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내가 이름만을도 책을 고른다면 당연히 이 이름이 아닐까

"구병모"

 

 

드디어  "고의는 아니지만"을 다 읽었다.

내내 찜찜하면서도 감동한다. 아니 감동이라는 말은 틀렸다.

뭐랄까 이 작가의 끝은 어디일까 궁금하다.

현실을 상황을 우리의 일상을 이렇게 바라볼 수도 있구나 이렇게 비틀어볼 수도 있는거구나  계속 감탄하면서 책장을 넘긴다.

왜 첨 샀을 때는 이 책이 그렇게 넘어가지 않았을까? 그런데 지금 이렇게 잘 넘어가는 이유는 뭘까?

 

그의 글속에는 현실이 우리의 일상이 아닌 것이 없다.

비유가 사라져버린 언어의 도시. 늘 뭔가를 공평하게 해야하고 아이들 모두를 사랑하려고 노력하며 강박증에 갖혀버린 유치원 교사 육아가 너무나 고달픈 엄마. 곤충으로 변하는 성폭력자 등등

내가 일상을 살면서 한번은 스쳤던 생각들 순간순간 느낀 분노 절망이 이 책속에 고스란히 들어있었다.

 

 

아이를 키우면서 늘 절망했다. 아이는 육아책에 등장하는 메뉴얼대로 절대 진화하지 않는다.

끊임없이 나를 돌아보게 하면서 내가 어디가 부족한가 모성이 부족한가 엄마로서의 자격이 없는 것이 아닌가 ,,,, 끊임없는 죄책감이 시달렸다. 그리고 나의 욕망과 상반되는 육아법들은 끊이없이 내 안에서 충돌하면서 죄의식을 만들고 내 속을 갉아먹어갔다.

"어떤 자장가"를 읽으면서 나는 이상한 위로를 받는다. 나만이 아니다.

적어도 난 아이를 세탁기나 오븐 냉장고에 넣지는 않았다,

어두운 방에 그냥 내버려둔 적도 있었고 아이가 눈을 떠서 혼자 놀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아이가 울지 않는다는 이유로 내 몸이 피로하다는 이유로 그냥 모른 척 한 행동들은  이 여자에 비하면 정말 새발의 피가 아니었던가.. 그렇게 혼자 위안했다.

그리고 나도 이 여자처럼 아이를 사랑했노라고

 

내가 나이를 먹으면서 점점 더 선명하게 체득하게 되는 것

진짜 상처를 주는 사람은 선한 사람들이다. 착한사람의 착한 행동은 우리가 뭐라고 욕을 할 수도 없다. 그저 그 행동과 비교되어 내가  조금 더 나쁜 사람이 되고 내가 이상하고 불만이 가득한 사람이 될 뿐이다. 내가 논리적이지 못해서 지식이 딸려서 반박할수도 없지만 그러면서도 억울함이 하나구석에서 스멂수멀 올라오는 건 어쩔 수 없다.

물론 그 착한 사람도 상대적으로 악한 나도 "고의는 아니었"다. 아니었을 것이다.

"고의는 아니지만"의 유치원교사 f처럼 항상 공정하고 누구라도 상처없이 함께 할 수 있는 활동을 만들어내기 위해 애쓸 뿐이었다.

이러이러한 일들이 공정하고 누구에게나 불평없는 상황을 만들어 내는 거라고 하면 할말이 없다.

그러나 그 공정함이 주는 냉정함 무심함이 누군가에게는 날카로운 종이 모서리에 베이는 느낌으로 다가갈 수 밖에 없었다. 나도 모르는 새 상처가 생기고 붉은 피가 배어나온다. 내가 아픔을 느끼는 순간은 이미 피가 주르르 흘러내리는 순간이다. 상처가 생기는 그 순간을 인지하지도 못하고 상처를 가진다.

사실 F가 잘 못한건 아니다. 하지만 그 공명함이 선함이 아이들에게 상처가 된다는 걸 모른다. 난 늘 아이들을 사랑하고 공정하게 대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었다. 내가 순간 힘든다는 것 그리고 내 사비를 들여서가면서 나는 노력하고 있다고... F는  그렇게 항변할 자격이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상대가 받는 상처가 가치없거나 잘못된 것도 아니다. 공정함이라는 이름으로 대항마저 할 수 없는 아이들은 마지막 F의 불운앞에서 "미농지같은 미소"를 짓게 만든다.

누구를 탓할것인가...

세상에 사람들이 부대끼면서... 더구나 배경도 다르고 개성도 다른 사람들이 부딪치면서 어떤 억울함도 부당함도 없는 인큐베이터 속같은 무균질의 사회란 있을 수 없는 것 아닌가.. 어디선가 누군가는 상처받고 억울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내 감정선들으르 그렇게 드드럭 박아버리는 일도 옳지는 않았다. 그렇게 감정을 죽이는 것이 살아가는데 부당함을 받는 것이라 믿고 밀어버린다. 그로인해 우리가 잃어야 하는 것 그런것 까지 헤어리는 여유가 없을 것이다. 언제나 후회는 나중에 문이 닫히는 순간 쑤욱~ 들어오는 법이니까.

 

그래서 희망을 이야기하면서 우리를 서서히 고문에 익숙하게 만드는 이 사회에서 "조장기의 그 학생처럼 모든 나의 불행이 오로지 나만의 책임이고 나만의 문제로 귀착된다. 내가 못나서 돈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현실을 받아들여야 하고 그래도 나아지지 않는 현실에서 차라리.. 불행의 냄새를 풍김으로 새들의 공격대상이 대기를 갈망하게 되는 이 현실이 슬프고 무섭다.

이미 새들에게 공격당한 인간의 살덩이에 부러움을 느껴야 하는 현실이 단지 이야기속의 것일뿐이라고 단언할 수 있을까

 

딸아이를 키우면서 무서운게  행여 아이의 동심에 순수에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남지 않을까 전전긍긍한다는 점이다. 내가 능동적으로 행하는 성에서도 상처를 입을 수 있는 현실에서 내가 원치 않는 상황으로 몰려서 가지는 상처들이 미루어서 여전히 두렵고 무서웠다.

세상을 흉흉하게 하는 여러 사건사고를 보면서 이러한 언제든 호르몬의 작용으로 악마로 변하는 인간들을 격리시키고 혼내줄 방법을 상상하게 한다. 사형집행이라든가 종신형 거세법을 떠나서 아예 이사람들이 단한번의 실수조차도 용납하지 않도록 강학 독하게 하는 무슨 방법을  간절히 바라는 지금 "곤충채집"을 읽었다. 작가가 이 작품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든 나는 이 방법이 몹시 맘에 든다(어쩌면 내 속의 악마가 원하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사람으로서 한번의 기회를 더 준다던가.. 사람이 사람을 죽일 수는 없다던가 그들에게도 인권은 있다는 말들은 다 개소리라고 생각케 하는 요즘세상에 이보다 더 단순하고 위협적이며 모든 잠재적 범죄자를 잠재울 수 있는 방법이 또 있을까....

 

책속의 이야기는 허구이고 끝없이 펼쳐지는 환상이지만  더불어 지극히 현실적이고 일상적이었다. 지금 이 순간 내가 상상하고 내머릿속을 스쳐갔던 것들이 이야기속에 들어있다.

누군가를 향해 마구 찔러대고 싶은 칼날들 가끔은 나를 향해 휘두르는 몽둥이가 이 속이 있다.

읽고서 작가의 부족함인지 나의  아둔함인지 그래서 어쩌라고... 하는 결말을 내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래 이런거지... 이럴때가 있었고 이런 순간이 있었고 이럴 필요가 있다고.. 함께 동조하고 함께 날카롭고 반짝이는 것을 휘두르고 싶게 하는 것

그것이 이 책에 있다.

 

이 작가의 생각의 끝은 어디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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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이제 떠나지만
너의 뒤에 서 있을 거야
조금은 멀리 떨어져서
조금도 부담스럽지 않게

 

박진영의 저 노래가 딱 맞는 영화였다.

"기다려" 이 한마디에 46년을 기다려주는   늑대소년

순이가 주고 간 숙제를 완벽하게 해내면서 기댜렸던 순이의 첫사랑

 

사실 마지막 장면을 두고 너무깬다든가 신파의 극치라고 하면서 영화전체가 별로라는 평도 많았지만 나는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가장 극적이고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사실 46년이 흘렀으면 어여뻤던 순이도 할머니가 될 수밖에 없질 않은가

그렇게 머리위에 서리가 내리고 얼굴이 자글자글 해진 순이를 아름답다고 말해주면서

니가 부담스럽지 않을 딱 그만큼의 거리 뒤에서 이렇게 너를 기다렸노라고 하는 늑대소년의 아직도 말간 얼굴은 정말이지 신파의 극치이면서 동시에 모든 여자들의 로망이며  하이틴 로맨스풍의 최고가 아닐까

내가 변해도 내가 떠나도 나를 잊지 않고 기다려주는 누군가....

이건 비현실이면서도 지극한 바램이니까..

(나만 그런거 아니길... ^^)

 

영화는 사람들 말처럼 가위손을 적당히 가져다 만든 영화이기도 했고

옛날 향수를 적당히 도배하면서 뭔가 미진한 부분은 그렇게 예전이니까... 하면서 넘어간 부분도 많았다.

늑대소년이 소녀를 도와주고 괴력을 발휘하는 건 가위손이고

아이들이 천진난만하게 노는 건 어딘가 동막골을 닮았고

뭐 그랬지만 그게 어쨌단 말인가

송중기가 내내 화면을 뽀사시 하게 채우고  단지 얼굴만 내미는게 아니라 말없이도 눈동자로 표정으로 모든 감정을 보여주고 설레게 하고 그러면 된거지

감독으로서는 송중기를 가지고 그의 매력을 최대치로 이끌어내면서 이야기도 나름 달달하고 감상에 젖게 만들어 내면서 더불어 이 배우 연기도 정말 꽤 하는구나 하게 느끼게끔 한거..

그것만으로 꽤 성과가 괜찮지 않나 싶다.

적어도 함께 간 40대 여성과 13세 10세 소녀는 눈물을 찔끔거렸고 옆에 앉았던 알 수없는 20대와 10대 고교생들도 코를 훌쩍였고 적어도 앞에 앉은 10대 남학생들이 중간에 나가지는 않았으니까

다 아는 뻔한 이야기라고 하지만 오히려 알만한 스토리고 내용이라 더 감정이입이 잘 되고 몰입하고 느끼게 되는 것도 있다. 게다가 화면이 뽀사시하고 가슴설레게 하는 누군가가 계속 나를 그윽한 눈으로 바라봐준다면야....

 

보고 나오면서 실없는 소리를 했다.

"어쩌면 늑대아이의 유끼 다음 이야기가 아닐까... 산으로 갔던 그 유끼가 마을로 내려와서 어떤 소녀를 사랑하게되었다면 이런 스토리가 되지 않을까?"

아이는 한마디 한다

"적어도 유끼는 학교도 다녔고 사람처럼 살았으니까 저렇게 동물적이지는 않을거야"

그렇구나..

 

평생 한 암컷과만 다니고 가족애가 강하고 짝이 죽으면 홀로지낸다는 늑대..

영화 두편을 그렇게 봤더니

사람보다 늑대가 더 나은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흔히들 남자는 늑대... 라면서 말들 많지만 차라리 늑대같은 남자가  사람같은 늑대보다 나은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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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의 소음에 대해 너무 짜증만을 내지 말라

어쩌면 짜증나고 내 신경을 긁어대는 그 소음속에 그 이웃의 처절한 삶이 들어있을 수도 있고

그 소움이 이웃과 나를 연결시켜주는 작은 고리가 될 수도 있다.

용의자 x의 헌신도 사실 그 이웃간의 소음에서 시작된다.

이웃에서 들리는 소음이 누군가에게는 인생을 다시 살게 만드는 희망이 되기도 했다

또 그 소음으로 이웃의 아픔을 알고 도와주면서 혼자만 간직했던 마음을 행동으로 옮기던 계기가 되기도 한다

어쩌면 이 책의, 혹은 영화의 작은 미덕은 이웃간의 소음을 짜증과  감정폭발로 연결시키지 않고

관심과 사랑으로 대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인지도 모르겠다,

 

아파트혹은 공동주택에서 이웃의 소란과 소음으로 스트레스받고 고통받는 이웃도 있지만

이웃에서 한두번 항의하러 온 경험만으로도 온 신경이 곤두서고 나의 모든 행동 하나하나를 점검하고 되새김질하는 스트레스를 받는 이웃도 있다.

아주 독한 소음만 아니라면

아 내 이웃에도 누군가가 살고 있구나

아직도 그 이웃이 건강하게 삶을 이어가고 있구나 하고 인지하는 것으로 넘어가주는것이

함께 사는 에의라고  주장해본다.

 

설령 내 이웃에 나의 삶의 희망이 되는 존재가 살고 있지는 않아도

누군가  내 곁에 살아있다는 것 함께 있다는 것에 감사하자...

(나에게 항의했던 누군가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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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승범이 나오는 영화가 개봉되었다고 듣고 일단 일본판을 먼저보기로 했다.

책을 읽었던 기억은 가물가물하고 영화를 보면서 다시 되새김질 한다.

책을 읽었을때

왜 이렇게 완벽한 알리바이를 저 물리학자는 다 파헤쳐서 모든 사실을 드러나게 했을까  했던 안타까움이 있었다.

가끔 진실이라는 것이 묻히고 그래서 완벽하게 모두가 행복해 질 수 있는 길이 있다면 그것이 옳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던거 같다.

사실  일반인에게 살인이라는 사실은 혼자 품고 가기엔 너무 크고 힘든 진실인지도 모르겠다.

차라리 그렇게 누군가가 알게되어 스스로 사실을 말하고 세상에 드러내게 되면서 홀가분해지고 어쩌면 거기서 행복과 편안함을 얻기도 할테니까..

용의자 X의 헌신

 

 

 

영화를 보면서 참 안타까웠다.

상대는 알 수 없지만 내게 살아갈 힘을 주고 사람을 사랑하게 만든 누군가를 위해 그렇게 헌신하는 수학자가.. 내내 안타까웠다.

그런 완벽한 알리바이를 만들고 범죄를 만들어냄으로써 그가 얻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뫈벽하게 지켜내는 것

그것이었다면 마지막 모든 사실이 드러났을 때 그가 얻을 것은 또 무엇이었을까

완벽하게 사랑을 지키지 못했다는 자괴감 죄책감?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완전범죄를  만들어주고  혹시 있을 양심상의 문제까지 고려해서 새로운 범행까지 저지를 수 밖에 없던 수학자가 안쓰럽다. 안타깝다

그리고 그 사건을 끝까지 끌고 가서 풀어낼 수밖에 없던 물리학자의 심정도 그렇다.

 

과거 회상 장면에서 수학자와 물리학자가 학생시절 처음 만나던 장면이 있다.

수학풀이에 몰두하던 수학자에게 물리학자가 다가가서 묻는다

이건 이미 증명이 끝난 문제가 아니냐고

그러자 수학자가 답한다.

그 증명이 아릅답지 않아...

그렇다

뭔가가 풀렸다는 게 중요한게 아니라 그  과정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하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사랑하는 이웃여자의 범죄를 덮어주고 완벽하게 만들어주는 것 그것이 중요한것이 아니라

앞으로 남은 시간을 그여자가 어떠한 진실도 알지 못하고 죄의식으로 힘들어 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것 아름다운 것만 보게 하고 아름다운 지금 그대로 살아가게 하는 것

그것이 수학자의 마지막, 자신의 존재를 걸고 하는 증명이었다.

내가 존재했던 이유, 그리고 마지막에 의미있게 떠나려는 것들이 모두 그 여자에게 있었던 수학자였으니 마지막 그 여자가 모든 진실을 알았을때 그렇게 통곡같이 처절한 울음을 뱉았던게 아닐까

차곡차곡 쌓아 올린 나의 아름다운 증명이 공식들이 허물어지는게 두려웠던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류승범의 석고를 만났다.

일본의 이시가미(이 수학자 이름이 이제 생각났다.. 아 미련하고 아둔하여라..)와는 닮은 듯 다르다

아무렇게나 입은 옷 웅크리고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고 걷는 모습

답답하고 고지식하고 주저하는 모습은 같지만 석고쪽이 좀 더 감정이랄까 느낌이 드러난다.

석고의 이야기에는 친구인 물리학자가 없다

대신 형사가 그의 역활까지 다 맡아서 한다.

이미 아는 이야기이고 일본판을 보아서 그런지 한국영화쪽은 조금 감정과잉 표현과잉이 아닐까 싶은 부분들이 느껴진다.

주변부 인물들의 대사나 행동들도 조금 더 감정적이고 격렬하다.

일본판은 밋밋하다 싶게 조용하고 정리되어 넘어갔다면 한국판은 한판 벌려놓은 기분이다.

경찰서의 사건대책본부(명칭이 맞는지 모르겠지만)에서도 일본은 정말 일본스럽게 사건을 벌여놓고 조용히 지시대로 기민하게 복종하며 움직인다는 느낌이라면 한국에서는 왁자지껄한 시장통스럽기도 하고  상관에게 말대꾸 하는 거라든가 감정의 표현 충돌이 참 많다.

뭐 문화의 차이라고 느껴지기도 하고 어디가 더 낫고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내 성격상인지 아니면 이미 본것에 대한 가산점인지 몰라도 전자가 내게는 와 닿는다.

(이야기를 모르는 상태에서 영화를 본다면 우리 영화가 더 친절하고 다이나믹하며 몰입도는 있을거 같기도 하다)

석고의 이야기는 철저히 그의 중심에서 이야기가 풀려간다.

이웃 여자에게 호감을 가지고 그를 위해 모든 것을 헌신하는 남자

류승범은 일본배우는 잘 표현하지 않은 섬세한 감정의 표현도 보여준다.

화선을 보면서 설레고 미세하게 떨리는 감정이 손끝에서 눈빛에서 잘 나타난다.

어떤 말을 하지 않아도 이 남자를 신뢰할 수 있겠다던가 이 남자가 지금 사랑하는 구나라던가 더 나아가서 이 남자가 두렵고 낯설다는 느낌을 섬세하게 보여준다.

그래서 다 알고 보는 거지만  완벽한 석고의 알리바이에 눈물이 났다.

모든것을 내가 안고 내가 되돌아갈 퇴로마저 차단해버리고 앞으로만 나가는 이 남자의 헌신이 마음아팠다.

 

다만 아쉬운것은 책에서 잘 나와있고 일본판에서도 의미있게 보여주는 이시가미. 혹은 석고에게 있어서의 수학이라는 것의 의미가 많이 퇴색되었다.

나름 의미있는 대사들은 나왔지만

가령

누구도 풀 수 없는 어려운 문제를 만드는 것과 푸는 것 어떤 것이 더 어려운가

보기엔 기하문제지만 가만히 살펴보면 함수문제같은 미묘하게 착각을 일으키게 꼬아놓은 문제들

뭐 그런 대사들이 나오지만

그냥 의미있어보이고 좀 그럴듯한 대사를 그냥 가져다 놓은 느낌이랄까

일본판을 봤을 때 느낀 아하.. 하는 그런건 적었다.

어쩌면 이시가미의 대척점에 놓은 물리학자의팽팽한 누뇌가 빠진 탓인지도 모르겠다.

수학이라는 것이 어렵고 난해한 학문이지만

확실한 답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답을 향해 가는 길이 하나가 아니라는 것

그리고 잘 증명하고 풀이한 식이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

그런 수학의 난해하지만 아름다운 질서가 드러난 사건이 바로 이 이야기가 이니었을까

내가 사랑하는, 희망이었던 여자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

그 방법이 여러가지지만 나는 나만의 방법으로 그 여자가 남은 생을 행복하게 그늘없이 만들고 싶다는 가설을  스스로를 다쳐가며 증명하는 남자의 헌신 그 이야기다.

 

일본판은 이성적으로 문제를 바라보게 한다.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하고

한국판은 감정적으로 건드린다. 세상에는 이런 바보같은 어리석은 그러나 욕할 수만은 없는 사랄ㅇ이 있다고

뭐가 좋은지는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리라

 

사족...

나중에 아이가 수학이 어렵다고 징징댄다면 이 책을 꼭 권하고 싶다.

수학이 이렇게 아름답고 의미있는 것이라는 걸 알게하지 않을까

나처럼 너무 늦게 알지만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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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저드 베이커리

아가미

방주로 오세요

피그말리온의 아이들

그리고

고의는 아니지만

 

이 작가는 누구지?

아 물론 그가 구병모라는 미모를 가진 여자라는 건 안다.

그리고 개인적인 정보는 하나도 없다.

그런데 위의 책들을 덮으면서 늘 떠오르는 것

 

도데체 누구냐 넌?

 

넌 도데체 왜 이런 발칙한 생각을 하고 이런 기묘한 이야기를 풀어내며 이런 찝찝하고  뒤 안닦은 느낌을 주는 결말을 내는 거냐

그리고 그 기기묘묘한 뒷감정을 이렇게 오래오래 끌게 하는거냐?

 

 

 

그의 첫 책 "위저드 베이커리"를 읽었을 때 참 신선했다

뭔가 스릴있고 가슴을 죄어오면서도 생각할 꺼리가 많았고 그 신비로운 분위기도 나쁘지 않았다,그리고 내 기억이 맞다면 뭔가 하나를 얻으려면 댓가를 주어야 한다는 것

내가 다시 시간을 되돌려 과거로 돌아간다는 사실이 동화처럼 낭만적이고 모든 걸 해결해주는 것이 아니라 지금을 기억하지 못하는 "그때"로 되돌아간다는 단순한 사실 그래서 설령 또다시 지금처럼 모든 것이 반복이 되더라도 그 모든 책임은 내가 지는 것이다.

그것이 행복이 될지 불행이 될지 아. 뭏. 튼...

 

신기하면서 가슴이 서늘해지는 그 이야기를 읽고나서 한참 후에 아이도 함께 그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겨우 초등학생이 무엇에 끌렸는지 몰라도 아이가 먼저 그 작가의 작품을 찾았고 먼저 읽었다.

집에 "피그말리온의 아이들' "방주로 오세요" 가 있어도 위저드에서 느낀 피로감이 쉽게 잊혀지질 않아 쉽게 손이 가지 않았다. 그리고 단편인 "고의는 아니지만"은 그냥  몇장읽고 닫았다.

쉽지 않아...

내가 이해력이 딸리는 것인지.. 아니면 작가가 문제인건지...아니면 우리 합이 안맞는건지도..

 

                             

 

그리고 아이를 따라 방주~ 와 피그말리온을 읽었다.

여전하다.

뭔가 아쉬움이 남는 결말 자꾸 뒤통수를 당기는 기분은 여전하다.

피그말리온의 아이들을 읽으며 과연 기성세대중 누가 로젠타 스쿨의 교장에게 돌을 던질 수 있는가.. 교육이라는 것이 결국  권력자가 통치하기 편하도록 사람을 길들이는 과정일 뿐이라는 걸 모두가 알면서도 모른 척 할 뿐이다. 보다 손쉽게 보다 우리에게 유용하게... 그러나 전면으로 내세우는 것은 아이들을 위해 그들의 미래를 위해 그리고 세상을 위해서...

무기력해보이는 아이들이 외부인을 돕고 체제에 저항을 하지만 결국은 더 이상은 바라지 않는다.

그곳을 나오지 않는다.

나온다고 한들 세상에 알린다고 한들 무엇이 달라지는가?

그들에게 따듯한 집이 있는가 환영해주는 가족이 있는가 결국 세상은 바뀌는 것이 없다.

그래서 결론이 그럴 수 밖에 없다는 걸 알면서 미안하고 미안하다.

내가 그렇게 한것도 안이지만 내가 그렇게 극악스럽게 아이를 몰아간건 아니지만

그래도 모른 척 눈감고 좋은게 좋은거야... 하고 등을 돌리는 행동

이런 단순하고 무심한 행동이 용서되지 않는다.

그런들... 그래서 어쩌라구

 

방주시는 작가 후기에서 볼때 아마 그의 초기작품이 아닐까 싶었다.

출간은 늦었지만 예전 미리 써놓은 습작같은 걸 고치고 고쳐서 내놓은게 아닐까

조금 서툴고 단순하고 직선적인 느낌이 강하다.

투박하면서 하고 싶은 말을 꾸미지 않고 내뱉는 그런 느낌이라고 할까

현실의 어딘가를 떠올리게 하는 방주시 그리고 그곳의 선택된 사람들 그리고 반쯤 선택될 수도 있는 사람들 그리고 그런 격차를 폭파해버리고 싶은 ㄴ사람들

결국 이 이야기도 끝은 그렇게 끝났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작가의 백미는 "아가미'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 이야기도  기묘하지만 아름답다,

반은 물고기인 주인공의 아름다움에 대한 묘사때문인지모르겠지만 이야기가 아름답다는 느낌이 들었고 그리고 이전 리뷰에서도 썼지만 이건"사랑"에 대한 이야기라는 느낌이 강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이  어떤 이에게는 끝없는 학대와 미움의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사랑받지 못해서 사랑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소년이 누군가 사랑하고 싶은 사람에게 미워하고 구타하고 이용하는 것 그러면서도 "살아있는게 좋아서"그렇게 데리고 있는 것

이 유치찬란하고 어이없는 행동이 결국은 사랑이었다.

결국 학대도 사고이후의 전혀 연락하지 않는 고집에서도 누군가를 향한 절절한 사랑이 느껴졌다.

혹 그때 내 마음이 그래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마지막 한권 "고의는 아니지만"

이건 단편집이다.

이걸 읽으면 내가 작가를 조금 더 알 수 있을까

 

한권한권 읽으면서 내 편견으로 인한 것일지라도 작가에 대해 이해하게 되고 뭔가 공감이 가는데

이번은 읽을 수록 오리무중이고  더욱 알 수 없다.

도데체 이 작가 다음엔 무얼 쓸것인가

내가 너무 큰 기대를 가지고 있는 건 아닐까

어쩌면 세상의 기대가 무서워서 이제 숨어버리진 않을까

그건 그렇고 도데체 누구냐 넌

몇권을 더 읽으면 알 수 있는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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