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한 건 동구야 엄마와 아버지와 할머니 일은 어른들의 일이라는 거야. 동구 네가 돕고 싶어도 잘 안될 수도 있어 그분들은 오랫동안 당신들의 방식으로 살아오셨기 때문에 동구가 아무리 좋은 방법을 알 고 있어도 그 분들이 실천하기는 어려운 일인지도 몰라. 또 네가 아버지께 이렇게 해보세요 라고 말씀드리면 어린아이가 주제넘게 나선다고 혼이 날지도 모르구 그러니까 오늘 내가 알려주는 방법은 네 마음 속에 잘 몯어두고 이 다음에 네가 커서 실천에 옮기면 돼 일단은 동구가 어른들 마음을 헤아리고 아버지나 할머니나 엄마에게 늘 힘이 되는 큰 아들이 되면어른들은 정말 기뻐하실거야"

 

".하지만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해버리면 어떤일에도 해결 방법을 찾을 수 없어, 남을 이해하려면 네가 그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진심으로 그 사람의 마음을 헤아려봐야 하거든 어렵더라도, 특히 이해하기 힘든 사람일수록 정성을 다해서 더  깊이 생각해야해 내 생각엔 말이야 동구 할머님은 아마 다섯 아니 네식구중에  당신이 가장 불행하다고 생각하고 계시는 것같아"

.........................

 그리움아 그리움아 나에게 힘을 다오 박선생님에 대한 그리움은 하나의 생명체가 되어 내 안에서 꿈틀꿈틀 태동을 시작하고 있었다. 그대하게 부풀어오른 그림움은 순식간에 내 안을 가득 메우고 자리기를 멈추지 않아 좁은 내 몸뚱이  하나하나마다 황금빛 깃털이 되어 쏟아져나왔다. 내 가슴팍에 맺힌 황금빛 깃털 내 온모을 휘감은 주홍빛 능소화 나는 단 한번도 땅에 붂여 있었던 일이 없는 것처럼 박선생님이 떠나신 어둑한 하늘 끝 어디쯤을 향해 가볍게 후루룩 날아올랐다. 꽃잎처럼 붉은 그리움이 나리는 눈처럼 세상을 덮었다.

 

하나

 

세상에 이런 아이가 있을까

한동

가족조차 모자라다고 무시하고 한쪽으로 밀어놓은 아이가, 난독증이 있어 글을 읽는것도 쓰는 것도 어려운 아이가 세상에서 가장 깊고 따뜻한 마음을 가졌다.

사람에 대한 배려 그리고 상대방을 깊이 공감하는 마음

나는 동구에게 그것을 본다.

사람이 사람을 대할때  진심이 있다는 것 나를 낮추고 상대방이 되어 그 사람의 마음을 헤아려 주는 것 동구는 그것을 알고 있다.

악다구니만 쓰고 나에게 욕지꺼리만 퍼붓는할머니도 집에서 무뚝뚝하고 폭력을 행사하며 누구의 말에도 귀기울이지않은 아버지 그리고 늘 당하기만 하는 엄마 사랑스러운 동생

어떤 사람이건 동구는 진심으로 대한다.

내가 미련해서 .. 내가 모자라서.. 그래서 나를 낮추고 상대를 위해주고  이해하려고 한다.

어쩌면 동구가 자존감이 낮아서 스스로를 귀히 여길줄 몰라서 그런지도 모른다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동구의 자존감은 그런게 아니다  나를 무시 하는  상대와 한판 뜨는 것 그게 자존심이 아니라 조금 물러서서 그 사람이 왜 그러는지 생각하고 헤아리는 것 그리고 내가 가슴아픈것이 더 낫다고 믿는 마음 그것이었다.

예전 큰아이가 6살 무렵 유치원에서 작은 세력다툼이 있었다. 한 친구를 두고 우리아이랑 다른 아이가 다투었고 막상 인기있는 친구는 모르는 상태에서 상대방 아이가 우리아이를 모함하고 놀지 말라고 하고.. 암튼 크게 번지지는 않았지만 아이가 마음을 많이 다친적이 있다. 그때 속상한 마음에 아이에게 그렇게 말했었다.

"너두 엄마한테나 선생님한테 말하지 그랬어. 그애 행동이 분명히 잘못된건데.. 야단맞아도 괜찮아 그애는.."

그때 아이의 말이

" 내가 아무한테도 말안하면 나혼자 맘아픈거지만 내가 누구에게 말해서 그 아이가 야단맞으면 두명이 맘아픈거니까.. 두명보다 한명이 맘아픈게 낫잖아.."

 

물론 아이는 그때 자기가 그런 말을 했다는 걸 기억하지 못할것이다.

하지만 그때  내가 느낀 충격 그리고 부끄러움은 참 오래 남았다.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느니 내가 상처를 받겠다. 그건 자존감이 낮은 문제가 아닐것이다.

누군가 타인이 아파하는 걸 공감하는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그건 내가 아파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저렇게 말하고 저렇게 행동하는 건 마음이 많이 아프다는거란걸 이해한다는 것이다.

가족도 학교에서도 아무도 동구에게 관심이 없다.

더 사랑스럽고 똑똑한 영주가 집에서 모든 관심을 가졌다, 학교에서도 동구는 그냥 성적이 떨어지고 공부에 관심이 없는 좀 모자란 아이일 뿐이었다.

그 아이가 마음속에 깊고 깊은 우물을 가지고 있어서 그 속에 얼마나  맑고 쨍한 물을 숨기고 있는지 알아 보는 사람은 없다. 아니 박선생님이  동구를 발견했고 집에서는 영주가 동구를 알았다.

박선생님은 아이가 지능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난독증을 겪는 다는 걸 알았고

영주는 자기 오빠가 누구보다 따뜻하고 좋은 사람이라는 걸 안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동구곁을 떠났다.

누구에게 의지하지 못했던 소년은 이제 스스로가 누구에겐가 의지가 되려고 한다.

동생이 그렇게 되어버린데 작은 죄의식을 가지고  정신을 놓아버린 엄마 이제 중심을 잡을 수도 없는 아빠 악다구니만 남은 할머니에게 스스로가 의지가 되려고 한다.

나의 10년을 아름답게 지켜봐준 아름다운 정원의 문을 닫으면서 이제 스스로가 누군가의 아름다운 정원이 되려고 한다.

이미 그 높고 깊은 동네에서 동구는 모두에게 아름다운 정원이었다.

누구도 원망하지 않고 누구에게도 기대하지않지만 누구나 기댈 수 있었던 아름다운 정원이 바로 동구였던거 같다.

 

두울

 

집안이 평화롭지 못하고 서로가 겉돌고 있는 가정에서 아이들은 외롭다.

부모만큼 아이들도 외롭고 서글프다.

아니 바꾸어 말하면 아무데도 의지할 수 없고 마음이 불안한 아이들 만큼 부모도 누군가 나를 위로해주고 의지 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으면 하고 바란다.

가족은 문제가 생겨도 누가 잘못했는지 따지면 안되고 서로 속으로 삭여야 한다고 그래서 아무도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 속으로조금씩 삭아가고 허물어가고 있는 것이다

겉으로는 멀쩡한데 속은 이미 속이 아니다.

동구네 가족을 보면 가족이 어디서 허물어지는지 보인다.

괜찮다 가족이니까 괜찬다고 하면서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아무도 따지지 않는 것 그렇게 조용히 넘어가는 그 순간이 정말 무서운 순간이다.

 

세엣

 

왜 성장소설속의 소년들은 혼자 성장할까

누구도 그 성장을 눈치채지 못한다. 적어도 그 순간은

그만큼 자란다는 것 내가 성숙해진다는 건 혼자서 조용히 이루어지는 일어여서인지도 모른다.

동구가 아름다운 정원의 문을 닫고 이제 다른 곳으로 내닫는 걸 아무도 모른다.

아니 알 필요가 없을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외로워지는다는 것이 커간다는 것일까

자라면서 조금씩 외로워지고 그걸 견디는것 그것이 성장인가보다

 

아이가 나중에 이 책을 본다면 누군가에 대한 배려와 함께 나의 외로움과 그걸 견디어 냄이 바로 나의 성장임을 알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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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소녀가 사랑에 빠진다. 어딘가 보호본능을 불러 일으키면서도 따뜻하고 심성 고와 보이는 남자에게 관심이 가고 사랑에 빠진다.

둘의 사랑이 조금씩 쌓여가던 중 남자는 망설이다 고백한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사실,,, 나는 늑대야

하지만 이미 사랑에 빠진 소녀에게 그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내가 사랑하는 상대가 늑대라는 것인데.. 그게 어쨌단 말이야

그리고 둘 사이에 아이가 태어난다.

둘의 사랑은 둘만의 비밀을 만들고 온전히 둘만의 힘으로 아이를 낳고 키우기로 한다.

그러나 동물의 본능을 가진 남자는  가정에 대한 책임감으로 죽었다.

그리고 소녀는 여자가 되어 두 아이와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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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아이를 낳았다고 바로 엄마가 되는 건 아니다.

세상의 모든 육아서에는 아이를 어떻게 키우는지 어떻게 돌봐야 하고 엄마가 해야할 일이 무엇인지 알려주지만  엄마의 혼란 막막함을 만져주는 위로는 없다

이제 막 스무해 조금 넘게 살아왔고 누구에게 의지할 곳도 없는 엄마로서는 더욱 막막하다

아이가 열이나고 자꾸 보채고 사고를 치고  이유없이 울음을 그치지 않아도 엄마는 막막하기만하다

게다가 이 아이는 완전한 사람이 아니다

세상 누구와도 같지 않은 존재인 늑대아이들

엄마는 세상의 편견으로부터 혹은 닥칠지 모르는 위험으로부터 아이를 보호하기위해 안간힘을 쓴다

그리고 결심한다. 아빠의 고향으로 돌아가 살자

자연속에서 최대한 사람의 관심에서 벗어난 곳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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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인가와 떨어진 곳에서 생활은 시작된다.

넉넉하지 않는 형편이라 농작물을 키워서 아이들을 먹여야 한다.

여기서도 서툰 엄마는 늘 실패다.

책을 보고 익힌 농사일은  제대로 된 수확물을 내주지 않는다.

책을 보고 익힌 육아가 매번 실수투성이었던것처럼  농사일 마저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

그러다 이웃의 고약해보였던 노인의 혹독한 도움과 이웃의 정으로 마을 사람과 소통하면서 농산물을 아이들을 키워낸다.

세상은 혼자 살 수 없다.

내 아이를 지키기 위해 어떤 실수도 하지 않기 위해 혼자 동동거리고 힘들어했던 엄마는 이제 조금씩 마음을 열고 세상과 단절되지 않은 연결이 아이를 키우는데 도움이 된다는 걸 알아간다.

  이렇게  여자가 엄마가 되어가고 어른이 되어가고 있었다.

아이들은 늑대의 본능에도 충실하면서도 인간에 대해 호기심을 썸네일가진다.

큰 딸  유키는 천방지축이던 유년기를 지나고 학교에 다니면서 다른 아이들과 다르다는 걸 부끄러워하고 점점 인간이 되려고 노력한다.

다른 무리속에 섞여 튀지 않는건  누구와도 비슷해 보이는 것 그걸 원한다

내성적이던 둘째는 쉽게 섞이지 못한다.

그러다 우연히 만난 늙은 늑대를 만나 자기의 정체성을 깨달아간다.

학교 보다는 산에서 만난 선생님에게 많은 것을 배우면서 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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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둥번개가 치고 태풍이 불던 날

유키는 좋아하는 남자아이에게 자신의 비밀을 이야기하고 새로운 성장을 결심하고

아메는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서 엄마를 떠나간다.

아무것도 손에서 놓지 못하던

아니 내가 손을 놓으면 그대로 벼랑으로 떨어질것만 같은 연약한 아기들의 손을 놓는 법을 하나(엄마)는 배운다.

어쩌면 아이들은 탯줄을 끊고 나오는 그 순간부터 하나은 독립된 존재로 살아가길 갈망할지도 모른다

다만 엄마는 열달을 함께한 그 시간을 잊지 못하고 한시라도 내가 눈을 돌리면 손을 놓으면 아이가 어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시달린다.

아이가 어느순간 내가 알 수 없는 막연한 눈빛으로 어딘가 먼 곳을 응시하면 엄마는 불안하다.

아이가 나를 떠날지도 모른다는 것 이제 내 울타리를 나갈지도 모른다느 것

그런데 그런 분리불안을 아이보다 엄마가 더 겁내고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다.

내 곁을 떠나 어떤 불이익을 당할지 어떤 위험에 빠질지 엄마는 혼자 상상하고 몸서리치고 차마 손을 놓지 못한다.

그래서 하나도 비오는 날 온 산을 헤메며 아메를 불렀던거 같다.

아직은 여리고 보드라운 내 새끼를 어쩌면 ,,,, 어쩌면...

 

그냥 아무 생각없이 아이와 함께 애니매이션을... 하는 마음으로 극장에 들어갔다가

막막한 마음으로 나온다.

남들과 다른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

세상에서 혼자의 몸으로 아이들앞에 닥칠지 모르는 모든 위험과 맞서 싸워야 하는 엄마

하나가 가졌을 불안과 막막함이 막 온몸으로 느껴지고 하나가 아메를 이제 보내줄때 느꼈을 막막하면서도 믿고 싶은 마음 그걸 함께 느낀다.

아이와 엄마가 함께 성장하고 세상에 살아가는 이야기가 바로 늑대 아이다..

 

영화가 끝나고 마지막에 흐르는 노래가 .. 참 처연하고 촌스러운데 그 가사를 가만히 보고 있자면

영화 보면서 참았던 눈물이 나려고 한다.

조금 상투적이고 촌스러운 그 가사가 바로 영화 내내 막막하게 공감했던 하나의 마음같아서..

 

대사 없는 하나와 늑대 인간의 사랑

커텐이 휘날리던 교실에서 자기의 정체성을 고백하던 유끼

그 아이르 가렸다 보였다 했던 커텐의 펄럭임

그리고 쓸쓸하지만 단단하게 등을 보이며 산으로 걸어가는 아메의 뒷모습

늘 웃어주던 하나의 코믹하기도 한 표정

참 아름다운 에니매이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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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재미있는 드라마라는 걸 뒤늦게 알았다.

집에 계신 티비는 달랑 네개의 공중파만 나오는지라 캐이블에서 하는 프로그램은 그저 그림의 떡이고 관심도 없었다.

그런데 인터넷에 올때마다 하도 1997 1997 해대는 통에 도데체 뭔가 하고 보기시작해서 딱 4일만에 15화까지 다 마쳤다.

아.. 이런 재미난 드라마가 있었다니..

첨 드라마를 볼때는 알콩달콩한 로맨스보다는 그 깨알같은 시대의 이야기가 더 흥미진진했다.

그런데 보다보니 시원이와 윤제 사이가 참 오묘하다.

어릴적부터 허물없이 보아온 친구사이

나는 저 아이의 식습관 잠버릇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걸 세세하게 다 알고  상대의 첫 생리가 언제 터졌는지 어떤 장면에서 눈물을 흘리고 어디에 빠져 있는지  말하지 않아도 다아는 사이

내가 뭐라고 말하지 않아도 우울하면 옆에서 어꺠를 내밀어 주고 기분좋아 미치겠는 순간에 등짝을 팍팍 맞아주며 내 마음을 받아주는 사이..

아 흔한 구도로 친구가 언젠가 연인이 되는거구나..

그렇게 시작하고 봤는데 오묘한걸 발견했다.

윤제에게 시원이는 엄마가 아닐까?

윤제가 싫어하는 오이를 대신 먹어주고 자장면에 올라가 있는 완두콩을 대신 먹어주고

내가 빨던 빨대를 아무렇지도 않게 그대로 입으로 빨고 침을 뭍혀서 뭐 묻은거 때어주고

그건 연인이 아니라 엄마가 자식에게 해주는게 아닐까

어릴적 부모를 잃은 윤제에게 아마 엄마는 늘 부제중이었을테고 그 빈 공간을  어느새 시원이가 차지하고 메워주는 것이아닐까 했다.

시원이가 그렇게 윤제를 구박하고 떄리고 아무렇게나 함부로 굴어도 그건 친구나 연인이 아니라 엄마가 내게 하는 잔소리고 간섭이고 잘되라고 하는 매질(?)이고 그런게 아닐까 싶었다.

그렇게  윤제의 정서적 빈공간을 채워주는 사람 그 사람이 시원이고 그렇게 둘이 정을 쌓고 그게 사랑으로 변해간다.

 

열달동안 엄마의 뱃속에 있다가 나온 아이는 몹시 두렵다. 탯줄이 잘리고 세상에 혼자 버려진 느낌 그때 첨으로 나를 안아주고 배고플때 먹을 것을 주고 기분나쁜 젖은 귀저기나 불쾌함 두려움을 울음으로 나타내면 귀신같이 알고 와서 챙겨주는 사람 그 사람이 엄마였다.

(그 엄마에게 모성이 자연스러운가 아닌가는 차후로 미루고 일단)

그런 엄마가 채워주는 정서적인 안정감은 아기에게 대단한 것이다.

언제나 든든한 울타리고 빽이고 투정이나 화내는 것짜증내는 것 다 받아줄 사람

내가 나보다 더 편하게  만만하게 볼 수 있는 사람

그런 엄마가 아이의 정서를 채워주고 나면 아이는 세상에 나설 용기가 생기고 또다른 세상의 문을 아무런 주저함 없이 열어젖힐수 있지 않을까

윤제와 시원이를 보면서 나는 두 사람이 연애를 하고 밀당을 하고 서로 마음을 몰라주고 그게 아니라 어쩌면 20년 가까이 그렇게 자기들도 모르게 서로 빈 정서의 공간을 채워주고 있는 엄마와 아들같은 관게구나 하는 걸 보았다.

시원이의 잔소리 니킥 무모한 고집이 윤제를 강하고 단단하게 만들면서 정서적 안정감을 함께 주었던게 아닐까

책 썸네일

최근 읽었던 홍당무

그 소년도 불안하고  현실에 불만이 많은 엄마로 인해 정서적 빈 공간을 채우지 못한 소년이었다.

늘 속을 줄 알면서도 엄마말을 믿고 따르고 뭐든 시키는대로 하는 것도 사랑받고 싶다는 욕구가 아닐까 싶다. 채워지지 않은 내 정서의 빈공간을 어서 채워달라고 비어있어 지금 내가 몹시 불안하고 두렵다고 그렇게 말하고 있는 중이 아니었을까

지치고  임계점까지 화가 찬 엄마의 마음을 그스를까봐 자기 감정은 죽이고 담담하게 바라보면서도 자꾸 바라는 것

그도 빈 공간이 많은 소년이었다.

 

그리고 지금 한참 자라는 내 아이들에게는 얼마만큼의 빈공간이 남아있을까

탯줄을 자르면서 부터 함께한 불안과 두려움을 나는 얼마나 달래주고 안아주었을까

어디서 봤는지 모르겠지만

사랑은 주는 사람이 기준이 아니라 받는 사람이 기준이라고 했다

사랑이 아니라 배려가 그랬다는 건지 좀 모르겠다

주는 사람이 이만하면 충분하다가 기준이 아니라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 감사하고 이만하면 충분하ㅏ다고 느끼는 만큼이 진정한 충분한 배려고 사랑이라고

주는 입장에서 생각하면 나는 이만큼 주었는데 왜 반응이 없는가 왜 나에게 돌아오는 댓가가 없는가를 생각하게 되는데 받는 사람입장에서는 오히려 그것이 동정이거나 강요로 느껴질 수도 있단다

내가 이렇게 희생해서 너를 가르치고 기르고 돌보는데 너는 왜 그렇게 삐딱하게 나를 보고 나를 원망하니 내가 도데체 뭘 잘못했니? 나는 하느라 했다.

이런건 어쩌면 자식에게 족쇄가 되고 도망가고 싶은 계기가 되지 않을까

아이의 정서를 매워주면서도 쿨한 엄마

늘 아이를 바라보고 있지만 조금은 거기를 두고 무심한 엄마

그 적당한 거리가 참 어렵다.

암만 생각해도 홍당무의 엄마 르픽부인은 홍당무를 사랑하는 방법이 홍당무가 원하는 방법이 아닌걸 모르는 거같다. 그럼에도 자기 방식으로 사랑이라고 믿고 퍼부으면서 혼자 지쳐갈 그녀가 안쓰럽다.

나는 지금 나 혼자 일방적으로 사랑이라고 퍼부으면서 혼자 지쳐가고 있지 않나

사춘기가 된 아이는 그걸 지*이라고 받아들이는 건 아닐까.

갑자기 불안하다.

딱 윤제에게 시원이만큼 되는 그런 사랑이 필요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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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당무 비룡소 클래식 3
쥘 르나르 지음, 펠릭스 발로통 그림, 심지원 옮김 / 비룡소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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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기억속의 홍당무는 참 재미있고 따뜻했다.

그 엄마가 아이를 왜그렇게 학대했는지의 기억보다는 홍당무가  이름과 비슷하게 당혹스럽고 어처구니없는 엉뚱한 아이라는 기억이 남아있었다.

시간이 흐르면 모든 기억이 아름답게 미화된다는 걸 알지만 이 책을 읽은 느낌이 따듯하고 재미있다는 건 어떤 이유일까

나의 유년이 홍당무처럼 우울하고 힘든것도 아니었지만 보통의 가정에서 중간에 낀 아이가 가지는 특유의 우울하고 뭔가 모르게 아래위로 치인다는 자기 연민이랄까 자격지심이랄까 그런것이 홍당무에 빠지고 재미있게 본게 아니었을까

아 나만 이렇게 힘든건 아니구나 이렇게 엄마에게 오해받고 이쁨받고 싶어하는 아이가 여기 또 있구나 적어도 나는 이 아이처럼 더럽고 엉뚱하진 않으니 더 사랑받을 수 있겠지.

그렇게 누가 나무라거나 뭐라고 하지 않아도 혼자 주눅들고 우울하고 사랑에 굶주렸던 아이에게 홍당무는 따뜻한 위로가 되었던거같다

 

다시 나이를 먹어 이제 내가 그 홍당무의 엄마 나이 가까이 와서 읽게 되면서

참 이 집안도 만만치 않구나 싶었다

엄마는 왜 형과 누나와 달리 홍당무를 무시하고 엽신겨기고 만만하게 여기는지 

흔히들 세아이의 막내라면 그 존재만으로도 사랑스러워 숨쉬고 있는 것만 봐도 대견스럽다고하던데

홍당무는 막내이면서 그런 사랑스러움은 전혀 없고 사랑받고 있다는 걸 느끼지도 못하고 그저 엄마가 자기를 사랑해 주기를 갈망하면서 비위맞추기에 급급하다

그리고 항상 모든 상황을 합리화 하면서 엄마가 화난 이유 자기를 매질하는 이유를 자기에게서 찾으려고 노력하고 엄마를 이해하려고 한다.

그러나 마침내 그것도 쌓이고 쌓여서 엄마를 미워한다고 고백하고 집을 나가고 싶어한다.

그러나 반전..(이랄수 있을까... 이미 행간에 드러간 일이어서..)

아버지가 말한다 "나는 니 엄마를 좋아한다고 생각하니?"

아무도 좋아하지 않은 엄마 엄마의 난폭함 변덕 일관성없는 야비함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그 엄마가 이상한 사람이라서?

책에서 구체적으로 나오지는 않지만 아빠역시 엄마를 무시하고 막 대한다.

빵을 던져주고 다정한 말이나 대화도 없다. 깔끔해보이는 엄마의 성격과는 반대로 사냥을 핑계로 옷을 더럽히고 그걸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가정은 불안하다. 부부는 정이 없고 아이들은 스스로 그런 환경에 살아가는 자세를 갖추고 있다

큰 아들은 떼쓰고  나약함으로서 끈없없는 보호를 요구하고 딸은 다정하고 착하다는 이름을 얻어서 관심을 받는다. 그러나 홍당무는 무얼 해도 어색하고 우물쭈물하게 되고 머리로 고민하다가 행동으로 옮길 기회를 놓치고 오해받게 된다.

이런 어둡고 막막한 이야기가 외외로 담담하고 유머스럽게 쓰였다.

어떤 감정도 드러니지 않고 있는 모습을 스케치하듯이 담담하게 홍당무에 대해 이야기해주고 그 집 상황을 이야기 해준다. 그리고 간간히 유머도 섞여있다.

이런 담담한 문체가 홍당무네 상황을 더 무겁게 보이게 한다.

 

그러나 홍당무네 집이 문제가 있는 집인걸까

어쩌면 100년이 지난 지금 이런 가정을 보편적인게 아닐까

능력있는 아버지 상냥하고 가정적인 엄마 그리고 나름 공부도잘하고 말도 잘 듣는 아이들 물론 아이가 많다보니 장난꾸러기도 양념처럼 끼어있고

하지만 그 안을 들여다 보면 모두가 외롭고 사랑을 원한다.

가장 가까운 가족이 소통이 힘들고 서로를 너무나 당연히 여겨서 사랑에 인색하다.

요즘 어느가정에도  고통의 무게가 다를뿐 각각의 무게를 가진 홍당무들이 있지 않을까

 

집을 나가고 싶어하는 홍당무는 못나가고 결국 집에서 모든 걸 견디고 익숙해지고 그러면서 조금씩 변해가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호밀밭의 파수꾼의그 녀석이 생각난다.

그 녀석도 학교를 퇴학당하고 멀리 떠나겠다고 하지만 결국 떠나지 못했다.

둘다 가정에서 겉돌고 뭔가 가슴속에 가득한 원망을 드러내지 못하고 혼자 끙끙거리는 나이에 비해 조숙한 소년들이다.

둘다 중산층이상 가정을 가졌다는 것 보기에는 멀쩡하다는 것도 비슷하다

그녀석에게는 피비라는 아름다운 여동생이 있었지만

홍당무에게는 누가 있을까 간혹 아빠가 마음을 알아주지만 ...

 

내가 엄마라서 인지 나는 그 엄마를 이해하고 싶다.

엄마의 화풀이 대상 이 홍당무라는 것이  옳은 것은 아니지만 그 엄마가 속풀이를 할 유일한 대상이라는 것 그것만으로도 그 엄마도 가엾다.

 

"홍당무야 행복따윈 단념해라 이 아버지가 분명히 말해두겠는데 너는 지금보다 결코 더 행복해 질   수는 없다. 암 그렇고 말고"

"장담하시는군요"

"체념해라 그리고 너 자신의 방비를 튼튼히해라 어른이 될때까지 말이다, 네가 한 사람 몴을 하게 되면 그때는 자유롭게 될 수 있단다. 타고난 성질이나 마음은 바꾸지 못하지만 가정은 바꿀 수 잇단다. 또 부모 형제와 인연을 끊을 수도 있고 그때까지는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는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 하탆은 일에 속썩이지 말고 주위사람들을 살펴보도록 해라. 특히 네 가까이 있는 식구들을 말이다. 재미도 있을 게다. 내가 장담하지. 뜻밖에 위안이 되는 일도 있을 거라고 말이다"

"그건 그걸 거예요. 각자가 다 자기의 괴로움을 지녔을테니까.내일부터 그런 사람들을 동정해 보겠어요 오늘까지 저는 저 자신만의 정의를 외친거예요. 다른 사람의 어떤 가혹한 운명도 제것보다 다 나아보였던 거죠. 제 엄마는 단 한분 뿐잉에요. 그런엄마가 절 사랑해주지 않고 저도 엄마를 사랑하지 않는 거예요, "

"그러면 너는 내가 엄마를 사랑한다고 믿고있니?"

 

세상을 살아온 아버지의 충고. 자신의 경험에 비춘  조언이기도하지만 적나라한 현실이기도 하다. 일단 바짝 엎드려 견디는 건뿐이다. 그리고 내가 힘을 가졋을때 바꿀 수 있는 건 바꾸어라 가족마저도...

어쩌면 아버지의 이말 한마디에 홍당무는 가족안에서 희생하고 구박받는 자기의 존재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을까  나 하나 희생하는 것 그것이 우리 가족이 지탱하는 힘인지도 모르겠다고

이후 홍당무의 행동은 여전하고 홍당무를 대하는 사람들도 여전하지만 홍당무의 속은 변했을 것이다

엄마를 이해하진 못해도 인정해버릴 수는 있고  은연중 자유를 누리는 법도 알아간다.

이것이 홍당무의 성장일까

어느 성장소설보다 서글프지만 웃음을 놓지 않게 만드는 묘한 이야기였다.

홍당무는 참 독특한 매력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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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쓰는 글들은 리뷰라기보다는 개인적인 생각에 가까우니 페이퍼에 속해야하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책을 읽고 느낀점은 쓴다는 게 독서감상문이고 그게 리뷰라고까지 할 수 있나 싶은 생각이 문득 든다.

책을 읽으면서 내 위치와 상황에 비춰보기도 하고 그때그때  변화하는 내 변덕이 맞춰서 책이 이렇게도 읽혔다가 또 며칠을 묵히고 다시 책장을 넘겨보면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내가 나이를 먹어가는 것

그리고 내 상황이 시간이 흐름에 따라 달라지는것

그때 그때 기분이 변화하는 것 날씨가 변하는 것

그런 것들이 책을 대할때 조금씩 미묘하게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한때는 뭘 읽어도 시큰둥하고 시니컬해지고 그래서 어쩌라고... 하는 맘이 들때가 있었다.

좋은 구절을 읽어도 누구나 좋다고 하는 책을 읽어도 그래서 뭐

이렇게  남에게 알랑거리는 말 누가 못하랴.. 그런 심보만 가득한 적이 있었다.

책을 읽고 이야기하면서도 왠지 남의 이야기는 다 삐딱하게 들리고 흥 니가 뭘 그리 잘 알아서 하는 심보가 들기도 했었다.

책을 많이 읽는다고 사람이 변하는 것도 아니다

더 좋은 사람이 되거나 훌륭해지는 것도 아니다.

책몇권 더 읽었다고 해서 사람이 변한다면 세상에 변하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으랴

그럼에도 책을 읽는 이유는 그나마 변하거나 조금 나아질 기회를 가져보고자 하는 게 아닐까 싶다

나는 좋은 사람도 아니고 좋은 부모도 아니고 좋은 자식도 아니다

아주 가끔 좋안 그런 존재가 되기는 하겠지만

일반적으로 나의 삶과 행동들을 평균내어보면 그냥 그런 인간이다.

그나마 더 이상 아래로 떨어지지 않은것이 그나마 책이라고 읽어서일까싶기도 하다.

 

친정엄마는 책 많이 읽는 남편 즉 나의 친정아부지한테 너무 치여서 책이라면 지긋지긋하고 책 읽는 사람들의 잘난척이 무지 싫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책 많이 읽는 니 애비 그리고 너 혼자 잘나서  수준낮은 사람이랑은 대화도 안하고 혼자 고고하고 잘 나서 매사 무시하고 대꾸도 없고 숙이 음흉하다...

이게 엄마가 본 책보는 사람들의 속이다.

차라리 책을 보지 않고 드라마를 보고 텔레비젼 많이 보는 사람들이 오히려 공감능력도 좋고 남들말도 잘 들어주고 이해해준단다.

뭐 틀린 말이 아닐 수도 있다.

근데 엄마가 착각하는 것중 하나는

아부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말이 없는 이유는 사실 잘난척 하기뒤해서가 아니라 무지하기때문이다.

뭐라고 질문을 받아서 즉각 답이 나오는 뭔가 지식적인 것이 아닌다음에는

뭐든 즉각 대답을 하거나 뭐라고 하기 어려운게 꽤 된다.

나도 잘 모르고 뭐라고 쉽게 말했다가 그 쉬운말에 내가 책임을 져야하는 것이 무거워서 쉽게 말을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어떻게 생각하니? 이렇게 해야하지 않니? 등등  그런 류의 질문에 쉽게 답하기 힘들다

나중에 시간이 지나면 아.. 그때 이렇게 말을 할걸 하는 생각이 뒤늦게 든다.

한참 뒤에 이렇게 대꾸가 생각나는 걸 보면 나도 참 멍청하고 단순한 사람인데 다만 책을 좀 많이 본다고 잘난척 하는 걸로 오해받는 건 억울하다. 요즘 친정아부지를 가만 보면 어쩌면 아쩌지도 나처럼 뭔가 알지못해 대꾸를 못하거나 하는 건데 고학력과 고지식으로 인해 오해받고 사는 게 아닌가 싶은 의구심이 든다.

 

책을 읽는다고 세상이 바뀌지는 않는다. 내가 바뀌지도 않는다

어느순간 내가 깨달음을  만나서 대단하게 변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어제만큼은 유지하게 위해서 조금 아주 개미 뚱구멍먼큼은 나아지지 않을까하는  소박한 바람으로 책을 본다.

그리고 숫기없고 사교성이 없어서 책속으로 글 줄 속으로 숨어야 마음이 편안한 활자 히키고모리같은 면이 있기때문이기도 하다.

사람보다는 책이 대하기 편하고 안정적이기때문에책을 읽는다고 하면

내가 너무 불쌍해보일까?

오늘도 모임에 다녀왔더니 괜히 피곤하고 힘들다 그들을 싫어하는 것도 그 사간이 지루한것도 아니었는데 나도 무지 웃고 이야기하고 좋은 시간이었는데 집에 돌아오 혼자 이렇게 알라딘을 뒤지고 다니는게 더 편하니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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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11 16:5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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