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만약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다면 언제로 돌아가고 싶은가요?

 

언제나 이 물음앞에는 여러가지 생각들이 휙휙 지나간다, 아니 생각이 아니라 여러가지 계산들

어떤 지점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가장 유리할까?

아이가 생기기 전? 대학시절? 결혼전?  아니면 고등학교 때로 가서 다시 빡세게 공부를 해봐?

어디로 가야 내 인생이 가장 아름답고 풍부할지 머리를 굴리지만

어떤지점도 만족스럽지 않고 어떤 지점도 포기할 수 없다,

아예 다시 태어나는건?

그렇게 질문앞에서 망설이는 동안 그 질문은 스르르 사라진다,

 

나이를 먹어서도 여전히 갈팡질팡이다, 도데체 어느 지점으로 돌아갈까?

가능하지도 않은 물음앞에서 진지하게 오래 고민한다

다만 변한건 어느 지점으로도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것

시간을 되돌린다 한들 지금의 나와 다를까?

지금의 내 모습이 그렇게 자랑스럽지도  뿌듯하지도 않지만 부끄럽거나 후회스럽지 않다

아니 후회홰도 소용없다는 마음이 강해서일거다,

되돌린들 나는 또 같은 지점에서 같은 선택을 할 수도 있고 같은 시간에 같은 실수를 하고 엉뚱한 일을 저지르거나 우물쭈물하다고 놓칠것이다,

어쩌면 그 지점이 미묘하게 어긋나거나 선택에 다름이 있을 지 모르겠으나 나는 역시 지금의 나의 삶과 많이 다르지 않은 삶을 살게 될것이다,'그러니 굳이 되돌아 갈 이유가 없다,

 

단편속의 인물들은 지금의 나에게 또다른 삶이 있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고민하지만

결국의 지금의 삶을 받아들인다,

남들 눈에는 초라하고 평범하고 별것 아니지만 그렇게 평범하게 살아내는 일도 만만찮은 일이라는 걸  안다, 다른 내 모습이 있다거나 다른 선책을 할 수도 있다는 것

어쩌면 지금까지 나도 그런 기대로 살아왔을 것이고 지금 내 모습도 그런 선택과 기대의 결과일 뿐이다,

 

비슷비슷하고 한 번쯤 스치며 혹은 진지하게 생각해 좠을 지금 여기와는 다른 어떤 삶에 대한 고민이 각각의 단편에 담겨있다,

스윽 보면 닮아보여서 그게 그거 같은 이야기지만

오래 들여다 보면 제각각의 이야기가 숨어있고  결이 다르다,

 

 

#  2

 

마지막 단편 "어딘가 있을 너에게"

별거 아닌 단편에 눈물이 났다,

사랑하는 누군가를 한순간에 잃어버리고 남은 시간 동안 그 때일을 복기하는 사람

그때 내가 아이를 잡지 않았더라면

주먹밥을 만들어 주지 않았더라면

그 앞 차를 탈 수만 있었더라면

 

그때 내가 세탁기를 배달받지 않았더라면

운반해주시는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더라면

창문을 열어두지 않았더라면....

 

그러나 이미 일은 벌어졌고 사랑하는 대상은 없다,

그 순간의 내 선택이 내 행동이  어쩌면 나의 배려가 그런 사건을 만들어 낸건 아니라고 이성은 나에게 끊임없이 말해주지만 나도 알지만 그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 않냐고.... 내가 조금만 더 생각했더라면 조금만 더 배려했더라면... 자꾸 모든 원인이 나에게 돌아온다,

 

분명 이 여자는 키치를 찾으면 자기 일처럼 기뻐해 주겠지, 그리고 키치를 찾지 못하거나 더 슬픈 현실이 펼쳐지면 자신의 일처럼 울어주겠지, 어느 쪽이든 자신의 슬픔과 비교하는 일 없이 그렇게 해주겠지 그리고 나도 이 여가가 슬픔을 떠올릴 때마다 줄곧 슬퍼하겟지 아마도.

 

슬픔이나 후회는 단 1 밀리그램도 줄어들지 않지만 크기의 차이가 아닌 무게의 차이도 아닌 그저 그것을 짊어졌다는 것 하나만으로 이렇게 잘 알지 못하는 사람과 공명한다,. 그것이 이렇게나 마음을 따뜻하게 해준다, 니와코는 이제야  그것을 깨닫는다,

 

아들을 잃은 요다와 고양이를 잃은 니와코

누구의 슬픔의 무게가 더 큰지는  중요하지 않고 서로 공감하고 공명하게 함께 울어줄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중요하다,

뫁으로 올라올 일만 남은 낡고 망가지 세월호 앞에서 우리는 다시  함께 공명하고 함께 울어주어야 할 시간이다,

그 때 내가 그렇게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마지막일 줄 알았다면 그런 표정 그런 말투는 하지 말아야 했느데 하고

끝임없이 내 속에서 자책을 찾아내는 사람들에게  그게 아니라고 아니라고 해주는 것보다

함께 울어주는 일 울음을 안아주는 일... 그게 더 위로가 된다고 말해준다,

 

 

무심하게 되돌릴 시간이 어떤 의미가 있나

이미 생은 지나버린걸... 하는 마음으로 단편을을 읽다가

마지막에,,, 그럼에도 간절하게 되돌리고 싶은 순간이 있는 법이라는 걸 깨달으면서

다시 쉽게 다 안다는 듯 말하지 말아야지  생각한다,

누군가의 간절한 시간은 언제나 존재한다,

 

#  3

 

미스터리물인줄 알았는데 의외로 담담한 단편들이다,

삶에서 내가 모르는 귀퉁이가 있다면 그것 역시 미스테리일 수 밖에...

내가 모르는 부분들 알지 못했던 부분들 그리고 덮어버릴 수 밖에 없는 부분이 존재하는 한

삶은 어떤 면에서 미스테리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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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세의 나이

나이보다 늙어보이는 깊은 주름을 가진 외모

그와 다르게 아직도 탄탄하게 살아있는 근육과  빈첩한 반사신경

그녀의 직업은 청부살인업자이고  그들끼리는 방역업자로 통한다,

쥐 바퀴벌레 등등 사람에게 해로운 해충이나 미물을 없애나가는 일을 한다는 방역업자가 그들의 일이다, 결국 사람에게 해가되는 건 그런 미물만이 아니다, 오히려 사람에게 가장 해롭고 가장 두려운 대상은 사람이다,

사람을 위해 다른것이 아닌 사람을 없애는 일을 하는 것

이 소설의 주인공은 바로 그런 일을 하는 나이든  조각이다

'조각'이라는 명칭도  주인공의 본명은 아니다,

어느 하나 빈틈 없이 일을 완벽하게 깔끔하게 해치운다고 붙은 별명

그 세계가 본명을  드러내지 않는 세계이니만큼 주인공도 그렇게 하나의 가면속에서 삶을  이어간다

이제 65세 세속의 어떤 일을 하건 은퇴할 나이가 지났다,

그러나 여전히 현역으로 뛰는 그 조각이 어는 순간 자신의 한쪽이 무너지는 경험을 한다,

어떤 감정도 드러내지 않고 살아온 삶이었다,

감정이 드러나는 순간, 무엇엔가 욕심을 내고  지켜야할 무언가를 가지는 순간 이 일을 해낼 수 없다, 연민이 남고 미련이 남아있다면 주저할 수 밖에 없고 그 순간의 주저앞에 목숨이 왔다갔다 할 수 있는 일이다, 모든 것을 쳐내고 건조하고 매마른  강팍한 줄기하나만 남겨놓은 겨울나무처럼 그렇게 살아온 시간들이었다,

한때 누군가의 등을 바라보고 누군가를 욕심낸적이 없던 것도 아니지만 그 마음이 되돌려주었던 피비린내나는  앙갚음에 살기위해 그리고 누군지모를 누군가를 위해 아무것도 가지지 않으려고 했다,

그런 조각이 어느 순간 방역과정에서 몸을 다치게 하고 강박사를 만나고 그의 무심하고 다정함에 조금씩 마음이 무너진다, 그건 어떤 연애감정이라기 보다  오랫동안 꽁꽁 묶어놓았던 저 심연아래 감정이 조금씩 균열을 일으키고  실금을 만들어가다가 어느  부지불식간에 그 틈으로 스며나온 물기처럼 올라온 감정이었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받아본 진심의 감정이나 무심한 다정함이 조금씩 그 균열을 넓히고 있었다,

그렇게 마음을 주는 대상이 생기는 것

그렇게 무언가 지켜보고 싶고 잘 살았으면 바라게 되는 대상이 생기는 것은 위험하다

조각에게도 위험하지만 그 대상에게도 위험하다,

 

그것이 나이듦이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오래된 외로움의 끝에 드러나는 지쳐버린 순간이 왔기 때문일까

알지 못한다,

조각이 65세가아니라고 해도 오랫동안 억누르고 살아왔던 누군가가 방심하던 순간 불쑥 내 바운더리를 침범해온 다정함에 무너지지 않았을까

이제 그만 긴장하고 살아도 되지 않나 하는 순간이 오지 않을까

 

 

사실 이 소설이 나왔던 시점에 읽었었다,

그때는 너무 길게 늘어지는 문장과 도데테 65세의 킬러라니.,

그리고 소설 말미에 그렇게 피비린내 풍기는 난투극을 겪고도 멀쩡하게 살아나는 모양새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쩌면 몇년되지 않은 과거지만 그때의 나는 젊었거나 아직도 억누를 수 있을 힘을 가지고 있었던 모양이다,

다시 읽게 되면서 조금 생각이 바뀌었다,

지루하고 길을 잃기 쉬운 그 긴 문장들도 어쩌면 그렇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상념들이 이어지는 노년의 평범하고 막막한 시간의 흐름같았다, 아직 조각의 나이는 한참 남았지만 어느 순간 생각이 아무런 연관없이 이어지는 경험을 나도 한다,

그 이어지고 이어지는 상념을 문장으로 풀어낸다면 이렇게 마칠듯 마치지 않은 만연체일 수 밖에 없지 않을까 싶다,

강하고 찔러도 피한방울 안나올듯 단단하게 여며진 조각에게서 얼핏 보여지는 소심하고 주저하는 모습들도 좋았다,

혹시 나의 어떤 행동이 말들이 어떻게 들리려나 순간 생각하고 지나가는 순간들

나도 모르게 손이 먼저 마음이 먼저가는 순간들이 좋았다,

대상을 처리해야하는 순간 페지 줍는 노인을 도와줄 수 밖에 없다거나

나갈 때마다 행여 혼자 남게될  반려견 무명을 위해 창을 잠그지 않은 행동들

군데군데 보이는 소소한 묘사가 좋았다,

 

한때 농염한 향기를 풍기고 한 입 깨물면 수밀한 과즙을 흘리며 싱싱하게 살아있던 과육이

잊혀지고 방치되어 구석에서 점점 물러지고 흘런내리고 색이 변해서 순간 시큼하고 들큰한 냄새를 풍기는 파과가 되어가는 것

그건 어쩔 수 없는 나이듦의 묘사이기도 하다,

한때 아름답지 않았던 노년이 어디 있으랴

어쩌면 그렇게 빛나는 순간을 빛나는 순간이라고 알지 못하고 그 시간 한가운데서도 그 시간을 기다리기만 하다가 서서히 익어가고 익어서 더이상 익을 수 없어 썩어가는 순간  아 그때 내가 아름다웠고나 하고  돌이키게 된다, 그 순간의 가운데서는 언제나 알지 못하는 법이다

그녀 조각의 가장 어름다웠던 순간은 언제였을까

그리고 나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은 언제일까?

어쩌면 삶이란게 발단 전개 절정 결말잉라는 드라마틱한 플롯을 가지고 있지 않을 것이다,

그저 미미하고 지루하게 꾸역꾸역 살아내거나 치열하게 돌아볼 틈도 없이 몰아치다가  어느 순간 순간 반짝하는 반딧불처럼 살기도 하는 것 그게 삶이 아닐까

이제 절정의 순간이야

이제 결말을 해야할 시간이지...

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

그저 몰아치다가 순간 무심해지다가 그저 살아내는 것같다가 순간 반짝했다가,... 또 다시 반짝할 수도 있는 것... 그게 삶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직선이 아니라 이리저리 구부러지고 유선을 그렸다가 다시 되올아갔다가 하는 제각각의 곡선을 가지는 것이 삶이아닐까

 

이제 조각의 나이로 나아가는 일만 남은 나의 삶은 이미 뭉큰해져버린 파과로 가는 길일까

아직도 팔팔한 파과가 될 수 있는   기회가 있을까?

다시 읽은 책은 또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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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요새는 그게 아닌거 같다.

내가 아는 내가 나의 전부는 아닐거라고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면 도데체 내가 알지 못하는 내 모습은 어떤 것인지 왜 그동안 궁금하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나라는 존재는 내가 알고 있는 나 남이 알고 있는 나 나만 일고 있는 나 나도 남도 알지 못하는 나로 나눌 수 있다고 조하리의 창에서 배웠다.

남이 아는 나는 주로 내가 무심코 하는 행동 말 습관같은 거였다, 몸에 익숙해서 나는 알지 못하는 내 모습이 남의 눈에는 쉽게 띄었다, 사소하게 잘 화를 내거나  대답하기 힘든 화제는 슬며시 도망가버리거나 하는 모습들이 나는 숨긴다고 그래서 없다고 믿고 싶었는데 그게 타인의 눈에는 기가막히게 잘 드러나는 모양이었다, 특히 아이들에게

나는 이러이러한 사람이야,, 하고 내가 정의내리는 나는 어쩌면 원래 나의 모습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모습이라는 생각을 했다, 누구나 롤모델이 있을 것이고 이러이렇게 되고 싶은 이상형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건 정확하게 내가 아니다, 다만 내가 원하고 내가 흉내를 내는 나의 모습이다 그것도 역시 나일까?

누군가가 넌 어떤 사람이냐고 물어올 때 내가 생각하고 답하는 내 모습은

지금  이순간 있는 그대로의 내가 아니라 내가 생각하고 바라고 간혹 그렇게 보이기도 하는 내 모습을 말하게 된다,

지금 있는 그대로의 나는 ... 사실 나도 잘 모르겠다, 그게 어떤 모습인지,,

나는 나를 바라볼 수 없다, 거울을 통해 보게 되지만 간혹 거울속의 내모습에 사진에 찍힌 내모습에 많이 놀랄 때가 있다, 나는 적어도 이 모습보다는 더 예쁘다고 믿었고 더 활기차다고 믿고 있었는데 내가 마주하는 나는 더 지치고 피로하고 늙어보이고 간혹 심술궅거나 약해보이기도 하다,

나는 나를 바라보지 않으면서 내가 생각하는 상상하는 나를 나 자신으로 생각했던 건가보다,

착각이 즐거운건 그래서구나 하고 꺠닫는다,

사람은 타인이나 다른 대상을 착각하는 것 보다 자신에 대해 하는 착각이 가장 크고 가장 심할 것이다, 나는 이러이러한 사람이고 이러이러한 것들 좋아하고 저러저러한 것들은 싫어하며,, 어쩌구 저쩌구하는 다양한.. 내가 내리는 니의 정의는 얼마나 맞을까?

 

어쩌면 나란 사람이 어리석어서 나만 그렇게 착각을 하고 사는 건지 모르겠다,

다른 이들은 야무지게 자기를 알고 자기를 표현할 수 있는데 나만 착가과 망상에서 나를 규정하고 살고 있는게 아닐까?

 

오래전부터 우리형제들을 잘 알았던 어머니의 지인이 얼마전 오랜만에 만나서 식사하고 이야기를 나누다가 서로의 자녀이야기를 나누었단다, 이제 자녀들도 장성해서 그 자녀의 자녀들이 대학을 가고 군대를 가는 나이가 되어버린 지금 그 분께서  내 안부를 물었단다,

어릴적  똑똑하고 야무졋었는데 지금 아무것도 안하고 집에만 있다는 건 너무 아깝지 않냐고...

헐.....

어릴적 똑똑하지 않은 계집아이가 있었을까 야무지지 않은 아이가 있었을까?

아마 그 분이 아들만 있어서  그렇게 기억하고 있었을지 모르겠다,

어릴 땐 아무래도 아들보다는 딸들이 그것도 남의 딸들이 야무져보이는 법이니까,,,,

엄마에게 그 이야기를 듣고 농담반 우울한 반으로 앞으로 그럴일 없겠지만 절대 그 아주머니는 만나지 말아야겠다고 했다, 만나는 순간 그 아줌마 환상이 깨질거야,,,ㅋㅋ

웃고 있지만 눈물이 난다,,,

그 아주머니 말대로라면 그때 그렇게 똘망똘망 했던 아이는 지금 어디갔을까?

내가 정말 궁금하다,

한편 내가 기억하는 나는 소심하고 내성적인 아이였는데 어딜 봐서 야무지다고 그 아주머니는 기억하고 있을까? 그냥 지나가는 인사라기엔 너무 콕 집어서 물어봤다고 엄마는 기가 막혀하며 전해줬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그 아주머니 말고 다른 누군가가 나를 자주보는 가족이나 누군가가 나를 계속 똑똑하다고 야무지다고 말해줬더라면 지금 나는 조금 다른 모습이었을까?

잘한다 잘한다 하면 정말 잘 할 수 있고 못났다 못났다고 하면 정말 못나지는 것처럼 나도 그렇게 잘한다고 야무지다고 하는 말들을 계속 들었다면 지금과 다를까?

그건 아닌거 같기도 ...

아버지가 가끔 내개 하신 말씀이 있다,

조금만 더 악바리같이 하면 될거같은데 왜 순간 먼저 포기하는지 모르겠다

넌 항상 그렇더라,, 조금 아니다 싶으면 안하는거...

하면 되는데...

그때 그말이 참 싫었다,

하면 다 되는 것도 아닌데... 왜 당신 혼자 수준을 높여서 자식에게 부담을 주나 하며 원망했고 무시했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하면 어쩌면 내가 남들 눈에는 참 아깝고 답답한 존재였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잘 하다고 조금 힘들거나 지친다 싶으면 언제나 변명을 생각했던 거 같다,

내가 못할 수 밖에 없는 이유 포기해야하는 어쩔 수 없는 이유들을 생각하며 그건 내것이 아니고내길이 아니라고 나를 가장 먼저 설득했다.

그래서 후회되는 점도 있지만 나는 내가 살아온 삶에 대해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조금 더 야무지고 적극적이고 아버지 말대로 악바리같았다면 달라졌을까?

나는 내가 가진 능력이나 인성에 비해 많은 인복이 있구나 하는 걸 에전에도 지금도 많이 감사하는 편이다, 먼저 연락하는 법이 없어도 늘 친구들이 알아서 챙겨주고 그래서 모임도 지속되고 있고 필요할 때 도움을 주는 이들이 늘 있었다, 나누어 주고 챙겨주는 사람이 늘 곁에 있었고 나는 그렇게 나누어 받고 도웅받는 일을 자존심상한다거나 동정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주니까 고맙고 설령 이게 내개 꼭 필요한게 아니더라도 그저 상대의 지나친 오지랍이더라도 일단은 감사하다고 하고 받았다, 사실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챙겨준다는 일은 참 많은 고민을 해야하는 일이다, 이게 동정이 될까 오지랍이 될까 어쩌면 저 사람은 이게 필요없는게 아닐까 나만의 착각이면 어쩌나 하는 오만가지 고민만 하다가 나는 누구에게도 도움을 준 적이 없었다, 마음은 가득한데 손을 내미는 방법을 잘 몰랐다,

그래서 (핑계같지만) 누군가가 주는 도움이나  챙김을 받으며 그 사람이 이렇게 하기까지 얼마나 고민했을까,. 감사하게 생각하자,, 하고 마음 먹었다, (쓰고보니 참 아전인수격이라는 생각만 ..)

그렇게 운 좋게 좋은 사람들과 만나면서 굳이 내가 아둥바둥 할 필요없이 삶을 이어왔었나보다,

 

그 지인 아주머니가 기억하는 나는 어떤 아이였을까?

그 아이가 몹시 궁금했다,

착한 언니랑 비교당하고 독자인 남동생에게는 양보해야하는 그래서 심술궅고 자기가 챙기지 않으면 손해볼까봐 전전긍긍하는 아이가 타인의 눈에는 야무져 보일 수도 있었겠다,

타인이 타인을 잘 볼 때도 있지만 결국은 보이는 것만 볼 수 밖에 없기도 한 법이다,

 

 

 

 

 

 

 

 

 

 

 

 

 

 

 

 

 

 

 

 

 

 

 

 

 

 

 

 

 

저자도 다르고 출판사도 다른데 두 책이 횽제처럼 닮았다,

표지의 다양한 표정 이모티콘때문인거 같기도 하고...

나를 안다는 건 내 감정을 아는 일이다,

지금 내가 어떤 감정인지 그리고 그 감정이 어디서 왔는지 알아가는 것 그건 쉽지 않다,

그냥 화가나. 우울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날아갈거같이 좋아,,

감정카드에 씌여진 감정은 60개나 되지만 내가 알고 있는 감정은 한손가락으로도 끝이다,

그냥 희노애락으로 뭉뚱그릴 뿐 더 이상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느끼는 감정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귀 기울여보고 느껴보는 것도 연습이 필요하다,

왜 내가 그런 감정을 느끼는지 그 감정은 어디에서 왔는지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보는 것이 나를 아는 시작이다,

 

(책에서 알았는데 감정이란 어떤 자극에 대한  정서적인 반응이란다,

기분은 감정과 비슷한데 그건 어떤 외부적인 자극이 없이 그냥 느껴지는  정서라면

감정이란 어떤 외부의 (혹은 내부의)자극으로부터 반응하는 정서인것이다,

그래서 감정은 꼭 어떤  자극이 있고 그 자극을 원인과의 관계를 알아 볼 필요가 있다)

 

사실 다 아는 이야이기도 하지만 때에 따라 그 단순하고 아는 이야기가  도움이 된다,

감정은 하나도 슬모없는 것이 없다는 것

어떤 감정도 지금은 중요하고 필요하다는 것

그리고 감정이나 뇌는 참 단순헤서 익숙한 것만 느끼려고 하고 익숙한 상황에만  있으려고 한다고 한다, 자꾸 나쁜 남자를 만나게 되는 것도 자꾸  아닌 줄 알면서도 하게 되는 건 운명이나 상황이 아니라 내 감정이 내 뇌가 그게 가장 익숙하다고 인지 하고 있어서 그쪽으로 끌리는 것이다,

내가 첫눈에 반한다는 건 운명이 아니라 그저 가장 익숙한 것일 뿐이다,

참 낭만도 없지만 그게 옳다,

 

어쩌면 나도 어떤 익숙함에 끌려 여태 살아왔던 거같다,

내게 익숙하지 않고 낯선 것들에 반응하는 경보에  예민하게 반응하면서

익숙한 것이 좋은 것이라고 믿었다,

책을 읽는다고 얼마나 바뀔까 싶다만..... 이란 생각 역시 익숙함에 만족하려는 나의 뇌 혹은 감정 작용이겠지만... 그래도 알고 있다면 자꾸 걸릴 것이고 어딘가 불편할 거고 조금은 바뀌러하지 않을까

 

내겐 조금 낯선 야무지고 똘망한 어린 아이를 다시 찾아 봐야겠다,

그 아이는 지금 어딘가에서 누군가 자기를 알아봐 주길 기다리지 않을까.. 생각하련다,

그 지인 아주머니가 나름 인텔리이시고 좋은 분이니까,, 뭐 틀린 식견은 아니리라 믿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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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냥한 폭력의 시대
정이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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꿩이 생각났다.

제 머리만 모래속에 숨겨넣고 모든 것이 되었다고 믿고 싶어하는 어리석고 순진한 꿩

이야기들이 그런 꿩을 연상시켰다,

나만 아니라고 믿으면 아닌게 될거라고 굳게 믿어버리는 사람들의 이야기

 

아버지의 옛애인 미스조의 가장 가까운 친구였던  희준씨의 이야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반복적인  나날을 보내는 희준씨에게 어느날 아버지의 옛애진인 미스조의 부고가 날아오고 미스조가 키우던 거북이를 유산으로 받게 된다,

우연히 SNS로 연락이 닿아 한달에 한번 톡을 하고 만나고 밥을 먹는 사이가 전부였던 희준씨와 미스조는 어느 샌가 사람들에게 가장 가까웠던 사이라고 인정된다, 몰랐다, 서로가 가장 가까운 사이인지.... 한달에 한 번 만나는 사이가 가장 가까운 사이라니...

그러나 돌이켜보면 그렇게 자기 이야기를 편하게 하고 들어주는 사이가 가까운 사이가 아니면 뭘까? 미스조의 과거의 사랑이야기를 들려주고 희준씨는 자기가 키우는 고양이 인형 샥샥을 고백하는데 이건 다른 누구에게는 말하지 못한 비밀이기도 하다,

미스조가 예전 끝을 알면서도 모른 척 나이든 애인과 관계를 계속해오면서 이제 끝이라는 걸 알아버린 순간처럼 희준도 매번 반복되는 무탈한 일상들이 어쩌면 그렇게 무탈한 것이 아니라 위험하고 불길하라 수 도 있다는 걸 알아버린다, 그게 옳은 것도 아니고 안심할 일도 아니라는 것.. 아니 알지만 알려고 하지 않은 사실들을 미스조의 죽음으로 그의 이야기들로 슬며시 알아가고 있다

 

마흔번째 생일 아침 나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들, 영원히 일어나지 않을 일들을 떠올리며 비로소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미스조와 거북이와 나-

 

수학여행에서 돌아온 딸이 쓰러지고 병원엘 갔더니 임신이라는 사실에 놀랄 새도 없이 24주만에 아기를 낳았다, 무탈하다고만 할 수 없는 나날을 살았고 그렇게 아이도 자랐는데 지금 이순간은 도무지 현실이 아니라고 소리치고 싶을만큼 청천벽력이다, 인큐베이터에 있는 아기는 보고 싶지 않고 출산하고 돌아누운 딸아이의 등짝이라고 후려치고 싶지만 그렇다고 시간을 되돌릴 수도 없는 일이고 일어나버린 일이 없어지지도 않는다,

그런 불행 와중에서도 다행이다 싶은 일들을 억지로 발견해내면서 이건 잘 지나갈거라고 잘 지나가야한다고 스스로 되내이면서 섬뜩한 결심을 한다,

함께 등장하는 상대방 남자아이의 엄마역시 깨어져버린 후라이팬 뚜껑때문에  화가 치솟는 경험을 하지만 어쩌면 살아가면서 이유도 알 수 없이 폭발해버리고 산산히 부서지는 것이 프라이팬 뚜껑이라면 참 다행한 삶일거라는 걸 알아버렸다, 비슷하지만 다른 뚜껑 미묘한 어긋남이 폭발로 이어진다는 진실을 알게 되지만 그런 깨달음은 현실에서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얼굴도 모르는 아들의 아기에 대해 책임지고 싶어하지 않은 건 여자아이의 엄마와 마찬가지고 어떻게 해야할지 알 수 없는 것도 마찬가지고  일단 모른 척 하면 없는 일일거라도 믿고 싶은 것도 쌍둥이처럼 닮았다, 그렇게 두 엄마는 공모자도 아니면서 함께 모른 척하는 섬뚝함을 보인다,

 

이 단편에서 가장 무서운건 그 제목일 것이다, 이런 글에 이런 제목을 붙이다니,,,

손바닥으로 가린 입술사이에서 무거운 장찬식도 웃음도 새 나오지 않았다. 그녀는 다시 길 위로 나섰다. .................. 운전대에 엎드려 울 수도 없었다, 하늘을 유난히도 새파랬다, 파란 빛깔의 돔형 지붕이 이 세계를 뚜껑처럼 덮고 있는 것 같았다. 거대한 뚜껑이었다

                                    -아무것도 아닌것-

 

세번째 이야기는 그래도 조금 낫다고 하면 말도 안될까?

함께 동거하는 커플이 있고 둘은 잘나지도 그렇다고 뚜렷하기 못나지도 않은 어정쩡하고  흔한 젊은이들이다, 오래 사귀다가 동거하지만 어쩌면 헤어질 수도 있다는 예감과  아슬아슬한 갈등을 격어내고 있는데 어느날  남자가 어떤 살인을 제안받는다, 이복형이 나타나고 돈 많은 아버지를 죽이고 그 유산을 받게 되면 나누자고... 그 문제로 둘은 헤어질 수도 있다는 마음에서 함께 마음을 함친다, 일단은... 그리고 내 일이 아니라고 여겼던 그 일에 여자도 함께 나서면서 둘은 더 끈끈해지고 더 서먹해진다,

공범은 오래갈 수 없다,

서로가 서로의 가장 약하고 위험한 부분을 알고 있는 이상 신뢰는 끝이다,

둘은 아이가 생기고 결혼을 하지만 그건 거기까지다,

아무렇지 않다고 별일 아니라고 애써 부인하지만 그 흔적은 죽을 때까지 그래고 상대를 바라보는 동안은 떨어지지 않고 질기게 달라붙을 것이다,

설령 그 일이 제대로 되었건 아니건...

왜 제목이 이런지 잘 모르겠지만 우리안의 천사가 우리삶을 더 꼬이게 하는 법이라는 생각을 문득한다, 내 속에 악마만 득시글거린다면 세상은 그렇게 살기 팍팍하지 않을 것이다,  애매하게 껴있는 내 속의 천사가 나를 혼란스럽고 갈팡질팡하게 만드는게 아닐까 생각한다.

 

내가 잠시 한 눈을 팔아도 세상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단죄가 또 유에되었다는 사실에 나는 안도하고 절망했다., 극적인 파국이 닥치면 속죄와 구원도 머지 않을 텐데  또다시 살아가기 위하여 나는 바다 쪽을 향해 무거운 발걸음을 뗐다

 

                                 -우리안의 천사-

 

 

 

네번째 이야기는 먹먹했다,

소녀가 자신의 별명을 되지로 받아들여야한다는 것 그리고 받아들인다는 것 그렇게 대상화되지 않은 새로운 학교가 낯설다는 전제가 먹먹하고 아팠다,

그렇게 조숙하고 어른이 되어버린 아이가 겪는 새로운 K에서의 이야기다,

그 곳에서 아이는 무심하고  이기적인 부모대신 새로운 친구를 사귄다,

메이라는 친구는 자기보다 더 말이 없고 짝이 없는 아이였는데 그래서 둘은 단짝이 되고 함께 점심을 먹고 함께 논다,

그 아이에게 내 모습을 보았을까

아이와 메이는 서로에게 소중하지만 어른들의 세계에서는 용납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그렇게 아이는 어른이 된다,

 

 

엣애인의 부고를 지나간 신문에서 발견을 해도 아무렇지도 않게 되어버린 50대 교사의 이야기 를 지나

 

이사에 대한 어떤 공포물처럼 떠도는 이야기를 잘 잡아낸 이야기도 지나

 

마지막 '안나'로 넘어가면 속물적이고 세속적인 우리 이야기가 나온다,

내가 힘들고 괴로울 때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 내가 이야기를 터놓을 수 있는 사람 그 사람의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어느 순간 가장 불편한 사람이 되고 없어도 그만인 사람이 된다,

누군가가 필요하지만 그 사람이 어느 적성 선 이상응로 들어왔다고 여겨지는 순간 불편하고 불안하다,

나는 아무 행동도 하지 않았지만 그가 내 바운더리에서 사라지는 것 그건 다행이다,

내가 아무짓도 하지 않았으므로 내 잘못은 아니다,

나는 무어라고말 한 적이 없다,

그저 어쩔 수 없이 헤어졌고 만날 수 없을 뿐이다,

그렇게 내 생활은 아무렇지 않게 계속될 수 있다,

욕하고 미워할 수 도 공감할 수도 애매한 목에 걸린 작은 가시처럼 불편하고 힘들다,

 

모든 등장인물은 나는 아니라고 나만은 아닐거라고 믿고 싶어한다,

별탈없는 일상을 지겨워하면서도 약간의 균열에는 심하게 동요한다,

무심하게 15분동안 한바퀴를 도는 관람차에 재미없어하면서도 쉽게 올라타지도 않는다. 올라타기엔  뭔가 두렵다,

삶이 그렇다, 무심하고 지루하지만 그렇게 계속되어지면서 무언가를 바라기만 하는 것으로 이어지길,,, 실제로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길 간절히 바란다,

어리석은 타조처럼 모래속에 머리만 쳐박으면 아무일도 없는 거라고 믿고 싶은 순간이  누구에게나 온다,

다행히도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치기도 하지만 한 번의 균열은 절대 그 이전으로 되도릴 수 없다,

나만 아니면 돼!!

각자도생의 시대

냉정하고 살벌한 현실이 나만 지나기진 않을 것이다,

균열이 생겨도 나혼자 삭히고 모른 척 넘어가야 하는 시대다

타인의 불안이나 떨림은 더 이상 관여할 수도 없고 관여하고 싶지않다.

외롭지만 그렇게 익숙해지면  가장 편한 삶의 방식이 된다,

 

별것 아니지만 섬뜩해지는 순간 그리고 돌아서면 잊버리느고 기억나지 않은 순간들의 연속,.. 그것이 지금 이순간의 삶이 아닐까

쓸쓸하다.

 

너무 섬뜩해서  그리고 쓸쓸해서 별을 두개 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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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다니엘 블레이크

 

시스템은 점점 정교해진다,

자본주의는 굳이 인간의 노동이 많이 필요하지 않다,

어쩌면 자본주의는 인간의 노동위에서 성장하고 몸집을 불려왔지만

그 자본주의가 완성된 곳에서 인간은 없다.

 

완벽한 시스템속에서 인간의 목소리를 듣기 힘들다,

무언가 문제가 있거나 의문이 있어서 물어보고 싶어도 우리는 먼저 기계음을 들어야 한다,

전화 버튼을 누르고 나면 녹음된 기계음을 듣고 또 한참을 유료로 기다린다,

그리고 몇번의 질문에 목소리없이 대답하는 순간을 지나야 사람을 만난다,

때로는 사람의 목소리를 듣지 않고 일을 처리해야할 경우도 있다,

어쩌면 누군가에게 가장 편리한 인테넷 그리고 넷망을 통해 정보처리가 되고 물물교환이나 매매가 이루어진다, 우리는 하루종일 누군가를 만나지 않고 모든 일을 처리할 수도 있다, 먹고 자고 소비하는 일을 사람을 만나지 않고도 가능한 세상이다,

 

주인공 다니엘 브레이크는 40년을 목수로 일한, 지금은 심장병으로 일을 할 수 있는 아마 60대 백인 남성이다, 그는 한번도 컴퓨터를 사용해본적이 없고 연필이 익숙하고 누군가와 얼굴을 마주보고 이야기하는 것을 할 수 있을 뿐이다, 마우스를 몇번 클릭하고 드래그를 해야 실업수당을  신청할 수 있고 의료수당의 문제에 대한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세상에서 다니엘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첨단의 기술로 편리하고 세련된 세상에는 사람이 없다,

I  나 라는 존재는 없다,

영화 첫 장면에서 화면없이 대사가 나온다,

의료수당을 위햔 면접에서 면접관의 질문과 다니엘의 답변이 나오는데 대부분의 질문은 예와 아니오로 이루어진다, 뭐든  다른 말이 첨언되면 에러가 된다, 보충설명이나 다른 구체적인 상황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그저 묻는대로 예 아니오 두가지뿐이다,

컴퓨터가   0 아니면 1 두가지만 있는 것과 다르지 않다,

세상은 그것을 발달이라고 하고 기술혁신이라고 하고 편리함이라고 한다,

 

그러나 다니엘은 아날로그 인간이다,

자기처지도 어려운데 더 어려운 싱글맘 케이티 가족을 돕는다,

집안 곳곳을 손봐주고 전기료를 내라고 돈을 주기도 하고 아이들을 인간대 인간으로  말을 걸고 귀를 기울인다,

케이티는 다이엘보다 더 처지가 딱하다,

돈이 없어 아이들에게만 식사를 주고 자기는 과일로 연명하고 식료품 배급소에서  허기를 견디지 못하고 통조림을 따서 손으로 허겁지겁 먹어버린다, 배가 고픈 사람들에게 음식을 제공하는 배급소에서 정작 케이티가 필요했던 것은  생리대였다,

그녀가 어렴게 뱉은 질문은   '혹시 생리대는 없나요?" 였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의식주만 필요한게 아니다,

의식주는 기본일 뿐이다,

사람답게 숨쉬고 살기위해서는 필요한게 또 더 있다, 풍족하게 살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저 인간답게 생존하기 위해서  또 무언가가 있어야 하는것이다,

언저리로 밀려난 싱글맘 케이티에게 생리대는 음식 이상의   절박한 무엇이다,

결국 그녀는 슈퍼에서 물건을 훔친 것을 들키고 급기야 매춘으로 나서게 된다,

젊고 아직은 아름다운 여자가 할 수 있는 가장 마지막 선택은 결국 자신을 놓아버리고 자신의 자존감을 무시하는 것이다,

 

시스템은 잘못이 없을 것이다,

입력되고 세팅되어진대로 일을 행할 뿐이다,

네 아니오의 대답만을 세팅했으니 그 이상의 말들은 과부하가 걸릴 수 밖에 없고

인간을  알지못하고 의뢰인 고객 사용자 만 알 수 밖에 없고

제각각의 개성이나  심성을  넣지 않아서 보험번호나 사회보장번호따위로  분류할 뿐이다,

결국 그 시스템은 편리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을 배제한다,

 

 

막다른 골목으로 몰린 엄마는 매춘을 결심하고 권리 하나 얻기위해 여기저기 시혜를 구걸하던 다니엘은 결국 자긴을 구직수당 대상자에서 이름을 빼라고 한다,

  :자존심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은 것이다"

그리고 한바탕 저항의 뭄부림을 치지만 결국 순응할 수 밖에 없다,

승소가 확실한 항고를 앞두고 다니엘은 어이없이 숨을 거둔다,

 

나는 의뢰인도 고객도 사용자도 아닙니다,

나는 게으름뱅이도 사기꾼도 도둑도  아닙니다,

나는 보험 번호 숫자도 화면 속 점도 아닙니다,

난 묵묵히 책임을 다해 떳떳하게 살았습니다,

난 굽실대지 않았고 이웃이 어려우면 그들을 도왔습니다,

자선을 구걸하거나 기대하지도 않았습니다,

나는, 다니엘 블레이크 개가 아니라 인간입니다,

이에 나는 내 권리를 요구합니다,

인간적 존중을 요구합니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한 사람의 시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감사합니다,

 

그가 항고할때 말하려고 준비했던 것이 그의 유언이 되어버렸다,

 

사람이 편하려고 개발된 시스템에서 정작 사람은 없었다,

함리적이고 신속한 과정이라는 것이 사람을 소외했다,

누군가를 도와주고 싶었고 자기 처지를 사실적으로 알리고 싶었을 뿐이다,

누군가에게 구걸하지 않았고 누군가의 것을 빼앗지도 훔치지도 않았고  어떤 일확천금을 꿈꾸지도 않았지만 다니엘 블레이크는 그렇게 가버렸다,

사람이니까 여기 사람이 있으니 사람의 말을 들어달라고 했을 뿐인데 아무도 듣지 않고 절차를 거치고 인터넷을 거치고 기다리고 맞추라고만 했다,

사람이 너무 흔해서일까

사람이 사람을 만나고 사람으로 대우받는 일이 정말 어렵다,

 

 

아직 삼성동 집 (사저라는 말도 쓰고 싶지 않다, 사저는 무슨..) 난방이 되지 않아서 들어갈 수가 없다고 한다, 아직 추운계절이라 난방이 필요하고 도배가 필요하고 인터넷망이 필요하단다,

그래서 일개 개인이 되어버린 인간이 일개 개인은 쉽게 들어갈 수도 가까이 갈 수 도 없는 청와대에서 빼대고 살았다 ( 경상도 울 할머니 말투인데 이렇게 딱 맞을 수가 없다)

인간적인 호의로 그정도는 봐주자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인간적인 호의 인간적인 도리, 정... 그래 좋다

그런데 누구는 인간적인 호의를 받아 마땅하고 누구는 인간적인 흐의따위는 불공정한 예외조항이 되니까 하면 안되는 일이 되나?

누구는 춘삼월 보일러가 안되서 집에 못들어가고

누구는  같은 봄날 차가운 바다에서 나오지도 못하는건 어쩔 수 없는 일이고

누군가는 길거리에서 내 목소리를 우리의 말을 들어달라고 그렇게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질러도  법에 어긋나고 원칙에 어긋나고 시스템에 맞지 않아서  들은 척도 하지 않나?

전세집을 옮길때도 칼같이 만기날을 맞춰야 하고 혹시나 하루 이틀 더 있어야하면 돈을 더 내야 하는 법이다,

돈내고 들어가는 호텔이나 여관방도 체크아웃 시간을 넘기면 추가요금이 붙는다,

인간적인 도리도 있겠지만 그래도 원칙이니까 지켜야 한다고 다들 동동거리는데

누구는 저 삐졌다고 온동네 티 다내면서 입 딱 다물고 엥돌아서 버티고 버티다  나간다,

누구는 사람이고 누구는 짐승인가

 

 

 

 

 

 

 

 

 

 

 

 

 

 

책을 읽고 어떻게 리뷰를 써야햐나  굳이 쓸 필요가 있나 생각했다,

나같이 마르크스는 이름만 알고 들은 풍월이 전부인 사람에게 마르크스의 여러가지 사상과 삶을 보면서 하나 내게 닿은 것은 사람이 우선이다,,, 라는 것이다,

산업혁명으로 노동과 자본으로 부가 축적되는 시기를 보면서 자본이 축적되면 될 수록 사람은 희미해진다, 자본이 자본을 낳는다, 그것은 선명한데 그 자본을 움직이고 생산을 하는 노동은 점점 희미해지고 가치가 보이지 않는다, 그 사회에서 사람이 만드는 노동 자본때문에 소외되는 노동을 먼저 보자고 하는게 마르크스라고 읽었다,

그게 맞는지 아닌지 아리송한 가운데 영화를 보았다,

 

다니엘은 아이의 방에 뽁뽁이를 발라주며 창으로 들어온 햇살이 모여 따뜻해질거라고 말해준다,

손으로 만든 물고기 모양의 모빌을 주면서 세상에서 가장 환한 바다속이라고 말해준다,

아이는 노인을 찾아가 이젠 우리가 돕게 해달라고 말한다,

아이가 노인을 안아준다,

그렇게 사람을 위로하는 건 사람일 뿐이다 사람의 체온이고 사람의 마음이다,

 

영화는 다니엘에 항고판정을 받지도 못하고 사망한다,

항고가 잘 되더라도 다니엘이 승리하는 건 아니다, 그저 의료수당을 받을 뿐이다,

그러나 그나마도 보지 못하고 다니엘은 사망한다,

어떤 작은 승리도 없이 그냥 그렇게 허망하게 영화는 끝이 난다,

결국 어떤 것도 작은 마무리도 없이 여전히 진행중이라고 감독은 말하고 싶었을까

 

탄핵이 되고 청와대가 비었다고 모든게 마무리가 된것이 아니다,

그는  여전히 처웃으면서 자기 잘못은 손톱만큼도 모른다는 얼굴이고

변화는 아직도 진행중이다,

어떻게 될지 나도 너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여전히 우리는 긴장해야하고 생각해야하고 말해야하고 행동해야할 읾이 계속될 뿐이다,

이젠 좀 쉬자는 마음을 지난 일요일밤 야간도주하듯 돌아와 쳐웃던 그 얼굴을 보고 화들짝 다잡게 되고 오늘 이 영화를 보면서 아직도 계속이구나,,,  생각한다,

아직은 화를 풀어야 할 시간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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