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많은 영화 변호인을 드디어 봤다.
영화를 보러간건 온전히 배우 송강호 때문이었다.
언젠가부터 그가 하는 아버지의 역이 눈에 들어왔다.
뭐 잘 생긴 멜로형 배우가 아니니까 나이를 먹으면서 늘 총각역을 할 수도 없고 자연스럽게 나이에 맞는 역을 하고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아버지 역을 하는거지만.. 이상하게 그가 하는 아버지는 자꾸 자꾸 생각이 났다.
이번 영화에서도 사실 변호인으로서의 송우석보다는 한집안의 가장 두 아이의 아버지로서의 송우석이 자꾸 눈에 밟혔다.
내 기억으로 그는 " 우아한 세계"에서도 아버지였고 "설국열차"에서도 아버지였고 "관상"에서도 아버지였다. 그리고 이제는 조금 희미해진 "효자동 이발사"에서도 아버지였다.
이 영화에서 송우석은 몇년전 "효자동 이발사"에서의 그 아버지를 자꾸 떠올리게 한다.
뭘랄까 중반이후 사회에 눈뜨고 정의에 대해 온몸으로 말하던 그 말고 초반부분 한집안의 가장으로 조금은 비굴하고 뻔뻔하게 하지만 치열하게 살아가는 그 모습이 자꾸자꾸 떠오른다.
잘난것도 없고 대단하게 내세울것도 없는 사람. 오직 내가 가진 몸뚱이와 기술 (변호사란 직업도 기술이라면 기술이다) 로 세상과 맞짱뜨고 내 가족을 지키고 행복하게 해주고 싶은 사람 그래서 간혹 불의에 눈을 감고 손가락질에도 묵묵히 침묵해야하는 사람
효자동 이발사의 그도 그랬고 이 영화의 전반부의 그도 그랬다.
정의로운 변호사 송우석도 정말 좋았지만 그 이전의 초라하고 속물적인 가장 송우석도 송강호가 아니면 누가 할 수 있었을까
조금은 체념하고 부끄러운 마음따위는 애써 누르면서 살아가려고 발버둥 치는 사람.. 그래도 전작들과 다르게 세상에 휩쓸리고 상처받고 혼자 다독이는 가장이 아니라 세상을 향해 한발 내딛는 아버지여서 다행이란 생각도 들었다.
변호인이라는 영화는 비겁할 수는 없지만 비굴할 수밖에 없는 우리의 가장이 조금씩 비겁함을 거부하는 이야기인지도 모르겠다.
위화의 "허삼관 매혈기"기를 읽었다.
어딘가 아큐를 닮았고 대지의 왕룽을 닮은 허삼관
작가의 말처럼 그는 다른 사람과 다르지 않게 사는 것에 큰 의미를 두었던 사람이다. 다른 사람처럼 소리치고 욕심을 내는 것에는 함꼐 욕심을 내고 화를 내는 것에는 함께 화를 내고 다들 맞고 빼앗기고 살면 그러려니 하고 맞고 빼앗기는 것 그게 틀리지 않다고 믿고 사는 사람이었다.
사람들이 못배우고 어리석은 자라 대가리라 욕해도 별 수 없다고 여기고 받아들이고 가족에게 욱하고 화를 내지만 결국 가족을 위해 피를 팔기도 하는 가장
세상에 바짝 엎드려서 순종하고 살 수 밖에 없고 저보다 약한 사람들에게 잘난척 하고 고함치는게 전부지만 욕할 수 없는 사람 그가 허삼관이다.
그도 어쩔 수 없이 비굴하게 살아야 하는 아버지였다.
" 일락아 오늘 내가 한 말 꼭 기억해뒤라. 사람은 양심이 있어야 한다. 난 나중에 네가 나한테 뭘 해줄 거란 기대 안한다. 그냥 내가 늙어서 죽을 때 그저 널 키운 집 생각해서 가슴이 좀 북받치고 눈물 몇 방울 흘려주면 난 그걸로
만족한다"
이렇게 소박하고 단순한 사람이다.
아버지들도 소년시절이 있었고 꿈이 있었고 정의를 꽃피울 씨앗을 품고 있었을 거다.
하지만 내 등에 가족을 짊어지게 되면 내가 우리 가족의 가장 앞에 서서 바람을 막아야 하는 입장이 된다면 내 속에 품은 꿈은 잠시 잊어도 좋을 것이고 세상과 맞장뜰 용기도 일단은 눌러두고 세상에 나를 맞추어 끼워넣어야 하는 입장이 되는 것 그것인가보다.
그래서 누구보다 외로운 어깨를 가지고 있지만 누구에게도 기대 울 수 없고 늘 꼿꼿하게 등을 세우고 세상을 향해 문을 열고 나가야 하는 사람
희화화된 그들의 모습을 보고 키득거리거나 피식 웃음이 터지지만 한켠 마음이 아리고 짠해지는 때도 있지만 왠지 그들에게 그런 감정을 내보이면 오히려 그들을 모욕하는게 될 거 같은 기분도 든다.
영화속의 송우석은 껍질을 깨고 세상으로 나왔다. 그래서 가족들은 조금 불편하고 힘들어질 것이다. 하지만 그는 누구에게도 비겁하지 않고 비굴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허삼관은 여전히 제 껍질속에서 가족을 단단히 보듬고 떄로는 납작 엎드리고 때로는 허세도 떨면서 삶을 이어나간다. 그가 피를 팔아서 가족은 평안해졌고 그가 두 다리를 딛고 단단하게 서 있어 주어서 가족은 안전했다.
누가 더 옳다고 할 수 있을까
아무도 판단할 수 없다.
기왕이면 좀 더 정의롭고 용감한 선택을 한 사람이 더 옳고 좋다는 건 당연하지만 그들을 아비로 놓고 봤을 때는 우열을 매기고 싶지 않다. 둘다 적어도 내 입장에서 최선을 다한 건 맞을 테니까
하지만 내 입장에서 조금이라도 한 걸음 더 앞으로 나가는 건 소중하고 아름답다.
그래서 허삼관을 욕할 수는 없지만 송우석을 더 존경할 수는 있는 것이다
다만 아비로서 누가 더 낫고 못하다는 것을 다른 사람인 나는 할 수 없을 거 같다.
그냥 그렇다.
어쩌면 나도
여담인데
중국에 허삼관이 있다면 우리에겐 송강호가 있다,
막 책장을 덮고 보러간 영화여서일까 자꾸 두 작품이 중첩되면서 속에 쌓인다.
사람들은 영화에서 그 누군가를 떠올리고 생각하고 그리워하지만 나는 영화를 보면서 송우석이라는 사람에게 오롯이 송강호를 대입해본다.
그도 짧은 학력에 (정확하지 않지만 어딘가에 그도 고졸로 프로필이 되어있었다) 지방색이 강한 사투리에 알아주지 않던 연극배우에서 이제는 없어서는 안될 영화배우가 되어 흥행을 좌우할 만큼 중요한 인물이 되어버린 사람. 외모는 여전히 두리뭉실하고 어딘가 시골 돌멩이같지만 그래서 더 질리지 않고 어디서든 맞춤하든 잘 들어맞아 기가막히게 그 인물이 되는 사람
살아남기 어렵다는 영화판에서 어쨌든 제 이름 석자를 걸고 꼭대기로 오른 사람
그 송우석이 송강호여도 상관없을거같다. 그리고 이런 영화를 했다는 것도 그렇고
한때 그가 하는 멜로가 보고 싶던 적도 있었지만 이제 나이가 보이는 그 얼굴에서 그만큼 고단하고 비굴하지만 세상에 당당할 수 있는 아버지 . 가장을 할 수 있는 배우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