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친구 기리시마는 왜 동아리를 그만두는 걸까?

기리시마는 누구지?

그가 동아리는 그만둔다는 건 개인적인 일일텐데 그 파도는 여기저기 미치지 않은 곳이 없다,

물론 기리시마를 알고 있는 사람이건 모르던 사람이건 단 순한 사실 기리시마가 동아리를 그만 두었다는 것에 영향을 받는다 작게 혹은 무심하게,,,

 

이야기는 사실 기리시마와 상관이 없다. 그가 동아리를 그만둔다는 사실때문에 생각이 많아진 배구부의 히로키 이외엔 직접적으로 상관이 없다,.

히로키는 기리시마가 빠진 자리에 들어가면서 긴장과 설레임 그리고 기리시마와 비교되는 자긴의 플레이에 주눅이 든다, 하지만 기리시마는 기리시마이고 히로키는 히로키다,

브라스 밴드의 아야는 기리시마의 변화로 좋아하는 남학생을 더이상 훔쳐 볼 수 없다, 이미 학교 울타리 내에서 게급이 나누어 지고 위와 아래가 정해진다. 위는 위 대로 고민이 있고 아래는 아래대로 고민이 있고 그건 몹시도 닮아있지만 둘은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않는다,

브라스 밴드부의  아야와 영화부 마에다 료야는 소위 말해서 아래에 속하는 아이들이다,

그러나 함께 음을 만들어 내는 브라스밴드나 렌즈를  통해 세상을 관찰하는 영화부 아이들은 그 순간은 누구보다 빛나고 위 아래의 의미가 전혀 없다,

위 에 속하는 미카도 위의 두 아이와는 상관 없이 고민이 있지만 누구에게 털어놓을 수 없다,

 

그때의 아이가 그렇다 학교는 삶의 모든 부분을 차지하고 그 이외의 생활을 상상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그 생활이 즐겁지 않다., 소설 속에는 입시라는 무게가 빠져 있고 동아리 활동을 하는 아이들이라 조금 편하고 여유롭지만 그들이라고 마냥 행복하지 않다는 거다,

그리고 몹시 순수하고 착하다, 어른이 생각하는 이상....

사실 그 나이의 아이들은 우리의 상상만큼 다이나믹하지 않을 것이다, 그저 하루하루 반복되는 날이 이어지고 사소해 보이는 일에 마음 상하고  또  마음이 날아갈 듯 뛰기도 할 것이다, 그런 하루하루가 쌓여가는 것인데 그것이 바깥에서 보면 뭔가 대단한 위기처럼 보이고 터지기 직전의 모습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있는 듯 없는 듯 그렇게 교실을 채우면서도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고 자기의 시간을 쌓아갈 뿐이다,

입시와 불안안 미래를 빼버린 청춘의 이야기라 조금은 환상처럼 보이지만 그래도 이렇게 평범하고 착한 학생들을 보고 있으면 심심하지만 행복하다,

왕따나 폭력 입시 스트레스와 궁지에 몰려 무언가를 꾸역꾸역 집어넣고 있는 아이들 대신 동아리 활동을 하고 소박하게 꿈을 꾸고 맥도날드의 한정판 쉐이크에 열광하고 영화 잡지나 만화  교복 스타일에 목숨거는 그런 평범한 아이들의 모습을 이제 우리는 찾기가 더 힘들어지지 않았을까

그런 아이들이 여전히 우리 주변에 있고 다이나믹하고  화려한 아이들 또는 무시무시한 아이들보다 더 많이 있는데 그들이 소외받는 이유는 뭘까

모든 걸 점점 더 잘 해야하고 조금이라도 무언가 장점을 가지고 자기의 길을 미리 찾아야 하고 그게에 맞춰 자소서를 쓰고 미래를 규정하고 입시에 매달리고 어른 뺨치는 모사와 폭력을 행하기도 하면서, 뭉뚱거려서 중 병이니  미래가 없는 청년이니 하는 집단으로 판단 되어버리는 동안

소심하고 조용하고 자기의 길을 고민하고 웃고 슬퍼하고 화내고 고민하는 아이들은 점점 투명인간이 되어간다, 그 많은 아이들은 어디에 있는가

기리시마의 동아리 탈퇴에  내 마음이 흔들리고 나를 돌아보게 되는 조용하고 얌전한 아이들을 이제 우리가 찾아나서야 할 때가 아닐까

밋밋하고 심심하게 느껴지기도 하는 이야기에서 이런 평범하고 보통의 아이들이 지금 더 귀해졌다는 걸 세삼 느끼게 된다,

내 아이가 너무 평범해서 , 우등생은 되지 못하고 존재감이 적은 모범생일 뿐이어서 슬퍼하고 속상해 했던 내가 미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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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허한 십자가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선희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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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죽인 사람을  벌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인가?

아니 다시 말하자

누군가가 사람을 죽였다, 그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을 것이고 제각각의 사연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명확한 사실은 누군가가 죽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누군가를 죽은 사람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우선 죄를 지었으니 벌을 받아야 한다, 당연하다

그러나 그가 벌을 받는다는 말을 그가 반성을 한다는 것과는 다르다,

육신을 벌을 받아 감옥에 가거나 죽을 수 잇지만 그 마음은 반성하지 않고 전혀 죄에 대해 책임을 느끼지 않을 수도 있다,

살아보니 인면수심이라거나 사이코 패스라거나 하는 부류의 사람이 있다,

그렇다면 그를 죽이는 것 그러니까 사형을 하는 것이 방법이 될까?

달리 생각해보자

그가 누군가를 죽였다. 원한에 사무친 복수이거나 우연한 사고이거나 계획된 범행이건간에 사람이 죽었다. 그 주변 사람들의 고통은 표현할 수도 없다

그들은 자기의 가족을 사랑하는 누군가를 알고 있던 누군가를 죽은 사람을 용서할 수 없다

무조건 처벌하고 사형하라고 한다,

그런데 이 사람은 마음깊이 반성하고 또 반성한다. 자기의 죄를 돌이킬 수 없다는 걸 알고 죄책감에 몸무림치고 할 수 있는 모든 용서를 구하고자 한다. 그것만으로 피해자의 마음이 누그러질 수 있을까

진심으로 뉘우치고 있으니 용서하라고 피해자의 가족에게 강요할 수 있을까

 

예전에 본 영화 "용서"가 생각난다,. 밀양과 비슷한 주제였던 거 같다,

우발적이고 충동적인 사고로 연인을 잃은 여주인공은 이후 살인사건의 피해자와 가해자들을 인터뷰하게 된다, 다들 비슷하다

용서하라고... 내가 상대를 미워하는 만큼 망가지고 힘들어지는 것은 나 자신이라고 종교를 빌어서 혹은 선한 마음을 빌어서 모두가 말한다.

나는 아직도 마음이 아프고 미움이 가시지 않았는데 용서를 강요한다,

용서하지 못하는 내가 이기적이고 어리석은 인간이라고 자꾸 강요한다,

나는 절대 그럴 수 없다.

인터뷰를 하면서 주인공이 알게 된건 유감스럽지만 피해자는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그 사건에서 헤어날 수 없고 괴롭고 가정이 파괴되기까지 한다

그러나 가해자는 쉽게 용서를 받고 심지어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법이 선처를 해주었으니까  혹은 자신은 살만큼 살고 나왔으니까 이제는 죄가 없다고 뻔뻔하게 말하기도 한다,

주인공은 항변했다, 사과는 당연한 거아니냐고 하지만 용서는 당연한게 아니다

내 마음속 응어리가 아직 남아있고 내 아픔이 아직 이렇게 생생한데 용서를 강요하지 말라고

용서를 전제로 한 사과따위는 개나 줘버리라고 (내가 생각했었다)

 

조두순이나 강호순 등등 인면수심의 인간들을 보면 정말 콩밥이 아깝고 내가 낸 죄꼬리만한 세금도 아깝고 같은 하늘아래 함께 숨쉬고 있다는 사실조차 역겹다,

작품 속 사요코의 주장처럼 살인범을 사형하는 건 적어도 그 사람이 다시 누군가를 죽이는 것은 예방할 수 있다고 나도 소리치고 싶다,

그러나 사람을 죽였다는 이유로 법이라는 이유로 누군가를 죽일 수 있는 권리는 또 누구에게 있는가? 하는 문제에 직면하면 주춤거려지기도 하지만

죽음을 즉음으로 갚아라.

사실 가장 잔인하고 살벌한 저 문구 이상의 해결책은 없다는 생각이 새록새로하다,

 

소설 속에서 신생아를 죽였다는 죄로 사오리는 인생을 망쳤고 후미야는 스스로 속죄하고 무거운 십자가를 지기로 했다. 그렇게 힘들게 살았으니 이제 용서받아도 죄지 않느냐는 후미야의 아내 의 항변도 이해되지 않은 건 아니지만  그건 자기만족 혹은 자기변명아니냐고 하고 싶다,

죄를 짓고 두려움에 한 행동일 뿐 그것이 모든 것을 덮을 수는 없지 않냐고

결국 그렇게 스스로 내려진 벌이 종국에는 사요코를 죽게 하고 또 누군가의 피해가족을 만들고 누군가의 살인자를 만든 셈이다,  잔인하지만 그렇다고 생각한다,

 

작가는 어떤 결론도 내리지 않는다,

그래도 사형이냐고 묻긴 하지만 어떤 편도 들지 않는다,

 

책을 읽으며 일본도 우리와 다르지 않게 피해자의 인권이나 권리에 대해서는 가볍게 여기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사건의 당사자이고 가족의 일임에도 늘 외면당하고 어떠한 사실도 알지 못한다. 범인에 대한 인권이 나날히 확대되어가는데 그 뒷편에서 울고 있는 피해자들을 그 상처를 고스란히 스스로 지고 있다,

그들이 사형을 원하고 범인의 죽음을 원하지만 그렇다고 되돌릴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사건은 일어났고 사랑하는 사람은 이미 죽었다. 우리 사이는 피페해젼고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고 주위의 시선이나 삶의 무게는 고스란히 남았다

어쩌면 죄를 지은 사람들이 아니라 피해자의 가족이 정말 무겁고 공허한 십자가 아패서 아파하고 울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들의 십자가는 누가 내려 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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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민음사 출판그룹 논픽션 브랜드 민음인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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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수령 후, 10일 이내에 '알라딘 블로그'에 도서 리뷰를 꼭 올려주세요.

(미서평시 서평단 선정에서 제외됩니다)


"우리는 모두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다. 그것이 존재의 법칙이며 목적이다."

미국 최고의 아동 트라우마 전문의가 들려주는 사랑과 공감의 위대한 힘!


관계 맺기의 핵심, 공감 능력은 현대 사회에서 어떻게 위협받고 있는가?

개로 길러진 아이부터 카멜레온 소녀까지,

사랑으로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공감 능력을 회복한 아이들의 감동적인 이야기


갓 태어난 아기의 손가락이 본능적으로 어른의 손가락을 꽉 움켜쥐는 그 순간부터 아기의 몸과 뇌는 친밀한 관계를 찾아 나선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감정을 공유하는 능력이 바로 공감이며, 이는 관계를 단단히 이어주는 강력한 접착제다. 이 책에서는 미국 최고의 트라우마 전문가이자 소아 정신과 의사 브루스 D. 페리 박사와 국제적인 상을 받아온 과학 저널리스트 마이아 샬라비츠가 공감 능력의 발달 과정을 설명하고, 이것이 사람의 행복과 사회 안정에 왜 반드시 필요한지, 또 이 소중한 능력이 현대 사회에서 얼마나 심각하게 위협당하고 있는지 보여준다.



★이 책에서 만날 수 있는 아이들★


털모반이 있는 아이 제레미는 오른쪽 뺨에 시커먼 털이 가득한 커다란 점이 있는 채 태어났다. 엄마의 과도한 보살핌으로 작은 스트레스도 못 견디는 폭군으로 행세했으나, 스트레스 조절 훈련으로 침착한 아이가 되어간다.


“나에게만 사랑을 주세요.” ‘개로 길러진 아이’의 동생. 러시아 고아원에서 태어나 생후 2년 동안 누구에게도 따뜻한 보살핌을 받지 못했다. 사랑 많은 가정으로 입양되어 인간과의 거리감을 회복해간다.


내겐 너무 강렬한 세상 요나는 자폐 스펙트럼에 속하며, 아빠 샘은 아스퍼거 증후군이다. 자폐인에게 공감 능력이 부족하다는 선입견에 도전한다.


진실을 말하지 않는 형제들 떠돌이 범죄 집단에서 태어난 세 형제는 FBI의 심문에 거짓말로 일관한다. 공감 능력의 토대가 되는 신뢰가 무너졌을 때 어떤 재앙이 일어나는지 보여준다.


매력적인 냉혈한 이웃의 정신지체 소녀를 공개적인 장소에서 강간하고도 “자비를 베풀었다”고 주장하는 소시오패스 소년. 반복적인 애착 박탈이 공감의 결핍을 가져온 사례.


버려진 아이들의 엄마가 된 소녀 트리니티는 마약 중독자인 부모에게서 태어났으나 이웃의 보살핌과 교사의 작은 친절로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방임된 아이들을 보살피는 대모로 거듭난다.


무리에 속하고 싶었던 카멜레온 소녀 평범한 소녀는 왜 예비 갱단이 되었나. 집단에 소속되고자 하는 십 대의 욕구와 자기 정체성을 형성하고자 하는 의지 사이에서 생겨난 갈등을 발전적으로 다루는 과정을 보여준다.


스크린 마더▶ 우울증에 걸린 엄마 밑에서 TV를 보며 자라난 브랜든은 의사소통을 자연스럽게 할 줄 모른다. 공감도 불가능하다. 매체가 뇌에 미치는 악영향을 알려준다.


“어서 커서 ‘다윗의 신부’가 될래요.”▶광신도 집단 다윗파의 아이들의 사례를 통해 사회 계층과 권력이 인지와 정서에 미치는 영향을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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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을 쫓는 아이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왕은철 옮김 / 현대문학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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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카니스탄., 탈레반 히잡, 부르카 수니파 시아파......

그냥 나와 먼 이야기이고 그저 뉴스에만 나오는 것으로만 알았던 곳에 대해 알게 된 책이다,

그곳에도 소년들이 있었고 그곳을 그리워하고 추억을 남겨둔 사람이 있더라,

소년 아미르가 아프카니스탄에서 성장통을 겪고 이후 미국으로 건너와 그때의 아픔이나 기억을 모두 잊었다고 생각하고 삶을  이어가는 순간 먼 고향에서 소식이 들려온다,

정신적 아버지나 마찬가지였던 라힘 칸의 전화가 걸려오고 그리고 아미르는 과거로 되돌아간다,

이제는 과거의 잘못을 바로 잡아야 할 유일한 순간이 되었다,

연날리기 경기가 있던 겨울날 

우승의 기쁨에 취해 있던 아미르는 연을 잡으러 갔던  하산을 찾으러 갔다가 인생의 전환점을 맞게 되는 장면을 목격한다, 그때 어렸던 아미르는 나설 수도 없었고 도망 갈 수도 없었다,

없던 일처럼 하기에도 그는 아직 너무 어렸다,

자기 죄를 덮으려고 작은 음모를 꾸미고 하산을 멀리 보내버리고 그리고 잊으려고 애를 썼다,

멀미를 하고 오물을 토해내면서 아미르는 자기의 죄를 적나라하게 마주하지만 그 이상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무언가 하기엔 어리고 나약했다,

이후 아프카니스탄에는 소련군이 주둔했거 아미르는 아버지와 함께 파키스탄으로 그리고 미국으로 떠난다, 이민자의 생활을 하면서도 품위와 자존심을 지키려는  바바와 그 속에 동화되어가는 아미르 그들은 누구도 아프카니스탄의 일들을 이야기 하지 않지만 잊지도 않았다,

미국속 소수민족들이 그렇듯이 그들도 자기들 끼리의 축제를 지내고 모여서 벼룩시장을 열고 때떄로 그때의 향수를 그리워하고 소련을 증오하면서 시간을 흘러보낸다,

아미르는 결혼을 하고 산처럼 버틸 줄 알았던 바바도 늙어 병들고 죽음을 맞는다,

그리고 라힘 칸의 전화가 아미르를 다시 되돌릴 기회를 준다,

 

율법 선생이 뭐라고 가르치건 세상에 죄는 딱 한가지 밖에 없다, 딱 한가지 뿐이야, 다른 모든 죄는 도둑질의 변형일 뿐이다 알겠니?

사람을 죽이면 그건 한 생명을 훔치는 것이다, 그것은 그의 아내에게 남편에 대한 권리를 훔치는 것이고 그의 자식에게서 아버지를 훔치는 것이다, 네가 거짓말을 하면 그것은 진실을 알아야 할 다른 사람의 권리를 훔치는 것이다, 네가 속임수를 쓰면 그것은 공정함에 대한 권리를 훔치는 것이다, 알겠니?  

 

이렇게 정의로움을 말하고 총구 앞에서도 품위와 양심을 이야기하던 바바에게도 엄청난 비밀과 말하지 못한 죄가 있다는 것을 나중에 아미르는 알게 된다, 한순간 배신감을 느끼지만 자기 속에 웅크리고 있던 잊고 있던 죄의식이 그것을 덮어버린다, 죄의식을 가진 사람만이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죄의 무게. 어쩌면 바바의 삶은 그 죄에 대한 속죄였을 것이다,

 

나는 겁쟁이였기 때문에 도망쳤다, 아세프가 무서웠고 그가 내게 할 짓이 두려웠다, 샃어받을 것이 두려웠다, 골목의 하산에게 등을 돌리면서 나는 나자신에게 그렇게 변명했다, 나는 나자신에게 그렇게 믿게 했다, 나는 사실 나의 비겁함을 열망했다, 또 다른 변명 내가 도망치고 있는 진짜 이유는 이 세상에는 공짜는 없다는 아세프의 말이 옳다는 것이었다, 어쩌면 하산은,  바바의 마음을 얻기위해 내가 치러야만 하는 댓가이자 내가 죽여야만 하는 양이었다, 그것은 공정한 댓가였을까? 그 대답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의식속에 떠올랐다 그는 단지 하자라인에 불과했다,. 그렇지 않은가?

어린 아자르에게 죄의 무게는 너무 무거웠다, 무엇이든 생각을 해내야 했고 자기 행동에 정당화를 만들어야했다, 그에게 떠오른 건 양을 잡는 장면이었던 모양이다,. 어떤 죄도 없는 양이 목이 잘리고 피를 흘리는 것 그것은 순교였고 재물이었다, 그 대상이 이제 하산으로 바뀐다, 나는 얻어 마땅한 바바의 사랑을 위해 하산을 재물로 바치는 것 뿐이다, 그리고 그 속에 사회적 통념이 은근히 스며든다, 그는 그저 하자라인이지 않은가?

그 생각이 얼마나 잔인한지 그때  자기 앞가림에 급급한 그는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입을 다물었고 모른 척했고 그럼에도 변함없이 충성심을 보이는 하산이 너무 버거워서 이제는 멀리멀리 보내고만 싶어졌던 것이다,

죄의 무게는 그렇게 누르고 눌러도 슬그머니 고개를 들거 튀어나온다, 그냥 잊어버리는 것 그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 잊어라 없애라 모른 척 하라,, 그러면 사라질 것이다,

하산만 사라지면 내 죄도 사라질 것이다,

그것이 전부였다,

 

나는 그녀가 부러웠다, 그녀는 비밀을 드러내서 이야기하고 해결했다, 나는 입을 열고  내가 어떻게 하산을 배신하고 거짓말을 했는지 어떻게 그를 쫒아냈는지 그리고 어떻게 바바와 알리의 40년 우정응ㄹ 망가뜨렸는지 그녀에게 말해줄 뻔 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 소야라 타헤리는 여러가지 면에서 나보다 나은 사람이었다, 용기가 그 중 하나였다,

 

아미르는 몇번이고  죄를 드러낼  기회가 있었다,

알리가 물었고  라힘 칸도 들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드러내지 않았다, 나만 모르면 모두가 모르는 일이라고 굳게 믿었던 거 같다,

입 밖으로 꺼내버리면 순간을 견디고 나면 무게는 줄어들 테지만 속으로 꾹꾹 눌러놓은 죄의식은 물먹은 솜처럼 점점 그 무게가 늘어갈 뿐인데..

그건 정말 나중에 알게 되는 진실이다.

 

다시 라힘칸의 아파트로 돌아가는 인력거 위에서  내 문제는 항상 누군가가 내 ㅐ신 싸워주었던 것이라는 바바의 말이 떠올랐다,

 

이 말이 나는 많이 아팠다,

아미르의 죄에 대해 공감하고 이해하는 건 나와 그가 닮았다는 생각이 떨어지지 않았던 이유였다, 물론 나에게는 충성스러운 하산이 있진 않았지만 나는 언제나 내 문제를 피해오고 누군가의 뒤에 숨어있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떨어지지 않았다,

운좋게 여태까지 잘 살아왔고 내 몸을 감출 수 있는 큰 기둥이 있어 그 뒤에 숨으면 그만이었지만 언제나 그렇게 될 수 있을까

한 번도 기둥 밖으로 나가보지 못한 나는 나이만 먹은 징그럽게 늙어버린 어린아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

책속의 이 문장을 발견한 순간 머리가 망치로 맞은 듯이  충격이었다,

알고 있던 사실을 마주하는 것

결국 아미르는 나와 달리 용기를 내어 스스로의 문제를 해결하러 돌아간다,

이제 지나가버린 아버지의 죄의식마저 함께 품고 소랍을 구하기 위해 생전 처음 용기를 내고 자신과 마주하고 진실과 마주한다,

그리고 해냈다,

여러 충격으로 아직 소랍은 그에게 마음을 열지 않았지만 이제는 기다릴 수 있다,

하산에 그에게 해주었듯이 그도 소랍을 기다리고 이해하고 품어줄 큰 가슴을 가지게 되었다,

삶은 계속된다고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은 말하곤 한다, 시작과 끝 위기나 카타르시스에 상관하지 않고 삶은 계속된다, 느린 흙투성이 대상 행렬처럼 앞을 향해 계속 된다,

 

그리고 적어도 소랍은 필요없는 죄의식을 품지 않도록 그는 노력할것이고 기다릴 것이다,

 

아프카니스탄은 착한 사람들이 사는 아름다운 나라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총탄이 빗발치고 폭탄이 터지고 여자들이 돌에 맞아 죽어가는 나라가 아니었다는 것

그것을 알게 된것도 좋은  배움이되었다,

그리고 죄의식이라는 것을 다시 생각해본다,

부모의 죄에 대한 부채감이 알게 모르게 자식에게 되물림되는 것도 생각해본다,

바바의 실수, 그냥 덮어버렸던 그 실수가 알게 모르게 아미르를 주눅들게 만들었을 것이고 하산을 사랑하면서 동시에 미워하게 되었을 것이고  어린 아미르는 거기에 죄를 하나 더 얺어놓고 괴로워했다는 것

아미르의 기억처럼 바바와 아미르는 미국에서의 고단한 삶에서 오히려 서로에게  본능적으로 더 의지하고 가까워졌다. 하산이 곁에 없고 내 삶이 여유가 없어 빡빡한 그 순간 두 사람이 더욱 가까워졌다는 것이 아이러니이기도 하다,

나는 내가 가진 말하지 못한 죄의식과 내속에서 성장을 멈춘 아이가 내 아이에게 어떤 무게를 얹어 주고 있을지 생각해 볼 일이다, 이제는 아미르가 아닌 바바입장에서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다, 내색하지 않고 두 아이에게 무겁고 든든한 산이 되어준 바바는 이제 그 어깨의 짐은 내려놓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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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사전

 

말은 태어나고 개중엔 죽어가는 것도 있죠

그리고  살아가는 동안 변해가는 말도 있습니다,

말의 의미를 알고 싶다는 건 누군가의 생각이나 감정을 정확히 알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과 아어지고 싶다는 소망은 아닐까요?

그래서 저희들은 지금 살아가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사전을 만들어야만 합니다,

대도해는 지금을 살아가는 사전을 목표로 하는 것입니다,

말의 바다

그것은 끝없이 넓지요

사전이란 그 대해에 떠 있는 한척의 배

사람들은 사전이란 배로 바다를 건너고 자신의 기분을 적절히 나타내는 말을 찾습니다,

그것은 바로 유일한 말을 찾는 기적

누군가와 이어지고 싶어서 서대한 바다를 건너려는 사람들에게 바치는 사전

그것이 '대도해'입니다,

 

 

사전- 사람들 사이에 쓰이는 말을 규칙적으로 정의하는 것

 

 

사람들 사이의 틈을 메우고 서로에게 다가가는 도구는 말이다., 그러나 때로 말을 오해를 부르기도 하고 '말'의 의미가 나와 그가 다를 수 있다, 서로의 말을 짐작하기만 할 뿐 진심을 알 수 없어서 사람들은 서로가 서로를 모르면서 그 모른다는 것 조차 알지 못하고 살아간다,

사람들을 이어주는 것 그것은 말이고 그 말의 쓰임을 알려주는 건 사전이다,

'말"은 내가 경험한 것 만큼 알 수 있다는 건 아이러니 하기도 하다,

사전적 의미의 말을 알고는 있지만 그 말의 진짜 의미는 내가 경험하고 나서야 비로소 내것이 된다, 마지메가 연서를 쓰고 가규야를 기다리고 그리워하고 용기내어 마음을 전하고 난 뒤에 그는 '사랑"이라는 단어를 확실하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 처럼 말이다,

"말'은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경험으로 익히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경험한 말들 내 몸을 통해 받아들인 말을 모아서 나만의 사전을 만드는 것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이미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단어들 - 사랑, 행복, 아이, 꿈 , 지루함, 즐거움, 질서, 식사 등등의 단어를 새롭게 생각해보는 경험을 하면 어떨까

 

무심코 본 영화는 정말 정말 좋았다,

나는 일본 영화가 좋았다 별거 아닌걸 세심하게 들여다 보는 그 지독함이 좋았고 어떤 클라이막스 없이 그저 작은 떨림으로 이어지는 플롯도 좋았다,

더구나 이 영화는 그런 일본영화 특성에 사전만들기라는 정말 세심하고 아날로그적인 작업을 자세하게 보여준다,

아 사전은 저렇게 만드는 것이구나

모든 것이 기게화가 되고 컴퓨터와 로봇의 작업이 일반적이 되어버린 지금 저렇게 사람의 손끝에서 머리속에서 그리고 무엇보다 진중한 엉덩이의 힘으로 완성되는 작업이 있다는 것이 새로운 신기술을 보는 것 이상 경이롭고 황홀했다,

내가 변태스러운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극 세심하게 들어가는 작업의 치밀함과 진중함이 무지하게 매력적이고 섹시해 보인다,

영화를 보고 책을 읽었다,

각각 인물의 섬세함은 영화에 나온 배우들이 더 잘 표현하고 매력적이지만 (꼭 오다기리 조때문에 그런 건 아니다) 책 속의 인물은 어딘가 엉성하고 경박하고 비어있지만 그래서 고민하고 노력하는 인간적인 면을 자세히 보여주기도 한다.

다만 사전을 만드는 세세한 과정은 책을 통해 더 잘 이해하게 되었다, 영화에서는 이해하지 못하고 넘어간 장면들이 왜 그런것인지를 잘 알 수 있게 되었으나 흐름이 매끄러운건 영화쪽이다.

 

마지메의 연서를 전달하고 기다리는 장면이나  니시오카의  술마신 후의 프로포즈  등을 보면 굳이 말이 아니어도 서로에게 전해지고 싶은 마음이 절절하게 드러난다. 그러나 행동으로는 한계가 있다, 비 언어적인 것들이 더 많은 것을 전한다고 하지만 그것은 결국 언어가 함께 일때 더 풍성하게 해준다는 것이지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결국 말을 통해 글을 통해 즉 언어를 통해 두 사람은 각자의 인연과 연결되고 마음을 드러낸다,.

 

마지막 대도해가 완성되고 그 축하하는 자리에서 우리의 마지메군과 아라키선생은 다시 새로운 개정작업을 이야기하고 새로운 시작을 또 이야기한다,

사전을 만드는 일은 끝이 없는 일인 모양이다,

이제는 누구도 뒤져 보지 않아서 서가 한 쪽에 먼지만 뒤집어 쓰고 자리만 차지 하고 있을 사전이 이렇게 의미있고 누군가에게는 평생을 바칠 일이라는 것이 세삼스럽고 이런 아무도 기억하지 않을 일을 글로 쓰고 영화로 만드는 그들의 행동이 부럽다,

 

나는 말을 통해 누구와 소통하고 있을까

그 소통은 나의 일방적인 전달이 아니고 서로에게 닿아서 이어지고 있는 걸까

말이  글이 세삼 고맙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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