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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당무 ㅣ 비룡소 클래식 3
쥘 르나르 지음, 펠릭스 발로통 그림, 심지원 옮김 / 비룡소 / 2003년 10월
평점 :
내 기억속의 홍당무는 참 재미있고 따뜻했다.
그 엄마가 아이를 왜그렇게 학대했는지의 기억보다는 홍당무가 이름과 비슷하게 당혹스럽고 어처구니없는 엉뚱한 아이라는 기억이 남아있었다.
시간이 흐르면 모든 기억이 아름답게 미화된다는 걸 알지만 이 책을 읽은 느낌이 따듯하고 재미있다는 건 어떤 이유일까
나의 유년이 홍당무처럼 우울하고 힘든것도 아니었지만 보통의 가정에서 중간에 낀 아이가 가지는 특유의 우울하고 뭔가 모르게 아래위로 치인다는 자기 연민이랄까 자격지심이랄까 그런것이 홍당무에 빠지고 재미있게 본게 아니었을까
아 나만 이렇게 힘든건 아니구나 이렇게 엄마에게 오해받고 이쁨받고 싶어하는 아이가 여기 또 있구나 적어도 나는 이 아이처럼 더럽고 엉뚱하진 않으니 더 사랑받을 수 있겠지.
그렇게 누가 나무라거나 뭐라고 하지 않아도 혼자 주눅들고 우울하고 사랑에 굶주렸던 아이에게 홍당무는 따뜻한 위로가 되었던거같다
다시 나이를 먹어 이제 내가 그 홍당무의 엄마 나이 가까이 와서 읽게 되면서
참 이 집안도 만만치 않구나 싶었다
엄마는 왜 형과 누나와 달리 홍당무를 무시하고 엽신겨기고 만만하게 여기는지
흔히들 세아이의 막내라면 그 존재만으로도 사랑스러워 숨쉬고 있는 것만 봐도 대견스럽다고하던데
홍당무는 막내이면서 그런 사랑스러움은 전혀 없고 사랑받고 있다는 걸 느끼지도 못하고 그저 엄마가 자기를 사랑해 주기를 갈망하면서 비위맞추기에 급급하다
그리고 항상 모든 상황을 합리화 하면서 엄마가 화난 이유 자기를 매질하는 이유를 자기에게서 찾으려고 노력하고 엄마를 이해하려고 한다.
그러나 마침내 그것도 쌓이고 쌓여서 엄마를 미워한다고 고백하고 집을 나가고 싶어한다.
그러나 반전..(이랄수 있을까... 이미 행간에 드러간 일이어서..)
아버지가 말한다 "나는 니 엄마를 좋아한다고 생각하니?"
아무도 좋아하지 않은 엄마 엄마의 난폭함 변덕 일관성없는 야비함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그 엄마가 이상한 사람이라서?
책에서 구체적으로 나오지는 않지만 아빠역시 엄마를 무시하고 막 대한다.
빵을 던져주고 다정한 말이나 대화도 없다. 깔끔해보이는 엄마의 성격과는 반대로 사냥을 핑계로 옷을 더럽히고 그걸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가정은 불안하다. 부부는 정이 없고 아이들은 스스로 그런 환경에 살아가는 자세를 갖추고 있다
큰 아들은 떼쓰고 나약함으로서 끈없없는 보호를 요구하고 딸은 다정하고 착하다는 이름을 얻어서 관심을 받는다. 그러나 홍당무는 무얼 해도 어색하고 우물쭈물하게 되고 머리로 고민하다가 행동으로 옮길 기회를 놓치고 오해받게 된다.
이런 어둡고 막막한 이야기가 외외로 담담하고 유머스럽게 쓰였다.
어떤 감정도 드러니지 않고 있는 모습을 스케치하듯이 담담하게 홍당무에 대해 이야기해주고 그 집 상황을 이야기 해준다. 그리고 간간히 유머도 섞여있다.
이런 담담한 문체가 홍당무네 상황을 더 무겁게 보이게 한다.
그러나 홍당무네 집이 문제가 있는 집인걸까
어쩌면 100년이 지난 지금 이런 가정을 보편적인게 아닐까
능력있는 아버지 상냥하고 가정적인 엄마 그리고 나름 공부도잘하고 말도 잘 듣는 아이들 물론 아이가 많다보니 장난꾸러기도 양념처럼 끼어있고
하지만 그 안을 들여다 보면 모두가 외롭고 사랑을 원한다.
가장 가까운 가족이 소통이 힘들고 서로를 너무나 당연히 여겨서 사랑에 인색하다.
요즘 어느가정에도 고통의 무게가 다를뿐 각각의 무게를 가진 홍당무들이 있지 않을까
집을 나가고 싶어하는 홍당무는 못나가고 결국 집에서 모든 걸 견디고 익숙해지고 그러면서 조금씩 변해가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호밀밭의 파수꾼의그 녀석이 생각난다.
그 녀석도 학교를 퇴학당하고 멀리 떠나겠다고 하지만 결국 떠나지 못했다.
둘다 가정에서 겉돌고 뭔가 가슴속에 가득한 원망을 드러내지 못하고 혼자 끙끙거리는 나이에 비해 조숙한 소년들이다.
둘다 중산층이상 가정을 가졌다는 것 보기에는 멀쩡하다는 것도 비슷하다
그녀석에게는 피비라는 아름다운 여동생이 있었지만
홍당무에게는 누가 있을까 간혹 아빠가 마음을 알아주지만 ...
내가 엄마라서 인지 나는 그 엄마를 이해하고 싶다.
엄마의 화풀이 대상 이 홍당무라는 것이 옳은 것은 아니지만 그 엄마가 속풀이를 할 유일한 대상이라는 것 그것만으로도 그 엄마도 가엾다.
"홍당무야 행복따윈 단념해라 이 아버지가 분명히 말해두겠는데 너는 지금보다 결코 더 행복해 질 수는 없다. 암 그렇고 말고"
"장담하시는군요"
"체념해라 그리고 너 자신의 방비를 튼튼히해라 어른이 될때까지 말이다, 네가 한 사람 몴을 하게 되면 그때는 자유롭게 될 수 있단다. 타고난 성질이나 마음은 바꾸지 못하지만 가정은 바꿀 수 잇단다. 또 부모 형제와 인연을 끊을 수도 있고 그때까지는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는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 하탆은 일에 속썩이지 말고 주위사람들을 살펴보도록 해라. 특히 네 가까이 있는 식구들을 말이다. 재미도 있을 게다. 내가 장담하지. 뜻밖에 위안이 되는 일도 있을 거라고 말이다"
"그건 그걸 거예요. 각자가 다 자기의 괴로움을 지녔을테니까.내일부터 그런 사람들을 동정해 보겠어요 오늘까지 저는 저 자신만의 정의를 외친거예요. 다른 사람의 어떤 가혹한 운명도 제것보다 다 나아보였던 거죠. 제 엄마는 단 한분 뿐잉에요. 그런엄마가 절 사랑해주지 않고 저도 엄마를 사랑하지 않는 거예요, "
"그러면 너는 내가 엄마를 사랑한다고 믿고있니?"
세상을 살아온 아버지의 충고. 자신의 경험에 비춘 조언이기도하지만 적나라한 현실이기도 하다. 일단 바짝 엎드려 견디는 건뿐이다. 그리고 내가 힘을 가졋을때 바꿀 수 있는 건 바꾸어라 가족마저도...
어쩌면 아버지의 이말 한마디에 홍당무는 가족안에서 희생하고 구박받는 자기의 존재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을까 나 하나 희생하는 것 그것이 우리 가족이 지탱하는 힘인지도 모르겠다고
이후 홍당무의 행동은 여전하고 홍당무를 대하는 사람들도 여전하지만 홍당무의 속은 변했을 것이다
엄마를 이해하진 못해도 인정해버릴 수는 있고 은연중 자유를 누리는 법도 알아간다.
이것이 홍당무의 성장일까
어느 성장소설보다 서글프지만 웃음을 놓지 않게 만드는 묘한 이야기였다.
홍당무는 참 독특한 매력을 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