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박완서의 소설이랑 김수현의 드라마가 참 닮았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아직은 살아온 날들이 그리 많지 않았고 나름 나 잘난 맛이 세상모르고 높았을 무렵

세상에 대한 독설과 매서운 관찰 그리고 내뱉는 무심하면서도 뼈가 박힌 말들이 많이 닮았다고 생각했다.

푸근한 인상과는 달리 박완서의 이야기들은 늘 어린맘에도 아프고 보고 싶지 않은 무언가를 꺼집어 내어 이것봐라~ 하고 내미는 고약한 심성이 보인다고 생각했다.

통속적이구나. 너무 현실적이라서 오히려 아니라고 부정하고 싶고 외면하고 싶었던 장면들이었다.

차라리 김수현의 드라마는 드라마이기때문에 가지는 환상과 낭만이 있었지만 박완서의 소설은 단단하고 건조한 그 문장들 속에서 현실감이 그냥 툭툭 튀어나와서 책장을 넘기기조차 고약했던 적이 있었다.

세상을 알지 못하는 나에게 왜그렇게 그악스럽게 세상을 들이미나 싶어서 몇작품 읽지 않고 아는 척 하고 나랑은 맞지 않아~ 하고 넘기곤 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내가 그 작가가 첨 글을 쓰던 나이가 되고 그런 경험이 켜켜히 쌓여가면서 그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 그가 본 세상, 사람살이가 사실이라는 걸 알아가고 있었다.

 

예전 어떤 선배가 어느자리에서 엉뚱하게 뱉었던 박완서의 소설이야기

'그 가을 사흘동안"이 졸업을 앞두고 읽으면서 너무나 마음에 와 닿았다고.. 생뚱맞은 이야기지만 아이를 받아내기 위해 기다리는 그 사흘간의 절박함이 너무나 간절하게 와닿았노라고 했던 기억이 있다. 그때 선배나이는 겨우 20대 초반이었던 까닭에 그 말이 정말이지 선배말마따나 생뚱맞았다

그리고 읽었던 그 소설이 그냥 그런 박완서 풍이구나.. 하고 넘겼는데 이상하게 시간이 지날수록 그 소설에서 보여지는 절박하고 초조한 느낌이 현실에서 부딪치게되었다.

뭔가 이렇게 시간을 보내면 안될거 같은 기분.. 누군가에게 쫒기는 기분 그러면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같은 것을 느끼면서 그 작가의 혜안에 감탄하면서 두렵기도 했다.

 

항상 작품에 조금씩 엿보이거나 노골적으로 보이는 작가의 살아온 삶의 모습들

그것이 그의 한계야 하면서 잘난척 해본적도 있지만 그 깊고 넓은 세계를 가졌다는 것이 참 부럽기도 했다. 시대를 살아오면서 가지게 된 사고와 직관은 같은 시대를 거쳤다고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걸 알게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게 나이들면서 이제는 엄마를 이해하게되듯이 그의 작품이 와닿기 시작하면서 주말밤 그의 책을 읽었다.

어쩌면 소설인지 수필인지 모를만큼 자신의 이야기가 많이 녹여있고 솔직하고 담담한 이야기들이었다. 

주말이면 혼자 자기 싫다는 작은 아이때문에 그아이 방에서 함께 누워 아이를 재우고 책에 수록된'나의 가장 나종에 지닌것"을 읽었다.

예전에도 읽었던 아는 이야기라 술술 읽어나가는데 갑자기 걷잡을 수 없이 눈물이 났다.

무어가 그렇게 북받치는지 마구 쏟아지는 눈물에 나조차 당황스러웠다.

내용이 그렇게 슬펐던가? 그건 아니었다.

그러면 내용에 내가 공감하고  동감하는 부분이 있었던가?그것도 아니다.

그냥 이해로 넘어가는 이야기일 뿐인데

굳이 이유를 끌어들이자면  구술체(맞나?)로 쓰여진 그 말글이 주는 느낌때문이었을까

누군가 내 옆에서 한없는 넋두리를 듣는 기분때문에?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화자의 마음에서 울었다기보다 그 이야기를 듣고 있는 수화기 저 너머의 형님의 마음이 더 절절하게 와닿았다.

어떤 감정의 표현도 없이 담담하고 절제되어 한평생을 살면서 차갑다 정없다는 말을 귓등으로 흘리면서 살아온 그녀에게 감정이 이입되었던거같다.  거의 드러나지도 않는 이에게 이입되었던 이유를 지금도 모르겠다.

그렇게 계속 울면서 읽었던거 같다.

그러면서 드는 깨달음...

어쩌면 박완서님 작품에 늘 드러나는 것. 그래서 내가 찔리기도 하고 멀리하고싶어했던 부분은 "결핍"이 아니었을까

시대상황적인 결핍, 경제적인 결핍.. 모든 걸 채워넣은 현실에서도 어딘가 공허한 정서적인 결핍.. 그 결핍되어 늘 먹어도 먹어도 배고프고, 자꾸 자꾸 누군가에게 사랑을 구걸하게되고 끊없는 수다를 떨게하는 것

이유를 알 수 없는 . 혹은 이유와 마주하고 싶지 않은 결핍이었다.

나이먹어서도 사춘기처럼 우울하고 외롭고 쓸쓸했던것

혼자가 편하다고  나는 사람들과 함께있지 못한것에 불편함이 없다고 혼자 잘난척 하는 것

그런것이 어쩌면 내 속에 숨은 결핍을 감추려는 허세가 아니었을까

많이 외롭고 슬프다고 누구에게 말하지 않았다. 한번도

사실 왜 그러냐고 물으며 대답이 궁했기때문이기도 했다.

없이 자란것도 아니고 못배운것도 아니고 가족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내면속에서 자꾸 배고파하는 그 무언가를 뭐라고 말하기 몹시 힘들었다.

배부른 투정처럼 보일 수도 있고 허세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나는 늘  외롭고 허전했고 불안했던거 같다.

그런 상투적이면서 속된 나의 투정이  그의 책 어느부분과 닿았던 것일까

늘 읽으면서 불편하면서 공감이 갔던건 어쩌면 그분도 알게 모르게 그런 결핍을 느끼고 살았던게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해본다.

 

그러고 보면 내가 읽으면서 엉뚱하게 눈물을 쏟은 책들이 다 그랬던거같다.

 

 

이 책의 같은 제목 풍금이 있던 자리를 읽으면서도 그렇게 눈물이 났었다.

그때는 한참 어렸고 사실 내용이 현실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불륜녀에 공감하는 어린 아이이야기였는데.. 나는 그때 그 주인공 꼬마가 너무나 이해가 갔다.

엄마의 자리를 꿰찬 나쁜여자라는 걸 알지만 내 속에 숨어있던 결핍을 알아봐준  유일한 사람..

어떻게 그런 사람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 아이의 절절한 마음과 서로의 결핍을 알아보고 다가갔던 여자와 꼬마의 이야기가 너무너무 서러워서 눈물이 났었다.

 

 

이 책은 두번째로 내가 펑펑 운 작품이다.

아마 여기서도 동구의 결핍 그리고 사실 가장 극악스럽고 악의 축이었던 할머니의 결핍이 책의 말미에서 드러나면서 그만 울어버렸던게 아니었을까

왜 사람들은 자신의 가장 어둡고 나약한 부분을 꼭꼭 감추면서 살아갈까

어쩌면 그 부분을 드러냄으로서 차라리 위안받고 털어버릴 수 있을텐데

그 걸 알면서도 자꾸 감추고 허세를 부리고 남에게 위악을 떨어버리는 것 그렇게 외면해버린ㄴ 내 속의 허한 부분 ... 그 결핍이 여기서도 나를 울게 했던거 같았다.

아... 나만 그런건 아니구나

나만 나쁜 건 아니구나 하는 기분...

 

내 속의 결핍을 알고 있으면 어쩌면 그 것으로 힘이 될 수도 있다

혹은 그 결핍이 내 발목을 잡아서 그 허한 마음을 허겁지겁 감추려고 악수를 두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나는 어떤 쪽이었을까

어쩌면 후자여서 더 남의 결핍을 모른척하고 혼자 남몰래 울음을 쏟아내었던 건 아닐까

 

울고 나서 개운한 마음이 반.. 왜 그랬을까 하는 머쓱한 마음도 반

여전히 드러내기엔 뭣하고 아직도  위선을 떨어야 하는 경우라면

이렇게 간혹 통곡해버리는 것도 나쁘진 않다는 생각이다.

또 어떤 글들이 나를 울게 할지 .... 조금 겁나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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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많이 다그치는 엄마라는 건 안다.

너무 기대치가 높아서 아무리 해도 성에차질 않는 큰아이에게 늘 미안한 마음이 없진 않지만

그래도 눈을 마주치고 얼굴을 보면 잔소리가 저절로 나온다.

딱 10%가 부족해보이는 아이

뭔가 열심히 잘 하고 있다고 믿으면서도 조금만 더 노력을 하고 욕심을 내면 안될까하는 조바심이 나를 힘들게 한다.

나도 못한걸 못했던 걸 아이에게 기대한다는 것자체가 너무나 어이없고 모순이라는 건 알지만 그래도 부족한 엄마라 늘 기대하고 실망하고 퍼붓는다.

 

학원이 싫다는 아이에게 니가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이면 엄마도 생각을 바꿀 수 있다고 늘 핸드폰을 손에서 놓지 못하고  시간을 흘려보내고 나중에 모아서 허둥지둥 숙제하고 챙기는  모습이 너무 싫다고... 딱 거기서 멈춰야 하는데

머리는 이제 그만을 외치지만  몸은 소리는 계속 잔소리를 들이부으면서 아이를 코너로 몰아간다.

아...

결국 아이가 터졌고 내가 행여 했던 부분을 이야기한다.

이사를 하고 남편이랑 많이 다투었고 나도 나름 힘들고 고달파서 아이들 의식하지 않고 마구마구 싸웠던 일들... 너무너무 미안한 생각을 하면서도  아무렇지도 않아보이는 아이들을 보면서 그렇게 덮고 지내왔던 일들을 아이는 속에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었다.

나름 자존심도 있었고 생각도 많아서 그 많은 내속의 소리들을 꾹꾹 눌러담아두느라 , 언제 튀어나와 나에게 할퀴고 들까봐 두렵고 겁나서  덮어두려고 이어폰을 귀에 끼고 살았던 걸 몰랐다,

참 많이 미안했다.

아이앞에 솔직해지는 것,.

엄마에게는 그것도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나도 힘들다 투정하고 싶다. 도망가고 싶을 때도 있다고

이해하지 못할거라고 아직은 어리니까 내버려둬도 될거라고  그렇게 어영부영 모른 척했던걸 반성한다.

아이앞에서 많이 부끄러웠다.

이미 다 컸고 알거 다 알고있다는 것

그러면서 덮어줄줄도 알았고 부모 체면을 세워주는 것도 안다는 걸 나만 몰랐나보다,

 

키만큼 많이 자란 아이에게 내가 당혹한 경험이었다,.

정말 얼굴이 화끈할만큼 부끄러운  순간이지만 그래도 그렇게 서로 터뜨리고 지나간게 다행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도서관에서 빌려왔다.

적어도 이제부터라도 아이를 아파게 하는 사람이 나하나는 빠져줘야 하는게 아닐까...

미안하다... 사랑한단다.. 많이 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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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연한 인생
은희경 지음 / 창비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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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인용이 많은 건 별로다.

글이나 말에 남의 말을 인용해서 쓰는 것 .. 한두번은 고개를 끄덕이고 동의도 하고 감탄도 하지만 늘 그런상황이 반복되고 말마따나 패턴이 되어버리면  곤란하다.

 

이상하게 몰입이 안되었다.

나의 낮은 이해력때문이라고 해두자

류의 엄마 이야기 그리고 그가 삶을 견뎌가는 방법에 끌렸지만 짧아서 아쉬웠다.

이게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되돌리지 않고 그렇게 세상을 낯설게 바라보면서 격리되어 살았던 사람의 속내는 어떤 것일까

그리고 그런 사람을 엄마로 바라보는 류는 어떠했을까

사실 류와 그 엄마의 이야기가 많이 궁금하고 흥미로워 조금 아쉬웠다.

 

홍상수 영화속의 남자주인고같은 요셉은 참 싫다하면서도 계속 집중하게된다.

맘에 안들어.. 하고 퉃툴대면서도 손을 놓을 수가 없었따.

이게 작가의 능력일까

 

 

고독 고통 패턴 혼돈과 질서 등등

이 세상을 태연한 얼굴로 살아간다는 것이 만만찮다는 것그래도 태연한 얼굴일 수 있다는것을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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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영화포스터 커버 특별판)
줄리언 반스 지음, 최세희 옮김 / 다산책방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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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학기 책모임에서 고전을 다시 읽으면서 꽤 깊은 울림을 준책이 데미안이었다.

예전에 읽었던 느낌과 다르게 이제는 데미안과 싱클레어의 시간을 지나 그들의 부모의 시간에 가까워진 나이에 다시 읽은 데미안은 또다른 세상을 보여주었다.

심오한 철학이나 데미안의 독특하고 깊은 사유의 세계보다는 평범한 싱클레어가 어떻게 변화해가는가가 더 관심을 끌었다고 했던 기억이 있다.

스스로를 부정하고 미워하고 그러면서 스스로에 대한 주체할 수 없는 그리고 알 수 없는 자신감이 혼재한 시절.. 사춘기라고 할 수도 있는 그런 성장기를 읽으면서 내내 내 아이를 떠올리고 나의 지난시절을 떠올리며 가슴이 먹먹해지기도 했다.

 

지금 또 이책을 읽으면서 어쩌면 싱클레어의 뒷이야기가 아닐까

아니면 그 아이들보다 조금은 더 평범하고 우리가 쉽게 볼 수 있는 요즘 아이들의 성장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물론 이 책은 성장기라고 하기엔 너~무 긴 성장기이기는 하다.

주인공의 나이가 60대라 성장기라고 해야하나 싶지만 결국 사람은 죽는 그 순간까지 성장을 멈추면 안된다는 걸 생각하면 진정한 성장기가 아닐까

20대 어느순간 훌쩍 커버린 이후 모든 성장이 멈추어버리기엔 남은 날들이 너무나 많다,

나이를 먹어도 온화하고 깊어지기는 커녕 점점 아집과 독선이 강해지고 사랑하고 이해하는 것보다는 미워하고 미워하는 것들이 자꾸 늘어가는 나자신에게 한참 실망하는 순간에 든 책이어서일까

 

토니의 어이없는 실수아닌 실수 그리고 그의 분위기 파악못함 도무지 알지를 못하는 단순성 그리고 뻔뻔하고 지극히 평군적인 삶이 주는 무게가 퍽!하고 다가온다.

딱히 찍어서 그가 무언가를 잘못했다고는 할 수 없다,

다만 예전 학창시절 그가 이야기했듯이 역사라는 것이 부정확한 기억과 불충분한 기억의 만남이라는 것 .......... 그것에 맞게 연결되었을 뿐이다.

한때 허세에 쩔었던 소년들이 눈군가 나와 다른 눈에 띄는 친구에게 흠모의 감정을 느끼고 열등괌과 자랑스러움을 동시에 느끼면서 청년이 된다. 그리고 지기 싫어하는 마음 드러내고 싶은 마음이 합쳐저서 어떤 편지를 보내고 잊는다.

아니 잊는다라는 건 옳지 않다.

과거는 잊혀지는 것이 아니라 기억된다. 다만 그 기억이 객관적인 사실들로 이루어 지느 ㄴ것이 아니라 개인적인 감정 , 정서. 그때의 날씨.혹은 그때 먹은 음식. 들었던 음악 등등과 포개어지면서 내가 보는 혹은 내게 보이는 진실로 변화한 것들이 기억이 된다.

기록하지 않고 머릿속에 넣어둔다는 건 그렇게 조금씩 변하기 마련이다,

기록도 그때 그 마음 그 기분이 나중까지 고스란히 전해지지도 않긴 마찬가지지만...

그리고 그 변형된 기억속에서 내가 스스로 별일 아니라고 느끼는 건 소멸되고 사소하지만 내게 중요한 일은 크게 확대되면서 새로운 질서를 가진다,

 

어쩌면 나는 대략 합의하에 결정된 역사가 더 안전하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전과 똑같은 역설이거나 즉 바로 우리 코앞에서 벌어지는 역사가 가장 분명해야 함에도 그와 동시에 가장 가변적이라는 것 우리는 시간속에 살고 그것은 우리를 제한하고 규정하며 그것을 통해 우리는 역사를 측량하게 되어있다.  p107

 

개인의 기억 역시  그런게 아닐까

 

시간이란 처엄에는 멍석을 깔아줬다가 다음 순간 우리의 무릎을 꺽는다. 자신이 성숙했따고 생각했을 때 우리는 그저 무탈햇을 뿐이다

 

요절하는 것보다는 늙은 것이 언제나 나은 법이다. 젊었을 때는 산날이 많지 않기때문에 자신의 삶을 온전한 형태로 기억하는 게 가능하다. 노년에 이르면 기억은 이리저리 찢기고 누덕누덕 기운것처럼 되어버린다.

 

스스로 질서를 부여한 기억속에서 인간이란 언제나 내가 이로운 것만 기억한다. 그리고 잊는다.

토니가 정말 성장하고 있다는 것 그것은 비록 자신이'평균치'의 인간으로 평균치의 삶을 살아온 지극히 평균치의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뭔가 의혹을 느끼는 순간 포지하지 않고 그 진실로 가까이 다가간다는 것이다. 물론 그 행동의 이면에는 누군가를 이해하려는 공감이 부족했고 자의적이었고 오만했던 행동도 있었다. 그러나 포지 하지 않고 들어가 결국 진실과 마주하고 내 기억속에서 사라진 그 사실 그리고 그 이면의 모습과 마주한다. 처절한 자기반성과 함께

결국 포기하지 않고 스스로를 깊이 파고 들어가는 인간이 성장하는 것일까

데미안이나 에이드리언이 될 수 없었던, 싱클레어조차 되지 못했던 평범한 인간 토니는 포기하지 않는 동안 계속 성장해왔다. 그리고 잔인한 진실앞에서 반성하고 후회한다.

 

신중하기 그지없는 삶을 살았던 내가 이긴적도 패배한적도 없이 다만 인생이 흘러가는 대로 살지 않았던가 흔한 야심을 품었지만 야심의 실체를 깨닫지도 못한 채 그것을 위해 섣불리 정착해버리지 않았던가 상처받는게 두려웠으면서도 생존력이라는 말로 둘러대지 않았던가 거지서납부를 하고 가능한 모든 사람들과 무난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살았을 뿐 환희와 절망이라는 말은 얼마지나지 않아 소설에서는 구경한게 전부인 인간으로 살아오지 않았던가 자책을 해도 마음 속 깊이 아파한적은 한번도 없지 않았던가.

 

주인공의 반서에 내 얼굴이 화끈거린다.

이렇게 살았으면서 이렇게 살고있다는 것조차 몰랐던 내게 쿵! 돌이 떨어진다.

책을 읽으면서 생각을 하고 이해를 하고 그리고 책장을 덮으면서 끝!이었다.

내가 공감을 하고 느끼면서도 끝!이었다.

알고 있다는 것 느꼈다는 것에서 한발도 나가지 못하고 내 속에  갇혀서 그것조차 몰랐다는 것을 이 책을 덮으면서 깨닫는다.

 

이 책에 숨은 대단한 반전이 사실 중요하지는 않았다.

엄밀히 따져 그의 잘못도 아니다.

에이드리언이 미성년자도 아닌 한사람의 성숙한 인간으로 스스로 선택한 일이고 선택한 결과이다. 결국 좋지 않고 아름답지 않은 마무리지만 그의 삶이라는 점에서,.. 누구의 삶도 경건하다는 입장에서 그를 존중한다.

평균치의 싦을 살던 주인공도 마찬가지로 경건한 삶이다,.

주도면밀하고 의도적으로 악의를 가진 행동은 아니다

 

그럼에도 그가 그 문제에 파고 들고 (그것이 노년의 따분함에서 비롯된 것일지라도) 포기하지 않고 공감하려고 애쓰면서 마침내 진실을 마주하는 것

그게 내게 없더라는 것..

이 책을 읽으며 내가 깨달은 것이다,

 

역사는 살아남의 자들의 회고담이라고 했던가

아직 살아갈 날이 많은 내가 조금 더 되돌아보며 나를 집요하게 파고 들어봐야할 때가 지금 이순간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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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운
김애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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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애란을 첨 만난건 '두근두근 내인생''이었다

그전에 달려라 애비를 보았지만 사실 대충읽어서 기억나질 않는다.

그리고 이쁜 표지에 반해 구입한 책 두근두근을 읽으면서 혼자 감동했다.

내가 소설을 보면서 감동하는 건 참 드문데.. 이전에 심윤경을 읽으며 콧물흘려가며 울어본 이후 첨으로 느낀 먹먹한 감정이었다고... 기억한다.

책날개에 나온 작가의 사진을 한참 들여다 보면서.. 젊다는 건 참 좋은거구나.. 하는 엉뚱한 생각마저 했다는 것도 기억난다.

그리고 이번에 '비행운'을 읽었다.

책을 펼쳐 차례를 훓어보면서'비행운'이라는 제목의 단편을 찾았다. 한심스럽게도

그런 제목의 작품이 있다고 생각했다.

없네...

그냥 작품집에 제목을 달았구나

 

그리고 첫작품부터 읽어내려갔다.

음... 그렇구나

참 안쓰럽고 창피했겠구나.

도데체 남자들은 무슨 생각인지등등등

사실 '하루의 축'까지 읽으면서는 그냥 덤덤했다. 그녀들의 혹은 그들의 非幸運에  답답하고 마음아프다는 것.. 그러나 큐티클을 읽고 호텔 니약 따에 넘어가면서 이젠 더이상 널널한 자세로 읽을 수가 없다. 이건 더 이상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내가 내 아이들이 겪어야할 현실의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 마지막 방점을 찍은 것이 '서른살'의 수인이었다.

작가의 의도였는지 편집자의 의도였는지 아니만 아무생각없는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작품의 순서가 내게는 기가 막히게 충격이었다.

이런 일도 있을 수 있지 , 이런 일 가끔 신문이나 인터넷에서 보지? 속상한 일이지 세상이 잘못되고 있지 그런데... 그런데.. 이게 남의 일은 아니야 내 일일수도 있고 내 아이에게 생길 수도 있는 일이지

이건 소설속에서 나오는 소설같은 이야기가 아니라 내 이야기이고 지금  현실이야.

 

 

힘든 건 불행이 아니라 행복을 기다리는게 기져운 거였어.

 

너는 자라서 내가 되겠지. ,,,겨우   내가 되겠지..

 

절친이던 은지와 서윤을 갈라서게 한건 두사람의 탓이 아니다.

졸졸 흘러내리던 물이 바위를 뚫는게 아니다. 그 물을 끊임없이 받아내던 바위가 자신도 모르게 약해진 틈을 가지고 그틈에 들어온 한방울이 바위를 가른다.

미지근한 냄비속의 쥐가 처음부터 익혀지는게 아니듯 서서히 그 온도에 익숙해지다가 마침내 임계점에서 익숙한채 죽어버리는 것이다.

서윤이도 은지도 그렇게 알수없는 균열과 피로감에 멀어진다. 그들탓에 약하디 약한 우정때문에?그게 아니라는 건 그녀들도 나도 그리고 당신들도 알고 있다 다만 모른 척할 뿐이고

그들의 문제이니 그들이 해결할 일이라고 미룰 뿐이다.

수인이 다단게에 빠진것도 그녀가 나약하고 무지해서가 아니다.

그녀가 헤미를 끌어들이고 모른척 하는 건 그녀 탓일까

우리가  먼저 수인이를 끌어들였다는 건 증거가 남지 않은 것이니 모른척하면 그뿐일까

 

앨리스에서 세경도 알았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바뀌지 않을때는 내가 잘못해서가 아니라는 것 그럴때는 세상에 화를 내야한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알았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

그녀도 결국 샤회장을 이용할 생각응ㄹ 할뿐이니까.

그건 분노가 아니라 그냥 비겁이고 방편이다,.

 

소설속 인물은 분노도 하지 않는다. 아니 하지만 그 대상이 결국 나보다 약한 것에대해서도

남자친구가 내가 흠모한 선배가 날 이용하듯이 나도 나보다 약한 제자나 내곁에 가장 만만한 비슷한 친궁에게 분노하는 것뿐이다.

이렇게 우리가 서로에게 가장 만만한 누군가에게 분노하고 있다면 서로 상처를 입을 수밖에

그런데 방법은 모르겠다. 일단은 분노밖에는...

 

 

겨울방학내내 아이를 다그쳤다.

새학년이면 이제 중학생인데 이렇게 펑펑 놀아서 뭐가 될거니?

아이는 나름 최선을 다했다. 학원을 열심히 다녔고 숙제를 열심히 했고 나름 엄마표 숙제도 열심히 했다. 아이가 할 수있는 최대한

하지만 나는 성에 차지 않았고 잘 하는 건 당연하고 못하는게 이상하다는 정말'이상한 논리'로 아이를 다그쳤다.

힘들다고 징징거리고 아이가 학원에선 문제풀이가 정신이 없다고 하소연할때 나는 폭발해서 이번엔 학원 선생에게 다다다 거렸다. 아이가 학원 난방비내러 가는거야고..

 

이렇게 다그치고 최선을 다하라고 하고 노력하라고 하고 노력하면 좋은 대학을 가고 좋은 대학을 가면 좋은 직장을 얻고 좋은 삶이 기다린다고... 차마 말을 못한다.

그게 가능한 때도 분명 있었고 지금도 가능한 일이기도 하지만.. 모두가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라는 비밀도 알고 있다.

노력이 모두가 될 수도 없고 한만큼 받아내는 정직한 세상이 아니라는 것 .. 어짜피 그때도 지금처럼 불평등한 세상이었음에도 그래도 뭔가 희망이 있었떤거 같은데 지금은 오히려 희망고문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 결국 자라서 내가 될거같은 아이를 보면서 다그치면서 내가 나를 속이는 느낌

하지만 그래도 죄선을 다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모범시민다운 죄의식도 가지면서 그렇게 방학이 끝났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 도서관에서 빌려온 김애란의 책이 나를 그 혼란으로 다시 몰아넣는다.

아이와 드라마 '학교'를 보면서도 그랬다

저게 현실이구나 아이들이 불쌍하구나.. 그렇지만 현실에도 정인재와 강세찬샘이 있기는 한지 불신이 먼저 들고 늦지 않게 반성하는 민기엄마가 과연 존재할 수 있는 건지도 의문이었고

오히려 경민이나 은혜가 현실이라는 비겁하고 불신에 가득찬 결론만 내렸었다.

 

모든것이 세상탓이라고 하기엔 죄스럽고 그렇다고 내 개인이 모든 걸 책임져야한다고 결연하게 다짐하게엔 뭔가 억울한 우리는 과연 어디로 가야할까...

 

 

이건.. 리뷰는 절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글이 산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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