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어주는 남자 시공사 베른하르트 슐링크 작품선
베른하르트 슐링크 지음, 김재혁 옮김 / 시공사 / 2013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영화 포스터때문일까

사랑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영화를 보면서도 사실 중요한건 시간이 흘러 마이클 (책에서는 미하엘)이 어른이 되어 다시 안나를 만나서부터 이야기지만

앞부분의 두사람의 정사신이 너무 인상이 깊어서 그저 사랑이야기로만 인식하고 있었다.

책은 남자의 입장에서 많은 것을 들려준다.

 

여자와 남자가 만나서 사랑하고 헤어지고 미워하고 애증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이 인간을 만나는 이야기 수치심과 자존심에 관한 이야기 범죄와 용서 기억과  무지에 관한 이야기들이 주를 이룬다.

 

미하엘에게 안나는 지울수도 없고 지워서도 안되는 강력한 기억이다.

절정의 행복인 동시에 수치감이고 따듯한 그리움이면서 동시에 지우고 싶고 극복해야하는 성장통이었다.

 

불 붙어서 두려울게 없는 청춘의 욕망은 끝을 모르고 달려간다, 늘 그리워하고 매달리고 비굴하게 애원해도 아무렇지도 않다. 내가 그녀를 얼마나 알고 있고 얼마나 사랑하는지는 오래 생각할 겨를이 없다. 그저 지금 이순간 만나고 함께하고 만지고 사랑을 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리고 그 사랑에 대해 고민이 시작되고 우리가 어떤 관계인가에 대해 서성거리기 시작될 무렵 여자는 사라졌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법정에서 그 여자를 다시 만난다

여자는 엄청난 과거를 가진 인물이었고 그때나 다름없이 견고하고 꼿꼿하다.

그리고 구부러지지 않고 강하게 부러지며 모든 죄를 혼자 감당한다.

물론 여자에게도 죄는 크다.

내가 범죄자를 사랑했던가.. 범죄자를 사랑했던 나는 죄가 없는가

제대로 이별하지 못한 남자는 여지가 다시 서성이고 얽혀들어간다.

잊지 못하고 마무리 하지 못하고 눌러놓기만 했던 기억들을 몸이 먼저 알아보고 반응하고 마음이 갈피를 잃는다.

정의로움이란 무엇인가

진실과 자존심사이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내가 진심으로 그 여자를 돕고 싶은 것인가 내가 면죄부를 받고 싶은 것인가

 

여기서 미하엘과 아버지의 대화부분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언제나 우리 가족밖에 있던 아버지에게 아들은 큰 고민을 상담하러 간다.

아버지로서 그리고 철학자로서 어떤  해답의 조각을 던져줄까

 

아버지는 말한다

 

"하지만 어른들의 경우에는 내가 그들에게 좋다고 생각하는 것을 그들 스스로가 좋다고 여기는 것보다 우위에 두려고 하면 절대 안돼"

 

"우리는 지금 행복이 아니라 품위와 자유에 대해서 말하고 있어 넌 아주 꼬마였을 때부터 그 차이를 잘 알았잖니 엄마의 말이 늘 옳은 것이 네겐 별로 마음 편치 않았잖아"

 

" 아니다 네 문제는 마음 편하게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야. 만약에 네가 서술한 상황이 그 사람에게 어쩌다가 생긴 것이거나 아니면 유전적인 것에 그 원인이 있는 것이었다면 너는 당연히 행동을 해야한다. 네가 상대방을 위해 무엇이 좋은 것ㄴ지 알고 있고 그 사람이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너는 당연히 그 사람이 그에 대해 눈을 뜨도록 해주어야 한다. 물론 최종 결정은 본인에게 맡겨두어야 한다. 하지만 그 사람과 이야개를 해야해 그 사람과 직접 말이야사람 등 뒤에서 다른 사람과 이야기 해서는 안된단다."

 

안나의 거짓말은 존중되었다.

미하엘은 어떤 행동도 옮기지 않았다. 그건 안나를 존중하기위해서라기 보다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고 갈팡질팡하는 사이에 그렇게 결정되어졌다.

내가 어떤 자격으로 안나에게 끼어들것인가

그저 모른 척.. 저 범죄자와 나는 관계가 없는 것처럼 그렇게 살아가도 좋지 않을까 하는 망설임끝에 안나는 종신형을 받는다.

그러나 미하엘의 청춘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그는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열지 못했고 결혼생활을 평탄하지 않았고 딸아이가 바라는 행복하고 평화로운 가정을 주지 못했다.

안나에게 책을 녹음해서 전달하지만 편지는 결코 써주지 않는다,

그건 누군가와 주고 받는 마음이 아니라 일방적인 전달이다

아직도 미하엘은 안나를 인정할 수도 부정할 수도 없다.

안나는 그의 인생에 없어서는 안될 존재이면서 드러나서도 안되는 존재로 여전히 유령처럼 부유한다.

사람들은 그것이 사랑이라고 말을 하지만 내가 보기에 미하엘의 아직 끝나지 않은 성장통이고 혼자서 풀어내야 할 통과의례이다.

안나의 편지를 받고 안나를 만나고 안나의 이후 삶을 준비하지만 아직 마하엘의 성장통은 끝나지 못했다.

안나의 죽음... 그리고 그녀의 방에 남은 흔적들을 보면서 미하엘은 비로소 눈물을 주체할 수 없다. 말 한마디만 하면 터질것 같은 눈물을 참으며 교도소장의 이야기를 듣고 방을 둘러보고 자신의 사진을 발견한다.

이제 미하엘은 성장했다,

어른이 되었고 안나를 인정하고 그 사랑을 그시간을 그 청춘을 인정했다.

나는 그녀를 사랑했고 그녀도 나를 사랑했노라고

 

이 책은 사랑이야기일 수도 있고 아직 마무리 되지 못한 전쟁세대와 전후세대의 이해차이로 읽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내게는 한 소년이 어른이 되는 통과의례로 읽힌다.

어른이 되지 못한 아이는 누구에게도 쉽게 마음을 열지 못한다.

그리고 통과의례를 거쳤다고 단박에 변하지도 않을 것이다.

하지만 과정을 거치고 오래 묵힌 무언가를 흘려보냈다면 이제 마음을 열지 않아서 편하다면 그래도 괜찮다.

말하지 않아도 누군가를 미워하고  원망해도 괜찮다.

어쩌면 그런 모든 감정에 솔직해지는 것이 건강하다는 의미이기도 할 것이다.

 

내게 이 책은 그렇게 미하엘의 인생 전반에 걸친 성장에 관한 이야기이다.

 

 

 

p.s.

아버지와의 대화를  부분을 읽으며 나는  어쩔 수 없이 내 아버지를 생각했다.

책 초반에 묘사된 아버지의 모습

우리 가족이면서 우리가족밖에 있는 사람

생각이 언제나 여기가 저기에 있는 사람

언제나 자기 생각에 빠져 있는 사람 그 생각이 우리에 관한 것인지 자신에 관한 것인지 알 수 없는 사람

하지만 마지막엔 언제나 매달리게 되는 사람..

그 아버지가 내아버지와닮았다는 생각을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머리속에서 심장을 콩닥콩닥 뛰기 시작했다.

아닐거야 아무일도 없을거야...

바삐 걸어야 하는데 아니 차라리 뛰어야 하는데.. 발을 더 빨리 움직일 수가 없다.

자꾸 발이 꼬이고 무릎이 꺽이려고 한다.

얼른 가야하는데...

마주오는 사람들이 모두 의심스러웠다.

저 사람이 혹시.... 혹 저 사람이 아닐까

저 사람의 가방속에 뭐가 들어잇을까?

저렇게 태연한 표정을 하지만 이삼분전에 무언가 엄청난 일을 저질렀을지도 몰라...

머리속에서 심장은 점점 흥분하고 있다.

저기 보인다. 얼른 문을 연다 들어간다.

없다.....

정신을 차린다.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지어보이려고 노력하면서  안내 데스크로 간다.

천천히 입을 연다

"혹시 핸드폰 습득한 거 있나요?

청경이 말없이 핸드폰을 내민다.

아....

머리속에서 심장이 멈췄다.

얼굴이 붉어지기전에.. 얼른 자리를 뜬다.

고맙다는 말을 했던가? 말을 얼버무렸던가?

다행이다.

 

그래도 오늘은 빨리 기억이나서 다행이다.

나이를 먹는게 이런건지

햇살이 눈부신게 괜히 서럽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누나는 벽난로에 산다 내인생의책 푸른봄 문학 (돌멩이 문고) 13
애너벨 피처 지음, 김선희 옮김 / 내인생의책 / 2013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읽는 내내 제임스 부모가 이해되지 않았다.

  나도 누군가의 부모였기때문일까... 아니면 아직 제임스가족과 같은 불행을 당하지않은 행운아여서일까 모르겠다.

 가족의 삶을 뒤바꾸는 어떤 불행이 닥쳤다고 해서 그렇게 내 삶을 내팽겨 칠 수 있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책을 읽는 내내 들어서 불편했다.

알콜중독으로 빠져버리고 남탓을 하며 생활과 가정을 내팽겨쳐버리는 아빠가 그냥 계속 이해할 수 없고 이해하고 싶지 않았고 미웠다.

내 감정은 책을 읽으며 계속 제임스만을 따라가고 있음을 나중에 알았다.

가족내에 불행한 일을 겪으면 가족이 해채된다는 것 속된 말로 풍지박산이 된다는 게 어떤건지 절절하게 보여준 가족이었다.

가장 불행이라고 할 수 있는 일.. 아이를 잃었다. 누구의 책임도 아니며 동시에 어떤 이유도 알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누군가를 탓해야하는데 그 대상마저 모호하다. 그럴때 가족들을 그 화살을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에게 돌린다.

아빠는 엄마를 탓했다. 왜 그때 그 곳으로 가자고 했고 왜 아이를 제대로 건사하지 않았으면 내가 그렇게 아이를 불렀는데도  모른척 내버려두었느냐고...

엄마는 스스로의 죄의식과 함께 쏟아지는 비난을 견딜 수 없어서 가족으로부터 도망친다. 어쩌면 내 한몸 건사하기 힘들고 지쳐서 남은 가족이 남은 아이들이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을지모른다.

그리고 아이들은 생각한다. 왜 내가 아니라 그 아이였나 

기억을 하는 아이는 혼자 살았음이 죄스럽다. 왜 내가 아니고 그 아이였나.. 그건 평생을 따라다닐 트라우마가 된다.

당시를 기억하지 못하는 꼬마에게는 모든 것이 청천벽력같은 일이다.

누이 하나 죽었다고 해서 가족이 이렇게 변할 수가 있는가

기억조차 희미한 그 누나가 온 집안을 지배한다. 이제는 유골함에 들어가 있는 몇개의 뼈조각으로 남은 누나가 집안의 중심이라는것은 꼬마는 절대 이해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다.

가족이라는 것이 붕괴 되는 것은 순식간이다.

모두가 손을 탁 놓기만 하면 그대로 스르르 무너져버리는 약하디 약한 공동체가 가족이었다.

 

2. 애도의 방법은 저마다 다르다.

  머리로는 그걸 이해하지만 나와 다른 애도방법을 가진 타인을 보는 것이 불편할 때가 있다.

  얼마전 읽은 <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애서도 애도와 비탄이 언급된다.

  반즈는 세련되게 그 애도와 비탄을 이야기한다. 하늘을 나는 기구의 이야기에 빗대어 세상을 함께 나눈 가족 반려자를 잃은 그 심정을 절절하게 그러나 담담하게 이야기하며 누구도 나를 이해하지 못했고 나는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했노라고 고백한다.

남에게 위로하는 것이 힘든 이유이다,

나의 진심이 상대에게 통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 나의 방식과 상대의 방식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거나 알아도 서로 통하는 길을 알지 못한다.

이야기 속의 아버지의 애도는 정말 이해불가였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그래서 절절히 제임스가 와 닿았다.

이미 죽은 사람이라고.. 너에게는 책임져야할 두명의 아이가 남지 않았느냐고 그의 멱살을 잡고 소리치고 싶었다.

그 아빠가 로즈를 특별히 더 사랑해서였을까

더 영리하고 장난꾸러기이며 눈빛이 빛나던 거 아이를 더 예뻐했던 거였을까

아닐것이다. 로즈가 살아있는 동안은 누군가를 더 좋아하는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래서 로즈의 빈자리가 더 커진 것이다.

이미 없어진 사람에 대해서는 잘 해준 기억보다 못해준 기억이 더 남아 있을 수 있다.

이제 겨우 열살이 되어 죽어버린 아이 시신조차 수습하지 못하고 몇조각의 뼈로 남은 아이가 가엾고 안타까운 건 이해한다.

그러나 그에게는 또다시 위로받고 이해받아야 할 아이가 둘이나 남아있질 않은가

그는 소리없이 소리친다.

너희는 살아있음에 감사하라. 더이상 바라지 말라.

그건 남은 아이들에게 정말 잔인한 짓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누군가의 애도가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 수도 있구나 하는 걸 알게 되었고 동시에 모두에게 이해받는 애도라는 것만  좋은가 라는 생각도 들었다.

누구도 이해하지 못하고 그래서 그를 떠난 가족도 있지만 아빠의 애도는 누구보다 절절했고 진심이었음을 .. 그리고 많이 아팠다는 사실을 책을 읽는 중간중간 발견하지만 그래도 아빠를 완전히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싫었다.

 

3. 제임스는 세상에 보이지 않는 아이였다.

  무엇을 입고 있건 어떤 행동을 하건 아빠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제임스가 보는 아빠는 늘 로즈 누나만 생각하고 그리워하는 아빠이다.

  직장도 집안일도  아무 상관없고 그래서 엄마를 쫓아내버린 아빠였다.

학교에서도 제임스는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한다.

유일하게 제임스를 알아봐 준 슈나는 모슬렘이었다.

아빠가 악으로 규정한 존재.

누나를 죽인 존재.

어쩌면 집안 침실에서 폭탄을 제거하고 남의 목숨을 파리처럼 여기고 남의 나라에 기생하여 살면서도 고마워할 줄 모르는 인간들..

제임스가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은 모슬렘이란 그런 거였다.

절대 말도 해서는 안되고  마주보아서도 안되니 친구란건  절대 사절이다.

그런 슈나가 짝이 되었고 번번히 제임스를 위기에서 구해주고 웃어주고 말을 해준다.

열살인 제임스는 아버지의  말과 현실의 슈냐앞에서 혼란스럽다.

하지만 로즈가 죽고 처음으로 자기를 알아봐 준 사람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제임스에게는 넘치게 좋은 사람이었던 셈이다.

 

4 텔렌트 쇼에 나가고 난뒤 제임스는 처음으로 엄마를 만난다.

  늘 기다리고 그리워했던 엄마

  엄마를 기다리며 빨지 않고 계속 입었더 스파이더맨 티셔츠를 드러내 보이지만 엄마는 기억하지 못한다. 말미에 드러난 진실

사실 엄마는 아빠를 못견디고  간 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아빠의 원망을 핑계삼아 스스로 집에서 도망간 것이었다.

어쩌면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고 술의 나날을 보내는 아빠보다 더 무책임하고 나약한 사람이 엄마였다.

간혹 현실을 마주하면 차라리 용기가 생기고 살아갈 힘이 생길 때도 있다.

이제 더 이상 엄마는 오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된 제임스는 포기와 함께 미련도 버린다.

그리고 고양이의 죽음앞에 처음으로 소리내어 울고 난 후 조금은 아빠를 이해하게 된다.

내 가장 소중한 것을 잃고 난 후에  남의 처지를 알게 된다.

그건 세상에서 가장 슬픈 진실이고 가장 아픈 배움이다.

서로를 알게 되면 더 이상 마법같은 기적이 일어나지 않아도 살아갈 힘은 얻게 된다.

제임스와 재스민과 아빠는 이제 함께 앉아 티비를 보며 식사를 할 수 있다.

따뜻한 밥상이 아닌 패스트 푸드나 냉동음식에 멍하니 화면만 쳐다보는 삭막한 풍경일 지언정 이제 가족은 모여있다. 그렇게 시작하면 된다.

 

5 9.11이 준  깨달음 중 하나가 테러라는 것이 전쟁터나 위기상황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란다. 저 멀리 중동지역 분쟁이나 전쟁터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지금 평화로운 미국내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는 경각심을 주고 불안을 주게 된 사건이라고 들었다.

이제 어디도 안전한 곳이 없다는 생각은 누군가 원망하고 미워할 대상을 필요로 하게 되고 그 미움이 그리고 사건으로 인한 트라우마는  모든 일들의 인과관계를 살펴볼 겨를도 여유도 없이 지금 당장 눈앞에서 내게 피해를 주었다고 믿는 누군가를 원망하고 미워하는 것으로 분풀이 한다.

미국의 사건이 그리고 영국의 사건이 미움의 대상으로 삼은 것은 무슬렘이었다.

그들의 피부색 옷차림 종교는 이제 악의 축이 되었고 그들에 대한 공격은 정당성을 얻게 되었다.

제임스의 아빠도 딸을 잃은 슬픔을 이성적으로 따져 볼 겨를도 없이 당장 눈앞에 있는 모슬렘에게 모든 원망을 던지면서 하루하루를 산다. 남을 원망하는 힘으로 살아간다는 건 스스로를 갉아먹는 일이다.

 

 

그래서

사랑하는 고양이를 잃었지만 제임스는 어렴풋하게 아빠를 이해하게된다.

아빠도 이렇게 아팠겠구나. 이렇게 슬프고 미안했겠구나...

완전히 받아들일 수는 없지만 그래도 이젠 알 수 있다.

저럴 수도 있구나...

 

마지막 숨은 주인공 재스민의 이야기는 참 아름답다.

나는 더 이상 로즈랑 똑같을 수 없다.

아무도 몰랐던 로즈의 비밀을 바램을 이제 혼자 스스로 해낸다.

나는 로즈가 아니다 재스민이다

이제 제스민으로 살것이다..

그 아이는 아무도 알아봐주지 않았어도 혼자 성장했다.

내가 잠시 한 눈을 팔고 잊고 있는 사이에 그렇게 아이들은 자라고 있다.

남은 남매에게 축복이 있기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
줄리언 반스.팻 캐바나 지음, 최세희 옮김 / 다산책방 / 201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제가 어릴 때 촌에서 자랐는데요. 집에서 기르던 송아지 한 마리만 팔아도 그 어미 소가 밤새 울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그게 시끄럽다거나 하지 않고, 다들 소가 울음을 멈출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유족들에게 '이제 그만 좀 하라'고 하는 건 맞지 않습니다.
(슬픔의) 기한은 우리가 정하는 게 아니라, 여러분의 눈물이 멈출 때까지입니다.”

              - 김제동 -

 

 

저 말을 처음 인터넷으로 접하고는 역시.. 김제동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마지막 책장을  닫고 나서 저 말이 다시 떠올랐다.

슬픔의 기한은 정해진 것이 아니다.

누군가를 잃고 누군가가 죽어버리고  남은 사람들이 비탄하고 애도하는 기간은 정해진 것이 아니다.

타인의 눈에는 너무 질질끈다 싶을 수도 있고 너무 매정한게 아닌가 싶게 쉽게 일상으로 돌아가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눈에서는 더이상 눈물이 흐르지 않더라도 내내 절절한 마음으로 사는 사람도 있고 그 절절함이 겉으로 드러나 도저히 일상을 견디기 힘든 사람도 있다.

 

책을 시작하면서 도데체 이건 무선 이야기를 하려는건가 싶었다.

내가 들은 첵 소개로는 저자가 아내가 죽고 난 뒤의 감정을 거의 5년이 지난 뒤에 써낸 최초의 작품이라는데..  엉뚱하게 기구 이야기가 나온다.

하늘로 올라가는 기구

내가 사는 곳을 다른 시선에서 볼 수 있게 되는 도구

내가 발을 딛고 선 그 곳을 또다른 높에에서 바라보는 도구

하늘로 올라갈 때는 마음대로 올라갈 수 있지만 내려올 때는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발란스를 떨어뜨리고 가스를 조정하고 아래 무엇이 있는가도 살펴야 한다.

사람이 살면서 내 멋대로 할 수 잇는 일과 되지 않은 일 어떤 것이 더 많을까?

 

기구 이야기를 읽으면서 그 기구에 탔던 사람들의 삶과 사랑에 대해 꾸역꾸역 읽으면서  어디서 죽음이 ... 이별이 나오는지 기다렸다.

드디어 세번째 이야기에서 절묘하게 이야기는 연결된다.

애도와 비탄은 내가 내 감정이 정하는 것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서고 사실 엄마가 너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살뜰한 부부도 아니었고  지독한 시집살이 고지식하고 가부장적인 남편 철철이 돌아오는 제사와 행사들 할머니 돌아가시고 처음 떠나 본 부부여행등등 내 기억으로는 아빠는 엄마의 그리운 그 사람이 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암치료때 아빠가 보여준 이기적인 건강욕심과 그 후의 무심하고 자기중심적인 행동들 그리고 변하지 않은 가족사랑 (자기 친가쪽의0 그리고 마지막 재발과 악화로 인한 고생등등

어쩌면  돌아가신 분께는 죄송하지만 이제 홀가분해지는 것이 아닐까 생각을 했다.

이제 자유로울수 있는 거 아닐까

엄마도 이미 70을 넘긴 나이지만 이제는 조금 편하게 지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데.. 엄마는 매일매일 우셨다.

삼일장동안도  너무 미망인답지 않게 말도 잘하시고 손님도 잘 챙겼던 분이 모든 일이 끝나고 혼자 남겨진 순간 그렇게 낯설게 울기만 하셨다.

창밖을 보아도 눈물이 나고 텔레비젼을 보아도 울음만 나고 남은 감정은 미안하고 아쉬운거밖에 없다는 말이... 사실  나는 몹시 낯설었다.

나도 아버지를 보내고 문득문득 밀려드는 감정에 무릎이 꺽이고 목이 매이기는 했지만 적어도 나는 아버지의 딸이었고 애증을 나눈 사이라기보다는 그래도 애정을 받은 사이였으니 그랬다고 생각을 했다.

혼자 계신 분에 대한 안쓰러운 마음에 전화를 하면 늘 마지막은 울음이고 나도 곧 죽고 싶다는 말뿐이고 자식은 다 소용없다는 말뿐이어써 그 전화조차 점점 사이가 벌어졌다.

사람인... 두개의 사람이 서로 기대고 있는 모양이라고 한다.

어쩌면 두 분은 서로 욕을 하고 미워하고 저주를 퍼부으면서 우리가 둘이어서 이렇게 존재하는 거란 걸 너무나 잘 알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책장을 덮으며 너무나 무지하고 단순하고 멍청한 나에게 조용히 욕해줬다.

책을 읽으면 무엇하나..... 아는 게 늘어나면 무엇하나...

눈뜬 장님이고  속빈 강정이고 헛똑똑인인것을....

사랑이라고 하기엔 너무 간지르우니 우리네 정이라고 하자

정이란 놈은 그렇게 끝나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미운만큼 원망이 컸던 만큼 애도의 기간이 탄식의 기간이 길어지리라...

자식들 자 짝지워놓으면 다 자리잡으면 이혼할거라고 다짐했던 엄마는 결국 그 때가 오자 암에 걸린 아빠를 덜컥 맞게 되고 그렇게 다시 자유를 꺽고 15년을 사셨다

그 애도의 깊이를 내가 안다고 하는 것은 오만일 뿐일것이다.

어쩌면 엄마도 내성적이고 수줍은 아빠를 이미 나보다 먼저 알아봤을 것이고

미워하고 미워하며 쌓은 정 사이에  더 어찌 할 수 없는 애정이 켜켜이 들어있었을 것이다.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

저 바다 건너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외국 중늙은이 작가의 절절한 글에서

나는 내 엄마를 본다.

 

 

 

그리고 이제 떼를 그만쓰라고 헛소리하는 그들이 이 절절하고 아픈 애도의 마음을 알기나 할지 ..

그들에게 읽어보라고 .. 이해좀 해보라고 한들....

우리 반스씨가 아깝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라일락 붉게 피던 집
송시우 지음 / 시공사 / 2014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누구에게나 비밀은 있다.

그 무게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일이 마음 깊이 눌려져서 삭히고 또 삭혀서 이젠 형체도 없이 흐물흐물해졌다고 믿는 순간 그 비밀은 이제 두껑만 열면 폭발해버릴만한 무시무시한 상태가 되어있다.

마음에 눌러놓은 비밀은 그렇게 저 혼자 익어가고 형태픞 바꾸어가며 나를 두렵게 만든다,.

어쩌면 처음엔 사소하고 작았을 무언가가 비밀로 봉해져서 세상으로 나가지 못하는 순간 그것은 혼자 자란다.비밀은 여자를 아름답게도 한다지만 (코난에서)  사람을 눌러버리는 무시무시한 힘도 가진다.

 

사람의 기억은 믿을 수가 없다. 누구나 자기에게 유리하게 그리고 편하게 기억을 만들어 지닌다.

의도한 바가 아니다. 그냥  본능적으로 그런 것이다.

같은 상황을 겪은 사람들의 나중 진술이 제각각이라는 건 어디서나 알 수 있다.

그 제각각의 기억들은 내가 상처받지 않고 내가 피해받지 않을 어떤 방어기제로 내 속에 형성되어 간직된다. 그래서 그 기억은 나를 어루어만져주고 따뜻하게 왜곡될 수밖에 없다. 그건 기억을 간직한 사람의 잘못이 아니다. 그래야만 살아갈 수 있다는 절박함이기도 하다.

 

문화평론가 수빈은 신문에 80년대 유년기의 추억을 칼럼으로 개재한다. 어린 시절 여러 가족이 함께 오글거리며 살았던 라일락 하우스의 기억을 연재한다.

단칸방. 연탄 아궁이 공동 화장실 부업  골목길과 구멍가게등 아련한 향수를 일으키는 소재를 통해 추억을 재생산한다. 어렸다는 이유도 있지만 수빈의 추억은 그 시절을 함께 살아왔던 지금의 남자친구 수돌과도 조금씩 어긋난다. 그때의 소재를 더 얻고자 SNS에 그때의 사람을 찾는 광고를 내고 하나 둘씩 그때의 사람들이 모여든다. 하지만 각자가 가진 기억은 제각각이다.

기억은 그렇게 내가 보고 싶은 것 내게 유리한 쪽으로 형성된다. 내가 알 고 싶지 않거나 관심이 없는 것은 정말 하얗게 지워지고 내가 유리한대로 내가 본것조차 각색되어 기억된다.

거기다 누구에게나 감추고 싶은 비밀과 그 기억들이 뒤섞이면서 두렵고 괴이한 냄새를 피워올린다.

책은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일들을 가지고 사람들이 가진 주관적 기억과 비밀을 교차시키며 이야기를 발전시킨다. 어릴적 추억이라는건 아름답게 포장되기 마련이다. 수빈도 처음엔 가벼운 마음으로 그때 그 시절의 추억을 꺼집어 낸것이겠지만 그 때의 일들이 세상에 다시 드러나면서 그리고 그때의 사람들의 기억을 퍼즐처럼 맞추면서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혹은 정말 새로운 사실들이 드러난다. 사람들의 기억들이 하나하나 퍼즐조각처럼 이어지면서 그때 그 장소에서 생긴 일들이 조금씩 윤곽을 드러내고 아름다운 라일락 하우스의 실체는 음습하고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내게 아름다운 기억이 누군가에게도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나는 절대로 되살려야할 그 때 그 시절이 누군가에게는 지우고 지워 절대 세상에 드러나면 안되는 두려운 대상이기도 하다.

철없던 수빈에게 그 집은 즐겁고 좋았던 사람들의 공동공간이었고

수돌에게는 눌러서 절대 다시는 머리를 들지 못하도록 밟아 묻어야 할 악몽같은 곳이었고

또 누군가에게는 한껀 잡아 편하게 살꺼리를 마련할 로또같은 곳이며

누군가에게는 돌이킬 수 없는 악몽이 다시 시작되는 곳이다.

함께 가진 기억조차 이렇게 사람에 따라 제각각이다.

누군가가 말했다. 악은 정말 평범한 얼굴을 가지고 있다고

피가 낭자하고 누군가가 죽어나가는 것만이 악이고 공포가 아니다.

타인은 태연하게 살아가는 일상이 내게는 지옥같고 벗어나고 지워버리고 싶어지는 것이 되는 순간 그것은 악이고 공포다.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태연하게 내 앞에 펼쳐지는 일상이 악몽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건 누구에게 말할 수도 없고 지워버릴 수도 없는 끔찍한 존재다.

덮어버린 악은 비밀의 이름으로 혼자 자라 감당할 수 없는 괴물이 되고

타인의 아름다운 추억마저 증오하고 두려워하게 만든다.

그래서 어쩌면 우리 일상속에 태연하게 자리잡은.. 그 까짓거... 하는 사소함이 더 무섭다.

 

라일락이 붉게 피던 그 집이

누군가에겐 추억이고 누군가에게는 지우고 싶은 악몽이었다.

그 집은  집일 뿐이지만 그 속의 사람들은 복잡하고 미묘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