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그건 퇴직같은 건지도 몰랐다.

주부의 일터가 가정이라고 한다면 직장동료이고 상사가 가족일 수도 있다.물론 가족과 사회에서 만나는 사람과의 관계가 같을 수는 없다. 하지만 스물넷 이후 생활을 계속했고 계속 뒷바라지 해온 가족들이라면 그 가족들이 모두 떠나고 혼자 남은 순간과 내가 평생을 일해온 일터에서 떠나 혼자 된 순간이 비슷하지 않을까

자식들을 다들 제 가정을 가졌고 남편도 세상을 떠난 지금 엄마는 이제야 비로소 퇴직흘 하게된걵도 모르겠다.

오랫동안 일해온 직장에서 자의든 타의든 나오고 나면 다들 혼란을 겪게 된다. 아침에 눈을 떠도 일찍 서둘러 나갈 곳이 없다는 것  이제 이불속에서 빈둥거리는 것이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 내가 책임을 져야하고 해야할 일들이 있지 않다는 것 내 앞에 놓여진  24시간이 오롯이 내것이라는 것이 홀가분하면서 동시에 나를 짓누르는 무게로 다가올 수도 있다.

엄마가 지금 그런 기분일까

자식이 떠난 집에 아버지와 둘이 생활한것도 10년이 넘었다.

나름 까다롭다면 까다로왔던 분이 우리 아버지였다. 무던하고 음식타박이 없는 사람이라는 점에서는 쉬웠는지 몰라도 삼시 세끼를 꼬박꼬박 드셔야 하고 몸이 아픈 뒤로는 바깥 출입을 못하게 되면서 짜증과 욕구불만이 많았을때 엄마도 힘들어했다.

남자란 자고로 아침에 눈을 뜨면 어디론가 갔다가 저녁에 돌아와야 집안이 편한 법인데 하루종일 살갑지도 않은 남편과 함께라는 게 힘들었을 것이다. 아마 나를 들들볶으려고 사는 것 같다고 눈물로 한숨으로 호소하기도 여러번이었으니까

나도 내 생활에 바빠서 모른 척 했고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린 적이 대부분이었다.

나이를 먹고 내 생활에 허덕이다보니 두분이  모두 이해가 되면서 모두 이해하고 싶지 않기도 했다는게 솔직한 마음이었다.

아버지를 보면 이해가 갔다. 평생을 바깥일을 해온 사람에게 하루아침에 집안에만 있어야 한다는 건 큰 형벌이다. 성실한 사횜생활과 가장으로서의 의무완수는 사회에서 쉽게 노닥거릴 친구를 만들지를 못했을 것이다. 내게 사회적인 지위가 있고 평판이 있을때는 자신있게 다가갈 수 있었던 것들이 이제 모든 계급을 떼고  사회의 이름을 떼고 보면 누가 뭐라는 것도 아닌데 나서기가 조금 주저된다. 게다가 몸도 마음대로 잘 되지 않는 상태라면 더욱 위축될 수 밖에 없다. 자존심이 강한만큼 작아진 자신을 드러내고 싶지 않은 마음도 클 테니까

그에 대한 모든 화풀이나 짜증은 엄마의 몫이었다.

내내 가족에게 시집식구들에게 시달리다가고  그 나이쯤 되면 모든 걸 홀가분하게 내려놓기도 한다는 나이에 이르러서도 엄마는 아무것도 내려놓지를 못했다.

매일 싸운다고 잔소리한다고

그냥 한귀로 듣고 흘리고 말지 싶었던 적도 많았다. 일일이 대꾸하고 신경쓸 일이 무어있을까 이제 두분에게 남은 시간이란 그런 것들 뿐일텐데..

하지만 어쩌면 엄마를 살게하고 그나마 아침에 눈을 뜨게 만든건 그런 아빠의 짜증이고 까탈스러움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단 두식고 이제 생활비도 아껴야 할 나이에  나이도 많고 아무거나 먹기도 까다로운 늙은 남편에게 무얼 해먹일까 하는 건 지구온난화문제 해결만큼이나 어려운 과제일것이다.

매일 세계 평화회담같은 고민을 짊어지고 오늘 내앞에 펼쳐진 스물네시간을 어떻게 보낼것인가 생각하고 동동거리는 것이 엄마를 움직이게 하고 숨쉬게 했다고 한다면 엄마가 싫어할까

그렇게 화내고 짜증나고 돌아서면 애틋하고 가련하기도 한 내 사람이 떠난 지금

어쩌면 가장 힘들고 무섭고 막막한 사람은 엄마다 지극히 당연하게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란 얼마나 무겁고 무서울까

철없이 내가 종종 바라는 소망이 있었다.

남편도 아이도 없는 낯선 곳에서 보송보송한  잠자리에서 혼자 눈뜨는 것

그리고 눈뜨고 내 앞에 펼쳐진 시간을 내멋대로 흘려보내는 것

그것이 내가 가장 하고 싶은 사치라고

엄마는 지금 그것이 가능하다.

하지만 그것이 사치로 느껴지진 않을거다. 아직도 밤이 되면 혼자라는 게 무섭다고 했다.

화내고 짜증내면서 아이구 내팔자야  저인간때매 내가 죽겠다고 투덜거릴 누군가가 절실히 필요해진다는 건 참 슬프고 슬펐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어떤 예고도 없이 70평생을 해오던 일이 하루아침에 없어졌다.

그러니 이제 자유다?

서늘하고 무섭다.

하지만 계속 두려워할 수도 없고 뭔가 시간을 채워야 하고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

내가 뭐라도 해줄 수 있을까

아직도 내 앞에 놓은 시간도 허덕이는 이 딸이 할 수 있는 건 그저 티나지 않게 아파하고 훌쩍이는 거말고는 없다.

한번쯤 내가 가서 하룻밤 같이 있어 줄까 하는 생각을 안해본 건 아니다.

하지만 내가 간다고 뭔가 위로가 될 것 같지 않았다. 짐이 되지나 않으면 다행이고 또 그렇게 있다가 훌쩍 내 생활로 돌아와버리면 안그래도 두분이 있을때도 누군가 왔다가 가버리면 그 빈 공간이 너무나도 크다고 하는데 이번에는 얼마나 큰 공간을 두고 올지도 두렵다.

도움도 안되고 허전함만 키워주는 일이 아닐까하는 생각만 드는건... 그것도 핑계일지 모르겠다.

책을 읽으시던 분도 아니고

혼자서 영화를 보러 다니거나 문화생활을 즐기던 분도 아니고

그저 티비 드라마를 함께 보셨고 간혹 운동삼아 나간게  혼자 한 전부인 분에게

이제 그 앞에 남은 시간을 어찌하라고 할것인지......

그냥 멀리서 혼자 마음만 쿵떡거리고 있을 뿐이다.

 

 

 

어쩌면 이 한권이 위로가 될 수 있을까

이제 혼자가 된 엄마에게는 오랫동안 시간을 함께하며 애증을 나누었던 장발이 없다.

어쩌면 그 애증 상대였던 분이 아버지였던거 같기도 하다.

미워하고 미워하고 모른 척 하고 싶었지만 어딘가 모르게 나를 닮아버린 상대에 대한 애잔함

엄마가 가진 40년동안의  불만이 희생이 엄마를 살게 한 건지도 모르겠다.

 

처음 읽었을 때 마음이 싸해서 책장을 차마 덮지 못했었는데 이걸 엄마에게 권하는 건  막 넘어져서 까지고 피가나는 쓰라린 상처에 매정하게 소독약을 들이붓는 행동인지도 모르겠다.

약이 독이 될 때도 있으니까...

그냥 나중에 내 마음이  덜 먹먹해졌을때 한번 다시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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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고'에서 그랬다.

야구는 집에서 출발해서 집으로 돌아오는 경기라고...

그 말이 참 따뜻하게 들렸다.

그냥 운동경기였고 남자들의 거친 행동들.. 운동선수치고는 둔하고 육덕한 몸매도 그랬고 사행심도 적당히 들어있고 관중들의 태도도 불량스럽고 지나친 응원으로 눈쌀을 찌푸릴 수 있는 게임

간혹 들리는 선수들의 일탈행동이나 관중들의 무매너도..

야구에 대한 관심을 줄이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우연히 본 영화에서 정의해주는 야구는 참 따뜻하고 졍겨운 게임이었다.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 세상을 한바퀴돌아야 하는 긴 여정..

 

집이 부산이라 프로야구가 시작되면서 내내 롯데응원속에서 살았다.

사실 중학교때 한 친구의 열렬한 해태응원과 언니의 결혼으로  새식구가 된 형부가 대구사람이라 은근한 삼성응원을 들었지만 결국 주위는 온통 롯데였다.

김용희 김용철부터 최동원 등등등... 그 촌스러운 하늘색 유니폼과 어딘가 모르게 인색하고 꽁한 인상 그리고 가끔 터지는 한방  우렁차게 퍼지는 부산갈매기..

집을 떠나면서 다양한 응원팀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면서 점차 잊어갔지만

간혹 경기를 뉴스에서 보거나 하면 늘 '요새 롯데는 몇등하나?"하는 관심이 생기곤 했다.

한때 우승까지 갔지만 만년 하위팀   좀 잘 해서 중위팀..

늘 시작할때는 올해의 우승팀으로 거론되지만 경기가 중반으로 이르면 그렇게 중간즈음에 이름을 올려놓던 팀.,

아버지는 야구를 좋아했었나?

동생이 어릴적에 함께 사직구장에 가서 직접 보기도 했으니 좋아한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다 한창 일하실때는 골프다 뭐다해서 그냥 뉴스로 보는 게 전부였을 것이다.

누구나 그렇듯이 한창 일할 나이의 남자들이 주말마다 구장을 찾거나 경기를 챙겨볼 시간의 여유가 없다.

그리고 나이드시고 아프시고 시간이 많아지면서 또 여러개의 채널이 생겨나고 야구만 해주는 채널마저 생기면서 아버지는 야구를 꼼꼼하게 챙겨보셨다고 했다.

엄마가 드라마보는 것 조차 방해받을 만큼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면서 롯데게임을 찾아보셨다고 한다. 심지어 야구에 관심없는 엄마조차 롯데가 언제 경기를 하는지 줄줄이 알고 계셨다.

그날 그시간을 피하면 편하게 드라마를 큰 텔레비젼으로 볼 수 있으니까...

 

나이 먹고 기력없이 소파에 파묻히듯 앉아서 야구를 보시는 아버지를 기억한다.

방학이라고 놀러간 손녀들이 오랜만 (울집엔 유선을 달지 않아서) 투니버스나 다른 채널을 좀 보게 양보하라고 몇번의 잔소리를 듣고서 겨우 안방으로 들어가서도 작은 화면으로 야구를 보시거나 라디오 중계를 들었다.

그땐 뭣모르는 생각에 결과나 알면 되지 뭘 그리 열심히 빼먹지 않고 보시나 싶었다.

왜 그렇게 열심히 보셨을까

나이 먹고 몸이 아파 기동이 편치 않으니 유일한 취미이나 낙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여기 앉아 바라볼 수 밖에 없지만 누군가 그렇게 던지고 치고 달라고 집을 떠났다가 우여곡절끝에 돌아오거나 죽어버리는 걸 보면서 당신을 생각하셨을까

 

야구공은 투수에 의해 던져지고  타자의 방망이에 맞고 날아간다.

어설프게 맞아서는 겨우 여기저기 땅을 튀거나 굴러버리거나 그렇게 다이아몬드위를 빙글빙글 돌 뿐이다. 괜히 어설프게  빗맞아서 실밥이 터지거나 상해버리면 그냥 버려지고 교환된다.

야구가 인생에 비유되는 것이

야구선수의 행위가 아니라 그들 사이에서 끝임없이 뱅뱅돌며 자신의 의지 한조각없이 여기저기로 옮겨지고 맞고 던져지는 야구공 그 자체가 아닐까

야구공은 잘 맞든 빗맞듯 계속 맞야야 한다. 그래서 집을 떠난 선수가 무사히 살아서 집으로 돌아가도록 해야한다. 어던 고난이 와도 어려움이 닥쳐도 살아서 집으로 돌아가야 이기는 경기가 야구이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살려서 집으로 보내기 위해 야구공은 많은 매를 몸으로 견딘다.

내내 구장안을 돌면서 그렇게 몸으로 견딘다.

 

순간..

잘 맞은 야구공이 구장의 밤하늘을 나른다.

홈런이라고... 잘 맞았다고 모두가 흥분하고 바라본다.

모든 불빛아래서도 하얀 야구공은 저혼자 빛내며 고고히 그 불빛을 지나친다.

여기로 내려와 달라고 손내밀고 달려드는 관중들, 글러브를 잠자리채를 손에쥐고 공을 가지고 싶어하는 욕심을 무시하고 공은 밤하늘을 직선으로 날아간다.

그리고 구장밖으로 사라진다.

누군가는 이미 집으로 돌아왔지만 공은 돌아오지 않는다.

공은 이미 우리의 시야를 떠나버렸다.

우와....

그 야구공은 어두운 밤하늘을 가로질러 어디로 갔을까

이제 더 이상 구장안을 빙빙돌며 맞고 내동댕이 쳐지는 운명을 벗어났을까

 

아버지도 그렇게 구장 밖으로 날아갔다.

누가 언제 홈런을 칠지,  구장밖으로 날아갈 강력한 장외 홈런을 칠지는 아무도 모르듯이

전혀 마지막이 준비되지 않은 채 그렇게 가셨다.

한평생 뱅뱅 돌던 곳을 떠나 이제 집을 떠나도 집으로 돌아올 수 없다.

구장밖으로 날아간 공은 더이상 홈에 돌아와 포수의 글러브에 들어갈 수 없듯이 이제 돌아오시지 않는다.

자유로울까? 두려울까?

구장밖으로 나가본 적도 없는, 그런 세상이 있는지 조차 모르는 야구공들은 전혀 알 길이 없다.

그냥 그 공은 이제 자유로울거라고

그 밖에서는 가장도 아니고 장남도 아니며 어떤 삶의 무게도 없을 거라고 믿는다.

다만 홈런볼을 갖고 싶었던 철없는 소년만 우울 할 뿐이다.

 

지금 롯데는 몇등을 하고 있을까

그들은 자신들의 경기를 열심히 챙겨보던 누군가가 한명 줄었다는 걸 알지는 못할 것이다.

그래도 경기는 계속되고 응원도 계속된다.

그냥 올해는 롯데의 성적이 좋았으면 좋겠다.

그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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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봤어 - 김려령 장편소설
김려령 지음 / 창비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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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려령의 책을 읽고 드는 느낌은 그랬다.

종이에 쓰윽 베인 느낌..

앗 따끔해서 쳐다보면 눈에 보이지도 않는 가느다란 선으로 피가 베어나온다.

순식간이라 어... 하며 무심하게 들여다보면 조금씩 통증이 느껴진다.

강하게 실감할 수 없게 조금씩...

너무 가는 선이라 잊고 있다가 내버려두면 그 가는 선이 벌어지면서 아리고 쓰리다.

무심하다가 순간 느끼는 통증처럼  그녀의 작품들은 그냥 무심하게 책장을 훌훌 넘기게 한다.

키득거리고 아하 하고 한숨을 쉬면서 책장을 다 넘기고 나면 뭔가 아릿하게 통증이 남는다.

종이에 베인 상처처럼...

 

사실 그녀의 작품을 몇번 읽으면서 많이 아리까리 했다.

재미있다. 감동적이가 그리고 끝이 개운하게 끝난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그래서 어쩌라고... 세상이 이렇게 동화처럼 잘 마무리되는 건 아니잖아... 하는 반발심이 들기도 했다.  청소년 소설이니까 동화니까 뭔가 결론을 내려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던게 아닐까하는 의심이 들었다.

다문화 가정의 빈곤한 소년이야기나 (완득이) 왕따와 자살문제 (우아한 거짓말) 나름의 상처를 지닌 청소년들의 이야기 (가시고백) 그리고 공개입양된 소녀의 딜레마들(내마음에 해마가 산다) 쉬운 문제는 아니다.  콕 집어서 정말 문제시 될 소재를 흥미있게 긴장감을 늦추기 않고 풀어내는 능력은 정말 높이 사지만.. 그 결말이 이렇게 항상 무난할 수 있을까 하는 심통이 들었다.

심통 맞다. 안그러면 어쩌란 말이냐고 묻는다면 할말은 없으니까,...

암튼 그간 작품들이 콕 집어낼만한 단점은 없었고 나름 너무나 집중해서 읽었다지만 뭔가 자꾸 아쉬웠다는 말이다.

 

그리고 이번에는 청소년 문학이 아니라고 했다.

그녀의 또다른 모습을 보게 될거라고 했고 그녀의 문학의 새로운 집대성이 될거라고 광고를 했다.

어쨌든 믿는 작가니까 사서 본다.

몰입도는 여전하다. 치고 탁구게임처럼 지치지도 않고 치고 빠지는 대사도 여전하다.

다만 성인용답게 폭력이나 섹스표현의 수위가 높다보니 조금 이질감도 든다.

꽤 호감을 가진 연기력도 좋은 아역배우가 성인연기를 하는 걸 보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모두가 좋다고 하니까. 좋을거라도 믿으며 책장을 덮는다.

뭔가 내가 모르는 좋은 점이 있을 거라고... 주인공에 깊이 파고 들어가서 썼고 이제 40대가 되면 사랑의 낭만이나 환상이 없을 만큼 이처럼 칙칙하고 무미건조하면서도 블랙홀에 빨려들듯 미친듯이 빠져드는 사랑이 있다는 것도 안다.

육체적인 문제가 저급하고 손가락질 받을 것도 아니고 가장 자신에게 충실하고 솔직한 표현일 수 있다는 것.. 간혹 그런 행위들이 위로가 되고 평안을 준다는 것도 안다.

 

몰라. 그냥 좋아 처음으로 내것이었으면 하는 사람을 만났다. 내가 가졌다고 말하고 싶은 사람. 또 그렇게 나를 가졌으면 하는 사람. 그런 사람을 만나기까지 사십육년이 걸렸다.   P124

 

출판사와 작가들의 이야기를 엿보는 재미도 솔솔하다.

 

그런데... 이것도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 하는 느낌이 떨쳐지지 않는다.

정수현이 죽고 나서 그가 죽은 저수지로 영재와 도하가 와서 이야기를 나누는 부분부터는 너무 지루하고 불필요했다. 상여위에 거꾸로 앉아서 지휘할만큼 영특하고 기가 센 영재지만 모든 걸 알았다고 할때는 맥이 탁 풀렸다.'이건 아니잖아.

그냥 정수현의 행동에 당위성을 붙이지 않으면 그만 나쁜놈이 될까봐 전전긍긍하는 것 처럼 괜치 뭔가를 붙여서 더 도드라지고 문제처럼 보이게 하는 거였다.

이책을 다시 한번 더 읽으면 나도 또 다른 것을 발견할 수 있을까

수현이나 영재

지금의 나는 그들이 전혀 공감이 되질 않는다.

도하정도는 매력적인 인물이고 어쩌면 수현의 아내를 주인공으로 또다른 이야기가 펼쳐지는 것도 가능하겠다 싶게 매력이 있긴 하지만 주인공은 조금 아니었다.

다시 한번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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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kukmin.tv/news/articleView.html?idxno=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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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요리
하시모토 쓰무구 지음, 권남희 외 옮김 / 북폴리오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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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을 함께 먹는다는 건 싫어하는 사람과는 할 수 없는 일이다.

내가 상대가 끔찍하고 재미없고 아무런 연고가 없는데 함께 마주하고 무언가를 먹어야 한다는 건 생각만 해도 속이 울렁거리고 꽉 막힌 느낌이다.

누군가를 생각하며 요리를 하고 음식을 맛봤던 기억은 설령 그 사람과 나주에 좋지 않는 기억으로 헤어졌더라도 따뜻하게 남아있다.

물론 그 사이에 많은 시간이 필요하긴 하다.

 

내가 주부가 되고 아이가 생기면서 가지게 된 작은 소망하나가 그렇다.

나중에 내 아이들이 자라서 어른이 되어.. 날 기억할때 어떤 맛으로 기억되면 좋겠다.

비오는 날 먹었던 부침개나 질리도로 반찬으로 올라왔던 콩나물 무침

간혹 해줬던 호떡이나 달고나 같은 달큰한 것들도 좋다.

명절에 함께 부쳐낸 동그랑땡이나 생선전 동짓날 뻑뻑하게 끓여낸 목이 매이는 팥죽도 좋고

대보름날  물어 덜 우려내서 씁쓸한 맛이 한참이나 남은 나물들도 상관없다.

그냥 어떤 음식을 먹으면서 나를 기억하면 좋겠다는 것...

어쩌면 나도 내 엄마를 기억하는 게 다른 감각보다 미각에 많이 남아있는 거 같다.

튀김기도 없이 즉석에서 쉽게 해줬던 타래과는 지금 보면 은근히 할일이 많이 가는 음식이었고

급식이라는게 없던 그 시절 점심 저녁 도시락을 반찬을 바꿔가며 넣어준것도 지금 보면 대단한 일이다,. 도시락 반찬이 달랐고 아침 반찬이 다르다는게 대단한 일이라는 걸 그땐 몰랐다.

그렇게 어떤 음식이나 맛 앞에서 기억되는 누군가는 그래도 참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나도 그런 행복한 사람이고 싶다.

 

이책에는 스물세편의 기억이 있고 맛이 있다.

작가가 남자라서인지 정성이 가득한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은 아니다.

대충 만들고 쉽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것. 간혹 편의점에서 산 도시락이나 자판기 커피도 나온다.

하지만 어떤 음식이든 그 걸 먹었을때 함께한 사람이나 그때의 상황 날씨같은 것들이 맛과 함께 떠오른다.

힘들때 끓여먹던 죽이나 따끈한 국같은거

지금은 헤어진 그가 가르쳐준 간단하고 맛있는 레시피

어려서 몰랐던 엄마의 고단함이 어느순간 몸살을 앓으면서 온몸으로 느껴질때 등줄기를 훓고 지나가는 서늘한 깨달음 같은것

울면서 먹었고 꾸역꾸역 목구멍으로 집어넣었던 그 음식들이 이제는 따뜻한 기억으로 스멀스멀 올라올때 그래도 그런 기억이 있어 난 참 행복했구나.. 내가 참 열심히 살았구나.. 그래도 후회없이 사랑했구나 하는 걸 느낄 수 있다.

조금 쓸쓸하고 남몰래 눈물을 흘리게 되더라도 맛과 함께 떠오르는 기억은 참 좋은 거같다.

이야기가 단순하고 일상적이지만 그래서 좋았다.

특히 얼렁뚱땅 까르보나라편은 어딘가 모르게 신경숙의 작품을 닮아보였고

이런 아침 나이먹은 아들이 차려내는 떡국이야기는 따뜻하고 정겹다.

자판기의 달기만 한 커피가 어떨땐 위로가 되고 용기를 주기도 한건 일상을 살아보면 누구나 한번씩 경험했을 것이다. 달큰하고 따뜻한 컵을 감싸쥐고 있으면 그래.. 별거 아니잖아.. 살아보지 뭐.. 대책없는 용기도 생기는 법이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해주는 정성이 들어간 소박한 음식들 그것을 맛있게 먹어주는 사람은 무조건 고맙고 좋은 사람이라는 경험도 누구나 있을 것이다.

나는 나중에 내 아이들에게 혹은 내가 아는 사람에게 어떤 맛으로 기억될까

나랑 먹었던 어떤 음식이 기억에 남고 나를 기억하게 할 맛은 무엇일까 몹시 궁금하다.

설령 시큰하고 떫은 맛이라고 아... 하고 나를 기억할 맛이 있으면 좋겠다.

시간이 흐르면 그 맛도 추억이고 행복일 수 있으면 더 좋겠다.

 

더불어 이 책은 레서피가 무지 간단하다는 것.. 과정이 쉽다는 점에서도 매우 훌륭한 책이다.

쉬우면서도 따뜻한 음식... 괜찮다.

(의외로 일본음식들이 레서피가 쉬운게 많았다. 양념도 비슷해서 대충 갖춰놓으면 꽤 근사한 요리가 되기도 한다는 걸.. 또다시 알게 된다..)

요리책으로 하나 소장할까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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