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다.

죽음을 경험하지 못해서 누군가의 경험을 들어 본 적도 없고 그래서 나의 죽음과 타인의 죽음을 비교한 적이 없었다.

죽음이후의 과정에 대한 무지가 죽음에 대해 허무맹랑하게 마주할 수 있었는지도...

죽음은 죽은 당사자보다 남은 사람의 문제라고 생각을 했다..

죽음 이후를 알지 못했고  내가 늘  보았던 것은 남겨진 사람들이었고 내가 경험한 것도 남겨진 사람으로서의 역할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실거라고는 생각을 못했다.

가끔 엄마와 통화할 때마다 아버지 기력이 많이 떨어진다는 말을 들었지만 노인들은 여름이면 기력이 떨어지는 거고 늘 걱정이 많은 엄마의 노파심이라고만 생각했다

올해를 넘기기 힘들 수도 있겠다는 엄마의 말도 전문가의 평가도 아닌데 하면서 넘겼다.

그러나 그렇게 무심했던 어느 여름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부고를 들은 건 한 여름 물놀이를 끝내고 사물함에서 꺼낸 핸드폰 문자를 통해서였다.

참 웃기는 상황이었다

아버지의 부고를 문자로 들었고 더구나 하루종일 물놀이를 하며 깔깔거리는 동안 아버지는 돌아가신 거였다.

그 몇주전 아버지가 전화를 하셨다

늘 엄마를 통해서 건네받은 수화기를 통해 어색하게 안부를 묻고 어쩔 수 없이 오가는 정중하지만 영혼없는 문답과 의례적인 걱정이 오가던 통화와 달리 그날은 아버지가 전화하셨다

딱히 대단한 내용이 있거나 죽음을 예감한 어른의  충고같은 건 아니었다.

그냥 아이들의 안부를 묻고 엄마에게 자주 전화하라고 전화를 기다린다고 얘기했을 뿐이었고

여느때랑 다르지 않게 나도 얼른 끊기만을 바라며 건성으로 대답했다.

이제 나이를 먹고 나도 한 가정을 이루었고 돌봐야할 아이가 있어 부모의 부재가 그렇게 크게 와닿지는 않을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다

그리고 무시하고 냉정한 성격탓에 장례식장에서 무덤덤해보일까 그걸 더 걱정했다

그러나 부재는 생각보다 어마어마하게 컸다.

우리나라 아버지들 누구나 그렇듯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보다 일터에서의 시간이 더 길고

가부장적인 경상도 가난한 집 장남으로 관심과 애정을 나누고 금전적 물질적으로 돌봐야 할 사람이 너무 많았던 아버지라 늘 가족은 뒷전이라는기억이 컸고 그래서 미웠고 그다지 정이 없다고 생각했다. 나이 들어 많이 작아진 모습이 마음이 아프기도 했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누구나 겪는 노화의 하나라고 생각했다.

아버지는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고 예감했을까

아니면 내가 느꼈듯이 어느 순간 다가와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 당해버렸을까

장례 과정은 애도의 과정이 아니었고 형식적인 관례였다

그리고 슬픔은 나중에 뒤늦게 몰아쳤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빈자리가 문득문득 느껴지고 그와 내가 생각보다 많이 닮았다는 것도 그래서 너무 뻔하게 속이 보여서 그렇게 미웠던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문득문득 하곤 한다.

나이 먹어 마주한 죽음도 쉽지않았다.

 

그래서 가끔 생각했다.

차라리 어린 시절 부모가 돌아가신다면 그게 덜 슬프지 않을까

그런 분들이 들으신다면 어이없고 화가 날만한 언급인지 모르겠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내색하지않지만 엄마가 돌아가시면 어쩌나 너무너무 두려워졌다

그렇다고 살갑지도 않은 딸이 갑자기 180도 바뀌는 드라마틱한 이변은 일어나지 않고 오히려 내 과거를 돌이켜보고 내 마음을 들여다 보면서 받았던 상처들 은연중 알게 모르게 일어났던 학대들이 기억나며 분노하기도 하고 원망하는 마음도 들었었다. 그러나 그 뿐이었다.

지금 와서 따져들기엔 이후 삶은 내가 책임져야 할 내 일이며 엄마는 이미 늙었고 그때는 그게 최선이었다는 걸 알아버렸고 받아들이지는 못하지만 이해하게 되는게 더 짜증이 나기도 했다.

그러면서 든 생각

차라리 아직 좋거나 싫거나 어떤 추억이 많이 쌓인 시간이 없는 상태가 누군가의 부재를 받아들이기에 더 쉽다고 생각했다

이미 누군가의 부재가 익숙해진다면 그리고 그렇게 성장했다면 어딘가 모르게 결핍을 느낄때도있지만 미운정 고운정이 들어서 누적되어 꾸덕꾸덕해진 기억들보다 낫지 않을까 이기적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내 아이가 점점 나이들고 성장하면서 내가 더 건강해야 하는 게 아닐까. 난 이미 죽어도 괜찮은 순간은 지난게 아닐까 하는 철없고 이기적인 생각을 하곤 했다

철없던 십대에 엄마랑 갈등할 때 미워하고 나만 생각할 때 그땐 엄마가 중요하진 않았다.

더 중요한 친구가 있고 장럐고민이 있고 연애가 있고 일이 있었다.

그러나 나이 먹고 엄마가 점점 자리를 크게 잡고 있었다

이젠 내 아이에게도 내자리가 좋든 나쁘든 클텐데 이제 내가 내 엄마에게 느끼듯 내 아이들도 나에 대해 그렇게 자리를 잡아버렸겠구나 . 아 때를 놓쳤구나 하는 이기심이 들었다.

 

그리고 친구의 암소식을 들었다.

건강해고 단단하고 우리 친구모임 누구보다 가정적이고 헌신적이고 명확하던 친구였다.

나이가 들다보니 허리가 아프고 다들 자궁에 물혹 하나씩은 가지고 있고 어깨가 아프고 그랬다.

그냥 그런 건 줄만 알았다.

연말에 허리가 아프다고 하며 만났을 때 생각보다 많이 수척해서 놀랐지만 얼마나 허리가 아프면 저렇게 걷는게 힘들까 걱정했지만 여전히 힘있고 자기 생각이 확실한 말투랑 누구든 신경쓰고 안부를 전하는 담담한 애정에 무심하게 느꼈다

그런데 그 증상들이 모두 암을 향하고있었다.

급하게 수술을 받고 이제 항암을 남겨두고 병문안을 아직 원치 않은 친구의 소식을 기다리며

이 책을 읽었다

 

책속에 뇌수술과정들 그리고  부작용들 그리고 허무한 결말들

모든 것이 남의 일이 아니고 두려웠다.

내 친구도 이제 인생에 힘든 일이 한모퉁이를 돌아서 당분간은 한숨을 돌릴 시기였다.

우리는 그 연말에 모여 도데체 모인 회비로 어디를 여행을 가야햐나 침을 튀며 이야기를 나눴었다 그런데...

삶은 모퉁이를 돌 때 마다 예측하지 못하는 무언가를 떨어뜨린다.

매일이 그날이그날인 것이 가장 저주스러웠던 젊은 날이 지나고  지금 그날이 그날이라는 것이 가장 축복받은 것인 나이가 되었다.

그래서였을까

작가의 투병생활과 삶을 마무리하는 2부보다 그가 의사로서 살아오며 경험한 환자들이나 질병 수술등을 묘사한 1부가 더 실감이 났다.

병에 걸리고 아프고 투병하고 죽을 수도 있다는 불안에 시달리는 건 우리에게 현실이었다.

죽음을 직면하고 그 이후 삶을 어떻게 정리해야하나 하는 문제는 아직 내 일이 아니었으니까

친구의 수술 결과를 기다리며 읽었던 책이 하필이면 이 책이라는 것

그리고 결국 주인공(저자)가 죽어버렸다는 것

무언가 자꾸 찜찜해졌다.

 

나는 철저히 타인이므로

저자는 30대에 일찍 죽음을 맞았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모든 면에서 행운의 사나이라는 생각을 했다.우리와 다른 교육과정을 통해 자기가 무엇을 원하는지 탐색하는 시간을 가졌고 이런 저런 공부와 고민 끝에 의학을 선택했고 그 길이 천직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는 것

게다가 의사로서 능력도 인정받아서 현재 힘든 레지던트시기가 끝나면 어디든 원하는 곳에 갈 수 있다는 앞날까지 보장을 받게 되어있었다.

게다가 사랑하는 가족들 한때 위기를 겪었지만 끈끈한 애정을 바탕으로 함께 하는 배우자

죽음을 앞두고 태어난 딸 그리고 본인이 원하는대로 연명치료를 거부하고 가족과 마지막 시간은 함께 보내는 것

너무 짧은 기간이지만 그 시간이 무척이나 충만했다는 생각을 해서 부러웠다.(난 속물이라..)

이렇게 자기 죽음을 미리 알고 준비한다는 게 고통일 수도 있지만 남은 시간을 최선을 다해 자기가 선택한 방향으로 끌고 갈 수 있다는 것이 부럽고 좋았다.

우리는 누군가 아파서 입원을 하고 죽을 수도 있음을 알게 되는 순간 어쩌면 환자 본인은 철저히배제되기도 한다. 나이가 너무 많아서 혹은 어려서 내 삶을 연명할지 깔끔하게 정리할지를 스스로 정할 수 없기도 하고 주위사람의 정과 노력을 어쩌지 못해서 그들이 원하는대로 이끌려 갈 수도 있다. 내가 내 삶을 정하겠다는 결정이 이기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이렇게는 못 보낸다.. 라는 말은 애정이고 사랑이지만 이기적인 내 만족일 수도 있

책을 읽는동안 마음이 사실 딴 곳에 가있어 집중을 하기 쉽지는 않았다

참 운이 좋구나

마지막을 이렇게 상세하게 기술하고 저리가 삶을 정리하고 돌아볼 수 있다는 게 때로 감동이기도 했지만  내가 공감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리고 괜히 책을 얼른 반납했다.

그러나 이상하게 자꾸자꾸 생각이 났다.

죽음을 앞두고 남은 가족을 생각하고 삶을 정리하는 것.

이런 상황에서 아이를 낳아야 하는 게 과연 옳은 결정인가 하는 것

의사로서 내 삶을 정리하는 것

모든일에 최선을 다하고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하는 마음

책 제목대로 숨결이 바람으로 날리는 그날까지.. 그 숨결은 따뜻했다

에필로그에서 그의 아내가 말했듯이 그의 죽음은 비극이지만 그는 비극이 아니었다.

 

가끔 생각한다.

지금 죽더라도.. 이 죽음이 비극이구나 허무하구나 라고 생각하지 않으려면

내가 지금 이 순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달렸구나

죽음은 누구에게나 오는 것

결국 내가 선택하고 행동하는 건 지금 내 삶일 뿐이다.

지금 이 순간을 즐기며 후회하지 않도록... 그리고 내 주위 사람들에게 좋은 기억을 많이 남겨주도록 하는 것.. 그게 중요하다.

 

언젠가 아침에 등교하던 아이에게 잔소리를 했고 좋은 표정을 보이지 않았던 그날

아이가 무심하게말했다.

이렇게 내가 등교하고 그 사이에 일이 생겨 엄마나 나 둘 중 하나가 죽는다면

지금 이렇게 싸우고 찌뿌린 얼굴이 우리의 마지막 기억이 될거야....

적어도 지금 이순간이 마지막이 되더라도 후회가 되지 않은 삶...

작가도 그걸 말하고 싶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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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뭐 먹지? - 권여선 음식 산문집
권여선 지음 / 한겨레출판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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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식사를 하고 읽었음에도 자꾸 침이 고이고 허기진 기분이었다.

먹방처럼 보고 느끼는 것과 다르게 글로 읽는 음식 이야기는 읽으며 상상하게 된다.

나의 상상으로 음식을 느낄때는 아는  맛이 더 나를 끌어당기는 법이다.

아.. 이거 나도 아는 건데 나도 먹어 본건데

그렇게 혀가 기억하고 내 몸이 기억하는 음식들을  작가 답게 특유의 무심하면서도 맛갈나게 표현해버리면 이건 너무 불공평하지 않는가?

 

나도 어릴 적엔 고기를 다양하게 먹어보질 않았다.

유달린 입이 짧은 건 아니었는데 아마도  엄마의 입맛이 아이들의 식문화에 많은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나이 먹고 집을 떠나고 사회생활을 하고 뭐든 먹는데서 빼는게 불리하다는 걸 알게 되고 입이 짧다는게 고급스럽기도 하지만 한편 까탈스럽다는 의미이기도 하다는 걸 알고.... 등등은 핑계이고

세상에는 내가 모르는 식재료도 많았고 음식도 많았다.

순대를 먹었고 간과 다른 내장도 먹게 되고  곱창이 얼마나 맛있는지도 알고 머리에서 꼬리까지 뭐든 먹을 수 있다는 응용력에 감탄하는 순간들도 있었다.

 

특히 책속의 여름 음식들은 무지하게 식욕을 자극한다.

나도 면을 좋아하는데

나도 고추장물이랑 깡장을 좋아하는데

여름엔 그렇게 알싸하게 매운 양념에 푸성귀를 함께 먹어줘야 하는데

여름에 뚝뚝 떨어지는 야채값은 정말 축복이라 애호박 오이 옥수수 고추 감자를 먹지 않고는 여름을 지났다고 할 수 없는데....

올 여름엔 꼭 독하게 매운 고추를 수경을 끼고서라도 총총 썰어서 꼭  고추장물이랑 장을 만들어 두고두고 먹어야지 혼자 결심한다.

작가와 다르게 나는 물냉면을 좋아하다가 비빔냉면으로 분야를 확장했다.

메밀이 많이 섞여 씹으면 뚝뚝 끊어지는 슴슴하고 무심한 물냉면 맛이 너무너무 좋았다.

아무 맛도 아니어서 오히려 존재감이 더 컸던 시원하고 무심한 물냉면

그러다 어느 순간 매운 양념과 회가 올라간 비빔냉면의 맛을 알게 되었는데 아마 그건 맵게 먹고 견뎌야 할 시간들을 알았을 무렵이 아닌가 싶었다.

더구나 매운 맛은 안주로도 그만이다.

속은 어떨지 몰라도 시원한 맥주나 막걸리에 매운면은 꽤나 어울리는 조합이었다.

 

이제는 나이 먹어 아줌마들이 된 친구들과 밥을 먹다 보면 늘 나오는 말이 이렇다

누가 해주는 음식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

누군가 해주는 음식을 먹을 때를 지나 누군가를 위해 밥을 해야하는 시기가 된 우리들은

어디서 어떻게 먹든 맛이 어떻든 누군가 나를 위해 (비록 돈을 받고 하는 행위일지라도) 음식을 차려내고 치워준다는데 감동하곤 한다.

평일 낮에 유명한 음식점에 아줌마들만 많다는 건 욕할 일이 아니다.

그렇게 누군가가 나를 위해 차려주는 맛있은 음식이라는 건 감동적이고 충분히 돈을 지불할 만한 가치있는 일이 된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오늘 뭐 먹지?" 와 '오늘 뭐 해먹지?'  달랑 한글자 있고 없고의 차이는 너무나 극명하다.

내가 먹을 음식을 요리하는 건 서툴더라도 즐겁다.

물론 누구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요리하는 것도 즐겁다 (즐거울 수 있다.)

그래도 전자는 오롯이 나에게 집중해서 내가 먹고 싶은 것 내가 좋아하는 것만 생각하면 되지만

후자는 나는 좋아하지 않아도 누군가가 좋아했던 것 잘 먹는 것 왠지 영양의 균형을 위해 준비해야할 거 같은 것 남에게 보여도 부끄럽지 않고 뭐라고 잔소리나 흉을 듣지 말아야 할것들 등등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며 내내 즐겁고 신났던 건 작가가 늘 자기가 좋아하는 음식을 자기를 위해 먹고 준비한다는 사실이다.

한편으로 내가 만약 혼자 사는 입장이라면 이렇게 부지런하게 계절별로 식재료를 준비하고 손질해서 냉동고에 저장하고 젓갈을 담고 생선을 말리고 찌고 굽고 할까 싶기도 하지만

간단하게 라면을 끓여먹고 있는 반찬을 쓸어담아 비벼서 참기름 떨어뜨리고 먹더라도 그것도 성찬이지 않을까 싶다.

 

각자의 혀에는 먹고 살아온 이력이 담겨 있다. 그래서 혀의 개성은 절대적이며 그 개성은 평균적으로 봉합되지 않는다. 그래서 함께 먹을 때는 누구나 무난하게 싫어하지 않은 음식이 선택되지만 그 음식의 맛조차 양념의 비율에 따라  식재료의 상태에 따라 기억과 경험으로 맛있다는 의미가 저마다 달라진다

 게다가 책 말미의 콩가루 집안의 콩가루 이야기는 정말 백미였다.

휴식과 충전 감사와 즐김의 시간이 필요해서 생긴 명절인데 그 참뜻을 모르고 지나간다.

식구들이 모여야 하고 누군가는 죽도록 주방에서 요리를 해야하고 누구는 먹기만 하면 되고 무얼 해야할지 어떻게 해야할지 궁리하고 준비하고 먹고 치우는 노동의 시간이 되어버린다.

오로지 명절의 참뜻은 소수의 콩가루들이 명맥을 이어나가고 있다는 말이 참 명쾌하다.

내가 먹고 싶은 것을 내가 준비해서 즐겁게 먹고 빈둥거릴 수 있는 시간이라니...

나도 진정한 콩가루가 되고 싶다.

 

 

정말이지 신나게 책장을 넘기고 침을 삼키고 요리책도 아닌데 뭘 해먹을지 메모하며 읽다보면 금방 한권이 뚝딱이다.

좀 더 써줘도 되는데

하필이면 그 중국집에서 작가를 알아볼게 뭐람

늘 하는 음식을 만드는 일이 의무가 되어 더 이상 신나지도 않고 왜 사람들은 하루에 세번이나 ? 먹고 살까? 알약 한개로 모든게 해결될 수는 없나 하는 생각을 하며 지냈는데

음식을 준비하고 먹는 일이 이렇게 맛깔나고 신날 수도 있구나를  새삼 느낀다.

사실 먹는 재미가 사는 재미의 절반일 수도 있는데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 기왕이면 좋은 마음으로 잘 차려서 먹으면 좋은데..

차려놓고 보면 소박하기 그지 없지만 준비과정은 더 할 수 없이 세심하고 뭉근한 음식 이야기를 보며 나도 오늘 소박한 밥상에 소주 한병을 올리고 싶다.

음식이야기지만 작가는 죽어도 이건 안주 이야기라고

모든 음식은 안주가 가능하다는 말... 격하게 공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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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결이 바람 될 때 - 서른여섯 젊은 의사의 마지막 순간
폴 칼라니티 지음, 이종인 옮김 / 흐름출판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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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처럼 단정하게 죽음을 준비하고 맞고싶다.
단지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삶을 살것인가 이것이 우선이며 죽음도 삶도 인간이 겪어내는 일이다.어떤순간에서도 내삶과 죽음을 내가 선택하고싶다.
작가의 삶과죽음의 기록에서 많은 생각이 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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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상에서 만나요
정세랑 지음 / 창비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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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소설집에 실린 단편들이 전하는 메시지를 관게맺음이라고 생각한다.

그걸 소통이라고해도 좋고 연결이라고 해도 좋고 연대라고 해도 상관없다.

그냥 소소해보이고 마냥 팔랑팔랑 가벼워보이는 소재와 문장들이 쌓이고 쌓여서 만들어 낸 이야기는 누군가  닿아있다는 것  누군가와 연결된다는 것이었다

 

<웨딩드레스44>는 웨딩드레스로 이어지는 여자들의 이야기다.

결혼을 꼭 해야할 것은 아니지만 누군가에게는 꼭 하고 싶은 일이 될 수도 있고 또 누군가에게는 그때 그러지 말았어야 할 일이 되기도 한다.

여러명의 모르는 타인들이 한 벌의 웨딩드레스를 그들의  삶의 한 순간 입었다는 이유로 연결되어간다. 본인들은 까맣게 모르겠지만

웨딩드레스는 단 하루 나를 주인공으로 빛나게 보이는 옷이지만 그 옷을 벗는 순간  그 시간은 기억될뿐 그 옷은 잊히고 지워진다 그때가 인생의 절정이었거나  이제 마지막 잡을 수있는 기회이거나  돌이켜야할 순간이거나  그냥 아무런 감정이 없거나 후회이거나 그 옷은 다만 그 옷을 입었던 순간으로 기억된다.

마흔 네명의 결혼도 그렇다.

결혼이 개인적인 일이 아니라 사회 제도로 들어가겠다는 공식적인 선언이 되어버리고 내가 내가아닌 다른 사람들에 의해 당위되어지는 일들이 당연하게 되어버리는 일이고 누군가에게는 한 번쯤 해보고 싶은 일이기도 하다.

 

<효진> 은 자기 의사와 관계없이 엮인 선들을 과감하게 잘라낸다. 자기를 억압하던 가부장적인 가족에서 벗어난다. 그 속에서는 그것이 억압이고 폭력인지 알지 못한다. 너도 나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거부하지 않은 제도나 문화속에서 자기의 위치는 그저 당연하다. 누군가에게는 폭력이 되고 누군가는  이게 옳다고 스스로 믿게 되고 누군가에게는 받아들이는게 당연한 일이 된다. 효진은 그 관계를 스스로 끊어버리고 새로운 친구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간다. 주체적으로 내가 관계를 선택했다고 해서 모든 것이 옳거나 좋은 것은 아니다.건전하고 사랑스러운 근과의관계도있지만   또 다른 인격적 폭력을 행하는 남자도 만난다. 관계들을 맺고 끊어내며 효진은 자기가 가장 잘 하는 일, 도망치는 일로 일본으로 떠나지만 여전히 그는 다시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효진은 스스로 도망친다고 말하지만 아닌 것을 끊어내고 피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대로 질질 끌러가다가 옴팡 뒤집어 쓰는것은 용기도 아니고 뭣도 아니니까

좋은 기억은 여전히 가지고 나쁜 기억은 얼른 얼른 지워가며 낯선 곳에서 고군분투하는  그녀를 응원한다.

 

<알다시피 은열>에서 주인공 정효는 논문을 앞둔 역사학도 이고 동시에 밴드 키보드 연주자다

우연히 사료 한 귀퉁이에서 만난 위왜집단의 존재와 은열이라는 인물 일본인 시로와 중국인 창랑의 관계를 찾아보며 흥미를 느낀다. 빈약한 사료를 바탕으로 무한한 상상을 펼쳐가며 이것이 논문인지 픽션인지 알 수 없는이야기를 엮어낸다  한 중 일 서로 다른 국적의 인간관계를 아우르는 범 아시아 적인 새로운 관계에 관해 관심을 갖지만 논문으로 나오기엔 턱없이 자료가 부족하고 그저 상상으로 이야기를 이어가며 움켜쥐고 있을 뿐이다.

현실의 정효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밴드를 계속할까 말까를 망설이는 중인데  중국인 일본인 호주인이 들어오면서  논문처럼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서툴고 간절한 음악을 만들어간다.

설령 돌아서면 잊힐 존재들일지라도 서로 연연해하지않으며 언제 깨져도 이상하지 않을 관계로 깃털처럼 가벼워서 오히려 그렇게 이어지는 관계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지금 이 순간 우리가 함께 음악을 하고 시시껄렁한 농담을 하고 서로 화를 내고 화해하는 이 순간이 좋을 뿐이다.

이 관계의 의미는 나중에 누군가가 붙여주든 잊히든 그만이다.

 

<옥상에서 만나요>

관계는 사람과 사람을 넘어사람과 기이한 존재의 관계로 확장된다

지리멸렬한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 직장 세명의 언니와 친밀한 관계를 이어가던 주인공은 언니들이 떠나고 다시 지루하고 삭막해진 현실을 깨기 위해 언니들이 전수해준 <규중조녀비서>에 나오는 신랑 소환의식을 회사 옥상에서 치른다.

여기가 아니라면 어디든 어떤 인간이든 상관하지 않겠다는 간절함에 세상 모든 부정과 지루함과 악습을 타파해달라는 소소한 정의로움이 뒤섞인 소환의식은 뜻밖의 존재를 소환한다.

분명 어떤 인간이든 인간이라고 믿고 치렀는데 등장한 것은 사람도 아니고 사람의 형상조차 아닌 무어라 정의하기 어려운 존재 '멸망의 사도'되시겠다.

그래도 게으르고 낙천적이고 일단은 미루고 생각하는 주인공은 그와의 생활을 시작하고 서서히 그의 존재에 익숙해진다 그리고 친밀해지기까지 한다 어쨌든 남편 아닌가

언니들이 아닌 그 존재와의 관계도 나쁘지않지만 우연힌 기회에 그가 '멸망의 사도'가 아니라 '절망의 사도'라는 것 세상 모든 절망을 먹어치우며 생존을 이어간다는 걸 알게된다.

그리고 주인공의 삶은 다르게 변한다

이렇게 다른 존재와 관계를 맺고 소통하고 함께 하는 삶도 나쁘진 않다.

세 언니들과 끈끈한 유대속에서 지리멸렬한 회사생활를 견뎠던 것처럼 그 언니들의 조언으로 얻게된 이 존재와 이 세상을 함께 견디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이다

일단 존재를 인정하고 좋아하고 소통하는 순간 삶은 꽤 괸찮아진다

뭐든 긍정적이고 낙천적으로 볼 일이다

 

< 보늬 > 

돌연사한 언니

그리고 그 돌연사를 계기로 보윤 매지그리고 규진은 돌연사 닷컴을 만들고 돌연사한 사람들을 모으고 그들의 사연을듣고 서로서로의 연결점을 생각하고 이어준다.무심하게 오래된 사이인 세사람의 이야기와그들이 만든 돌연사 닷컴  그건 갑자기 죽어버린 보윤의언니 보늬에서시작한다

전혀 관계없어보이는사람들이돌연사라는고통점으로함께하고  그들을 알게 되고 죽음의 이야기를 들으며 조금씩 소통되고 알아가는 세상이 확장된다.

이야기는 아무렇지 않게 가볍게 툭툭 던져진 문장들이 쌓이고 쌓이면서 근사한 관계맺음 소통 호근 유대를 보여준다 .

어쩌면 관계를맺는다는 것은 서로에게 부담이 없고 언제든나설수도 있고 그렇지 않더라도 서운하지 않을만큼의 질량과 밀도와  무게가 필요하다.

길게 오래 깊게  외롭고 상처받지 않기 위해

별건 아니지만

"하다가죽지 않는거

 하다가 죽어도 관계 없는 거' 그런 일을 하고 싶어하는 보윤의 마음을 알 거같다.

그리고 분명히 어딘가 그런 일이 있을 것이고 나도 어디선가 누군가 연결되어 있을거라고 맹목적으로 믿게된다 .

 

<영원한 77사이즈>

하다하다 이제는 좀비까지..

이 소설집이 이렇게 맹랑한 환타지물인지 몰랐네. 나 환타지 참 싫어하는데 이렇게 빠져들수도 있구나.

여자는 늦은 밤 인적없는. 조명등마저 군데군데 꺼진 서울의 지하보도를 걷다가 그것의 습격을 받고 죽었으나 죽지 못한 좀비가 된다.

참 슬프고 원통하고 무서운 이야기다.

서울에서 지금도 그렇게 누군가에게는 아무렇지도 않은 공간이 누군가에게는 공포의 공간이 될수 있다.

어쨌든 이야기로 돌아와서

좀비들 사이에도 지켜야 할 룰이 있고 관계가 존재한다.

갑오년 동학 때 죽은  좀비와 21세기 서울에서 좀비가 서로에게 룰을 전수하고 친밀해지다니

이제 인간이 아닌 여자는 인간의 피가필요하다.

현재 그녀는 마늘이나 십자가를 피할 필요는 없고 그저 곶감을 조심해야 하고 혈액공급원에서 폐기처분되는 피를 마시며 삶을 이어나간다. 참 합리적이고  간결한다

그리고 오래 짝사랑했던 남자를 만나 뭔가 관계를 만들어가고 싶어하지만...

관계맺음은 좀비들 사이에도 있고 인간과 인간이어도 전혀 관계가 이뤄지지 않는 경우도 있다.

여자는 좀비가 되어 비로소 자유롭고 자기 욕망을 들여다 보며 충실해진다.

가끔 오래 이어왔던 관계를 바꾸는 것도 필요하다.

그것이 내게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면 그저 내가 소모되고 말 관계라면 말이다

나는 그녀가 가능한 늦게 늦게 곶감을 먹기 바랄 뿐이다.

 

<해피쿠키 이어>

귀에서 과자가 자라는 남자.

다른 어떤 작가가 만들어낸 어떤 작품속의 인물보다 가장 따뜻하고 젠틀하고 다정한 주인공이 나온다. 그는 고루하고 가부장적이고 여자를 우습게 여길거라고 생각되는 중동에서 그와 다를 바 없기도한 한국으로온 남자다.

친구를 도와주러 갔다가 사고로 귀를 다치고 난 후귀에서 과자가 자라기 시작했는데 그 이후 그 사고 제공자와 둘도 없는 친구가 된다.

아무것도 제대로 해먹지 않으면서 자기 귀를 뜯어 먹어버리는 여자를 사랑하고 연인이 된다.

그 관계속에서 남자는 그럴 수 없이 예의 바르고 다정하고  배려심이  깊다.

관계란 자고로 이렇게 깔끔하고선을 지킬 줄 알며 동시에 타인에 대한배려가 있어야 하는법이다

이 인물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이다

 

<이혼세일>

이혼하는 친구가 여는 세일에참석한 친구들 이야기이다.

이럴 수도 있구나

가벼운 감탄이 나왔다

이혼이란 불길하고 불행의 냄새를 팍팍 풍기는 것이라 옆에 접근만 해도 내게 옮을 것 같고 이혼하는 이들의 물건은 무슨 전염병을 옮기는 물건처럼 불길하고 위험하다는 생각이 전혀 없이

이혼을 앞둔 친구의 물건을 거리낌없이 나눠가진다.

필요가 없어진 물건을 필요한 사람에게 전해주는 일.

내가 필요한 것을 이제 필요없어진 사람에게 나누어 받는 일

담백하고 단순하다.

오랜 친구들처럼 서로 질투도 있고 꽁냥꽁냥 뒷말도 있고 자존감이 떨어지기도 하고 괜히 부럽고 그렇지만 또 그만큼 단순하고 이해하고 있다.

부담없이 나누고 아낌없이 베푸는 일이 이야기속에 일어난다.

저마다 입장이 다르고 처한 위치에 따라 바라보는 풍경이 다르지만 친구라는 이름으로 일단은 그저 보듬고 받아들이는 것 이것도 괜찮구나 싶었다.

결혼을 했거나 하지 않았거나 아이가 있거나 없거나 하나이거나 둘이거나 

별 사소해보이는 결정들이 사람의 입장을 다르게 할 수도 있지만 그 모든 것을 아우르는 우정도있다.

마지막 장아찌 누름돌은 살짝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별거 아닌 둥글고 묵직한 돌

그걸 편하게 주고 받을 수 잇는 관계도 참 괜찮다.

 

<이마와 모래>

대식국과소식국

이름답게 많이 먹고 적게 먹는  것으로 가치를 두는 나라 그만큼 두 나라의 위치가 다르고 입장이 다르고 가치관이 다르고 보는 시선이 다르며 당위성도 다르다.

두 나라간의 전쟁 갈등 중재 그리고 평화를 위해 그 사이에서 고군분투하는 이마와 모래의 이야기

서로 자기 기준으로 이해할 수 없는 두 나라는 긴 전쟁과 짦은 평화 그리고 다시 이어지는 갈등에서 더 이상 피곤한 상황은 피하고 싶은 마음은 같지만 그걸 상대방에게 이해시키고 공감을 끌어내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그 가운데 자기 이익을 우선시 하는 인물도 있고

서로 상대가 야만적이고 무지하며  멋도 맛도 모르는 꽉 막힌 족속이라고 여긴다

말그대로 완벽한 남이고 타인이다

두 나라의 기구한 역사탓에 두 나라 문화를 모두 접하고 언어를 이해하는 이마와 모래가 두 나라의 중재에 나서고 갈등을 봉합한다.

갈등해소는 언어나 정치적 이해관계가 아니다

그저 타인을 이해해보려는 마음 그의 입장에서 바라보려는  움직임에서 시작된다.

 

이야기들은 다 짧고 경쾌하게 끝난다.

누군가가 죽거나  좀비가 되거나 기이한 존재가 등장하고 피냄새가 나는 전쟁이 일어나도

이야기는 그지없이 명랑하고 맹랑하다

이렇게 작고 소소해 보이는 이야기들이 전해주는 것. 아니 내가 읽으며 내 멋대로 받아들이는 것

너의 관계 맺음은 너가 결정하는 것이다.

나의 관계도 내가 결정한다.

다만 내 입장만 고수할 필요는 없고 외로운 한마리의 늑대가 될 필요도 없고 누군가와 연대하고 소통하고 이해하는 일이 꽤 괜찮다는 거다.

그렇게 만들어진 관계망을 유지하든 잘라버리듯 다시 어디에서 새롭게 이어가던 그건  너만 결정할 수 있다. 누군가가 대신 해줄 수도 없고 명령할 수도 없다. 그건 너의 일이므로

너의 선택이라면, 너가 결정했다면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라고말한다.

약하고 별거 아닌 것이 질기고 오래 가기도 하고 온갖 좋은 정의와 미사여구 이해관계로 이어진 관계가 바삭 허물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그것이 내것이 아니라면

낯선 타인과의 관계도 괜찮을 수 있다. 너무 겁먹지 말라.

단 모든 관계를 유대를 연대를 스스로 능동적으로 행하라.

스스로 선택하거나 스스로 거부하거나  나의 선택을 너의 선택만큼 존중할 것

그게 가능할때 진정한 연대가 이루어 진다.

작고 귀엽고 소소하고 팔랑팔랑 떨어지는 꽃잎같은 이야기에서 나는 그걸 읽는다.

 

내가 이 소설집과 잘 관계맺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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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속에는 노란상상 그림책 51
차재혁 지음, 최은영 그림 / 노란상상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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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순간은 망설임이 없었다

친구가 올린 공지글을 보고 나도 못 갈건 없겠다 싶었다.

그때 쯤이면 신경쓰던 일도 마무리가 되어 갈 것이고 어떤 결정이 나든 지금 아니면 이렇게 혼자만 훌쩍 떠날 시간이 당분간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고 그동안 다들 시간을 내어 여기저기 다녔는데 나만 시간에 매어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는 억울함도 한몫했을 것이다

그러나 막상 일정이 다가오고 계획이 세워지는 걸 보면서 이게 과연 맞는 걸까 하는 망설임이 스믈스믈 기어 올라왔다,

놀아본 놈이 논다고 늘 핑계뒤에 숨었던 습성이 어디 가질 않는다.

갈까 말까? 망설이는데 마침 한 차 정원이 안되니 어쩌니 하는 글이 올라오는 걸 보며 이게 기회인가 보다 발을 빼라는 말인가 보다 했지만 결론은 기차표를 예약해버렸다.

이젠 갈 수 밖에 없다.

고작 일박이일 여행조차 이렇게 갈등을 해야하다니 나도 많이 변했구나

한때는 마음 먹는 순간 발을 내디뎠던 적도 있었는데 지금은 하룻밤에 모래성을 쌓고 허울고 그리고 끝! 그런 일들이 허다하다.

 

막상 떠나니 별거 아니었다.

남겨진 가족들은 약오를만치 자기들끼리 잘 지냈고 자기 일에 바빠 서로 연락도 안했고

안전하게 잘 아는 이들과의 익숙하지만 낯선 여행은 그냥 좋았다.

날이 추워도 좋았고 바람이 불어도 좋았고  식당이 만석이라 도로 나와야 하는 것도 '어설프고 조악한 전시물들도 좋았고 마냥 읽어내려간  문화재 해설도 좋기만 했다.

뭘 먹어도 맛있었고 뭘 해도 시간이 딱딱 맞은 건 기가 막히게 일정을 짠 친구덕이기도 했지만

어딜 나선다고 해도 하늘이 무너지지 않는다는 신호처럼 보였다..

별 거 아니구나

이렇게 나만을 위해 돈을 쓰고 시간을 쓰고 감정을 쓰는 일이 별거 아니구나

의외로 너무 시시했다.

이럴거.....

 

어두운 저녁을 배경으로 주인공은 서성인다

카메라를 들고 사무실을 나서보지만 하나도 찍지 못하고 도로 돌아온다,

그리고 계속 머리를 굴린다..

그런 말은 없고 그런 낌새도 없지만 어수선한 사무실에서 커피를 내리고 창밖을 바라보고 개의 등을 쓰다듬는 주인공의 모습이 뭔가 생각이 많지만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모습이다

그건 참 익숙하고 잘 아는 모습이다..

친구들에게 전화를 하지만 그의 친구들은 나의 친구들과 달랐다.

왜 가냐고?

간다고 별 수 있냐고?

다음에 같이 가자고

그리고 전화를 받지 않고...

자꾸 망설이는 마음을 뒤에서 잡아당긴다. 너의 망설임이 옳은 거야 그걸 따라야해

남자는 주인공은 여전히 그냥 있어야 겠지? 나서지 말아야겠지?

그 마음이 70%를 넘지 않았을까

그 마음을 안고 모자를 쓰고 옷을 입고 집을 나선다.

조금만 가보자 저기 골목까지만  저기 모퉁이 까지만  저기 지하철 역 입구 까지만...

망설이는 마음 주저하는 마음 이건 아니지 않을까 하는 마음과 다르게 몸은 계속 앞으로 간다.

거리를 걷는 사람들과 보폭을 맞추고 방향을 맞추고 어긋나면서

그들은 자기가 어딜 가는지 알고 있을까?

제대로 가고 있는 걸까?

나는 가는게 맞는 걸까?

남자는 이젠 적당이 풀어진 망설임을 안고 지하철을 차고 갈 뿐이다.

그리고 마침 다다른 그곳

그래 오길 잘했다.   그렇지?

 

일단 움직이면 걷기 시작하면 닿는 곳이 어디든

언제나 오길 잘 했다.

좀 시간이 걸리고 험하고 많이 돌아온 길이라도 오길 잘 했다.

나도 그렇게 가길 잘 했다.

추운  관광지를 다니고 새로운 곳에서 감동하고 맛있는 밥을 먹고 이젠 함께 모여도 그닥 수다떨 거리도 없어 멍하니 티비만 바라보고 있다가 잠이 들어도 무심하게 마음도 편하니 오길 잘했다.

 

 

어디든 망설여진다면

일단 발을 떼고 보자

신을 신고 끈을 고쳐 질근 묶고 문을 열고 나서면 된다.

그럶 반은 한 셈이다.

 

올해 한 방향을 향해 12년을 걷다가 조금 멈춰 돌아가는 길을 택한 아이에게도

일단 정했다면

아니 아직도 망설여지더라도

일단 나가서 걷고 보자. 한 발 한 발 이게 아닌데 싶은 마음이어도 그냥 걷다보면 그게 목적지가 될것이고  아무래도 아니라면 다시 돌아가면 그 뿐이다.

느린건 잘못이 아니다.

 

그림책속의 남자가 느리게 걸어서 좋았다.

그림속에서 뭔가 아직도 망설이고 생각이 많아서 더 좋았다.

그래도 계속 걸어가서  그게 더 좋았다.

 

아이보다는 어른에게

이제 막 어른이 되려는 이들에게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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