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

 

 

 

말이 많은 영화 변호인을 드디어 봤다.

영화를 보러간건 온전히 배우 송강호 때문이었다.

언젠가부터 그가 하는 아버지의 역이 눈에 들어왔다.

뭐 잘 생긴 멜로형 배우가 아니니까 나이를 먹으면서 늘 총각역을 할 수도 없고 자연스럽게 나이에 맞는 역을 하고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아버지 역을 하는거지만.. 이상하게 그가 하는 아버지는 자꾸 자꾸 생각이 났다.

이번 영화에서도 사실 변호인으로서의 송우석보다는 한집안의 가장 두 아이의 아버지로서의 송우석이 자꾸 눈에 밟혔다.

내 기억으로 그는 " 우아한 세계"에서도 아버지였고  "설국열차"에서도 아버지였고 "관상"에서도 아버지였다. 그리고 이제는 조금 희미해진 "효자동 이발사"에서도 아버지였다.

이 영화에서 송우석은  몇년전 "효자동 이발사"에서의 그 아버지를 자꾸 떠올리게 한다.

뭘랄까 중반이후 사회에 눈뜨고 정의에 대해 온몸으로 말하던 그 말고 초반부분 한집안의 가장으로 조금은 비굴하고 뻔뻔하게 하지만 치열하게 살아가는 그 모습이 자꾸자꾸 떠오른다.

잘난것도 없고 대단하게 내세울것도 없는 사람. 오직 내가 가진 몸뚱이와 기술 (변호사란 직업도 기술이라면 기술이다) 로 세상과 맞짱뜨고 내 가족을 지키고 행복하게 해주고 싶은 사람 그래서 간혹 불의에 눈을 감고 손가락질에도 묵묵히 침묵해야하는 사람

효자동 이발사의 그도 그랬고 이 영화의 전반부의 그도 그랬다.

정의로운 변호사 송우석도 정말 좋았지만 그 이전의  초라하고 속물적인 가장 송우석도 송강호가 아니면 누가 할 수 있었을까

조금은 체념하고  부끄러운 마음따위는 애써 누르면서 살아가려고 발버둥 치는 사람.. 그래도 전작들과 다르게 세상에 휩쓸리고 상처받고 혼자 다독이는 가장이 아니라 세상을 향해 한발 내딛는 아버지여서 다행이란 생각도 들었다.

변호인이라는 영화는 비겁할 수는 없지만 비굴할 수밖에 없는 우리의 가장이 조금씩 비겁함을 거부하는 이야기인지도 모르겠다.

 

 

 

위화의 "허삼관 매혈기"기를 읽었다.

어딘가 아큐를 닮았고 대지의 왕룽을 닮은 허삼관

작가의 말처럼 그는 다른 사람과 다르지 않게 사는 것에 큰 의미를 두었던 사람이다. 다른 사람처럼 소리치고 욕심을 내는 것에는 함꼐 욕심을 내고 화를 내는 것에는 함께 화를 내고 다들 맞고 빼앗기고 살면 그러려니 하고 맞고 빼앗기는 것 그게 틀리지 않다고 믿고 사는 사람이었다.

사람들이 못배우고 어리석은 자라 대가리라 욕해도 별 수 없다고 여기고 받아들이고 가족에게 욱하고 화를 내지만 결국 가족을 위해 피를 팔기도 하는 가장

세상에 바짝 엎드려서 순종하고 살 수 밖에 없고 저보다 약한 사람들에게 잘난척 하고 고함치는게 전부지만 욕할 수 없는 사람 그가 허삼관이다.

그도 어쩔 수 없이 비굴하게  살아야 하는 아버지였다.

 

" 일락아 오늘 내가 한 말 꼭 기억해뒤라. 사람은 양심이 있어야 한다. 난 나중에 네가 나한테 뭘 해줄 거란 기대 안한다. 그냥 내가 늙어서 죽을 때 그저 널 키운 집 생각해서 가슴이 좀 북받치고 눈물 몇 방울 흘려주면 난 그걸로

만족한다"

이렇게 소박하고 단순한 사람이다.

 

아버지들도 소년시절이 있었고 꿈이 있었고 정의를 꽃피울 씨앗을 품고 있었을 거다.

하지만 내 등에 가족을 짊어지게 되면 내가 우리 가족의 가장 앞에 서서 바람을 막아야 하는 입장이 된다면 내 속에 품은 꿈은 잠시 잊어도 좋을 것이고  세상과 맞장뜰 용기도 일단은 눌러두고 세상에 나를 맞추어 끼워넣어야 하는 입장이 되는 것 그것인가보다.

그래서 누구보다 외로운 어깨를 가지고 있지만 누구에게도 기대 울 수 없고 늘 꼿꼿하게 등을 세우고 세상을 향해 문을 열고 나가야 하는 사람

희화화된 그들의 모습을 보고 키득거리거나 피식 웃음이 터지지만 한켠 마음이 아리고 짠해지는 때도 있지만 왠지 그들에게 그런 감정을 내보이면 오히려 그들을 모욕하는게 될 거 같은 기분도 든다.

 

영화속의 송우석은 껍질을 깨고 세상으로 나왔다. 그래서 가족들은 조금 불편하고 힘들어질 것이다. 하지만 그는 누구에게도 비겁하지 않고 비굴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허삼관은 여전히 제 껍질속에서 가족을 단단히 보듬고 떄로는 납작 엎드리고 때로는 허세도 떨면서  삶을 이어나간다. 그가 피를 팔아서 가족은 평안해졌고 그가 두 다리를 딛고 단단하게 서 있어 주어서 가족은 안전했다.

누가 더 옳다고 할 수 있을까

아무도 판단할 수 없다.

기왕이면 좀 더 정의롭고 용감한 선택을 한 사람이 더 옳고 좋다는 건 당연하지만 그들을 아비로 놓고 봤을 때는 우열을 매기고 싶지 않다. 둘다 적어도 내 입장에서 최선을 다한 건 맞을 테니까

하지만 내 입장에서 조금이라도 한 걸음 더 앞으로 나가는 건 소중하고 아름답다.

그래서 허삼관을 욕할 수는 없지만 송우석을 더 존경할 수는 있는 것이다

다만 아비로서 누가 더 낫고 못하다는 것을 다른 사람인 나는 할 수 없을 거 같다.

그냥 그렇다.

 

 

 

어쩌면 나도

여담인데

중국에 허삼관이 있다면 우리에겐 송강호가 있다,

막 책장을 덮고 보러간 영화여서일까 자꾸 두 작품이 중첩되면서 속에 쌓인다.

사람들은 영화에서 그 누군가를 떠올리고 생각하고 그리워하지만 나는 영화를 보면서 송우석이라는 사람에게 오롯이 송강호를 대입해본다.

그도 짧은 학력에 (정확하지 않지만 어딘가에 그도 고졸로 프로필이 되어있었다) 지방색이 강한 사투리에  알아주지 않던 연극배우에서 이제는 없어서는 안될 영화배우가 되어 흥행을 좌우할 만큼 중요한 인물이 되어버린 사람.  외모는 여전히 두리뭉실하고 어딘가 시골 돌멩이같지만 그래서 더 질리지 않고 어디서든 맞춤하든 잘 들어맞아 기가막히게 그 인물이 되는 사람

살아남기 어렵다는 영화판에서 어쨌든 제 이름 석자를 걸고 꼭대기로 오른 사람

그 송우석이 송강호여도 상관없을거같다. 그리고 이런 영화를 했다는 것도 그렇고

한때 그가 하는 멜로가 보고 싶던 적도 있었지만 이제 나이가 보이는 그 얼굴에서 그만큼 고단하고 비굴하지만 세상에 당당할 수 있는 아버지 . 가장을 할 수 있는 배우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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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근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소영 옮김 / 살림 / 2013년 7월
평점 :
절판


" 심보가 썩어빠진 녀석들한테는 무슨 말을 해도 안통한다더니 딱 그짝이었다. 뭐 당연한 소리지만 옛날부터 이런 녀석들이 있었다. 잉런 놈들을 제대로 교정하지 못했기 ㄸ재문에 현대는 한심한 어른들 천치가 된 게 아니겠는가 반대로 말하자면 이 녀석들은 지금의 어른들을 보며 흉내를 내고 있는 것이다. 어른 사회에 편견과 차별이라는 왕따 현상이 있는 한 아이들의 왕따 현상도 사라지지 않는다."  p 34 

 

"도박으로 돈을 벌어 봤자 결국 내 손에서 다 빠져나가게 마련이야. 그런 식으로 인생을 허사는 바보같은 어른들이 지천에 널려 있지. 돈은 일해서 버는 게 가장 좋은거야. 그렇게 번 돈은 소중하게 쓰니까" p 76

 

"저기 얘들아 인간이란 약한 존재야. 그리고 교사도 인간이고 나도 약해. 너희들도 약해. 약한 사람들끼리 서로 도와가면서 살지 않으면 아무도 행복해질 수 없어."  p 117

 

 

"  사람이란 말이야 당연히 호불호라는 게 있는 법이야. 하지만 확실한 건 사람을 좋아해서 얻을 수 있는 건 아주 많지만 싫어해서 얻을 수 있는 건 거의 없다는 거야. 그런데 굳이 싫어하는 사람을 찾아낼 필요는 없지 않겠어?"  p 152

 

 

" 아래를 봐 사람들이 우글우글하지 학교 운동장에도 있고 길에도 많은 사람들이 다녀. 달리는 차안에도 다 사람들이 타고 있지. 너희들도 저 아래로 가면 저 많은 사람들 중 하나일 뿐이야. 그런 작은 존재인 한 인간의 다리가 빠르거나 느리거나 배에 흉터가 있거나 말거나 세상 전체로 보자면 아주 작은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물론 그런 사소한 일 하나로 웃고 놀리는 사람들도 있긴 하겠지 하지만 그런 사람들도 항상 너희들 생각만 하고 있는 건 아니야. 야노의 다리가 느리다거나 나카야마의 배에 흉터가 있다는 사실 따위 다들 금세 잊어버려 그런데 혼자서 끙끙대며 고민하는 거 바보같다고 생각하지 않아? 너희들은 그보다 휠씬 스케일이 큰 것들을 생각하란 말이야. 어떤 일이건 도망치면 안돼. 도망쳐서 해결되는 일은 이 세상에 하나도 없어."  p 186

 

 

" 하지만 보살피는 이상 책임도 져야해. 자식에게 밥만 먹이고  그 자식이 어떤 식으로 클지는 내 알 바 아니라고 하는 부모님응ㄴ 무책ㅇ임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 그런데 그런 부모들 많아요.

" 그래서 요즘 세상이 미쳤다고 하는 거야.

 

 

학교에서 일어나는 사건. 그것도 초등학교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이다.

처음의 교사 살인사건을 제외하면 이렇다 사건이라고 부를 만한 건 없다 작은 소동이라고 하는게 낫지않을까 싶다.

아이들 사이에 있을 수 있는 일.. 사소한 일들.. 하지만 당사자에게는 하늘이 무너지는 거 같은 끔찍하고 힘든일들이 일어난다.

무심하고 게으른 비정규 교사가 그 사건들을 풀어낸다.

그가 대단한 탐정이어서가 아니라.. 어쩌면 그가  당돌한 어린아이였다가 삐딱한 청소년이었다가 이제는 시니컬해진 청년이 되었기때문에 그 과정에서 겪었던 경험들이 바탕이 되어 아이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너희라고 다르진 않구나. 세상은 그때나 지금이나 엿같구나 하는 마음...

그냥 대담하고 당돌한 아이들 무서운 아이들이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결국.. 그게 다 어른탓이구나

내탓이구나 .. 하고 내가 섬뜩해진다.

어른들의 세계가 정글이고 무심하고 무서운데 아이들이라고 무슨 똥배짱으로 천진한 천사의 얼굴로 살아갈 수 있을까.. 그들도 나름의 정글이고 치열한 세상일 수 밖에....

마음 편하게 집어 들었다가  비정근교사에게 내가 한방 먹은 기분이다.

 

다만.. 이런 학교 현실이 우리에겐 조금 비껴가길 그냥 기도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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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 여덟의 주인공은  우연히 들은 고향에서 어머니의 묘앞에서 잠이 든다.

그리고 깨어나보니 14살이 되어있었다.

왜. 어떻게  무엇때문에 이런 타임슬립이 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주인공은 마흔 여덟의 정신을 가진 열넷이 되어 다시 그 해 여름을 지낸다.

 

그 당시 주인공에게 가장 큰 사건은 아버지가 말없이 집을 나간거였다.

어느날 조합모임에 갔던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았고 누군가가 역에서 돗토리로 가는 표를 끊었다는 제보가 나왔고 어머니와 할머니는 의외로 담담했던 기억. 그리고 그 이후 가정을 지키느라 고생한 어머니 그리고 가족들의 기억이 주인공에게 남아있다.

바로 그 사건이 일어나기 몇달 전으로 주인공은 돌아갔다.

이번엔 아버지를 막을 수 있을까

아니 아버지가 왜 가출을 했어야 했는지 왜 아직 돌아오지 않았는지를 알 수는 있을까?

 

STILLCUT

 

어바웃 타임.. 이 영화도 타임슬립에 관한 이야기다.

다행히도 여기서는 아버지가 대대로 내려오는 비밀로서의 타임슬립을 알려준다.

그리고 주인공은 위기때마다 혹은 결정적인 순간에 시간을 오가며 삶을 꾸려나간다.

우리의 주인공은 너무나 소박하고 착실하여 복권번호를 맞춘다거나 주가조작을 한다거나 뭔가 대박을 치는 일에 사용하지는 않는다. 가장 크게 도박을 한건 여동생의 삶을 바꾸어 주려는 것였지만 그것조차 본인의 의지가 아니며 안된다는 것을 알고 곁에서 조언하는 선에서 그쳐야 하는 걸 배운다. 단지 사랑하는 사람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 더 많이 사랑하기 위해 시간을 거슬러간다.

 

 

만일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나는 어디로 가고 싶을까?

가장 행복했던 순간으로 돌아가서 그때를 다시한번 누리고 싶을까?

아니면 가장 불행했던 혹은 잘못되었던 선택의 순간으로 돌아가 모든것을 되돌리고 싶을까?

내가 되돌아가서 건드린 시간은 그 흐름을 바꾸어서 이 후 내가 살았던 삶을 모조리 흔들어 놓고 나의 선택이나 행동들을 뒤죽박죽 만들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도 내가 살았던 그것과는 많이 달라진다.

그런 위험을 감수하고 내가 바꾸고 싶은 과거가 있을까.

없지는 않을 거다.

고등학교때로 돌아가 좀 더 열심히 공부할 걸 했던 것들

대학때 치열하게 고민하고 과감하게 연애할것을...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내가 하고 싶은 일을 기다려 볼걸..

느리더리도 조금은 뒤쳐지더라도 뭔가 내가 원했던 것을 찾을걸.. 타협하지 말걸..

내가 조금 더 사랑한다고 말할걸

결혼을 하지 말걸? 혹은.. 뭐 그런거

그래서 바뀐 삶은 지금보다 행복할까?

나도 이제 "열네살" 만화속 주인공의 나이에 가까워 오면서 그게 자신이 없다.

바뀐 삶을 산다고 해서 내가 더 만족할까

그렇다면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것은 다 허상이고 거짓이고 아무것도 아니란 말인가

불만투성이고 실수 투성이어도 내 삶이고 내것이고 그게 나니까... 이젠 바꾸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더 강하게 든다. 어쩌면 바꿀 수 없다는 걸 알아서 드는 자기 위안인지도 모르겠지만...

 

만화속 주인공도 영화속 주인공도.. 무엇하나 바꿀 수는 없었다.

열네살로 돌아간 소년은 아버지의 가출을 막겠다고 결심하고 그 날을 기다리지만 결국 아버지의 모습에서 나이든 현재의 나를 보게 되고 이해해버린다. 그의 말이 맞다. 열네살의 나였다면 악착같이 아버지를 막아서고 붙잡았겠지만 이미 아버지의 나이를 살아본 나는 아버지의 마음을 절절하게 이해해버렸다. 누군가를 이해해버렸다는 것이 이렇게 슬프기는 처음이다.

영화속의 인물도 이제 더 이상 타임슬립을 하지 않겠다고 선택하게 된다. 더이상 살아계신 아버지를 만나지 못하고 운명을 뒤바꿀 기회를 갖지는 못하겠지만 그 동안 살아온 내 삶이 ,. 상처많고 못난 그 삶이 내것이어서 내가 살아낸 것이어서 소증하다는 걸 알게 된다.

 

만화나 영화가 말하는 건 결국

시간을 되돌린다고 하더라도 변할 수 있는 건 없다고.. 그래선 안된다는 걸 알려준다.

시간은 정말이지  냉정하고 당찬 녀석이라 이미 보내고 나면 뒤돌아보지 않고 되돌리려하면 모든 것을 흔들어놓겠다고 위협한다. 그리고 그렇게 충분히 할 녀석이다.

그저 그 시간속에서 조금이라도 후회를 줄이고 그 순간을 즐기고 집중하자 할 뿐이다.

 

그래도 만약 시간 여행이 가능하다면

아버지가 계신 시간으로 가서..

정말 고마웠다고... 감사하다고 사랑했고 한다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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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목표증 하나가 책을 사지 않은 일년

인터넷 서점에서 하는 블로그에 이런 계획을 올린다는 것이 위험한 발상인지는 모르겠으나

지난 해의 경험에 비추어  일단 그렇게 정했다.

 

나는 정말이지 고민하고 또 고민하고 장고끝에 장바구니를 결재하는데 그 책이 내 손에 들어오는 순간 도서관 서가에 빤딱빤딱한  얄미운 모습으로 새로 들어온 신간.. 이렇게 발견되는 순가

뭐라 말할 수 없는 배신감이 든다. 누구에게 하소연도 못하고

뭐 책을 소장하는 것과 빌려보는 것은 다르지 않냐고 하면 할말은 없다.

일단 내 책이며 맘대로 읽고 싶을 때 읽을 수도 있고

내 마음에 드는 구절에 밑줄도 좍놕 그어가면서 읽을 수도 있고

두꺼운 책일 경우는 본책을 해서 제본해서 다녀도 누가 뭐라겠는가

(빌려온 총 균 쇠 를 보는 순간 빨간책방에서 흑임자씨가 서문을 분철했다는 말이 너무나 너무나 와닿았다)

그런데... 한편

내가 고민끝에 구입한 책.. 나름 큰 돈을 써서 구입한 책이 도서관에 신간으로 있는 걸 보면 또 마음이 아프다. 굳이 돈을 들이지 않아도 이렇게 보는 방법이 있는 것을

게다가 내가 구입한 책이 모두 내마음에 쏙 드는 것이 아니라

간혹 몇몇은 읽고 나면 다시 보지 않는 경우도 있다보니 일단 도서관에서 빌려보고 정말 좋으면 사도 되는 거 아닌가 싶은 거다.

매번 산 책 빌려온 책들이 쌓여가다보니

기간이 정해진 빌린 책들을 읽느라 정신없거나  아니다 싶은 것들은 휘리릭 책장만 넘기고 반납하게 되고 정작 산 책은 그저 소장용으로 가지고만 있을 뿐 언젠가는 읽으리라... 여뮤작작하느라  겉표지만 감상중이시다.,

오늘도 내가 딸내미 만화책을 사면서 고심끝에 고른 강신주의  감정수업이 아이 학교 서가에 빤질빤질한 모습으로 떡 하니 있는 걸 보니 또 마음이 부르르하다.

살까말까 했던 서천석의 신간도 있고 여행기도 있고....

내가 책을 빌리는 곳은 세군데다

아이 학교 도서관. 시립도서관. 그리고 동네에 이주마다 오는 이동도서관..

이렇게 세군데서만 빌려도 신간을 보고 싶은때 맘껏 보지는 못하지만 그런대로 볼 수 있다.

게다가 학교 도서관은 은근 신간이 자주 들어와서 수시로 새책을 볼 수도 있고

(초등 도서관이라 어른책이 오히려 덜 대여가 된다)

그러니.. 결국 .. 나는...

올 한해 책을 사지 말자 ...하는 계획을 세우게 된 것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장바구니에는 아이 참고서를 빙자하여 내가 보고 싶은 책들이 계속 쌓여가고 있다

어디 신간만 책이랴...

오래된 책들 중에도 내가 놓친 책들을 봐야지  결심하고 또 결심하면서

나는 중고서점을 부지런히 뒤지고 있는 중이고...

 

적어도.. 작심삼일이 100번 반복되면 어느정도 계획이 실현되지 않을까??

지금 내 앞에도 여전히

산 책들은 탑을 이루고

빌린 책들은 보따리 보따리를 이루며 나를 짓누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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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살면서 우리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얼마나 자주 할까. 그러면서 얼마나 가감하고 윤색하고 교묘히 가지를 쳐내는 걸까 그러나 살아온 날이 길어질수록 우리의 이야기에 제동을 걸고 ㅇ ㅜ리의 삶이 실제 우리가 산 삶과 다르며 다만 이제까지 우 리 스스로에게 들려준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 다는 사실을 깨닫도록 우리에게 반기를 드는 사람도 적어진다, 타인에게 얘기했다 해도 결국은 주로 우리 자신에게 얘기한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살아남은 대부분의 우리는 늙는 데 연연한 적이 없다. 내 판단이지만 요절하는 것보다는 늙는 것이 언제나 나은 법이다 아니 내 말뜻은 이렇다. 이십대에는 자신의 목표와 목적이 혼란스럽고 학신이 서지 않는다 해도 인생 자체와 또 인생에서의 자신의 실존과 장차 가능한 바를 강하게 의식한다. 그 후로... 그후로 깅거은 더 불확실해지고 더 중복되고 더 되감기하게 되고 왜곡이 더 심해진다. 젊을 때는 산 날이 많지 않기 때문에 자신의 삶을 온전한 형태로 기억하는게 가능하다. 노년에 이르면 기억은 이리저리 찢기고 누덕누덕 기운 것처럼 돼버린다. 충돌사고 현황을 기록하기 위해 비행기에 탑재하는 블랙박스와 비슷한 데가 있다. 사고가 일어나지 않으면 테이프는 자체적으로 기록을 지운다. 사고가 생기면 사고가 일어난 원인은 명확히 알 수 있다. 사고가 없으면 인생의 운행일지는 더욱더  불투명해진다.

 

 

역사는 승자의 거짓말이며 동시에 패자의 자기기만 이기도 하다.

 

 

 

다시 읽은 책 "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두번째는 자꾸 번역이 걸린다. 매끄럽게 읽히지 않은 것이 나의 짧은 식견탓이 아니라 번역탓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문장들이 앞뒤가 맞지 않다거나 뭔가 어색한 번역투라는게 이번엔 자꾸 보인다. 다시 읽는 것이라 몇군데는 건너뛰기도 했다.

 

다시 읽고 드는 생각 둘  토니가 그렇게 잘못한게 없다는 것이다.

사람이 경솔했다는 건 있지만 젊은 나이에 그렇게 이전 애인이 친구와 눈이 맞았다고 한다면 열받지 않을 젊은이가 있을까. 순간 친구도 잃고 사랑도 잃고 뭐 그런 유행가가사의 주인공이 되어버린 상황이 아닌가... 심하긴 하지만 그런 편지를 써보낼 수도 있지 않을까

사랑에 빠진 젊은이라면 그런 편지쯤은 아무렇지도 않게 구겨 버릴 수 있는 여유가 있어야하지 않을까.. 그 편지를 꼼꼼하게 분석하고 뜯어보고 결국은 그 편지에 적힌 시덥잖은 충고마저 (그 여자의 엄마를 만나보라고 하는) 받아들인 에이드리언이 더 쫌스럽다는 생각도 했다.

결국 문제는 에이드리언의 일기조각에 씌인것처럼 책임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그 책임의 소재가 너무나 불확실하다는 점이다. 인생의 선택을 누구에게 책임지울것인가...

 

다시 읽고 드는 생각 셋  토니가 찌짏고 못나긴 했지만 그래도 나쁜 인간은 아니다. 세월이 흘러 진실을 마주하고 솔직하게 진심으로 사과한다는 것은 대단한 것이다. 나이먹으면서 아집이 강해지고 왠만해서는 내가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게 된다. 토니의 말대로 과거는 내 마음대로 미화되거나 윤색되어 사실과는 다르게 추억이 되기도 하고 대단치 않은 것을 기억하게 만들기도 하고 뭔가 심각했던 상황들은 대수롭지 않게 변하기도 한다. 그래서 어쩌라고... 하면서 넘길 수 있는 일임에도 토니는 남아있는 유일한 피해자인 베로니카에게 사과를 한다. 너무 늦었지만 어쩌란 말인가.. 내가 그땐 전혀 눈치채지도 알아차리지도 못한 일인것을...

 

다시 읽고 드는 생각 넷.. 베로니카는 토니에게 아무런 감정이 없었을 것이다.

토니가 유산문제로 일기장 문제로 그녀를 건드리지 않았다면 베로니카는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그대로 적응하면서 토니라는 존재는 잊으며 살았을 것이다.

그런에 어느날 갑자기  이미 지워져 버린 그 이름 토니.. 라는 작자가 실체가 되어 일기장의 소유를 주장하고 나서니 순간 열받지 않았을까

에이드리언도 지워가면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그녀에게 토니의 등장은 걷잡을 수 없는 파문이 되었을 것이다. 토니의 이메일은 단순한 이메일이 아니라 베로니카가 덮어놓고 있던 과거의 기억  불쾌감 배신감 모욕 그리고 무거운 책임을 줄줄이 감자캐듯이 드러나게 만든 시발점이 되버렸다.

웃기지도 않다. 지가 뭔데.. 지금 와서 에이드리언의 일기장 소유를 주장한단 말이야?

그리고 거슬러 올라간 기억들 기록들에서 토니의 편지를 다시 기억해내고 모든 원인을 토니에게 돌리고 싶어했을지도 모르겠다. 이놈의 편지만 아니면... 아니 예전에 이놈이랑 얽히지만 않았다면.. 그래서 불쾌하게 대하고 증오를 드러내고 마구 무시한다. 하지만 문득문득 그런 생각도 하지 않았을까.. 이 미련하고 무지한 녀석이 무슨 죄라고... 그래서 순간적으로 따뜻한 모습을 보였을지도... 물론 그런 모습이 토니를 오해하게 만들기도 했지만 ...

베로니카는 안그래도 힘들고 지친.. 하지만 이제는 적응해가는 일상에 토니가  침범한게 싫었을 것이다. 넌 모르니까 아무것도 모르니까 그만 꺼지라고 하지만  눈치없는 토니는 자꾸 엉겨붙고 일기장을 핑계대고  결국 베로니카는 현실을 보여준다.

이 바보야 문제는 일기장이 아니야. 니 편지도 아니야...

 

다시 읽고 드는 생각 다섯.

몰라도 되는 일은 그냥 모르는 채 살아가면 그게 더 행복할까?

아니면 꾸역꾸역 미련하게 파고 들어서 상처입고 불행해지더라도 알아야 하는 걸까

호기심이라는 게 고양이만 죽이는게 아니다. 그놈의 호기심이 관심이 결국 옛상처를 건드리며 세상에 드러났다. 그래도 드러났으니 내가 몰랐던 잘못에 대해 나의 오해에 대해 사과할 수 있다고 토니편을 들어줄 수 있을까? 왜 잔잔한 호수에 돌을 던졌냐고... 베로니카 편을 들어야 할까

나의 만족 정직성을 위해 타인에게 해를 가해도 되는 걸까? 그건 선일까 악일까

 

다시 읽고 드는 생각 여섯.

베로니카 어머니의 유언으로는 에이드리언이 죽기 마지막 몇달간은 행복했다고 했다. 그런데 왜 죽었을까.. 무엇이 에이드리언으로 하여금 자살을 하게 했을까

토니 어머니 말대로.. 너무 똑똑해서 였을까?

살아남은 자들보다 갑작 죽은 이의 슬픔이 고독이 느껴졌다. 아.. 첨 읽을 땐 에이드리언은 그냥 하나의 소모품이었구나. 토니를 꺠닫게 하고 베로니카를  시험에 들게 하는 장치로만 봤나보다.

두 사람에게 열중하느라..

하지만 다시 읽으면서 자살을 선택한 에이드리언.. 그리고 예전 학창시절 자살했던 롭슨

두 사람의 영민함은 다를 지 몰라도 삶에 대한 불안이나 절망의 무게는 같았을까

책은 결국 에이드리언의 이야기는 하나도 해 주지 않고 끝이 난다.

하긴 그게 중요한건 아닐지 모른다.. 깊은 슬픔을 느끼게는 되지만 문제는 결국 살아남은 자들의 기억이고 자기기만일 뿐이다.

 

이 책의 장점은 여러가지 생각을 많이 하게 한다는 것. 그리고 읽을 때마다 다른  면을 보여준다는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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