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에 띄운 편지
발레리 제나티 지음, 이선주 옮김 / 낭기열라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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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 책에는 현실을 날카롭게 분석하는 사회과학 도서들이 전하지 못하는 사람의 입김이 깃들어 있습니다. 그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우리편 아니면 적이라는 식으로 무리를 짓고 날선 무기로 무장하고 있는 익명의 집단 복수로서의 "그들"이 아닙니다. 선과 악이라는 흑백논리의 명찰을 달고 있는 것은 더욱 아닙니다. 그"사람"은 그냥 "나"를 닮은 '너"  "너"를 닮은 "나"입니다. 내가 너일 수 있고 네가 나일 수도 있는 숨 쉬고 느끼고 꿈꾸고 장애를 넘어 교감하고 대화할 수 있는 언어를 가진 인간입니다.

 

 

사실 이-팔 분쟁은 현재의 국제정세와 세계화된 정보 환경 속에서 여러가지로 정치적인 의도가 덧칠되어 보도되고 있는 단골 소재입니다, 제니티는 매스미디어가 이-팔 분쟁을 다루는 과정에서 마구 잘려지고 제멋대로 정돈되고 특정한 이미지로 고착된 정보들이 놓쳐버린 인간 개채로서의 인간에 촛점을 맞춥니다. 그래서 작가는 각 진영의 대변이기를 거부하면서 꿈을 꾸는 두명의 젊은이들에게 줌렌즈를 들이댑니다. 타인에게 감정이입 할 수 있는 픽션의 나레이터로서 말입니다.

 

                                 -옮긴이의 말- 중에서...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이스라엘-팔레스테인 분쟁에 대해 알려고 한 것이 아닙니다.

그 사실에 대해 잘 알려면 굳이 이책일 필요가 없으니까요

신문더미를 뒤지거나 관련 정보가 있는 기사들을 인터넷에서 찾는 것이 더 빠를 것입니다.

언젠가 이기호의 소설집에서 읽었던 말이 참 오래 남습니다.

"김박사는 누구인가"의 맨 처음에 실린 단편이었는데 .. 주인공이 예전 문서로만 기록되었던 사람들의 인적사항을 컴퓨터에 저장하는 아르바이트를 하는 이야기입니다, 주요한 줄거리가 아니라 그 주인공이 이름만으로 나열된 사람들의 성별 나이 주소지 병역기록을 기계적으로 기입하면서 이렇게 숫자로만 분류되는 똑같은 인물이 아니라 각각 하나의 이야기가 있고 역사를 가진 인물들이라는 것을 꺠닫게 되는 이야기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냥 한줄 무심하게 기록된 그 누군가에게도 따뜻한 체온이 있고 뜨거운 피가 흐를것이며  누군가를 열렬히 사랑했고 삶에 환희 혹은 고통을 느꼈을 시기가 있었을 겁니다. 그 개개의 이야기는 모두 박제된 채 그저 분류하기 쉬운 숫자와 간단한 기호들로 나열되는 사람들을 보면서 느꼈던 주인공의 자괴감이 아직도 남아있습니다.

신문에서 혹은 역사책에서 언제나 기록되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사건입니다.

언제 어디서 어떤 사건이 있었고 누가 중심인물이었고 어떤 결과가 있었고 그것의 역사적인 의미는 ..... 혹은 언제 어디서 누가 무엇을 어떻게 한  한두줄의 사건들에서 중심 인물이 아닌 사람들은 그저 모모씨 혹은 남자 여자 뭐 그런 성별로만 기록될 뿐입니다.

그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그곳에 있게 되었는지 그때 그가 어떤 마음인지 어떤 상황인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주된 인물과 상반된 사상을 가졌을 수도 있고 다른 마음을 가지고 우연히 그곳을 스쳤거나  주인공보다 더 뜨거운 무언가를 품고 그자리에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기사에는 역사의 기록에는 그것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냥 모모씨일뿐입니다.

 

이 책은 팔레스타인 이스라엘에 사는 두 청소년의 편지와 일기로 구성됩니다.

어느날 이스라엘 어느 도시에서 벌어진 테러로 인해 충격을 받은 이스라엘 소녀 탈은 무언가를 쓰고 싶은 강한 욕구를 느낍니다. 무엇인지 확신할 수 없지만 지금 이 상황을 그리고 내 기분을 기록하고 쓰지 않으면 안될거 같은 강한 감정을 느끼고 그 감정을 누군가 나누고 싶어합니다.

군인인 오빠에게 부탁해서 병에 넣은 편지를 가자지구로 보내가 그 병을 우연히 발견한 팔레스타인의 소녀 나임과 메일을 주고받게 됩니다.

나임과 탈은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인물이 아닙니다.

어쩌면 두 나라의 입장과 전혀 딴판인  꿈을 꾸고 있을 수 있는 그저 평범하고 생각이 많은 젊은이입니다.

하지만 자신들이 처한 현실에 대해 고민하고 왜 우리는 서로에게 테러를 하고 공격을 하면서 서로를 저주해야하는지 궁금해합니다. 세상 또다른 곳에서 일어나는 낯선 평화와 웃음이 왜 우리가 사는 곳에서는 그토록 주저되고 죄스럽기까지 한지 알지 못합니다.

아니 머리로는 그 이유를 알지만 가슴으로까지 이어지질 못하는 건지도 모르지요.

조금은 자유로운 사회에서 보내는 탈의 편지를 나임은 첨에는 비웃고 조롱합니다. 그저 신문에서 기사에서 보여지는 가자만을 상상하는 탈을  마음껏 비웃으며 어린아이 취급합니다.

하지만 탈은 포기하지 않고 그 땅 팔레스타인에도 자기와 닮은 누군가가 있을 거라고 믿으며 편지를 보냅니다.

 

처음 편지를 쓰기 시작했을 때 탈도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미지는 미디어가 보여준 것이 전부였습니다. 자기가 사는 곳에서 편집되고 걸러진 이미지의 팔레스타인을 생각하며 편지를 씁니다. 자기가 체득하지 못한채 이미지만 가지고 있는 곳에 있는, 그러나 자기와 비슷한 정서를 가진 소녀를 상상하며 편지를 보냅니다.

팔레스타인의 소년 나임은 그런 탈의 편지가 우스울 수도 있겠습니다. 팔레스타인에 대해 편견된 이미지를 가졌으면서도 뭔가 서로 소통하려는 마음을 가진 소녀 어쩌면 아직도 철이 덜 든 낭만적인 사춘기소녀정도로 생각했을테고.. 그래서 나임의 초반 편지들은 냉소적이고 비아냥거리는 투가 노골적으로 드러납니다. 하지만 탈은 포기하지 않지요. 누군가 자기의 편지를 읽었고 답을 보냈다는 것만으로도 가능성을 생각하고 기뻐합니다. 그리고 끊임없이 시도하지요

누군가 소통하고 공감한다는 건 그 사람에게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포기하지 않는것도 포함되나봅니다. 결국 나임의 이름을 알았고 그의 걱정을 받았고 소통합니다.

어쩌면 나임이 원한것도 보여지는 팔레스타인이 아니라 그 속에서 살아있는 개개인의 팔레스타인 뭉뚱거려진 덩어리가 아닌 피와 살을 가진 나를 봐주는 누군가였을 겁니다. 그리고 그 대상이 바로 탈이었지요.

누군가와 소통한다는 것 그리고 이해한다는 것은 그 개인 자체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겁니다.

내가 보고 이해한 팔레스타인 이스라엘이 아니라 그 속에도 나와 비슷한 누군가가 있다는 것 혹은 나와 다른 누군가 개인이 있다는 것 그 작은 하나하나를 봐주는 것.. 거기서 시작하는 겁니다.

현실에 눈을 떠가는 탈과 지금은 현실을 떠나지만 더 큰 희망을 안고 돌아오겠다는 나임은  그 자체로 이스라엘이나 팔레스타인을 대표하진 않지만 그에 속한 하나의 개체이며 동시에 자유로운 개인입니다.

한사람 한사람의 희망과 한사람 한사람의 개인의 꿈이 모여 결국 덩어리가 되는 거겠지요.

우리에게 보이는 건 커다란 덩어리겠지만 그 속을 들여다 보고 이해할 줄 알아야 하는 거라고 그것이 소통이라고 탈과 나임은 말합니다.

 

사족.. 누군가의 딸이고 누군가의 아들이었고 누군가의 아버지  엄마 오빠 혹은 후배  선배였을 사람들이 아직도 차가운 물속에 있습니다. 그들은 뭉뚱거려진 실종자 혹은 희생자만이 아닙니다.

그들에게는 각자의 꿈이 있었고 이야기가 있었고 아직 못다한 삶이 남아있는 소중한 사람들입니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피해입은 국민의 일부라고 치부되어버릴지 모르지만 그들은 하나하나가 소중한 사람들입니다.  때때로 전체로 보아야 할 때도 필요하다는 걸 압니다. 하지만 정말 필요할때는 하나하나를 들여다보며 소통하고  나눌줄도 알아야 하는 겁니다.

여태 당연해서 인식하지 못했던 리더의 자질을 또 하나 배웁니다.

리더가 아닌 평범한 우리도 아는 것을 누군가는 아직도 모를지도 ... 라는 생각에 화가 납니다.

그래서 이 책이 참 소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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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략을 꾸미고 일을 벌리고 사람을 죽인 사람은 따로 있는데

여전히 뻔뻔하게 살아있는데

똥줄타게 뛰어다니고  죽을만큼 두들겨맞고

음모를 파해치고 누군가를 사랑하고 보호하던 기동찬이 죽는건데..

아무리 신탁에 둘 중 하나가 죽어야 하는 거라고 해도

이건 아니잖아.

이렇게 끝이 나면 안되지

그따위 신탁은 예언은 개나 먹으라고

이러면 안되는거지

 

안그래도 마음이 꿀꿀하고 어디 화내고 싶고 미안하고 부끄러운데

우리 기동찬을 이렇게 보내는건 아니지

안그래 작가양반?

 

다시 쓰면 좋겠어.

그놈들 응징하는거 똑똑하게 보여주고 지들이 무슨 짓을 했는지 똑똑히 알려줘

그리고 우리가 사랑하고 기다리던 그를 우리에게 돌려주면 좋겠어.

드라마라도.. 그랬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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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려령의 작품은 영화화 되기 참 쉽다는 생각을 했다,

발랄하고 톡톡 튀는 대사들 하지만 그 속에 꽉꽉 들어찬 의미들

휙휙 바뀌는 장면들이 영화로 만들고 싶은 유혹을 뿌리칠 수 없게하는 매력이 있다.

완득이도 그랬고 이번 우아한 거짓말도 그렇다.

원작을 충분히 살리면서 영화가 보여 줄 수 있는 섬세함도 잘 살렸다.

세 아이의 연기도 좋았고 마지막의 다섯번째 털실 뭉치도 좋았다.

그 뭉치가 누구를 향한것인지 누구를 위로하는 것인지 의견이 분분한 것까지 좋았다.

그러고 보니 온통 좋은 것 투성이구나....

 

아줌마들끼리 한번 그리고 아이와 한번 두번을 보았는데 솔직히 울지 못했다.

함께 간 아줌마들이 휴지 한통을 다 쓰면서 울어대는 동안 그저 먹먹하구나 하는 감정을 느끼면서도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어쩌면 악착같이 참고 있었던 거같기도 하고 이렇게 허물어질 수 없다는  참 필요없는 자존심인것도 같다.

 

괜찮다는 천지의 거짓말에 모두는 괜찮은 줄 안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 순 개뻥이다.

내가 낳은 아이라도, 한 배를 타고 난 자매끼리도 그리고 천하에 없는 베프도 말하지 않으면 모른다. 사람은 신이 아니기때문에 독심술을 할 줄 모른다. 그저 미루어 짐작하고 말 뿐이다, 그 짐작조차 나조차 모르는 사이에 나한테 유리하게 작용할 뿐이다. 괜찮다니까 괜찮을거야.. 괜히 아닌게 아닐까 고민할 필요없지.. 괜히 성가시게 일 만들 필요없어. 정말 힘들면 말하겠지.. 그때 가서 봐줘도 괜찮아. 독립심을 키워야지. 내 삶도 허덕거리는데 누굴 위로하겠어...

잘못된건 아니다. 누구나 내 손톱밑에 상처를 가장 아파한대도 이기적이라 말할 수 없다.

삶이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그렇게 팍팍하고 건조하고 하루하루 견디는 힘만 남겨줄 뿐이다.

천지 엄마도 천지의 순진한 표정을 믿었고 만지도 천지나 자기나 별 다르게 없을거라 생각했을 것이고 화영이 조차 자신을 견뎌내는 천지가 더 강해보여서 더 미웠을 수도 있다.

미라는 제 무게에 허덕이고 있으니 조금 더 무게가 가벼워보이는 천지가 어쩌면 가장 밉고 싫었다는게 이해가 간다.

사실 소설을 보면서 난 미라가 참 싫었다.

다 알고 있다는 듯, 자기가 가장 정의롭다는 듯 난 너를 도와주려고 했지만 니가 거절한거야.. 하는 값싼 자존심을 내세우는 캐릭터였다. 흔히 왕따가 있는 교실에서 내가 아니니까 난 나쁘게 한건 아니까. 난 뭐라고 충고라도 했으니까.. 하고 자기위안 자기 변명에 만족하는 젤 저질스런 계집애처럼 보였다. 화연이조차 그럴만한 이유가 보였고 상처가 보였는데.. 사실 미라의 상처를 나는 보지 못했다. 자기 못난 아비때문에 친구에게 그럴 수 있을까는 생각 못했고 (책에서 그 아비가 어떤 인물인지 보여주지 못했기때문이라고 변명하면서...) 절대 자기는 나쁘지 않다고 믿는 젤 재수없는 기집애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영화에서 죽은 천지못지않게 그리고 화연이 못지 않게 상처가 깊은 아이가 미라였다.

그 어린아이는 자기의 무게를 이기지 못했고 그래서 누군가를 돌아볼 여유가 없었고 내가 받은 아픔이 너무 커서 타인의 아픔을 공감할 수 없었다. 천지가 얼마나 아픈지 몰랐으니까

그저 아직도 철없고  화연이를 견뎌내는 천지가 더 무섭고 재수없다고 느끼는 평범하지만 상처가 더 깊은 아이였다.

미라의 아픈 속을 들여다 봐주는 건 그래도 언니 미란이여서 참 다행이란 생각도 했다.

만지와는 다르게 엄마처럼 동생을 보듬는 미란이가 있어 미라도 조금은 위안이 되겠구나 싶어 다행이라 싶었다.

 

영화에서는 책에서보다 만지가 입체적으로 나왔다.

책에서는 동생의 죽음을 알고 싶어하는 언니.

동생과는 다르게 교우관계나 성격도 괜찮고 만사 쿨한 멋진 하지만 조금 냉정한 언니고 딸이란 생각을 했었다. 꽤 괜찮네...

하지만 영화에서 보여지는 만지도 참 많이 아팠다.

겨우 열여섯 정도 된 아이가 보여주는 쿨한 모습이 아팠다.

쿨하다는 건 좋은 거 아니다.

난 상처받고 싶지 않다. 난 거부당하고 싶지않다. 내가 따를 당하는 거 아니구 내가 너희 모두를 따 시키는 거라고 그렇게 단단한 갑옷으로 무장한 채 세상에 맨얼굴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가장 소심하고 처절한 몸부림일 뿐이다.

저 어린게 얼마나 상처가 깊으면 쿨하게 사는 법을 배웠을까

이상한 친구는 안사귀면 되고 그래서 친구가없으면 혼자 다니면 되고 먹기 싫으면 안먹으면 그만이고 싫은건 안하면 그만이고...

상처가 없는 만큼 관심도 없는 거고 ...

만지도 천지만큼 아프고 힘든 아이인데 그 요령까지도 이미 알아버린 너무 빨리 철이 들어버린 아이같았다. 엄마도 이해해야하고 동생도 보살펴야하고 그래서 내 감정같은 건 이미 박제시켜 버려야 하고... 친구도 상처받지 않을만큼 거리를 두고 있고..

차라리 화연이처럼 극악스럽게 굴고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히더라도 자기의 약한면을 화려하게 포장해서  해소해버리는게 정신건강엔 낫지 않을까 싶을 만큼..

화연인 크게 너무 사악하고 그래서 자기가 다시 공격받고 욕을 먹은 만큼 자랄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런데 만지는 이미  욕을 먹거나 실수를 하거나  하지 않은채 자라버려서 그게 마음이 아프다.

 

함께 영화를 본 작은 아이가 그랬다.

천지 언니가 꼭 우리언니같애.

그닥 친구한테 잘하는 것도 아닌데 친구도 많고 쿨하고 뭐든 나보다 나은거 같고 잘아는 거 같은게 우리 언니같애.

그래 나도 만지를 보면서 그 생각 했어.

썩 만족할만큼은 아니지만 알아서 잘하는, 그래서 손이 덜 가서 편하다고만 생각했고 가끔 기집애가 냉정하고 깍쟁이같다고 여긴 내딸이 어쩌면 내가 신경 더 쓰는 막둥이보다 더 아픈건 아닐까. 내가 못보고 안보고 있는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고

친구문제로 징징거리고 소리치고 아파하는 딸은 뭐라고 조언도 하고 함께 욕도 하면서 견디게 했는데 어떤 문제도 입밖에 내지 않고 잘 사는 것처럼 보이는 큰 딸을 내가 너무 믿고 둔건 아닐까  싶어졌다.

아직 채 15년도 못산 아이들은 쿨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조금 찌질해도 상관없고  대책없이 굴어도 상관없고  미친듯이 빠지고 상처도 입고 또 돌아서면 좋아라 웃어제끼기도 했으면 좋겠다.  저게 정말 호르몬의 문제가 많구나. 미친 중딩 맞구나 싶게 그렇게 드러내고 살았으면 좋겠다.

그걸 견디는 힘도 내게 있으면 좋겠다. 다 지나가리라... 하고 도를 닦을 힘도..

 

결론은 영화가 꽤 괜찮다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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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79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김남주 옮김 / 민음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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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본 영화 '봄날은 간다'가 있었다.

처음 상영관에서 영화를 보고  검은 화면위로 자막이 올라가고 불이 켜질무렵 혼자 중얼거렸다.

ㅆ 년....

그땐 그랬다. 나이를 먹을만큼 먹은 여자가 어린 남자를 상대로 무슨 짓인지..

변하는게 사랑인지.. 그렇게 살랑살랑 순진한 마음에 돌을 던지고 싸늘하게 돌아서더니  그래도 아쉬웠는지 슬그머니 와서 다시 사귀자고?

미쳤냐? 너랑 다시 사귀길...

극중 유지태가 거절하고 돌아서서 담담하게 걸어가는 모습이 참 멋있었다.

그래그래 미련같은 건 두지 않는거야

그래서 마지막 넓은 초원에서 녹음을 하는 그의 모습이 그냥 자유로워보였다.

 

그리고 몇년이 흐른 후 다시 그 영화를 봤다

집에서 혼자 조금은 청승맞게... 하지만 여유있고 삐뚜름하게..

영화가 끝나고 혼자 또 중얼거렸다.

미친놈... 사랑이 변하냐고? 이놈아 세상에 변하지 않는게 뭐가 있는 줄아니?

고인 물은 썩을 수 밖에 없어. 감정도 흘러야지 그저 고여있기만 하면 악취만 풍기는 거야.

니가 나이먹어 세상을 알아버린 여자에게 아무리 들이댄들 그 여자가 꿈쩍할 줄 아니?

너랑 라면을 먹었다고... 너랑 몇번 잤다고... 그 여자가 너것일거 같아?

누군가를 절절하게 사랑할 수도 있지만 책임지거나 끝까지 몰고 가고 싶지 않은 수도 있단다

그게 사랑일 수도 있지. 그게 인생일 수도 있지

그걸 모르면.. 넌 아직 한참 배워야 할게 남은거란다.....

나이먹고 닳고닳은 세상을 모두 알아버린 여자처럼 그렇게 남자를 보며 혀를 찼다.

그래서였을까 마지막  유지태의 모습은 그제야 조금 자란 .. 소년을 벗어난 남자로 보였다.

 

그리고...

이 책을 읽는다. 그때 그 영화가 생각났다.

영화 내용보다 그 영화를 보고 변해가는 내 모습이 생각났다.

뭐가 달라진걸까

폴은 변화를 두려워하고 필요하지 않는 나이든 여자다.익숙한 것들 이젠 몸에 익어서 긴장할 필요도 없고 조금은 지루하고 너덜해졌어도 편안한 그것을 더 선호하게된 여자다

물론 여자라서 그리고 아직 그렇게 많은 나이를 먹은 것은 아니니까 조금의 설레임은 남았다

하지만 잠깐의 일탈은 허락할지 모르지만 삶을 송두리째 바꿀 용기는 없다.

용기는 없는대신 안락하고 편안한 일상을 얻었고 조금은 비굴하고 비겁한 삶의 요령을 알고 있는 사람이다.

로제 역시 마찬가지다. 세상에 살아남느라 닳고 닳았고 속되고 탐욕스럽지만 그래도 무엇이 자기에게 필요한지 아는 남자다. 오래된 연인 폴을 보험처럼 여기기도 하고 어디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고 우쭐할만한 지적 허영심도 있는 하지만 속되고 속된 남자다.

그들도 열렬한 사랑을 했었고 앞을 보지 않는 맹목적인 열정에 들뜨기도 했을것이다.

하지만 그 모든 젊음이 지나고 지금은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이 나를 보호하는지 알아버린 나이의 사람들이었다.

시몽온.. 아직 젊고 철이없다. 불안이나 두려움을 느낄 필요가 없다.

한국의 중2처럼 그는 세상이 아직도 자기를 중심으로 돈다고 여기는 피끓고 서투른 청춘이다.

폴이 그에게 끌리는 건 당연하다.

자기를 너무 편하게 여기는 로제에게 소외감을 느끼고 나이들어감이 두려운 폴에게 시몽은 어쩌면 마지막 기회였을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줄 멋진 상대

나에게 애닳아하고 마구 빠져드는 서툴고 열정적인 상대 게다가 그가 외모나 배경이 모두가 근사하다면 그건 무지무지한 유혹이다.

하지만 폴은 시몽이 편하지 않다.

나에게만 목 매는 상대는 부담스럽다.

나의 일상이 흔들리고 편하고 나른한 휴식이 없는 격정은 이제 피로해질 뿐이다.

무엇보다 폴은 더 이상 변화를 바라지 않는다. 익숙한 것들이 좋은 때이다.

결국 둘은 딱 그만큼만 사랑하고 헤어질 상황이었다.

물론 로제에게 돌아가더라도 드라마틱한 해피앤딩이 기다리지는 않는다. 그저 진부하고 지리멸렬한 일상일 뿐이지만... 폴은 더이상 기대하지 않음이 편하다. 외롭고 허무할지라도

 

나이들어서 변화를 두려워하는 일이 죄일까

젊은 시절 내 삶에 뭔가 드라마틱한 사건이 일어나기를... 커다란 파도를 타는 짜릿함이 생기기를 바라고 또 바라지만 지금은.. 나의 오늘이 어제와 다르지 않기를.. 내일이라고 새롭지 않고 지금과 마찬가지로 그저 편안할 걸 바란다.

삶의 모퉁이에서 나타날 어떤 무언가를 기대하지더라도 그것이 내가 견딜만한 무언가이기를 내가 버틸 수 있고 내 근간이 흔들리지 않을 정도이기를 바란다.

이미 탈만큼 롤러코스터를 탔기때문일 수도 있고 굳이 찍어먹지 않아도 그 맛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삶의 혜안을 가졌다.

그래서 편안함에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다.

젊음은 아직 그것을 경험하지 못했기에 길모퉁이를 돌때마다 두근거리고 설레일 수 있을 것이다

 

영화에서 유지태의 할머니는 모든 인생의 모퉁이를 다 돌았다. 그리고 이젠 엣기억조차 뒤죽박죽이 된 치매 상태였다. 하지만 젊어서 모진 일들이 모두 엉기고 지워지고 쌓여가면서 이젠 내가 기억하고 싶은 좋은 기억만을 가지고 남편을 기다린다. 사랑하고 지치고 배신당하고 슬펐던 그 모든 것이 지나고 이젠 그 모든것이 예쁘게 기억되어 그냥 행복하다. 편안하다.

그런거 아닐까.....

 

한때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상대에게 말한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라면 먹고 가래?"

하지만 그 때 그 말이 진심이었듯 지금 변한 내 마음도 진심이다.

지금 변한게 있다고 그때의 진심이 무시되는 건 아니다.

그때 그 마음이 그말이 여전히 아름다울 수 있는건 아쩌면 지금 변하고 잊혀지고 익숙해진 편안함 때문일 수도 있다.

 

간만에 엣영화를 다시봐야겠다.

이번엔 마지막에 내가 무어라 중얼거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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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theleft 2020-09-29 0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청춘 파산 - 2014년 제2회 한국경제 청년신춘문예 당선작
김의경 지음 / 민음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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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산. 채무 불이행. 면책

어느 순간 이런 말들이 나와 상관없닌 먼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주위로 다가온다

imf를 겪고 돈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에 절대적 전환이 생긴 이후 돈은 사람 머리 꼭대기에 앉았고 누구나 욕을 하면서도  무시할 수 없다. 쉽게 돈을 버는 이이갸기 만큼 쉽게 빚쟁이가 되고 도망을 다니고 파산하고 신용불량자가 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이 소설도 그런 이야기다.

주인공 백인주는 어머니의 사업실패와 부도로  그동안 명의만 빌려준 것들이 발목을 잡으면서 신용불량자가 되고 사채업자에게 쫒기는 신세가 되고 파산 신청을 하고 채무변재를 받게 된다.

백인주는 제대로 된 직장을 가질 수도 없고 제대로 된 주거공간도 가질 수 없으며 제대로 된 인간관계조차 가질 수 없다.

혹.. 뭘 모르는 사람은 쉽게 이야기한다.

빚 .. 그거 열심히 일해서 갚겠다는 노력이라도 보여야 하는 거 아니야? 그러게 왜 능력도 안되면서 돈은 끌어다 썼는데.. 다 제 주제도 모르고 벌려놓은 일 누구를 탓해? 누군 남의 돈 몰라서 안쓰나 다 제 분수껏 사는 이야기지...

다 맞는 이야기다. 틀린 건 아니다.

하지만 인주같은 경우엔 돈이 이제 더이상 돈만이 아니다.

벌어서 갚고 채무변제로 소멸되고 하는 돈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문제가 된다.

사람이 망가지고 황폐해지고 세상앞에 고개를 들고 눈을 맞추며 걸어갈 수가 없게 만든다.

누군가를 사랑하지도 못하고 잡을 수도 없고 꿈을 꿀 수도 없게 되었다.

 

인주는 상가수첩을 돌리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서울의 곳곳을 돌아다닌다.

여자인 인주는 차안에서 봉투에 상가수첩을 팔고 남자인 소년들 청년들은 돌아다니며 상가수첩을 배포한다. 하지만 누가 쉽고 어려움은 없다. 추위에 돌아다녀야 하는 소년들도 추운 차안에서 손목이 시큰거릴만큼 상가수첩을 담는 일도 편하지는 않다. 하지만 한가지 위안은 아무런 딴 생각이 들어오지 않는다는 일이다. 아르바이트라는 것이 그렇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고  조금만 익숙해지면 습관처럼 할 수 있는 일. 예외적인 것이 들어올 수 없는 일 하지만 순간  뭔가 생각에 잠겼다가는 일의 리듬을 놓쳐 함께하는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거나 일을 망칠 수 있다. 단순한 일들이 가지고 있는  쉬워서 간과하기 쉬운 함정이다.

하지만 아르바이트 연차가 쎈 인주는 아르바이트 틈틈히 자신의 일상과 시간을 들려준다.

채무변재이후에도 끈질기게 달라붙는 사채업자들.. 막판으로 몰린 사람들을 이용해 돈을 버는 법무사 그리고 이젠 반 변호사가 된 가족들 불안으로 막판으로 몰린 가족은 이제 뻔뻔하고  두꺼워져서 아무것도 없어 더 이상 몰릴 것없는  사람들이 보이는 질긴 무심함만 남았다.

인주는 이렇게 나이드는게 무섭다. 이렇게 몰리고 쫒기고 사라지면서 끊어지는 인간관계도 이젠 지겹다. 더 많은 권력이나 돈 행복을 바라는 것도 아니다. 그냥 남들처럼 작은 꿈을 꾸고 행복하고 싸우고 그러면서 안쓰러워 안아주고 살아가는 단순하고 일상적인 삶을 꿈꾼다.

그녀의 꿈이 너무나 일상적이어서 더 슬프다.

인주와 함께 아르바이트 하는 청년들 소년들도 그렇다. 뭔가 대단한 무언가를 바라지 않는다.

이젠 그런 걸 바라지 않아야 한다는 걸 이미 알고 있다.

그냥 대학을 가고 취직을 할 수 있고 공무원 시험에 붙을 수 있는 것. 그리고 이런 아르바이트 자리를 욕을 하고도 다시 돌아와 할 수 있는 기회가 있는 것에 만족할 뿐이다.

 

세상을 나름 살아보니 무서운 건 두가지다. 호환 마마가 아니라 사람과 돈이 무섭다.

아니 사람 자체는 무섭지 않을 수도 있고 돈도 그까짓거 별거 아닐 수도 있다.

그런데 사람과 돈이 함께 몰아치면 그 공포가 커지고 불안감이 커진다.

내가 돈에 몰리는 순간 돈은 사람과 함께 온다.

무심하고 감정없는 채무독촉장. 법원에서 날라오는 온갖 고소장들

그걸 가져다 주는 배달원이나 법원 직원은 늘 무심하고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서류를 내밀고 사라진다. 하지만 아무말도 위협도 하지 않는 그 사람은 언제나 주눅들게 하고 쪼그라들게하고 심지어 내가 이 세상에 불필요한 사람처럼 하찮은 사람처럼 느끼게 한다.

이런 서류를 아무리 받아도 아무런 대책도 없다는 사실이 .. 나에게 거부권이 없다는 사실이 점점 작아지게 만든다.

그렇게 돈에서 멀어지면서 사람에게서 멀어지고 내가 누군가에게 연락을 하는 것조차 누군가에게 부담이 될거라는 생각을 하게 되고 움츠려 들고 스스로 하찮아진다.

사람때문에 돈때문에 나는 인간으로서 존엄을 잃는다.

인주는 그걸 견디기 위해 재능도 없는 난을 치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해도 늘지 않아도 밤에 잠을 못자더라도 백장씩 연습을 하는 건 어쩌면 그 것만이 스스로의 존엄을 지킬 수 있는 혼자만의 자존심일것이다.

호성의 사랑보다 스스로 무언가를 견디는 그 시간이 인주에게 더 큰 지지대가 아닐까

사람에게 마음을 주는 건 이제 지쳐서 어쩌면 아무 감정교류가 없는 행위에 마음을 더 두는 것인지도 모른다.

 

인주만큼 몰리진 않았지만 그래도 그마음을 알아서 책을 읽는 내내 불편했다.

내가 마주하기 싫은 현실을 그대로 날것으로 보여주는 것이 장면장면 이어진다.

책속에서 서울은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지만 주인공들에겐 그저 상가수첩을 돌려야하는 대상일 뿐이다. 누군가에게 꿈의 대상인 도시가 누군가에게는 그저 살아내야할 대상일 뿐이다.

인주와 함께 상가수첩을 돌리던 그 청춘은 지금 무얼 하고 있을까

그래도  웃음을 잃지 않고 꿈을 꾸며 살아내고 있으면 좋겠다.

 

자신의 경험이 아니면 녹여내기 힘든 일을 이야기 속에 잘 버무려 내놓은 작가의 힘이 보인다.

다만 너무 비슷한 패턴으로 반복되는 구성이라 뒷부분으로 갈수록 지루해졌다. 우리가 무심코 지나친 동네에 대한 숨은 이야기들도 흥미롭다. 왜 흑석동이고 왜 개포동인지 책내용과 상관없이 서울은 아름답다.

암울하게  마무리된 일본 소설 "화차" 달리 그래도 인주에게 희망을 보이며 끝내서 다행이다.

현실을 그리지만 그래도 한가닥 붙잡을 무언가를 남겨놓는게 나는 아직 좋다.

나도 그렇게 뭔가 빛을 받을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생길테니..

빚이 아니라 빛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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