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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 파산 - 2014년 제2회 한국경제 청년신춘문예 당선작
김의경 지음 / 민음사 / 2014년 3월
평점 :
파산. 채무 불이행. 면책
어느 순간 이런 말들이 나와 상관없닌 먼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주위로 다가온다
imf를 겪고 돈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에 절대적 전환이 생긴 이후 돈은 사람 머리 꼭대기에 앉았고 누구나 욕을 하면서도 무시할 수 없다. 쉽게 돈을 버는 이이갸기 만큼 쉽게 빚쟁이가 되고 도망을 다니고 파산하고 신용불량자가 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이 소설도 그런 이야기다.
주인공 백인주는 어머니의 사업실패와 부도로 그동안 명의만 빌려준 것들이 발목을 잡으면서 신용불량자가 되고 사채업자에게 쫒기는 신세가 되고 파산 신청을 하고 채무변재를 받게 된다.
백인주는 제대로 된 직장을 가질 수도 없고 제대로 된 주거공간도 가질 수 없으며 제대로 된 인간관계조차 가질 수 없다.
혹.. 뭘 모르는 사람은 쉽게 이야기한다.
빚 .. 그거 열심히 일해서 갚겠다는 노력이라도 보여야 하는 거 아니야? 그러게 왜 능력도 안되면서 돈은 끌어다 썼는데.. 다 제 주제도 모르고 벌려놓은 일 누구를 탓해? 누군 남의 돈 몰라서 안쓰나 다 제 분수껏 사는 이야기지...
다 맞는 이야기다. 틀린 건 아니다.
하지만 인주같은 경우엔 돈이 이제 더이상 돈만이 아니다.
벌어서 갚고 채무변제로 소멸되고 하는 돈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문제가 된다.
사람이 망가지고 황폐해지고 세상앞에 고개를 들고 눈을 맞추며 걸어갈 수가 없게 만든다.
누군가를 사랑하지도 못하고 잡을 수도 없고 꿈을 꿀 수도 없게 되었다.
인주는 상가수첩을 돌리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서울의 곳곳을 돌아다닌다.
여자인 인주는 차안에서 봉투에 상가수첩을 팔고 남자인 소년들 청년들은 돌아다니며 상가수첩을 배포한다. 하지만 누가 쉽고 어려움은 없다. 추위에 돌아다녀야 하는 소년들도 추운 차안에서 손목이 시큰거릴만큼 상가수첩을 담는 일도 편하지는 않다. 하지만 한가지 위안은 아무런 딴 생각이 들어오지 않는다는 일이다. 아르바이트라는 것이 그렇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고 조금만 익숙해지면 습관처럼 할 수 있는 일. 예외적인 것이 들어올 수 없는 일 하지만 순간 뭔가 생각에 잠겼다가는 일의 리듬을 놓쳐 함께하는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거나 일을 망칠 수 있다. 단순한 일들이 가지고 있는 쉬워서 간과하기 쉬운 함정이다.
하지만 아르바이트 연차가 쎈 인주는 아르바이트 틈틈히 자신의 일상과 시간을 들려준다.
채무변재이후에도 끈질기게 달라붙는 사채업자들.. 막판으로 몰린 사람들을 이용해 돈을 버는 법무사 그리고 이젠 반 변호사가 된 가족들 불안으로 막판으로 몰린 가족은 이제 뻔뻔하고 두꺼워져서 아무것도 없어 더 이상 몰릴 것없는 사람들이 보이는 질긴 무심함만 남았다.
인주는 이렇게 나이드는게 무섭다. 이렇게 몰리고 쫒기고 사라지면서 끊어지는 인간관계도 이젠 지겹다. 더 많은 권력이나 돈 행복을 바라는 것도 아니다. 그냥 남들처럼 작은 꿈을 꾸고 행복하고 싸우고 그러면서 안쓰러워 안아주고 살아가는 단순하고 일상적인 삶을 꿈꾼다.
그녀의 꿈이 너무나 일상적이어서 더 슬프다.
인주와 함께 아르바이트 하는 청년들 소년들도 그렇다. 뭔가 대단한 무언가를 바라지 않는다.
이젠 그런 걸 바라지 않아야 한다는 걸 이미 알고 있다.
그냥 대학을 가고 취직을 할 수 있고 공무원 시험에 붙을 수 있는 것. 그리고 이런 아르바이트 자리를 욕을 하고도 다시 돌아와 할 수 있는 기회가 있는 것에 만족할 뿐이다.
세상을 나름 살아보니 무서운 건 두가지다. 호환 마마가 아니라 사람과 돈이 무섭다.
아니 사람 자체는 무섭지 않을 수도 있고 돈도 그까짓거 별거 아닐 수도 있다.
그런데 사람과 돈이 함께 몰아치면 그 공포가 커지고 불안감이 커진다.
내가 돈에 몰리는 순간 돈은 사람과 함께 온다.
무심하고 감정없는 채무독촉장. 법원에서 날라오는 온갖 고소장들
그걸 가져다 주는 배달원이나 법원 직원은 늘 무심하고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서류를 내밀고 사라진다. 하지만 아무말도 위협도 하지 않는 그 사람은 언제나 주눅들게 하고 쪼그라들게하고 심지어 내가 이 세상에 불필요한 사람처럼 하찮은 사람처럼 느끼게 한다.
이런 서류를 아무리 받아도 아무런 대책도 없다는 사실이 .. 나에게 거부권이 없다는 사실이 점점 작아지게 만든다.
그렇게 돈에서 멀어지면서 사람에게서 멀어지고 내가 누군가에게 연락을 하는 것조차 누군가에게 부담이 될거라는 생각을 하게 되고 움츠려 들고 스스로 하찮아진다.
사람때문에 돈때문에 나는 인간으로서 존엄을 잃는다.
인주는 그걸 견디기 위해 재능도 없는 난을 치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해도 늘지 않아도 밤에 잠을 못자더라도 백장씩 연습을 하는 건 어쩌면 그 것만이 스스로의 존엄을 지킬 수 있는 혼자만의 자존심일것이다.
호성의 사랑보다 스스로 무언가를 견디는 그 시간이 인주에게 더 큰 지지대가 아닐까
사람에게 마음을 주는 건 이제 지쳐서 어쩌면 아무 감정교류가 없는 행위에 마음을 더 두는 것인지도 모른다.
인주만큼 몰리진 않았지만 그래도 그마음을 알아서 책을 읽는 내내 불편했다.
내가 마주하기 싫은 현실을 그대로 날것으로 보여주는 것이 장면장면 이어진다.
책속에서 서울은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지만 주인공들에겐 그저 상가수첩을 돌려야하는 대상일 뿐이다. 누군가에게 꿈의 대상인 도시가 누군가에게는 그저 살아내야할 대상일 뿐이다.
인주와 함께 상가수첩을 돌리던 그 청춘은 지금 무얼 하고 있을까
그래도 웃음을 잃지 않고 꿈을 꾸며 살아내고 있으면 좋겠다.
자신의 경험이 아니면 녹여내기 힘든 일을 이야기 속에 잘 버무려 내놓은 작가의 힘이 보인다.
다만 너무 비슷한 패턴으로 반복되는 구성이라 뒷부분으로 갈수록 지루해졌다. 우리가 무심코 지나친 동네에 대한 숨은 이야기들도 흥미롭다. 왜 흑석동이고 왜 개포동인지 책내용과 상관없이 서울은 아름답다.
암울하게 마무리된 일본 소설 "화차" 달리 그래도 인주에게 희망을 보이며 끝내서 다행이다.
현실을 그리지만 그래도 한가닥 붙잡을 무언가를 남겨놓는게 나는 아직 좋다.
나도 그렇게 뭔가 빛을 받을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생길테니..
빚이 아니라 빛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