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주장하는바

이 세상에서 아니 적어도 우리나라에서 부모가 되려면

수능못지 않은 혹은 사법고시못지 않은 시험을 통과해야한다고 주장하는 바이다.

아이를 키운다는 건 법관이 되는것보다 대학생이 되는 것보다 더 힘든 일이고 중요한 일이다.

 

내 그릇이 간장종지이면서 아이에게 대양을 품으라고 할 수는 없다.

내가 몸하나 까딱하기 싫어하는 게으름뱅이라면서 아이에게 원대한 꿈을 위해 노력하라고 할 수 있을까...

나조차 아직 내 꿈이 뭔지 모르겠고

아직 꿈을 꿀 수 있을지 못할지도 모르는 지금

나는 내 아이에게 어떤 엄마가 될 수 있을까

 

난 어쩌다 결혼을 하고 어쩌다 아이를 낳고

어쩌다 엄마라는 걸 하고 있을까

 

부모를 선택할 수 없다는 건 아이들에게 불행의 시작인지도 모르겠다.

그 부모가 돈이 많거나 적거나의 문제가 아니라 많이 배웠거나  못배웠거나 가 아니라

어떤 사고방식을 가지고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어쨌든 아이를 제대로 양육할 능력이 있는 부모인지...

그걸 제대로 관리하고 교육하는 곳은 없을까.

 

어쩌다 부모는 되어가지고 나도 힘들고 아이도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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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에서 온 편지
펄 벅 지음, 오영수 옮김 / 지성문화사 / 2010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책공부 모임에서 대지를 다시 읽으면서 펄벅이라는 개인에게 관심이 갔다.

그래서 택한것이 한작가의 책을  모두 읽어보기...

대지 2부라고 할수 있는 아들들을 읽기 전에 읽은 책 북경에서 온 편지

 

참 서정적이고 고전적이며 잔잔한 아름다움이 있다.

내가 조금 더 젊었더라면  아마 이 책을 이해못했을거 같다

엘리자베스의 입장도 이해하기 힘들었을 것이고 이렇게 잔잔하게 흘러가는 책조차 지겨워서 다 읽지 못햇을지도 모르겠다.

 

이제 나이를 먹어가면서 이게 옳은건지  그른건지 모르겠지만 세상에 이해안될 일들은 없다는 것

물론 그 일들이 나와 이해관계가 얽힌다면 또 다른 문제이지만

어떤 상황도  어떤 사람도 이해못할건 없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펄벅은 미국작가이지만 자꾸 중국작가라고 착각하게 만든다.

그녀의 작품들이 중국을 배경으로 한것이 대부분이고 그녀의 삶도 중국과 관계있으니 어쩔 수 없는지 모르겠다. 도서관에서도 중국문학에서 열심히 찾았으니까..

 

책은 조금 단조롭지만 아름다운 문체로 시작된다.

단정하고 조용하지만 내면에 열정을 가진 엘리자베스는 중국계 혼혈인 남편 제럴드와 헤어져 미국에 와서 아들과 살고 있다. 그러나 남편에 대한 신뢰와 사랑은 변함이 없고 언젠가 가족들이 만날거라고 믿고 있지만 남편의 마지막 편지에서 그 기대를 놓아야 한다.

정확한 역사는 모르겠지만 중국에서 혁명이 일어나고 정부가 바뀌고 공산당 체제가 서구의 민주주의 자본주의와 단절하던 그 시대라 아마 중국과 미국의 수교도 끊어진 시기였던거 같다.

단지 중국인 남편이 있고 중국인 아버지가 있고 내 몸에 중국인 피가 흐른다는 것이 남들에게 손가락질을 받거나 터부시 되는 시절 그때 엘리자베스의 아들 데니가 가졌을 갈등도 충분히 이해된다.

중국에서도 이방인이었고 내 조국이라고 믿었던 미국에서도 이방인인 입장이 얼마나 불안하고 힘들었을지...

여주인공속에 펄벅 여사가 들어있어서 중국에 대한 무하한 신뢰와 애정을 보여주면서도 세상이 바뀌고 달라져 간다는 것에 대한 불안도 내비치고 있다.

 

왜 남편이 미국인을 포기하고 중국에 남았는지는 그녀의 어머니 이야기가 나오면서 조금씩 실마리가 보인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았던 남편 그리고 미국인이 될것같은 자식을 보면서 조금씩 혁명에 관심을 가지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살다가 총살당한 여인

그 여인의 피가 흐르는 아들은 결국 중국을 택하지만 사랑하는 가족의 안정을 위해 가족은 미국으롤 보낸다. 그리고 중국을 사랑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하지만 결국 그 속에 있는 또다른 미국적인 사고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으로 그는 죽는다.

 

다 읽고 느낀점

중국의 역사 시대의  소용돌이 속에서  사랑이란 건 어떤 것인가. 그리고 두 개의 대립되는 세상에서 잉태된 아이들의 갈등은 어떤것인지.. 손에 잡힐듯 말듯 이해된다.

지금도 이런 일들은 계속되지 않나?

베트남에 수많이 뿌려진 미국인 혼혈들 한국인 혼혈들

그리고 그전 우리나라에 남겨진 미군의 혼혈들

그들이 가지는 정체성의 문제는 펄벅 시대부터 이미 존재 했었고 여사는 그때부터 그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이방인인 듯한 느낌들

그리고 내 남편이 중국에 있다고 솔직하게 말하기 어려운 상황들

주위사람들의 수군거림등등

그때의 문제들은 지금도 존재한단

 

이 이야기는 대지와는 달리 참 로맨틱한 연애소설이기도 하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서로를 사랑하고 신뢰하는 제럴드와 엘리자베스의 사랑도 그러하고

사랑하였으므로 이질적인 상대의 모습도 받아들이는 것도 그렇고

중국에서 제럴드의 두번째 부인이 되는 매연의 이야기도 참 에처롭다.

이미 격렬하고 불꽃같은 시절은 지났지만

아직도 그 재속에 남아 있는 불씨만을 간직하면서 살아가는 은은한 사랑이 이 책에 있다.

 

조금은 심심하고 지루할지 모르겠지만

엘리자베스의 단정하고 담담한 문체가 오히려 그녀의 슬픔을 외로움을 더 잘 보여주고 있다

자꾸 그녀와 펄벅이 오버랩되는 건 나의 오지랍인지도 모르겟지만/..

원서로 한번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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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멜리에의 그녀는 나이를 먹어서도 여전해 매력적이다.

이젠 그때처럼 통통 튀는 귀여움은 많이 사라졌지만 사랑스러운 여자가 나이를 먹었을때 가지는

또다른 매력이  느껴진다.

프랑소와를 사랑하고 결혼하고 행복했지만 사고로 남편을 잃은 나탈리는 일에만 몰두하면서 일에 미친채 살아간다. 회사 사장이 대쉬하지만 그것도 관심이 없다.

그러나 어느날 회사의 무뚝뚝한 스웨덴남자 마르퀘스와 키스를 해버리고  그리고 사랑이 시작된다.

처음 남편과의 사랑은 그냥 말랑말랑한 연애소설속의 사랑이었다면

마르퀴스와의 연애담은 참 인간적이고 현실적이다.

둘이 심각하게 갈등하고 싸우고 하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과연 이 남자에게 왜 끌리는 가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그러면서 말을 통하고 유머코드가 같은 이 남자를 좋아하는 걸 솔직하게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나탈리다

나탈리는 정말 우발적으로 키스를 해버렸지만 그땐 그녀의 말대로 딴데 정신이 팔려서 자기도 모르게 착각한 것이었겠지만

그렇게 엉뚱하게 관심을 갖게 된 사람을 자꾸 마주치게 되고 바라보게 되고 이야기하고 하면서 비슷한 점 좋은점을 찾아간다.

마르퀴스는 눈에 띄지 않는 평범하고 조금은 소심한 남자지만 그 속에 따뜻하고 솔직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대상을 긍정적으로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시선이 가장 큰 장점인거 같았다.

누군가를 사랑하게되면 내가  왜 그 사람에게 끌리는가 이게 과연 옳은 감정인가 내가 실수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착각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끊임없이 하게된다.

더구나 한번의 경험이 있고 나이가 있는 사람들이라면 그런 주저함 어쩌면 계산속이라고 할 수 있는 갈등들이 지극히 당연하다

나탈리는 그런 속의 갈등을 솔직하게 보여주면서 참 자연스럽게 연기한다.

두 사람이 그래서 사랑을 하게 되었다는 결과보다는

그 사랑을 과연 진짜 사랑인지 착각인지 고민하는 과정들

그리고 그걸 귀엽게 실험해보는 과정들

그것들을 받아들이는 과정

그것이 이 영화의 진정한 백미이다.

누구나 사랑에 빠질 수는 있지만 자신의 감정을 느낌을 솔직하게 들여다보고 응시하는 것

그 감정을 분석하고 이해하려고 하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

그러나 젊어서 불같은 사랑에 빠져버리면

그런 과정들을 단순한 계산속이라고 치부하고 무시해버린다.

가끔은 내 감정을 들여다 보고 정리하고 응시할 필요가 있다.

 

오드리 토투 그녀는 나이를 먹어도 너무 사랑스럽다

그녀의 옷차림도 너무 맘에 든다. 작고 왜소해서 더 아름다워보일지도 모르겠지만 차려입지 않고 아무렇게나 묶거나 풀어놓은 머리스타일도 맘에 든다.

 

어찌보면 달달한 로맨스지만 사랑을 할때 이성적으로 생각해야할 것들을 보여주는 꽤 괜찮은 영화다. 왜 난 좀더 젊었을때 이런 사실을 알지 못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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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
펄 벅 지음, 장왕록.장영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0년 3월
평점 :
품절


예전에 읽었던 고전을 요새 다시 읽고 있다.

나이를 먹으면서 새삼 오래된 책들의 가치를 알아간다.

더불어 어렸을때는 알지 못했던 것들이 보이고 이해되지 않을 것도 없다.

 

웃자고 이야기하자면 역시 뭐니뭐니해도 부동산이 최고다... 싶은 생각도 들었다.

왕룽이 그렇게 돈을 모아 땅을 사는것이 부동산 불패신화를 믿어서는 아니겠지만서도

내 땅에서 정직한 노동과 정직한 땀을 통한 소득만이 진정한 내것이라는 믿음은 나쁜 것이 아니다.

왕룽일가가 가뭄으로 남쪽으로 가서 빌어먹을때도 남들이 모여 돈이 있다면 무얼 하겠는가 하

떠들었을때 왕룽은 땅을 사겠다고 했다.

남들은 그 돈으로 맛난걸 먹고 좋은 걸 사고 어쩌구 저쩌구 소비에 대해 이야기했을때

왕룽은 땅을 이야기했고  그 땅은 부동산이 아니라 정직한 노동을 의미한다는 걸 알았다

어쩌면 왕룽의 그런 고지식하고 융통성없는 성격이 그를 그렇게 성공하게 했고 미워할 수 없는 인물로 만들어준 것인지 모르겠다.

 

여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오란의 인생만큼 불쌍한게 또 있을까

부모에게 버림받아 부잣집 종으로 들어가  나이 먹도록 노동을 하고 게다가 얼굴도 이쁘지 않아 미움과 차별을 받고 살았고 그렇게 만난 남자도 가난한 농사꾼

정직하고 성실한 남자이긴 하나  고지식하고 가부장적이라 아이도 혼자 낳고 뒷처리도 혼자 하고 낳자마자 논으로 밭으로 나가 일을 해야하고 나중에는 남편이 첩을 얻는걸 바라보고 혼자 속으로 삭혀야 하는 신세

아마 오란이  그렇게 병들게 된것이 결국은 홧병이 아닐까 싶다.

모든걸 털어놓지 못하고 속으로만 꾹꾹 눌러 담아 온것이 결국 화가 되고 암이 되어 그렇게 스스로를 갏아먹었나보다.

남쪽지방에서 보인 그녀의 염치나 도덕성에 대한 불감증은 어쩌면 그녀의 삶의 피폐함을 보여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빌어먹고 훔쳐먹어가며 살지 않으면 목숨을 이어갈 수없다는 절박함을 어려서부터 배워서 남에게 크게 해를 입히지 않은 비도덕적인 행동은 그냥 넘어가게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사실 그 부분이 같이 자식 키우는 입장에서는 조금  찜찜했지만 남의 입장이 되어보기전에 내 입장에서만 보고 옳다 그러다 할 수는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도 훔친다는 것 옳은 건 아니니까. 차라리 내가 훔치고 말지 아이가 훔쳐온 걸 먹이는 건그렇다

 

돈을 모아 땅을 사고 조금 살만해지자 극심한 가뭄으로 고향을 떠나게 되고 도시에서 빌어먹다가 혁명바람이 불어 얼떨결에 부잣집에서 돈을 가져오게 되어 다시 고향으로 오고 땅을 사고 지주가 되고

황룽도 어쩔 수 없는 동양의 아비인 모양이다. 자신은 비록 농사꾼으로 살지만 자식들이 학자가 되고 좋은 풍모를 가지게 되는 걸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걸 보면 세상 어떤 아비와도 다르지 않다는 걸 느끼게 된다.

또 조강지처에 대한 애틋한 마음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내색하지 않고 도리어 꾸미지 않고 가난할때와 다름없이 꾀죄죄한 아내에게 벌컥 화부터 내는 것 그리고 돌아서서 미안해 하고 스스로 뇌책감을 느끼는 것... 그것도 어쩌지 못하는 동양의 늙은 남편이다

늘 땅을 사랑하고 땅에서 노동하고 곡식을 거두어 들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왕룽도 늙어가고 양지에 앉아 꾸벅꾸벅 졸던 자기 아버지처럼 그렇게 나이를 먹는다.

한세월 풍파를 겪은 왕룽도 자식앞에서는 어쩔 수 없나보다.

이미 나의 세상은 지나고 자식들 세상이 펼쳐졌고 머리가 큰 자식에게 뭐라고 할 수 없다는 걸 알게 되고 (에전 자신도 그랬으므로) 시시비비를 가리며 시끄럽게 굴기보다는 조용하게 지내기를 원하는 것... 그렇게 왕룽의 인생도 지나가고 있다.

모진 일을 겪고 좋은 결과를 얻어도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불행이 닥쳐도 인생은 계속된다.

살아가는 건 드라마나 이야기가 아니므로 가장 좋을때 끝이 나질 않고 가장 바닥을 쳤다고 해서 그것이 다 지나가는 것도 아니다.오르락 내리락 흐름을 타면서 그렇게 계속 이어지는 것 그것이 삶이다.

좋은 일만 있었던 것도 아니고 나쁜 일만 연거푸 쏟아지는 것도 아니었고 간혹 양심을 속이기도 하고 남에게 욕을 쏟아내기도 했지만 그래도 스스로의 삶을 대견하게 만들어온 두 사람에게 깊은 존경심을 보낸다.

오란이 늙어서 두견에게 했던 말... 나는 젊어 이쁘지 않아 영감님의 사랑을 받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영감을 얻어 자식들 낳았지만 넌 아직도 종신세를 못면하는구나..

남이 어떻게 생각하든 내삶에 내가 당당할 수 있는 것 그런 자세를 닮고 싶다.

왕룽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오란을 생각하면서 그때도 지금도 한 인간에게 삶이란 겸손하게 지속해야할  운명에 다름없다.

 

역시 번역이 깔끔하면 읽히는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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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범우희곡선 35
테네시 윌리암스 지음, 신정옥 옮김 / 종합출판범우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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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예전에 읽었던 희곡

이 대본으로 올려진 연극을 보고 싶었는데 극으로는 보지 못했다.

지금 기억나는 건

불쌍한 블랑쉬..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환상속에 사는 서글픈 여인 

그리고 동물적이고 야만적인 스텐리

그리고 수동적인 스텔라....


그리고 시간이 지나 지금 읽으면서 블랑쉬보다 스텔라에게 더 마음이 간다.

그땐 현실인식이 안되는 언니때문에 골머리를 썩이던 그러면서도 언니에 대한 연민으로 어쩌지 못하는 스텔라였는데...

지금은 어쩌면 환상속에 갇혀버린 블랑쉬보다 스텔라가 더 애닮으다.

스텔라는 블랑쉬와 같은 세상에서 태어났고 고귀하고 우아하며 상식과 교양을 갖춘 아가씨였을 것이다. 어찌되었건 넓은 농장과 저택에서 살았던 스텔라가 어쩌다 스텐리를 만났을까

집이 몰락해가고 사랑에 눈뜨고 치기어린 연애와 순간적인 쾌락으로 남자를 만났을까

철없고 순수하던 시절엔 스텐리도 매력적이었을것이다.

책에서 나오듯 그도 한때 전도유망한 군인이었고 잘생겼고 매력있었을테니까

어쩌면 동물적인 감각까지도 스텔라에게는 매력이 되었을지 모른다.

순수하고 세상물정을 모를수록 나쁜남자에게 끌릴 수 밖에 없으니까

그리고 둘은 결혼을 했고 이제 스텔라도 스텐리의 세상으로 넘어왔다.

현실적이고 동물적인 감정에 충실한 세상

전쟁이 끝나고 세상은 너무나 빠르게 바뀌었고 예전의 습관이나 관습은 이제 낡은 것이 되었다.

스텔라는 스텐리를 만나서든 어쨌든 그렇게 변화에 맞게 스스로를 변화시키고 있는 중이다.

이젠 예전의 저택이나 농장을 잊고 그렇게 살아가려고 하는데

블랑쉬가 나타난다.

그리고 환상에 갖혀 세상의 변화를 읽지 못하고 스스로 거짓을 말하고 아니 어쩌면 그녀의 말대로 진실을 말하는게 아니라 진실이어야 하는 걸 말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지금 현재가 중요한게 아니라 내가 진실이라고 믿었던 것이 바뀌는 걸 허락할 수 없는 그런 모순같은 것을 믿었는지도 모른다.

그런 블랑쉬를 보면서 스텔라도 그렇게 예전 내가 진실이라고 믿었던 것들을 기억해냈을지도 모르겠다. 사람의 기억이란 두뇌에 저장된 것보다 몸으로 기억하는 것이 더 오래가는 법이다.

내가 누렸던 것들 했던것들 그리고 살아왔던 것들

이젠 잊어버렸지만 몸은 먼저 기억하던 그때를 어쩌면 그런 공통점이 있어서 스텔라는 언니를 더 챙겼을 것이고 더이상 보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언니를 봄으로써 내가 지녔던 기억 그러나 지금은 모두 잊고 잃어버린것을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현실과 그때가 많이 다르다는 걸 적나라하게 알게 되고 

그러나 스텔라는 현실적이었다.

꿈꾸고 살수는 없으니까 언니를 부정한다.

남편이 언니를 범했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남편이 짐승같은 욕망에 충실한 남자라는 걸 부정하면서

아니 부정이 아니라 받아들이면서 모른척 한다.

그리고 현실에서 살고자 한다.

과연 스텔라는 행복할까

아직도 스텐리에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까


가끔 주간지 귀퉁이에서 혹은 인터넷 어딘가에서 전해지는 이야기중에 매맞는 아내이야기 혹은 맞지 않는 남편과 사는 여자들의 이야기가 있다.

실컷 맞고도 다음날  손이 발이 되게 비는 남편을 어쩌지 못하고 용서하고 몸으로 받아들이는 아내들

나와 다른 종족이고 맞지 않다는 걸 알면서 스스로의 행복은 포기하고 아이들을 위해 남의 눈을 위해 살아가는 무늬만 부부인 사람들

그들에게서 스텔라를 본다면 너무 억측일까

스텔라는 행복할까 

스스로를 속이는 삶은 아닐까

나만 눈감으면, 나만 모른 척 하면 모든것이 다 잘될거라고 믿는 스텔라

어쩌면 스스로 진실이라는 것을 만들고 그것을 믿고 환상과 착각속에서 사는 블랑쉬가 더 행복하고 순수한지도 모르겠다.

내 두눈을 감아버리고 세상속의 흐름에 맡겨버리는 일 그것이 과연 행복할까

정의도 진실도 옳고 그름도 오직 나의 안위와 행복과 연관시켜 눈을 감거나 뜨는 사람들

세상에는 수많은 스텔라가 있다.

나도 어쩌면 그런 스텔라인지도 모른다.

나는 행복한가 지금.. 이 순간



스텔라가 말하는 '욕망'이라는 전차를 타고 와서 '슬픔'이라는 전차로 갈아타고 도착해서 살고 있는 그곳'천국'에서 스텔라는  무얼 하고 있을까

그녀를 중심으로 한 또다른 이야기가 궁금하다.


블랑쉬는 어쩌면 가장 행복한 여인네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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