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피천득은 수필에서 아사코와의 세번째 만남은 아니만남만 못하였다고 하였다.

간혹 그림자가 희미하고 길어서 더 애틋하고  아름다울 수 있다.

안나와 미하엘도 어쩌면 아니 만났더라면 그저 일상을 묵묵히 살아내지 않았을까

첫 만남의 강렬한 끌림과 두번째  스치듯 만나서 알게된 모든 진실들

그것으로 끝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안나는 미하엘에게 자신이 문맹임을 끝내 들키고 싶지 않았을거란 생각을 했다.

미하엘은 안나가 영원한 문맹이기를 바랬을지도 모른단 생각을 했다.

들키고 싶지 않은 비밀과 바뀌어서는 안되는 사실이 들켰고 바뀌었다.

그래서 애틋함은 끝이 났다.

누군가는 죽음을 맞이 했고 누군가의 남은 생은 쓸쓸하고 고독할 것이다.

계속 추억할 수도 있고 기억할 수 있는 아름다운 사랑이라고 우길 수도 있다.

하지만 뒷맛은 쓰고 시다,

 

서른 다섯과 열다섯의 불꽃같은 사랑은 누구에게 말 할 수 없는 비밀이었다.

누군가에게 틀어놓고 싶은 충동만큼 말 할 수 없는 무게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도 좋았다. 둘 만 있어도 좋았고 남들의 시선도 아랑곳 하지 않을 수 있었고

책을 읽고 몸을 씻고 사랑을 나누는 작은 공간마저 아름다웠을 것이다.

함께 읽었던 책들 함께 씻은 욕조와 사랑한 침대. 그땐 그곳이 작고 초라하고 남루하다는 생각을 누구도 못했을 것이다.

사랑이란 그 속에 빠져 있을 때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응당 그래야만 하는 것이다.

아름답다거나 추하다거나 부끄럽다거나 비도덕적이라거나 하는 것은 개나 먹어라하고 던져버릴 수 있는 것이다. 비록 그 방을 나오는 순간 오만가지 생각이 다 머리를 때리면서  아무곳에도 말 할 수 없는 비밀의 무게에 비틀거릴지라도 그 방안에서 두사람은 서로에게 세상의 전부이고 절대적인 존재다.

그 사랑이 끝이 났다.

한 사람은 그 사랑을 미쳐 생각할 겨를 없이 도망치듯 떠났고 한 사람은 어떤 이유도 모른 채 버려졌다고 굳게 믿었다.

 

그리고 두번째 만남

이제 미하엘은 안나의 모든 진실을 알게 된다.

처음 든 감정은 배신감 그리고 동정심 연민 그 사이사이 정의감과 도덕심이 끼어들었을지도 모르겠다. 안나를 돕고 싶은 마음 크기만큼 배신감도 컸을 것이다.

미하엘의 아버지가 말했다. 상대가 말하고 싶어하지 않은 것은  발설하지 마라. 그리고 말하려면 본인에게 직접 말하라...

하지만 미하엘은 안나를 만나러 가는 발걸음을 돌린다.

아직 자신이 없던 걸까.. 아니면 이제 와서... 라고 생각했을까

안나는 감옥으로 갔고 미하엘은  법학자가 되었다.

안나의 그림자를 떨쳐내지 못한 미하엘은 그 이후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 수 없다.

무거운 비밀은 그를 짓누른다. 한때 아름다운 사랑이었다고 믿었던 그 비밀은 이제 걷잡을 수 없이 무게를 가지고 미하엘의 모든 삶의 기준이 된다. 모든 여자는 안나와 비교되고 삶은 그때의 눈먼 열정과 비교당한다.

안나는  공간의 감옥에 갇혔고 미하엘은 마음의 감옥에 갇혀있었다.

미하엘은 왜 안나에게 책을 다시 읽어주게 되었을까

어쩌면 안나를 마주 하지 않고서는 삶을 지탱하기 힘들다고 느꼈던 걸까

단단하고 자존심이 강한 안나의 단하나의 약점인 문맹의 틈을 미하엘은 노렸을까

누구도 모르는 그 비밀을 나는 알고 있고 그 비밀로 인해 우리는 다시 이어진다고 생각했을까

그때의 사랑과는 빛깔도 의미도 달라진 어떤 감정으로 미하엘은 책을 읽고 녹음한다.

그때 미하엘은 다시 빛나고 있었다.

누군가와 닿아있다는 것. 그 비밀과 닿아있다는 것이 그를 살게 한다.

녹음을 받은 안나도 변한다. 내 속에 갖혀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비밀 이제 그 비밀을 비밀이 아니게 만들기로 한다.  내가 문맹이 아니게 된다면 나를 누르는 비밀의 무게는 사라진다

안나는 그렇게 믿었던 게 아닐까

그래서 책을 듣고 글자를 하나하나 짚어가며 글을 익혔다. 그리고 편지를 썼다.

꼬마야....

미하엘에게 그 편지는 ... 내가 보기엔 절망이다.

글을 알게된 안나에게 미하엘은 더이상 의미가 없다.

내가 파고들 비밀같은 건 없어져버렸다. 우리가 함께 공유한 시간이 이젠 의미가 없다.

그래도 모른 척 계속 녹음하고 읽는다. 이제 그건 삶이고 습관이고 의미다.

 

안나의 석방을 앞두고 둘은 비로소 마주한다.

간수의 오지랍이 개입된 만남이지만 조금은 설레고 긴장된다.

이때 어쩌면...

안나는 자신이 문맹임을 끝나 들키고 싶지 않았을 것이고

미하엘은 그래도 그녀가 문맹이기를 바랬을 것이다.

그러나.. 둘은 서로의 비밀이 바램이 어긋났다고 알아버렸다.

그리고 그렇게 사랑은 막을 내린다.

 

사랑이 절망이 될 수 있을까 그게 사랑이라고 할 수 있나?

가능하다.

말하지 못한 내 사랑은 절망일 수 밖에 없다. 

김광석의 노랫말처럼 말하지 못한 내사랑  울어보지 못한 내 사랑은  그렇게 무너져버린다.

 

살면서 가장 힘든 것 중 하나가 사실과 마주하는 것이다.

막상 해버리면 별거 아닌 것이 되지만 그 마주하고 눈을 뜨기까지는 정말 두렵고 고통스럽다.

내 마음의 괴물이 커나가는 순간이 그 망설이는 순간이고

내가 마음의 감옥에 갖혀서 누구와도 소통할 수 없는 날들이 그 망설이는 날들이다.

뻔히 답을 알면서도 어려운 일이다

여전히...

 

결국 미하엘은 마주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안나는 떠났다.

좀 더 나이 먹으면 그 때 사랑을 긍정적으로 기억하길 바란다.

물론 그러기에도 충분히 나이를 먹었지만....

지우고 싶고 아픈 사랑도 결국은 마주보고 그 가치를 인정할 날이 오긴 하더라..

그때도 아프긴 하더라..

좀 더 일찍 마주 보았다면 절망하고 아플 시간이 줄었을 것을 다 겪고 당해봐야  끝이 오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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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어주는 남자 시공사 베른하르트 슐링크 작품선
베른하르트 슐링크 지음, 김재혁 옮김 / 시공사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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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포스터때문일까

사랑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영화를 보면서도 사실 중요한건 시간이 흘러 마이클 (책에서는 미하엘)이 어른이 되어 다시 안나를 만나서부터 이야기지만

앞부분의 두사람의 정사신이 너무 인상이 깊어서 그저 사랑이야기로만 인식하고 있었다.

책은 남자의 입장에서 많은 것을 들려준다.

 

여자와 남자가 만나서 사랑하고 헤어지고 미워하고 애증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이 인간을 만나는 이야기 수치심과 자존심에 관한 이야기 범죄와 용서 기억과  무지에 관한 이야기들이 주를 이룬다.

 

미하엘에게 안나는 지울수도 없고 지워서도 안되는 강력한 기억이다.

절정의 행복인 동시에 수치감이고 따듯한 그리움이면서 동시에 지우고 싶고 극복해야하는 성장통이었다.

 

불 붙어서 두려울게 없는 청춘의 욕망은 끝을 모르고 달려간다, 늘 그리워하고 매달리고 비굴하게 애원해도 아무렇지도 않다. 내가 그녀를 얼마나 알고 있고 얼마나 사랑하는지는 오래 생각할 겨를이 없다. 그저 지금 이순간 만나고 함께하고 만지고 사랑을 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리고 그 사랑에 대해 고민이 시작되고 우리가 어떤 관계인가에 대해 서성거리기 시작될 무렵 여자는 사라졌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법정에서 그 여자를 다시 만난다

여자는 엄청난 과거를 가진 인물이었고 그때나 다름없이 견고하고 꼿꼿하다.

그리고 구부러지지 않고 강하게 부러지며 모든 죄를 혼자 감당한다.

물론 여자에게도 죄는 크다.

내가 범죄자를 사랑했던가.. 범죄자를 사랑했던 나는 죄가 없는가

제대로 이별하지 못한 남자는 여지가 다시 서성이고 얽혀들어간다.

잊지 못하고 마무리 하지 못하고 눌러놓기만 했던 기억들을 몸이 먼저 알아보고 반응하고 마음이 갈피를 잃는다.

정의로움이란 무엇인가

진실과 자존심사이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내가 진심으로 그 여자를 돕고 싶은 것인가 내가 면죄부를 받고 싶은 것인가

 

여기서 미하엘과 아버지의 대화부분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언제나 우리 가족밖에 있던 아버지에게 아들은 큰 고민을 상담하러 간다.

아버지로서 그리고 철학자로서 어떤  해답의 조각을 던져줄까

 

아버지는 말한다

 

"하지만 어른들의 경우에는 내가 그들에게 좋다고 생각하는 것을 그들 스스로가 좋다고 여기는 것보다 우위에 두려고 하면 절대 안돼"

 

"우리는 지금 행복이 아니라 품위와 자유에 대해서 말하고 있어 넌 아주 꼬마였을 때부터 그 차이를 잘 알았잖니 엄마의 말이 늘 옳은 것이 네겐 별로 마음 편치 않았잖아"

 

" 아니다 네 문제는 마음 편하게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야. 만약에 네가 서술한 상황이 그 사람에게 어쩌다가 생긴 것이거나 아니면 유전적인 것에 그 원인이 있는 것이었다면 너는 당연히 행동을 해야한다. 네가 상대방을 위해 무엇이 좋은 것ㄴ지 알고 있고 그 사람이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너는 당연히 그 사람이 그에 대해 눈을 뜨도록 해주어야 한다. 물론 최종 결정은 본인에게 맡겨두어야 한다. 하지만 그 사람과 이야개를 해야해 그 사람과 직접 말이야사람 등 뒤에서 다른 사람과 이야기 해서는 안된단다."

 

안나의 거짓말은 존중되었다.

미하엘은 어떤 행동도 옮기지 않았다. 그건 안나를 존중하기위해서라기 보다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고 갈팡질팡하는 사이에 그렇게 결정되어졌다.

내가 어떤 자격으로 안나에게 끼어들것인가

그저 모른 척.. 저 범죄자와 나는 관계가 없는 것처럼 그렇게 살아가도 좋지 않을까 하는 망설임끝에 안나는 종신형을 받는다.

그러나 미하엘의 청춘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그는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열지 못했고 결혼생활을 평탄하지 않았고 딸아이가 바라는 행복하고 평화로운 가정을 주지 못했다.

안나에게 책을 녹음해서 전달하지만 편지는 결코 써주지 않는다,

그건 누군가와 주고 받는 마음이 아니라 일방적인 전달이다

아직도 미하엘은 안나를 인정할 수도 부정할 수도 없다.

안나는 그의 인생에 없어서는 안될 존재이면서 드러나서도 안되는 존재로 여전히 유령처럼 부유한다.

사람들은 그것이 사랑이라고 말을 하지만 내가 보기에 미하엘의 아직 끝나지 않은 성장통이고 혼자서 풀어내야 할 통과의례이다.

안나의 편지를 받고 안나를 만나고 안나의 이후 삶을 준비하지만 아직 마하엘의 성장통은 끝나지 못했다.

안나의 죽음... 그리고 그녀의 방에 남은 흔적들을 보면서 미하엘은 비로소 눈물을 주체할 수 없다. 말 한마디만 하면 터질것 같은 눈물을 참으며 교도소장의 이야기를 듣고 방을 둘러보고 자신의 사진을 발견한다.

이제 미하엘은 성장했다,

어른이 되었고 안나를 인정하고 그 사랑을 그시간을 그 청춘을 인정했다.

나는 그녀를 사랑했고 그녀도 나를 사랑했노라고

 

이 책은 사랑이야기일 수도 있고 아직 마무리 되지 못한 전쟁세대와 전후세대의 이해차이로 읽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내게는 한 소년이 어른이 되는 통과의례로 읽힌다.

어른이 되지 못한 아이는 누구에게도 쉽게 마음을 열지 못한다.

그리고 통과의례를 거쳤다고 단박에 변하지도 않을 것이다.

하지만 과정을 거치고 오래 묵힌 무언가를 흘려보냈다면 이제 마음을 열지 않아서 편하다면 그래도 괜찮다.

말하지 않아도 누군가를 미워하고  원망해도 괜찮다.

어쩌면 그런 모든 감정에 솔직해지는 것이 건강하다는 의미이기도 할 것이다.

 

내게 이 책은 그렇게 미하엘의 인생 전반에 걸친 성장에 관한 이야기이다.

 

 

 

p.s.

아버지와의 대화를  부분을 읽으며 나는  어쩔 수 없이 내 아버지를 생각했다.

책 초반에 묘사된 아버지의 모습

우리 가족이면서 우리가족밖에 있는 사람

생각이 언제나 여기가 저기에 있는 사람

언제나 자기 생각에 빠져 있는 사람 그 생각이 우리에 관한 것인지 자신에 관한 것인지 알 수 없는 사람

하지만 마지막엔 언제나 매달리게 되는 사람..

그 아버지가 내아버지와닮았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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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속에서 심장을 콩닥콩닥 뛰기 시작했다.

아닐거야 아무일도 없을거야...

바삐 걸어야 하는데 아니 차라리 뛰어야 하는데.. 발을 더 빨리 움직일 수가 없다.

자꾸 발이 꼬이고 무릎이 꺽이려고 한다.

얼른 가야하는데...

마주오는 사람들이 모두 의심스러웠다.

저 사람이 혹시.... 혹 저 사람이 아닐까

저 사람의 가방속에 뭐가 들어잇을까?

저렇게 태연한 표정을 하지만 이삼분전에 무언가 엄청난 일을 저질렀을지도 몰라...

머리속에서 심장은 점점 흥분하고 있다.

저기 보인다. 얼른 문을 연다 들어간다.

없다.....

정신을 차린다.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지어보이려고 노력하면서  안내 데스크로 간다.

천천히 입을 연다

"혹시 핸드폰 습득한 거 있나요?

청경이 말없이 핸드폰을 내민다.

아....

머리속에서 심장이 멈췄다.

얼굴이 붉어지기전에.. 얼른 자리를 뜬다.

고맙다는 말을 했던가? 말을 얼버무렸던가?

다행이다.

 

그래도 오늘은 빨리 기억이나서 다행이다.

나이를 먹는게 이런건지

햇살이 눈부신게 괜히 서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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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
줄리언 반스.팻 캐바나 지음, 최세희 옮김 / 다산책방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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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어릴 때 촌에서 자랐는데요. 집에서 기르던 송아지 한 마리만 팔아도 그 어미 소가 밤새 울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그게 시끄럽다거나 하지 않고, 다들 소가 울음을 멈출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유족들에게 '이제 그만 좀 하라'고 하는 건 맞지 않습니다.
(슬픔의) 기한은 우리가 정하는 게 아니라, 여러분의 눈물이 멈출 때까지입니다.”

              - 김제동 -

 

 

저 말을 처음 인터넷으로 접하고는 역시.. 김제동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마지막 책장을  닫고 나서 저 말이 다시 떠올랐다.

슬픔의 기한은 정해진 것이 아니다.

누군가를 잃고 누군가가 죽어버리고  남은 사람들이 비탄하고 애도하는 기간은 정해진 것이 아니다.

타인의 눈에는 너무 질질끈다 싶을 수도 있고 너무 매정한게 아닌가 싶게 쉽게 일상으로 돌아가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눈에서는 더이상 눈물이 흐르지 않더라도 내내 절절한 마음으로 사는 사람도 있고 그 절절함이 겉으로 드러나 도저히 일상을 견디기 힘든 사람도 있다.

 

책을 시작하면서 도데체 이건 무선 이야기를 하려는건가 싶었다.

내가 들은 첵 소개로는 저자가 아내가 죽고 난 뒤의 감정을 거의 5년이 지난 뒤에 써낸 최초의 작품이라는데..  엉뚱하게 기구 이야기가 나온다.

하늘로 올라가는 기구

내가 사는 곳을 다른 시선에서 볼 수 있게 되는 도구

내가 발을 딛고 선 그 곳을 또다른 높에에서 바라보는 도구

하늘로 올라갈 때는 마음대로 올라갈 수 있지만 내려올 때는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발란스를 떨어뜨리고 가스를 조정하고 아래 무엇이 있는가도 살펴야 한다.

사람이 살면서 내 멋대로 할 수 잇는 일과 되지 않은 일 어떤 것이 더 많을까?

 

기구 이야기를 읽으면서 그 기구에 탔던 사람들의 삶과 사랑에 대해 꾸역꾸역 읽으면서  어디서 죽음이 ... 이별이 나오는지 기다렸다.

드디어 세번째 이야기에서 절묘하게 이야기는 연결된다.

애도와 비탄은 내가 내 감정이 정하는 것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서고 사실 엄마가 너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살뜰한 부부도 아니었고  지독한 시집살이 고지식하고 가부장적인 남편 철철이 돌아오는 제사와 행사들 할머니 돌아가시고 처음 떠나 본 부부여행등등 내 기억으로는 아빠는 엄마의 그리운 그 사람이 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암치료때 아빠가 보여준 이기적인 건강욕심과 그 후의 무심하고 자기중심적인 행동들 그리고 변하지 않은 가족사랑 (자기 친가쪽의0 그리고 마지막 재발과 악화로 인한 고생등등

어쩌면  돌아가신 분께는 죄송하지만 이제 홀가분해지는 것이 아닐까 생각을 했다.

이제 자유로울수 있는 거 아닐까

엄마도 이미 70을 넘긴 나이지만 이제는 조금 편하게 지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데.. 엄마는 매일매일 우셨다.

삼일장동안도  너무 미망인답지 않게 말도 잘하시고 손님도 잘 챙겼던 분이 모든 일이 끝나고 혼자 남겨진 순간 그렇게 낯설게 울기만 하셨다.

창밖을 보아도 눈물이 나고 텔레비젼을 보아도 울음만 나고 남은 감정은 미안하고 아쉬운거밖에 없다는 말이... 사실  나는 몹시 낯설었다.

나도 아버지를 보내고 문득문득 밀려드는 감정에 무릎이 꺽이고 목이 매이기는 했지만 적어도 나는 아버지의 딸이었고 애증을 나눈 사이라기보다는 그래도 애정을 받은 사이였으니 그랬다고 생각을 했다.

혼자 계신 분에 대한 안쓰러운 마음에 전화를 하면 늘 마지막은 울음이고 나도 곧 죽고 싶다는 말뿐이고 자식은 다 소용없다는 말뿐이어써 그 전화조차 점점 사이가 벌어졌다.

사람인... 두개의 사람이 서로 기대고 있는 모양이라고 한다.

어쩌면 두 분은 서로 욕을 하고 미워하고 저주를 퍼부으면서 우리가 둘이어서 이렇게 존재하는 거란 걸 너무나 잘 알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책장을 덮으며 너무나 무지하고 단순하고 멍청한 나에게 조용히 욕해줬다.

책을 읽으면 무엇하나..... 아는 게 늘어나면 무엇하나...

눈뜬 장님이고  속빈 강정이고 헛똑똑인인것을....

사랑이라고 하기엔 너무 간지르우니 우리네 정이라고 하자

정이란 놈은 그렇게 끝나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미운만큼 원망이 컸던 만큼 애도의 기간이 탄식의 기간이 길어지리라...

자식들 자 짝지워놓으면 다 자리잡으면 이혼할거라고 다짐했던 엄마는 결국 그 때가 오자 암에 걸린 아빠를 덜컥 맞게 되고 그렇게 다시 자유를 꺽고 15년을 사셨다

그 애도의 깊이를 내가 안다고 하는 것은 오만일 뿐일것이다.

어쩌면 엄마도 내성적이고 수줍은 아빠를 이미 나보다 먼저 알아봤을 것이고

미워하고 미워하며 쌓은 정 사이에  더 어찌 할 수 없는 애정이 켜켜이 들어있었을 것이다.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

저 바다 건너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외국 중늙은이 작가의 절절한 글에서

나는 내 엄마를 본다.

 

 

 

그리고 이제 떼를 그만쓰라고 헛소리하는 그들이 이 절절하고 아픈 애도의 마음을 알기나 할지 ..

그들에게 읽어보라고 .. 이해좀 해보라고 한들....

우리 반스씨가 아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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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일락 붉게 피던 집
송시우 지음 / 시공사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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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비밀은 있다.

그 무게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일이 마음 깊이 눌려져서 삭히고 또 삭혀서 이젠 형체도 없이 흐물흐물해졌다고 믿는 순간 그 비밀은 이제 두껑만 열면 폭발해버릴만한 무시무시한 상태가 되어있다.

마음에 눌러놓은 비밀은 그렇게 저 혼자 익어가고 형태픞 바꾸어가며 나를 두렵게 만든다,.

어쩌면 처음엔 사소하고 작았을 무언가가 비밀로 봉해져서 세상으로 나가지 못하는 순간 그것은 혼자 자란다.비밀은 여자를 아름답게도 한다지만 (코난에서)  사람을 눌러버리는 무시무시한 힘도 가진다.

 

사람의 기억은 믿을 수가 없다. 누구나 자기에게 유리하게 그리고 편하게 기억을 만들어 지닌다.

의도한 바가 아니다. 그냥  본능적으로 그런 것이다.

같은 상황을 겪은 사람들의 나중 진술이 제각각이라는 건 어디서나 알 수 있다.

그 제각각의 기억들은 내가 상처받지 않고 내가 피해받지 않을 어떤 방어기제로 내 속에 형성되어 간직된다. 그래서 그 기억은 나를 어루어만져주고 따뜻하게 왜곡될 수밖에 없다. 그건 기억을 간직한 사람의 잘못이 아니다. 그래야만 살아갈 수 있다는 절박함이기도 하다.

 

문화평론가 수빈은 신문에 80년대 유년기의 추억을 칼럼으로 개재한다. 어린 시절 여러 가족이 함께 오글거리며 살았던 라일락 하우스의 기억을 연재한다.

단칸방. 연탄 아궁이 공동 화장실 부업  골목길과 구멍가게등 아련한 향수를 일으키는 소재를 통해 추억을 재생산한다. 어렸다는 이유도 있지만 수빈의 추억은 그 시절을 함께 살아왔던 지금의 남자친구 수돌과도 조금씩 어긋난다. 그때의 소재를 더 얻고자 SNS에 그때의 사람을 찾는 광고를 내고 하나 둘씩 그때의 사람들이 모여든다. 하지만 각자가 가진 기억은 제각각이다.

기억은 그렇게 내가 보고 싶은 것 내게 유리한 쪽으로 형성된다. 내가 알 고 싶지 않거나 관심이 없는 것은 정말 하얗게 지워지고 내가 유리한대로 내가 본것조차 각색되어 기억된다.

거기다 누구에게나 감추고 싶은 비밀과 그 기억들이 뒤섞이면서 두렵고 괴이한 냄새를 피워올린다.

책은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일들을 가지고 사람들이 가진 주관적 기억과 비밀을 교차시키며 이야기를 발전시킨다. 어릴적 추억이라는건 아름답게 포장되기 마련이다. 수빈도 처음엔 가벼운 마음으로 그때 그 시절의 추억을 꺼집어 낸것이겠지만 그 때의 일들이 세상에 다시 드러나면서 그리고 그때의 사람들의 기억을 퍼즐처럼 맞추면서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혹은 정말 새로운 사실들이 드러난다. 사람들의 기억들이 하나하나 퍼즐조각처럼 이어지면서 그때 그 장소에서 생긴 일들이 조금씩 윤곽을 드러내고 아름다운 라일락 하우스의 실체는 음습하고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내게 아름다운 기억이 누군가에게도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나는 절대로 되살려야할 그 때 그 시절이 누군가에게는 지우고 지워 절대 세상에 드러나면 안되는 두려운 대상이기도 하다.

철없던 수빈에게 그 집은 즐겁고 좋았던 사람들의 공동공간이었고

수돌에게는 눌러서 절대 다시는 머리를 들지 못하도록 밟아 묻어야 할 악몽같은 곳이었고

또 누군가에게는 한껀 잡아 편하게 살꺼리를 마련할 로또같은 곳이며

누군가에게는 돌이킬 수 없는 악몽이 다시 시작되는 곳이다.

함께 가진 기억조차 이렇게 사람에 따라 제각각이다.

누군가가 말했다. 악은 정말 평범한 얼굴을 가지고 있다고

피가 낭자하고 누군가가 죽어나가는 것만이 악이고 공포가 아니다.

타인은 태연하게 살아가는 일상이 내게는 지옥같고 벗어나고 지워버리고 싶어지는 것이 되는 순간 그것은 악이고 공포다.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태연하게 내 앞에 펼쳐지는 일상이 악몽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건 누구에게 말할 수도 없고 지워버릴 수도 없는 끔찍한 존재다.

덮어버린 악은 비밀의 이름으로 혼자 자라 감당할 수 없는 괴물이 되고

타인의 아름다운 추억마저 증오하고 두려워하게 만든다.

그래서 어쩌면 우리 일상속에 태연하게 자리잡은.. 그 까짓거... 하는 사소함이 더 무섭다.

 

라일락이 붉게 피던 그 집이

누군가에겐 추억이고 누군가에게는 지우고 싶은 악몽이었다.

그 집은  집일 뿐이지만 그 속의 사람들은 복잡하고 미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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