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노트...

 

 

어떤 추리기법 혹은 반전에 대한 놀라움 보다는

작가가 치밀하게 묘사한 학교 폭력 왕따의 상황. 그 속에서 피해자가 느끼는 생생한 두려움과 절망 그리고 점점 낮아지는 자존감의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진 책이다.

사실 크다란 트릭이나 마지막의 반전은 중요하지 않았다.

결국 모든 절망노트의 이야기가 숀의 창작물이라는 사실은 중요치 않다.

그 창작물속에 가득한 한 아이의 분노와 절망이 더 크게 다가온다.

 

학교 폭력 그리고 왕따문제는 더이상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제 학교를 벗어나서 사회에서도 직장에서도 왕따는 암암리에 존재하고 있다.

대놓고 미워하고 폭력은 쓰는 것은 이제 더 이상 학교폭력이 아니다.

당사자들도 점점 진화한다.

드러나는 폭력 따돌림은 하지 않는다.

내가 가해자라는 걸 드러니지도 않고 저쪽이 피해자라는 인상도 심지 않는다.

우리는 친구이고 우리는 아직 어려서 도에 지나치는 장난을 하기도 하고 가끔은 위험하고 험한 짓도 하지만 그건 친하기때문이다. 친구끼리 못할게 뭐가 있으랴

혹은

우리는 너를 미워하지도 싫어하지 않아. 그냥 안놀 뿐이야

모두와 친구가 될 수 없다는 건 너도 알고 나도 알잖아

서로 맞는 사람끼리 더 친하게 지내는 거고 불편하면 함께 할 수 없는 일이야

다만 그래서 우린 너랑 어울리지 않아.

굳이 친하지도 않는데 미소짓고 인사하고 하는 거 좀 우습지 않니?

그렇게 지지리 궁상떨지말고 쿨하게 대할 수 없니

넌 그냥 유령이고 투명인간일 뿐이지...

 

딱 꼬집어서 뭐라고 할 수 없는 미묘한 감정

누가 욕을 하거나 때리거나 한 것도 아닌데 마음이 너무 아파서 숨을 쉴 수가 없다.

차라리 혼자 무인도에 떨어져 있는 상황이면 편하다

사람에게 둘러싸여 하하호호 행복하고 즐거운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나는 혼자라는 사실은 치떨리게 무섭고 슬프다

스스로 무기력해지는 것 그리고 누구에게도 호소할 수 없는 것이 슬프다.

 

"교사가 가장 맹목적이야"

언제나 개방되어있다 언제나 상담가능하다 언제나 말해라 무슨 일이든

하지만 툭까놓고 말해서 그들은 덮어버리는 걸 가장 좋아한다.

큰 말썽은 없었으면 좋겠고 저희까리 알아서 화해하고 잘 지내면 좋겠고

겉보기에 멀쩡하고 친해보이면 보이는 걸 믿고 싶고

우리반에는 아무일이 없다 아무문제가 없다고 혼자 주문을 외우고 믿다보면

저절로 그렇다고 보인다.

혹은 정의감으로 해결하려는 일들이 오히려 누군가에게 더 큰 상처가 되고 더 큰 왕따나 폭력의 빌미가 되기도 한다.

교실밖을 걷도는 아이를 교실로..

우리에 갇힌 맹수는 그 스트레스를 우리안 누군가에게 풀어야 한다.

치기어린 정의감은 또다른 희생을 낳는다.

그러면 결국 우리는 숀의 부모처럼 나설수 밖에 없을까

누구도 모르게 뒤에서 그렇게 찔러버리는 것..

사실 지금 공공연하게 여기서 도는 이야기도 그렇다.

잘못 건드리면 오히려 내가 뒤집어쓸 수 있는 문제이다

미리미리 증거를 잡고 정황을 모아서 나가야한다.

그리고 강하게 나가야한다.

이것이 왕따나 학교폭력에 대처하는 방법이라고들 한다.

 

어떤 전문가도 말했다.

내 아이가 왕따를 당하거나 학교폭력의 피해자인경우

가해아이에게 내 아이와 잘 지내라거나 부탁하지 말라고

넌 친구도 아니야 이제 더이상 내 아이에게 접근하지마

니가 어떤 호의를 가지고 접근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이후 너의 모든 행동은 내 아이에데한 공격이라고 생각하겠다.

친하게도 지내지마라

니네 엄마에게 말해도 좋다. 절대 내 아이 가까이 가지마라

 

화해가 아니라 경고가 약이되는 세상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어쩌면 무심하고 무자격의 부모가 아이에게는 가장 크고 쓴 독이 된다는 것.

아주 사소한것이 뜨끔해지고 무서운 것이 되기도 한다.

 

십자가..

 

 

 

왕따 혹은 학교폭력 이후의 이야기다.

읽는 이에게 감동을 강요하지 않고 담담하게 남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왕따를 당하던 소년이 죽었다.

그 소년의 유서에 절친으로 그리고 미안했던 친구로 거명되었던 두 학생

그리고 죽은 아들을 처음 발견한 아버지

형을 잃고 거의 형의 부모로만 살아가던 부모를 둔 학생의 동생 이야기다.

왕따를 주동하는 사람은 누가 보던 나쁜 놈이다.

죽도록 죄값을 치르고  처절하게 반성해야하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옆에서 아무말 없이 모른 척 했던 사람들은?

아이를 잃은 부모는 어떻게 해야할까

여기 한가지 더 우리 교실에는 폭력도 왕따도 없다고 굳게 믿었던 교사의 입장도 궁금하다.

 

말에는 두가지가 있다고 가르쳐 준 사람은 혼다씨였다.

나이프의 말

십자가의 말

.................

말로 설명할 수 없을 뿐 마음석으로는 이미 알고 있을 거야. 나이프의 말은 가슴에 박히지

당연히 굉장히 아파. 쉽게 일어나지 못하거나 그대로 치명상이 되는 일도 있어 하지만...

나이프의 말에서 가장 아플때는 찔린 순간이야

십자가의 말은 평생 등에 져야하는 말이지 그 말을 드에 진 채 계속 ㅓㄹ어가야 해 아무리 무거워도 내려놓을 수 없고 발길을 멈출 수도 없어. 걷고 있는 한 즉 살아 있는 한 계ㅗㄱ 그 말ㅇ르 등에 지고 있어야 하는 거야.

75p

 

아무짓도 하지 않았던 아이와 어른은 등에 십자가를 지고 살아간다.

어쩌면 이 책의 미덕은 거기에 있다.

사실 왕따가 생기고 누군가 죽어버린 후

우리는 쉽게 그 일을 주동했던 누군가에게 돌팔매질을 하고 나쁜 놈이라는 이름을 씌우고 그에게 모든 것을 다 걸어버린다.

우리는 그저 몰랐다고 마음아프다고 미안하다고.. 혹은 그 누군가가 아니었다면 우리에게 돌아왔을지 모를 죽음이나 죄값은 누군가가 대신 해주어서 다행이라는 은밀함을 숨긴채

그리고 남겨진 아이들이 트라우마를 가지지 않게 혹은 누군가 또 다른 희생자가 가해자가 생기지 않을 방법들을 연구한다.

그리고 이미 저질러진 일에 대해서는 쉽게 잊고 싶어한다.

하지만

그게 쉽게 잊혀질 일일까

어떤 잘못이 생기면 잘잘못을 가려야 하고 철저하게 사과를 하고 부담을 안아야 한다.

아이의 앞날을 위해 트라우마를 없애기 위해 누군가를 그릇되게 보호하고 무시하고 넘어가서는 안된다.

이 책은 어쩌면 일본이라는 사회가 이미 왕따나 폭력에 익숙해져서 나온 결과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반 아이들이 모두 강제적으로 죽은 아이의 장례식장을 찾아가도록 하고

그 곳에서 피해 아버지가 원하는 (혹은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 )방법으로 아이들을 벌한다.

가해자는 영정앞에 오지도 못하게 내쫒아버리고 모른 척 한 댓가로 살아남은 아이의 멱살을 잡고

가해자의 이름이 언론에 그대로 드러나고 사회적인 지탄을 받게 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가해자의 인권을 빙자해서 이름을 지우거나 얼굴을 가리지 않는다.

그렇다고 그들이 뼈저리게 반성하지도 않고 모른 척 얼굴을 돌린 모든 이가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그냥 내가 아니니 다행이고... 시간이 지나면 잊혀지고 그것뿐이다.

 

누군가 그렇게 떠나고 남은 사람들이 모두 주인공처럼 십자가를 등에 지고 걸어가진 않는다.

왜 하필 나일까

우리가 죽은 슌스케를 제물로 바친것처럼 나 역시 그 녀석때문에 살아남은 제물이 되어버렸다고 생각하면서도 쉽게 그걸 등에서 내려놓지는 않는다.

 

왕따는 어린아이같은 짓이 아니다. 사람이 죽을 정도의 문제를 어린아이의 유치한 잘못으로 끝내버리면 안된다.

왕따 문제를 무 겁게 말하는 평론가나 앵커가 있으면 "왕따는 교육의 황폐화나 마음속의 어둠처럼 그렇게 거창한게 아니야"라고 반박하고 싶었는데 반대로 가볍게 다루어도 화가 치밀었다. 이것은 어른이 되어 내린 결론이다.

 

문제가 생기면 그 문제를. 그로인한 생채기를 한참을 들여다 봐야한다.

쉽게 사회문제로 치부하거나 어린아이들 이야기로 넘기기전에 그 속을 찬찬히 들여다 보면 많은 이야기가 들어있다.

상처받은 사람. 두려운 사람.. 죄의식을 지니면서 안도하는 사람. 만만한 누군가를 건드리면서 화를 터뜨리는 사람. 소외받은 사람

누구든 이야기를 가지고 있고 나름의 무게를 가지고 있는 문제다.

나만 아니면 괜찮은게 아니라

누구라도 아니어야 할 문제다.

왕따는..

 

 

앞의 이야기는 피해받은 아이의 마음을 들여다 보는 이야기라면

두번째 이야기는 불의앞에서 눈을 감았던 사람  그리고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다

처음의 소설은 흥미있게 문제를 파고 나갔고

다음 이야기는 담담한 후일담을 적고 있다.

 

개인적으로 십자가가 더 와닫는 이유는

왕따문제에서 간과하기 쉬운 주변인의  그 이후의 이야기를 점이었고

어떤 감동도 극적인 상황도 없이 책을 계속 잃게 한 힘에 있었다.

더 이상 이야기속의  혹은 뉴스 속의 일이 아니라는 걸 보여준다.

 

 

 

얼마전 큰아이 반모임에서 누군가 이야기했다.

아이들끼리는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는데 선생님이 일을 너무 크게 보시는 거 같아

아이들끼리 이렇게 저렇게 얼키다가 그렇게 풀어지는 경우도 많은데 말이야.

 

그런데 아이들 끼리의 문제야.

장난이야. 그냥 커가는 과정이지.

이런 사소한 무심함속에서 오늘도 누군가가 만신창이가 되고 누군가는 죽음을 생각할 거라는 거다.

누군가는 천지처럼  슈스케처럼 혼자 죽음을 준비하고

누군가는 유군이나 사유처럼 혹은 만지처럼 상처만 짊어질 수도 있다.

남의 일이 아니다.

왕따문제는 동서양을 막론하게 계속되는 모양이다.

친한 친구의 끈질긴 장난질이나 어느날 갑자기 무시는 소녀들에게는 견딜 수 없는 일인듯..

사실 그건 나이먹어서도 마찬가지 아닐까

이건 정말 섬뜩했다.

사건이 섬뜩한게 아니라 여기 등장하는 인물들의 말이나 행동이 결코 남의 일이 아니라는 것

사고는 일어났고 죽은 사람은 죽었지만

산 사람은 어쨌든 살아야한다.

어쩌면 살아간다는 치욕스럽고  추잡한 연속앞에서 누구나 이렇게 되지 않을까

살아남은 내 아이를 지켜야 하는 입장에서는 변명을 안할 수 없다.

결국 이런 괴물같은 부모아래 괴물같은 아이가 나온다고하면 너무 지나칠까

읽는 내내 내 얼굴이 화끈거리고 부끄러웠다.

내 아이가 왕따 피해자라면 이런 짐승만도 못한 부목 어디있겠냐 싶고

내 아이가 주동자거나 가해자라면 나라고 이렇게 후안무치하지 않을 자신이 없ㄷ.

그리고 이건 더 이상 일본만의 일이 아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화려한 유쾌한 놀이동산을 만들어놓고 연인을 기다리는 남자 이야기

 

1.  소설가 김영하의 이야기처럼 서로 빗나간 화살들이 어떻게 되는가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서로 바라보는 곳이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

    그러다보니 서로의 등만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

    하지만 결국 모두가 바라는 곳은  한곳이었다.

   화려하고 사랑하고 사랑받는 곳.. 어떤 책임이나 배려보다는 지금 이순간의 즐거움을 가질 수      있   는 것이 아니었을까

    적어도 데이지나  톰이나 머틀은 그랬다.

   사실 개츠비도 나름의 욕망으로 데이지를 좋아했고 어쩌면 그 잃어버린 5년간의 환상이 데이지  를 더할 수 없는 이상형으로 미화시켜나가면서 스스로를 합리화하고 현실을 지탱해나갔다고 본다면 그 역시 어떤 찰라적 욕망을 원했던거같기도 하다.

 

2.  놀이동산은 아름답고 즐겁고 유쾌하다.

    언제나 음악이 있고 춤이 있고 화려한 조명 멋진 놀이기구 달콤한 음식이 있다.

    그렇게 정신없이 즐기고 놀다보면 어느새 폐장시간이 다가온다.

    놀이동산은 그렇게 잠시 놀다가고 즐기다 가는 곳이지 그 곳은 누구에게도 안식처는 될 수 없다.

    다만 잠깐 있다 가느냐 오래놀다가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그런 놀이동산을 지어놓고 연인을 기다리는 개츠비는 어쩌면 원하는 걸 얻기위해 그 방법을 잘 못 찾았던거같다.

    화려하고 부유한 데이지를 위해 그녀에게 맞추기만 하는 것

    그리고 그렇게 5년의 시간을 뛰어넘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것

    그것이 개츠비의 잘못이다.

    시간앞에서는 누구나 변한다. 여자는 더 많이 변한다.

     왜 남자들은... 특히나 순수하다고 자처하는 남자들은 그걸 모를까

    (한국에도 한놈이 있다. 봄날의 간다에 상우라고..)

 

3     내 기억속의 개츠비는 언제나 로버트 레드포드였다.

      그가 나온 영화를 보진 않았지만 포스터 속에서 노을을 두고 선착장에 서 있는 그의 슬픈 표

      정은 그대로 개츠비로 남아있다.

      이제는 살이 쪄서 아름다운 청년이 아닌 아저씨 필이 많이 나는 디카프리오가 어떻게 개츠비

     를 하는지 걱정스러웠다. 어울릴까

     그런데 의외다 괜찮다.

      이제 날렵한 턱선도 없고 배도 둥그스럼해진 그가 애잔하고 슬프다.

     아직 연기력이 남아있고 그의 눈빛에는 그때의  불안하고 서성이는 소년이 청년이 남아있다.

     데이지를 바라보고 수줍어하고 어색해하는 그가 하나도 어색하지 않다.

    (어쩌면 개가 레드포드의 개츠비를 직접 보지 못해서인지도 모른다)

 

5. 왜 사랑이란 건 이다지도 불공평하고 무차별적일까

   사랑받기위해 태어난 인생이 분명 존재하나보다.

    사실 어리석고 속물적인 데이지는 두 남자에게 넘치는 사랑을 받는다.

    들여다보면 아름다고 순수했던 개츠비는 결국 오해와 음모로 죽어버리고 죽어서도 스캔들의 주인공이 된다.

    사랑은 어디에나 있지만 공평하지 않다.

     어쩌면 눈 멀고 무지하게 들러붙는게 사랑이라는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6,  아름다운 저택  정원 옷차림

     화면에 보여지는 것들이 화려하고 대단할스록 불안하고 슬프다.

     모든 것이 비극을 향해 달려가는데  그 여정위로 차곡차곡 아름답고 화려한것들이 쌓여간다는게 정말 아찔하게 비극이다.

 

  먼지쌓인 책을 다시 펴봐야겠다.

 굳이 새로 나온 책을 살필요는 없을 듯하다.

 

근데 이 책이 피츠제럴드의 초기작이자 대표작이라고 알고 있는데

그는 젊은 나이에 이런 아름다움의 허망함을 어찌 알았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어른이 된다는 건 나이만 먹는다고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어른일까 아닐까

 

밤하늘에 저렇게  많은 별이 있는데도 밤이 어두운 이유는 이 우주가 아직도 젊기때문이다.

우리 눈에 보이는 별빛은 아주 오래전에 그 별에서 출발한 빛이고

지금 품어져 나오는 빛은 아직 우리에게 닿지 않았다.

그래서 젊은 우주는 아직도 캄캄하다.

 

긴 터널을 지나면 밝은 빛이 나온다.

긴 터널은 그저 견디며 통과하기만 하는 곳이 아니다.

그곳에도 의미가 있고 성장이 있다.

내가 왜 긴 터널을 지나가야하는가. 어떻게 지나가야하는가

그리고 이 터널이 끝나는 곳에서 나는 무엇을 만나게 되는가

 

정훈이의 성장이라고만 보기엔 이야기가 너무 아름답다.

그 시절을 겪으면서 온몸으로 생각하고 부딪친 사람이 가지는 깊은 생각이 보여진다.

나의 슬픔은 너의 슬픔과 만나서 서로 위로가 되고 가족이 된다.

남의 마음을 읽어내고 내 감정을 전달할 줄 아는 능력은 그래서 아름답다.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고 위로를 받는다는 것이 살아가는 큰 의미가 된다.

 

사실 소심한 마음에 마지막에 희선씨가 잘못될까봐 마음을 졸였다.

죄책감과 상실감으로 다른 생각을 할까봐...

그러나 다행이다.

 

이 우주가 어두운 이유를 알게되었다.

그리고 내가 아직 젊은 우주속에 살고 있다는게 감사하다.

 

 

김연수 문장이 정말 아름답다.

사실... 별 기대 안했는데...

뭐랄까 감정에 빠지지 않으면서 감정을 건드리는 섬세함이 있다.

작가가 맞구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 시오리코 씨와 기묘한 손님들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1부 1
미카미 엔 지음, 최고은 옮김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13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전 오래된 책을 좋아해효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친 책은 그 자체로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꼭 안에 담긴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헌책방에서 책을 고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 내용도 중요하지만 이 책이 어떤 경로를 통해 이곳에 놓여지게 되었을까

한때는 누군가에게 어떤 의미가 되었을 책이 이제는 그 의미가 퇴색되어서 이곳에 놓여진 사연이 무엇인지...

책은 그 내용이외의 많은 스토리를 가지고 있지 않을까

어쩌면 엄마의 호통과 신경질때문에 헌책방으로 들어온 만화도 있을거고

헤어진 연인의 기억을 지우기 위해 서점으로 들어온 수필이나 시집도 있을거다.

한떄 내가 밑줄을 그어가면 읽었고 외웠던 구절들이 이제는 희미하게 낙서가 되어버렸고

그 기억도 함꼐  헌책방으로 간다.

남이 쓰던 물건은 왠지 찜찜했었다.

그 사람의 영혼이 붙어 있다는 괴기한 느낌도 있었고 그냥 아는 사람이 주는게 아니라면 조금은 싫었다.

하지만 책은 달랐다

그 이전에 어떤 사람이 쓰던 것이건 상관이 없다.

꼭 헌책방에서 구입한 책 뿐 아니다.

도서관에서 누군가가  나보다 앞서 읽었을 책을 다시 내가 읽는것

그 앞사람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어떤 부분이 맘에 들었을까

혹 괜히 시간낭비했다는 생각을 나처럼 하지 않았을까

 

예전 도서관이 컴퓨터로 관리되지 않았을때 뒷면에 대출카드가 있었다.

빌리는 사람이 그 곳에 자기 이름을 적고  카드를 맡기고 빌려가는 형식

간혹 도서관에서 책을 뒤적이면서 그 카드를 유심히 본 기억이 있다.

나 이전에 읽었던 누군가의 이름을 보면서  이 사람들은 이 책이 어떤 의미였을가 생각한 적도 있다.

숙제나 과제에 치여서 빌려서 필요한 부분만 복사한 경우도 있을 거고

오래오래 읽다가 반납시기를 놓친 적도 있을 테고

빌렸다는 사실조차 까맣게 잊은 적도 있지 않을까

그리고 아무 이름도 적히지 않는 깨끗한 대출카드를 보면 괜히 좋았다.

읽고 싶지 않아도 도무지 나랑 맞지 않아도 그 책은 빌리고 싶었다.

 

영화  '러브레터'에서 주인공 소년이 했던 그 장난

아무도 빌리지 않은 책에 처음으로 사랑하는 소녀의 이름을 적어넣은 것처럼..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이 없으니 내이름이라도 적어두고 싶다는 기분...

 

헌책방에서는 책을 사면서 더불어 그 책이 가진 또다른 기억도 산다는 것

참 근사하고 낭만적이다.

 

내용은 우와~~ 할만하진 않지만 차분하고 예쁘다.

다만 이 책을 읽고 책을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게 아니라

이런 주인이 있는 헌 책방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더 간절하다.

주인에게 책이야기를 듣고 책속에서 일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같다.

다음편은...

음... 그냥 빌려 읽는게 낫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고백

 

 

초반 교사의 고백 부분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사실 책을 읽은지 꽤 되고 그 책도 처분한 후라 확실하지는 않지만

문제아를 선도하고 바르게 이끄는 것도 가치있는 일이지만 그로 인해 소외되고 내버려지는 많느 평범하고 일반적인 아이들은 어찌 할것인가.

어쩌면 한두명의 특별한 아이들로 인해 대다수의 평범한 아이들이 오히려 차별을 받는 건 아닐까

그래서 주인공은 일반적인 아이들을 더 챙기기로 했다고.. 뭐 그런 내용이었다.

내용과 관련이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부분이 참 와닿았다.

 

예전에  큰아이 담임이었던 분이 한 이야기가 있다.

아이가 아주 우수하거나 아주 문제가 많은 경우가 아니면 조금 관심을 덜 기울이게 된다.

그냥 내버려둬도 알아서 잘 따라오고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아이들

그 아이들은 어쩔 수 없이 조금 소외되는 면이 있다. 선생도 사람인지라..

 

사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그 선생님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이 있어서 그 말이 참 싫다.

대다수의 아이가 문제가 없고 우수하지도 않다.

그냥 평범하고 보통의 아이들

그 아이들은 항상 어떤 소설이나 영화에서 배경이 된다.

아무런 생각도 없고 주장도 없고 쉽게 감동하고 반성하고 주인공을 따른다.

하지만 그 아이들 하나하나도 꽃이고 아름답다.

 

 

이 드라마를 참 열심히 봤다. 보면서 학교 폭력. 아이들을 포기하지 않는 열혈 선생님 여러가지 현실적인 문제들을 보면서 공감하고 아파했지만 끝나고 허전했었다

아마 드라마에서도 그런 말이 나왔을 것이다.

문제아들  오종태와 이경이 지훈이네들 남순이와 흥수 그런 문제아들을 쫒아다니는 정인재 선생님은 정말 좋은 선생님이다.

하지만

선생님도 사람이고 한계가 있는데

그런 아이들에게 쫒은 시간과 열정만큼 다른 아이들이 소외될 수도 있다.

누군가를 교실에서 쫒아내는 것이 능사는 아니지만 그래도 보통의 아이들에게 너희는 아무 문제 없으니 감수하라고 참으라고 할 수 없는 일이다.

경민이나 길은혜같은 이기적인 여학생들에서 변기덕이 계나리같은 눈에 띄지 않는 모든 아이들은 어떻게 될까

아무 문제도 없고 크게 두드러지지 않으니 그냥 조금 내버려두어도 상관없는 아이들일까

계나리가 그랬다

나같은 학교 안온다고 누구하나 관심 가지지도 않는다고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아이들이라고 소홀히 할 수는 없다.

 

어제 아이가 상담을 하고 왔다.

아직 학기초이고 중간고사도 보지 않은 상태이므로 담임선생님 입장에서도 뭐라고 할 말이 없다는 게 이해가 간다. 게다가 내 아이지만 뛰어나지도 문제가 있지도 않고  붙임성이 좋고 사교적인 성격도 아니라면 더욱 할말은 없을 것이다.

겨우  응원하는 의미로 지금처럶 잘 해나가길 바란다..

나라도 그 이상 해줄 말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아이는 참 낙담한다.

사실 내가 선생님께 이것저것 말 안하고 묻는 말에 대답하는 게 전부지만 그래도 교실에서 돌아가는 거라든가 농담이라도 할 수 있는데 왜 그런 것조차 하지 않았을까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지만 그런 적도 있었다.

'교실에서 두드러지지 않는다는 건 좀 슬픈일이야. 왠지 투명인간이 된거 같기도 하고...'

 

작은 작은 아이 선생님이 그랬다.

아이가 자기 표현을 하지 않고 얌전한건 좋은게 아니라고

요즘같은 자기 피알시대에 스스로 드러내지 않으면 누가 알아주지 않고 불이익을 당하는 부분이 많으니까 그걸 고쳐야 한다.

결국 많이 과장되게 말하면 모든게 니탓이다.

눈에 띄고 싶으면 발표를 하고 나를 표현하고 뛰어나게 공부를 하고 두드러진 성과를 내라고

가만이 있으면 누가 알아주냐고

 

오래 보아야 아름답고 하지만

우리에겐 오래  무언가를 보고 있을 시간이 없어 보인다.

 

아이는 누구나 관심을 원한다.

그걸 부담스러워하거나 수줍어하거나 ,. 그것도 관심에 대한 갈망일것이다.

튀고 싶은 건 아니지만 누군가의 관심을 받고 싶은 것

지나가는 말 한마디라도 아.. 저 사람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구나 하는 걸 느끼게 해주는 것

(설령 그것이 자기 착각이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그런걸 누구나 소망한다.

내가 그저 이 학교에서 사회에서 배경그림같은 존재가 아니라 하나의 주체로 살고 있다는 걸 느끼게 하는건 나 혼자 위안한다고 될 일이 아니라 누군가의 반응이고 서로 간의 공감이다,

너무나 많아서 일일이 챙기기 힘든 다수의 평범한 아이들이  위안을 받고 존재감을 느낄 수 있는 무언가가 무언지 생각해봐야겠다.

 

얌전하고 평범한 자신과 자식들로 조금 울컥했나보다.

 

 

.................

사실은 고백..을 보고 느낀걸 쓸려고 했는데 엉뚱하게 흘러버렸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1. 어리다고 다 순수하지는 않다.

   요즘은 어른 머리 꼭대기에 앉아서 어른을 휘두르는 어린 것들도 있다.

   아직 어리니까  뭘 몰라서 그런거니까.. 그렇게 순진한 얼굴을 하고 있으면 어른들이 알아서 용서한다는 걸 아는 아이도 있다.

   교사가 말한다. 너희를 보호하는 건 부모나 대단한 무언가가 아니라 소년법이라고

   케빈도 알고 있었다 자기가 언제 죄를 지어야 보호를 받을 수 있는 건지

   요즘은 아이가 아이가 아니라는 걸 가끔 느낀다.

 

2. 여기서도 대부분의 교실의 아이들은 제각각의 생각이 없다.

   물론 드라마나 영화나 모두가 주인공일 수는 없다.

    배가 산으로 갈 수 있다.

   하지만 호들갑스럽고 가볍고 악의에 가득찬 아이들은 주인공 소년보다 더 무섭다.

   뭐가 선의고 뭐가 악의인지 구분이 없다.

   대중에 휩쓸려서 스스로 옳다고 정의롭다고 생각하고 마구 밀어붙이는 것

   가끔 어떤 민감한 사안에 댓글로 여론을 몰아가는 것과 달라보이지 않는다.

   큰 목소리가 이기고 머리수가 많으면 이긴다는게 세상에서 젤 무섭다는 걸 다시 느낀다.

 

3. 베르테르 선생님  정말 바보 아냐 싶다.

   나의 호의가 타인에게도 호의가 되지 못한다는 걸 모른다.

  나는 너희와 통하고 싶다. 이해하고 싶다. 나는 정의롭다를 온몸으로 보여주는 바보다.

  어쩌면 무심하고 게으르고 나태한 선생보다 더 위험하다.

   부지런 한 바보가 가장 위험하다는 표본이다.

 

4. 책도 좋았지만 영화도 좋았다.

   교실에서 (결국 대중으로 표현되는 아이지만) 아이들이 몰아가는 유치하지만 악의가 가득한

   씬도 좋았고  음악도 적절하다.

   원작에도 그랬나 기억이 나질 않지만 비오기전 어두운 날씨가 주는 긴장감 .. 비가 쏟아지는 순간 그리고 비가 그친후의 안도와 새로운 불안감이 좋았다.

   날씨로도 많은 감정을 전달한다.

 

5  결국 엄마의 부재 그리움.. 이 사고를 일으키고 아이를 괴물로 만든다..............고 하지만

   모든 부재된 엄마를 가진 소년이 괴물이 되진 않는다.

   가해자의 부모 전형을 보여주는 나오키 엄마

   내 아이는 사랑스럽고 순진하고  모든 건 친구의 잘못이고 잘못된 교사탓이다.

   언제나 그렇다. 내 아이는 그럴 아이가 아니고 아이들끼리 장난일 뿐이고 너희가 몰라서 그런거다

  하지만 그 장난에 또다른 사랑스러운 아이는 불안이 시달리고 트라우마를 겪는다

  내 눈에 보이는 내 아이가 전부가 아니다

  내 아이도 가해자일 수 있고 피해자일 수 있다.

  문제아를 가진 부모가 할 수 있는 첫번째는 진심어린 사과 그리고 반성밖엔 없다.

 

 

학교폭력에 대한  가정통신문을 보면서  얌전하고 보통의 아이를 키우는 나를 돌아보면서 조금 감정이 과잉되었음을 고백한다.. 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