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앞의 생 (특별판)
에밀 아자르 지음, 용경식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5월
평점 :
품절


아무도 기억하지 않은 사람들이 모여사는 동네였다.

아랍인 아프리카인 유태인등 어느 한쪽도 프랑스 부모를 가지지 않은 사람들이 모여산다.

창녀와 그녀들의 아이들 이주민과 가난한 노동자들이 서로 어깨를 부딪치며 살고 있다

그 동네 한 구석 엘리베이터도 없는 건물 7층에 로자 아줌마와 모모가 살고 있었다,

유태인 아줌마와 아랍인 소년은 가족이다.

아니 남남이다. 그러나 가족이다.

 

내가 그렇게 그의 이름을 부르고 싶은 것은 그를 사랑하고 그의 이름을 아는 사람이 아직 있다는 것과 그에게 그런 이름이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주기 위해서이다,

 

그들이 서로 어깨를 부비고 서로 욕을 하고 미워하면서도 함께 살고 있는 것은 그렇게 자기를 바라봐주고 이름을 불러주고 손을 잡아주는 그 사람의 존재때문이다. 그가 있어서 내가 있다

그들은 그렇게 아무렇지 않은 척 서로에게 기대어 살아간다,

어떤 즐거움도 희망도 남아 있지 않은 삶을 살아간다,

달걀을 훔쳐서 따귀를 맞는 행위로 존재를 증명받고 싶은 모모나 가장 아름다운 추억이 창녀노릇을 하며 호텔을 드나들고 남자에게 돈을 모조리 털린 일로 기억하는 로자아줌마의 삶이 단순하지않다는 건 쉽게 알 수 있다.

당신은 아마 도데체 왜 그런 삶을 살아가는거냐고 부끄럽지 않으냐고 묻고 싶겠지만

적어도 자기 앞에 놓인 삶을 묵묵히 살아내는 사람들에게는 부끄러움이 있을 이유가 없다,

아무 보잘 것없는 사람들끼리 사랑해야하고 살아내야하는 삶

그것으로 가치있다고 믿으려는 사람들에게 더 이상 묻고 또 묻지는 말아야 한다,

 

순간 나는 울기 시작했다. 나 역시 아무일도 없으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공공연하게 그런 말을 듣기는 처음이었다.    p 34

 

아줌마 혼자 배를 곪아가며 빠듯하게 지낸다해도 하루 십오프랑을 필요했다. 그녀에게 덜 먹어려면 살을 빼는 수 밖에 없다고 아주 솔직하게 말했던 기억이 난다. 그렇지만 세상에 혼자 뿐인 노친네에게 그건 너무 가혹한 일이었다. 아줌마에겐 아무도 없는 만큼 자기 살이라도 붘어 있어야 했다. 주변에 아무도 사랑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때 사람들은 뚱보가 된다.

 

아줌마도 뚱뚱한 몸매와 하루에도 여러번 터져나오는 욕지거리로 자기의 존재를 드러낸다. 그리고 그런 자기를 누군가 봐주고 사랑해주길  바란다,

모모역시 그렇다  아닌 척해도 사랑받고 관심받고 싶으나 방법을 알지 못할 뿐이다,

관심을 받은 경험이 꾸중이나 혼난 기억밖에 없는 아이는 매질이나 욕지꺼리조차 관심으로 생각한다. 암사자를 상상하고 땨귀를 기다리는 일들은 모모가 간절하게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잘 보여준다.

 

내가 무서울 때 숨는 곳이야

뭐가 무서운데요?

무서워하는데에 꼭 이유가 있어야 하는 건 아니란다.

나는 그 말을 결코 잊은 적이 없다. 왜냐하면  내가 지금까지 들어 본 말 중에서 가장 진실된 말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두렵고 무섭다. 가난이 두렵고  질병이 두렵고 잊혀지는 것이 두렵다.

아무도 나를 알지 못한다는 것이 두렵고 곧 죽는다는 것이 두렵고 앞으로 살아가야한다는 것도  두렵다,.

두려움에 떠는 로자 아줌마를 모모는 끝까지 지켜준다,

지하 은신처에서 로자아줌마에게 향수를 뿌리고 화장을 시켜주며 지켜낸다, 냄새로 사람들이 참지못하도 찾아낼때까지  지켜준다,

미운정이 쌓이고 그리움이 쌓이고 사랑이 된다.

그 사랑은 허술하지만 강하다 살아가는 힘이기도 하다.

 

모모는 성장소설이기도 하다. 모모의 성장이 아닌 읽는 이의 성장소설이다,

어느 한 시절이 지날때는 모른다, 그러나 한 참 지내 그 시절을 돌이켜 보면  그 일로 인해 나는 다시 그 이전으로 갈 수 없음을 아는 순간 내가 성장했음을 알게 된다. 나는 다시 예전으로 갈 수 없고 그 순간이 이제 아프지도 않고 그리워질 때 우리는 나이를 먹었다는 걸 알게 된다. 더 이상 천진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자유를 가지지 못하고 삶의 우울질을 앓게 되고 알게 되고  세상의 모든 문제에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되면 우리는 어른이 된다.

모모도 그렇게  14살에 어른이 되었다,

모모를 읽으며 꾸역꾸역 살아내야하는 아이의 삶을 읽으며 나도 조금 어른이 되었다,

원치 않는 삶이지만 살아내야 하지 않겠냐고 나보다 더 어른스러운 표정을 한 모모가 나를 바라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꽃 사슬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59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15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소감1. 미나토 가나에는 여러시점에서 보여지는 사건을 서술하는데는 일가견이 있다.

       <고백>부터 이어지는 그녀의 작품은 거의가 여러 사람의 시선에서 사건을 보고 시간이

      해체되고 다시 연결된다.

     그녀가 시간순대로 이어진 사건을 바라보는 이야기를 쓴다면?

    성급한 결론일지모르나 잘 쓰지 못할 거 같다,

소감2 늘 드라마화 되는 것은 글이 영상적이어서일까

        아니면 그녀가 드라마부터 시작한 작가라서 일까

        혹은 늘 드라마를 염두에 두고 써서일까?

       꽤 시각적이고 드라마같기는 하다

소감3  이번엔 자극적이지 않다. 잔잔하고 담백하기도 하다

         그럼에도  중간중간 어긋나고 삐걱거린다.

         여인 삼대의 이야기 그 사이에 이어진 꽃사슬이라고 이름지어지는 운명

         한편의 일본드라마같다.

 

몰입도 있게 보고 훅~ 읽었지만 밋밋하긴 하다.

과정도 결론도 큰 흐름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래서 뭐 결국은 잘될 놈은 뒤로 자빠져도 잘 되고 못될 놈은 꽃밭에 구르다가도 돌부리에 머리가 깨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간 훅 하고 눈물이 터질 뻔 했다.

분명히 터질 뻔 했다.

갑자기 돌아가신 아버지가 떠오르고 내 엄마가 떠오르고 그리고 내가 어떤 엄마가 되어야 하는지가 마구마구 뒤섞이면서 눈물이 나려고 했다.

이럴만한 건 아닌데

미유키의 헌신적이고 절절한 사랑도

사쓰키의 쓸쓸하고 단단한 태도도

리카의  밝고 단순하지만 단호한 태도도 다 마음에 든다.

읽으면서 나는  미유키는 힘들고 사쓰키같은 엄마가 되고 싶고 내 딸도 사쓰키같은 딸이면 좋겠다고 생각을 해본다,

지고지순한 사랑이나 밝고 당돌한 태도보다는 쓸쓸하지만 단단하고 곧은 마음이 마음에 더 든다고 할까 내 이상향이라고 할까

내가 어떤 자녀를 갖고 싶은가는 내가 어떤 엄마이며 어떤 모습을 보여야 하는가에 달린거라는

진부한 충고가 역시 진리라는걸 다시 생각케 한다,

어떤 인연의 연결고리나  <고백>을 뛰어넘고 싶다는 작가의 바램이나 다양한 꽃들 보다

나는 엄마와 딸의 관계가 더 관심이 간다

나는 어떤 엄마를 가졌는가

내 딸들은 어떤 엄마를 가질 것인가

결국 나를 보게 된다,

드라마에서 소설에서 내가 부러워하는 엄마의 유형은 그렇다,

강한 엄마

언제나 씩식하고 밝은 엄마

설령 그것이 자기에게만 향하는 이기심이라 하더라도  엄마가 강하고 단단해서 적어도 자식이 나중에 걱정하고 죄스러워하지 않을 힘을 가진 엄마였다,

돈이 많고 권력을 가진 엄마가 아니라 스스로 단단하게 서 있는 엄마는 나중에 부담스럽지 않고 언제나 지랄을 떨고 가서 짜증을 내도 괜찮다는 믿음을 주는 엄마다

나는 그런 엄마가 되고 싶었다,

그리고 내 엄마를 생각하면  단단하고 강하다고 믿었던 엄마가 나중에 작고 연약하고 쉽게 부서러질 수 있다는 건 무엇보다 큰 배신감이었다.

차라리 처음부터 약하고 보잘것 없는 없던 엄마라면 기대치라도 낮았을 텐데 강하다고 믿었고 그래서 조금 무심해도 괜찮다고 믿은 엄마가 무너지는 건  충격이었다.

그래서 누구보다 사쓰키에게 마음이 갔었나 보다.

젊은 사쓰키도 단단하지만 나중에 리카의 기억에 간간히 보여지는 엄마 사쓰키도 무심한듯 하면서 강한 사람이었다. 리카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연하고 쓰러질 듯한  마유키의 강해지는 모습을 보며 단단한 엄마의 지지를 받은 사쓰키는 그 힘을 다시 리카에게 전해준다.

 

사실 세대를 통해 이어지는 인연이라든가  권선징악이라든가 꽃은 별 관심이 없었다. 다소 막장드라마적인 요소도 심하고 억지도 있었다. 꽃 부분은 좋았지만 내가 워낙 식물에 문외한이라 아~ 좋구나 이상은 아니었으니... 그저 딸에서 딸로 전수되는 그 새대 전수만 눈에 들어왔다,

내 어머니를 생각하며 내 딸들을 생각하며 나를 생각할 뿐이다,

 

책읽고 쓰는 리뷰가 기승전내푸념으로 끝나는 건 정말 싫지만

그렇다는 거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질리언이 말했다.

" 내가 원하는 건 둘 다야, 난 다른 시간의 다른 사람을 원해............나는 가운데 끼여서 매일    

  매일 짓눌리고 있어 상처 입을 사람은 바로 나야"

스튜어트가 말했다.

" 남편은 항상 제일 먼저 의심하지만 제일 늦게 안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무슨 일이 일어나든 상처 입을 사람은 바로 나다"

올리버도 말했다.

" 왜 항상 내가 비난을 받아야 하지? 애정 파괴자 올리 결혼 파괴자 올리...............

  나는 빌어먹을 창문에 머리를 박아대는 빌어먹을 나방이다. 쳐 쳐 세게 쳐  상처를 입을

  사람은 바로 나다"

 

스튜어트와 올리버는 오랜 친구다. 고지식하고 답답하고 매력없는 스튜어트와 자유분방하고 매력적이지만  무책임하기도한 올리버 둘은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라고 그리고 자기가 상대에 비해 조금은 낫지 않을까하는 속내를 숨기거나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사이

어느날 스튜어트가 질리언을 만나 결혼하기로 하자 올리버는 다소놀란다, 어찌하여 스튜어트에게 이런 행운이.... 그리고 결혼식 날 올리버는 질리언에게 반해버리고 이후 노골적으로 때때로는 은근하게 구애를 하고 우여곡절을 지나고 마침내 질리언은 스튜어트와 헤어시지고 올리버와 다시 결혼한다.. 그리고...............

 

세사람과 간혹 등장하는 질리언의 엄마 그리고 몇몇 주변 인물이 돌아가며 자기 입장을 이야기하며 이야기는 진행된다,.세 사람의 발언이 번갈아 나오며 이야기는 진행되는데 같은 상황이 제각각의 입장에 따라 달리 보인다. 스튜어트는 감정에 둔하고 그저 고지식하게 사실을 나열할 뿐이고 올리버는 화려한 언변으로 감정과잉이고 질리언는 자기의 입장만 이야기한다, 누구나 자기의 틀 안에서 상황을 보고 사건을 파악하고 이야기 할 뿐이다,

이야기를 가만  보자니 서로는 서로에게 말하지 않는다. 아니 말했다고 착각하고 있다. 상대가 내가 아는 것을 알고 내가 생각하는 것을 이해하고 있다고 믿어버리거나 혹은 상대는 정말 나를 모른다고 오해하거나 할 뿐이다, 독자? 혹은 누군가에게 자기를 하소연하고 방어할 시간은 내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전혀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책을 읽다보면 서로 이야기를 하고 논쟁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해야할 말은 하지 않으면서 서로서로 자기 말 좀 들어달라고 한다,

그래도 이야기는 진행되고 사건은 일어나서 마무리가 되고 끝나지만 왠지 개운하지 않다.

결국은 귀먹어리개가 차에 치여 죽어버린 것처럼 들리지 않고 듣지 않은 사람들의 비극이 자꾸 걱정될 뿐이다,

 

사실 누구나 그렇다.

내 입장에서 생각할 수 밖에 없고 내 생각과 감정이 우선시 될 수 밖에 없다,

인간은 본래 이기적이다,. 살아가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말하지 않았음에도 서로서로 대화를 하고 이해를 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 서로가 나는 충분히 표현했고 정당하며 때떄로 가장 아픈 건 나라고 여기고 자기의 상처만 들여다 보고 동동거린다,

나도 그렇다.

남편과 이야기하다가 혹은 아이들과 이야기 하다가 놀란다,

아니 왜이렇게 말귀를 못알아듣지? 같은 한국말을 하는데 이렇게 이해가 안되나?

그저 상대방을 나무라기에 급급하다,

사람은 같은 언어를 쓰면서도 제각각 자기방식의 표현을 한다,

급한 성격의 나는 모든 것을 생략하고 "이거" "그거" 하면 딱딱 알아듣기를 바란다,

성격이 느긋한 아이는 천천히 모든 것을 이야기하다가 정작 해야할 말을 빠뜨리고 이야기를 마치기도 한다. 남편은 자기가 듣고 싶은대로 듣고 받아들인다고 나는 믿는다.

그러니 같은 언어를 쓰면서 우리는 제각각 이야기를 하면서도 제발 내 말을 들어달라고  아우성칠 뿐이다, 내가 이렇게 말하는데 어떻게 안 들을 수가 있지?

서로를 나무란다,

초등 국어가 "듣. 말.쓰"

그러니까 듣고 말하고 쓰기 순서이다,

일단 들어라,. 그리고 말해라... 그리고 난 후 써라

여기서 우리는 듣기도 말하기도 제대로 안된 셈이다,

서로 자기 말을 하며 상대방의 언어를 내 언어로 통역해서 오역한다,

내 말이 오역되고 오해되는 건 전혀 예상할 수없다,

세로운 바벨탑이 여기저기 세워진다,

다시 우리는 듣기를 배우고 말하기를 배우고 나아가 공감과 경청이라는 새로운 풍조를 배워야 한다, 어렵다,

 

키득키득이며 세사람의  막장 드라마같은 이야기를 따라가다가 괜히 뜨끔해진다,

질리언에 스튜어트에 그리고 올리버에 나와 내가 아는 사람들의 이름으로 바꾸어도 상관없다,

뭐 내가 질리언처럼 매력적이지 않아 두 남자의 구애를 받은 상황은 안 생기겠지만 두 타인 사이에서 오해받고 이해시키지 못해 동동거리며 결국 나 자신의 연민에 빠지드는 일은 종종 있어왔으니까,...

그래서 몹시 외로웠었나보다.

 

 

즐리언 반스가 정말 매력적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평화 2015-05-07 0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어보고 싶어지네요
얼마전에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를 재밌게 읽었는데,
줄리언 반스 매력적인 작가인 것 같아요 (^o^)b

푸른희망 2015-05-07 16:43   좋아요 1 | URL
저도 ˝예감은~˝을 읽고 줄리언 반스의 매력에 빠졌지요. 이 책은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거예요.
 

 

 

 

 

 

 

 

 

 

왕따에 대한 책이 일본만큼 많이 나온 나라는 없는 듯하다,

우리에게 왕따 문화가 있기전 이지매가 있었고 학원폭력이 있고 학교 붕괴가 있었고

유감스럽게도 그 현상은 우리에게도 조금씩 번지고 있다,

왕따에 대해 많은 책들이 있다,

 주로 피해자의 입장에서 혹은 가해자의 입장에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이 책은 피해자도 가해자도 아닌 옆에서 바라보는 이의 입장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옆에서 보는 사람

아주 객관적으로 그렇게 말할 수 있지만 다시 말하면

방관자

혹은 아무도 모르게 떨고 있는 제  3의 피해자

그렇다,

왕따를 바라보는 아이들의 마음은 어떨까?

아이와 함께 왕따에 관한 이야기를 읽으면서 늘 강조했었다,

왕따에서 가장 나쁜 건 왕따를 주동하는 여왕벌도 아니고 거기 따르는 무리들도 아니고 그걸 보고도 모른 척하는 주위사람이라고 했다, 왕따를 하는 아이는 적어도 누가봐도 나쁜 아이라는 꼬리표를 붙이게 된다(요즘은 아주 영악하고 교묘해서 이런 구분도 의미가 없긴 하다) 그러나 옆에서 바라보기만 하는 방관자는 딱 꼬집어 잘못했다고 할 수 없지만 그래서 더 아프고 힘들게 하는 존재이다, 나의 고통을 바라보고 알고 있는 사람 그럼에도 불구하고 침묵하고 있는 사람 

미워하려니 내가 너무 외롭고 다가가기엔 어딘가 두렵고 낯선 눈길들

그러니 절대 누군가 왕따를 당한다고 느낀다면 방관자는 되지 말라고 정말 대책없는 충고를 퍼부었다.

그럼 어떤 행동을 해야하나? 

이 책에서  주인공은 돈짱을 괴롭히는 야라가세 패거리가 있다,

그들은 정말 사소하고 의미없는 일로 돈짱을 괴롭히기 시작했고 돈짱이 어떤 저항도 없다는 이유로 아주 편하게 놀리고 구타하고 마음대로 장난감처럼 취급한다,

그걸 보는 주인공은 마음이 괴롭다,

그저 당하기만 하는 돈짱이 너무 이해가 안되면서 입밖으로 내뱉지도 못한 응원을 보내고 화를 내고 소리없는 고함을 질러댄다, 그 뿐이다,

행여 야라가세 일행과 눈이라도 마주칠까봐 전전긍긍하는게 현실이다,

내가 아니니까 다행이지만 누군가가 당하는 걸 보는 것도 몹시 괴롭다, 그걸 알면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내가 더 힘들다

어쩌면 말이다,

왕따를 옆에서 방관하는 아이들은 가정폭력을 지켜보는 아이들이나 권력이나 힘의 폭력을 떨면서 지켜봐야 하는 사람들의 심정과 같은게 아닐까

나서기엔 내가 너무 작고 나약하고 섣불리 나서다가는 오히려 내가 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눈을 감아도 현실이 눈꺼풀안에서 떨어져 나가지 않은 고통 그래서 더 꼬옥 눈을 감고 이불을 뒤집어 쓰고 내가 무얼 잘못할까 자꾸 움츠려들게 되는 그런 기분과 같지 않을까

주인공도 그렇다

돈짱이 당하는 걸 보면서 화도 나고 돈짱이 너무 미련해보이지만 애써 모른 척 한다,

나만 그런건 아니니까

그러다 본인에게 일이 닥치는 순간  돈짱에게 자기가 한 모든 행동들을 고스란히 경험하면서 어쩔 줄을 몰라한다. 돈짱이 도움으로 야라가세의 폭력에서 떨어지지만 그 이후도 변한게 없다,

그저 돈짱을 철저하게 모른 척 하기로 한다,

그리고 훔쳐보게 되는 돈짱의 절규 그리고 학예회에서 벌어지는 돈짱의 저항

그러나 그뿐이다,

 

왕따에는 이유가 있죠

그 애가 우리애를 부추긴 겁니다,

애들끼리 장난 아닐까요?

그런데 왜 도시바(돈짱)은 화를 내지 않았습니까? 싫다는 말을 확실히 하지 않은 것도 나쁘다고 생각합니다,

 

교사는 눈을 감고 싶고 학교는 그저 무탈하게 넘어가길 바라고 가해자는 버틸 때까지 버티고 싶고 피해자 가족은 그냥 피하고 싶고 주변인은 그저 내일이 아닐 뿐이고

그러게 덮어지고 넘어가면 모두가 안도할 뿐이다,

 

현실에서는 포장마타 아저씨 같은 분들을 찾을 수 없다,  행동하는 어른을 보기 힘들다,

아저씨의 따끈한 어묵국물에도 내 마음을 녹이기는 힘들다,

그런 어느날 까마귀에게 당하기만 하던 도둑고양이가 까마귀에게 덤비고 당당하게 구는 걸 목격한다, 예전 까마귀에게 당해 거의 죽음에 이른 고양이 돈짱을 미치게 만들었던 분노하게 만들었던 그 고양이는 이제 당당하다

"사람이 어려움에 처해 있는 걸 보고 모르는 척 하면 안 되지

 그러면 기분이 영 개운치 않아.

 하지만 그 대신 이 모양이 됬잖아요

 그렇다고 해도 역시 모른 척 해서는 안되는 거야

 마음 속에 간직한 등불이 꺼져 버리면 어떻게 되겠니?

 

(부끄럽고 부끄럽다)

 

마지막 졸업을 앞두고 주인공은 용기를 낸다,

내 손가락끝의 가시처럼 아프고 찝찝한 이기분으로 초등학교를 졸업할 수는 없다,

졸업식 예행연습을 하던 날

의자위로 올라선 주인공은 떨리는 목소리로 이야기를 한다

 

잠깐 제... 제  얘기 좀 들어주세요

 

저는 용기가 없어서....... 친구가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데도 모르는 척 하고,,,,,,,,,

친구는 괴롭힘을 당하다가 결국 전학 갈 수밖에 없었는데

그건 정말 말도 안 되는데

이대로 모르는 척하면서 졸업을 하게 되는게 ...........

이런 기분을 가지고 중학생이 되는 게 싫어서............. 그래서

 

결국 제데로 하지도 못하고 소란속에 묻힌다, 마지막까지 꼴불견. 생각할수록 창피.

그러나 후련하다

그리고 야라가세의 눈을 마주한다.

이제는 그 아이를 마주 볼 수 있을 듯하다, 무언가 말하려던 야라가세는 다른 친구들이 다가오제 자기가 먼저 피해버린다. 예전 포장마차 아저씨가 말하던 중학생에게 맞던 아이가 야라가세였을까 그도 아픈 곳이 있었을까 그랬다면 돈짱에게는 왜 그런건데...

생각이 복잡해지지만 한편 후련하다,

제대로 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하긴 했으니까

 

하지마. 싫어

그렇게 하면 아프잖아.

내가 싫어.

니가 그렇게 하는게 나는 싫어

하지마 그건 옳은 일이 아니야

누가 너한테 이런 짓을 하면 기분이 어떻겠니?

만약 그가 나라면 어떨까?

나처럼 아무도 보지 못한 척 그냥 지나치고 외면하면 기분이 어떨까?

 

끊임없이 나에게 물어보아야 한다.

나라면 어떻겠니?

그 의 심정은 어떨까?

내가 경험한 게 아니고  하고 싶은게 아니라고 모른 척 하는 건 비겁하다.

공감이라는 건 내가 경험하지 않고 모르는 일이라 하더라고 그 사람을 이해하고 인정하려는 마음이다. 그가 힘들구나 아프구나 애쓰는구나를 알아주고 행동하는 거라고 했다,

그게 쉽지는 않지만 그래도 자꾸 되새김질을 하고 나에게 일러주어야 한다.

아니라고 하라고 싫다고 하라고 그러지 말라고 하라고...

이제 이 쉬운 말 한마디 행동하나는 용기가 되었다.

그냥 마땅한 일이 아닌 용기를 내어야 하는 일..

그래도 자꾸 내게 질문을 하고 의문을 품어가며 용기를 내어보자

이제 더이상 돈짱처럼 전학가버리는 아이가 있어서는 안될 일이다,

그리고 주인공처럼 내가 하고 싶은 말에 큰 용기를 필요로 해야하는 힘든 일이 아니기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기억의 빈자리 낮은산 키큰나무 8
사라 윅스 지음, 김선영 옮김 / 낮은산 / 2009년 9월
평점 :
절판


 

제이미에게는 불행한 일이 연달아 일어났다,

아끼던 고양이 미스터가 죽었고 아빠는 바람이 나서 가출했고 이모는 사고로 기억상실에 걸렸다

행복했던 집을 떠나 새로운 도시에서 컨테이너 집에서 이모를 돌보며 살기 시작했다.

낯선 환경과 더 바빠진 엄마 좁아진 집 없어진 내 방 그리고 어린 아이가 되어 늘 똑같이 반복하는 이모... 제이미는 그게 자신에게 일어난 불행의 전부라고 믿었다,

그런데........

잊고 싶은 기억이 생겨버렸다,

 

이야기는 아이러니하다

사고로 머리를 다친 이모는 계속 기억을 되찾기위해 노력한다,

사고 이전의 기억을 뚜렷한데  그 이후의 기억은 30분을 넘기지 못하는 이모를 위해 기억의 실마리를 찾가아며 이모의 기억을 살리려고 한다

반대로 제이미는 기억을 잊어버리고 싶다,

영원히 누구도 모르고 나도 모르게 그냥 그렇게 사라져버리기를 바래고 또 바랬다,

버터 스카치 사탕의 맛이랑 얼굴이 눌리는 촉감같은 건 영원히 지구에서 없어지기를...

강한 충격이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사람은 방어기제가 작동한다,

방어기제는 스스로 살기위해 생기는 것이다,

내가 살기위해서 모른 척하고 아닌 척하고 남탓을 하고 그리고 잊어버린다,

해리는 가장 어두운 기억이고 가장 강한 방어기제이다,

우리의 제이미는 그 방어기제를 간절히 바란다,그러나 잊고싶은 기억일수록 너무 또릿하게 각인되어버렸다,

제이미는 학교에서도 무시받고 없는 듯한 존재이고 엄마앞에서도 아무것도 말 할 수 없다,

아빠와 헤어지고 이사를 한 후 엄마는 공장에 다니느라 바쁘고 이모를 돌보느라 바쁘고 그리고 이젠 오븐에 구운 소고기 요리 돼지 갈비 샐러드 쿠키와 케잌 대신 간단한 마카로니 치즈와 제로콜라에 의지할 뿐이다,.

학교에 찾아온 아서씨의 수업  그리고 짧은 아서씨와의 대화

이웃에 사는 가까이 하고 싶지 않은 괴상한 소녀 오드리

꼭 이 두사람이 싫어서라기 보다 제이미는 누군가와 가까이 하면서 자기의 기억 혹은 비밀의 봉인이 해제될까 두려웠던 거였다,

따뜻한 말한마디 무심한 친구와의 농담속에서 진심이 튀어나오고 그 봉인된 기억이 튀어나올까봐 두렵다, 그래서 그들이 더 싫다, 오히려 무시하고 조롱하는 선생님이 더 편하다.

기억을 봉인을 확실히 하고 싶은 마음에 오드리의 최면술에 응하지만 자기가 말해버렸을까봐 더욱 두렵다,

절대 누구도 알아서는 안돼 절대,,,,

 

결국 잊어버리고 싶은 기억과 오래 지속되지 못하는 기억은 서로에게 위로가 된다,

네 잘못이 아니야, 니가 잘못한게 아니야

그 한마디에 제이미는 그냥 무너지고 비밀은 사라졌다,

말해버리면 누군가가 알아버린 비밀은 더 이상 힘이 없다,

 

마지막의 헤피앤딩이 너무 비현실적이라는 이도 있다,

그러니 한 아이가  아닌척 하며 견뎌내고 버티는 이야기에 이런 동화같고 환상적인 앤딩이라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너무 잘 견디는 것처럼 보이고 그렇게 보여야 한다고 믿는 아이에게 이정도의 희망은 괜찮지 않을까 적어도 책에서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