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제목만 보고 뭔가 피비린내나는 그런 영화라고 생각했다.

뭔가 볼게 없다 여기저기 기웃거리다가 도데체 이건 뭐지 하고 클릭한 순간

멋진 배우들이 줄줄이 나온다. 간만에 보는 조디 포스터에  캐이트 윈슬렛까지...

게다가 코메디라니 확....

 

작은 씨네큐브의 극장안 관객이 모두 한마음이 되어 공감하지 않았을까

웃음을 터뜨리는 부분 픽 하고 실소가 나오는 부분 그렇지 하고 나도 모르게 고개가 끄덕여지는 부분 ,,, 그게 어쩌면 그렇게도 다들 비슷한지...

대체로 연령층이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고 남편이랑도 적당히 타협하고 모른척 하면서 지낼 수 있는 경지에 이른 주부들이라(물론 남자도 있고 연인도 있었다) 다들 공감하는 부분이 비슷하다

 

이야기의 발단은 간단하다.

두집의 아이가 놀다가 다툼이 났고 한아이가 나무막대로 쳐서 다른집 아이가 이빨이 두개 부러졌다. 그 문제로 가해자 부모가 피해자 부모를 만나 사과를 하고 뒷일을 의논하고 돌아가려는 순간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장소도 한정되어있고 네사람의 대화로 모든  상황이 이어지는 게 연극같다고 생각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프랑스 희곡이었고 대학로에서 공연도 했던 작품이란다.

 

두 부부는 모두 교양이 있고 사회적으로 어느정도 안정을 이룬 지식인이다.

변호사에 주식 중계인 작가와 영업맨...

처음엔 점잖게 서로 사과하고 이해하고 이럴 수도 있지 하고 교양있게 넘어가지만 한순간의 말한마디에 말꼬리를 잡고 늘어지고 그 와중에 변호사는 계속  핸드폰으로 자기일을 보고 있고(거의 모두가 상황을 알도록 생중계를 한다)  그리고 속이 않좋은 부인이 구토를 하고 책이 젖어버리고 등등의 상황이 이어진다.

각자 자기 아이의 편을 들고 변호하는 과정을 지나다가 각각의 아빠들은 사실 이 사건에 그렇게 깊게 관여하고 싶어하지 않고 그냥 좋은게 좋은대로 넘어가길 바란다는 의도가 드러나고 무심한 아빠의 모습이 나오면서 이 다음엔 여자대 남자로 대결구도가 간다.

사실 말이 날카롭지만 그래도 다들 교양있게 말로만 싸운다.

그러다 조디포스터네 부부가 다툼이 일어나고 욕이 나오고 구타가 나오고..

암튼 누구나 공감하고 한번쯤은 해봤을.. 혹은 해버릴뻔한 상황들이 계속된다.

가직적인 여자 일만 중요한 남자 만사가 태명하면서찌질한걸 오히려 자랑스러워하는 여자 정의롭고 예술을 사랑하지만 그걸 너무나 강요하는 여자.. 등등

누구나 우리같기도 하고 우리가 아는 누구와 닮았다.

 

조금 시시하기도 했지만 계속 키득거리며 볼 수 있다.

좀 더 강하게 서로 충돌했으면 어떨까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적당하게 우아하게 끝이 났다.

어른들은 그렇게 욕을 하고 핏대를 세우고 가방을 집어던지고꽃을 내팽개치면서 싸웠지만

정작 싸웠던 당사자는 문제의 심각성을 모른채 다시 어울려 놀고 있다.

 

 

어쩌면 핏대를 세우고 온 힘을 다해 상대를 비난하고 있는 모든 에너지를 내동댕이 치는게

사소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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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생각해도 엄마 에바는 잘못이 없다.

흔히 사람들이 특히나 남자들이 환상을 가지는 모성이라는 게 부족할 수는 있다.

원치 않은 임신이었고 그 임신으로 인해 포기해야하는 것들이 늘어나고 뭔가 새롭게 시작 할 수 있는 입장에서 아이는 늘 걸림돌이었다. 게다가 그 아이는 전혀 사랑스럽지 않고 나만 미워한다는게 은연중에 드러난다.

 

캐빈이 나쁜 놈이란게 확실하다.

모성애가 부족해서 엄마의 사랑을 받지 못해서 탄생을 축복받지 못해서 ..

그런 이유들은 다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어릴때 학대받았다고 해서 누군가 나를 부담스러워한다고 해서 모두가 그렇게 악마가 되는 건 아니다.

누구보다 풍족한 가정이었고 누구보다 지적이고 사회적으로 성공한 부모이고

나를 전적으로 이해하고 사랑하는 맹목적인 아빠도 있고

차갑지만 나랑 친해지려고 전전긍긍하는 엄마도 있다.

뭐가 문제인가..

문제는 나 자신뿐이다.

 

어쩌면 캐빈이 정말 엄마를 좋아했다는 생각도 든다.

좋아하는 걸 표현하는 방식은 여러가지라서 캐빈의 입장에서는 끊임없이 상대를 괴롭히고 한게상황까지 끌고 가서 그 상대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살피는 것

그 상대가  나에게 적극적으로 나오고 세게 나올수록 쾌감을 느끼고 더욱 상대에게 끌리는

정말 그런 사이코패스이고 소시오 패스일 뿐이다.

아버지도 물론 그를 많이 사랑하고 맹목적으로 믿었지만 그건 재미가 없다.

내 눈치를 보고 나만 따르는 그런 지겨운 존재일 뿐이다.

에바가 남편과 이혼을 하고나면 아이들 양육은 당연히 나뉜다고 했다.

(그 남편과의 대화도중에 남편이 그랬다)

더 이상 이야기 하지 않았지만 캐빈을 부담스러워하고 위험하게 여기는 에베가 캐빈을 데려가라 리 없고 당연히 캐빈은 아버지와 단둘이 살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캐빈에게는 더할수 없이 끔찍한 일이다.

자기의 계획과 행동에 아무런 반응없이 그저 예스맨일뿐이 아버지가 지리멸렬하고 하찮은 그 존재가 무슨 즐거움을 주고 짜릿한 긴장감을 줄것인가

사람이 누군가를 상대할때 상대가 내놓는 반응을 보고 행동의 더 커지거나 쾌감을 느낄때가 있다.

누군가를 협박하고 폭력을 휘두를때 순순히 따르고 아무말없이 당하는 사람보다 치고올라오면서 맞받아치고 저항하는 상대에게 더한 쾌감을 느낀다. 그러면서 더 관심이 가고 웃기게도 애정을 느끼는 놈도 있다.

어쩌면 캐빈도 그런 류인거 같다. 그런데 답답한 아버지와의 생활이라니..

어쩌면 거기서 캐빈의 분노가 폭발하고 가족에게까지 화살을 날린게 아닐까

내가 가질 수 없다면 아무도 가질 수 없고..

에바를 내가 독차지 하고 싶다는...

어쩌면 이런 면에서 캐빈은  은연중에 에바의 사랑을 갈구하는 나약한 소년의 모습도 가지고 있었던거 같기도 하다.

 

에바는 결국 제자리에서 모든 것을 견디면서 엄마가 되어간다.

아들의 옷을 정리하고 침대를 정리하면서 그녀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언젠가 캐빈이 돌아와 다시 둘만의 생활이 되기를 기대했을까

아니면 캐빈이 돌아온다는 자체가 너무나 끔찍하다는 생각을 했을까...

 

그땐 알았는데 지금은 모르겠어....

그 말은 한줄기 위안이 될 수도 있고 더한 어둠속으로 떨어지는 절망도 될 수 있겠다.

돌아나오는 에바는 마음에 헛헛했던걸까 아니면 한가닥 위로가 되었을까

그녀의 애매모호한 표정으로는 난 아무럿도 읽을 수 없다.

하지만 그녀가 계속 도망가지 않고 그대로 버티고 견딜거라는 건 알거같다.

 

원작을 읽어봐야 하나 고민해야겠다.

 

사족   나의 아이들의 엄마로 살아간다는 것도 만만치 않다고 투정을 부렸다.

          난 아이를 좋아하는 성격도 아니고 모성도 부족하다고 늘입버릇처럼 말했다.

          어쩌면 아이의 이모나  나이많은 친구 노릇은 하겠지만 엄마라는 입장은 늘 어색하고 서툴렀다. 아이도 말했다. 다른 엄마랑은 좀 달라.. 날 딸이 아니라 친구로 여기는 거 같아 악착같이 이기고 싶어하고 봐주는 것도 없고....

그래도 내가 엄마구나 싶은 감정을 느끼는 건

어떤 일이 있어도 이 두녀석을 내가 끝까지 책임져야하는 거라는 생각을 할때다.

아프거나 속상하거나 힘들거나 할때 내게 젤 먼저 이야기해주면 좋겠다는 것

내가 어떤  근사한 해겨랙을 내놓을 수는 없더라도

그냥 힘들때 생각나고 채근대고 싶은 사람이 나였으면 하는 것

귀찮고 힘들다고 툴툴거릴게 뻔하지만

그래도 한편으로는 우쭐대고 싶은 마음도 들거다

거봐.... 나밖에 더 있어.. 내가 엄만데...

 

내가 보기에 에바 당신은  꽤 괜찮고 근사한 엄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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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레 사진관 - 상
미야베 미유키 지음, 이영미 옮김 / 네오픽션 / 2011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미미 여사의 글은 정말 좋다.

화차부터 읽기 시작해서 거의 다 읽은듯하다.

사회 현상에 대한 박식함 시대적 배경을 통달한 역사의식도 (일본사니까..)

그리고  사람에 대한 이해까지...

글을 읽다보면 거칠고 다듬어지지 않은 문장들도 보이지만 그래도 글 속에 녹아 있는 세상에 대한 사람에 대한 시각은 정말 존경스럽다.

 

이번 고구레 사진관은 다른 작품에 비해 어쩌면 긴박감이나 속도감 책속에  몰입하는 정도는 떨어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인간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은 다른 어떤 작품보다 낫지 않나 싶다.

 

독특한 부모를 만나 고구레 사진관으로 이사온 하이이치 가족들을 중심으로 여러가지 심령사진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주된 이야기지만

하나하나의 사건들이 주체라기보다는 그 사건을 풀어가면서 주인공과 친구들의 관계 그리고 가족간의 관계들 가족을 바라보고 친구를 바라보는 시선들이 이 책의 중심이다.

그 속에 내가 좋아하는 소년의 성장이 주체이기도 하다.

 

사람은 누구나 상처가 있고 그 걸 꽁꽁 냉동시켜 저 깊은 기억의 바닥에 밀봉하고 사는 존재이다.

그러다 우연히 그 상처 비슷한 것들을 만나면서 가시감을 느끼고 그 상처를 해동해보기도 하고 모른 척하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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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의 석간
시게마쯔 키요시 지음, 김훈아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4년 11월
평점 :
품절


일본문학을 좋아한다.

그렇다고 유명한 일본작가의 책을 다 섭렵하는 건 아니고 간혹 손이 가는 책들을 마구잡이로 골라 읽는 편이지만 일단 미스테리나 추리물은 일본을 따라갈만한게 없고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들들 세밀하게 관찰하고 그 속에서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도 일본 소설만한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

다만 디테일이 조금 유치하기도 하고 쑥스러워한다고 해야할까 머뭇거린다고 해야할까

직접적으로 묘사하고 사건으로 파고든다거나 하는 건 유치하게도 하지만

그래도 스쳐지나갔던 일상 .. 어! 나도 이런 경험있는데 .... 이런 생각한 적 있는데 하는 소소한 공감을 일으키는 건 주로 일본 소설을 읽었을때였다.

 

이 책도 마찬가지다

첨 읽었던 건  우연히 동네에 오던 이동도서에서 아무 생각없이 쓰윽 골라 읽었는데

첨엔 그냥 심심풀이로 읽던 것이 어느 순간 마음이 쑥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제일 와 닿았던건 철봉 하나님..

아빠와 딸이라는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친밀할 수도 있고 동시에 세상에서 가장 서먹하고 데면데면할 수 있는 관계가 잘 나타나있다.

이야기속 요오코의 나이무렵부터 아빠가 아이에게 어떻게 다가가는가에 따라 아빠와 딸의 관계가 세상에서 가장 다정하거나 가장 어색한 관계가 된다.

우리네 정서상 나도 역시 어색하고 데면한 부녀관계를 가지고 있고 누가 내딸 아니랠까봐 내 딸들과 내 남편의 관계도 그렇다.

아이들이 여자아이 치고 애교가 없고 무심한 성격도 한몫하지만 아빠쪽도 간 쓸개 다 빼놓고 딸이라면 껌뻑죽는 딸바보노릇은 죽었다 깨어나도 못하는 전형적인 한국 아버지 스타일이라 어쩔 수 없다. 그렇다고 그 관계가 그렇게 무심하고 있는듯 마는 듯하게 넘어가지 않는다.

친하지 않고 미워하기도 하고 부끄럼까지도 느끼게 하는 아버지지만 그래도 마음 한구석에 큰 바위처럼 든든하고 믿음직핝 나만아는 종자돈같은... 그런 면도 있다.

내 딸들도 자신들의 아버지에 대해 그 정도의 믿음과 신뢰는 있었으면 한다.

책속의 아버지도 딸에게 곰살맞지는 않다. 하지만 마음속에 한없는 애정과 공감을 가지고 있다.

동생이 태어나 힘들고 스트레스를 받는 아이를 보면서 어찌 할 수 없는 안타까움.. 아빠로서바쁘고 세상에서 가족을 지키느라 지쳐 미쳐 돌보지 못함을 후회하고 미안해하면서도 관심을 보인다.

엄마가 해줄수는 없는 것 몸을 움직이는 것

여기서는 철봉을 도는 것을 아빠가 도와주면서 아빠와 딸은 가까워지고

아빠는 예전 자신의 새아빠에게 고마움을 다시 느낀다.

이야기속에 이런 구절이 있다.

"아이가 외로워할때는 부모도 외로운 법이다. 겨우 그것을 깨달을 나이가 되었다"

 

부모에게 서운하고 화나는 마음.. 그걸 부모가 모르는 것은 아니다.

알면서 못하는 것 해 줄 수 없는 안타까움은 부모에게도 있다.

아이를 키우니 그걸 알겠다. 예전 내가 속상해하고 형제들과 비교하며 엄마의 아빠의 사랑을 눈금하나하나 체크하며 저울질 하던 것들을 떠울린다.

그때 그렇게 공평치못한 사랑을 주던 부모도 힘들었을것이다.

지금 내가 그런것처럼.. 나중에 내 아이도 자식이 생기면 그걸 알까...

이 부녀가 자라서 어쩌면 감귤게 아빠의 부녀가 될지도 모르겠다

어찌어찌 부녀사이가 왠만해져서 좋아지다가도 단신부임이나 바쁜 직장일로 함께 할 시간이 없어지고 그게 익숙해지고 그 사이에 아이는 사춘기가 되면 또다시 데면데면하면서 같이 있는 것 자체가 더 부담이고 힘들어질 수도 있다.

떨어져 있다는 것이 익숙해진다는 건 참 불행한 일이다.

특히 그들 사이가 가족이라면 더 그렇다.

 

그밖에 12달에 맞게 어울리는 소소한 이야기들이 있다.

카네이션도 쓸쓸하고 애잔하면서도 따뜻했고 산타클로스 이야기도 그랬다.

서로가 익숙하고 가까워서 부담스러운 사이

세상에 가족만한게 있을까. 한없이 기대고 싶은 것이 가족이면서 그 앞에서만은 든든하고 좋은 모습만 보고 보이고 싶어 하는것도 가족이다.

나중에 아이에게 남편에게도 읽어보라고 하면 어떻게 느낄까...

가족이 부담이었던 경험이 있다면 ...

가족이 나를 구속한다고 가장 내가 속 마음을 털어놓을 수 없는 존재라고 느낄때가 있다면

이 이야기들이 위로가 되기를...

 

그래서 알라딘에서 이 책을 발견했을때 내가 아무런 망설임없이 장바구니에 넣었던 일이

모두에게 위안이 되어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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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데체 어떤 영화이길래.. 어떤 엄마이고 어떤 아들이길래..

그런 의문이 가득해서 극장에 들어섰다.

늦는 저녁 의외로 혼자 앉은 누군가의 엄마들이 있다,

나랑 같은 마음이었을까...

 

극장안이 어두워지고 영화가 시작된다.

토마토축제부터 나오는 붉은 색

집에 던져진 붉은 페인트

아이가 입은 붉은색 티셔츠 심지어 화면 한켠에 잡히는 테디베어도 붉은 색이다.

 

영화에는 끔찍한 장면이나 충격적인 장면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상영 내내 가슴을 죄어오는 긴장감은 계속된다.

사람들은 무슨일이 일어나서 무서운게 아니라 일어날거 같은 그 순간의 압박감  초조함을 더 못견뎌하는지도 모르겠다, 차라리 내 눈앞에 일이 벌어지고 피바다가 되고 시체가 둥굴고 살인자가 활을 쏘아보리는 자체는 그 자체가 긴장해소라고나 할까.. 이미 끝나버린거니까

무슨일이 생길듯 말듯한 느낌이 게속되면서 관객에게 쉴틈을 주지 않는다,

 

영화를 보는 내내 생각했다. 저 엄마가 도데체 뭘 잘못했다는 거지?

영화를 보기전 여러가지 정보를 통해 모성의 부재라든가 싸이코패스는 태어나는 것인가 등등의 논란거리가 있다고 하지만

내가 보기엔 (어쩌면 철저한 엄마입장에서 볼때) 그 엄마가 모성이 없다고 할 수 없다.

그녀는 다만 서툴렀고 모든 것이 낯설고 생소하고 그래서 난처했던것 뿐이다.

그동안 수십년의 교육을 통해서 일을 통해서 우리는 누구도 엄마가 되는 법 아빠가 되는 법 부모가 되는 법을 배운것은 아니다. 그냥 아이를 낳았으니 엄마가 되었고 그러니 모성은 젖이 나오는 것처럼 당연한것이고 모유수유를 하지 않은 것이 이유야 어찌되었든 아이에게 나쁜거라는 죄책감을 가지게 하듯이 모성이 나오지 않은 것도 나쁜거란 것만 주입되어 ㅇ왔다.

 

에바처럼 생각지 않은 임신 그것이 축복이고 마냥 좋지마는 않은 엄마가 얼마든지 있다. 그럴 경우 모든 것이 낯설고 힘들고 짜증의 연속일 수 있다.

누군나 엄마가 된다고 저절로 모성이 나오는건 아니다. (각박하게 들릴지 몰라도 사실 아닌가)

그래서 힘들었고 피하고 싶고 하지 않고 싶지만

그래도 에바는 정면으로 돌파하고 있었다.

아이의 울음을 어찌 할 줄 몰라 공사장 소음앞에 내팽개쳤다고 하지만 그건 아이를 내팽개친게 아니라 스스로를 그렇게 소음속으로 던져둔것으로 보였다. 이렇게 나도 나를 괴롭히는 소음같은 것에 익숙해져야 하지 않을까 하는 스스로애 대한 훈련으로 보였다.

그리고 말을 듣지 않는 케빈에게도 정말 정성을 다 한다.

엄마로서 서툰 몸짓이 있고 표정이 있지만 아이를 사랑하지 않거나 귀찮아하는 건 아니었다,

세상의 모든 엄마가 광고에 나오는 엄마처럼 늘 다정한 미소가 떠나지 않고 아이에게 친절하고 미리미리 알아서 모든걸 해줄 수 없다. 나 역시 그렇고

엄마도 사람이라 힘들고 귀찮고 몸이 아플때는 조금 건성일 수도 있고 짜증이 날 수도 있고 한두가지 빼먹기도 하지만 그건 기본적으로 애정이 없다고 할 문제는 아닌것이다.

애바는 나름 노력을 했고 화도 냈지만 문제는 캐빈이다.

 

그 아이는...

타고는 싸이코패스였던거 같다.

한 사람을 집요하게 미워하고 그 사람이 고통당하는 것을 즐기는 것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한사람을 모욕하고 미워하고 아프게 하는 것

그것도 그 나이답지 않고 지능적이고 치밀하기까지 하다.

 

사건이 터지고서도 에바는 동네를 떠나지 않는다.

동네 사람들의 시선 모욕 화풀이를 꿋꿋하게 견디며 살아간다.

집에 묻은 페인트를 지우고 집을 정리하는 모습은 진지한데다 경견하기까지 하다.

애바의 모성은 그런 것이다.

다정한 미소나 관심등 드러나는 것들은 부족할지라도

아이에 대한 책임에서 도망가지 않는다,

누구의 탓이라고 남탓하지도 않는다.

그냥 정직하게 힘들다 이상하다고 표현할 뿐인데 그것이 엄마답지 못하다 모성이 부족하다는 말을 듣게 된다.

그렇게 견디는 것 그것도 모성의 한가지이다.

 

왜 그랬을까 캐빈은...

영화가 끝이 나고 상영관에 불이 들어와도 나는 잘 모르겠다.

캐빈조차 그때는 알았지만 지금은 모르겠다고 했으니까.

어쩌면 그 말은 캐빈이 지금은 마음에 조금의 움직임이 생겼는지도 모른다는 뜻이 아닐까

조금씩 남과 접촉하고 남을 의식하는 마음 (그걸 공감이라고까지 할 수는 없지만)이 생기기 시작했다는 거 아닐까

오래오래 견디는 엄마를 보면서 변하지않고 곁을 지키는 에바를 보면서

 

영화를 보면서 마음이 불편하고 힘들었지만 에바만큼 캐빈도 밉지는 않았다.

그 멋진 얼굴에 번지는 사악한 미소에 몸서리가 쳐지긴 해도 미워할 수는 없다.

그도 뭔가 불편하고 힘든 것을 지니고 그걸 어찌할 수 없었던게 아닐까..

(어쨋든 영화니까 미워하긴 힘들었다. 현실이면... 아우....)

 

사람은 저마다 다르다. 같지 않으니 지금같은    문명의 발전을 이루고 그래도 살기좋은 다양하고 멋진 세상이 존재하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세상은 나와 다른 것을 못견뎌하고 남과 다르다는 것도 스스로 힘들어하고 조금이라도 같아지고 공감하고 이해 할 수 있는 범위안에서의 다양성만 바란다.

세상에는 에바도 있고 케빈도 있을 것이다.

바로 내 곁에 있을 수도 있다.

내 곁에 그들이 있다면

내가 그들이라면...

내가 바라는 건 공감과 이해일까..

그것까지는 아니더라고 그러려니 하는 무심한 시선일까..

늦은 밤 극장을 나오면서 곁에서 종종걸어가는 사람들이 예사롭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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