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스기무리가 좋았던 거같다,

사건은 어찌되던 상관없고 피칠갑을 하는 괴기한 사건이건 복잡하게 얽힌 사회파 사건이건 사람들의 본성이 드러나는 악마적인거든 상관없이 단지 스기무라가 나온다는 이유로 이 백과사전만큼 무거운 책을 골랐다,

이 책은 절대 드러누워 들고 볼 수 없다,

다만 너무 두껍게 제본되어 나중에 중간에 페이지가 쉽게 떨어지지 않을까 걱정이 되기는 하다,

그래도 두권으로 분철되지 않았음에 출판사에 감사하다,

조금씩 야금야금 읽어야지 하면서도 결국 못참고 단숨에 읽어버렸다,

그래도 일상생활을 하면서 읽어가서 이틀이나 걸렸다,

 

데체 사건이라는게 뭐야?

버스 인질극은 이미 끝이 났는데 무슨 일이 왜 발생하지 않지?

단순한 나는 누군가 죽거나 피바다가 되어야 사건이라고 생각하는가 보다,

초반에 나온 모리 각하가 괜히 나온게 아닐텐데 노데와 연관을 시켜보면 이사람도 뭔가 구린게 아닌가 하는 헛다리도 열심히 짚으면서  인질들 하나하나와 처음엔 미워할 이유가 없었지만 책을 덮고 나면 무지하게 미워지는 밋짱 할아버지를 휙휙지난다,

전편에서 계속 나왔던 야마다 콘체른가의 사람들

위악을 떨고 냉소로 무장한 편집장이랑 무슨 흑기사처럼 등장하는 야마모토(맞나) 의 인간적인 면을 보는게 쏠쏠한 즐거움이다,

 

이제 미미여사의 추리물에서 극적 긴박함따위가 문제는 아니다,

사람이다,

등장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 사람들을 바라보는 여사의 시각이 너무 좋다,

하나하나 상담하고 이해하고 안아주는 여사가 좋아서 헬레레 하며 책을 읽는다,

미미여사에게는 크리스티 할머니의 느낌이 많이 난다,

그래그래 힘들었지... 그마음 알아... 내가 다 알아.. 세상이 몰라도 니가 알고 내가 알지

하는 공감과 배려가 들어있다,

그래서 이건 너무 밋밋해 실망이야 하면서도 자꾸자꾸 찾아보고 읽게 되는 거다,

여름밤 공포를 잠 못드는 건 습기와  열만으로도 충분하므로 이렇게 따뜻하고 편안하게 부채질 해주는 여사의 이야기가 더 좋다,

 스기무라가... 이제 변했다. 그의 변화가 왠지 슬프고 그러면서도 기대된다.,

 

거짓말이 사람을 망가뜨리는 까닭은 늦든 이르든 언젠가는 끝나기 때문이다, 거짓은 영원하지 않다. 사람은 그렇게 강해질 수 없다. 가능하면 올바르게 살고 싶다. 착하게 살고 싶다고 생각하는 인간이라면 아무리 어쩔 수 없는 이유로 한 거짓말이라도 그 무거운 짐을 견디 수 없게 되어 언젠가는 진실을 말하게 된다.

그렇다면 자신의 거짓말을 거짓말이라고 느끼지 않으며 거짓말의 무거운 짐을 지지 않는 사람쪽이 차라리 행복하지 않을까?

 

(중략)

 

이무라 에리코는 끝까지 거짓말을 할 수도 있었다. 배 속의 아이는 아무 것도 모른다. 이 아이에게 거짓말을 할 수 없다는 생각은 그녀만의 것이다. 혹시 그 아이가 어른이 되면 어머니가 끝까지 거짓말을 했으면 좋았을 걸 그랬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왜 끝까지 거짓말을 해서 자기를 지켜주지 않았느냐고

진실은  결코 아름답지 않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진실이 아니다. 끝나지 않는 거짓 쪽이다.

 

                      p 512-513

 

 

 

나도 저 벚나무처럼 고독하고 보잘 것없다. 도시에 사는 사람이 리모진 버슬르 마련해서 구경하러 올 정도로 멋진 산벚나무 숲에서 튕겨 나왔고 거기로 들어갈 방법은 없었다. 뿌리부터가 다르니까.

계속 숨어 있을 수는 없다. 모임장소로 돌아가지 않으며 나호코가 걱정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해도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그렇다. 그리고 나는 주차장 구석에 세워져 있는 빨간 자전거를 알아차린 것이다. 레스토랑 종업원의 자전거일 것이다. 손질이 잘 되어 있다. 잘 달릴 것 같다고 생각했다.

저걸 타고 달리고 싶다고 생각했다.

몰래 숨거나 하기보다는 저 자전거를 타고 이런 장소에서 얼른 떠나는 것이다. 나는 여기에 있을 사람이 아니다. 돌아보지 않고 바람처럼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그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했다.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빨간 자전거의 기억은 벚꽂놀이의 기억이었다. 그날의 내 심경을 비춘 풍경이었다,

그 기억이 왜 다섯 달이나 후에 일어난 버스 납치 사건 때의 기억과 혼동된 것일까. 양쪽 다 버스 창문을 통해 본 광경이었기 때문에? 그런 단순한 것이 아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장인의 질문을 받고 환기된 기억인데 내 마음은 왜 그런 장난을 쳤을까? 무엇이 두 가지를 연결한 것일까?

무력감이다 폐쇄감이다. 나는 붙잡혀 있다. 자유를 빼앗기고 갇혀 있다.

누군가 나를 좀 놓아줘. 나는 밖으로 나가고 싶더.이런 곳에 있기는 싫어,

녹슨 난간에 매달려 밤바람을 맞으면서 나는 우두커니 서 있었다.

 

                                       p 716-717

 

 

" 그 후로 나 결심했어. 마음속으로 결심했어. 나도 어른이 되자 여차할 때에는 당신이 의지할 수 있는 당신을 지탱해 줄 수 있는 아내가 되자고..."

하지만 하며 고개를 숙였다,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는 거야. 어떻게 하면 어른이 될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강해질 수 있는지 전혀 알 수거 없어"

 

(중략)

 

"..하지만 나는 , 당신과 있어서 행복해 함께 행복해져 왔어"

아내는 나를 바라보고 있다. 눈빛이 흔들린다. 그러다가 내가 생각해보지도 않은 말을 했다.

"정말 행복할까?"
당신은 정말로 행복할까?

"모모코가 유치원에 올라가고 시험을 치고 학교에 가게 되어 나도 조금은 사회와 관계가 생겼어. 다양한 가정의 모습을 엿볼 수 있게 되었지. "

그래서 생각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내 가정은 내가 당신과 쌓아 온 가정은 정말로 가정일까 그냥 나한테 편안할 뿐인 고치 같은 것에 지나지 않은 게 아닐까."

"현안한 곷가 왜 안돼?"

아내는 즉시 되물었다.

"당신한테는 편안해?"
우리는 마주 보며 침묵했다.

"나한테는 그렇게 생각되지 않아"

왜냐하면 당신이 참고 있으니까 라고 말했다,

"나를 위해 많이 참고 있지"

"어떤 부부나 그래"

"그렇지 맞아 하지만 나는 참고 있지 않아. 내 몫도 당신이 참아줬으니까"

 

 

어쩌면 이 책은 많고 많은 사람이 등장하는, 사회적인 문제를 제가하는 사건들로 포장되어 있지만 결국은 스기무라의 성장통에 관한 것이다, 더불어 나호코의 성장통이다,

나호코는 스스로가 어른이 아니라고 여겼지만 어느 순간 대나무처럼 훅 자라버렸다,

그리고 스기무라는 나호코가 자라고 있다는 것  전혀 달라지지 않았지만 속으로 여물어가고 있다는 것 그리고 어느 순간 저 위로 솟아올라 자랄 거라는 걸 잊고 있었다,

그리고 사건이 끝나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호코는 그때 내가 알던 나호코가 아니었다

그리고 알았다,

나역시 조금도 달라지지 않고 그저 참고 있는 것 견디고 있는 것이 어른의 역할이라고만 생각했구나...

너무 다정하고 다정해서 점점 멀어지는 사람... 결국 그 여자의 아버지의 미니어처가 되어버린 사람 그게 스기무라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도망가고 싶다는 마음을 억누르고 있다가 빨간 자전거를 엉뚱한 방향에서 튀어나와 버리고

모든 거짓말이 사실 가장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걸 나중에 알게된다,

아름답다는 것 그것은 간혹 질식하게도 만든다는 것 그것이 거짓으로 만들어졌을 경우,....

 

전작들을 보며 통속적인 나도 스기무라를 부러워랬다, 운이 억세게 좋은 사람

사랑하는 여자가 재벌의 외동딸이라니... 게다가 재벌의 암투에는 끼어들지 않아도 되고 편안하게 자기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소박하게 살 보장이  된 사람...

무지 부러웠더랬다. 아. 남자  신데렐라구나,....

 

그런데 점점 사건을 풀어나가면서 스기무라는 자신을 찾아간다,

어디에도 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사건에 집중하는 순간 그는 가장 빛나고  행복하다,

남의 불행한 사건을 파해치면서 행복하다고 느낀다는 건 모순이지만 사건에 몰두하고 가족을 잠시 잊고 자기의 직책을 잊고 있는 스기무라는 그 순간이 가장 스기무라답다,

그런 걸 가장 가까운 곳에서 스기무라만 바라보는 나호코가 모를 리 없고 스스로에게 자괴감이 들 수밖에 없다,

가족은 꼭 그렇지 않지만 말하지 않아도 그의 모습과 태도등 비언어적인 모습에서 본보습을 찾을 수 있고 진심이 담겨 있다,

스기무라가 모르는 사이에 그는 몸으로 자유를 누리고 행복했고 그리고 가족을 잊었다,

의식으로는 말로는 가족이 가장 우선이지만 그의 행동과 비언어적 모든 의사소통은 자유를 원했을것이다,

그리고 스기무라보다 나호코가 그걸 먼저 알아차리고 스기무라가 눌러놓은 욕구와 감정을 읽어버렸다. 너무 잘 안다는 건 가끔 슬픈 일이다,

 

미미여사는 단숨에 스기무라는 잘라낸다,

꺽꽂이 하는 것처럼 콘체른에서 잘라내어 혼자 뿌리 내리고 자생하도록 이 사건에 얽혀넣었다,

자유를 생각하고 거짓과 진실의 본 모습에 대해 생각하면서 그래도 무게를 더하고 아픈 진실로 다가가게 한다,

그리고 우리 스기무라는  자유롭게 사건을 쫒아 다닐 것이고

언젠가는 나호코와 좋은 인간관계를 다시 맺지 않을까 기대한다,

 

그래도 스기무라가 스기무라여서 다행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한 여름 추리소설 읽기를 할때 스타터르 하기 딱 좋은 작품이다,

첨 부터 너무 어려운 사회파나 으스스한 분위기의 책보다는 이렇게 가벼우면서도 쉽게 읽히는 것이 좋다,

사람이 따라서는 너무 시시하거나 재미없다고 느껴질 수 있겠지만,. 왠지 나는 크리스티 할머니의 소품을 보는 느낌도 들고 좀 어수선하고 아마추어 냄새가 많이 나는 남매 탐정이 정이 간다,

왠지 나의 엄마 아빠의 젊은 날을 보는 듯한 느낌도 들고 그래서 순수하고 어설픈 탐정 놀이를 구경하며 힘내라고 응원하는 기분?

 

어느 병원집에서 일어나는 살인사건....

모두가 알리바이가 있고  동시에 모두가 수상하다,

가족사이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은 그래서 조금 슬프기도 하고 아프기도 하다. 아무리 발랄하게 시작하고 이끌어나간다고 해도..

누구나 가족이라는 것에 양가적인 감정이 있기 마련이다,

내 가족은 안그렇더라도 가족이라는 것은 단란해야하고 행복해야하고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고 이해해야한다는 것.. 가족끼리는 당연히게 생각되는 것이 늘 있기 마련이니까

그래서 가족추리물을 보면 늘 범인이 가족이 아니기를 바라지만 그건 쉽지 않다,

의외성을 둔 가족내의 사건이 더 흥미진진하기도 하면서 더 아프기도 하다,

 

병원집의 노할머니가 방공호 속에서 시체로 발견된다,

그리고 병원 입원실의 환자 한명이 행방불명이 된다.

가족들 병원식구들 그리고 환자들이 모두 용의선상에 오르면서 동시에 결백하다,

가족내에서도 비밀스러운 감정이 오가고 말하지 못한 일들이 쌓여간다,

가족이니까 말하고 가족이니까 말하지 않는다,

그 사건 앞에 고양이가 꼭 끼어있다. 검은 고양이

포우의 검은 고양이를 연상한다면 그건 착각...

이 소설속의 검은 고양이는 어째보면 피해자다.

왜 고양이를 이용한 트릭을 쓰는 건지... 고양이가 무슨 죄가 있다고...

가족간의 사건을 가족을 위해 덮어가려고 하고 가족을 위해 안고 가기도 한다,

그러기 전에 사건을 일으키지 않은 것이 가장 좋은 선택이지만 항상 추리물에서 최선의 선택은 피해가고 차선의 선택을... 겨우 책 말미에 선택하게 된다.

그나마 이 작품처럼  이것이 과연 차선의 선택이기는 한지 아리송송한 경우도 많다,

 

발랄하고 가벼운 소품같지만 결국 가족내의 사건이라는 어마무시한 무게를 그렇게라도 벼텨보자는 걸 느끼게 되는 작품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소년법 이야기는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논란이 있는 것으로 안다.

죄를 지은 가해자가 미성년일 경우 벌을 할 수 없다는 것

책에서도 나오듯이 어린이와 청소년은 교화의 대상이지 처벌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전제하에  미성년의 범죄는 숨겨지고  드러나지 않으며 교화에 중점을 둔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것이 피해자의 입장으로 가서 보면 이보다 더 억울할 수 는 없다,

사형제 논란만큼이나 소년법의 문제도 여러가지 의견이 분분할 수 밖에 없다,

예전 어디선가 본 책에서 일본의 소년법이후 그 가해자와 피해자를 시간을 두고 추적한 것이 있었다, 피해자는 그 날 이후 삶이 피폐해지고 힘들어져 결국 소위 말하는 성공한 삶을 살 수 없었지만 가해자는 소년원 혹은 비슷한 보호소에서 지낸 후 이름을 바꾸고 주소를 바꾸어 나중에 변호사가 된 경우가 있었다, 이 책에 나오는 변호사처럼...

죄를 지은 사람이 평생 주홍글씨를 가슴에 달고 누구에게나 드러내 보일 필요는 없다, 정당한 벌과 진심어린 뉘우침이 있고 난 뒤에는 새 삶을 사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가해자 피해자가 그 이후 자기의 삶을 어떻게 보듬어 나가느냐에 따라 삶의 질은 달라질 수 밖에 없기도 하다,

그러나 문제는...

늘 그렇듯이 인권을 들먹이며 가해자는 철저하게 보호되지만 피해자는 누구하나 위로해주는 사람도 보상해주는 사람도 없이 그대로 팽개치고 공개되고 여론속에 발가벗겨진다는 것이다,

굳이 일본까지 가지 않아도 우리나라의 경우도 어떤 소년범죄도 인터넷상으로  떠도는 개인정보이외의 어떤 정보도 알 수 없다. 그래서 소문은 부풀려지고 점점 거대해지다가 잊혀진다,

그러나 피해자는 늘 우리가 잘 알게 된다, 어떤 일을 당했는지 왜 그랬는지.. 조심했는지 안했는지 판단조차 그대로 공개된다.

이건 아닌데 싶으면서도 우리는 피해자는 잘 알지만 가해자는 전혀 알 수 없는 상황을 늘 겪는다,

 

책에서도  시작은 그렇다,

아내를 무지막지하게 살해한 녀석들은 겨우 15세 중학생들이었고

일본 소년법에 의해 그들의 정보는 비공개가 되고 재판과정이나 그들의 교화과정 어떤 것도 피해자는 알 수 없는 상황이다, 피해자의 입장에서 죽여버리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것도 당연하다,

나는 가족을 잃고 삶을 잃고 이렇게 아프고 괴로운데 그들은  새 삶을 위한 교화랍시고 보호받고 지도받을 뿐이라면...아무리 어린 나이라고 해도 미움이 강처럼 솟고 원망이 끝없이 이어질 수 밖에 없다. 그래도 다만 그걸 견디라고 개인이 알아서 견디라고 할 뿐이다,

 시간이 지나 그 때의 범인들이 하나둘 씩 죽음을 맞고 그 때의 피해자 가족인 하야마는 의심을 받고 스스로 사건을 풀어나가기 시작한다,

이야기는 처음엔 가해자의 인권에 비해 터무니없이 대접을 받는 피해자의 아픔을 드러내며 과연 이것이 옳으냐고 독자에게 질문을 던진다, 자꾸 하야마에게  대입되며 아무리 어려도 악마는 악마고 악은 악이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다,

 

갱생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하야마의 이 절규같은 질문에 나도 멈칫한다,

갱생이란.. 새로운 삶을 살게 하려는 것은 무엇인가?

죄를 씻는 것이 스스로 세상에 맞게 살 수 있게 지도받고 교육받고 깨우치는 것 그 이상 무언가가 필요하지 않을까? 아니 그렇게 스스로 돌아보기 이전에 선행되어야 할 것이 있는데

그건 바로 사죄이다,

내가 한 잘못에 대해 아무리 골방에서 혼자 사죄하고 벌을 받아도 그 마음은 상대에게 닿지 않는다. 상대에게 내가 잘못했음을  사과하고 그에게 내 마음을 전하는 것이 우선 아닐까

그 사과를 받고 안받고의 문제는 그 다음이다. 그로 인해 더 큰 고난이 오는 것도 어쩔 수 없다,

 

그 아이들은 반성했습니다. 늘 괴로워하고 힘들어했습니다,

이 말은 어떤 울림도 피해자에게 줄 수 없다. .......................... 고 생각하면서 책을 읽었다,

 

그러나 페이지가 넘어가고 계속되어 숨겨진 사건의 이며니 드러나는 순간 나는 가해자의 마음에 선다. 그것을 보여주는 것이 교코의 행동이었고 그로인해 하아먀와 함께 생각이 복잡해진다,

너무 무서워서 차마 마주하기 힘들다는 것... 그래서 마음속의 죄의식이 점점 부풀어 울라 나를 눌러대고 있어도  마주 대하고 사과하는 것에 대한 공포가 더 두려워서 그 압박감을 견디고 있는 가해자를 보면  또 마음이 아린다,

그래도 그게 처음이 아닐까..

우선 사과 그리고 반성 그리고 또 사과..... 그리고 처벌

유치원에서 다툼이 나고 누군가 가해자이고 피해자로 규정될떼 일단 상황을 알아듣게 설명하고 사과하게 하고 미안한 마음이 들게 하고 그리고 반성의자에 앉든 손을 들든 벌을 받는 순서가 되는 데... 이후 세상에서는 그냥 반성의자에 앉았다는 것 손을 들고 서 있었다는 것으로 모든 것을 퉁쳐버리는 게 아닐까....

반성의자에 앉든 손을 들고 있던 당한 사람 입장에서는 내 마음을 만져주고 알아주고 미안하다는 그 한마디를 듣는게 더 절실 할 수 있는데... 객관적이고 공평해야한다는 법과 질서는 그 모든 마음이 오가는 과정은 생략하고 행동이 오가는 과정에만 관심을 둘 뿐이다,

일단 서로가 마주하는 일이 가장 아프고 힘든 일이겠지만 처음 끼워야 하는 단추가 아닐까 했다,

책장을 덮고 하야마만큼 생각이 많아진다,

 

책속에서 주인고 하야마가 사건을 이대로 덮고는 도저히 살 수가 없을 것 같아 다시 사건속으로 파고 들게 된다. 싱글대디로 혼자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가게도 운영해야하고 아이도 돌봐야하는 그가 사건으로 파고 들어가려면 모든 일상은 중지되어버린다,

가게는 그렇다 치더라도 아이는 어린 미나미마저 옆으로 제쳐질 수밖에 없다,

주위사람들은 말한다. 지나간 과거라고 이제 그만 잊으라고 생각하면 괴로운 일... 범인은 잡혔고 사건을 해결된 것이니 이제 미나미와 함께 살아갈 미래를 생각하라고...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사건이 자꾸 그의 발목을 끌고 그것을 덮어두고는 미나미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살 수 없다. 그가 말했듯이 아이가 자라 엄마의 죽음에 대해 물어볼 때  혹시 그때 아빠는 무얼 했느냐고 하나면 무어라고 해야할까....

 

글 전체의 소년범 이야기만큼 현실의 문제와 과거의 정리사이에서 고민하는 하야마가 더 눈에 들어온다,

상담에서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나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한다,

헌재 내 모습을 만든 것은 과거 내 가족 내 행동 내 기억들이다 그것들을 마주보고 그때의 응어리 아픔을 만져주지 않고는 현재를 잘 살 수 없다고 프로이드는 말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심리상담에서 현재의 문제를 가진 내담자에게 스스로를 돌아보게 할때는 과거로 가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과거로 돌아가 과거를 마주하는 일은 아픈 일이고 현재를 흐트러놓는 일이 될 수도 있다.

나 하나 흐트러지는 건 상관없지만 그로인한 파장으 주위까지 흔들어놓는다,

내 주위 사람이 모두 단단해서 내가 흔들리고 흐트러지는 과정을 지켜봐 줄수 있는 사람이라면 상관없지만 그것이 미나미처럼 어린 아이라면... 함께 흔들리고  결국 상처받을 수도 있는 상황이라면 나는 내 과거를 파고 들고 마주하는  그 과정으로 들어가야 할까?

그냥 현재에서 내가 돌아볼 수 있을 만큼 흔들리지 않을만큼만 보고 넘어가야 할까?

내 과거를 마주하는 것 만큼이나 내 현재는 지켜내는 것도 소중하다면.....

 

나 혼자 참아내고 아무렇지도 않다고 여기면 편하겠지만 결국 그렇게 숨겨지고 덮어버린 상처는 언젠가 덧날 수 밖에 없고 그땐 쓰라린 치료가 아니라 도려내고 잘라내야하는 큰 수술로 이어질 수도 있다 심지어는 죽음까지도...

결국 하야마는 상처를 건드리는 쪽으로 결심을 굳힌다, 그리고 몰랐던 아내의 모습들을 알게 된다. 살아있었다면 결코 몰랐을 모습들 , 가장 감추고 싶어했을 가장 아프고 어두운 기억까지 내려간다. 그리고 다행히 이해하고 공감한다. 그래서 혼란스럽다. 소년법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그 법이 가지는 의미를 통해  보호받은 아내의 모습과 그리고 그 법으로 인해  분노에서 벗어날 수 없는 자신이 자꾸 중첩되며 생각만 많아질 것이다,

그러니 열어보지 말라고.. 과거란 판도라의 상자라고 치부할 수 있을까?

그 상자를 열기전과 열고 난 후의 삶은 누구나 다를 수 밖에 없다,

어떤 쪽이 더 좋은지 딱 잘라 말할 수도 없다,

열어서 해결된 사람도 있는만큼 열어서 더 괴롭고 혼란스러운 사람도 분명 있다,

그러나 그  상자안을 들여다 본 이후의 삶은 개인의 선택이다,

그리고 상자를 열고 상처 어두움을 마주한 사람들에게 다시 살 힘을 주는 건 사회의 책임이기도 하다.

건강한 사람이 모인 건강한 사회

그건 누구나 자신을 들여다 보고 알 수 있게 도와주는 사회의 시스템이 필요한 일이다,

그 단단한 토대에서 사람은 옳은 선택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려운 선택을 한 하야마가 이젠 두 다리를 뻣고 잘 수 있기를...

그리고 그 모든 자식의 아픔을 가슴에 묻고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고코의 엄마도 이제 좀 편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문득 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리베카 솔닛 지음, 김명남 옮김 / 창비 / 2015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섬세하고 날카로운 통찰과 재치 넘치는 글쓰기를 선보여 환영받아온 리베카 솔닛의 신작 산문집이 출간되었다. 전세계에서 공감과 화제를 불러일으킨 신조어 ‘맨스플레인’의 발단이 된 글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를 비롯해 여성의 존재를 침묵시키려는 힘을 고찰한 9편의 산문을 묶었다.

잘난 척하며 가르치기를 일삼는 일부 남성들의 우스꽝스런 일화에서 출발해 다양한 사건들을 통해 성별(남녀), 경제(남북), 인종(흑백), 권력(식민-피식민)으로 양분된 세계의 모습을 단숨에 그려낸다. 그럼으로써 우리가 늘 마주하는 일상의 작은 폭력이 실은 이 양분된 세계의 거대한 구조적 폭력의 씨앗임을 예리하고 생생하게 보여준다.

폭넓은 지식과 힘있는 사유로 버지니아 울프와 수전 손택의 문학, 아나 떼레사 페르난데스의 사진, 프란시스꼬 데 쑤르바란의 그림 등 다채로운 주제를 다루고 있다. 여성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해서 여성 대 남성으로 나뉘어 대결하는 세계의 화해와 대화의 희망까지 이야기하는 대담하고도 날카로운 에세이다.

 

 

트로이 왕의 딸 카산드라는 정확하게 예언할 줄 알지만 아무도 그 말을 믿어주지 않는 저주에 걸렸다, 사람들은 그녀를 미치광이에 거짓말자이ㅣ로 생각했고 어떤 기록에 따르면 그녀를 가둬두기도 했다. 나중에 아가멤논이 그녀를 전리품으로 데려가지만 그녀는 결국 그가 살해될 때 함께 살해되었다,

그동안 젠더 전쟁의 험난한 물결을 헤쳐오면서 나는 줄곧 카산드라를 떠올렸다, 그런 전쟁에서 신뢰성이란 그야말로 기본이 되는 힘이고 그 즉면에서 여성들은 집단적으로 다소 부족하다는 비난을 자주 받기 때문이다,

여자가 무언가 남자를 힐책하는 말을 하면 특히 그것이 기즉권의 행심에 놓인 남자에 대한 말이라면 사람들은 그 발언의 진실성을 의심할 뿐 아니라 그녀에게 그렇게 말할 능력이 있는가 심지어 권리가 있는가 의심하는 반응을 보인다, 이런 일은 전혀 드물지 안게 벌어진다, 그동안 세대를 막론하고 모든 여자는 자신들이 망상적이고 헷갈려하고 타인을 조종하려 들고 사악하고 음모론적이고 선천적으로 부정직하다는 비난을 들어왔다, 가끔은 그 모든 표현들을 동시에,,,

 

지금까지도 여자가 남자의 비행에 관해서 뭔가 불편한 말을 할라치면 사람들은 으례 그녀를 망상에 빠진 인간 사악한 음모론자 병적인 거짓말쟁이 그저 재미일 뿐임을 이해하지 못하고 징징대는 인간 혹은 그 모두에 해당하는 인간으로 뵤사한다, 지나치게 사나운 이런 반응들은 프로이트가 말했던 망가진 주전자 농담을 상기시킨다, 어떤 남자의 이옷이 남자에게 빌려간 주전자를 망가뜨려서 돌려주면 어떡하느냐고 책망하자 남자는 처음에는 망가뜨리지 않았다고 대답했다가 다음에는 빌릴 때 이미 망가진 상태였다고 대답했다가 나중에는 아에 자신은 빌린 적조차 없다고 대답했다, 여자가 남자를 고발하고 그 남자와 남자의 옹호자들이 저런 식으로 항변할 때 여자는 망가진 주전자가 된다,

 

비밀과 침묵은 범인의 첫번째 방어선이다, 비밀을 지키는데 실패하면 범인은 피해자의 신뢰성을 공격한다, 그녀를 철저히 침묵시키는 데 실패하면 아무도 그녀의 말을 듣지 않게끔 만들려고 애쓴다, 모든 잔혹 행위에는 우리가 뻔히 예상할 수 있는 똑같은 사과가 따르기 마련이다,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는 피해자가 거짓말하는 것이라느니 피해자가 과장하는 것이라느니 피해자가 자초한 일이라느니 심지어 이제 그만 과거를 잊고 미래로 나아가자는 말도 나온다, 범인이 유력한 인물일수록 현실을 호명하고 정의하는 능력이 크기 마련이라 그의 주장은 더 철저히 득세한다,

 

 

                                      7. 악질들 사이의 카산드라,,, 중

 

 

언어는 힘이다, '고문'을 '선진적 심문'으로 바꾸거나 살해된 아이들을 '부수적 피해'로 바꾸는 것은 의미를 전달하는 언어의 힘을 , ㅜ리로 하여금 보고 느끼고 마음을 쓰도록 만드는 언어의 힘을 망가뜨리는 일이다, 그러데 이것은 양면의 날이다, 우리는 단어의 힘을 이용해 의미를 묻어버릴 수 있지만 의미를 드러낼 수도 있다, 만일 우리에게 어떤 현상이나 감정이나 상황을 가리키는 단어가 없다면 우리는 그것에 대해서 말하지 못한다, 그것은 그  문제를 다룰 수 없다는 뜻이며 하물며 변화 시키기란 더더욱 불가능하다,

 

우리 시대의 새로운 용어들 중에서 설득력 있는 것을 꼽자면 강간 문화가 있다,

 

강간 문화란 강간이 만연한 환경 미디어와 대중 문화가 여성에 대한 성폭력을 규범화 하고 용인하는 환경을 말한다, 강간문화는 여성 혐오 언어의 사용 여성의 몸을 대상화하는 시선 성폭력을 미화하는 태도를 통해서 지속되며 그럼으로써 여성의 권리와 안전을 경시하는 사회를 나흔다, 강간문화는 모든 여성에게 영향을 미친다, 대부분의 성인 여성과 여자아이는 강간을 염려하여 자신의 행동을 제약한다, 대부분의 성인 여성과 여자 아이는 강간을 두려워하면서 살아간다, 남자들은 일반적으로 그렇지 않다, 따라서 강간은 여성 인구 전체가 남성인구 전체에게 종속된 위치에 머물도록 만드는 강ㄹ력한 수단으로 기능한다, 대부분의 남자들은 강간을 저지르지 않고 대부분의 여자들은 강간 피해자가 되지 않는데도 말이다,

 

 

가정폭력 맨스플레인 강간문화 성적 권리의식 등은 많은 여성들이 매일 접하는 세상을 재정의하고 그런 세상을 바꿔나갈 방법을 열어주는 언어도구들이다,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

사실을 이야기하고  경험을 나누고 감정을 드러내고 무언가를 요구하는 일이 금지당한다는 것

그것이 여자여서 그렇다는 것

20년도 전에 대학에서 여성학을 배우면서 느낀 분노나 부조리함이 20년이 지나도 여전하구나 사는 절망감

나댄다는 말이 주는 부정적인 뉘앙스는 정확하게 여자들만을 대상으로 한다,

미국이라고 다른 게 없다는  기운빠짐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목소리를 높여야 하고 나댄다는 말은 귓등으로 흘리고 그리고 움직여야 한다,

 

20년만에 차가운 얼음물을 뒤집어쓴 짜릿한 각성이다,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할것.


댓글(2)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곰곰생각하는발 2015-07-25 15: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자인 저도 잘난 척하는 남자에게 질렸는데 여자라면 오죽할까 싶습니다. 남자들은 인종적으로 여성보다 우월하다고 느끼는가 봅니다...

푸른희망 2015-07-26 20:44   좋아요 0 | URL
오~ 곰발님이 다녀가셨네요....우월하다고 느끼는 건지 우월하지 않다는 불안감에 발악을 하는건지.... 세상 남자가 모두 그렇진 않을진데... 몇몇이 물을 흐리는 것이고 다수는 침묵하고 잇는 탓이겠지요...
 

 

세상에는 빚이라는 유산도 있어

그냥 내버려둬서 사라진다면 그대로 두겠지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누군가는 받아 들여야 해 그게 나라도 괜찮지 않겠어? 

                   p 420

 

이야기가 언제 제대로  펼쳐지나 내내 궁금했다,

계속 인물들은 등장하는데 늘 제자리를 맴도는 기분이다,

이 노란 꽃은 데체 무엇인지

이전에 자살한 사촌도 의미가 있어보이고

어떤 등장인물도 허투로 나오진 않았을텐데,,,

누군가는 죽었는데 사건은 계속 제자리만 돌 뿐이다,

그냥 과학적인 이야기? 아니면 살인사건이 일어나긴 했을까

인상적인 프롤로그 두개도 분명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텐데

리노와 쇼타를 응원해도 괜찮은 걸까

그렇지만 요스케도 나쁜 꿍꿍이를 지닌거 같지 않은데

형사 히야세는 그냥 삽질만??>

결국 복잡하고 꼬여있는 이야기는 노란 나팔꽃으로 이어지고  모든 이야기의 가운데 있던 슈지 할아버지,,,,

그리고 너무 많다고 생각했던 등장인물은 각각의 소명을 마치고 모두 연결된다,

사실 누구하나 악인이 없다,

살인이 있었고 죽인 사람이 있었고 유혹한 사람도 있었고 유혹받은 사람도 있었지만

누구나 어쩔 수 업이 나약하고  평범한 사람이다,

그리고 별거 아닌 삽질만 하는 거 같은 인물이 제각각 제자리에서 제몫을 해내면서 사건은 마무리 된다,

 

책을 덮으면서 슈지 할아버지와 나미야 할아버지가 겹쳐진다,

누군가의 인생에 진지하게 대하면서 조언을 해주는 사람

그는 하야세의 아들 유타를 구해주고 의당 하야세가 했어야 할 조언들을 유타에게 해주면서 그의 삶을  지켜준다,

그건 나미야 할아버지가 모든 사연에 진지하게 고민하고 이야기해주는 모습과 닮아있다

나미야 잡화점의 모든 사람들이 제각각 고민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지만 그래도 따뜻하게 조언에 귀기울일 줄 아는 사람인 것처럼  몽환화의 인물들도 제각각 제 자리에서 자기가 맡은 유산 혹은 빚을 묵묵히 지켜낸다,

 

꾸역꾸역,,,,

이 말이 주는 뉘앙스가 사람마다 다르다,

누군가는 억지로 무언가를 밀어넣는 부정적인 기억을 가지고 있지만 나는 이 단어가 주는 미련하지만 그래도 묵묵히 지켜내는 힘을 연상한다,

눈물이 나도 꾸역꾸역

힘들어도 꾸역꾸역

그자리에서 미련하지만  도망치지 않고  용기없지만 마주하고 있는 힘을 이 단어에서 느낀다

두 작품속의 인물들을 보면 나는 "꾸역꾸역"이 떠오른다

미련하고  잔머리없이 운이 없어도 그래도 조금은  나은 내일을 생각하고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

문득 히가시노가 그리는 사람들이 모두 그렇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한다,

누군가의 고민에 진지하게 귀를 기울이는 사람

그 조언을 넘겨버리지 않고 잘 들어주고 소통이 잘 되지 않는다 싶으면 다시 시도하는 사람

현실에서 희망을 발견하려는 사람

빚에서 도망치고 싶지 않은 사람

용기를 내고 싶은 사람

천재가 되고 싶지만 현실을 알아가는 사람등등...

추리물인줄 알고 피칠갑을 기대하며 편 책속에서 나는 사람들을 본다,

나를 닮은 사람 내가 닮고 싶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