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운 건 악이 아니오  시간이지. 아무도 그걸 이길 수가 없거든

연쇄 살인범이 알츠하이머에 걸렸다

그는 이제 점점 기억을 잃어간다,

기억을 잃고 시간이 뒤섞이고 내가 누구인지를 잃어간다

사람은 살과 뼈와 피와 같은 유기물로도 이루어져 있지만 내가 살아온 시간들 기억들로 이루어진 존재이다.

나는 내가 과거를 기억하고 현재를 살며 미래를 계획할 수 있어서 비로소 내가 된다.

나의 존재를 증명하는 어떤 계급이나 부 역할들이 아니더라도 내가 기억하고 살아온 시간이 나를 스스로 증명해주기도 한다

그런데 기억을 잃어버렸다,

그건 나를 잃게 되는 것이다

내가 가진 존엄함을 잃게 하는 것이고 나를 더 이상 인정할 수도 없고 존재를 증명하라 수 없다.

주인공의 이웃에  살았던 치매 노인들의 이야기가 있다,

노부부 둘이 장성한 자식을 떠나보내고 살다가 남편이 그리고 아내가 치매에 걸렸다

둘은 점점 시간을 잊어가면서 기억을 잃고 점점 두 사람의 시간은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시절 모든것이 통제 당했고 감시 당했고 언제 어디로 끌러갈지 모르던 불안의 시절로 돌아간 노부부는 마주하는 사람마다 고개를 숙이고 허리를 굽히며 인사하고  굽신거리고 쩔쩔맸다

결국 자식도 알아보지 못하고 살려달라고 애원하며 그 존엄마저 내려놓고 요양소로 떠난다

그 모든 것을 지켜본 주인공은 그 모습이 충격이었다,

인간이 그렇게 스스로를 떨어뜨리는 일 그건 무서운 일이다

그 모든 것이 기억을 잃고 시간을 거스를 수 없음에서 나오는 것을 알게 된다

 

 

모모에도 시간을 훔쳐가는 회색신사들이 있다,

그들은 인간의 시간을 훔쳐야 살 수 있는 존재들이다,

인간은 그들에게 시간을 빼앗기면서도 그것이 시간을 저축하는 일이고 좀 더 부지런하게 살아가는 일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다람쥐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바쁜 일상에서 사람들은 많은 것을 놓친다,

친구를 만나고 대화하고 놀고 빈둥거리며 시간을 흘려보내는 법을 잃어벌인다,

그건 다름아니라 스스로의 존엄을 잃어버리는 일과도 같다,

내 삶을 내가 만들어 가지 못하고 동동거리게 하는 것 시간에 끌려다니게 되는 것은 스스로가 주인이지 못한 노예가 되는 것이다

그것이 자본주의에 의한 것이든 전체주의에 의한 것이든 사람은 스스로를 놓아버리고 무언가에 속박되어버리는 것이다,

바빠진 사람들을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추억할 것들이 없고 추억할 시간이 없다, 추억은 기억이다

그래서 그들은 늘 고달프고 스스로의 가치를 알지 못한다,

회색신사들은 시간을 빼앗아간 것이 아니라 삶의 품격을 앗아간 것이다

 

다시 살인자의 기억법으로 돌아와서

주인공 김병수도 그렇게 서서히 망가져 간다,

이렇게 누군가가 기억을 잃고 망가짐을 보며 서글프고 안타까워야하는데 문제는 김병수가 연쇄 살인범이었다는 것이다,

그는 수많은 살인을 저지르고 난 후 잡히지 않고 70이 넘어까지 잘 살고 있었다,

나름의 부를 이루고 안정을 이루면서 살아간다, 그러다가 덜컥 알츠하이머에 걸린다,

쉽게 동정하고 연민을 느끼기엔 무언가 걸리는 것이 있다,

알츠하이머는 현재의 기억부터 서서히 사라진다,

과거만 기억하고 그 시간을 살게 되며 현재는 망각되는 병이다,

김병수는 현재 잘 살고 있던 삶은 잊어버리고 과거의 살인범의 시간을 살아간다,

내가 누구인지 누군가를 죽였는지 나를 쫒는 사람이 누구인지 저 사람이 형사인지 또다른 살인자인지 모든것이 뒤죽박죽이다,

시간이 그에게 형벌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는 점점 당황하고 정신이 없다.,

내가 누구인지 알고 있는 그것마저 진실인지 아닌지 헷갈린다,

내게 딸이 있었는지 내가 죽인 사람이 있는지도 헷갈리면서 그는 어쩌면 그동안의 업을 짊어진 형벌로 들어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영화 "스틸 엘리스" 그녀도 알츠하이머에 걸렸다

세 아이의 엄마로 언어학 교수로 한참을 더 삶에 힘을 쏟아야 할 시기에 덜컥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고 그리고 서서히 잊어가는 중이다,

기억이 시간이 한 사람의 존엄성을 나타내지만 동시에 진짜 인간의 존엄은 그 모든 것을 잃어도 잃어버버릴 수 없음을 그녀는 보여준다,

점점 정신이 혼미해지고 모든 기억이 뒤죽박죽되고 주위 사람을 혼란하게 만들지만 그녀는 그녀로서의 삶을 살려고 노력한다.

모든 것을 잊어버린 텅 빈 그녀의 얼굴을 보면 그래도 사람은 그 존재만으로 존엄하다는 걸 알게 해주었다,

 

사람이 사람다울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내가 사회적인 이름이 아무것도 없고 기억을 잃고 시간을 뒤섞어버린 뒤에도 나는 여전히 나일 수 있을까

그리고 그런 누군가 타인을 여전히 나는 귀하게 여길 수 있을까?

생각이 많아지는 책. 그리고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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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제목의 번역에 대해 말이 많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괜찮다고 생각했다,

토니가,,, 계속 찌질하지 않을까했던 나의 첫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그는 나이 먹어서도 찌질했고 구질구질 했으며 도통 분위기 파악을 하지 못했다, 여전히

허나 그의 자리에 나를 넣어보아도 모든 걸 알아차리지는 못했을거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의 운명이 그렇게 꼬이리라고는 누가 상상할 수 있을까

 

이 이야기는 모두가 60대에 이른 토니긔 기억을 토대로 씌여진 것이다, 우리가 아는 사실들은 모두 토니가 알고 있다고 믿었던 것들 토니가 말하고 싶은 것에 불과하다,

우리는 토니를 통해 베로니카를 보고 에이드리언을 보고 포드 부인을 보고 그 당시 상황들을 알아낸다,

모든 건 철저하게 토니의 시각이다.

 

지나간 사실에 대해서는 현재의 정신상태와 나의 상황에서 판단하고 그 행위를 규정한다,

역사도 신문기사도 결국 누가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진실을 보여준다,

사실= 진실은 아니다, 이건 이제 초등학생도 안다,

 

결국 기억하게 되는 것은 실제로 본 것과 언제나 똑같지 않은 법이다,

 

역사는 부정확한 기억이 불충분한 문서와 만나는 지점에서 벌어지는 확신입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당시에 일어난 일을 내 입장에서 해석한 것을 기억에 떠올리고 있다,

 

역사는 살아남은 자들의 회고에 가깝다,

 

우리는 살면서 우리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얼마나 자주 할까 그러면서 얼마나 가감하고 윤색하고 교묘하게 가지를 쳐 내는 걸까 그러나 살아온 날이 길어질수록 우리의 이야기에 제동을 걸고 우리의 삶이 실제 우리가 산 삶과 다르며 다만 우리 스스로에게 들려준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도록 우리에게 반기는 드는 사람도 적어진다,

타인에게 이야기 했다고 해도 결국 주로 우리 자신에게 이야기한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다시 읽으니 곳곳에 토니의 생각을 빌어 이 이야기는 모두 토니가 자신의 왕년 스토리를 들려주고 자기가 기억하고 윤색한 이야기라고 암시를 주고 있었다, 우리는 다만 어떤  나이든 사내의 회고담을 듣고 있는 것이다,

내가 왕년에....... 그래서 아주 멋지게 편지를 보냈는데........ 블라불라,........ 그런데 알고 보니................ 이러쿵 저러쿵이라고 여겼는데,....... 잘 들어 여기가 중요해,,, 세상에 세상에,,,

나만 몰랐네,,, 사실은 말이지,,,,,,,

 

그나마 토니는 노년에 이르러서도 착오를 고칠 수 있고  인생을 돌아보고 반성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다행이다, 나의 기억은 왜곡되고  잘못 주입되었다는 걸 깨닫는 행운아다,

끝까지 나는 모른 체 내가 아는 게 전부임을 굳게 믿고 삶은 마치는 사람도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깨달음이 전부는 아니다. 이미 알았을 때는 돌이킬 수 없을 때이기도 하다,

토니의 잘못흥 그 지랄같은 편지를 보냈다는 것이 아니라, 그 편지를 보내놓고 잘못 기억하고 있고 혹은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것들이 있고 그냥 스쳐보낸 것들이 있었고 혼자 짝각하고 껄떡거리고 혼자만 아는 만큼 반성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의 무지와 무관심이 그의 죄이다,

 

사람들은 모르는 건 죄가 아니라고 하지만  요즘 모르는게 정말 죄가 되는 경우가 있긴 있더라

모르고 던진 말이 누군가에게는 칼이 된다,

내가 몰랐잖아, 모르고 한 일이잖아,,.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면 정말 몰랐니? 진짜 몰랐어?

모른다고 믿고 싶었던 건 아닐까?

외면하고 싶었던 건....

 

누군가에게 들은 말이다

"세상에서 가장  경계해야할 사람이 누군지 알아? 

  바로 자기 촉이 좋다고 자랑하는 인간이야

 그런 인간은 아주 강한 자기 틀을 가지고 있거든 절대 깨지지 않지

 세상 모두를 그 틀로만 보는 사람이야. 그리고 그게 전부라고 믿고.."

 

내가 보는 것 들은 것 기억하는 것 그건 단지 내게 전부 일 분이다

그리고 나는 우주에서 내려다본다면 눈에 띄이지도 않을 작은 미물이다,

가끔 살면서 그걸 잊을 때가 있다,

그때는 나에게도 타인에게도 위험하다,

 

늦게라도 토니의 틀이 깨어져서 그리고 많이 돌아봐서 다행이다.

토니의 삶은 절대 찌질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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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다 보면 순간 반짝이는 때가 있다,

사실 그 순간에는 이것이 반짝임인지 무엇인지 모른다.

나중에 시간이 흐르고 돌아보면 그 순간이 반짝이는 순간이라는 걸 알게 되기도 하고 영영 모르고 지나가기도 한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순간의 반짝임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 이야기는 그 삶의 한순간 반짝임을 겪은 사람들이 그 경험을 이야기한다,

 

지구반대편 너무 복잡해서 한 번 들어서는 도저히 발음할 수 있을 것같지 않은 마을에서 단체관광객이  반정부 게릴라의 습격을 받아 납치가 되었다, 모든 작전이 끝나고 결국 납치범도 인질도 모두 죽음으로 마무리되는데 이후 그때 납치된 인질들이무언가를 낭독한 것이 발견된다,

인질로 잡혀 앞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언제 죽음이 닥칠지 모르는 상황에서 그들은 자기가 경험한 반짝이는 순간에 대해 글로 적어 발표를 한다,

사실 극적인 사건이 없었다면 그들 중 몇이나 자기의 삶을 돌아보고 반짝이는 순간에 대해 생각을 했을까? 어쩌면 내일이라도 죽을 수 있다는 절박함이 그리고 어떤 막연함이 삶을 돌아보게 하고 삶속에서 잊고 있던 한 순간을 기억하게 하고 그 순간이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 보니 반짝하고 빛나던 순간이라는 걸 알았거나 삶의 어떤 모퉁이였음을 알게 된다,

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특별한 것도 극적인 것도 아니지만 그 본인에게는 그 일 이전과 이후가 달라지는 어떤 모퉁이였음을 알게 된다,

 

주인공들은 모두 외로운 사람들이다,

혼자 철공소를 보며  여러가지 상상을 하는 소녀

불량 비스켓을 가져와 괴팍한 노인네와 함께 시간을 갖는 처녀

우연히 여러가지 독특한 모임에 참여하게 되는 출판교열자

등교길에 만난 조잡한 인형을 만들어 파는 노인과 공감하게 되는 소년

어느날 이웃집 딸과 함께 낯선 음식 콩소메를 함께만드는 경험을  혼자만 간직하는 소년

지하철에서 우연히 만난 청년을 따라가 창던지기를 관람하고 스스로를 들여다보던 여자

돌아가신 할머니를 닮았다는 말을 많이 듣는 여자

아르바이트가 끝나는 날 단골에게 받은 꽃다발을 들고 돌아가는 청년

그리고 어린 시절 만난 일본인과의 경험을 기억하는 병사

그저 반복되는 일상을 살아가는 주인공들에게 한 순간 반짝하는 순간이 왔다,

그 순간은 엄청나게 드라마틱하지도 않고 대단한 반전을 가져다 주는 것은 아니다,

몇몇은 그 순간에는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조차 알지 못한다,

그러나 삶을 되돌아보았을 때 찬찬히 자기의 속을 들여다 보며 되집어 보면 보이는 것들이 있다,

그때 나는 어떤 강을 건넜구나

이제 다시는 그 이전으로 돌아기진 않을 것이고 그로 인해 미세하게라마 나는 달라렸음을 알게 되는 순간이다,

그건 누군가에게 위로를 받은 순간이기도 하고 누군가를 위로한 순간이기도 하다,

상대가 알지 못하지만 혼자 위안받고 자기를 돌아보기도 한다,

 

어쩌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함이 그런 삶의 지점을 기억나게 했을 수도 있다,

그저 어제같은 오늘을 하루하루 살아가는 중이라면 내가 모퉁이를 언제 돌았는지 언제 반짝하는 빛이 있었는지조차 되돌아 볼 일이 없을지도 모른다.

나 역시 그냥 그때가 좋았엇지 하는 건 있어도 그때 그 반짝거림을 찾은 적은 없다,

몹시도 외롭고 서러워도 그래도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드는 것 살아간다는 게 괜찮은 일이라는 생각을 갖게 하는 그 순간을 찾아보고 싶다,

이만하면 괜찮지 않을까 스스로  위안하고 토닥거리는 순간이 반짝이는 순간이기도 할것이고

이제 뭔가 강을 건너버렸다는 느낌, 방금 전의 나와는 다른 내가 되어버린, 훌쩍 자라버린 낯선 나를 느낄때가 그때 이기도 할것이다,

 

 

개인적으로 메아리 비스켓이랑 창을 던지는 남자를 바라보던 여자 이야기가 좋았다,

비스켓 이야기는 나와 전혀 다른 누군가와 소통하고 공감해나가는 이야기여서 좋았고

창 던지는 남자 이야기는 그냥 아무것도 아닌 어느 날의 하루가 나에게 좋은 전환점이 될 수 있다는 조금 다른 시각이 좋았다,

화려하고 극적이지 않아도 조금씩 내 속에서 찰랑거리는 물결을 느끼는 것

오롯이 나만 느끼는 것도 괜찮다고 말해준다,

 

작가 오가와 요코는 사람의 마음을 참 세심하게 만져준다

<박사가 사랑하는 수식>에서도 그랬듯이 자분자분 사람을 관찰하고 따뜻하게 품어주는 느낌이랄까.. 별 것 아닌것에도  눈 맞추고 고개를 끄덕여 줄 줄 아는 사람일거 같다,

 

별 것 아니지만 그래도 내가 오래 품고  들여다 보며 기운 낼 수 있는 무언가

그것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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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잘 우는 사람이 아니었다,

영화를 보거나 슬픈 장면을 봐도 가슴에서 욱하고 치어 오르는게 있지만 어느 순간 내가 나에게 말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낮고 단호한 목소리

"그만한 일로 우는 거 아닌거 같은데"

그러면 희안하게도 눈물은 쑥 들어가고 가슴을 막고 있던 것이 풀린다, 다만 치밀어 오른 무언가가 남긴 묵직한 통증과 목구멍까지 올라왔던 감정이 남겨놓은 목매임만 남았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가면서  내내 한 생각은 그거였다

"울음이 나오지 않으면 어떡하지?"

다행히 적재적소에서 울음이 나왔고 무사히 상을 치르고 돌아왔다,

나는 누군가의 앞에서 우는 일이 싫었다,

물론 한 번도 남앞에서 울지 않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대부분 울지 않는다

울음이 터져고 참아내는 힘이 더 강해서 언제나 누르는 쪽이 이긴다

함께 영화를 보고 옆사람은 눈물콧물을 쏟으며 휴지를 뽑아낼 때도 나는 그저 가슴이 먹먹해지는 게 다다,  슬프다, 마음 아프다, 그 인물이 공감되고 구구절절 이해된다, 그런데 눈물은 나오지 않는다,

무슨 병일까?

우는 것도 연습이 필요한 걸까

 

그런 내가 책을 읽고 펑펑 정말 소리내어 펑펑 운 적이 있다,

딱  두권의 책

 

 

 

 

 

 

 

 

 

 

 

 

 

 

 

나도 어쩌지 못할만큼 눈물이 나더니 꺼이꺼이 울어버렸다,

어쩌면 처음 읽었으니까 그럴거라고 시간이 한 참 지난 후 다시 읽었더니 여전히 나는 꺽꺽 울었다,

누군가 들을까 조바심내며 울음을 삼켜도  꺽꺽거렸다,

이후 두 권은 내게 금서가 되었다,

그리고 어제 저녁세번째 책이 찾아왔다

 

<기억의 빈자리>

진짜 별 이야기  아니고 심지어 해피엔딩임에도 꺽꺽대며 무언가가 올라왔다,

당황스러웠다, 이러려는게 아니었는데

다행히 12시가 훨씬 넘었고 대부분 잠들고 큰아이는 방에서 수학숙제를 하고 있을거고 혼자 거실에 있어서 얼른 입을 막고 참아냈다,

나이를 먹으면 눈물이 많아진다더니 정말 늙었나싶어서 그냥 억지로 잠을 청해버렸다

 

다시 곰곰히 생각 해본다,

이 세권의 책이 왜 나를 울렸을까?  그건 모르겠다,

나랑 비슷한 무언가가 있나?

나를 스치는 무언가가 있나?

모르겠다,

그렇다면 세권의 공통점은 있나?

금서가 된 세권을 나란히 놓고 본다,

생각해본다,

세권은 모두 그랬다,

주인공이 너무 너무 아프고 힘든데 한 번도 아프다고 하지 않았다, 그냥 꾸역꾸역 견뎌냈고 아무렇지 않은 척 괜찮은 척 하고 있었다

동구는 가족의 아픔을 온몸으로 받으면서도 어린아이인 척 아무것도 모른적 괜찮은 적 모두가 나에게 화풀이를 하고 스트레스를 풀어대는 걸 오히려 감사하게 생각했다,

나의 나종지닌 것의 화자는 아들의 죽음을 속으로 삼키고 한번이라도 제대로 애도하지 못했다, 민가협 활동으로 사회운동으로 더욱 씩씩해져야 할 이유들을 생각해내면서 내 개인적 아픔을 묻었다,

제이미 역시 괜찮은 척 살고 있다, 말을 건네고 위로 받을 대상도 없고 그래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며 혼자 그 기억을 지우고 싶어할 뿐이었다,

셋다 혼자 짊어지고 끙끙대면서도 자기가  왜 아픈지 왜 힘든지 모르는 그저 얼굴은 웃고 있는 삐에로 같은 인물이었다,

아... 난 그저 견디는 인물들이 아팠구나

 

나는 울지 않는 아이였다,

어린 시절 잠시 스케이트를 배운 적이 있는데 그 때 코치가 무슨 이유인지 (어쩌면 맹장염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입원을 했고 엄마와 언니와 친구와 친구 엄마와 병문안을 간 전이 있었다,

초등학교 1학년때였던 거 같고 병원까지는 갔는데 나 혼자 병실을 들어가지 못했다,

무어라 무어라 고집을 피우며 나는 안 들어가겠다고 했던 기억이 난다,

왜 그랬는지 기억나진 않는다,

나 혼자도 아니었고 함께 우우 들어갔다가 잠시 얼굴 보고 나오면 그만인 자리였고 다들  아는 사람들이엇는데 나는 병실이니 문병이니 하는 것이 두려웠던 거 같다.

결국 나머지만 들어갔다 나왔고 나는 밖에서 기다렸다,

오래 기다리진 않았다. 뭐 취미로 배우는 스케이트 강사랑 무슨 말이 많이 있겠는가

굳이 갈 필요도 없던거 같지만 그땐 정이 더 있던 때가 그랬나 싶기도 하고

그때 나오면서 엄마고 나더라 독하다고 독하게 여기까지 와서 안들어 가냐고 했었고

나는 이유없이 억울하고 아니라는 생각을 했지만 아무말도 하지 않고 그저 가만히 있었다,

말대답도 없으니 더 지독하다고 했던 것도 같고

뭐 그런 오래된 기억이 있었다,

 

이후 아버지가 입원을 오래하셨음에도 나는 자주 가지 않았다,

가야한다는 부담은 안고 있으면서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걱정되는 마음 불안한 마음이 뒤엉키면서 나 자신도 어쩌지 못해 누군가를 찾아가고 위로하고 살핀다는 것이 자신없었다. 어쩌면 이기적인 것일 수도 있고  도망치고 싶은 마음일 수도 있다,

나중에 그 일로 섭섭했다고 엄마가 뭐라고 하셔도 할 말이 없었고 면목도 없었지만 그땐 정말 힘들었다,  막상 병실에 들어가면 곰살맞게 말도 잘 하고 눈치껏 움직이며 도와드리지만 들어서기 전까지 내 마음이 지옥이고 전쟁이었음은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그리고 언제부터였을까?

어느 순간 우는 게 힘들었고 위로받는게 힘들었고 견디는게 편해졌다,

지금도 누군가가 칭찬하고 좋은 말을 하는 건 부끄럽고 어렵다,

오히려 충고나 비난은 쉽게 흘려 넘긴다, 그러든가 말든가... 뭐

그러나 칭찬이나 공감의 말은 왠지 간지럽다. 얼굴에 개미가 열을 지어 지나가는 느낌. 얼른 이자리를 빨리 뜨고 싶다는 안달감. 내 것이 아닌걸 받아든 난처함이 나를  채운다.

왜 난 칭찬에 약할까 왜 난 위로나  지지에 약할까

내가 가장 편한 상황은 아무도 아무말도 하지 않은 상황이다.

그저 알겠다고 고개만 한두번 끄덕이고 말없이 옆에 앉아주는 사람이 가장 편하고 위안되는 사람이다. 그러다보니 나 역시 누군가 아파하고 힘들어할 때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다.

그냥 얖에서 등만 쓸어주는 것이 전부다

내가 보여주는 행동은 단순해서 때떄로 무심하다고 오해받기도 하지만 내 속은 정신없이 휘몰아친다는 건 아무도 모른다.

어떤 말을 해야할까? 그냥 침묵하고 있어도 괜찮을까?

옆에 있는게 거추장스럽진 않을까? 그렇다고 혼자 두면 또 무심하다고 하지 않을까?

나는 내내 불편하고 불안하면서도 곁을 떠날 수도 없다

 

 

 

 

 

 

 

 

 

 

 

 

 

 

나와 닮은 아이를 찾았다. 모모

로자 아줌마를  내버려 둘 수도 없고 그렇다고 옆에 있다고 해도 뭔가 해줄 수도 없는 모모는 거리를 서성인다. 누군가를 만나고  이야기하고 관심을 돌리고 싶지만 마음 한구석에 늘 자리하고 있는 로자 아줌마를 떼어 낼 수 없다.

자기 앞에 놓인 생을 살아내야하는 이유가 로자 아줌마이기도 했을 것이다.

울지 않는 모모

누군가에게 아프다고 말해 본 적이 없는 모모,

그래서 감정을 나누는 것이 서툰 모모 그래서 늘 외로웠지만 외롭다는 감정조차 알지 못했던 모모가 마음에 들어왔다.

누군가에게 관심을 받는 일은 달걀을 훔치고 따귀를 맞는 일이고 권총으로 은행을 털어서 주목을 받는것 이외를 생각할 수 없는 아이

그냥 아무도 몰라도 상관없다고 여기지만 그 속에서는 누군가 나를 바라보고 손을 잡아주고 괜찮다고 그동안 애썼다고 등을 쓸어줄 누군가가 필요했던 아이였다,

누구앞에서도 울지 않고 누구에게 위로받는 것이 어색한 내가 거기 있었다.

나는 모모처럼 창녀의 버려진 자식도 아니었고 배고픔과 무관심에 익숙한 아이도 아니었는데

나는 늘 외롭고 쓸쓸하고 아득했다.

아이에게도 그런 감정이 스며들 수 있는 걸까?

지금 돌아보면 조숙했던 건지 영악했던건지 아니면 그저 어른 흉내를 내고 싶은 허당이었는지모르겠지만 늘 쓸쓸하고 아득한 감정이 있었다는 기억은 있다,

뭐가 힘드냐고 누군가가 물어본다면 무어라고 꼭 집어 말 할 수는 없는데  딱히 힘든 건 아닌데 아득하고 막막한 기분이었다,

그냥 앞이 뿌연거 같기도 하고 누구에게도 기댈 수 없다는 기분도 있고 또 누구에게도 기대서는 안된다는  강박도 있었던 거같다.

울어서도 안되고 힘들다고 해서도 안된다는 것이 늘 가득했다.

누가 시킨것도 아니고 그래야 한다고 말해준것도 아니지만 그랬다,

모모도 누가 시킨건 아니다. 상황이 그랬다고 할 수 있을거고 제이미도 누군가에게 들어서 설득을 당했던 것도 아니다. 소설속의 어떤 인물도 그냥 알게 된 것이다,

이제 징징거려서도 안되고 누군가에게 내 연한 속살을 보여서는 안된다는 것

그건 타인에게 나온 소리가 아니라 내 안속에서 나온 목소리였고  우리는 그 소리에 길들여졌고익숙해졌다,

누군가가 다가오는 것이 어색했고 마음과는 다르게 냉정하기도 하고 매몰차기도 했을 모습에 스스로 익숙해지면서 많이 외로웠다.

나는 스스로 내 속에 깊은 우물을 지니고 있었다,

그 깊은 우물속에 돌을 던지면 절대 풍덩이는 소리는 나지 않는다, 끝을 알 수 없는 깊이다

그 속에 나는 모든 걸 넣어두었던 모양이다,

울고 싶은 마음 누군가에게 매달리고 인정받고 싶은 마음 화가나고 터져버리고 싶은 마음

날뛰며 기쁨을 마구 뿌리고 싶은 마음 사랑한다고 설레임을 전하고 싶은 마음마저 나는 모두 우물속에 넣어두였다,

나의 모든 마음은 우물속에 있고 나는 서늘하고 건조하게 서 있다.

내 감정은 깊은 우물속에 있어 그 구체적인 모습은 보이질 않으니 나는 늘 외롭고 서늘하고 먹먹했던 것일까

 

그렇게 우물속에 봉인되었던 감정이 책과 함께 올라온다,

그 감정의 이름을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솔직하게 마주해야할 것이다.

자꾸 따지고 분석해서 지치지 말고 그냥 가만히 들여다 봐야 할거같다

 

책을 읽는 좋은 이유중 또 하나가 나를 알아간다는 것도 있다는 걸 세삼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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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앞의 생 (특별판)
에밀 아자르 지음, 용경식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5월
평점 :
품절


아무도 기억하지 않은 사람들이 모여사는 동네였다.

아랍인 아프리카인 유태인등 어느 한쪽도 프랑스 부모를 가지지 않은 사람들이 모여산다.

창녀와 그녀들의 아이들 이주민과 가난한 노동자들이 서로 어깨를 부딪치며 살고 있다

그 동네 한 구석 엘리베이터도 없는 건물 7층에 로자 아줌마와 모모가 살고 있었다,

유태인 아줌마와 아랍인 소년은 가족이다.

아니 남남이다. 그러나 가족이다.

 

내가 그렇게 그의 이름을 부르고 싶은 것은 그를 사랑하고 그의 이름을 아는 사람이 아직 있다는 것과 그에게 그런 이름이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주기 위해서이다,

 

그들이 서로 어깨를 부비고 서로 욕을 하고 미워하면서도 함께 살고 있는 것은 그렇게 자기를 바라봐주고 이름을 불러주고 손을 잡아주는 그 사람의 존재때문이다. 그가 있어서 내가 있다

그들은 그렇게 아무렇지 않은 척 서로에게 기대어 살아간다,

어떤 즐거움도 희망도 남아 있지 않은 삶을 살아간다,

달걀을 훔쳐서 따귀를 맞는 행위로 존재를 증명받고 싶은 모모나 가장 아름다운 추억이 창녀노릇을 하며 호텔을 드나들고 남자에게 돈을 모조리 털린 일로 기억하는 로자아줌마의 삶이 단순하지않다는 건 쉽게 알 수 있다.

당신은 아마 도데체 왜 그런 삶을 살아가는거냐고 부끄럽지 않으냐고 묻고 싶겠지만

적어도 자기 앞에 놓인 삶을 묵묵히 살아내는 사람들에게는 부끄러움이 있을 이유가 없다,

아무 보잘 것없는 사람들끼리 사랑해야하고 살아내야하는 삶

그것으로 가치있다고 믿으려는 사람들에게 더 이상 묻고 또 묻지는 말아야 한다,

 

순간 나는 울기 시작했다. 나 역시 아무일도 없으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공공연하게 그런 말을 듣기는 처음이었다.    p 34

 

아줌마 혼자 배를 곪아가며 빠듯하게 지낸다해도 하루 십오프랑을 필요했다. 그녀에게 덜 먹어려면 살을 빼는 수 밖에 없다고 아주 솔직하게 말했던 기억이 난다. 그렇지만 세상에 혼자 뿐인 노친네에게 그건 너무 가혹한 일이었다. 아줌마에겐 아무도 없는 만큼 자기 살이라도 붘어 있어야 했다. 주변에 아무도 사랑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때 사람들은 뚱보가 된다.

 

아줌마도 뚱뚱한 몸매와 하루에도 여러번 터져나오는 욕지거리로 자기의 존재를 드러낸다. 그리고 그런 자기를 누군가 봐주고 사랑해주길  바란다,

모모역시 그렇다  아닌 척해도 사랑받고 관심받고 싶으나 방법을 알지 못할 뿐이다,

관심을 받은 경험이 꾸중이나 혼난 기억밖에 없는 아이는 매질이나 욕지꺼리조차 관심으로 생각한다. 암사자를 상상하고 땨귀를 기다리는 일들은 모모가 간절하게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잘 보여준다.

 

내가 무서울 때 숨는 곳이야

뭐가 무서운데요?

무서워하는데에 꼭 이유가 있어야 하는 건 아니란다.

나는 그 말을 결코 잊은 적이 없다. 왜냐하면  내가 지금까지 들어 본 말 중에서 가장 진실된 말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두렵고 무섭다. 가난이 두렵고  질병이 두렵고 잊혀지는 것이 두렵다.

아무도 나를 알지 못한다는 것이 두렵고 곧 죽는다는 것이 두렵고 앞으로 살아가야한다는 것도  두렵다,.

두려움에 떠는 로자 아줌마를 모모는 끝까지 지켜준다,

지하 은신처에서 로자아줌마에게 향수를 뿌리고 화장을 시켜주며 지켜낸다, 냄새로 사람들이 참지못하도 찾아낼때까지  지켜준다,

미운정이 쌓이고 그리움이 쌓이고 사랑이 된다.

그 사랑은 허술하지만 강하다 살아가는 힘이기도 하다.

 

모모는 성장소설이기도 하다. 모모의 성장이 아닌 읽는 이의 성장소설이다,

어느 한 시절이 지날때는 모른다, 그러나 한 참 지내 그 시절을 돌이켜 보면  그 일로 인해 나는 다시 그 이전으로 갈 수 없음을 아는 순간 내가 성장했음을 알게 된다. 나는 다시 예전으로 갈 수 없고 그 순간이 이제 아프지도 않고 그리워질 때 우리는 나이를 먹었다는 걸 알게 된다. 더 이상 천진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자유를 가지지 못하고 삶의 우울질을 앓게 되고 알게 되고  세상의 모든 문제에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되면 우리는 어른이 된다.

모모도 그렇게  14살에 어른이 되었다,

모모를 읽으며 꾸역꾸역 살아내야하는 아이의 삶을 읽으며 나도 조금 어른이 되었다,

원치 않는 삶이지만 살아내야 하지 않겠냐고 나보다 더 어른스러운 표정을 한 모모가 나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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