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숭이와 게의 전쟁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12년 12월
평점 :
절판


 

시작은 미스테리물이었다.

그러다 조금씩 일반 소설로 영역이 확장된다.

하지만 아직도 에쿠니 가오리는  선뜻 손이 가질 않는다.

취향이 아니라서.. 수준이 좀.. 뭐 그런 이유는 아니고 아마 잡으면 푹 빠질거라는 걸 알기에

미리 뭔가에 빠지는 걸  최대한 피하고 있는 중일 뿐이다.

그렇게 늘 도서관이 서점에서 일본 소설만 찾는다.

사실 내 취향에 맞다.

 

모든 일본 소설을 읽은 것도 아니고 그저 2000년이후의 소설들을 드문드문 취향에 맞게 읽었을 뿐이다. 그저 얕은 수준이다.

그런데 나랑 참 잘 맞다.

사실 일본 소설에 대해 어쩌구 할 처지는 절대 아니지만

뭔가 큰 일이 아닌 소소한 일들 소소하고 평범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풀어내는 게 좋았다.

뭐 소설에 등장하는 이야기라면 아무렇지 않은 이야기는 아니다.

미미여사의 이야기는 늘 사회이슈와 맞닿아있고 크고 굵직한 사건이기도 하다

미스테리물에서 사회성과 연관지어지는  소재도 많지만 그래도 파고 들면 우리주변의 누구나 겪을 수 있고 소문으로 인터넷 익명계시판에서 읽어볼 수 있는 작은 이야기들

하지만 당사자에게는 절절한 이야기들이 세밀하게 펼쳐진다.

우리 소설도 마찬가지 일것이다. 대단한 누군가의 대단한 이야기보다 소소하고 우리랑 닮은 누군가의 사소한 이야기들을 치밀하게 풀어놓는 거다.

하지만 일본 소설을 읽으면서 느끼는 건 그런 소소한 이야기를 치밀하게... 가 아니라 그냥 일상적으로 덤덤하게 풀어놓는다는 느낌이다.

이런 얘기가 있어.. 한번 들어볼래

뭐 정색하고 들을 건 아니구 그냥 하던거 하면서 거기서 들어

뭐 그런 분위기

그런데 그런 이야기가 묘하게 감정을 건드리는게 있다.

암튼 내 느낌은 그렇다.

그래서 평범하고 단순하고 밋밋한 맛인데 묘하게 중독성이 있다.

 

이 책도 그렇다.

제목이 참  이게 뭐지? 하는 거였고 두께도 만만치 않았는데 슬슬 읽힌다.

뭐 대단한 깊이도 아니고 내용도 아니다.

평범한 사람들이 어떤 이상적인 목적도 아니고 살다보니 어떻게 얽히게되고 어쩌다 보니 한가지 목적으로... 바텐더를 국회의원으로 만드는 프로젝트에 나름  참여하게된다.

대학생 음악가 호스트 호스테스 술집 마담 야쿠자 등등...

어찌보면 절대 평범한 사람들이 아니기도 하다.

그런 사람들이 모여서 사실 무슨 대단 한 목적을 가진것도 아니면서 다만 자기만의 이익과  복수 혹은 얼떨결에 모여서 뭔가를 이루어 내는게  주된 이야기다.

미키 마담의 이야기처럼  슈헤이를 국회의원으로 만들어가면서  내인생의 무언가가 보상받는 기분이 든다는 것 ... 그게 모두의 마음이 아니었을까

각자 가진 내면의 상처나 세상에 대한 빚을 누군가 나랑 닮은 사람을 승리하게 도우면서 치유해나가는것 ... 그런 이야기다,

단순하고 악인이 하나도 없는 동화같은 이야기지만 묘한 울림은 있다.

다 읽고나서 이게 뭐야... 하는 속은 기분도 들지만

마지막 사와 할머니가 들려주는 미스키랑 도모키의 이야기는 충분히 아름답다.

누군가의 단한번의 사소한 친절과 호의가 내 인생을 바꾸는 것 그리고 그것이 작게 파문을 일으키면서 퍼져나가는 일은 충분히 아름답고 가치있다.

나의.. 혹은 내곁의 누군가의 소소한 이야기 경험도 좋은 동화가 되었다. 이책에서는

 

책을 덮고난 후 현실은 여전히 춥고 스산하지만 한때 위안이 되기엔 괜찮은 책이다.

게들이 작은 힘을 모아 원숭이에게 복수를 하는 이야기라는 원숭이와 게의 교전.

나는 누구랑 힘을 모아 원숭이랑 싸울까

 

 

일본 소설을 읽고나면 늘 드는 의문점

늘 등장하는 야쿠자 호스테스 술집 마담  호스트 등등이 참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간다.

일반적인 직장처럼 생활처럼 나오는데 이게 소설이라 그런건지 아니면 일본 사회가 그런건지

참 궁금하다.

어찌보면 사회에서 기피하는 부류인데 일반인들과 섞여 살면서 그런 직업에 대해 그냥 슈퍼 아르바이트처럼 쉽게 여기는 게 참 신기하다.

이런 생각도 편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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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눈빛이 저렇게 절절하긴 첨이었다.

예전 스물몇살때 본 '순수의 시대'도 나름 감동이었다.

아름다운 화면이 가장 기억에 남았고 미셀 파이퍼의 아름다운 모습도 기억한다.

그땐 미셀 파이퍼에게 감정이 이입되어 그녀가 안쓰러웠다.

시대를 앞선 이혼에, 사람들의 입방아에 그렇게 마음을 닫고 돌아서서 떠난 그녀가 안쓰러웠고

책임지지 못할 사랑을 시작한 그 남자가 미웠다.

뭐 그랬던거같다.

남자보다는 여자가 더 기억에 남았으니까

이제 이십년이 지나고 어느날 밤

유행가 가사처럼  그 옛날 극장에서 본 영화를 주말의 명화로 보면서

남자의 절절한 눈빛을 본다.

가장 소망했던 것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남자의 눈빛이 거기 있었다.

인생을 돌아볼때 후회스러움도 없이 늘 평온하고 명예로웠던 그 남자가 단 하나 갖지 못한건

그 남자의 일생에 가장 절잘했고 소중했던 '무엇'이었다.

마음속 깊은 우물속에 그'소중한'것을 넣어두고 두껑을 닫고 살아온 남자의 평온하고 잔잔한 표정에서 눈물이 난다.

그가 연기를 잘하는 배우라는 걸 알고있었지만 사실 '순수의 시대'에서의 그의 연기가 기억나지 않았다.

뭔가 강한 임펙트가 없었던 역이라서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다시 본 오늘 밤 영화속 그 남자는 참 ...

 

남자 여자를 떠나서 내가 가장 소망했던 무언가를 버리고 돌아서는 사람의 표정은 그렇지 않을까

한없이 자상하고 따뜻한 미소뒤에 뻥 뚤려있는 무언가가 있다.

 

나는 살아오면서 무엇이 가장 중요할까

내 가족 아이들 지금현실의 삶....

어쩌면 나도 내 속의 깊은 우물속에 무언가를 봉인해넣었는지도 모른다.

아주 오래전에 꽁꽁 싸서 우물에 던지고 그대로 두꼉을 닫아버린 무언가가 지금 자꾸  기억속에서 아련하게 밀려온다.

그게 무엇이었을까

어느날 영화속의 그 남자의 얼굴에서  내가 잊어버리고 살았던 그 '절실했던'것이 그리운 밤이다.

 

 

 

 

낮에 딸이랑 '파파로티'를 봤다.

중간중간 어설프고 맥락이 끊어지는 부분도 있지만 그래도 단순히 마지막 노래때문에 좋았다.

순수한 표정에서 비열하고 삐뚤어진 표정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진 이제훈도 좋았고

이제 나이 먹어 조금은 쓸쓸하고 마주 보기가 계면쩍어진 한석규도 좋았다.

한석규는 대사를 할때보아 튓마루에 앉아  동창에게 전화를 걸까 망설이는 순간 같은 그런 빈 장면을 채우는 때가 더 좋다.

뭐랄까 말하지 않아도 무심하게 앉아 무언가를 하거나  하지않거나 하는 모습이 더 많은 걸 보여준다.

그리고

내가 보기엔 대한민국에서 욕을 가장 맛나게 하는 배우가 아닐까 싶다.

어쩜 늘 쓰는 말처럼 욕이 그렇게 찰지게 들릴까?

 

지금도 여전히 아카데미 주연상을 받는 배우의 잊혀진 영화속의 모습과

한때 잘 나갔던 배우의 조금은  쓸쓸해진 지금의 영화속 모습을 보면서

왠지 지금 나 자신도 조금은 쓸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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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빈에 대하여 - 판타스틱 픽션 WHITE 1-1 판타스틱 픽션 화이트 White 1
라이오넬 슈라이버 지음, 송정은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2년 7월
평점 :
품절


p 59-60

 

그러니까 난 내가 엄마가 되는 게 두려웠던 게 아니라 보통 엄마가 되는 게 두려웠던 거야. 난 내가 부러워할지도 모를 여행을 하고 미래가 여전히 닻을 올리고 있고 미럐의 지도가 아직 그려지지 않은 다른 젊은 탐험가를 위해 출발점 역활이나 하는 영원히 정지된 닻이 될까 봐 두려웠어. 배낭을 트렁크에 실을 때 잘 가라고 손을 흔들며 키스를 날리는 출입구의 전형적 인물 추례하고 투실투실한 사람이 되는 게 두려웠고 출발하는 배기가스 연기때문에 헝클어진 앞치마로 눈을 비비는 사람, 쓸쓸하게 자물쇠를 돌리고 천정이 내려앉을 것 같은 적막 속에서 싱크대에 있는 얼마 되지 않ㅇ는 접시들을 설거지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 될까봐 두려웠던 거야 난 떠나는 것보다 남겨지는 것에 대한 공포를 더 키웠어. ''''''''''''''''''''

 

...  난 아기 갖는 걸 극도로 두려워했어.임신하긴 전 아기 양육에 대한 내 상상 잠자리에서 미소 짓는 승무원에 대한 동화를 읽어주고, 늘어진 입에 질척거리는 것을 먹여주는 것은 다른 사람들의 그림과 다르지 않았던 것같아. 내가 두려워했던 건 폐쇄되고 돌처럼 차가운 내 본성, 나 자신의 이기심, 관대함의 부족, 내 안에 머물면서 두터워진 억울함의 장력을 증명할 수 있는 것과 마주하게 되는 거였어, 내가 아무리  '페이지 넘기기'에 관심이 있다 해도 다른 누군가의 이야기에 가망없이 옭아매일 거란 예감은 날 몹시도 당혹스럽게 만들었지. 그리고 난 날 낚아챈 것이 바로 그 공포였다고 확신해. 사람을 뛰어내리도록 부추기는 절벽의 튀어나온 바위처럼 말이야. 그것을 극복할 수 없다는 사실이 그것에 아무런 매력도 느낄 수 없다는 사실이 결국 내게 그일을 하도록 유혹한 거였어.

 

 

겨울 다 읽었다.

이렇게 가독성이 떨어지는 책이라니....

이건 작가의 잘못인지 번역자의 잘못인지 독자의 잘못인지...

영화를 보지 않고 책을 들었더라면  몇페이지 읽지도 않고 그대로 던져버렸을지도 모르겠다.

 

영화를 보고 생각했다.

에바는 아무 잘못이 없어.

모성이 부족하다는게 뭐가 잘못이야?

태어나서 자라고 살아오면서 누가 모성에 대해 가르쳐 준적이 있었어?

그걸 어떻게 알고 훈력하고 익히는건지 알려준 사람이 있었나?

좋아 그게 그렇게 태어나면서 자연스럽게 몸에 배어나고  나오는 거라고 여긴다면

부성은 어떤데? 그것도 자연스럽게 나와야 하는 거 아니야?

아이가 혼자서 나오나?

성모 마리아도 아닌데 어떻게 아기가 저절로 생기지?

열달동안 몸속에 품고 있다고 해서 그동안 아기와 엄마사이에 정이 통하고 사랑이 생겨나는 거 아니야.

물론 그런 사람도 있지

하지만 세상에 흰사람 노란사람 검은 사람  다양하게 있듯이 사랑이 저절로 생겨나는 사람  학습으로 익히는 사람 좀처럼 생기지 못하는 사람도 있는 법이 아닐까

왜 한몸인 시간이 길었다고 서로 완벽하게 이해해야한다고 치부해버릴까

그렇다면 한몸인 시간을 똑같이 견딘 아이는 왜 엄마를 이해하고 받아들이지 못하지?

아직 어리니까?

그게 변명이라고... 같은 시간을 함께 한몸으로 있었는데 누구는 끝없이 베풀고 누구는 끝없이 받기만 하는 거라니.. 이런 엿같은게 어딨어!!!

 

그리고 책을 읽으면서도 여전히 나는 에바에게 죄가 없다고 믿었다.

그건 로레타 그린리프의 말에 전적으로 동감하는 이유다.

 

 

 

p 281

.......모든 게 항상 엄마 잘못이에요 안그래요? ..........................

남자애가 못되게 구는 건 엄마가 술에 취했거나 아님 마약중독이기 때문이예요. 엄마가 아들을 제멋대로 자라게 나두고 잘못한 걸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았기때문이죠. 아들이 학교에서 돌아왔을 때 엄마는 한번도 집에 없었거든요. 그런데 아이 아빠가 술주정뱅이거나 학교에서 돌아왔을 때 집에 없었다고 말하는 사람은 한사람도 없었어요. 그리고 아무도 그 아이가 그냥 처음부터 빌어먹을 나쁜 놈이라고 말하지도 않죠. 그런 실없는 이야기는 절대 믿지 마요. 사람들이 하는 기운 빠지는 이야기에 절대 휘둘려서는 안돼요. ........

엄마가 되는 건 힘든 거예요. 아무도 임신하기 전에 반드시 완벽해져야 한다고 말하는 법을 통과시키지 않았어요. 난 부인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고 확신해요. 이렇게 멋진  토요일 오후에 이런 쓰레기장 같은 곳에 있잖아요. 아직도 당신은 노력하고 있어요. 이젠 당신 자신을 돌봐요 부인 그리고 다신 그런 얘긴 하지 말아요.

 

 

그런데 하나 새롭게 알게 된것

케빈과 에바가 참 많이 닮았다는 사실이다.

아르메니아 인의 전형적인 외모뿐 아니라 건조하고 매마른 성격, 자기주장을 확실하게 갖고 있다는 것 , 그리고 뭔가 집중할 거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

누가 모자가 아니랄까봐 닮았다.

자기를 닮은 아이. 더구나 자기와 같은 약점 혹은 치부를 가진 아이를 부모는 두려워하고 부담스러워한다. 난 나의 이런 점이 정말 싫은 데... 그걸 똑같이 가지고 있는 작은 나같은 모습이 너무너무 싫어진다.

어쩌면 에바는 캐빈에게서 점점 자기를 보고 있었던건 아니었을까

에바를 이해하는 만큼 왠지 케빈도 이해가 갔다.

그 아이의 악행을 편들어 주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지만 어쩌면  그 아이는 당신을 닮았다는 이유로 회피하는 엄마의 시선을 붙잡으려고 그렇게 노력했는지도 모르겠다. 난 이렇게 당신과 다르지 않느냐? 아니면 아무리 부정해도 난 어쩔 수 없는 당신이라고..

 

영화에 비해 책에서는 에바가 케빈을 얼마나 거부했는지가 잘 나타나 있다.

원해서 한 임신이었지만 그 과정을 거치는 동안 에바는 많이 갈등하고 후회하고 힘들어했다. 그리고 아이를 낳는 순간까지 아이보다 자신의 결정에 더 관심이 있었고 자기의 결단에 더 신경을 쓰고 자기만 생각했다. 주사를 거부하는 것도 어쩌면 아이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만족을 위한거였으니까  태어난 아이는 젖을 물기를 거부하면서 두 사람사이에 긴장은 시작된다.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작은 생명체에 에바는 실망하고 케빈은 한번도 자기를 사랑하지 않았던 (자신보다도) 에바를 거부한다,

둘은 그렇게 팽팽하게 기싸움을 시작한다

아무것도 없이 맨몸으로 세상에 나왔는데 어느 누구도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느낀다면 얼마나 외롭고 무서울까 하는 생각도 했다.

그렇다고 모든 악행이 용서되는 건 아니지만 케빈도 참 많이 외로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했다,

 

아이를 키워보면 안다,

아이는 내가 열달을 품고 내가 낳았지만 내맘대로 되는 건 하나도 없다.

내가 정한 시간에 먹고 자고 싸는게 아니라 자기가 하고 싶은 시간에 그렇게 한다,.

나의 취향이나 기호 내가 바라는 건 하나도 제대로 되는 게 없다.'그 작은 것도 생명체이고 자아라고 자기만의 취향과 기호를 가지고 태어난다.

내가 분홍을 들이밀어도  회색이 좋다고 할 수 있는 자아를 가지고 있다.

어쩌면 두개의 자아가 서로 부딪치고 상처받고 거부당하면서 그렇게 서로 익숙해지고 편해지는게 엄마와 아이의 관계가 아닐까

세상에 내맘대로 되는 건 아니구나하는 걸 아이는 배워가고 엄마도 내가 낳았다고 내 종속물은 아니라는 걸 배워가야 한다.

그러기에 케빈과 에바는 자아가 너무 강했다.

내가 저것을 내 뜻대로 하지 못한다면 차라리 무시해버리겠다..그렇게 휘어지지 않고 꺽어지고 있었다.

어쩌면 그녀의 가족력을 통해 모성을 익히지 못했던 에바에게 모성을 요구하는 건 잔인한 일이었을것이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나를 희생한다는 건 머리로 될 수 없는 일이다.

에바도 끊임없이 노력하고 갈등했지만 캐빈도 사랑스러운 아이는 아니었다.

너무나 닮았고 너무나 고지식하고 단단한 껍질을 가진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해 어찌할 바를 몰랐을 것이고 은연중에 드러난 감정에 스스로도 화들짝 놀라지 않았을까

내 아이를 미워한다는 것.. 가장 가까워야 할 엄마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것 그것이 상대가 아니라 자신의 속을 더 할퀴는 꼴이 되고 스스로 상처입었다.

그렇게 평행선으로만 치닫는 두 사람이 결국 화해하고 받아들이는 일은 끔찍한 목요일을 겪은 후였다.

 

책속에 에바는 누구보다 남편을 사랑한다. 케빈을 감싸고 도는 남편에게 질투를 느낄만큼 그가 자기를 알아봐주고 이해해주길 바라지만 아이가 생긴 후 남편은 많이 달라졌다.

어쩌면 아이가 생기고 여자가 이렇게 달라지고 남편이 소외감을 느끼는  경우는 봤지만 모성과 부성이 이렇게 뒤바뀐 경우는.... 없진 않겠지만 낯선 풍경이다

에바가 끊임없이 케빈을 의심하고 불안해할 수록 남편 프랭클린은 케빈을 이해하고 모든걸 수용한다. 사내아이니까... 아직은 어리니까.. 모든 아이가 발달상황이 다 같지는 않으니까..

한때 지나는 사춘기니까...에 이르기까지

프랭클린은 맹목적으로 케빈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모습이 계모에게서 아이를 보호하는 막무가내의 부성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자신을 차갑게 이성적으로 바라보는 엄마와 무조건의 애정과 물량공세로  다가와 좀 만만하고  한심해보이는 아버지 사이에서 케빈의 혼란은 없었을까

흔히 아이를 양육할때 양쪽 부모의 일관된 행동과 양육방법이 좋다고 한다.

두 사람의 기준이 다를 경우 아이가 가지는 혼란과 불안을 없애고 좀더 효율적으로 키우기 위해서 부모는 같은 지향점을 가져야 하는데 두 사람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나랑 맞는 엄마는 냉정하고 나를 무조건 감싸는 아빠는 우습기만하고...

그 둘 사이에서 교묘하게 줄타기를 하고 이용하는 것이 케빈이다.

이 아이가 정말 모성부족으로 정없는 엄마때문에 망가진 아이라고 할 수 있을까

어떤 상황이든 이용할 줄 알고 눙칠 줄 아는 아이..

남의 감정을 교묘하게 악용하고 공감하지 않으려는 아이

나는 케빈을 이해하는 만큼 이해하기 어려웠다.

이제 알만하다 싶으면 저만큼 가 있는 아이라고나 할까..

 

나도 아이를 키우면서 사실..

모성이 많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여러번 했었다.

겨우 두 아이를 키우면서 나를 포기하기 어려웠고

돌에게 각각 맞추는 것도 힘들었고

왜 아이들은 예상되는 정답이 없는지 한탄스러웠다.

하지만 나의 변덕스런 감정과 무심함속에서도 엄마라고 매달리는 눈망울을 보면

야단맞고 울음을 쏟아놓고 돌아서면 웃으며 내게 안기는 아이를 보면

스스로 마음이 무너져 내린다.

내가 왜 그랬을까... 나만 참으면 될걸.. 아직 어린 아인데..

 

케빈에게 그런 아이다운 상냥함이 단숨함이 없어서 에바는 스스로 장벽을 허물고 무너질 기회를 갖지 못한게 아닐까... 에바의 장벽이 높아서 케빈이 단순함을 부려놓을 틈이 없던걸까..

 

어쩌면 에바는 그날.. 목요일을 겪은 후 이제 엄마가 되려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항상 결론은 모든것이 지나고 후회를 한 이후에 오는 법이니까

살아남았기때문에 모든것을 오롯이 견뎌낸 에바가 이제는 정말 엄마가 될것이다.

그리고 아이들과 매번 전쟁을 하고 뒤통수를 맞고 번개같은 충격을 먹고 이제 조금 엄마가 어떤건지 아는 나도 있고..

 

아이문제는 언제나 늘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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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서점에 갔다.

딱히 살 책이 있었던 건 아니고 그냥 구경삼아 어떤 책이 들어왔나 보고 싶었다.

행여 내가 찜해둔 신간이 운좋게 들어왔을 수도 있고  내가 미쳐 생각지 못한 책을 발견할 수도 있을테니까..

책을 훓어보면서 내가 읽었던 것 내가 가지고 있었던 것이 보인다.

그리고 이제는 내손을 떠나 중고서점으로 보내졌던 책들도 있다.

아마 나는 알라딘에 직접 팔기를 이용하니까 내가 판 책이 중고서점 매장에 있을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간혹 꼭 내것일거같은 책들이 눈에 띄인다.

내가 각진 것과 같은 책 같은 만큼의 손때가 묻고 낡아진 책들

혹시 책갈피에 내가 잊고 남겨둔 메모나 엽서가 끼워있지 않나 파라랑 넘겨본다.

당연히 없다.

이 책 주인은 무슨 마음으로 책을 여기에 넘겼을까

내가 책을 중고서점에 넘길때는 이미 읽었고 더 이상 읽을 것 같지 않은것들이 주였다.

집의 공간은 한정적이고 자라는 아이들이 차지하는 공간이 점점 넓어지면서 줄일 곳은 내공간뿐이고 내공간에서 차지하는 책들을 줄여나가는게 가장 쉬운 방법이었다.

더이상 두어도 볼 것 같지 않은 책들  그래도 골라서 샀는데 의외로 실망한 책들

옷과 마찬가지로 지난 몇년간 잊고 있었던것

더 이상 두어도 아이한테까지 읽게 하지 않을 거 같은 책들이 주였다.

그러나 이사를 이유로 왕창 정리하고 나면 왠지 후회가 되고 아쉬운 책들도 있었다.

 

중고 서점에서 내가 판 책들과 같은 목록을 찾아보고

다시 그 책을 꺼집어 내어 읽어본다.

그때 내가 느꼈던 느낌, 기억이 조금씩 다시 떠오르면서 몹시도 복잡하다.

아...

이제 중고책은 그 상태에 따라 가격이 매겨지므로 혹시 어떻게 될지 몰라 책에 메모를 하거나 줄을 긋는 일이 없다.

다만 좋은 글은 어디다 옮겨 적거나 할뿐이다.

새책과 같은 상태의 중고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책을 소중히 다룬다고 하기보다는 그냥 나중에 상품성을 위해 내 사고를 정지시키고 있는 중이다.

사실 도서관에서 빌린 책이나 중고로 산 책에서 줄을 그어놓은 건 이제 발견하기 어렵다.

공공의 책을 아껴 본다는 좋은 취지이기도 하고 책을 소중하게 다룬다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왠지 누군가의 낙서나 밑줄을 발견하면 기분이 새롭다.

나는 알지 못하는 누군가가  감동을 받았거나 위안을 받았을 구절을 내가 다시 읽어보는 것

어쩌면 무심코 지나쳤을 어떤 구절이 의미가 되어 남게 되는 경험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중고서점의 헌책들은 지나치게 상태가 좋다.

몇몇을 제외하고는 그대로 서점에서 판다고 해도 문제가 없을 만큼...

상품성은 좋지만 이제 중고책이 주는 누군가 낯선이의 정서를 훔쳐보는 일은 없어지고 있다.

 

혹시. 줄을 긋거나 뭔가를 꺼적여 놓은 것이 내 사고를 방해할 수도 있고 순간 불쾌한 기분을 들게 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누군가의 손을 거쳐 내게로 온 책이라면 그 책이 가지는 오롯한 가치 이외에 또 누군가의 의미가 덧붙여져서 오는 기분좋은 덤도 있어야 하는게 아닐까

중고 서점에서 그냥 한번 생각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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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3-03-25 2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좋군요. 저도 중고책에 밑줄 하나 없으면 오히려 읽는 맛이 없습니다.
전 종종 헌책에서 밑줄을 그어놓은 것을 보면 오랫동안 생각하는 버릇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왜 이 문장에 밑줄을 그었을까......

또는 내가 밑줄 긋고 싶은 책에 밑줄이 그어져 있으면 마치 오랜 친구를 만난 것처럼 반갑기도 합니다. 밑줄이 그어진 책이 더 비싼 가격이 됭야 합니다. ㅋㅋ.

푸른희망 2013-03-28 17:46   좋아요 0 | URL
그렇죠? ^^ 책을 보다 누군가 그은 밑줄을 보면 왠지 덤을 얻은것같기도 하더라구요... 그렇다고 밑줄있는 책이 더 비싼 가격이 되어야 한다는 건 절대절대 아니되어요~~~~
 

한때 지하철 묻지마 살인이라는게 있었다. 요즘도 있는지 모르겠다.

지하철에서 무심히 차를 기다리는 순간 누군가... 내 뒤로 말없이 다가와 나를 밀어버린다.

철로위로... 그리고 죽는다.

거리를 걷다가 가게에서 물건을 사다가 정말 나와는 일면식도 없는 사람의 분노와 불안으로 죽음을 맞는다.

지하철 안에서 누군가의 분노가 불길이 되고 죽음이 다가온다.

 

추리소설을 읽다보면 (특히 고전류에서  셜록이나 미스마플 혹은 포와로에서는) 죽는데는 이유가 있었다. 내가 과거에 저지른 무언가 잘못된 일들.. 내가 마음깊은 곳에 숨겨두고 무의식적으로 잊어버린 일들이 부메랑이 되어 내게 다가온다. 결국 뭔가 원인이 있었다.

비록 죽은 자는 알지 못하고 눈을 감는 경우도 있지만 그 사건을 깊이 파고 들어가보면 이유가 있었다.

나를 모욕했다. 우리 집안을 풍지박산나게 했다. 예전 누군가를 상처줬다. 잘못을 저지르고도 반성하지 않는다.

어떠한 이유로간에 사람을 죽이는 건 옳은 행위가 아니지만 그래도 그 순간 이유가 있었다.

모든게 들통나고 후회하고 괴로워할지언정 혹은 홀가분하고 될대로 되라는 심정이 되더라도

그 순간의 이유는 절박했었다.

그런데 이제는 이유가 없다.

내가 길을 가다가 죽는 이유, 사고를 당하는게 이유가 없다.

누군가의 분노앞에 그저 내가 그 시간 그 곳에 있었다는 것이 이유가 될 뿐이다.

 

요즘 아이들 사이의 왕따가 그렇다고 한다.

너무 잘난척을 해서 혹은 너무 찐따라서  누군가를 왕따하고 투명인간 취급하는 것이 아니란다.

그냥 ' 나만 아니면 되...."

그것 뿐이라고 한다.

물론 깊이 파고 들면 뭔가 이유가 없을 리 없다, 이미 저질러진 사건 사고위에 이유를 만들어 입힐 수도 있고 그것이 이유라고 믿어버리면 그렇게 되어버리기도 하다,.

하지만 누군가가 미워서도 아니고 나만 아니면 상관없는 이유로 왕따는 너무 무서운 일이다.

아니다.

이유가 없지는 않겠다.

내가 당하지 않으려면 할 수 밖에 없다... 이것도 이유가 되지 않을까

 

내 아이가 새학교에서 새 친구를 사귔다, 아이에게 단짝이 생겨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아이가 그 전에 전교적인 왕따였다고 한다.

내 아이만 전학을 와서 혹은 다른 학교에서 와서 그 이유를 몰랐다.

첨 단짝을 가진 그 아이는 내 아이에게 유달리 잘해주고 집착한다.

그런데 점점 아이들의 왕따놀이는 다시 시작되고 있다.

이렇게 왕따를 사귀다가는 내 아이도 왕따가 되는게 아닐까

이게 옳지 않다는 건 알지만 그래도 내 아이가 그런 아이와 친구를 한다는게 두렵다.

내 아이가 받을 상처가 두렵다.

 

사람들은 말한다. 왕따라는 건 아무도 친구가 없고 투명인간상태의 외로움인데 그냥 그렇게 둘이서 사이좋게 잘 지내면 왕따는 없지 않은거 아니냐고..

학교2013에서도 그랬다. 친구의 스마트폰을 훔친 나리가  나 이제 왕따당할거야라고 했을때 그 친구가 그랬다, 내가 있잖아. 내가 너랑 친하게 지낼건데 무슨 왕따야..

드라마에서는 그렇게 훈훈하게 끝날 수 있다,

그런데 현실은 그게 아니란다.

왕따가 새로운 표적이 생기면 그 전 왕따는 자연스럽게 왕따에서 풀려난다.

이제 니가 아니라 저 아이가 왕따라고 정해지면  그순간 왕따였던 아이는 살기위해서  다시는 그런 치욕스러운 경험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서 기를 쓰고 집단으로 들어가는 일이 생길 수도 있다고 한다.

그렇게 되면 친구라고 믿었던 아이에게 받는 배신감이 더해져 그 다음 왕따는 더 힘들고 고통스럽다. 내가 경험했으니 하지 말아야지.. 다른 이에게도 고통을 주지 말아야지 하는 공감보다도

이제 더이상 그걸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다는 두려움이 더 커서일까

그게 나쁘다는 걸 알지만 나쁜거보다 더 힘든건 내가 고통받는 것

차라리 고통보다 나쁜 걸 택하려는 아이에게 뭐라고 해야할까

 

아이에게 그렇게 말 한적이 있다. 왕따 시키는 아이보다 더 나쁜 건 옆에서 말없이 동조하는 아이들이라고.. 그 아이들은 말한다.

난 아무것도 한 거 없어. 내가 주동한것도 아니고 나는 그냥 가만있었다고

그런데 어쩌면 나를 괴롭히는 누군가보다. 그게 잘못되었다는 걸 알면서도 침묵하는 다수의 돌아선 등이 더 무서운게 아닐까..

나를 향해 칼을 들고 달려드는 미치광이보다 커튼 뒤에 숨어서 나의 그 고통의 과정으 낱낱이 관찰하는  알 수 없는 다수가 더 두렵고 밉지 않을까

그래서 아이에게 적어도 이게 잘못이라고 나서는 용기가 없다면 적어도 침묵으로 동조하는 비겁한 짓은 하지 말라고 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하니 동조하지 않고 나서지도 않으면 대체 무얼하라는 말인지 나도 참 알 수 없다.)

 

이유를 알 수 없으면 나의 모든 말과 행동들이  잘게 부서지고 해부되어 하나하나 죄의식이 심어진다. 혹시 나의 외모가 나의 몸짓이? 혹은 내가 무슨 말실수를 했던가? 잘못해서 저아이의 마음에 들지 않았던게 있었나? 그때 내가 무심코 웃은 것때문에? 그게 비웃음이라고 생각했을까?

그렇게 되면 세상의 모든 시선이 검열관이 되고 나의 모든 사고와 말 행동은 하나하나 검열에 걸려든다. 이래도 안되고 저래도 안된다.

상대의 사소한 반응이 하나하나 다 신경이 쓰이고 무심한 웃음에 마음이 놓이다가도 한순간 냉담에 하늘이 무너질 것이다.

 

사실 어른도 힘든일인데 아이들이 아직 13-4년밖에 살지 못한 아이들이 어떻게 그걸 견딜까

해 줄 수 있는 일은 뭐가 있을까

흔히 하는 말로 요즘 아이들이 누구말을 들을까

스스로 아니라고 깨닫기 전에 어떤 말이 귓등을 통과해서 마음에 닿기나 할지

 

사실 소설속에서 왕따를 당한 소녀는 꿋꿋하게 이겨내거나 혹은 시간이 해결해주거나 한다.

 

 

혹은 정신승리법으로 내가 모두를 따 시키겠다고 거꾸로 맘을 먹기도 한다.

 

 

아니면 결국 비극으로 끝나버리거나

 

 

 

 

 

사실 책을 열심히 읽어도 해결책이 없다.

그저 계란으로 바위치는 심정으로 계속 아이에게 그러지 말라고 충고하고 세상은 모두가 함꼐 살아가는 것이라는 걸 말해주는 것밖에는...

그리고 어쩌면 세상이 그래도 살만하고 지치고 실패해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곳이라는 걸 아이들이 믿게 만들어야 하는것 그런것뿐인지 모르겠다.

책에서 길을 찾는다는데 어떤 책에도 맘에 드는 해답은 없다.

그저 견디거나 함께 위악을 떨거나 주저앉는것...

그렇게  이 또한 지나가리라.... 믿을 수밖에?

 

어쩌면 아직도 진행중인 문제들이라 누구도 이렇다할 해결을 못내고 있는 건지도모른다.

해결책이 나올만하면 아이들의 사고도 함께 진화하면서 보다 더 노골적이면서도 은밀하게 정신적으로 학대하는 방법들이 진화하고 있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늘 이게 나쁘다는 것  옳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모두가 하는 일이니까 나만  올곧으면 바보같고 고지식해 보이니까.. 떄로는 옳지 않은 일이 매력적이고 나를 더 근사하게 만들기도 하니까 하는 마음에 은밀하게 혹은 노골적으로 하는 사고와  행동이 결국 그대로 아이들에게 전파 되고 있는 건지도

아니야.. 그러면 왕따 당해 ... 틀린건 아니지만 그러면 애들이 싫어하지

이말이 이제 더 이상 은밀하게 통하는 비법이 아니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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