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영원의 아이 - 전2권 영원의 아이
덴도 아라타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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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넌 괜찮은 사람이야

니 잘못이 아니야

넌 착한 아이야.

괜찮아. 다시 하면 돼

한 번 더 기회가 있어. 누구나 실수할 수 있어.

 

아이를 키우면서 해야하는 말들  아이들이 가장 듣고 싶은 말

자라면서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 너무나 듣고 싶은 말과 따뜻한  관심을 받지 못한 아이들이 어떻게 자랄 수 밖에 없는가.. 책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건 일본의 특수성이니까.. 일본이라는 민족성이 특이하니까

하고 치부하기엔 지금 우리와도 다르지 않다.

여기저기 괴물이 나온다.

학교에도 있고 군대에도 있고 심지어 직장에도 거리에도 있다.

그들은 얼굴에 괴물이라고 쓰여있지 않다.

누가 말했듯이 악은 가장 평범한 얼굴을 하고 있고 괴물도 우리와 닮은 꼴이며 우리 역시 누군가에게 괴물일 수도 있다.

책에 나온 세명의 아이도 사랑이 필요했고 니 잘못이 아니야 하고 어렵게 꺼집어 낸 말에 귀를 열어주고 믿어주는 누군가가 있었다면...

혹자는 말했다. 굳이 부모가 아니라도 누군가에게 병원의 누군가에게라도 털어놓을 수 없었을까?

그러나 한번 마음이 닫히고 모든것이 내 탓이라고 결정되어버린 상황에서는 누구도 믿을 수 없다.

내가 여자라서인지 딸을 키워서인지 모울이나 지라프의 일보다 유키의 일이 너무 마음이 아프다.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상처받고  그 상처가 모두 내 잘못이며 나하나 입다물면 사랑하는 가족이 편안할 수 있다는 일그러진 믿음은 어디서 왔을까

현실을 마주 할 수 없어 거짓을 만들고 거짓은 비밀을 만들고 또 비밀이 거짓을 낳고 그러는동안 사실은 현실은 점점 사라진다. 일단 마주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안다.

하지만 그 아무것도 아닌것이 아프다는 것도 잘 안다.

용기를 내어 사실을 말해. 현실을 봐..

말은 쉽지만 그게 쉽지 않은 사람이 있다. 정말 있다.

그걸 알아서 유키가 아프고 지라프나 모울이 안타까웠다.

세심한 묘사와 설명에 조금 지루한 감도 있지만 사회문제에 대한 깊이 있는 시선을 느낄 수 있다. 사회탓이야. 가정이 문제야.. 라고 하지 않는 작은 울림이 좋았다.

사회와 가족은 서로탓하기 바쁘다.

가정교육이 제대로 되었으면 그런 괴물은 사회에 나온지도 않아

사회가 제대로 돌아간다면 가족에서 벗어나도 안심할 수 있는 거잖아..

누구탓인가.. 결국 모두의 탓이다.

가족이든 사회든 제몸에 묻은 허물은 보지 못한다.

 

아이를 많이 안아주고 사랑해주자는  생각이상으로 어쩌면 어른이 되어도 저 말들을 목말라 하는 사람이 있을 거란 생각이 퍼뜩든다.

나이를 먹어서 어른이 아니라고 비밀과 거짓말로 살아가는  나이먹어버린 아이도 있다고 책은 말한다. 그 모든 아이들에게 괜찮다고 니 잘못은 아니라고지금이라도 말해주어야 하지 않을가

그리고 조금 기다려주는 세상이 되면 좋겠다.

막막한 지금 책을 읽고 더 막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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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담 프루스트의 비밀"

 

 

"기억은 일종의 약국이나 실험실과 유사하다.

 아무렇게나 내민 손에 어떤 때는 진통제가 어떤 때는 독약이 잡히기도 한다"

                             마르셀 프루스트

 

위와 같은 인용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그러고 보면 주인공  폴의 아빠는 아틸라 마르셀이고 폴을 치유해주는 부인이 프루스트이다.

두 사람의 이름을 합치면 마르셀 프루스트가 되고  폴이 과거의 기억을  꺼집어 내는 낚시 도구로 쓰이는 것이 차와 마들렌이다.

들은 풍월로는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도 주인공이 홍차와 마들렌을 먹고 이야기가 시작된다고 들었다.

멋진 오마주라 생각된다.

 

어린 시절 부모를 잃은 폴은 쌍둥이같이 닮은 두명의 이모와 함께 산다.  이모들은 폴을 피아니스트라고 하고 젊은 연주가상  대회에 늘 내보내지만 이제 서른 두살 그 대회 자격이 되는 것도 올해가 마지막이다.

폴은 어린 시절의 충격으로 말을 잃었고 (간혹 말을 하기는 했다) 그저 이모들의 댄스교습소에서 피아노를 연주하고 공원에서 빵을 먹는 단조로운 일상을 살아갈 뿐이다.

우연히 알게된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 정원에 가게 되고 거기서 마담을 만나 독한 차와 마들렌으로 순간 정신을 잃으며 과거로의 여행을 떠난다.

무의식적으로 기억의 수면아래에 꼭꼭 넣어두었던 기억을 하나 둘 기억해낸다.

폴이 프루스트 부인을 만나기전 두 이모와 노신사들의 대사에서 얼핏 그런 이야기가 나온다.

확실하진 않지만 부모의 죽음을 그렇게 묻어두고 이야기를 꺼내지 않은것이 과연 좋은 일일까? 하지만 지금 현재 어떤 문제도 없으니 굳이 꺼집어 내어 상처가 될 지 모를 문제는 묻어두자고 두 이모는 말한다.

그래서 조금의 문제는 있지만 나름 평화롭게 살던 폴이었지만 마담 프루스트를 만나면서 자신의 기억을 마주하고 혼란스러워진다.

자기의 기억속에 무섭기만 했던 아빠의 모습 그리고 어렴풋한 엄마에 대한 아빠의 폭행 기억앞에서 폴은 흐느껴 운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무의식적으로 내가 마주하고 싶어하지 않은 나의 모습이다. 그걸 마주하는 것은 몹시 힘들기때문에 누구나 가능하면 외면하고 회피하려고 한다. 지금 이순간 직면하지않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의 모든 상처는 어쩌면 마주하기 두려워서 속에 꾸역꾸역 눌러담아두기때문에 쉽게 딱지가 앉지 않고 늘 짓무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눌러진 상처나 외면하는 과거는 언제 튀어나올지 모르는 것이다, 내가 외면하고 모르기때문에 지금이 편안하고 아무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건 나의 온전한 삶이 아닌지도 모른다. 폴처럼 자기의 과거를 모르고 기억을 알지 못해서 늘 무기력하고 어딘가 비어버린 모습이다.

영화에서 폴의 과거는 뮤지컬처럼 경쾌하고 예쁜 색감으로 표현된다.

갓 태어난 폴에게 각자의 이루지 못한 꿈을 담아 미래를 예언하고 소원하는 이모들이나 아빠와는 달리 엄마는 본인이 원하는 삶을 살게 할거라고 한다.

좀 더 자라 해변에서 엄마는 부모에게 강요받은 피아노 대신 다른 삶을 살거라고 하며 행복한 노래를 부른다.

그리고 불안한 개구리들의 연주와 합창은 아빠와 엄마를 오해하게도 하지만 그것도 폴의 기억이고 과거의 한 부분이므로 버릴 수 없는 것이다.

이렇듯 폴의 과거는 꼭 인도영화처럼 노래와 춤이 곁들여지며 행복하고 아름답다. 음악도 좋지만 나는 그 색감이 끝내준다고 생각했다.

모든 기억을 찾고 콩쿨에서 멋지게 연주도 해낸 폴은 마지막 프루스트 부인이 떠나기전 남겨준 차를 먹고  이모가 그토록 숨기고 싶은 모든 것을 알아낸다.

그리고....

이제 더 이상 피아노를 치지는 않지만 폴은 행복하다.

새롭게 알게된 아빠의 모습 그리고 엄마와 아빠가 얼마나 행복했으며 자기를 사랑했는지를 알고 꽤 괜찮은 아빠가 된다.

 

꾸역꾸역 눌러담아놓은 기억은 치유가 될 수 없다.

심리분석에서도 나의 내면을 직면하라고 한다. 심리치유가 별것 아니다 내가 나를 용기있게 마주 볼 수 있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것이면 된다,.

과거의 마주하고 싶지 않은 상처받은 나를 돌아보고 마주하면 더이상 그 아이에게 끌려다니지 않아도 된다. 가만히 바라봐 주고 모듬어주고 나면 현재를 살아갈 힘도 생긴다.

상담에 관한 책이나 이야기를 들어보면 상처받은 내면의 아이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그 상처받은 아이를 바라보고 그때 상처를 준 사람들에게 자기를 표현하면서 눌렸던 억압을 해소하라고 하지만 그게 전부여서는 안된다.

나는 과거를 사는게 아니고 현재를 살고 있으니까 그 아이를 보듬어주고 나서는 현실에 발을 디디며 건강하게 살아내야하는게 더 중요한 거라 믿는다.

폴도 상처받은 아이를 마주하고 이제 피아노를 치지 않아도 행복하고  이모들이 혐오하는 중국인 아내와도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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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모든 것을 잃기 전 날 밤도 여느 밤과 다를 바가 없었단다.

.........................................

그 날 밤 말고도 새털같이 많은 날이 있을  줄 알았지

.......................................................

내가 말했어 "언니한테 하고 싶은 말이 있어"

언니가 말했어 "내일 말해도 되잖아"

내가 언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한번도 말하지 않았지

그녀는 내 언니였어

우리는 한 침대에서 잤어.

그 얘기를 할 기회가 한 번도 없었어

언제나 그럴 필요가 없었단다

.................................

그 날 밤만 밤이었던 건 아니니까

게다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사랑한다는 말을 하겠니

내가 너에게 지금까지 전하려 했던 모든 이야기의 요점은 바로 이것이란다. 오스카

그 말은 언제나 해야해

사랑한다.

할머니가.

 

인간의 역사는 근원도 의미도 알 수 없는 얼굴없는 폭력앞에서 하릴없이 상처입는 개인의 삶이 반복되는 이야기다. 거대한 역사속에서 개인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되풀이되는 폭력의 역사성. 전전쟁의 폭력에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안전해 보이던 일상이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것을 목격하는 경험이다   - 옮긴이의 말-중에서

 

주인공 오스카는 9.11 테러로 아버지를 잃은 아폽살 소년이다. 아버지를 잃은 상실감으로 살아가는 중에 아버지의 물건에서 파란 꽃병과 그 속에 들어있는 열쇠를 발견한다. 아버지의 부재앞에 어쩔 줄 몰라하며 끊임없이 발명을 상상하던 오스카는 그 열쇠가 어떤 단서가 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열쇠가 든 봉투에 써 있는 black. 이라는 단어를 바탕으로 세상사람들을 만나러 간다.

이야기는 열쇠의 비밀을 찾느는 오스카의 이야기를 한 축으로 그의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이야기가 교차되어 전개된다. 오스카의 할아버지는 이차 세계대전 독일 드레스덴 폭격으로 모든 것을 잃었다. 집과 마을과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 그리고 아직 태어나지 않은 가족을 잃은 할아버지는 상실감과 충격에 말을 잃었고 삶을 포기하며 살지만 우연한 기회에 할머니를 만나 함께 살게되지만 자기의 아이가 생긴 순간 집을 떠났다.

아빠의 흔적을 찾아가는 오스카와 한 번도 보지 못한 아들에게 편지를 쓰는 할아버지 그리고 그 사이에서 상실감과 고독을 견딘 할머니가 오스카에게 보내는 편지가 이야기를 이룬다.

모두가 본인이 의도하지 않은 폭력앞에 모든 것을 잃은 사람들이다. 정신적인 외상과 소통의 부재 그리고 누구도 믿을 수 없고 마음을 터 놓을 수 없는 외로움에 시달리면서 누군가는 말을 잃었고 누군가는 끊임없이 수다를 늘어놓고 누군가는 빈 종에에  스페이스바로 자서전을 썼다.

'결국 모두가 모두를 잃는다"

폭력앞에서 모두는 모두를 잃었다.

타인이 보기엔 가진것 중 일부일 수 있지만 내가 잃은 무언가를 남과 나눌 수 없고 소통할 수 없는 순간에 그는 세상 모두를 잃은 것과 다름이 없다.

누구에게도 말 할 수 없는 비밀이 가슴에서 자라면 모두를 잃은 것이다.

이야기는 수백피스짜리 퍼즐을 맞춰가는 것같다. 결말에 이르면서 전체적인 그림이 서서히 드러나는데 완성된 그림은 결국 서로가 서로를 지독하게 그리워하고 사랑했다는 사실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못한 한이 마음속에 비밀을 만들고 그 비밀이 자라서 나를 잡아먹을듯이 커지고 괴물이 되고 나는 점점 누군가와 소통하기 힘들어지는 일이다.

오스카에게 전화기가 그랬었다. 여섯개의 메세지를 엄마나 할머니에게 말 할 수 없어서 벽장속에 감춰버릴 일은 오스카에게 큰 비밀이고 아픔이다. 아빠를 잃기 싫어서 아빠를 거부했다는 죄책감과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는 무력감이 그 전화기 속에 있다. 하지만 결국 모든 퍼즐을 맞추고 나면 오스카는 아빠를 잃는 것이 두려웠던 것 뿐이었다.

할아버지에게 아픔은 죽은 애나였다. 아내가 그 애나의 여동생이라는 것 그리고 애나가 죽기전 뱃속에 아이가 있다는 말을 하며 행복했다는 것 그것이 큰 아픔이어서 현실에서 생긴 아들은 부정하고 두려워 세상으로 떠나버렸다.

할머니는 언니를 사랑하고 아버지를 사랑했는데 표현하지 않았다. 새털같은 날이 계속될 줄만 알았으니까 언니의 비밀을 알고 있었고 그래서 할아버지의 아픔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지만 모른 척 했다. 그만큼 할아버지를 사랑했었다고 믿었다.

모든 건 내가 너를 사랑하고 잊지 않는다는 거였는데 그걸 말하지 못하게 되고 서로 전달하지 못하게 되면서 그건 비밀이 되고 괴물이 되었다

 

일상을 살아가다가 어떤 일이 터지고 큰 상실감을 갖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다. 그래도 삶은 계속 지속되고  변하는 것은 없다. 하지만 나는 이미 그 일이 일어나기 전의 나와는 다르다.

죄책감 상실감 두려움이 내 속에 크게 자리해버린다.

비밀이 내속에 숨어버리고 그것은 점점 크게 자라면서 나는 잡아먹을듯이 위협한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것을 나는 자꾸 눌러서 저 아래로 넣어버리려고 한다.

하지만 그 비밀을 마주하는 순간 그것은 아무것도 아닌것이 될 수 있다.

하찮은 것 별 일 아닌 것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 그리고 위로받을 수도 있는 일이 된다.

비밀을 마주해야하는 순간은 가장 무섭다. 그러나 마주하지 않으면 끝없는 공포와 함께 살아야 한다.

오스카는 비밀을 전화기와 함께 벽장 속에 숨기고 아빠의 흔적을 찾으러 다녔다.

그래서 만난 수많은 black들과 이야기를 하며 세상에는 세상 사람들의 수만큼 많은 아픔과 상실이 있다는 걸 알게된다. 그리고 마지막 열쇠의 비밀을 풀고  오스카는 새로운 모험을 꾸민다.

찾을 수 없는 시신대신 빈 관으로 매장한 아빠의 관을 채워넎는다.

텅 빈 상실감을 채우는 것은 내가 그 존재를 기억하고 채워넣은 일이다.

그때 할아버지는 오스카와 함께 부치지 못한 편지들을 관에 채워넣는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고 이 아이가 너를 사랑한다고 우리는 너를 기억할거라고 그렇게 사라진 아빠의 존재를 채워넣으며 둘은 이제 그 존재로 부터 자유롭다. 영원히 기억할 것이므로 자유롭다.

아빠가 오스카에게 뉴욕 제 6구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사실 뉴욕에는 6구 가 있었는데 그것이 센트럴 파크만을 남기고 사라졌다고..

존재하지 않지만 영원히 있는 존재.. 그것이 바로 뉴욕6구이며 우리 누구에게나 있는 그 무엇일것이다.

 

p.s.

지금 이 순간 그 사람에게 표현하라.. 시간은 생각만큼 많지 않다.

 

오스카의 아빠 토마스 셀은 참 멋진 사람이다.

 

세상은 9.11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한다. 미국인들에게 세계인들에게 그게 무엇을 의미하든 또다른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9.11이후 미국은 세상에 분노할 자격을 얻었고 세상을 향해 마구 공격해도 되는 면죄부를 얻었다. 이제 이슬람은 공식적인 악이 되었고  그렇게 큰 아픔을 겪은 이에게 누구도 이의를 제기해서는 안된다는 어마어마한 권리를 얻었다. 그것이 지금 이. 팔 사태로 이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책을 읽으며 문득 문득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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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앤드루 포터 지음, 김이선 옮김 / 21세기북스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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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역꾸역 우겨넣은 기억은 저 무의식의 바닥에 가라앉아있지만 불쑥 나도 모르게 그 기억이 떠오를때가 있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고 말하고 싶지 않고 그저 꾸역꾸역 우겨넣었지만 잊고 싶지도 않고 지우고 싶지도 않다.

 

헤더는 결혼을 생각하는 콜린이 있지만 로버트와의 관계를 끊어내지 못한다.

 

다른 사람이 당신을 채워줄 수 있다거나 당신을 구원해 줄 수 있다고- 이 두가지가 사실상 다른 것인지 모르겠지만 추정하는 것은 순진한 생각이다. 나는 콜린과의 관계에서 그런 느낌을 받아본 적이 없다. 나는 다만 그가 나의 일부, 나의 중요한 일부를 채워주고 있고 로버트 역시 똑같이 중요한 나의 또다른 일부를 채워주었다고 믿을 뿐이다. 로버트가 채워준 나의 일부는 내가 생각하기론 지금도 콜린은 그 존재를 모르는 부분이다. 그것은 무언가를 혹응ㄴ 누군가를 사랑하는 만큼 쉽게 파괴할 수 있는 나의 일부다. 그것은 닫힌 문 뒤에 있을 때 어두운 침실에 있을 때 가장 안전하고 제일 편하다고 느끼는 유일한 진실을 우리가 서로 숨기는 비밀에 있따고 믿는 나의 일부이다. 로버트는 거의 10년동안 내가 콜린에게 숨긴 비밀이다.

 

누구에게 드러내놓고 보일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버릴 수도 외면할 수 도 있는 부분을 누구나 가지고 있지 않을까. 어쩌면 너무나 아무렇지도 않고 너무나  사소한 것이지만 그래서 안타깝고 나조차 이제는 마주하고 바라보기 두려워진 기억들

머리로 아는 기억이 아니라 어쩌면 몸이 기억하고 있는 그때의 바람 그때의 냄새 그때의 감촉이 있을 것이다

헤더에게 로버트는 그렇게 꾸역꾸역 우겨넣고 가라앉혔지만 아무때고 불쑥 불쑥 떠오를 그런 몸이 기억하는 한 부분이다.

 

이 책의 등장인물은 모두가 그런 한조각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 그것이 명확하지 않고 정확한 사실이 아닐 때도 있고 별거 아니잖아... 할 수도 있는 것이지만 본인에게는 깊이 새겨지고 몸에 익어버린 기억들이다.

구멍에 빠진 친구에 대한 기억  무언가 잘못된 일을 저지른 형에 대한 기억 부모가 어떻게 헤어졌는지에 대한 기억 그리고 그때 나의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  엄마의 부정하고 비윤리적인 애정행각을 목격한 아들의 복잡하고 어쩔 수 없는 감정들.. 이미 시간이 지난 지금 돌이켜 보면 어쪄면 사소한 일이었고 이해못할 일도 아니지만 그땐 심각하고 두려웠다.

 

초등시절 지금과 다르지 않게 물건을 깜빡 깜빡 자주 잃어버렸다. 내가 잃어버린 우산은 이미 두자리 숫자를 기록했고 어딘가 벗어놓고 잊어버린 웃옷도 있고 잃어버린 돈도 합치면 꽤 상당한 액수였다. 잃어버린 물건들은 기가 막히게도 집 현관을 들어서는 순간 조금 더 걸리면 신발을 벗는 순간 생각이 났다. 아차....

몇번을 혼나고 맞아도 고쳐지지 않았다. 어느날 모든 우산을 다 잃어버리고 엄마가 아끼는 우산을 들고 피아노 학원에 갔는데 그만 두고와버렸다. 그날따라 그날은 전혀 기억하지 못했고 엄마도 잊어버렸는데 며칠이 지난 후 그 우산이 없다는 걸 우리 모녀는 기억했고 그 당사자가 나라는 것도 알았다. 그때도 혼났었다.

그런데 지금도 기억하는게 그때라고 엄마가 더 심하게 야단치거나 한것도 아니었는데 처음으로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겨우 초등학교 5학년이었는데 이렇게 모든걸 잃어버리고 다니는 나 자신이 너무 싫었고 다시 피아노 학원에 가서 우산이 없냐고 물어볼 용기도 없는 내 바보같은 성격도 너무 싫어서 그냥 죽어도 괜찮다는 생각을 했었다. 지금 내가 기억하는 건 무언가를 잃어버렸다는 것이 아니라 그때 너무 심각하게 죽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어떻게 죽어야 할까 고민했다는 것이다.

바다에 빠져버릴까 높은 데서 떨어져 버릴까 아니면 숨을 오래 참으면 죽지않을까하는 생각까지

그 고민의 모습은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그런데 난 누구에게도 그때 그런 일이 있었고 죽고 싶었다는 말을 하지않았다.

그땐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을 테고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사소한 일로 죽고 싶었나 싶은 부끄러움도 있었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그때 내가 얼마나 절절하고 진심으로 죽음을 생각했는지를 삶을 놓고 싶었는지를 누구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았다.

어쩌면 잃어버린 우산이나 겉옷은 핑계일지도 모른다. 무언가 다른 것이 있는데 그건 내 기억 저 바닥으로 깊이 밀어넣고 절대 떠오르지 않도록 꾸역꾸역 누 르고 있었던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별거 아니었다.

그런데 그때 그 기억을 하면 아직도 부끄럽게도 나는 몹시 아프다.

어린 나이에 죽고 싶다고 생각하고 죽을 결심을 누구도 모르게 외롭게 다짐한 나 자신이 부끄럽고 동시에 짠하다.

그런 거다.

내가 간직한 기억은 말로 꺼내고 누군가에게 말하면 피식 웃음을 흘리게 만들고  별거 아니잖아~ 하는 반응을 얻을 지 모르지만 나는 그것을 절대 잊을 수 없다.

확실하지도 않고 내가 모든걸 알지도 못하지만 어떤 이미지 하나 어떤 말소리  하나가 깊이 박히는 때가 있는 법이다. 그렇게 박힌 말과 모습은 유리조각이 피부에 박히는 것처럼 아프고 서럽고 그리고 아름답기까지 하다.

 

표제작인 "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이 가장 좋았고 말할 수 없는 나의 무언가를 건드리기도 했지만 " 폭풍"과 " 구멍" 이 주는 미묘한  감정도 오래 남는다.

사실이란게 드러나면 별거아닌 민낯을 가지지만 그 민낯을  바라보기 전까지는 몹시도 두 렵고 불안하다. 사실이라는게 그런거다.

당신의 기억은 당신이 가지고 있으라.. 그건 당신속에서만 보석처럼 빛날 것이고 유리조각처럼 아플 것이다. 그것으로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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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와 하녀 -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마이너리티의 철학
고병권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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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쓰며 내가 떠올린 수신인은 "매일 매일을 살아가는 우리"였다. "철학이 일상에게" 그리고 일상이 철학에게 보내는 편지 나는 그런 걸 떠올렸다. 그리고 처음부터 알 고 있었다. 이 편지들은 잔잔한 것일 수밖에 없음을.

철학은 일상에게 대단한 구원의 메시지를 전할 수 없고 일상은 철학에게 드라마틱한 영웅담을 말하지 않을 것이다. 천국으로의 구원은 신의 몫이고 스펙타클한 영웅담은 극장에나 걸리는 것. 다만 철학은 지옥에 함께 있어주겠다는 말을 일상에게 전할 뿐이며 일상은 창백하게 떠도는 철학의 말들에 한 방울의 피. 다시 말해 하나의 체험을 선사할 뿐이다. 그런데 이것이 얼마나 대단한 선물의 교환인지를 이제야 어렴풋이 알 것 같다.

사실은 "그"가 "나"였다. " 왜 지금 여기서 철학을 공부해야 하느냐"고 물었던 사람 말이다. 나 역시 스스로에게 여러 번 그 물음을 던져왔다. 나는 철학을 전공한 사람도 아니고 철학자임을 보증하는 어떤 자격증도 갖고 있지 않다. 철학이란게 단지 그런 지식과 자격증에 대한 이름이라면 나는 언제든 그 이름을 버릴 준비가 되어 있다. 내가 사랑하는 철학 내가 고마움을 느끼는 철학은 누군가의 표현처럼 언제나 내 정신에 찬물 한바가지를 끼얹는 그런 것이었다. 그 물 한바가지를 뒤집어 쓰고서야 나는 삶을 다시 볼 수 있었다. 나 역시 안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는 정서들에 머리채가 잡혀 이리저리 휘둘리며 살았고 바깥의 스펙터클한 풍경에 눈이 팔려 삶의 소중한 것들을 소홀히 해왔다.  그나마 내가 이렇게라도 살아가는 것은 때로는 책 속에서 때로는 책 바까에서 내 정신의 등짝을 후려쳐 둔 이들 덕분이다. 그 경험이 내게는 철학이다. 이 책을 읽는 당신에게도 철학이 그런 친구이기를 바란다.

 

                                                            프롤로그... 에서

 

 

세상에 말들이 부족하지 않다. 누군가는 페스트푸드처럼 빨리 사라지는 말들의 운명을 걱정한다고 하지만 우리 삶을 가꾸는 데 필요한 좋은 말들은 인류의 역사가 부지런히 생산해온 위대한 인물들 덕분에 여전히 정신의 계주를 이어오고 있다. 내가 걱정하는 말의 운명은 다른 것이다. 언어학자의 관점과 철학자의 관심은 여기서 나뉘는 걸까 말들의 수량과 수명보다 내게 더 중요해 보이는 것은 "말들의 방황"이다. 한마디로 "겉도는 말"의 문제이다.

책을 읽거나 강연을 들을 때 우리는 소위 "좋은 글 좋은 말씀"을 많이 접한다. 나 역시 누군가에게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 선생님 좋은 말씀 정말 감사합니다"그런데 강연이나 원고지에서 만난 그"좋으느 말씀"들 때로는 무릎을 치게 하고 때로는 가슴에 와닿아 어딘가에 적어두기까지 한 그 "좋은 말씀"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내 안에서 잠시 머물기도 했던 것 같기는 한데 지금 그것들의 행방을 알지 못한다. "선생님의 말씀"으로 들어와:선생님의 말씀"으로 머물다가 애초에 그것이 선생님의 것이었음을 확인하듯 내게서 떠나가 버린 말들. 누군가 건네준 빵 한조각도 금세 피가 되고 살이 되는 데 왜 "선생님"의 그 "좋은 말씀"들은 순간의 짜릿함만을 안기는 탄산음료처럼 그냥 그때뿐인걸까?
아마도 우리가 그 좋은 말들을 위장으로 직접 소화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달리 말하자면 우리는 그 말들을 진지하게 믿지 않았다. 소크라테스나 공자, 예수와 석가의 아름다운 말들을 구경만 했을 뿐 그것들을 진지하게 체험하지 않았다. 우리가 믿는 것은 그들의 권위였지 그 말들이 아니다. 말을 믿었다면 우리는 벌써 그것을 행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자신의 믿음을 말의 실천이 아니라 그 말을 한 사람에 대한 숭배로 나타낸다. 즐 우리가 믿는 것들은 말이 아니라 그들이 우리와는 다른 특별한 존재라는 점이다.  바로 이런 식이다 "나는 그가 특별한 존재임을 믿습니다"

그러니 예수를 믿는 사람. 그 믿음을 과시하는 사람은 많아도 예수처럼 사는 사람은 드물다. 니체가 예수만이 유일한 기독교도였다고 한 것은 그런 뜻에서였다. 천국은 예수의 실천속에 있는데도 사람들은 그것이 예수에 대한 믿음에 달렸다고 착각한다. 물론 이는 기독교만의 문제가 아니다 좋은 말씀을 듣고 읽는 우리 모두의 문제다. 우리는 무소유 정신을 갈파한 어느 스님의 책을 백만 권 넘게 사지만 정작 무소유를 실천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좋은 말을 박물관이나 명승지를 관람하듯 그저 듣고 구경하면서 입장료로 책값을 내는 것이다.

그렇다면 앎은 어떻게 해서 우리의 피가 되는가? 앎은 언제 우리의 삶을 구원하는가? 실로소피 즉 철학은 "지혜에 대한 사랑:이 라는 말뜻에서 알 수 있듯이 " 앎을 통한 삶의 구원"을 확신하는 학문이다. "악덕은 무지에서 나온다"고 했던 소크라테스부터 "아는 것이 힘:이라고 했던 계몽주의 철학자들까지 모두 그랬다. 철학자들이 싸운 것은 다만 그 '앎"의 내용에 해서였다. 하지만 좋은 "앎"은 자동으로 우리'삶"을 구원하는가? 만약 그렇다면 공자님 말씀을 틀어놓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알 듯 그것이 그렇지가 않다. 앞서 말한 것처럼 "좋은 말씀"들은 내게 잠시 머물다 금새 사라져 버린다. 왜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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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무리 대단한 권의를 가진 사람의 말이라 할지라도 그리고 그 말이 아무리 올바른 것일지라도 환자가 체험하지 못하는 것은 아무런 효과가 없다. 앞서 말한 것처럼 치료의 관건은 환가가 현재의 증상을 유발하는 과거의 사건으로 돌아가는 것에 있으며 거기서 그 사건을 과거와는 다르게 체험해야한다. 즉 과거를 반복하지만 다르게 반복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치료만이 아니라 깨우침 일반이 그렇다, 과거에 내가 저지른 일을 그대로 떠올리지만 그것을 달리 느끼고 달리 대할 수 있을 때 우리는 뭔가를 꺠우친 것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좋은 말은 그저 좋은 말일 뿐이다. 그것이 내 것이 되려면 내 안에서 다시 체험되어야 한다. 내가 내 식으로 체험하지 않은 말이란 한낱 떠다니는 정보에 불과하다. 세상에는 여전히 옳은 말들을 찾아 나서는 사람들이 많지만 나는 세상에 옳은 말들은 부족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그것들이 정처 없이 여기저기 흘러다니고 있을 뿐이다. 

요즘 잘 나가는 선생들의 인문학 강연장에는 사람들이 넘쳐난다고 한다. 책도 많고 강년도 많다. 그러나 그 대부분의 말들은 모두가 쓰고 버리는 심지어 써보지도 못하고 버리는 상품처럼 되었다. 누군가에게 좋은 말을 들었다면 최소한 한번은 내 목소리로 그것을 다시 들어야 한다.그때만이 그것은 내 피가 된다.  "높이 오를 생각이라면 그대들 자신의 발로 오르도록 하라" 차라투스트라가 자신을 구원해달라며 찾아온 이들에게 던진 말이다.  확실히 그렇다. 내 발로 오르지 않은 산은 풍문과 구경거리로만 존재하는 산이다. 그러니 산에 오르려면 스스로 오르는 수밖에 없다.

책을 마무리 하다보니 세상에 내보내는 말들이 결국 내게 돌아오는 걸 느낀다. 나는 내 말을 얼마나 체험했던가? 내 글은 정말로 내 피로 쓴것인가 부끄러움을 솔직히 고백하고 노력하는 수 밖에.. 철학하는 이가 끝까지 놓지 말아야 하고 끝까지 사랑해야 할 운명이 저 물음이기 때문이다.

 

 

                                 에필로그... 에서 

 

 

 

빌린 책에는 줄을 그을 수도 없고 함부로 접은 표시를 할 수 없었다.

모든 구절에 줄을 긋고 접어두는 것도 부질없어 보였다.

이 책이 어떻게 내 눈에 들어왔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20년도 전에 교양과목으로 들었던 철학개론을 연상케 하면서 그때 글로만 배웠던 철학이 어떻게 우리 현실에 적용되고 사람에게 들어와 어떤 작용을 일으키는지를 이 책은 솔직하고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앎이란 내 지식의 폭이나 깊이를 넓히는 일이 아니라 내게 용기를 낼 수 있게 하는 것

지금 이순간 여기에서 시작하를 말

죄의식으로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말고 그때  그때 반성하고 마주하면서 다시 새롭게 시작하라는 말

모두가 여기서 새롭게 알게 된 것도 아니고 어딘가에서 읽고 어딘가에서 들었던 좋은 말씀이고 글귀였다. 그럼에도 이 책에 씌여진 이 말들이 왜 이토록 가슴을 치며 다가왔을까

저자는 철학이 단순히 생각하고 지식과 사고를 확장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은 행동이고 그 행동을 할 수 있게 하는 용기라고 한다.

지금 이순간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하루하루를 채워살아내는 일이 바로 철학이라고 말하고 있다.

아는 것이 전부는 아니라는 걸 알고는 있었다. 책을 많이 읽으면 그냥 책을 많이 읽는 어른이 되는 것뿐이라고도 알고 있다. 읽는다는 행위는 그다음 책장을 덮고 문을 열고 나가거나 누군가와 대화를 하며 내가 잘못할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다는 걸 받아들이며 행동하는 것이다.

 

많은 곳에 밑줄을 그을 수 없는 책이어서 결국 플롤로그와 에필로그만을 적어두기로 한다.

더운 날 얼음처럼 차가운 물 한바가지를 뒤짚어 쓴 기분.

책을 덮으며 그런 서늘함을 경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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