아무에게도 호소할 수 없는 인간은 자신이 아무런 상처도 받지 않은 것처럼 아무 고통도 없는 것처럼 자신을 숨기고서야 비로소 사회에 살아갈 수 있다. 자신을 숨겨야 사회에 포괄될 수 있는 인간이라면 유령이 아닌가?

 

아픔과 이로움의 이면에는 그것을 침묵하는 친구들이 있다. 고통은 지극히 내밀하고 사적인 것이겠지만 그만큼 그것에 대해 침묵하는 사람들, 그것을 내밀하고 사적인 것으로 만든 세력과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반증한다. 죽음은 침묵을 폭로하는 또는 당사자들에게 그 사실을 인지시키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효과적인 것은 자살이다. ......

 

                                 우리가 잘못 산게 아니었어... p 180

 

어쩌면 우리가 모두 내부에 있는 사람들이 어서 문제가 잘 보이지 않았던 건지도 모른다.

뭐 좀 이기적이고 제멋대로이긴 해도 그렇게 나쁜 애는 아니예요 성적도 좋았고 수업태도도 좋았으니까요.

그렇게 보는 사람들이 잘못한 것도 아니라는 걸 안다.

그애는 우수한 학생이었고 선생님들에게도 관심받는 학생이었을 것이다. 그건 사실일것이다. 그래서 친하고 싶어하고 부러워하고 싶어하는 학생들도 있었을 것이고 꽤 괜찬은 아이라고 보는 시선도 잘못된 건 아닐것이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것도 있다는 것이 문제가 아닐까

그렇게 반듯하고 성적이 좋고 태도가 좋은 아이에게 그렇게 악마같은 면도 있다는 걸 왜아무도 모랐을까.. 어쩌면 그렇게 대단한 아이이니까 그런면쯤은 인간적인 면으로 그저 하나 있는 단점정도로 넘어가도 되지 않나하고 여겼던 걸까

모두가 맞다 옳다고 하는 상황에서 아니라고 목소리를 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그 목소리를 내야하는 아이가 존재감도 없고 성적도 별로고 태도도 좋지 않은 아이라면 누구나 쉽게 무시해도 상관없다고 여겼을 것이 분명하다.

니가 질투하니까.. 너랑 놀아주는 것만으로도 그게 어딘데...

그 애가 그럴 리가 없어. 좀 그런 면이 있긴 하지만 그 나이때는 다그런거 아니야? 그걸 못참아하는 니가 좀 이상하고 튀는 거야..

사람하나 유령만드는 건 어려운 일은 아니다.

뭐 대단한 것도 아니다 그냥 다들 한 방향으로 가면서 그게 옳다고 믿어버리면 그만이다.

 

 

어른이란 후손에게 무엇을 전수해야 하는 지 아는 사람이다. 후손이 무엇을 경험할 수 있는지를 잘 알고 이 경험이 삶에 주는 의미를 아는 사람읻. 또한 어른이란 이 지혜를 전달하는 방법 언어를 잘 아는 사람이기도 하다. 이처럼 지혜에는 두가지 뜻이담겨 있다. 하나는 삶의 교훈이라는 의미에서의 지혜 다른 하나는 그것을 잘 전달하는 지혜를 말한다. 단적으로 말해 어른이란 후손들이 제대로 잘 경험할 수 있도록 용기를 복돋우고 지혜를 건네주는 사람이다. 이 것이 바로 스승의 고유한 역할이자 어른이 존재하는 이유이다. .............. 그런데 우리 사회를 둘러보라. 우리 사회에 어른은 없다. 어른이 무엇을 어떻게 경험할 수 있는지 잘 알고 이 경험을 후손에게 전하는 사람이라면 우리 사회에는 어른이 없다. 어버이는 존쟇지만 이들은 자기 존재를 과시하는 데 열중하지 자식들이 깨닫고 경험의 주체가 되게 하는 일에는 별 관심이 없다. ...........그리하여 우리 사회에 어른은 사라지고 애새끼와 꼰대들만 남았다.

 

어른들에게는 그저 말잘듣고 성적이 좋기만 하면 다른 모든 것이 좋다고 믿어버리는 무조건적인 믿음이 있다. 드러나 보이는 것 자신들에게 편하고 맞는 것이기만 하면 다 옳은 것이고 맞는 것이다. 그 법칙이 뒤집어지는 일은 세상이 뒤집어지는 일이다.

내 눈에 모범생이 곧 모범생이며 그 이면이란 있을 수없다.

그 아이가 그럴 리 없다. 무슨 이유가 있을 것이다. 아마 참다참다 했을 것이다.

난 내 제자를 믿는다.

그 믿는 제자에 말썽을 피우거나 성적이 좋지 않거나 말안듣는 제자는 없다 그들에게는 애초에 믿음이 없고 믿어줄 건덕지가 없다, 그들은 또 그들 나륾의 아름을 가지고 있는데 그건 그것대로 고착화되어있다. 문제아.

문제는 그들이 일으키는 것이고 그들이 조용하면 세상이 조용한 것이고 그들은 절대 살면서 억울하거나 분한 일은 있을 수 없다. 모범생 역시 살면서 억울하거나 분한 일이 생겨서는 안된다.

어른들은 그들이 만들어 놓은 기준에서 보고싶은 것만 보려고 한다.

수연이가그럴리가 있겠니. 너랑 제일 친한 친구잖아. 보면 항상 같이 다니고 있던데... 그리고 수연이도 너랑 단짝이라고 했단다. 아마 수연이가 메사가 뛰어나다보니 질투도 나고 그랬겠지만 그렇다고 엄한 애한테 그런 말을 하는 건 아니야. 내가 수연이랑도 이야기해 보겠지만 너도 잘 생각해봐. 수연인 니 생각 끔찍하게 하던데...

결국 그애가 옳고 나는 틀렸다.

한번 세워진 기준은 웬만해서는 뒤집어지지 않는다

 

 

지혜는 오래 묵을수록 더 가치가 있지만 정보는 새로운 것일 때만 의미가 있다. 경험이 죽고 스펙터클이 된 체험만 소비하는 사회에서 교육이 겪을 수밖에 없는 가장 중요한 위기다. ..................

체험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실시간이다. 그래서 지금 당장 저기로 달려가야하고 지금 당장 무언가를 해야한다는 생각을 만들어낸다. 여기에는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과 거리를 두고 생각하는 여유가 들어갈 틈이 없다. 실시간의 행동은 반응이지 실천이 아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 시간이 지나고 나면 다른 사건이 찾아오고 마음은 다시 긴박햊ㄴ다. 조금 전에 벌어진 사건의 의미나 가치 실패로부터 사유하고 교훈을 찾아내는 일 따위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지금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에 대한 대처가 중요하다. 매순간 순간 사라져가는 시간에 매몰되느라 순간은 짜릿할 지 몰라도 그 시간이 지나고 나면 남는 것이 하나도 없는 셈이다. 실시간에는 역사가 없다.

반면 경험의 시간은 지금 여기의 시간이다.  이 실시간 과 지금여기 의 시간은 종이 한장 차이다. 둘 다 지금 벌어지는 사건에 충실하다는 점에서는 같은 시간처럼 보인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 경험의 시간은 긴박함이 아니라 충실함과 기쁨의 시간이다. 사유와 교훈의 시간이다. 지금 여기에 충실할 때 우리가 보는 것은 삶의 자체 그리고 산다는 것의 의미이지 사건 자체가 아니다. 그렇기에 경험의 시간은 실천의 시간이다. ...교육의 목표하는 행동하는 사람은 실천하는 사람이다.

 

 

 

이렇듯 공감은 삶을 견뎌나가는 가장 큰 힘이다. 사회가 개인의 삶을 보호해주지 못하고더 이상 사람들이 사회로부터 아무것도 기대하지 못하게되었을 때 허무함을 이겨낼 수 있는 유일한 힘은 너도 나도 같이 상처받았다 라는 공감이다. 내 삶이 누군가에게 공감될 때 그래서 내가 그에게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인정 받을 때 삶은 살아갈 만한 것이 된다. 이 상처가 나만의 상처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상처임을 깨달았을 때 시대에 대한 인식이 되고 더불어 사회를 바꿀 수 있는 용기가 될 수 있다. 그래야 내가 응원 받는 느끼믈 가질 수 있다.

 

모두가 자기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는 없었을까. 사실은 나도 무서웠다고.  그애가 아니라면 그 타겟이 내가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나도 있었다고.. 나도 누군가를 괴롭히거나 투명인간 취급하는 것이 나쁜일이라는 걸 알았지만 그렇게 동조하지 않으면 나만 도드라져서 쟤는 뭐가 잘나서 저 혼자 튀는 거야? 혼자 잘났다는거야? 저거 미친거 아냐? 하는 말이나 들으며 그 다음으로 내가 타겟이 되어버릴지도 모른다는 일이 두려웠다고, 그래서 모르는 척  눈을 돌리고 귀를 막고 외며했다고 말이다. 누군가 단 한명만 용기를 내어 말했다면 다들 공감하지 않았을까. 사실은 나도 그랬다고 나도 입닫고 귀막고 있는 이 순간이 숨막히게 힘들고 싫었노라고

누군가 함께 경험을 이야기하고 고백을 하고 부끄러움을 털어놓는다면 그래도 살아갈 수 있었을 것이다. 나도 힘들었어. 나도 무서워서 그랬어. 내가 따돌림 당할까봐 내가 도드라져서 왕따를 당할까봐 무서워서 모른 척 한거야 정말 미안해 정말 잘못했어.

어쩌면 누구나 가슴 깊은 곳에 꼭꼭 숨겨놓은 이말을 하지 못하게 만드는 이 사회가 점점 아이들을 아프게 하고 힘들게 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함께라면 조금 더 목소리를 높여서 아니라고 말 할 수 있고 이건 옳지 않다는 것 이럴 수록 우리가 모두 함께 상처를 입을 수 밖에 없다는 걸 알게 되었을텐데,,

서로의 상처를 털어놓는다면 서로의 부끄러움을 털어놓는다면 우린 어쩌면 친구가 되었을 것이고 서로에게 힘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공간에서 그 누구도 믿을 수도 없고 의지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외롭고 힘들고 점점 나빠져갔다.

 

 

우리는 학교에서 관계를 배우기보다는 권력을 먼저 배운다. 아니 관계가 곧 권력이라는 진실을 너무 빨리 너무 일찍 깨닫는다. 교사와 학생들 사이만이아니다. 학생과 학생 사이에도 엄처난 폭력이 존재한다. ..................무엇보다 왕따를 경험한 친구들의 세계관과 가치관은 극단적인 경우가 많다. 한 학생은 "어짜피 삶이란 정글"이고 "인생은 폭력의 연속"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 폭력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 존재했지만 아무도 그 존재를 기억해주지 못하는 유력 같은 존재였다. 때린 교사에 대해 두고두고 이야기를 나누고 일진에 대해 오랜 시간 동안 다시 상기하면서도 이들에 의해 죽은 사람의 고통은 아무에게도 공감되지 못하고 있었다. p  134-135

 

 

정신의학자 하지현에 따르면 적선을 하는 쪽이 동감이고 거지와 자신 사이에 공통의 운명 같은 것을 직감하고 공포를 느껴 외면할 수 있는 쪽이 공감이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보고 동감하는 사람은 후쿠시마 주민들에게 감정이입이 되는 사람이다. 감정이입이 되면서 나는 사라진다. 대신 그 주민들의 불쌍한 처지만 남는다. 불쌍한 마음에 모금 운동에 참여할 수 있다. 그러나 공감은 다른 것이다. 공감하는 사람은 후쿠시마를 보며 자신의 운명을 직감하는 사람이다. 후쿠시마는 단지 개별적인 사건이 아니라 이 시대의 암흑과 실체를 드ㅓ내는 사건이다. 따라서 공감한 사람이 느끼는 감정은 연민이 아니라 공포일 수도 있고 공포에 따른 외면일 수도 있다. 공포가 나쁜 것이 아니다. 오히려 후쿠시마를 보는 순간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위험사회에 대한 공통의 운명을 직감하게 되고 시대ㅔ 대한 인식에 도달하게 된다. 후쿠시마 주민들을 동시대인으로 끌어안게 된다 공감이야 말로 동시대인의 가장 중요한 정신적 능려기다. ..............................................................................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의 마음을 상상하는 것은 우리 인간성의 핵에 자리한다. 이것이 공감의 본질이고 윤리의 시작이다. (이언 매큐언)

이자크 디네센은 '모든 슬픔은 고것을 이야기로 만들거나 그것들에 관한 이야기를 할 수 있다면 견뎌질 수 있다"고 말했다. 내 슬픔에 공감하는 사람 이사람이 동료다. 동료란 내 슬픈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다. 동료란 또한 슬픔을 이야기할 수 있는 용기를 불어넣어주는 사람이다.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내 슬픔에 공감하는 동료가 있을 때 ㄴ 삶이 아무리 비루하더라도 나는 삼이 견딜만하다고 느껴진다. 동료가 공유하는 것이 바로 언어다. 자신의 아픔과 상처를 드러내는 어어가 같을 때 우리는이 친구에게 내가 공감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자신의 슬픔을 타인에게 나누어지지 못하고 피상적으로만 공감된다고 느꼈을 때 인간은 자기연민에 빠지고 우울증을 겪게된다. 김상봉은 플라톤이 비극에 대해 그렇게 비판적이었던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이 우울증 때문이라고 말한다. 우울증과 비극은 전혀 다르다. 우울증은 오로지 정신의 허약함만을 드러내어 자기 자신에게 집착하는 것이라면 비극은 고통받는 타인의 자리에 우리들 자신을 위치시킴으로써 즉 타인의 고통에 동참함으로써 자기 고통을 초월하고 극복한다. 이것이 카타르시스다.

 

 

"아이 씨바 졸라 아파 아이 씨바 졸라 아파"

" 와 씨바 졸라 아프겠다"

그냥 욕이라고만 생각했던 씨바와 졸라가 아이들에게는 공감이 신호였다. 이들이 말을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말을 하고 있음에도 우리가 못알아 듣고 있었을 뿐이었다.

나는 우리와 아이들의 고악ㅁ의 방식이 다르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우리는 뜻을 가지고 공감하는 사람들이다. 뜻이 같아야 공감을 한다. 그래서 글을 읽고 난 다음에 ㅡㄴ히 동의한다고 맗ㄴ다 공감이라는 말을 쓸때도 말을 하는 사람의 처지와 상황을 이해한닥보다는 대부분 말뜻을 이해한다는 의미로 쓴다. 하지만 아이들이 쓰는 씨바와 졸라는 뜻을 통ㅎㄴ 공감이 아니다. 감정의 강도에 대한 공감이다. 내가 얼마나 아프고 얼마나 재수 없고 얼마나 화가 났는지 씨바와 졸라를 통해 드러낸다. 이들에게 공감은 의미의 문제가 아니라 강도의 문제다. 다른 사람의 슬픔에 참여한다는 건 의미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강도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러데 유ㅜ리는 이 강도의 문제를 늘 놓쳐버린다.

 

 

현재 젊은이(대학생)들에 대한 비난은 딱 한마디로 정리된다. 비겁하다는 것이다. 청춘의 핵심은 용기인데 도무지 현재의 청춘들 특히 자유까지 특혜로 받은 대학생들이 용기를 부리기는 커녕 지나치게 현실적이라는 말은 곧 이들이 비겁하다는 비판이다. 나는 대학생들에 대한 이야기의 핵심에는 바로 이 "용기와 비겁함"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과연 이 혼란스러운 불한당 같은 시대에 누가 용기를 낼 수 있겠는가

그런데 용기는 영웅적인 개인이 내는 걸까 아니면 집단이 뒷받침될때 낼 수 있는 걸까 적어도 우리 시대에 개인 영웅의 출현을 꿈꾸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우리가 말하는 용기는 아마도 집단이 ㅂㅇ쳐주는 용기 동지 동료가 있기에 생기는 용기일 것이다. 용기는 서로 부추기는 것이지 개인이초인같은 힘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초인같은 용기는 역사에 전태일 열사처럼 극히 예외적으로 일어나는 사건이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용기란 공동체에서 공동체를 통해 최소한 아지트라도 있을 때 일어난다. 생각해보면 과거에 학생들이 시위에 나갔다가 최루탄을 맞고 물대포를 맞아 쓰러지면서도 도망가지 안았던 이유는 결코 그들이 용감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내 옆에 있는 친구가 나와 팔짱을 끼고 도망가지 못하도록 놓아주지 않았기때문이었다. 그녀석 역시 내가 팔짱을 끼고 있어서 물대포와 맞설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데모가 끝나면 서로 할 말이 있었다. 함께 견뎌냈기 때문이다. 용기란 이렇게 내 옆에 팔짱을 같이 낀 사람이 있을 때 내는 것이다. ...... 그런데 우리에게 공부하는 과정은 공동의 용기를 만드는 과정이 아니라 개인적인 고립과 비겁함을 재생산하는 과정이다. 공부하는 것이 동시대성을 사유하고 옆 자리 친구를 동료로 초대하고 더불어 용기를 내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대학에서 우리는 동료를 만나야 할 공간에서 경쟁자를 만난다. 용기를 내야할 순간에 비겁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우리가 서로에게 힘이 되고 위로가 되지 못한다면 우리가 한 교실에 앉아 있을 이유가 있을까

서로 두려워하고 본 모습을 보여줄 수 없다면 더 이상 이 곳이 존재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함께이기에 용기를 내야하는데 함께여서 나의 비겁함을 감출 수 있게 되었다.

나만 비겁한게 아니라는 것 나만 잘못한건 아니라는 게 위안이 된다는 거다. 부끄럽지만 사실이다. 모두가 침을 뱉을때는 그것이 더럽거나 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편리하고 재미있기까지 하다. 그래서 환경이 더러워지고 누군가가 혐오할 수 있다는 생각을 못한다. 심지어 그렇게 비난하는 사람을 우리가 오히려 비난하고 쫓아낸다. 우리는 우리가 되어 힘이 쎄져 버렸다. 그래서 우리는 점점 괴물이 되어가고 있는 중이다.

우리가 되어 용기가 생기고 우리가 되어 우리는 일그러져 가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도 모두가 일그러진 괴물이어서 우리가 변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한다.

 

 

현장의 비참함과 세상의 사악함을 맞닥뜨린 사람들의 마음을 분노가 아니라 공포가 지배하기 때문이다. 분노하고 행동할 때는 여럿이 함꼐 하는 행동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을 때다. 그런데 내 생각보다 적이 너무 거대할 때 내 주변엣 나의 분노를 공유할 사람이 없을 때 사람은 분누하기보다 공포를 느낀다. 그리고 혼자라도 살겠다는 방법을 찾게 마련이다. 그래서 아예 현실을 보지 않으려고 하거나 예상과는 전혀다른 판단을 하게 된다. 위에서 말한 학생처럼 말이다. (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제 생각이 맞았습니다. 역시 세상은 정의고 뭐고 힘을 가지는 것이 최고인 것 같습니다. 저는 더 노력해서 부와 권력을 가지겠습니다.) 내가 이 책에서 공감과 동료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동료가 있을 때 마음은 공포가 아니라 분녹 될 수 있다.

동료가 없다면 우리는 각자 자기 살길을 찾아 떠나야 한다.

 

이 곳에서 누가 권력을 쥐고 있는지 누구에게 잘 보여야 하는지 아니면 적어도 찍히지 말아야 하는지를 알았다면  일단 모른 척 하고 본다. 서로 눈치를 살피며 조금이라도 늦게 비겁해지고 조금이라도 늦게 용감해지기를 바란다. 나는 적어도 비겁이든 용기이든 어디에서건 앞장을 서고 싶지는 않다. 모두가 한마음이다. 그래서 누군가 희생양이 생기면 한숨을 돌리고 모른 척한다. 다음이 나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은 모두에게 공포를 주고 더이상 튀지않고 용기를 내거나 어설픈 정의를 휘두르지 않는다. 납짝 엎드리고 이모든 것이 지나가리라..  중얼거릴 뿐이다.

함께 분노할 필요없다. 괜히 어설프게 나서다가 찍히면 나만 손해아닌가

그러나 변화는 재빠르게 잡아  챌 줄도 알아야 한다.

지금 모두가 분노하고 이제 더이상 참을 수 없는 임계점임을 느끼거나 그 권력을 쥔 누군가의 힘이 다 빠져버린 걸 느끼는 순간 내 행동을 빠르게 결정해야한다. 지금은 뒤집고 분노하고 함께 손가락질 할 차례다. 내가 말을 안하고 있었지 아는 건 다 안다고.. 나도 생각을 하고 있었노라고 얼른 증명하고 보여야 한다.

비굴하지만 살기위해서 어쩔 수 없다. 그리고 나만 그런 것도 아니다.

 

결국 사람은 혼자 있으면 외롭고 함께 하면 괴롭다동료는 사람의 삶에서 가장 큰 딜레마이다.

관계에는 세심한 배려가 있다, 상대의 아픔이 무엇이고 고민이 무엇인가를배려한다. 그래서 침묵해야 할 것 떠들썩하게 웃어야 할것 진지하게 경청해야 할것을 현명하게 구분한다. 겉으로 뵈에는 아무 의미도 없이 그저 겉도는 이야기를 하는 것 같지만 이야기의 내용 자체가 아니라 말을 주고 받는 태도에 배려이 에너지가 담겨 있다. 너무 진지하게 의미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가벼움이라고 말하듯 오히려 의도적으로 무의미한 이야기와 농담과  엣일을 다시 끄집어 낸다. 에로티시즘에서 중요한 것은 의미가 아니다. 배려다 무의미를 견뎌내고 즐거워해야하는 배려 말이다, ................... 관계를 만드는 것으 의미가 아니라 의례다 머리가 아니라 몸이다. 의미의 공동체가 아니라 의례의 공동체 몸의 공동체가 더 오래간다. 살은 의미가 아니라 무의미 안에서 의례처럼 반복된다.

 

세상의 모든 의미가 중요한건 아니다.

무의식적인 것, 가벼운 것 건성건성 건들거리는 것 그런 것들도 함께 나눌 수 있다면 그것으로충분하다. 매사가 진지하게 무언가 도움이 되거나 의미가 되어야 한다는 건 강박일 수 있고 상대도 부담스럽다. 그 관계는 오래가지 않는다.

편하게 지내는 것 부담이 없는 것 그리고 어제가 오늘 같고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 오래 관계를 지속시킬 수 있는 힘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그 무의미함이 위로가 될 수도 있다.

힘을 빼는 것.. 준비하고 긴장하는 마음을 푸는 연습이 필요하다. 살아가려면..

아이의 이야기에 매사 의미를 찾고 내가 도와 줄 것이 없는지 진지하게 대하지 말아야겠다.

아이는 중요한 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상대가 너무 진지하게 들어주면 부담스러울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그렇게 잘못했었나.. 그 때의 내 행동에 문제가 있는게 아닐까 어쩌면 아이를 진지하게 성실하게 대하고자 하는 내 행동이 아이를 더 움츠려드고 소심하고 불안하게 만들 수도 있다.

그냥 편하게 흘려듣듯이 하지만 모든 걸 다 듣고 있다는 태고를 갖는것

쉽고도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사는 건 매사가 연습이 필요한 일이다. 오늘은 실수 하더라도 내일은 조금 더 나아지기 위해서

 

 

삶의 종말 이후에는 무엇이 있을까? 당연히 삶이 있다. 담ㄴ 그 삶이 우리가 알던 삶과 차이같지 않은 창가 있을 뿐이다. 우리는 차이 같지 않은 차이에 실망하는 대신 그대로 우리 삶에 충시라면 된다. 스스로 삶을 무가치하다고 생각할 필요 없다. 살아간다는 것은 살아간다는 사실 만으로도 위대하다 삶이 비참하기에 삶은 더 없이 위대하다 파스칼은 인간은 자신이 비참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더 비참하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인간의 삶이란 진짜로 비참하기 때문이다.

 

오늘이 힘들고 괴로워도 바짝 엎드려라도 살아있으라

누군가가 나를 미워하고 유령이라고 여기더라도 비굴하게라도 견뎌라..

그 끝이 비록 그 앞과 다르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견딘 시간 만큼의 무언가 달라진 건 분명히 있을 것이다. 허무하게 용기를 내는 것 보다 가끔은 비굴하고 비겁하게 비티는 것이 더 큰 힘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일단은 버티면 이긴다. 단순무식하지만 그게 사실이다.

우리가 해야 할일은 분명하다. 우리 살을 바꾸려고 하지 말자. 다만 우리 살을 옹호하자 무엇보다 비참하지만 이 비참함을 같이 껴안을 동료가 이다면 삶은 위대하다 아니 삶은 끈질기기에 위대한 것임을 이 삶의 끈지림에 충실하자 두더지의 힘은 충실함에서 나온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POSTER

 

딸 사라 폴리는 돌아가신 어머니 다이앤에 대한 여러사람의 기억을 모은다. 이 영화는 어머니를 기억하는 사람들- 가족 친구 그리고 동료들이 모여 자신이 아는 그녀에 대한 모든 것들을 이야기하며 진행된다. 배우였고 자유분방했고 언제나 자유로웠다는 다이앤 그러나 간혹 사람들은 ㄱ  ㅡ녀가 뭔가를 감추고 드러내지 않은 면도 있다고도 한다. 다이앤은 여러사람들의 기억속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흩어진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새로운 사실이 드러난다.  어린 시절부터 가족의 농담처럼 사라는 아버지를 닮지 않았다는 말을 듣곤 했다. 그 농담에 대한 진실을 찾아가는 도중 뜻하지 않게 사라 폴리는 자신의 생물학적 아버지를 만나게 된다.

자유분방한 다이앤은 외도로 첫번째 결혼을 실패하고 아이들의 양육권도 빼앗기고 그 당시 신문에 날 만큼 부도덕한 여자로 비춰졌다. 두번째 결혼한 사람이 같은 배우였던 현재 폴리의 아버지였다. 두번째 남편은 조금 재미없을지라도 가족을 위해 배우를 포기하고 보험 세일즈를 할만큼 책임감이 강한 남자였다. 그리고 다이앤은 연극공연을 하기위해 집을 떠나 있던 동안 또다른 남자를 만나고 폴리를 임신한다.

이 모든 사실을 다이앤이 죽은 후 가족들에게 밝혀진다 하지만 이 비밀이 이 영화의 중심은 아니다.

가족들은 어머니 아내 친구였던 다이앤을 기억하면서 저마다의 기억이  각자의 호불호에 의해 왜곡되고 자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만을 기억하고 과장한다.하지만 각각의 기억속 다이앤 역시 다이앤의 본모습이다. 자유롭고 덜렁거리는 다이앤 그러나 헤어진 아이들과 시간을 보낸 후 헤어질 때면 언제나 눈물을 보이던 다이앤 남편과 맞지 않다고 느끼지만 여전히  사랑하는 다이앤

어쪄면 각자는 다이앤을 기억하며 자신을 돌아보고 스스로 속에 쌓였던 뭔가를 털어버리는 계기가 된다. 그리고 비밀이 드러난다.

순간 카메라 앞의 가족들은 모두 놀라 아무말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순간이 길지 않다.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 아하.. 그런 일이 있었구나.  역시 그랬었구나.

가족들의 표정은 우리 정서로는 너무나 쿨하고 단순하다.

특히 가장 배신감을 느낄 아버지의 반응은 감동적이었다.

덤덤하게 듣고 있던 아버지 하지만 아무것도 변할 건 없다며 안아주는 딸에게 애정과 감사를 느끼는 아버지. 그 아버지가 말했다.

너의 친부가 누구이든 너가 너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지않니.

너는 여전히 우리의 막내 딸이고 가족이라고 아버지는 말없이 말한다.

그리고 그 아버지는 이 영화의 나레이션을 쓰고 읽어준다.

아버지의 목소리로 이어지는 영화는 그래서 더 따뜻하고 뭉클하다.

 

 

지금 정작 당사자인 다이앤은 없다. 단지 그 주변 사람들의 의견이 있고 기억이 남았을 뿐이다.

그래서 정작 본인은 한 사람이지만 사람들이 말하는 다이앤은 제각각이었다.

기억은 불완전하고 주관적이다. 하지만 그 모든 기억이 거짓이라고는 할 수 없다.

제각각 자기가 기억하고 싶은 것 간직하고 싶은 것들을 선택해서 기억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그 기억은 각색되고 포장되고 퇴색하기도 한다. 하지만 각자가 다이앤을 기억하고 행복하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한 그 감정들 역시 거짓이 아닐것이다. 기억은 변하고 사실에서는 멀어지겠지만 진실은 여전할것이다.

영화를 보면서 왜 감독이 이런 내밀하고 사적인 문제를 영화화 했는지 의아했다.

우리 정서로는 전혀 맞지 않은 이야기였고 결국 내 엄마의 치부를 드러내는 일이 아닐까 했지만 딸은 용감하게 앞으로 나가고 진실을 마주한다. 그리고 그 용기앞에 가족은 사랑을 드러내고 함께 감싸안고 모두의 추억을 소중하게 간직한다.

그래서 영화는 아름다웠고 감동적이었다.

마지막 이젠 늙고 쪼글거리는 아버지가 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이야기할때는 눈물이 났다.

그 아버지에게는 긴 시간동안 쌓인 미움 그리움 회한 등등이 뒤섞였을 감정이 있을 것이고 이제 그것 모두가 사랑이라는 걸 깨달았을 것이다. 그래서 담담하고 차분한 그 아버지의 나레이션이 더 없이 소중하고 감사하다.

 

돌아오는 차안에서 예전에 읽었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에 대한 팟캐스트를 들었다.

불완전한 기억 그리고 잃어버린 사실들이 오해를 만들고 진실을 왜곡하지만 그럼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자기가 가진 것을 믿으며 살아간다. 그래서 도무지 알 수 없는 것이 삶이라는 것이고 그럼에도 지치지 않고 살아가게 되는 것 그리고 후회하고 반성하며 그래도 사랑이었고 추억이었다고 믿는 것들이 있을 거란 생각도 잠시 했다.

 

나는 지금 이순간 무엇을 오해하고 잊고 살아가고 있을까. 나의 오해가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질 안았으면 좋겠고 나중에라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기억속에 그래도 괜찮은 사람이었다는 것으로 남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영화 말미 정말 긴장이 팍 해소되는 짧은 장면이 나온다. 절대 놓치지 말기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봄에 나는 없었다 애거사 크리스티 스페셜 컬렉션 1
애거사 크리스티 지음, 공경희 옮김 / 포레 / 2014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한편의 연극을 보는 느낌이었다.

단촐한 무대위에서 한명의 여배우가 끌고가는 단단하고 밀도높은 고전극 한편을 보는 기분

마지막 로드니가 텅 빈 무대 위에서 혼자 쓸쓸하고 허무하게 중얼거리듯 마지막 방백을 뱉고 있을때  어쩌면 무대위의 조명은 로드니가 아니라 저쪽 구석에서 아무것도 모르고 미소를 짓거나 콧노래를 부르고 있을 조앤을 비출고 있을 것이다.

로드니의 대사는 배경이 되고 관객은 조앤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본다.

아무것도 모르는 여인의 얼굴. 아니 아무것도 알고 싶지 않은 여인의 얼굴

그 얼굴이 얼마나 공포스럽고 안타까운지를 느끼며 무대가 끝나고 있음을 느낄것이다.

몇몇 관객에게는 조앤이 필시 우리와 다르지 않다는  거부할 수 없는 사실때문에 끔찍함이 배가 될지도 모르겠다.

마지막 문장과 함께 무대의 막은 내려졌고 아직 불이 켜지지 않은 객석에서 우리는 잠시 숨을 쉬지 못하고 그대로 정지해 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숨을 내쉰다. 순간 내 숨소리에 화들짝 놀라기도 할것이다.

 

아가사 크리스티가  메리 웨스트메곳이라는 이름으로 쓴  추리소설이 아닌 여성의 삶과 사랑을 쓴 소설 중 하나가 이 책이라고 한다. 살인사건 탐정 등등으로만 기억되는 한 작가의 다른 모습 어쩌면 은밀한 본 모습을 보는 설레임도 있다. 추리물과 또다른 매력이 있지만 동시에 추리물에서 보았던 사람의 심리 인간관계의 뒷모습등의 세심함이 여기서도 발견된다. 사람을 이해하고 잘 알고 있는 작가의 노련함이 여기서도 느껴진다.

 

영국 런던 근교에 사는  조앤은 모든 걸 다 가진 여자였다.지역변호사이면서 다정하고 자상한 남편 로드니 그리고 잘 자라서 이제 각기 가정을 가진 세 자녀 평화롭고 풍요한 일상들 사교적인 사회생활, 그 모든 것은 그녀의 자랑이고 자부심이고 전부였다. 어느날 아픈 딸 바바라를 돌봐주기 위해 바그다드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폭우로 인해 사막 한 가운데에서 발이 묶인다. 가져온 책들은 다 읽었고 아무 할일이 없다. 그 곳에서 조앤은 스스로에 대해 생각하고 돌아본다.

발이 묶이기전 만났던 동창 블란치의 말이 자꾸 맴돌면서 생각이 이어진다.

 

  " 몇 날 며칠  자신에 대해 생각하는 것 말고 할 일이 아무것도 없다면 자신에 대해 뭘 알게될까 ..........전에 몰랐던 걸 알게 될까"

 

블란치의 무심한 듯 툭 던진 말한마디 그리고 또 그렇듯 무심하게 뱉은 자기 가족에 대한 이야기들이 그때는 그냥 무심코 지나쳤거나 아니라고 단호하게 부인했지만 이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이 사막의 조앤에게는 길고 긴 생각거리로 이어졌다.

블란쳇은 마치 고전연극 속의 예언자같기도 하고 이야기를 진행하는 코러스같기도 하다 우연히 무심코 툭 튀어나와 우리의 주인공에게 고민을 던져주고 문제거리를 덩져준다. 그리고 무심히 무대뒤로 사라지지만 그녀의 흔적은 책이 끝날때 까지 조앤을 놓아주지 않는다. 비록 그녀에 대해 생각하진 않지만 그녀가 남긴 말 . 그 옛날 학창시절 그녀가 들었던 충고까지 모두 꼬리에 꼬리를 물고 조앤을 생각하고 또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된다.

조앤은 스스로 돌아보아도 행복하고 후회없이 살았다고 생각한다.

한때 농부가 되고 싶어했던 철없던 남펴을 다독거리고 몰아쳐서 지금의 안락하고 존경받는 생활을 하게 했고 철없는 딸의 불장난같은 사랑을 막았고 세상모르고 아무에게나 감정이 헤픈 막내딸까지 무사하게 결혼시켰다. 그리고 아들은 그녀가 원하는 변호사가 되게 하진 못했지만 그래도 농장을 하며 잘 살고 있다고 믿고 있다. 모두 그녀의 손끝에서 그녀의 결심과 철저한 보호아래서 이루어진 그녀만의 화려하고 만족할만한 성과라고 스스로 생각하고 자랑스러워한다.

하지만 사막에서의 하루하루가 늘어나면서 그 모든 자랑거리와 자부심은 점점 먼지를 뒤집어쓰고 흐릿해지며 본 모습을 드러낸다. 그녀가 마주하고 싶어하지 않는 진실들 꾹꾹 눌러놓았던 뒷 이야기들 보고도 못본 척하고 모른 척 넘어갔던  남편의 모습. 무조건 누르고 다그치며 몰아갔던 자녀와의 갈등 그리고 모두가 나에게 등을 돌렸다는 외로움

심지어 딸에 대한 지극한 애정으로 한걸음에 갔던 바그다드에서 바바라조차 자기에게 뭔가를 숨기려고 했고 무언가 말하지 않았고 심지어 자신에게 더 있다 가라고 잡았던 이유도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루라도 더 아버지를 그냥 좀 내버려두라는 이유였다는 걸.... 그녀는 마주하기 시작한다

 

"적응 할거예요 게다가 이제 사정이 다르잖아요 아주 달라요. 파트너 변호사가 되는 거니까요 그리고 결국은 업무에.. 그리고 만나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게 될 거예요. 두고 봐요 로드니 결국에는 더할나위 없이 행복해질테니까요"

 "내가 행복해질지 당신이 어떻게 알지?"

" 분명 그렇게 될 거예요. 두고 보면 알아요"

 

아무리 부부라지만 타인의 행복에 대해 어떻게 이렇게 확실하게 아무 의심없이 말 할 수 있을까.그녀의 맹목적인 애정은 이렇게 남편에게 그리고 자녀에게까지 이어진다. 그녀가 행복할거라고 장담하고 밀어붙일수록 다른 가족들은 숨이 막히고 불행할 거라는 걸 그녀는 절대 몰랐다. 그녀의 기준은 확고했고 언제나 옳았으며 언제나 가족이 우선이었고 절대적이었다. 그녀는 그렇게 자신에 대한 의심없이 가족을 위해 희생하고 봉사하는 완벽한 주부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가엾은 조앤

그녀의 그 확고한 신념에 의심이 더해지면서 더할 수 없이 흔들린다. 사막의 신기루처럼 그녀가 가진 모든 자부심은 한낱 망상이 아니었을까 그건 나만 좋자고 만들어 낸  헛것들이었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다니...

자녀의 행복을 위해 그리고 남편의 승진과 명예를 위해 그렇게 노력하고 노력했는데..

자기와 달라서 때로는 동정하고 때로는 경멸했던 이웃 레슬리 셔스턴.

그녀조차 이 곳 사막에서 돌이켜 보면 빛나고 건강하고 용기있는 여성이었던것이다.

그녀는 사막에서 이제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나의 어리석음 잘못된 판단 그로인한 불행들 그녀는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이제 길을 잃어버린다.

내가 어디있는지 어디로 가야하는지 알 수가 없다. 도데체 나는 누구이고 어디에 있는가

겨우겨우 찾아 돌아온 숙소에서는 새로운 소식이 그녀를 기다린다.

이제 기차가 들어왔다. 그녀는 이제 집으로 갈 수 있다.

집을 생각하니 로드니가 그립다. 그를 만나면 말하리라.. 미안하다고 자기가 잘못했노라고

그렇게 결심하며 조앤은 차에 오른다. 집이 그립다.

긴 여행 낯선 장소 낯선 시간에서 오롯이 자신을 들여다 본 사람은 많은 생각을 하고 결심을 한다. 그러나 익숙한 곳으로 돌아가 다시 일상에 젖게 되면 그 낯선 시공간에서의 나의 결심들이 얼마나 얼굴이 화끈거리는 우스꽝스러운 것인지를 알게된다. 오호.. 부끄러워라. 어디 누가 알까 아니 나조차 알고싶지 않아 꽁꽁 묶어서 저 깊은 기억 속에 봉인 시킨다. 그땐 분위기에 취해서 그랬던거야. 낯선곳에선 누구나 일탈하고 새로운 꿈을 꾸지. 하지만 현실을 내 일상도 그만큼 소중한거야.조앤 역시 그렇다.

모든 결심을 굳히고 오히려 마중 나오지 않은 로드니에 안도하면서 새로움을 각오했지만 집에 들어서는 순간, 익숙한 공간 익숙한 냄새 분위기에 마음이 놓이는 순간 다시 그녀로 돌아간다.

내가 변했다는 걸 그가 아는게 뭐가 대수란 말인가

어쩌면 그때의 내가 과대망상증이었을지도 모르는데 그 부끄러운 고백을 어떻게 한단말인가

결국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그녀는 명랑하게 말했다 " 나 왔어요 로드니 .............나 돌아왔어요"

 

사람이 변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건 어쩌면 모든 우주를 뒤바꾸는 대단한 일이기도 하다.

내가 믿었던 신념이나 가치를 바꾸어야 하고 아니 바꾸는 것만이 아니라 그 것들을 반성하고 부정해야만 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건 죽음과도 다르지 않다. 그래서 사람은 진실을 알지만 그것에 눈감기도 하는 것이다. 남편을 향해 환하게 미소짓는 조앤을 떠올리면 나는 등골이 서늘하다.

사막에서의 기나긴 시간동안 내면을 바라보고 성찰하고 스스로를 변화시킨 조앤은 어디로 갔나? 그녀는 지금 서늘하게 웃으며 다시 그녀로 완벽하게 돌아와있다.

세상에 이런 반전이라니...

 

지금 이곳에도 수많은 조앤들이 살고 있고 그런 조앤을 견디는 수많은 로드니가 있을 것이고 조앤의 경멸과 동정을 알면서도 용감하게 살고 있는 레슬리들도 있다.

 

 

책을 읽으며 우리나라의 박완서 선생님의 작품 휘청거리는 오후가 떠올랐다. 물론 사람의 위악이나 춤겨진 본성과 통속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면서도 그게 바로 사람이라고 따뜻하게 품어주던 다른 작품도 많지만...

그 작품에서 남편 혹은 아버지의 등골을 빼먹으면서도 주위의 시선과 스스로의 속물근성을 부정하지도 못하고 눈감고  몰려가던 모녀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속의 블랑쉬도 생각난다. 끊임없는 망상속에서 진실을 보지 못하는 사람. 차라리 망상속에서 행복했던 여자 그래서 이상하게도 현실감있던 그녀의 여동생이 더 안쓰러웠던 작품이었는데...

 

   당신은 외톨이고 앞으로도 죽 그럴거야 하지만 부디 당신은 그 사실을 모르길 바래.

 

로드니의 마지막 독백이 너무나 슬프다.

우리는 모두 아무것도 모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안녕하세요. :-) 민음사입니다.

 

민음사 신간 <청춘 파산> 이 출간되었습니다.

 

 





 

 

 

파산 시대의 청춘을 대변하는 신예 작가의 출현!

 

20대에 신용 불량자, 30대에 개인 파산자가 되어 버린 인주

막다른 청춘 한가운데에서도 자신의 길을 만들어 가는 눈부신 젊음의 분투기

 

 

 

제 2회 한국경제 청년신춘문예 당선작!

김의경 장편소설 <청춘 파산>

 

 

 

부모님의 사업이 망하고 빚을 안게 된 30대 초반의 백인주. 개인파산, 면책까지 받았지만 여전히 교묘한 방법으로 돈을 받아내려는 사채업자들에게 시달린다. 주인공은 서울 곳곳을 돌아다니며 상가 수첩 배포 아르바이트를 한다. 가는 곳마다 과거 아르바이트를 했던 기억과 함께 걸려있는 추억을 떠올린다. 인주는 자신이 살았던 괴로웠던 삶에 대해 긍정하고 사랑과 꿈을 위해 노력하기로 한다.

 

 

 

 

청춘 파산‘2014, 아르바이트생 구보 씨의 일일로 읽힌다. 서울특별시 곳곳의 동네 이름으로 짠 목차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 주인공은 매일 봉고차를 타고 다양한 거리에서 상가수첩을 돌린다. 분초를 다투며 상가수첩을 나눠 주는 현재의 날렵함과 각 동네에 얽힌 지난날 아르바이트의 추억담이 교묘하게 겹쳐 울림을 만든다. 빚더미에 앉은 주인공에게 날아드는 공문서들을 고스란히 제시하면서, 프리터의 삶이 결코 즐거운 낭만이 아니라 힘겨운 현실임을 상기시킨 대목도 좋았다. 개성 넘치는 인물들이 폭죽처럼 등장하는 흥미로운 장면을 잘 만드는 작가, 그 장면들을 맵시 있게 엮어 삶의 기쁨과 슬픔을 치열하게 담는 작가로 성장하기를 기대한다. -심사평에서 은희경(소설가) 장은수(문학평론가) 김탁환(소설가)

 

 

 

 

 

지금 이 시대에 살고 있는 2-30대가 공감할 수 있는 내용!

서평단을 모집합니다.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 

 

 

 

▶서평단 모집 상세내용


★ 응모 방법 : 리뷰 페이지를 자신의 블로그에 스크랩 한 뒤 읽고 싶은 이유를
★ 간단하고 성실하게 댓글로 작성하여 스크랩 링크와 함께 남겨주면 응모 완료.
★ 응모 기간: 2014.03.10 ~2014.03.17 (7일간)
★ 추첨 인원: 20명
★ 서평단 발표: 2014.03.18 (화) 오후
★ 서평 기간: 2014.03.20~2014.03.27 (7일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