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기의 성장과정에서 부모란 어떤 역활을 해야할까

아이가 사춘기에 접어들어선 순간을 알아차릴때 부모는 어떤 표정을 어떤 몸짓을 해야하는 걸까

세상에는 사춘기에 대하여 통과의례에 대한 책은 많은데 그에 대처하는 부모에 대한 책은 무엇이 있을까

물론 알라딘만 해도 좋은 부모 카테고리에 들어가면 많은 서적들이 줄지어 있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말고.. 자연스럽게 내가 읽으면서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그런 책은 없을까?'

성장기의 바이블같은 데미안에서도 호밀밭의 파수꾼에서도 부모는 아무런 역활을 하지 않는다.

아니 주인공이 부모의 개입을 원치않고 더 나아가 부모를 부정한다.

그밖에 많은 성장소설에서 영화에서 부모는 그저 배경에 불과하다.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내 자식을 믿는다는 맹종적인 부모가 나오거나 아에 부모존재가 부제하거나 오히려 없으니만 못한 상황까지 있다.

마틸다에서도 그렇고 우리 소설들에서도...나의 아름다운 정원,  완득이 ,우아한 거짓말  너도 하늘 말라리아 유진과 유진등등의 지금 머리에 떠오르는 책들을 봐도 부모가 무슨 역활을 했을까

그저 살아가기 바빠서 무심했거나아이가 아직 어리다고만 치부했거나  하면서 그 성장의 주변부에서만 얼쩡거리고 있었던 거같다

도무지 그런 식으로 내가 반면교사를 삼을 게 없다.

내가 아직  독서가 부족해서인지도 모르겠지만....

 

아이가 순간순간 감정이 바뀌고 여러가지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퍼붓는다.

왜? 왜? 어째서 ? why not? 

세상이 부조리하고 나자신은 한없이 초라하고 부모는 더이상 믿을 수도 의지할 수도 없다는 막막함속에 서 있는 아이에게 내가 어떤 역활을 해야할까

좋은 부모 카테고리에 있는 책들을 부지런히 읽으면서 이런 경우에는 이런 대처법을 저런 경우에는 저런 대처법을  .. 그렇게 끼어맞추면서 해법을 찾아가고 성경을 암송하고 108배를 해가며 마음을 다스리는 것 그런것들밖에 없을까 싶다

책속에서 근사한 부모는 어디에 있는 누구일까

아이가 사춘기를 맞아 미친 망아지처럼 날뛰고  내 가슴에 화살을 마구 쏘아대고 있어도 담담하게 평정심을 유지하면서 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케빈에 대하여의 케빈엄마 그녀가 내게 좋은 충고를 해 줄 수 있을까 괜찮은 주인공의 엄마를 작지만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그런 역활을 하는 부모를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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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책읽는 모임에 참석하면서 좋은 점은 예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 읽게된다는 점이다.

책에 대한 깊이 있는 대화나 지식이 느는 건 아니지만 함께 책을 읽고 이야기하고 때로는 이야기가 샛길로 빠지고 이것저것 사정으로 연기되는 경우고 많지만 그래도 꾸준히 뭔가를 읽어간다는 건

내게 큰 수확이다.

혼자라면 읽을 엄두도 나지 않았을 책들을 함께 읽는다는 것 그게 참 좋다.

이번에 읽었던 책은 헷세의 '데미안이다,

 

이 책을 마직막으로 읽었던게 고3때였다.

대입을 코앞인데 혼자 고민하고 방황하고 누구도 알아채지 못한 반항을 하면서 읽었던 책

그때 다 이해했다거나 공감을 했다는 기억은 없다.

다만 시험공부안하고 엉뚱한 책을 본다고 혼났던 기억이 있고 좀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제목이 데미안인데 왜 주인공은 데미안이 아니라 싱클레어인가  의아해했던 기억이 있다.

역시나 그때도 기억에 남았던 건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꺠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압락사스"

 

혼자 밑줄긋고 그렇지 세계를 깨지 않으면 나아갈 수 없다고 생각했던거 같고 내 세계를 깨는 일이 이런 입시는 아닐거라고 생각했고 어쩌면 대학만 가면 뭔가 새로운 세계를 갈거라는 믿음도 있었던거 같고 암튼 그랬다.

 

그리고 이제 나이 먹어 다시 읽는 데미안은 어렵고 철학적인 수사가 많은 책이 아니라 어떤 소년의 성장기로 읽혔다.

이미 방황하고 고민했떤 시기를 지났기때문일까.. 하는 서글픔도 묻어난다.

싱클레어의 누구와도 나눌수 없는 고민들, 가족에게도 말 할 수 없고 말하고 싶지 않는 심정, 사실 털어놓고 부모에게 매달리기만 해도 거의가 해결될 수 있었던 프란츠와의 관계도 그렇고 그 후에 만난 데미안이 주는 충격들 고민들 불쾌감 거부 그러나 말 할 수 없는 이끌림 등등 그건 대 문호인 헷세여서 가능한게 아니라  그 시절을 살아오고 견뎌낸 사람이람 ㄴ 일반적으로 앓아왔던 통과의례같은 몸살이 아니었나 싶다. 다만 헷세여서 이렇게 후세에 남을 기록이 되는 것이고 일반 범인들은 그냥 그런 때가 있었지 하며서 돌아볼 뿐이고...

돌아보면 별 것도 아닌일에 밤잠을 못자고 고민하고 행여 부모님이 아실까 전전긍긍했던 기억이 나도 있다. 야단맞고 무시당하고 친구에게 배신 당한 기억들을 혼자 끙끙거리며 누구에게도 털어놓기 힘들었던 기억.. 그런데 그런 깊이를 알 수 없었던 그 당시의 고통도 언제 어떻게 없어졌지는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냥 그렇게 유치하게 (지금 돌아보면)아픈 고민이 있었다는 건 기억이 나지만 어쩐 계기로 어떻게 헤쳐왔는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그렇게 자라면서 시간이 해결해주는 부분도 있고 어쩌면 그 고통을 이겨낸 과정자체가 고통보다 더 큰 악몽같아서 아예 기억에서 지워버렸는지도 모르겠다.

싱클레어도 그런 악몽의 순간을 지나고 있었다. 프란츠라는 괴물에게 쫒기는 것, 그건 훝날 보면 별일 아니고 부모님에게 솔직하게 털어놓고 조언을 구하기만 해도 풀릴 일이지만 혼자 비밀을 만들고 끙끙거리느라 더 부풀린다.  나의 수치심을 누군가가 알아차린다는 것 누군가에게 들킨다는 것이 그때는 죽음만큼 부끄럽고 치욕스럽다. 사실 그 수치심이라는 것이  속된말로 한순간의 쪽팔림으로 드러내 버리면 별거 아닌것이지만 감추고 끙끙거리는 사이 점점 부풀어서 내가 어쩌지 못하는 압박으로 다가오기도 한다는 걸... 그 나이때는 모른다. 오로지 그 수치심만 보일 뿐이다,

 

프란츠를 몰아내준 데미안에게 싱클레어는 끌리면서도 두렵다 누군가에게 또 끌려가고 주도권을 내어준다는 것이 맘에 걸린다. 그의 말들은 내가 알던 다정하고 밝은 진리와는 반대에 있고 내가 끌리고 유혹을 느끼는 어둡고 침침한 그곳같아서 끌리면서도 두렵다.

 

허용된 밝은 세계에서는 숨기고 은폐해야 하는 하나의 원시적 충동이 내 자신 속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새롭게 발견해야만 했던 시절이 왔다. 나의 호기심이 찾은 것, 꿈과 기쁨과 두려움이 내게 가져다 준것, 사춘기의 큰 비밀 그것은 내 유년의 평화에 감싸인 행복감에는 맞지 않았다. 나는 다른 모둔 사람들처럼 행동했다. 이제 더는 어린아이가 아닌 아이의 이중생활을 영위했다. 내 의식은 집안의 허용된 세계속에 살았으며 어렴풋이 솟아오르는 새로운 세계는 부정했다. 그러나 동시에 나는 꿈, 충동. 은밀한 소망들 속에서 살았다. 그 위에서 저 의식적 삶이 만드는 다리는 점점 더 불안해졌다. 내 속에서 유년의 세계가 붕괴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세계에 이끌리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 그건 유혹적이고 아름답다. 어둡고 옳지않는 것이라는 걸 알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매혹적이다. 그렇게 끌리면서도 이건 아니라고 내면에서는 소리치고 그러면서도 가고 싶다고 느낀다. 부모몰래  금지된 영화를 보고 금지된 장소를 흘낏거리고 술을 마시고 담배도 물어보면서 집에 돌아와 부모의 아무것도 모르는 표정을 보면 찔리는 건 당연하다 그래서 다시는 그러지 말아야지 하고 마음을 먹고 저런 착한 분들을 속인다는 것에 죄의식도 갖지만 유혹이 주는 달콤함을 거부할만큼 강한 의지도 없다. 아니  그 의지만큼 유혹에 흔들리려는 의지도 반대쪽으로 강하다.

그렇다고 그런 짓을 하는 것이 모두 비행이고 올바르지 않고 선도가 필요한게 아니라는 걸 나중에 깨닫게 된다. 그렇게 흔들리고 경험하면서 성장한다는 걸 그때는 모른다

이미 다 컸다는  우월감도 생기고 저항도 느낀다.

결국 자기자신을 컨트롤하고 다스리는 건 자신일 뿐이다.

부모님도 또 다른 누군가도 그저 조언자일뿐이고 타인일 뿐이다.

 

내 자신의 신화 두 세계 혹은 세계의 두 절반 - 밝은 세계와 어두운 세계에 관한 생각이었던것이다, 나의 문제가 모든 인간의 문제 모든 삶과 생각의 문제라는 통찰이 갑자기 신성한 그림자처럼 나를 뒤덮었다. 그리고 가장 나다운 개인적인 삶과 생각이 얼마나 깊이거대한 사유의 영원한 흐름에 관여되어 있는가를 보고 갑자기 느끼게 되자 두려움과 경외심이 나를 압도했다. 그 통찰은 즐겁지 않았다. 확인해주고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었는데도 왠지 즐겁질 않았다. 그 통찰은 가혹했다. 맛이 떫었다. 그 안에는 일말의 책임의식이 이제는 어린애일 수 없다는 홀로 서 있다는울림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방황으로 세계관이 바뀌고 세상을 보는 눈이 바뀌는 것 혹은 커지거나 왜곡될 수도 있는 것 그건 이제 내 책임이다. 내가 내 고민을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고 나눌 수 없어지면서 어떤 행동이나 사고도 오롯히 내몴으로 남는다. 그건 성장이기도 했고 거기에 따른 책임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두렵고 무서운 일이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싸인하는 모습을 부럽게 바라본다. 마트에서 식당에서 혹은 은행에서 펜을 들고 멋지게 싸인하는 모습이 부럽다. 나도 멋진 싸인을 가지고 싶고 여기저기 남기고 싶다.

그러나 그 싸인이 '이 모든 것의 책임을 내가 지겠다'라는 의미라는 건 알지 못한다.

어쩌면 어른이 된다는 건  내 싸인을 가진다는 것은 내가 나를 책임져야하고 누군가에게 미룰 수도 없고 전가할 수 없다는 고독감을 받아들이겠다는 의미이기도 하니까

어른들이 하는 말.."누군가 간섭하고 잔소리할때가 좋을때"라는 말을 그 나이때는 모른다.

다만 조금씩 내가 성장하고 있다는 것 이건 내 책임일거라는 막연한 긴장감이 생기는 시기이기도 하다.

더이상 어린아이도 아니라는 조금 쓸쓸하고 무서운 느낌을 지나면서 그렇게 성장하는 것이다.

그때 부모가 할일은.. 어쩌면 싱클레어의 부모처럼 모든 것을 알고 있으면서 모른 척 해주고 기다려주고 다시 돌아온 탕자를 안아주는 것밖에 없는지도 모르겠다.

아이가 자라고 성장하는 동안 부모도 점점 그 책임이 줄어들겠지만 오히려 그 책임감이 없어지는 과정이 두렵고 걱정스러워 계속 손을 놓지 못하고 팔이 늘어지고 꺽여도 어쩔 줄 모르고 꼭 쥐고 있는 경우도 생긴다.

 

성장하면서 나는 내가 참 싫었다. 내 얼굴이 마음에 들지 않고 내 성격이 마음에 들지않고 심지어무탈하고 여유로운 환경도 맘에 들지 않았다. 내가 조금만 어찌어찌했더라면 내부모가 조금 어찌어쩌한 사람이라면... 배부른 줄 모르고 고민하고 투정하면서 이 모든걸 변화하는 것도 내 하기 나름이라는 조금 어처구니없어보이는 책임감도 느끼고 그랬던거 같다.

그리고 지금 성장기의 내 아이도 맘에 드는게 하나도 없어보인다.

생긴것도 키가 남들보다 큰 것도 손재주가 없는 것도 다리가 긁은 것도 아마 말은 하지 않아도 제 부모에 대한 불만도 많으리라 짐작된다.

싱클레어도 역시 스스로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지난 반년동안 나는 매우 빨리 자랐다. 그리하여 키가 훌쩍 컸고 마르고 미완성인 채 세계를 들여다 보고 있었다. 소년의 사랑스러움은 내게서 완전히 사라졌다. 사람들이 나를 별로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을 나 자신도 느꼈으며 스스로도 자신을 결코 사랑하지 않았다.

 

어쩌면 성장이라는 것이 그러한 자기부정의 과정을 거쳐야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를 부정하고 미워하면서 나를 객관화시킬 수도 있고 세상과 떨어뜨려놓아서 관찰자적인 입장에서 시큰둥하게 혹은 시니컬하고 삐딱하게 바라보는 과정도 지나야 하는 것이다.

내가 뭐가 잘나서가 아니라 어쩌면 못나고 자신없어하는 행동임에도 남들 눈에는 더없이 건방지고 무례한 행동들이 그렇게 나오는 것이다.

그렇게 자기를 부정한다는 것은 오히려 그만큰 자신에게 집중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싱클레어도 수업을 빠지고 술에 빠지고 잘난척하는 것처럼 보이고 세상이 맘에 들지 않아지는 과정을 겪으면서 새로운 조언자를 만난다.그리고 누군가에게 조언자가 되기도 한다.

 

나는 늘 나에게 열중해 있었다. 늘 나 자신에게 그리고 마침내 한 번인생의 한토막을 살아보기를. 나에게 나온 무엇인가를 세계안에다 주기를 세계와 관계를 가지고 싸움을 벌이게 되기를 열렬히 갈망했다.

 

그에게 배운 가장 중요한 것은 나잔신에게로 가는 길 위의 또 한걸음이었다. 나는 당시에 열여덟살의 평범치 않은 젊은이였다. 수백가지 일에서 조숙하고 다른 수백가지 일에서 몹시 뒤쳐지고 무력했다. 때때로 다른 사람들과 자신을 비교하면 자주 우쭐하고 교만했으나 또 꼭 그만큼 자주 의기소침하고 굴욕스러워했다. 어떤 때는 자신을 천재로 생각하는 가 하면 어떤 때는 절반쯤 돌았다고 생각했다.또래들의 기쁨과 생활을 같이 하는 것이 잘 되질 않았고 자주 비난과 근심으로 자신을 소모했다. 마치 내가 절망으로 그들로부터 떨어져 있기라도 하듯이 마치 내게 삶이 닫혀져 있기다도 하듯이..

 

그 사이 나를 내면적으로 키워준 것은 학식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였다. 기분 좋았던 것은 나 자신 속에서 앞으로 나아감이었다. 나 자신의 꿈 생각 예감에 대한 커가는 신뢰였다. 그리고 내가 나자신 안에 지니고 있는 힘에 대한 늘어나는 앎이었다.

 

누구나 관삼 가질 일은 아무래도 좋은 운명하나가 아니라 자신의 운명을 찾아내는 것이며 운명을 자신 속에서 완전히 그리고 굴절없이 다 살아내는 일이었다.

 

내가 아벨이라고 믿었는데 어쩌면 표적을 가진 카인인지모른다는 두려움과 의심 그리고 스스로 누려왔던 따뜻하고 밝은 집과 부모님을 거부하고 싶은 충동이 성장의 과정이라면 참 아프고 힘든일이다.

세상에 공짜란 없고 쉽게 손에 넣을 수 있는 것이라면 가치가 높을 수 없다는 게  세상살이의 법칙이듯이 성장도 누군가의 도움으로 이루어 질 수 없고 누가 대신 할 수 없다. 다만 때가 달라서 누군가는 이르게 시작하고 누군가는 늦게 시작할 뿐이고 누군가는 둔감해서 혹은 안정적이어서 쉽게 겪기도 하고 누군가는 깊은 흉터를 남길만큼 길고 고약하게 겪기도 하는 것이다.

이 책에는 밑줄을 그을 만한 말들이 많았고 성찰하게 하는 구절도 많지만

지금 이 순간 나를 가장 끌어당기는 것은 데미안이나 피스토리우스 에바부인의 말들이 아니라 그 말들을 받아들이고 내것으로 만들어나거나 무시하는 싱클레어의 고민이 더 와닿는다.

여러가지 말들에 흔들리고 스스로를 고민에 빠뜨리면서도 점차 성장하고 있는 소년이 더 눈에 보인다. 이 성장이 어쩌면 한때의 방황일 뿐이고 치기였다고  판결이 나더라도 그것이 허무하고 의미없다고 할 수는 없을것이다. 한때의 방황이 모든 사람을 성장하게 하는 건 아니고 오히려 구렁텅이 속으로 몰아넣는 경우도 있지만 적어도 나자신에게 대해 이렇게 골몰히 집중하고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다면 그런 걱정은 접어도 되지 않을까

 

나이를 먹어서 읽은 책이어서 일까 이 책의 싱클레어도 호밀밭을 지키고 싶어하는 홀든도 모두 내 자식처럼 느껴진다. 한때는 나와 동일시 했던 인물들이 이제는 자식같다는게 좀 서글프기도 하지만 오롯이 혼자 흔들리고 격어내는 그들의 성장통만은 대견하고 아름답다

그리고 이제 그 성장통앞에 서 있는 내 아이도 이렇게 대견하게 고민하고 흔들리기를 욕심내 본다.

 아무것도 몰랐을 때 읽었던 느낌 그리고 세상을 조금 살아내고 읽었었을때의 느낌을 비교해보는 것도 꽤 괜찮았다.

내 아이가 처음 이 책을 그리고 호밀밭을 잡았을때  어떤 구절에 밑줄을 그을까..

그리고 시간이 흘러 다시 책을 폈을때도 그 구절에 마음을 나눌 수 있을까.. 새로운 밑줄이 생기고 지워질테지만 그 아이의 홀로가는 성장에 좋은 위안이 되어주면 좋겠다.

예전에 내가 그랬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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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의 아름다운 청춘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찾아가지만 그 시간을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 그때를  추억할거리가 달라진다.

지금 악마가 내게 다가와 다시 빛나는 청춘으로 되돌려 줄터이니 딱 한가지만 해보라고 한다면 나는.. 연애를 하고 싶다.  (왜 악마가 이런 제안을 하냐고 묻는다면 천사는 이런 유혹을 절대 하실 분이 아니시라 믿어서지요..)

인생을 돌아보며  내가 가장 잘 한것 혹은 가장 후회되는 것을 꼽으라면? 이라는 질문을 보면서 후회되는 건 정말 열손가락 발가락을 동원해도 다 못 헤아릴 만큼 많지만 내가 잘 한것은? 이  질문에는 그만 턱 하고 숨이 막힌다.

내 인상을 돌아봐서  후회되는 것들이 없진않지만 그래도 이만하면 나름 선방했다는 평가를 내리겠지만 그래도 그 중  잘 한게 무어냐는 구체적인 질문에는 늘 답이 궁하다. 그렇다면 잘 산게 아니란 뜻일까

 

다시 청춘이 되면 정말 미친듯이 공부를 하고 싶고  책을 읽고 싶고 조금은 영리하고 영악하게 돈문제에 대해서도 깐깐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만 그 보다 연애를 하고 싶다.

무어그리 박복했던지  80년도 국민학교에서 5학년부터 남녀를 갈라놓는 학교를 나와서 중간 전학으로 한학기 남자구경했다가 주욱 여중 여고 여대를 나왔다. 게다가 직장도 남자보다는 여자가 조금 더 많은 곳을 다녔다. 몇번을 바꾸어도 계속....

그러다보니 적극적인 성격도 아니고 절세 미인도 아닌 까닭에  변변한 연애를 해본 적이 없다.

지금 생각해보면 적어도 연애를 하려면 누구나 돌아볼 만큼 미인이거나 아니면 남자들에게 붙임성이 좋고 낯을 가리지 않거나  내세울것도 없으면서 아집만 가득한 헛된 자존심같은건 없어야 하는데 있어야 할 외모도 성격도 없으면서 자존심만 높아서 결국 연애를 안한것도 아닌 못하고 젊은 시절이 지나갔다. 그러다보니 한두번 해프닝같은 만남, 친구도 아니고 원수도 아닌 어정쩡한 관계의 동문들  타학교와 함께 했던 동아리 친구 선배들이 전부고 그나마 알던 남자들도 졸업하면서 거의 연락이 끊어지고 말았다.

그래도 그때는 아직 어려서 그다지 아쉬운 줄도 모르고 나 잘난 맛에 살았던거 같다.

지랄 총량의 법칙이라는 게 과연 존재하는 것처럼 사람에게는 뻘짓을 하고 온갖 해괴망측한 짓을 해야하는 양도 정해져 있다는 생각이 든다. 연애든 주사든  뭐든 젊었을때 치기어린 마음으로 해버려야 하는 걸  제때 하지 못하면  그렇게 순탄하게 지나는게 아니라 나중에 늙어서 조금은 추하게 그런 뻘짓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20대초에 하지 못한 연애가 결국은 서른을 바라보는 느즈막에 찾아와서 지금 되돌아보면 정말 얼굴 벌개지게 할 거 다하고 추태를 부렸구나 싶은  기억들도 함께 생겼다. 

밤늦게 누군가를 기다리며 초조해하고 행복해도 해봤고  아무 이유도 없이 억지부리고 땡깡부리렸던건 받아도 받아도 자꾸 기갈나던 내 속의 허전함을 나도 어찌할 수 없어서 애정을 갈구했던것같다. 인정하기는 부끄럽지만

늦은 나이에 시작된 연애에도 남들이 할건 다하고 싶어서 함께 해돋이를 보러가고 차안에서 음반하나가 몇번을 반복하도록 음악을 들으며  침묵을 함께 하기도 했다.

뭐랄까 내 곁에서 얼마이상 떨어지는 것도 용납이 되지 않았으면서 동시에 내곁에 얼마이상 다가오는 것도 허용하지 않았다. 이만큼 내 곁에 있어주기를.. 하지만 요만큼의 내 공간은 인정해주기를..  늦도둑이 무섭다고 연애에 미쳐서 할일을 내팽개치기도했고  계속 빼삐를 들여다보며 연락이 오기를 뭔가 메세지가 담겨있기를... 있지도 않을 메세지를 찾아서 공중전화에 매달리거나 혹시 그의 비밀번호릉 알게되지 않을까 음흉한 계획을 세우기도 하고

 지금 생각하면 얼굴이 확확 달아오르기도 하고 어이없는 행동도 아무렇지도 않았다. 술에 취에 첨본 운전기사에게 한탄을 쏟아내기도 했으니까 짧은 기간동안 할건 다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 늦은 연애를 후회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없는것 보다는 나았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뭐든 그 짓을 할 때 이뻐보이고 용서가 되는 시기가 있다는  교훈을 얻기도 했다.

조금 추했을지라도 그게 늦은 나이지만 내게는 처음이었으니가 다 이해가 되고 나름 용서가 되는건지도 모르겠다.

첫사랑이라는 게 그런게 아닐까

좀 유치하고 어이없고 억지부리는 것이라도 다 통하게되는것

그러려니 하고 이해되고 오히려 익숙하게 능숙하게 되는 것이 더 이상한 것

무모하고 철이없고 서툴러서 오히려 더 아름답고  상처가 많아서 기억에 오래 각인되는 것이 아닐까

 

베르테르도 로테에 대한 마음이 첫사랑이어서 그렇게 열정적이고 무모했고 급했다.

물론 제 격정과  무모함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자기 정수리에 총구를 들이대는 그의 행동을 납득할 수는 없지만 그렇게 미치도록 누군가에게 빠져서 경주마처럼 옆도 뒤도 돌아보지 못하고 상대방에서 순수하고  적극적으로 빠져드는 용기.. 그것이 첫사랑의 특원이다.

비슷한 청년이 이탈리아 베로나에도 있었다.

사랑에 빠져서 가족도 원수도 모두 잊어버리고 오로지 한 여자에게 매달리고 함께라면 죽음도 무섭지 않았다는 것...... 그것도 첫사랑이 아닐까

(첫사랑이란게 처음 하는 사랑이라는게 아니라 첨으로 눈이 멀어질만큼 집착하고 몰두하는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한때는 나도 미쳤다 싶을 만큼 빠져든 적도 있었지만 그래도 돌아서서 혼자의 시간이 되면 내가 미친게 아닌가... 아니 미쳤구나 이러지 말아야지... 그래도 품위는 지켜야하지 않나? 하는 이성적인 생각을 하기는 했었으니 나는 첫사랑이 아니었을까?

맹목적으로 눈멀고 집착하면서도 순간순간 나의 품위를 생각한다는게 조금 우습기도 하다.

 

 

요즘은 워낙 헤사하고 아름다운 청년들이 떼를 지어 몰려나오다 보니 너도나도 첫사랑의 아이콘이 되고 순수청년이 되고 말아  "순수"라는 말이 오히려 상업적으로 들리는 판이다 심지어 송중기의 늑대 소년 이후로는  반인반수의 저 철수마저 저렇게 아름답다면  굳이 인간일 필요가 있으랴 싶게 열광하고 있는 형편아닌가

내가 알고 있는 가장 순수하고 그래서 어리석고 서투른 첫사랑에 빠진 청년은 "봄날은 간다"의 상우였다.

라면먹고 가라는 말에 헤벌죽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르고 그녀의 전화 한통화에 서울에서 강릉까지를 한걸음에 달려오는 그 커다란 키마저도 너무 서투르고 어설퍼서 맘이 갔던 인물이었다.

그렇게 사랑하고 사랑해서 세상이  온통 아름답고 그녀와의 지금이 소중하고 그녀와의 미래를 꿈꾸게 되는 청년.. 사랑하므로 모든것이 해결되리라 순진하게 믿고 있던  소년같은 청년이 상우였지만  그의 그 서투르면서도 집요하고 지칠 줄 모르는 사랑은 세상을 알만큼 아는 속물같은 사람에게는 많이 두렵고 벅찬 존재가 아닐 수 없다.

만약 상대 은수도 막 20대가 된 순수하고 서툰 처녀였다면 둘은 얼마나 행복했을까

어쩌면 어린나이에 덜컥 살림을 차리고 지금껏 행복하지 않았을까

적어도 열렬했던 기억은 남아있을 테니까...

내가 이 영화를 보면서 절절히 공감하며 느낀게  역시 연애도 해야할 나이가 있구나

철없는 시절 이런 남자가 내게 있었다면  ,, 아무런 계산도 없이 그저 상대가 좋아서 정신을 못차릴 만큼 사랑하고 행복해하는 것.. 그런것도 때가 있구나..

어쪄면 여자가 남자보다 세상의 이치를 빨리 깨닫고 먼저 성숙해지는 존재라 이런 상우같은 남자는 뭘 모를때 만나는 것 그래서 그 존재만으로 충분하고 행복할  수 있는 짧은 순간을 즐겨야 한다는  조금은 서글픈 교훈을 얻는다.

내 남동생이라면 머리라도 쥐어박으면서 여자에게 그렇게 빠져들면 안된다. 더구나 은수같은 닳고 세상을 잘 아는 여자라면 더욱 전략이 필요하고  전술을 잘 짜야 한다고 아는 척 충고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시간이 흘러 올해 초 새로운 첫사랑의 순수청년이 나타났다.

"건축학개론"속의 승민

나이든 엄태웅의 승민말고 절은 이제훈의 승민이다.

그는 그래도 상우보다는 조금 세상을 많이 알고 계산할 줄 알았다.

첫눈에 서연에게 끌리고 그를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었지만 그래도 서연에게 누군가가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 자신의 자존심을 먼저 지킨다. 정신없이 상대에게 빠져들고 배신의 상처에 눈물을 흘리지만 그래도 과감하게 돌아서버리는 현실감도 가지고 있다.

예전 상우가 남자와 모텔에 들어간 은수를 어찌 할 수 없어서 찌질하게 그차를 키로 그어버리거나 화를 내며 돌아와 달라고.. 사랑이 어찌 변하냐고 징징거리는 것과는 다르게

승민은 사랑은 변할 수 있는 거고 여자는 더 좋은 조건의 남자에게 끌리는 거고 내게 상처를 줄 여자라면  상처받기전에 내가 먼저 상처를 주겠다는 계산까지 할 줄 알았다.

그러나  그 첫사랑의 *년을 마음에 품고 잊지못하고  현실에서 어정쩡하게 누군가에게 다가가지 못하고 살고 있었다.

 

 상우는 떠난 여자에게 징징거리며 매달리고 그녀가 다른 남자와 모텔을 가는 것까지 뒤쫒아 확인하고  홧김에 그 차를 확 그어버릴만큼 유치하고 무모했고 승민은 용기있게 고백할 타임도 번번히 놓치고 선배에게 대놓고 서연을 좋아하는지 무슨일이 있었는지 물어보지도 못하고 혼자 짐작하고 혼자 고민하고 혼자 상처받고 혼자 상처를 준다.

내 온 영혼을 바쳐서 사랑하고 그도 나를 사랑한다고 철석같이 믿었는데 눈앞에 보이는 연인의 배신이 그들로서는 하늘이 무너지는 상황도 첫사랑이어서인가...

나름 계산한다고 해도 그 계산에는 사칙연산이 전혀 적용되지 않는다.

내마음에 상대의 마음을 더한다고 해서 우리의 마음이 하나가 되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함께 한 시간과 사랑에서 누군가의 마음이 변해서 사라진다고 해서 고스란히 내것만 남는 것도 아니다.

뭔가 이상한 나라의 계산법 처럼 뭔가를 더하고 뺐어도 원래보다 더 많이 허전하고 더 많이 충만한기분 그게 첫사랑이니.. 아무리 영민한 머리더라도 계산이 쉽지는 않다.

 

그 첫사랑을 통해 상우나 승민이 얼마나 성장통을 겪고 성숙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게 한번 두번 사랑이 덧입혀지고 경험이 쌓이면서 조금씩 속되게 되거나 익숙해지면서 변해갈것이다.

아쉽게도 서양의 두 청년은 그렇게 성숙해질 기회마저 박탈당하고 말았지만

 

첫사랑이 아련하고 아름다운 건 이미 많은 시간이 지난 후이기때문에 가능하지 않을까

나도 고백하자면 헤어지고 얼마간 세상에 그렇게 나쁜놈도 없고 죽일놈도 없었다.

그래도  내게 좋은 추억을 주고 경험을 준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된것도 몇년되지 않으니까...

 

언젠가 상우에게 은수가 웃으며 기억될 수 있을까

승민에게 서연은 그렇게 한채의 집을 남겨놓고이제 마무리가 가능했을까

베르테르도 살았다면 나이먹고 늙어가는 로테를 담담하게 바라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겼고

로미오도  뱃살이 늘어나고 잔소리가 늘어가는 줄리엣을 그러려니하고 바라보는  체념을 배웠을지도...

 

그때 그랬더라면..

이런 결심을 했다면.. 하는 후회와 가정법은 역사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개인사에도 적용된다.

내가 다시 그 때로 돌아간다면 갈 수 이다면

이것저거 재지 않는 그런 사랑을  하고 싶다.

남의 눈에 미쳤구나 싶어도 상관없이 나혼자 충만하고 행복한 그런 사랑을 하고 싶다.

그래서 내 딸들에게 담담하게 이 엄마도 한때는 빛나고 환하던 때가 있었단다..

하고 조금은 뻐기면서 이야기 해 주면 좋겠다....

 

이 가을

그냥 넋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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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5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박찬기 옮김 / 민음사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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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도 했던 말

베르테르는... 우리영화 "봄날은 간다"의 상우와 닮았다.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대로변에서 벙찐 얼굴고 그렇게 외치던 키만 멀대같이 큰 소년도 아니고 청년도 아닌 그 어정쩡한 인물이 바로 몇년을 건너뛰어 저기 독일에도 있었구나

 

 친구여  이번에 이런 사소한 일에서도, 오해나 태만이 어쩌 술수나 악의보다 이 세상에 다툼을 더 많이 일으키고 있는지를 다시 한번 깨달았다. 적어도 술수나 악의 때문에 문제가 일어나는 일이 휠씬 드문 것만은 사실이다.  P12

 

사람이 사랑에 빠지는 것 더구나 피끓는 젊이이가 사랑에 빠지는 건 당연한일이다. 이것저것 재지않고 무조건 앞으로 달려드는 것 그리고 그대로 두눈 질끈 감고 풍덩 빠지는 것  그게 당연하고 옳다. 아 아니다. 젊음의 특권만은 아니다. 아니 젊다는 것이 물리적인 더 살았고 덜 살았고의 문제가 이나라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뭔가가 날것으로 내게 다가오는 것  그래서 처음으로 경험하는 떨림, 황홀함.  흔들림, 변덕, 격정 그런것들이 무어라 이름짓고 정의할 틈도 없이 닥쳐오고 물러나기를 반복하는 것... 첫사랑

그것에 한번 사로잡히면 누구나  눈을 가리고 달리는 경주마처럼 뒤나 옆은 보이지 않는다. 누군가가 해주는 충고 한마디 하나도 들리지 않는다.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고 오로지 내 모든 촛점은 단 하나 그것에 매달릴 수 밖에 없다.

어쩌면 사소한 만남 스침이 그렇게 인생을 뒤흔들만큼 큰 파도로 다가온다.

속된 표현으로 귀에서 종소리가 들리고 온 세상이 갑자기 일시정지 버튼을 눌러놓은 듯한 상황 번데기가 찢어지는 아픔같은거... 뭐 그런거 아닐까

그렇게 인생의 문제는 계획에도 없이 다이어리에 기록되어진 것도 아닌것이 그렇게 성큼 다가온다.

상우도 그랬고 베르테르도 그랬다.

무심하게 관심없던 누군가가 내 눈으로 들어왔고 내게는 그녀밖에 보이지 않는다.

 

 

나는 사람들이 평등하지 못하고 또 평등해질 수도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존경받기 위해서 이른바 천한 사람을 일부러 멀리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자들은 , 마치 패배하는 것이 두려워서 원수를 보고 도망치는 비겁한 친구나 마찬가지로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정의롭고 세상의 비겁함에 분노한다. 그리고 나 자신은 비겁하게 살지 않겠노라고 그렇게 다짐하며 세상을 비난한다.

 

 

그들은 상당한 시간이 지난 다음에야 비로소  돌이킬 수 없이 좋은 시간을 낭비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늦은 것이다. P 54

 

인간은 역시 인간이오 약간의 분별력을 가졌다더라도 일단 정열이 끓어오르고 인간성의 한계가 몸에까지 닥쳐온다면 그런 것은 별로 아니 전혀 문제가 되지 않지요 그렇기는 커녕,,,,,

 

 

사랑에 빠닌 그들에게는 세상이 아름답다. 그녀를 기다리는 것도 지루하지 않고 돌아서는 그 순간부터 그녀가 몹시 그립다.

그런데... 현실은 만만한 것이 아니다.

함께 라면을 먹자고 꼬셨던 그녀가 내가 등을 돌리고 냉정해지고  나와 한몸처럼 생각이 같고 감성이 통하던  그녀에게는 멋지고 이성적인 약혼자가 있다.

세상에 어찌 난관없는 사랑이 있으랴

어려움은 사랑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고 두 사람을 친밀하게 만들어준다.

그렇게 믿었다.

그리고 철없이 뛰어들었던 그 사랑안에서 이번에는 대책없이 괴로워하고 힘들어하고  고통받는다.

그리고 한 청년은 옛추억에서 행복해하는 치매 할머니를 보며 위안을 얻고 또 바다 건너 사는 한 청년은 자신의 머리를 권총으로 누른다.

 

한 청년은 그렇게 소년에서 쳥년으로 자랐고 그가 철철 피흘리던 상처는 이제 쓰라림이 사라지고 보기흉한 딱지를 남겼다가 이제 희미한 흉터가 되어 청년을 단단하게 만든다.

한 청년의 상처는 그대로 해집어지고 방치되어 썩어들어가고 구더기가 끓게된다.그리고 그 상처는 영혼까지 갉아먹는다.

 

베르테르의  이야기는 괴테가 자신과 친구의 경험을 바탕으로 단숨에 14주만에 썼더고 한다. 젊은 시설의 괴테 작품으로 그의 젊음과 열정 그로인한 미숙함이 가득한 작품이지만 그래서 동년배들에게 더 잘 와닿았고 쉽게 열광케하고 뒤따르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여인을 만나서 첫눈에 사랑에 빠지고 그리고 즐거웠다고 고뇌하고 괴로워하고 스스로의 인생을 그렇게 상처투성이로 만들었다가 누구의 충고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고 다른 누구의 모습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 그 순간 그 철없고 서투르고 무모한 사랑이  이 작품속에 있다.

 

예전 내가 잘난척 하고 읽었던 것이 그런 서투르고 치기어린 시기에 아직 다다르지 않은 때여서 공감이 힘들었고 지금은 이미 그런 젊음을 지난 시간이여서일까

그의  서투르고 뜨겁기만 한 사랑이  와닿지 않는다. 유감스럽게도....

 

그냥 누군가의 글 한귀절이 생각났다.

누군가를 만나 사랑한다면 잘 헤어질 수 있는 사람과 만나라

사람이 만나 사랑할때는 무엇이든 용서가 되고 다 이해가 되지만 사랑역시 사람의 일인지라 서로가 싫증나거나 이해관계가 달라지거나 주위의 반대가 심해지거나 등등의 이유로 헤어질 상황이 다가올때  예의바르게 잘 헤어질 수 있는사람...

지금은 이별의 감정으로 세상에서 가장 밉고 저주스러운 사람일지라도 언젠가  시간이 흘러 되돌아 보면 아름답고 좋았다고 기억되는 사람을 만나라고...

그의 그 책 다른 구절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지만 그 부분만은 격하게 동감하면서 기억한다.

상우에게 은수는 지금은 이해할 수 없는 이기적인 여자지만 그래도 좋은 기억이 될 것이다.

로테에게 베르테르는 어떨까

마음이 잘 통하고 함께 있으면 즐거웠던,,, 그러나 사랑이라고 미처 생각치 못한 그 상데를 내가 사랑하고 있었구나 나를 사랑하고 있었구나 하고 알아버린 그 순간 죽어버린 상대

그는 로테에게 아름다운 추억이 될까 아니면 그대로 봉인하고 싶은 쓰라린 상처일 뿐일까

내가 로테가 아니니 알 수는 없지만  지금 베르테르의 그 나이를 훨씬지난 지금... 그의 태도는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는 것은 알 거 같다.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먼저 죽어버리는 것 그 이상 상처도 배신도 없지 않을까

물론 그녀가 유부녀이라 더이상 아름다운 결실을 바랄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죽어버리는 건 정말 무책임하고  어리석은 짓이 아닐까

 

한때 사랑했고 그리고 헤어졌고 세상살이에 지쳐 그 기억이 희미해져가도 어쩌다  갑자기 그 사람은 지금 어떻게 살까? 하고  궁금해지고 괜히 입가에 희미하게 미소가 만들어지는 것...

시간은.. 어떤 사랑이든 상처든.. 그렇게 덤덤하게  조금은 아름답게 치장해주는 것이기에

지지리 궁상맞고  남루하더라도 그 기억을 지고 살아가는게     도리가 아닐까싶다.

 

나중에 내 아이가 어떤 사랑을 하고 이별을 하고 상처를 입고 입히는 입장이되든

그렇게 견디라고... 니가 누군가를 사랑했다는 사실 그것만으로도 빛나는 보석이 될거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리고 헤어짐의 상처도 그 보석의 아름다움을 가리진않는다고. 혹 그 빛나는 아름다움에 생채기를 내고 얼룩을 만들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어딘가 패이고 얼룩진 그 보석은 세상 어디에도 없는 너만의 것이라는 걸.. 너를 너답게 빛내주는 거라고 말해주고 싶다..

 

아.. 대책없이 주책맞게 이 가을 나도 사랑이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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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환영
김이설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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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화려한 언변을 구사하는 사람에게 끌렸다. 누구에게나 환한 미소를 지으면서 듣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멍해져서 그대로 빨려들것같은 말, 글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모든 수식어를 떼어내고 바로 명사와 동사로 문장을 이어가고 말을 이어가는 사람에게 끌리기 시작했다. 담담하게 어떤 감정도 섞이지 않고 톤도 일정하게 어찌보면 졸릴지 모르겠다 싶다 낮으면서 단단한 목소리로 들려주는 이야기

그 낮은 목소리 단단하고 건조한 말투에 자꾸 귀가 다가간다.

 

환영

이 책이 그랬다.

어떤 환상도 설레임도 없이 담담하게 한 여자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남편대신 백일도 채 되지 않은 아이를 두고 백속집에 일하러 가는 여자 윤영.. 처음 그렇게 시 경계를  드나들 때는 희망이 있었다.

지금은 내가 이렇게 젖몸살을 앓으면서 뼈마디가 으스러지도록 일을 하지만 언젠가 남편이 공무원이 된다면 모든일은 추억이 되리라... 그건 정말 잔인한 고문이었다.

어디서 들었을까

첨부터 뜨거운 프라이팬에 올라가는 쥐는 놀라서 펄쩍 뛰지만 서서히 온도가 올라가고 데워지는 프라이팬 위의 쥐는 전혀 놀라지 않는다고 점차 올라가는 온도에 적응에 가면서 자기가 어떤 상황인지 어떤 방향으로 가는 건지 알지 못하면서 그렇게 익숙해간다는 것이다.

그건 정말 섬뜩하다.

나의 고통을 내가 알지 못한다. 나는 그저 희망을 가지고 있을 뿐인데 그 희망이 나를 옳아매고 나를 점점 어두운 구멍으로 등을 떠밀고 있다.

분명 "희망"을 품었는데 그렇게 가슴에 품고 한참을 정신없이 내달라디 문득 내려다 보면 내가 안고 있는 것은 빛나는 희망이 아니라 냄새나고 물러터져버린 절망이고 눈앞이 갑자기 깜깜해진다.

내가 바라보고 정신없이 달려왔던 불빛은 어디로 갔는가.

윤영은 돈때문에 그렇게 점점 가랑이를 벌리고 그 치욕을 스스로 죽여나간다.

어떤 사람이 그녀에게 돌을 던질 수 있을까

어떤 화려한 수식도 없고 절망의 비명도 없고 그냥 덤덤하게 해가 뜨고 지듯이 아침을 먹고 나면 점심때가 되는 것 처럼 그렇게 어느순간 어쩔 수 없이 그런 순간이 왔다.

별채에 들어가고 가랑이를 벌이고 그리고 다시 옷을 입고 물가에 섰다가 다시 홀에서 빈그릇을 치우는 상황... 그건 별난게 아니었다.

그렇게 주머니에 들어온 꼬깃한 만원짜리 몇장이 내 밥이 되고 내 아이의 옷이 되고 우유가 되고 방세가 된다. 그러니 그게 어찌 별난 일이 될 수 있으랴.. 그냥 덤덤한 일상이 되어버린다.

그런 덤덤함이 일상처럼 흐르는 시간이 그렇게 쌓아가고 견뎌가는 시간일 뿐이다.

그리고 윤영은 거기서 나올 방법은  점점 사라진다

 

누가 윤영은 나와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

지금 이순간 내 가정이 무너지고 내 앞이 막막해지고 내 새끼가 배가 고파서 울고 있다면 나...

왕사장이  돈냄새를 뿌리면서 은밀한 제안을 해온다면

나는..

나는 과연 윤영과 다른 선택을 한다고 당당하게 말  할 수 있을까

그저 따뜻하고 평화롭던 불빛이 순간 사라지고 내앞에 깜깜한 앞이 보이지 않는 벽이 나타 나버리면 나는 ..  어쩌면 윤영같은 기회조차 없다고 우울할지도 모른다.

 

문체가 너무 담담하다. 한 여자를 이렇게 감정없이 따라가면서 묘사하고 보여주는 글이 아프면서도 쉽게 책을 놓기 힘들었다.

그래서 어떻게 될까..왠만한 다른 글들처럼 막연한 희망이라도 암시하면서 끝나지 않을까, 다 그렇지 뭐 하면서 투덜거릴지언정 그렇게 유치하고 휴유~ 하고 한숨 돌리는 결말을 기대했는데  이야기는 끝까지 몰고 간다.

어쩌면 김기덕의 영화를 보면 이런 느낌이 들지 않을까

울 수도 없고 소리 칠 수도 없고 도망갈 수도 없는 ... 사방이 막혀버린 상황..

그렇게 더 이상  떨어질 수도 없는 시간을 견디고 살아내는 그녀에게 내가 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다.

내가 설령 그렇게 되더라도 내게 뭔가를 해 줄 누군가도 없을 것이다.

지금 은  세상이 그렇게 꽉 막혔다.

눈물조차  보이지 않는다.

저 많은 불빛들 속에 내것은 하나도 없다는 것

그것이 절망이라는데... 누군가에게는 어쩌면 내게는 그게 일상이기도 하다.

누구나 피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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